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Minna von Barnhelm, oder das Soldatenglück)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의 희곡
작가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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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767 |
장르 | 희곡 |
작품소개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5막극으로 1767년 완성되어 그해 9월 30일 함부르크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극의 시대적 배경은 7년 전쟁이 끝난 직후인 1763년 8월 23일 아침부터 오후까지다. 줄거리는 베를린의 한 여관에서 전개된다. 프로이센군의 소령 텔하임과 작센의 귀족 처녀 민나는 서로 약혼한 사이다. 전쟁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났는데 약혼자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자 민나는 그를 찾아 베를린에 왔다. 두 사람은 우연히 여관에서 만났지만, 텔하임은 민나에게 파혼을 선언한다. 그는 당국의 오해로 인해 명예와 돈을 모두 잃자 자신이 민나의 약혼자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약혼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의 강한 명예심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약혼자의 이런 속내를 알아차린 민나는 기지를 발휘하여 텔하임과 약혼한 것 때문에 자신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에 텔하임은 사랑하는 민나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그녀에게 다시 청혼한다. 마침 당국의 오해가 풀려 텔하임의 명예가 회복되고 두 사람은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작센의 귀족 처녀 민나의 정열적인 사랑과 이성적인 기지가 명예를 앞세우는 프로이센 장교 텔하임의 고집을 꺾고 설득하여 아름다운 결합에 이르는 이 희극의 줄거리는 7년 전쟁에서 적국이었던 프로이센과 작센의 화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극은 독일 계몽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희극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1991년 윤도중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숭실대학교 출판부).
초판 정보
Lessing, Gotthold Ephraim(1767): Minna von Barnhelm, oder das Soldatenglück. Ein Lustspiel in fünf Aufzügen. Berlin: Christian Friedrich Voß.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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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민나 폰 바른헬름 | 레싱 | 레싱(G.E.Lessing) | 尹度重 | 1991 | 숭실대학교출판부 | 39-180 | 편역 | 완역 | ||
2 | 민나 폰 바른헬름 | 민나 폰 바른헬름 | 독일희곡시리즈 11 | 곳홀트 에프라임 레씽 | 김기선 | 2005 |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 9-179 | 완역 | 완역 | |
3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310 | 고트홀트 레싱 | 윤도중 | 2008 | 지식을만드는지식 | 15-154 | 완역 | 편역 | 원전의 약 70%발췌 |
4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 고트홀트 레싱 | 윤도중 | 2013 | 지식을만드는지식 | 3-207 | 완역 | 완역 | |
5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 고트홀트 레싱 | 윤도중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3-207 | 완역 | 완역 | 큰글씨책 |
6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 고트홀트 레싱 | 윤도중 | 2019 | 지만지드라마 | 3-207 | 완역 | 완역 | ||
7 | 민나 폰 바른헬름 | 민나 폰 바른헬름 | 세계문학사를 기반으로 문학작품 읽기 1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 이순예 | 2022 | 디자인21 | 13-152 | 완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독일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문학사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그는 독일 문학사상 최초로 시민 계급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은(이전에는 왕, 영웅,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미스 사라 샘슨>과 <에밀리아 갈로티>, 그리고 극시(dramatisches Gedicht) <현자 나탄>과 같이 문학사에서 꼭 언급되는 중요한 희곡작품들을 남겼다. 이 글에서 살펴볼 <민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또한 독일 계몽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희극일 뿐만 아니라 독일 희극 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1767년 초연 이래로 꾸준히 독일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도 자주 공연되고 있다.
