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Und sagte kein einziges W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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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1917-1985)의 장편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작가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초판 발행1953
장르소설


작품소개

하인리히 뵐이 195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된 독일의 현실을 다룬 ‘폐허문학’의 대표작이다. 뵐의 다른 많은 소설처럼 쾰른을 배경으로 한다. 결혼한 지 15년이 된, 아이가 셋인 보그너 부부는 전화교환수로 일하는 남편의 봉급으로는 제대로 된 집을 구할 수 없어, 프랑케 부인의 집에서 불편한 셋방살이를 한다. 쾰른의 주교회와 연줄이 있는 프랑케 부인은 가난한 이웃을 거두는 가톨릭 신자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보그너 부부가 공립주택을 배정받아 자신의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뒤에서 방해한다. 이런 비좁고 모멸감이 느껴지는 환경을 견디지 못한 남편 프레트는 집을 나가고, 부부는 가끔 주말에 만나 부부생활을 이어간다. 소설은 이런 생활이 두어 달 지속되던 시점인 9월 30일, 남편 프레트가 오랜만에 다시 부인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한 금요일 오후에 시작하여 그들이 싸구려 여관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일요일 저녁,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지기로 하였으나 다시 남편이 집으로 돌아갈 의지를 다지는 월요일 오전에 끝난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남편과 아내의 시각에서 번갈아 이야기된다. 전후에 팽배하던 허무주의와 빈곤 문제를 정직하게 그려내어 평단과 독자 모두의 호평을 받아 크게 성공했다. 타락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도 엿보인다. 국내에서는 1964년에 전혜린에 의해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다(세대사).


초판 정보

Böll, Heinrich(1953): Und sagte kein einziges Wort. Köln: Kiepenheuer & Witsch.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다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다 世代 2.5(12) 하인리히 뵐 전혜린 1964.5 世代社 299-369 완역 완역 잡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전혜린 1967 東民文化社 25-242 완역 완역
3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가난한 애인들의 이야기 하인리히 뵐 田惠麟 1972 百萬社 25-242 편역 완역
4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安無學 1972 眞文出版社 - 완역 완역
5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72年度 노오벨文學賞 受賞作品 휴가병열차,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황용하  1972 대한출판사 145-252 편역 완역
6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世宗文庫 6 하인리히 뵐 정봉화 1974  世宗出版公社 9-251 완역 완역
7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노벨문학수상전집, 8 하인리히 뵐 유종열 1974 현문사 - 편역 완역
8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휴가병열차 外 世界文學全集 5 하인리히 뵐 김원경 1975 凱旋門出版社 145-252 편역 완역
9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72年度 노오벨文學賞 受賞作品' 하인리히 뵐 한용우 1976 新文出版社 7-213 완역 완역
10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 外 三中堂文庫 358 H. 뵐 金昌浩 1977 三中堂 - 편역 완역
11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정봉화 1979 明文堂 9-251 완역 완역
12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노벨文學賞全集. 1 하인리히 뵐 유종열 1981 민중서관 147-252 편역 완역
13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어느 공용 외출의 끝 主友세계문학 4 하인리히 뵐 高委恭 1982 主友 29-152 편역 완역
14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어느 공용 외출의 끝 主友세계문학 4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84 學園社 13-138 편역 완역 초판 1982
15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었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었네 BEST 100 BOOKS 88 H. 뵐 김창활 1984 삼중당 5-197 편역 완역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外 (The)Hak Won's world literature, 學園세계문학 23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85 學園社 27-152 편역 완역 초판(1982년) 확인불가, 5판(1985)
17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영한대역문고 62 하인리히 뵐 시사영어사편집국 역 1987 ㈜시사영어사 4-233 편역 중역 영한대역(중역) <And never said a word>, Leila Vennewitz가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 일부 영문은 우리말 줄거리로 축약소개(축역)
18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外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87 學園社, 1986 13-191 완역 완역
19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권의 책 44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94 학원사 13-191 완역 완역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려원세계문학총서 하인리히 뵐 정찬종 1996 고려원미디어 11-275 완역 완역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8 하인리히 뵐 홍성광 2011 열린책들 7-229 완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2022년 현재까지 한국어로 총 열한 명의 역자에 의해(그중 2편 이상은 중역으로 추정) 번역되었을 정도로 한국에서 활발하게 수용된 작품이다.[1] 뵐은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패전으로 초토화된 서독의 현실을 정직하게 그려내어 당대 서독 국민에게 큰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1953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주목받는 신인 작가였던 뵐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소설의 한국어 번역사(史)는 1972년 뵐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964년 전혜린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 소설은 1972년까지는 이 번역이 유일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1970년대에만 총 7종의 번역본이 쏟아져 나왔다. 판본 대부분이 제목이나 표지에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면에 내걸어 홍보했다. 이는 작가에 관한 관심이 노벨상의 수혜를 받아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방증해준다. 실제로 당시 작가에 대한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의 집계에 따르면 그의 장편소설 전부가 한국어로 번역되었으며, 20여 편의 중단편과 5편의 방송극이 국역된 바 있다.[2] 동시에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 수상작 <여인과 군상>보다도 더 많이 번역된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며, 이는 무엇보다도 전혜린의 동명의 수필집이 누린 인기 덕택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여러모로 소설 제목이 한국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에는 이 책에서 제목을 딴 신성일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1994년에는 김영현 시인의 동명의 소설도 나왔다.) 1980년대부터는 작가에 관한 관심도 사그라지면서 번역도 뜸해졌다. 1982년 고위공의 번역, 1996년 정찬종의 번역이 새로 나왔고,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번역은 2011년 홍성광의 번역이다.

