실종자 (Der Verschollene)

(Der Verschollene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실종자 (Der Verschollene)
작가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초판 발행1927
장르소설


작품소개

<소송>, <성>과 더불어 카프카의 3대 장편소설의 하나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 가운데 다만 첫 번째 장만을 1913년에 <화부. 단장 Der Heizer. Ein Fragment>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미완성으로 남은 유고는 카프카 사후 친구 막스 브로트의 편집으로 1927년에 처음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후에 카프카 일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작품 제목은 ‘실종자’로 정정되었다. 소설은 하녀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미국으로 보내진 16세 소년 카를 로스만이 뉴욕 항에 도착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대치 않게 마중 나온 부유한 숙부 야콥은 카를을 아들처럼 거두어주고 교육을 시키지만, 어느 날 허락받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차 없이 그를 집에서 내쫓는다. 카를은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가,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억울한 비난으로 여기서도 쫓겨나고, 사기꾼 들라마르슈의 강압으로 오페라 여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으로 전락한다. 마지막 장에서 카를은 모두에게 환대와 일자리를 약속하는 오클라호마 극장을 향해 간다. 카를의 희망이 어떤 현실과 만날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원고는 중단된다. 카프카의 일기에 따르면 카를은 소외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며, 제목 실종자 역시 그러한 결말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다른 장편소설에 비해 그로테스크하고 비현실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카프카 문학의 전형적 특성을 덜 드러내지만, 카를이 미국에서 맞닥트리는 비개인화되고 관료제적으로 조직화된 현대적 문명은 <소송><성>의 세계를 예고한다. 김정진의 번역으로 1958년에 출간된 <아메리카>가 한국어 최초 번역본이다(동아출판사).


초판 정보

Kafka, Franz(1927): Amerika. München: Kurt Wolff.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아메리카 城, 아메리카 世界文學全集 第1期 7 프란쯔 카프카 金晸鎭 1960 東亞出版社 321-546 편역 완역
아메리카 아메리카 프란츠 카프카 金晸鎭 1970 三省堂 5-278 완역 완역
3 아메리카 城, 아메리카 World Literature 5 프란츠 카프카 金晸鎭 1971 世界文學社 323-545 편역 완역
4 아메리카 審判, 아메리카 카프카 金晸鎭 1972 三省堂 5-293 편역 완역
5 아메리카 審判, 아메리카, 變身, 流刑地에서(심판, 아메리카, 변신, 유형지에서) 世界文學大全集(세계문학대전집) 33 프란츠 카프카 郭福祿 1980 徽文出版社 229-477 편역 완역
6 아메리카 아메리카, 變身, 流刑地에서 外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 29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 1981 금성출판사 3-248 편역 완역
아메리카 (신편)세계문학대전집 17 : 변신, 심판,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신편)세계문학대전집 17 프란츠 카프카 곽복록 1985 信永出版社 269-497 편역 완역
8 아메리카 변신 골든 세계문학전집 20 카프카 곽복록 1987 中央文化社 271-504 편역 완역
실종자(아메리카) 심판∙실종자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30 F. 카프카 박환덕 1987 汎友社 231-451 편역 완역
10 아메리카 아메리카, 變身, 短篇 완역판 세계문학 Sunshine Series 44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 1987 금성출판사 5-277 편역 완역
11 아메리카 아메리카, 變身, 短篇 금장판 세계문학대전집 88 카프카 洪京鎬 1990 金星出版社 5-277 편역 완역
12 아메리카 변신, 심판,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벨라주) 世界文學大全集 17 프란츠 카프카 곽복록 1990 신영출판사 269-497 편역 완역
13 아메리카 심판, 아메리카, 변신 베스트세계문학 13 카프카 곽복록 1993 신원문화사 239-506 편역 완역
실종자 실종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한석종 2003 솔출판사 9-287 완역 완역
15 아메리카 변신, 아메리카 골든세계문학전집 33 프란츠 카프카 곽복록 2005 JDM중앙출판사 73-373 편역 완역
16 실종자 실종자 지만지고전천줄 100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2008 지만지고전천줄 15-158 편역 발췌역
17 실종자 실종자 지만지클래식 13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17-318 완역 완역
18 아메리카 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프란츠 카프카 곽복록 2014 꿈결 7-434 완역 완역
19 아메리카 (중학생이 보는) 아메리카 중학생 독후감 세계문학 151 프란츠 카프카 곽복록 2014 신원문화사 10-425 완역 완역
20 실종자 실종자 천줄읽기(큰글씨책)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큰글씨책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17-181 발췌역 발췌역
21 실종자 실종자 카프카전집 4 프란츠 카프카 한석종 2017 솔출판사 9-287 완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카프카의 <실종자>에 대한 번역 비평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한 작품의 형성 과정의 복합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 과정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소설의 제1장 <화부 Der Heizer>를 따로 떼어 카프카가 직접 출간한 것 1913
  • 막스 브로트가 <아메리카 America>로 출간한 것 1927
  • 막스 브로트의 개정판(단장 추가) 1935
  • 비평본 <실종자 Der Verschollene> 1983