1767년 독일 최초로 함부르크에 건립된 독일 국민극장의 드라마투르크 겸 고문직을 맡은 레싱은 국립극장 건립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코미디를 만들려 했다. 당시 유행하던 익살극(Possenspiel)은 어리석은 주인공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려고만 했고, 명랑극(Lustspiel)은 눈물 섞인 감동과 웃음만 주려 했다. 반면에 레싱은 이 둘을 종합하여 진정한 코미디, 즉 관객이 “배”로만 웃을 뿐 아니라 “동시에 오성으로도” 웃게 하는 코미디를 원했다. 그래서 <민나 폰 바른헬름>의 희극성은 남녀 주인공과 보조 인물들의 인간적인 실수와 어리석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명예와 사랑을 둘러싼 인물들 사이의 마찰로 인해 유발되는 것으로, 그것은 인간을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만드는 웃음이다. 레싱은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 교훈을 주는 희극을 만든다는 취지에 맞게 관객이 주인공 등 인물들에게 쉽게 공감하고 묘사되는 내용을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극의 줄거리도 현재로 설정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 번역의 관건은 이것이 희곡으로 무대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펼쳐진다는 점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대화나 상황에서 유래하는 희극성을 얼마나 잘 살려냈는지일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본 번역 비평의 주안점이 된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1991년 윤도중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 2022년 말 현재까지 총 7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 모두 3명의 역자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윤도중의 번역이 이런저런 형태로 2008년과 2013년, 2014년, 2019년에 재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두 역자는 김기선과 이순예로, 각각 2005년과 2022년에 번역서를 출판했다. 1991년에 초역이 나온 이후 한동안 뜸하다가 2005년 김기선의 번역 이후로 비교적 꾸준히 번역/출판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하에서는 윤도중의 초역과 2013년의 개작 그리고 김기선, 이순예의 번역본에 대해 개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윤도중 역의 <민나 폰 바른헬름>(1991)
윤도중은 이 작품을 국내 최초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개작도 하고, 그것을 다른 시리즈를 통해 재출판하는 등 이 희곡의 국내 수용에 매우 큰 부분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그 공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 그는 1991년 숭실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번역서에 레싱의 다른 희곡인 <필로타스>도 국내 초역해 같이 실었다. 레싱으로 박사학위(<G.E. 레싱의 희극에 있어서의 반전기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를 받은 전문가답게 그는 ‘작품 해설’을 통해 이 두 작품 및 레싱의 희곡론을 소개해 준다. 그런데 번역방식이나 전략에 관한 언급은 없고 저본 정보도 밝히지 않았다.
윤도중의 번역은 무엇보다 극적 사실 및 분위기에 맞는 톤으로 번역하여 내용 및 분위기가 잘 전달되며 또 가독성도 좋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먼저 2막 1장에서 민나의 시종인 프란치스카가 대도시 베를린에 도착하여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민나 아가씨 앞에서 내뱉는 말을 들어보자.
Wer kann in den verzweifelten großen Städten schlafen? Die Karossen, die Nachtwächter, die Trommeln, die Katzen, die Korporals – das hört nicht auf zu rasseln, zu schreien, zu wirbeln, zu mauen, zu fluchen; gerade, als ob die Nacht zu nichts weniger wäre, als zur Ruhe.(624)[1]
윤도중: 빌어먹을 대도시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마차들이 털털거리고 야경꾼들이 고함치고 북이 둥둥 울리고 고양이들이 야옹대고 하사들이 욕설을 멈추지 않는군요. 마치 밤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 아니란 듯 말이죠.(65)
김기선: 이렇게 한심스런 도시에서 어떻게 잠이 와요? 마차랑 야경꾼들, 북소리, 고양이, 하사들이 – 덜그렁거리고, 소리지르고, 어지럽고, 야옹거리고 저주를 끊임없이 퍼붓는데. 마치도 밤에는 쉬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잖아요.(39)
이순예: 이런 떠들썩한 대도시에서 누군들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겠어요. 마차들 하며 야경꾼들, 북장구, 고양이에다 술 취한 군인들까지 가세해 밤새 한 짬도 조용할 틈이 없으니. 이 곳에선 밤이 쉬는 시간이라는 걸 잊고 사는가 보옵지요. 딸랑거리고 외쳐대고 둥둥 쳐대질 않나, 야옹 소리에 서로 욕지기하는 소리까지 들렸습지요.(38)
원문에서는 마차, 야경꾼, 북, 고양이, 하사 등이 먼저 죽 거명되고 그것들이 내는 소리가 따로 떨어져서 다시 죽 나열되는 방식을 취하는데, 복수의 정관사 die와 동사의 부정형 앞 zu의 반복으로 인해 운율이 조성된다. 윤도중은 이것들을 원문처럼 떨어트려 각각 번역하지 않고 문맥에 맞게 소리를 내는 주체와 그 소리를 서로 연결하여 번역했는데, 그 결과 원문의 내용이 잘 전달된다. 그리고 ‘털털거리고’, ‘고함치고’ 등 ‘-고’의 반복을 통해 원문의 운율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반면 김기선은 원문의 문장 배열 그대로 번역하는 직역의 방식을 취했는데, 이를 통해 앞의 대상들과 뒤의 의성 표현들 사이의 연관성이 얼마나 잘 전달될지 좀 의문이다. 이 점에서는 이순예의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는 윤도중과는 다른 식으로 원문의 문장 구조와 순서까지 재배치하는 방식을 시도하였는바, 역자의 자율성이 많이 느껴지는 번역을 보여준다.