작품 제목은 모두 비슷하게 번역된 편으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사실상 통일되어 있다. 김창활만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를 택했다. 전혜린의 번역도 처음에는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다>로 되어 있었으나 1967년도부터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수정되어 출판되었다.

이제 주요 번역본을 몇 편 택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총 열한 편의 번역본 가운데 중역으로 추정되는 2편을 제외한 9편 중에서, 소설의 번역사에서 유의미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라는 기준과 함께 현재에도 접근 가능한가라는 점을 고려하여 총 다섯 편을 정하였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전혜린 역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7)


1964년 5월 세대사 잡지에 발표된 전혜린 역의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다>는 이 소설의 국내 초역이다. 이 번역은 1967년 동민출판사에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제목을 바꿔 다시 출판됐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그 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미 스타 번역가였던 전혜린은 196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후 ‘요절한 천재’로 숭배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번역이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우리時代(시대)를 가장 뜨겁게 살다 간 田惠麟(전혜린), 그는 왜 이 小說(소설)이 그리도 좋아 飜譯(번역)해 두었던가? 이제 秘藏(비장)되었던 그의 번역 作品(작품)을 公開(공개)한다!”라는 당시 동아일보(1967.9.7.)에 실린 책 홍보가 바로 이런 독자의 호기심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또한 역시 큰 인기를 끈 역자의 유고 수필집(동아PR연구소출판부간, 1966) 제목이 뵐의 이 소설 제목에서 차용되었다는 점도 소설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 역본은 이후 1973년 백만사에서 띄어쓰기만 달라진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로 재출간된다. 모두 역자 해제는 실려 있지 않고 곽복록, 이어령, 임중빈의 짤막한 소개글이 대신 자리한다.