카프카는 제목과 장 번호를 매긴 6개의 장과 제목이 없는 네 편의 단장을 남겼다. 막스 브로트는 두 개의 단장은 제외하고 두 개의 단장에 제목을 붙여 총 8개 장으로 된 작품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그는 장 제목만을 붙이고 장 번호는 매기지 않았다. 개정판에서 브로트는 8개의 장에 처음에 배제한 두 단장을 포함시켰다. 비평본에서 비로소 카프카의 유고대로 작품은 6개의 장과 네 개의 단장으로 분류되었다. 카프카가 직접 출간한 <화부>의 원고와 브로트의 <아메리카> 속에 첫 번째 장으로 들어간 <화부>, 그리고 비평본의 제1장 <화부>가 서로 조금씩 편차가 있다. 이는 번역 비교 작업을 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원본이 다양한 만큼 번역도 다양하다. 일단 카프카가 단장으로 발표한 <화부>를 번역한 것이 있다. 1970년대에 나온 카프카 소설 단편집(이동승, 홍경호 등의 번역)에 실려 있는 경우가 있다. 솔 출판사의 카프카 전집판의 카프카 단편 전집(이주동 역)을 포함해서 2000년대 이후 출간된 다양한 카프카 단편집에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브로트판 <아메리카>의 번역판이 1958년 김정진의 번역으로 처음 나온 이래 70년대,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곽복록, 홍경호, 박환덕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대부분은 막스 브로트가 개정판에 포함시킨 두 개의 단장이 빠진 채, 총 8개 장 구성으로 편집되어 있다. 브로트는 장 번호를 붙이지 않았으나, 한국어 번역판은 거의 장 번호를 붙였다. 박환덕 번역판은 두 개의 단장을 포함하고 있다. 이채로운 것은 박환덕의 번역이 막스 브로트의 판본 <아메리카>를 번역한 것이지만, 제목은 카프카의 본래 의도에 따라서 실종자로 붙였다는 점이다. 책이 출간된 것이 1987년인데 독일에서 이미 1983년에 실종자라는 제목의 비평본이 나왔으므로 그 예를 따른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2000년대에 비로소 비평본을 저본으로 한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카프카 전집 4권으로 나온 한석종의 번역판과 단행본으로 나온 편영수의 번역판이 그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두 번역본만이 <실종자>라는 제목에 부합한다.


<화부> <아메리카> <실종자>를 모두 합하면 번역 출간 종수는 매우 많지만, 같은 역자가 여러 차례 출간했기 때문에 번역 비교는 주요 번역자의 대표 번역본으로 국한하도록 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이 소설은 비교적 ‘쉬운’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쉬움의 외관 뒤에도 상당한 모호성과 불확실성이 숨어 있다. 이러한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곧 번역자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번역의 비교가 의미 있게 되려면 역자가 장편소설 <실종자/아메리카> 전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라는 관점에서부터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때문에 <화부>의 번역은 본격적인 비교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다.


2. 개별 번역 비평

1) 김정진 역의 <아메리카>(1970)

<아메리카> 최초의 역자인 김정진 번역에서 소설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카를 로스만은 열여섯 살 때 어느 하녀에게 유혹당한 나머지 어린애까지 배게 하여, 그의 가난한 양친에 의해 아메리카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를 태운 배가 속력을 늦추고 뉴욕 항에 천천히 들어갔을 때 그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쳐다보고 있었던 자유의 여신 입상이 마치 갑자기 강해진 햇빛 속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여신은 칼을 잡은 팔을 높이 쳐들고 있었으며 입상에는 시원한 미풍이 감돌고 있었다.


이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Als der sechzehnjährige Karl Roßmann, der von seinen armen Eltern nach Amerika geschickt worden war, weil ihn ein Dienstmädchen verführt und ein Kind von ihm bekommen hatte, in dem schon langsam gewordenen Schiff in den Hafen von New York einfuhr, erblickte er die schon längst beobachtete Statue der Freiheitsgöttin wie in einem plötzlich stärker gewordenen Sonnenlicht. Ihr Arm mit dem Schwert ragte wie neuerdings empor, und um ihre Gestalt wehten die freien Lüfte.