한편 민나와 프란치스카, 두 사람은 주인 아가씨와 시종 사이지만 동갑내기로 어려서부터 같은 것을 배우며 같이 자란 친구 같은 사이이기도 하다. 윤도중은 이런 극적 현실을 반영하여 프란치스카의 어투를 번역한 듯하다. 그의 번역에서 프란치스카의 말은 ‘-요’로 끝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이는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상대에게는 잘 쓰지 않는” 어법이다. 즉, 존대는 하지만 격식은 덜 갖추어 다소 편안하게 말하는 어투이다. 김기선도 같은 어투를 선택했는데, 이순예는 전반적으로 고어체 어투인 ‘-지요’를 사용했다.
그럼 이제 이 작품의 희극성이 잘 드러나는 2막 9장에서 텔하임과 민나 두 사람 사이의 대화 장면을 살펴보자. 일신상에 안 좋은 변화가 일어나서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며 파혼하자는 텔하임의 말에 민나는 매우 당황한다. 그러나 민나는 그가 아직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대답을 유도해서 듣고는, 그가 말하는 불행이 무엇인지, 헤어지려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말한다.
Nun, mein lieber Unglücklicher, Sie lieben mich noch, und haben Sie Ihre Minna noch, und sind unglücklich? Hören Sie doch, was Ihre Minna für ein ungebildetes, albernes Ding war, - ist. Sie ließ, sie läßt sich träumen, Ihr ganzes Glück sei sie. - Geschwind kramen Sie Ihr Unglück aus.(640)
자, 나의 친애하는 불행한 자여, 아직도 저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민나가 있는데도 불행하다구요? 당신의 민나가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계집이었고 – 또 지금도 그런지 들어보세요. 민나가 당신의 모든 행복은 자신이라고 꿈꾸었고 지금도 꿈꾸고 있습니다. 당신의 불행 보따리를 어서 풀어보세요.(88)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약혼자를 찾아 나서서 겨우 만났건만 예기치 않게 파혼 선언을 듣게 된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민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텔하임의 말을 받아서 능청맞은 태도로 해명을 요구한다. 그녀는 상대를 ‘mein lieber Unglücklicher’라고 부르고 자신은 ‘ein ungebildetes, albernes Ding’이라고 칭하는데, 윤도중은 이를 ‘나의 친애하는 불행한 자여’와 ‘교만하고 어리석은 계집’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여유를 갖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민나의 성격과 태도를 잘 전달한다. 그리고 문장을 ‘-요’체로 번역함으로써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친근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기본자세도 잘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당신의 불행 보따리를 어서 풀어보세요’라는 마지막 대사는 독자/관객의 미소를 자아낸다. 이순예의 번역과 비교해보면 이런 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순예: 사랑하는 불행한 분이시여, 그대 절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당신의 민나가 여전히 옆에 있는데 불행하다 하십니까? 그대의 민나가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아둔한 중생이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지 좀 들어보십시오. 그 중생은 자신이 그대의 행복 전부라 멋대로 생각하고 믿어왔답니다. 그러니 한시바삐 그대의 불행을 털어놔 보세요.(61)
이순예의 번역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분이시여’나 ‘보십시오’ 같은 높임말과 ‘중생’ 같은 고어체 어휘들은 민나의 다정하면서도 능청맞은 태도나 그것이 유발하는 코믹한 분위기를 반감시켜 원문의 분위기가 덜 살아난다. 한편 윤도중의 번역에서는 ‘불행 보따리’와 같은 비유적인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민나의 위 대사에 이어지는 텔하임의 대사 중 “Die im Grunde doch auch geprahlt und geklagt ist.”(640)라는 말을 “그것도 결국 허풍떨고 신세타령하는 것이지요.”(88)라고 문자적 번역보다는 우리식 표현방식을 이용한 의미 번역을 했다. 이는 원문의 분위기 전달에 중점을 둔 번역이라 하겠다. 이것은 김기선의 “그러나 결국은 자랑하거나 한탄하는 것이 되지요.”(67)나 이순예의 “그런 경우는 궁극적으로 자기과시적인 한편 동시에 한탄하는 처사라 할 것입니다.”(61)와 비교해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상에서 보듯 윤도중은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비유적인 표현과 우리식 표현을 이용하면서 작품의 희극성도 잘 느끼게 해주는 번역을 제공한다.
