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부르크 왕자 (Prinz Friedrich von Hom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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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클라이스트(Heinrich Klest, 1777-1811)의 희곡

홈부르크 왕자
(Prinz Friedrich von Homburg)
작가하인리히 클라이스트(Heinrich Klest)
초판 발행1821
장르희곡


작품소개

클라이스트가 1809/1810년에 쓴 5막 비극으로 그의 사후 1821년 빈에서 초연되었다. 프로이센 선제후 휘하 군대의 젊은 기마대 장군 홈부르크 왕자는 오랜 원정으로 몸이 지쳐 몽유병에 걸린다. 몇몇 귀족이 이를 알아차렸고, 선제후는 몽유병에 빠진 왕자에게 장난을 걸어, 선제후의 여조카 나탈리 공주에게 구혼하게 하고, 그녀의 장갑 한쪽을 몰래 빼돌리게 한다. 꿈에서 깨어난 왕자는 자기 손에 들린 장갑의 주인이 선제후의 조카 나탈리 공주임을 알게 되고, 공주를 보는 순간 마음이 혼란해지는 바람에 분명한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적을 공격하지 말라는 사령부의 다음 전투 지시를 흘려듣게 된다. 결국 왕자는 이 지시를 어기고 자신이 이끄는 연대 병력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 페르벨린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왕자의 개입 없이도 전쟁의 승리가 가능했다고 본 선제후는 전투 중 명령에 불복종한 홈부르크 왕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판결문에 서명한다. 나탈리 공주의 도움으로 사면을 요청한 왕자에게 선제후는 사형선고의 부당함을 입증한다면 무죄로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홈부르크 왕자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진해서 사형을 받아들임으로써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법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결국 홈부르크 왕자는 눈을 가린 채 사형장으로 끌려갔으나, 총살형 대신 그의 머리에 나탈리가 월계관을 씌워준다. 나탈리의 간청과 왕자의 명령 불복종은 전쟁의 승리를 방해하지 않았으며, 선제후 자신도 애당초 왕자의 상태에 책임이 있다는 귀족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왕자를 사면한 것이다. 클라이스트가 이 희곡을 집필할 당시에는 나폴레옹에 대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소극적인 대응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애국주의 물결이 일었고, 1806년 잘펠트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을 공격하다가 전사한 프로이센의 젊은 왕자 루이 페르디난트의 용감한 애국심이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았다. 클라이스트는 이 마지막 희곡을 마리안네 프로이센 공주에게 헌정했으나, 이 희곡이 공주의 친정인 헤센-홈부르크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생전에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다. 하이네는 이 희곡이야말로 “시 정신 그 자체로부터 창작된 것”이라고 칭찬했으며, 푸케는 이 희곡을 “클라이스트의 펜 끝에서 나온 가장 신적인 시”라고 했고, 프리드리히 헵벨은 죽음에 대한 왕자의 공포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의 묘사가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 배중환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세종출판사).


초판 정보

Kleist, Heinrich von(1821): Prinz Friedrich von Homburg oder die Schlacht bei Fehrbellin. Ein Schauspiel. Berlin: Reimer.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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