이렇게 원문과 대조해보면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카프카의 소설은 카를 로스만이 뉴욕항에 들어오고 있는 순간에 시작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구로 진입하는 그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에 반해 김정진은 원문의 관계절에 부가된 설명을 독립적인 문장으로 앞으로 빼냄으로써 소설의 시작을 카를이 하녀를 임신시키는 때로 앞당긴다. 그것은 복잡한 관계절을 해체하여 읽기 쉽게 만든다는 장점은 있지만, 미국에 도착한 카를 로스만의 현재를 기점으로 그의 시점에서 일관되게 전개되는 소설의 기본 구성 원리가 번역을 통해 흐트러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하나 원문과의 비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아메리카로 쫓겨났다’는 번역이다. 카프카는 단순히 보내졌다고 쓰고 있지만, 김정진 번역에서는 쫓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한 인간이 보내진다는 것은 쫓겨났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너는 사정이 이러하니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했을 때 본인도 수긍하고 온 것이라면, 쫓겨났다는 말은 과한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게 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카를과 그의 여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와도 관련이 깊은 문제다. 역자는 로스만의 미국행이 아이를 임신시킨 잘못에 대한 징벌이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쫓겨났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으로 ‘아메리카’라는 이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Amerika’라는 브로트의 제목을 그대로 ‘아메리카’로 옮겼으므로, 본문에서도 Amerika를 아메리카로 옮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Amerika는 여기서 미국을 의미한다. 한국어에서 아메리카는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하기도 하고 미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자주 사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목은 ‘아메리카’를 택했더라도 본문에서는 미국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겨진다.


끝으로 “시원한 미풍”이라는 번역을 보자. 원문은 “die freien Lüfte”이다. 그대로 하면 자유로운 바람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카프카가 왜 Lüfte 앞에서 굳이 이 단어와 일상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frei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이 번역에 대한 평가의 관건이다. “시원한 미풍”은 이 비일상적 표현을 더 자연스럽지만 평범한 표현으로 바꾸어놓은 번역이다. ‘자유로운’이라는 형용사를 그 본연의 의미대로 정신적, 심리적 차원과 연결시킨다면,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로스만의 주관적 기대가 이 표현에 투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여신상 주변을 감도는 미풍이 멀리서 바라보는 로스만에게 직접 감각적으로 감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명백하므로, ‘frei’는 더더욱 관찰자의 주관적 심정을 반영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시원한 미풍’이라는 번역은 그러한 미묘한 주인공의 심리적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다.


김정진의 번역은 오래된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큰 무리 없이 잘 읽히는 편이며, 심각한 오역도 없다. 그러나 미묘하고 불확실한 카프카적 소설의 핵심적 특징을 포착하는 데서 약점을 드러낸다.


2) 곽복록 역의 <아메리카>(1985)

칼 로스만이 열 여섯 살 나던 해에 넉넉지 못한 가정의 부모로부터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것은, 그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한 때문이었다. 칼이 탄 배가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뉴욕항에 진입하기 시작했을 때 벌써부터 그의 눈길을 끌던 자유의 여신상이 그에겐 갑자기 구름을 벗어난 강렬한 햇빛 속에 푹 싸인 것처럼 보였다. 칼을 든 팔은 마치 방금 치켜든 것처럼 생동감 있게 하늘을 찌르며 솟아 있고, 여신상 둘레에는 자유의 산들바람이 훈훈하게 불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곽복록 1985)


곽복록은 “칼 로스만이 ...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것은”으로 첫 문장을 시작함으로써 이야기의 시작을 카를 로스만이 미국에 도착한 시점으로 잡는다. 이는 원문의 설정에 근접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역시 로스만이 쫓겨났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곽복록의 번역이 김정진의 번역과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은 마지막 문장이다. “여신상 둘레에는 자유의 산들바람이 훈훈하게 불고 있”다고 함으로써 “freie Lüfte”가 로스만의 심리적 인식임을 드러낸다. 여기에 “훈훈하게”라는 부사까지 첨가하고 있는데, 이로써 카프카의 외부 세계 묘사가 주관적이고 정신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역자의 자의적인 덧붙임은 원문에서 미묘하게만 드러나는 어떤 경향을 아주 명백하게 표현한다. 그것은 원문에서 역자가 읽어낸 것을 번역 표현에 반영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곽복록의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는 다음과 같은 번역문에도 잘 드러나 있다.