2) 김기선 역의 <민나 폰 바른헬름>(2005)
2005년에 나온 김기선의 번역서는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독일희곡 시리즈의 11권으로 출판되었다. 김기선은 독일희곡 전문가로서 이 시리즈를 통해 브레히트와 클라이스트, 슈테른하임, 베데킨트 등 여러 작가의 드라마를 다수 번역하였다. 작가소개와 작품소개의 글을 통해 독자의 작품이해를 도왔는데, 번역에 대한 어떤 변이나 저본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윤도중의 초역 이후 한동안 중단되었던 이 희극 소개의 맥을 이은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김기선 번역본의 특징은 한편 직역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 작품이 무대에서 배우들에 의해 연기된다는 점을 십분 고려하여 입말투 번역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상반되는 것 같은 두 특성이 혼재한다고 하겠다. 1막 2장에서 텔하임의 하인 유스트는 여관집 주인이 텔하임이 없는 사이에 허락도 없이 다른 손님(민나)에게 방을 내준 것을 놓고 그와 실랑이를 벌인다. 여관주인이 민나에게 방을 내준 이유를 해명하는 말과 이에 대해 유스트가 항변하는 말을 살펴보자.
DER WIRT. Sollte eine so junge, schöne, liebenswürdige Dame, auf die Straße bleiben?(609)
여관집 주인: 그렇게 젊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그래 거리에 나 앉아야 쓰겠어요?(14)
JUST. Einen Offizier, wie meinen Herrn!(610)
유스트: 우리 주인님 같은 장교를 그래!
김기선은 원문에는 없지만, 사람들이 흥분하면 흔히 쓰는 ‘그래’라는 말을 넣어 번역함으로써 입말이 살아 있는 번역을 보여준다. 같은 장면에서 여관집 주인이 유스트의 역정을 풀어주려고 술을 권하는 말들에 대한 번역에서도 우리의 정서가 반영된 입말투의 번역이 눈에 띈다.
Geschwind noch eins; auf einem Bein ist nicht gut stehen.(608)
자, 쭈욱하고 한 잔만 더하시오. 한술밥엔 정이 안드는 거니까.(12)
Noch eins, Herr Just; aller guten Dinge sind drei!(609)
자, 유스트 씨, 한잔 더 하시지요. 삼 세 번이요.(13)
Nicht noch eins, Herr Just? Eine vierfache Schnur hält desto besser.(609)
한잔 더 하지 않겠소, 유스트 씨? 네 번 꼰 실은 아주 질기답니다.(13)
여관주인이 네 번째 잔을 권하면서 하는 말은 ‘네 번 꼰 실은 아주 질기답니다’로 직역했는데, 두 번째 권하는 말은 ‘한 다리로는 잘 설 수 없다’와 같은 문자적 번역 대신에 ‘한술밥에 배부르랴’라는 우리말 속담을 변형하여 ‘한술밥엔 정이 안 든다’로, 그리고 세 번째 권하는 말은 ‘모든 좋은 것은 세 번 겹친다’ 대신 놀이할 때나 승부를 가릴 때 흔히 사용하는 ‘삼세번’이라는 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김기선의 번역본은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입말 중심의 재미와 사실감을 중시하는 자국화 번역의 면모를 보여준다.
한편 그의 번역서에는 다른 번역서들보다 역주가 많이 나온다. 작품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관해, 여러 화폐 단위들에 관해, 그리고 성경을 원용한 문장의 경우 원문에 관해 설명해주어 독자들의 작품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김기선의 번역본은 이런 많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오점도 드러낸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서 상당수의 오류가 발견된다. 육시랄의 비표준어를 사용한달지(“육실할 놈” 75), 들이밀다를 ‘들여밀다’로(“머리만 먼저 들여 밀면서” 44), 미루어 두다를 ‘밀어두다’로(“숙박부 쓰는 일을 좀 밀어두는 게 좋겠어요” 48-49) 표기된 경우와 잦은 띄어쓰기 오류는 번역서의 품질을 떨어뜨려 아쉬움을 자아낸다.