전혜린의 번역은 완역이 아니라 일부를 축약한 버전이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11장으로 줄어 있다. 대부분의 장은 거의 그대로 번역되었으나 1장이 대폭 축소됐고, 3장에서의 허름한 간이식당에서 일하는 청순한 소녀 이야기도 일부 생략되었다. 케테의 시점에서 이야기되는 2장과 4장은 하나의 장으로 통합되었다. 역자가 두 장을 매우 절묘하게 합쳐 놓아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케테가 전후 심각한 가난과 가톨릭교회의 횡포로 인해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어떤 공포에 시달리며 사는지를 이야기하는 2장은 전쟁이 일으킨 먼지 더미에 맞서 청결을 지키려 하는 케테의 투쟁을 말하는 4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전혜린의 번역은 여러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소설에 담겨 있는 정서를 원문보다 극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한다. 예컨대 다음 문장을 보자. “나는 또 다시 내 두 아이들을 본다. 그것은 내가 낳았고 죽는 것을 본 쌍동이 레기나와 로버트다.”[3](41-42) 같은 대목을 고위공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쌍둥이인 레기나와 로버트의 얼굴이 보인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41) 원문의 구문을 가장 정확하게 옮긴 홍성광의 번역과도 비교해 보자. “태어나자마자 죽은 쌍둥이 레기나와 로베르트의 모습이 보인다.”(56) 여기에서 전혜린의 번역이 사건의 주체로서의 ‘나’를 강조함으로써 사건의 비극성을 심화시켜 표현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케테가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자.

그러나 그 이래 나는 공포에 사로 잡히게 되었고 그 공포를 감히 적어 보겠다. 우리가 그와 같이 큰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 공포심을 일으킨다. 또 후랑케 부인이 매일 먹음으로써 더 무서운 여자가 되는 것 같이 보이는 예수님의 몸을 먹는 것이 무섭다. [...] 미사를 듣는 것이 무서워졌다. 신부를 성단에서 보는 것이 무섭다 [...] 좋은 권연을 피우고 그가 주관하는 위원회나 단체의 여자들과 시시한 농담을 지껄이는 실패한 풍류아의 목 소리가 회의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이들은 조용히 있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조심하고 있는 내 귓전에 그들의 음란한 웃음 소리가 들려올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도 떠들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무서워지곤 한다.(32-33)

위 대목에서 밑줄 친 부분 “그 공포를 감히 적어 보겠다”는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다. 원래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공포”라는 뜻인데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오역’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하 한두 페이지에 걸쳐 계속 이야기되는 공포라는 주제에 더 집중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역자는 위선적인 ‘후랑케 부인’이 성당 신부와 웃고 떠드는 소리에 ‘음란하다’라는 말을 추가하여 저들의 모임을 더욱 미심쩍고 타락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또 “후랑케 부인이 매일 먹음으로써 더 무서운 여자가~” 문장을 홍성광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성체를 먹는 것이 불안하고, 프랑케 부인이 매일 그것을 즐긴다는 사실에 갈수록 끔찍한 생각이 든다 ich habe Angst, den Leib Christi zu essen, dessen Genuß Frau Franke täglich erschreckender zu machen scheint”(홍성광, 29). 홍성광의 번역에 비해 전혜린의 번역은 거칠고 직접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우선 홍성광은 화자 ‘나’가 끔찍하게 여기는 것이 프랑케 부인이라기보다는 부인이 성체 먹는 것을 매일 즐긴다는 사실이라고 옮겼다면, 전혜린은 부인이 성체를 먹음으로써 나날이 무서운 여자가 된다고 보았다. 즉 무서움의 대상은 프랑케 부인인 것이다. 나아가 성체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옮김으로써 성체를 먹는 의식을 무언가 섬뜩한 것처럼 전달하는 효과도 준다.

다음으로 케테가 남편이 힘들게 보내준 지폐를 세보다가 돈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대목을 보자.