방에 뚫린 세 개의 창문 너머로 파도치는 바다가 보였고, 경쾌하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니 이 닷새 동안 줄곧 바다 위에서 지내온 것이 거짓말처럼 가슴 설래었다.

카프카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Vor den drei Fenstern des Zimmers sah er die Wellen des Meeres und bei Betrachtung ihrer fröhlichen Bewegung schlug ihm das Herz, als hätte er nicht fünf lange Tage das Meer ununterbrochen gesehen.


원문에서는 “거짓말처럼” 같은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거짓말처럼”으로 마무리된 절을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마치 그가 지난 닷새 동안 바다를 끊임없이 보지 않기라도 했다는 듯이

즉 배를 타고 오면서 끊임없이 바다를 보아 왔건만, 사무실의 창으로 내다본 바다의 물결이 새삼 마음을 설레게 했다는 것이다. 곽복록은 “이 닷새 동안 줄곧 바다 위에서 지내온 것이 거짓말처럼”이라고 번역하여 원문의 어감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다. 이때 원문의 축자적 의미에서 부분적으로 멀어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한다. 창의적이라고 할 정도의 자유로운 번역은 다음 구절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이 모든 광경의 배후에는 거대한 뉴욕이 들어서 있었는데, 몇십만 개인지 헤아릴 수 없는 줄지어 선 마천루의 창문들이 눈동자처럼 반짝이며 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은 것만 같았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Hinter alledem aber stand New York und sah Karl mit den hunderttausend Fenstern seiner Wolkenkratzer an. Ja in diesem Zimmer wußte man, wo man war. 


카프카는 뉴욕을 의인화하고 있다. 뉴욕이 마천루의 수십만 개의 창문으로 카를을 바라보고 있다고 카프카는 묘사한다. 그것을 곽복록은 “뉴욕이 들어서 있었”으며, “몇십만 개인지 헤아릴 수 없는 줄지어선 마천루의 창문들이 눈동자처럼 반짝이며 칼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옮기고 있다. 카프카의 문장이 불러일으킨 심상을 역자는 다시 한국어로 더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창문들이 눈동자처럼 반짝인다는 새로운 비유법이 탄생한다. 카프카는 눈동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뉴욕이 마천루의 창문들로 카를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마천루의 창문들을 뉴욕의 눈동자에 비유한 셈이다. 곽복록의 번역에는 이 암묵적인 비유적 심상이 “눈동자처럼 반짝이며”라는 표현으로 명시화되는데, 다만 뉴욕 자체를 보는 주체로 만드는 의인법적 구도는 다소 약화된다. 창문들은 눈동자처럼 반짝이고 내려다보지만, 그것이 바로 뉴욕이라는 의인화된 주체의 눈동자라는 사실은 다소 불분명해진다.


3) 박환덕 역의 <실종자>(1987)

열 여섯 살의 카를 로스만을 가난한 양친이 아메리카로 보낸 것은, 하녀가 그를 유혹하여 그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배의 속도가 차츰 느려지다가 마침내 뉴욕항에 들어갔을 때, 오래 전부터 보이던 자유의 여신상이 갑자기 한층 강해진 햇빛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칼을 든 여신의 팔이 방금 쳐든 것처럼 높이 치솟았고, 여신상 주위를 미풍이 솔솔 불고 있었다.


박환덕은 “아메리카로 보낸 것은”이라고 번역함으로써 부모의 결정을 원문에 부합하게 중립적으로 표현한다. 다만 번역의 첫 문장은 뉴욕항에 들어가는 카를 로스만의 시점과 무관하게 읽히므로, 소설 시작의 기점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못했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절을 좀더 읽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우선한 셈이다. 또한 freie Lüfte를 미풍으로 번역함으로써 바람과 자유의 여신상의 관계, 자유의 여신상을 올려다보는 로스만의 시선과 기대는 숨겨지게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박환덕의 번역은, “갑자기 구름을 벗어난” “훈훈하게”처럼 원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식어구를 집어넣는 곽복록의 주관적 번역과는 달리 차분하게 읽히고 축자적 차원에서 볼 때 김정진의 번역보다도 더 높은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다음 대목을 곽복록 번역과 비교해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방의 세 개의 창문 밖으로 바다 물결이 보였다. 기쁜 듯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자, 마치 닷새 동안의 긴 여행 중 전혀 바다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카를의 가슴은 뛰는 것이었다.