3) 윤도중 역의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2013)
2013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나온 윤도중의 개역은 이전 번역서와 제목을 달리한다. <민나 폰 바른헬름>에서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으로 제목의 뒷부분이 추가됐다. 흔히 이 작품을 <민나 폰 바른헬름> 또는 줄여서 <민나>라고도 부르는데, 레싱이 원작에 붙인 제목은 “Minna von Barnhelm, oder das Soldatenglück”이다. 여기서 윤도중은 원작의 제목을 제대로 다 번역한 셈이다. 윤도중의 개역 제목에서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민나’가 ‘미나’로 바뀐 점이다. ‘편집자 일러두기’에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다고 밝히고 있는데, 국립국어원의 어문 규정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같은 자음이 겹쳤을 때에는 겹치지 않은 경우와 같이 적는다. 다만, -mm-, -nn-의 경우는 ‘ᄆᄆ’, ‘ᄂᄂ’으로 적는다.”로 되어 있다. 이를 따르면 미나가 아니라 민나로 적는 것이 맞는데, 오히려 미나로 표기한 이유는 아마도 독일어에서 같은 자음이 겹칠 경우 앞의 모음을 짧게 발음하게 하는 규정이 있기에 미나가 더 정확한 발음이라 생각하여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독일어 문법 규칙을 아는 독자라면 오히려 민나라고 적는 경우 ᄂᄂ을 nn으로 생각하여 단음임을 알아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 측면도 있다. 윤도중은 이 번역서에서 “기존에 출간한 번역본을 가다듬고 보완”(212)했으며 김기선의 번역본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처음으로 저본 정보도 제시하고 있다.
그럼 이제 어떤 식으로 개정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사정이 안 좋아져서 하인 유스트를 다른 장교에게 보내려는 텔하임과 어떻게든 텔하임 곁에 남아서 도우려는 유스트 사이의 대화이다.
JUST. Ganz gewiß! - Sie wollten sich ohne Bedienten behelfen? Sie vergessen Ihrer Blessuren, und daß Sie nur eines Armes mächtig sind. Sie können sich ja nicht allein ankleiden. Ich bin Ihnen unentbehrlich; und bin, -- ohne mich selbst zu rühmen, Herr Major – und bin ein Bedienter, der – wenn das Schlimmste zum Schlimmen kömmt, - für seinen Herrn betteln und stehlen kann. VON TELLHEIM. Just, wir bleiben nicht beisammen.
JUST. Schon gut!(618)
유스트: 그러면 그렇지요! 시종없이 살아가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소령님의 부상을, 한 팔밖에 못 쓰신다는 걸 잊으셨어요? 혼자서는 옷도 입으실 수 없으십니다. 저는 소령님께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그리고 저는 – 자화자찬이 아닙니다, 소령님 – 저는 – 최악의 경우 – 주인을 위해 동냥질도 도둑질도 할 수 있는 시종입니다.
폰 텔하임: 유스트, 우리 함께 지낼 수 없다.
유스트: 알았습니다!(초역 58)
유스트: 그럼 그렇지요! 하인 없이 어찌 살아가시렵니까? 부상당하셔서 한쪽 팔 밖에 못 쓰신다는 걸 잊으셨나요? 혼자서는 옷도 못 입으시잖아요. 저는 소령님께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그리고 자화자찬은 아닙니다만, 소령님, 저는요, 최악의 경우 상전을 위해 구걸도 하고 도둑질도 할 수 있는 하인이랍니다.
텔하임: 유스트야,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지낼 수 없다.