Noch einmal zähle ich die Scheine, die kostbaren, schmutzigen Scheine, deren süsslicher Geruch mich in seiner Sanftheit erschreckt.(19)[4]
전혜린: 이 귀중한 더러운 지폐의 달콤한 냄새가 나에게 공포를 준다.(32)
고위공: 달콤한 냄새가 나를 부드럽게도 놀라게도 하는 값지고 더러운 지폐를.(24)
홍성광: 은은하게 풍기는 감미로운 냄새에 깜짝 놀라면서(28)


위의 비교에서 드러나듯이 유일하게 전혜린만 종속절을 주문장으로 옮겨서 돈의 냄새가 ‘나’를 무섭게 했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한다. 또한 다른 역자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가장 강도가 센 어휘인 ‘공포’를 택한 것도 눈에 띈다. 대부분 ‘놀라게 한다’로 옮긴 것과 달리 전혜린은 ‘공포를 준다’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위에서 길게 인용한 대목의 ‘공포’라는 주제어와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번역 전략은 전혜린 번역의 두 번째 특징, 작품의 특정 이미지를 원문보다 강화하는 특징으로 이어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혜린은 원문에서 “Schrecken”, “Furcht”, “Angst” 등 두려움을 나타내는 여러 단어를 한결같이 ‘공포’나 ‘무섭다’로 옮긴다. 역자는 단어의 반복을 피해 다양한 유의어를 사용하는 원칙을 의식적으로 어긴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휘인 “langweilig”도 시종일관 ‘권태롭다’로 옮긴다. 이는 다른 역자들이 ‘지루하다’, ‘따분하다’, ‘시들하다’ 등 다채롭게 옮기는 것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수법은 자칫하면 문체적으로 단조로운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전혜린의 번역에서는 오히려 소설의 주제를 한층 더 두드러지게 제시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결같이 ‘먼지’로 옮겨지는 ‘Schmutz’도 그러한 사례이다. 여기서 ‘Schmutz’는 전후 남루하고 비참한 현실을 말하는 은유이자 허무와 무기력을 상징하는 은유로 작품 전반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다른 역자들이 ‘먼지’, ‘더러움’이라고 그때마다 다르게 번역한 것과 달리 전혜린은 일관되게 ‘먼지’로 옮긴다. 이 덕분에 ‘먼지’라는 시적 이미지가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런 번역의 수법은 작품이 지닌 여러 미묘한 색조는 포기하는 대신 음영을 더 강화하여, 소설의 정서를 보다 강렬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소설 읽기의 문턱을 낮춰주는 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케테가 프랑케 부인을 묘사하는 대목을 보자.

Frau Franke aber ist anders, redselig und lebhaft, ohne Zärtlichkeit. [...] Frau Franke wird nur bei seltenen Gelegenheiten sanft: zunächst wenn sie von Geld spricht.(21) 
전혜린: 후랑케 부인은 그와 딴판이다. 수다스럽고 생기에 넘쳐 있고 부드러운 맛이 없는 여자다. [...] 후랑케 부인이 부드러워지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그 여자도 돈에 대해서 말할 때 부드러워진다.(36) 
홍성광: 하지만 프랑케 부인은 그와 달리 말이 많고 활달하며 상냥하지 않은 여자다. [...] 프랑케 부인은 아주 드물게 부드러워진다. 우선 돈 이야기를 할 때다.(32)

여기서 전혜린이 모두 ‘부드럽다’라고 옮긴 단어는 원문에서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는 뒤에 나올 ‘부드럽다’라는 단어를 의식하여 “부드러운 맛이 없는 여자”라는 표현을 구사한다. 이는 원문에 담긴 대조의 의미를 독자가 더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전혜린 번역에서 세 번째로 눈에 띄는 점은 과감한 직역을 통해서 오히려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더러 성공한다는 것이다. 케테가 일요일 오후의 동네 풍경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