생동감 있는 표현을 추가하면서 원문을 살려내려는 곽복록과는 달리, 박환덕은 카프카의 문장을 거의 문자 그대로 담담하게 전해준다. 그러나 단순히 원문에 정확히 머무르려는 태도도 미세한 오차로 인해 원문과 의미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박환덕은 “닷새 동안 전혀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바다 물결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번역한다. 카프카가 말하는 바는 “마치 닷새 내내 줄곧 바다를 보면서 오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정도의 의미, 그러니 “지난 며칠 동안 지겹게 바다를 보지 않았다는 듯이“ 정도의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닷새 동안 바다 위에 있었던 것이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는 곽복록의 번역이 이러한 뉘앙스를 잘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4) 한석종 역의 <실종자>(2003)

한석종은 <실종자 Der Verschollene>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비평판을 초역했다. 한석종의 번역 역시 전반적으로 정확하고 충실한 편이다. 역시 첫 번째 문단의 번역을 살펴본다. 비평판은 로스만의 나이를 열여섯 살에서 열일곱 살로 올려놓았다.

열일곱 살의 카알 로스만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양친은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그가 타고 온 배가 속도를 낮추어 뉴욕 항에 들어오고 있을 때, 그는 멀리서부터 관찰하고 있던 자유의 여신상을 쳐다보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갑자기 더 강렬해진 햇빛을 받는 듯했다. 칼을 든 팔은 마치 방금 치켜든 것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여신상 주위에는 바람이 한가하게 불었다.


위의 세 번역과 비교해 볼 때 이 번역의 특징은 관계절을 풀어서 읽기 쉽게 만드는 번역 경향이 문장을 단문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장 개수가 많이 늘어났고(3개에서 5개로), 그러다 보니 이전 번역문 호흡에 익숙한 독자는 읽을 때 다소 말이 끊기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 결과 역시 항구에 진입하는 카를 로스만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기점이 손상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2000년대 이후 번역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단문화 경향이 여기서도 확인되기에, 이는 단순히 역자 개인의 선택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freie Lüfte’ 부분은 ‘바람이 한가하게 불었다’로 처리되어 역시 자유의 여신상과의 관계는 끊어졌다.


그는 세 개의 창문 너머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고, 경쾌하게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니 마치 기나긴 닷새 동안 줄곧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가슴이 설래었다.


이 대목은 “ununterbrochen”을 “줄곧”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축자적인 면에서는 박환덕의 번역보다 더 정확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닷새 동안 줄곧 바다 위에서 지내온 것이 거짓말처럼”이라는 곽복록의 번역 속에 포착된 뉘앙스는 잘 표현되지 못했다. 문자적으로는 틀린 점을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원의가 살아나지 않는다. 곽복록처럼 다시 쓰기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해도 뉘앙스를 잡아낼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마치 기나긴 닷새 동안 줄곧 바다를 본 사람이 아닌 것처럼”이라고 하면 원의는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표현으로서 썩 매끄럽고 잘 읽히는 것은 못 된다. 한석종은 뉴욕과 마천루의 창문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가?

이 모든 광경의 뒷면에는 뉴욕이 있으며, 마천루의 수십만 개 창문들이 카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카알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역시 곽복록의 번역과 대비를 이룬다. 임의적으로 추가된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완전한 원문에의 충실성은 달성되지 못한다. 뉴욕과 마천루의 창문들이 분리되고 창문들 자체가 보는 주체로 간주됨으로써, 뉴욕이 바로 카를을 바라보는 주체라는 사실, 마천루의 창문들이 뉴욕의 눈동자라는 사실, 창문들이 눈동자처럼 응시하고 있다고 느끼는 카를의 주관적 감정이 배후에 서 있는 뉴욕을 의인화된 보는 주체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원문에서만큼 뚜렷하게 부각되지 못한다.


3. 평가와 전망

가장 최근의 <실종자> 번역은 편영수의 번역이다. 2009년에 지만지에서 출간되었고, 202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역시 2000년대 이후의 독일문학 번역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공유한다. 한석종의 <실종자> 번역과 유사하게 가독성을 높인 짧은 문장에 대한 선호 경향을 나타낸다. 앞으로 원문에의 충실성과 가독성에 유의하면서도 주인공의 의식 세계의 미묘한 지점을 더 잘 드러내는 번역이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김정진(1970): 아메리카. 삼성당.
곽복록(1985): 아메리카. 휘문출판사.
박환덕(1987): 실종자. 범우사.
한석종(2003): 실종자. 솔출판사.

김태환

바깥 링크

1. Projekt-Gutenberg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