유스트: 알았습니다.(개정 29)
초역에서는 텔하임의 이름을 원문처럼 폰 텔하임으로 했고 원문의 말 줄임표나 느낌표 같은 부호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최대한 원문 그대로 번역하려 한 점이 눈에 띈다. 반면 개정에서는 폰 텔하임이 아닌 텔하임으로 했고, 형식적인 부분보다는 원문의 의미 전달에 더 중점을 두면서 번역한 모습이 엿보인다. 그래서 개역이 더 잘 읽히는 측면이 있는데, 특히 텔하임이 유스트의 말을 들은 후 같이 지낼 수 없다고 말하는 대사를 초역에서는 ‘우리 함께 지낼 수 없다’로 번역했는데, 개역에서는 ‘그렇다면’이란 말을 추가함으로써 맥락이 더 잘 이해된다.
다른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4막 6장에서 텔하임과 민나가 자신들의 상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VON TELLHEIM. Sie wollen lachen, mein Fräulein. Ich beklage nur, daß ich nicht lachen kann.
DAS FRÄULEIN. Warum nicht? Was haben Sie denn gegen das Lachen? Kann man denn auch nicht lachend sehr ernsthaft sein? Lieber Major, das Lachen erhält uns vernünftiger, als der Verdruß. Der Beweis liegt vor uns. Ihre lachende Freundin beurteilt Ihre Umstände weit richtiger, als Sie selbst.(676-677)
폰 텔하임: 웃으려 하시는군요, 아가씨. 제가 함께 웃을 수 없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가씨: 왜지요? 웃음에 무슨 유감이 있으십니까? 웃는 가운데 진지해질 수 없단 말씀인가요? 소령님, 웃음은 역정보다 우리를 더 이성적이게 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우리 앞에 있어요. 당신의 웃는 여자친구가 당신의 형편을 당신 자신보다 훨씬 더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어요.(초역 142)
텔하임: 아가씨는 웃고 싶으신 모양인데 제가 함께 웃을 수 없는 게 안타깝군요.
아가씨: 왜지요? 웃음에 무슨 유감이 있으신가요? 웃으면서 진지해질 수 없나요? 소령님, 사람은 불쾌할 때보다 웃을 때 더 현명해진답니다. 바로 우리 눈 앞에 그 증거가 있어요. 소령님의 웃는 여자 친구가 소령님 자신보다 소령님의 상황을 훨씬 더 옳게 파악하니까요.(개정 150)
여기서도 초역은 원문의 문장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점이 눈에 띈다. ‘Verdruß’를 ‘역정’으로, ‘vernünftig’를 ‘이성적’으로 원문 단어의 품사와 의미를 지켜 번역했다. 그리고 ‘Der Beweis liegt vor uns.’도 독일어 문장 어순에 따라 ‘그 증거는 바로 우리 앞에 있어요.’로 번역했다. 반면에 개역은 원문 단어의 품사나 의미보다는 우리말식의 표현방식에 더 신경을 썼다. ‘사람은 불쾌할 때보다 웃을 때 더 현명해진답니다.’나 ‘바로 우리 눈앞에 그 증거가 있어요.’ 같은 번역이 이를 보여준다.
요컨대 윤도중은 초역에서는 원문에 가까운 문자적, 학술적 번역방식을 선호했다면 개역에서는 상황 및 의미 전달의 수월성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하겠다.
4) 이순예 역의 <민나 폰 바른헬름>(2022)
2022년 디자인21에서 나온 이순예의 번역은 ‘세계문학사를 기반으로 문학작품 읽기’ 시리즈의 1권으로 출판되었다. 이순예는 이 작품의 번역뿐 아니라 자신의 학술 논문 <계몽주의 희극 『민나 폰 바른헬름 혹은 군인의 행복』에 나타난 오성과 격정의 변주>도 같이 실어 편역서로 출판했다. 또한 이 책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작가소개를 하는데, 괴테와 장 파울, 제르멩 드 스탈, 니체, 토마스 만 등 여러 사람이 레싱과 이 작품에 대해 말한 글 24편을 모아 번역하여 전해준다. 세계문학사적 차원에 서 문학작품을 읽게 한다는 시리즈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세간의 평가를 전해주어 작가와 작품의 세계문학적 위치를 독자 스스로 가늠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역자의 번역관이나 저본 정보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순예 번역의 특징은 이 극의 줄거리가 18세기에 전개된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말의 예스러운 표현 및 호칭을 사용하여 한국식 고전극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앞에 윤도중 번역과의 비교에서 언급했듯이 이순예는 전반적으로 고어식 어투를 사용하여, 민나가 프란치스카에게 하는 말 “Was? bist du so zurückhaltend?”(625)를 “무어? 자네가 그리 저어하는 축이었던가?”(39)로, 여관주인이 민나에게 하는 말 “Gnädiges Fräulein, gnädiges Fräulein, Sie werden mich nicht in Schaden und Unglück bringen wollen?”(632)을 “아씨 마님, 마님, 만에 하나라도 소인을 궁지에 빠뜨리실 념은 아니옵겠지요.”(49)로 번역했다. 이 외에도 “웬고하니 소녀 아직 출가 전이옵고”(45), “마나님께옵서 옥체 보존하시기에”(43), “존전께옵서 국왕 폐하께 알현을 듭시렵니까??”(45) 같은 고어체 어휘가 다수 사용되는바, 독자는 이 희극이 18세기 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4막 2장의 프랑스 장교가 등장하여 민나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프랑스 장교는 독일어가 서툴러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섞어서 말한다. 다른 역자들은 그가 프랑스어로 하는 말들은 원문처럼 프랑스어를 그대로 제시해 주고 괄호나 역주를 통해 우리말 번역을 적어주며, 서툰 독일어로 한 말은 그에 따라 우리말도 문법적, 맞춤법적으로 오류가 섞인 말로 번역해서 제시했는데, 이순예는 이런점을 반영하지 않고 전부 다 온전한 문장의 한국어로 번역했다. 즉, 독자가 낯설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제거하고 윤문하는 자국화 방식을, 작가/작품을 독자에게 데려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런 자국화 번역의 경향은 사투리와 우리 고유의 감탄사나 표현을 이용한 번역으로 이어진다. 텔하임의 하인 유스트 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의 대사는 “말을 몰았지라”(69), “할 수 있었지라”(69) 같은 사투리를 이용해 번역했는데, 이로써 극의 희극성이 살아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얼씨구”(13), “어이쿠”(13) 같은 감탄사나 “고로케끔”(13), “너나들이하게”(19), “이러쿵저러쿵 삽질을 한다”(75)와 같은 우리말 토속적인 표현들 및 앞에서 언급한 ‘마나님’, ‘존전’ 같은 옛 호칭들은 마치 조선시대 사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갑자기 “나르시시즘”(97)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나와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원문의 단어는 “Eigenliebe”(664)로, 윤도중은 이를 초역에서는 “자애심”(122)으로, 개역에서는 “이기심”(124)으로, 김기선은 “이기심”(107)으로 번역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순예 번역본은 이 희극이 18세기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자국화 번역의 경향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3. 평가와 전망
레싱의 이 희곡은 진지한 내용을 코믹하게 다루면서 재미와 교훈을 선사한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자신의 기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대적인 여성상의 여주인공 민나와 목숨보다 명예를 중시하며 고귀한 인간성을 지닌 남자 주인공 텔하임 그리고 개성이 강한 조연들(유스트, 프란치스카 등)에 의한 극의 전개는 독자/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이성적이고 현명한 사고 및 결론에 다다르게 하려는 작가의 계몽주의적 의도를 잘 느끼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꾸준히 독일 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독일문학의 다른 희곡들에 비해 이 드라마의 번역 종수(총 7편)가 조금 많은 것도 독일에서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18세기의 것이지만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되어 있고, 문장도 대부분 짧아서 지난 세기들의 여느 드라마에 비해 번역이 덜 까다로운 편이기도 하다. 아무튼 역자들은 이 작품이 희극이라는 점을 많이 고려한 듯하다. 입말 중심의 비유적, 토속적 어휘들을 이용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번역서들에서는 자국화 경향이 과하거나 맞춤법, 띄어쓰기 오류들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차후의 번역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고, 번역의 저본 정보를 밝히고 역자가 자신의 번역관을 피력하며 번역하는 최근의 번역문화에 발맞춘 그런 번역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윤도중(1991): 민나 폰 바른헬름. 숭실대학교 출판부.
김기선(2005): 민나 폰 바른헬름.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윤도중(2013):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지식을만드는지식.
이순예(2022): 민나 폰 바른헬름. 디자인21.
- 각주
- ↑ Gotthold Ehpraim Lessing(1996): Minna von Barnhelm, oder das Soldatenglück. In: Ders.: Werke. Erster Band Gedichte·Fabeln·Lustspiele.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605-704. 위에서처럼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