Immer noch, obwohl wir schon acht Jahre dort wohnen, ergreift mich Schwindel, wenn ich aufblicke: die grauen Mauern, schmutzig aufgeflickt, scheinen sich zu neigen, und die schmale graue Straße des Himmels hinab, hinauf lief das dünne Klimpern des Klaviers, gefangen schienen mir die Töne, zerbrochen die Melodie, die ein blasser Mädchenfinger suchte und nicht fand.(69) 
전혜린: 나는 벌써 팔 년 간이나 이 거리에 살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고 거리를 볼때마다 매 번 현기증을 느꼈다. 더럽게 기워진 회색 담벽들은 기울어져 쓰러질 것 같았고 그 위의 하늘의 가늘고 좁은 회색길을 통해서 엷은 피아노 소리가 내려 갔다 올라갔다 달리고 있었다. 음정은 무엇에 갇힌 듯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멜로디는 마치 째진 것 같이 들렸다. 마치 창백한 어린 소녀가 멜로디를 찾으려고 애쓰고는 못 찾고 마는 것만 같았다.(90-91) 
홍성광: 내가 이곳에 산 지 어느덧 팔년이나 되었는데도 눈을 들어 회색 담벼락을 바라보면 여전히 현기증이 난다. 지저분하게 수리한 담벼락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다. 하늘밑의 좁고 우중충한 길 위로 서투르게 치는 피아노 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왔다. 내가 듣기에 피아노의 음은 갇혀 있는 것 같았고, 소녀의 창백한 손가락이 찾으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한 선율은 깨어진 듯했다.(103)

다른 역자가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길을 “하늘밑의 길”이라고 본 반면, 전혜린은 하늘을 곧 길로 보고 그 길을 따라서 피아노 소리가 “내려 갔다 올라갔다 달리고” 있다고 번역함으로써 시적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살려낸다.

마지막으로 전혜린은 문장의 ‘전치’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문장의 시적인 성격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ich] schnappte die Angel hoch, und da war er, der Kellner: ein Soldat [...] aus seinem Kopfverband waren damals die Läuse herausgekrochen, hatten sich im geronnenen wie im frischen Blut gewälzt, Läuse, die friedlich über seinen Nacken krochen in das weißliche dünne Haar hinein, über das Gesicht des Ohnmächtigen, waghalsige Tiere, die an den Ohren heraufkletterten, abrutschten, sich an der Schulter wieder fingen und in die schmutzige Kragenbinde hinein verschwanden - ein schmales, leidendes Gesicht.(83)
전혜린: 이윽고 낚시대를 들었더니 급사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병정이었다. [...] 그의 머리를 감은 붕대에서는 이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신선한 피에 흠뻑 젖은 듯한 이, 평화롭게 그의 목덜미를 기어서 그의 숯이 엷은 흰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 이, 의식을 잃은 이 군인의 얼굴 위를 돌아다니는 이, 귀에 기어 올라갔다가 다시 미끄러지고 어깨에서 다시 멎고는 더러운 칼라 사이로 들어가버린 대담스러운 이 – 내가 본 것은 바로 그 군인의 얼굴이었다.(118) 
고위공: 낚싯대를 잡아챘다. 보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당시 그의 머리 붕대에서는 이가 기어나와 이미 흘린 피와 흐르는 피 사이를 피범벅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를 지나 얼마 안 되는 흰 머리 속으로, 무력한 그의 얼굴 위로 기어다녔다. 귓바퀴 위로 기어 올라간 무모한 이들은 미끌어져 다시 어깨 위로 떨어지고, 더러운 칼러 속으로 들어갔다.(78) 
홍성광: 낚싯대를 낚아챘다. 바로 그 종업원이었다. [...] 그 당시 그의 머리에 감긴 붕대에서 이가 기어나와 이미 흘러나와 굳은 피와 막 흘러나오는 핏속을 피범벅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의 목덜미를 지나 숱이 별로 없는 희끄무레한 머리 속으로, 기력을 잃은 그의 얼굴 위로 평화롭게 기어 다녔다. 무모하게 귓바퀴 위로 기어 올라간 이들은 미끄러져 어깨 위로 다시 떨어졌고, 더러운 옷깃 속으로 사라졌다.(126) 


전혜린은 ‘이’를 반복되는 절의 맨 끝에 배치함으로써 ‘이’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고 원문에 없던 리듬을 부여한다. 시적인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원문의 구문을 완전히 뜯어고친 것이다. 원문의 구문에 가깝게 번역한 고위공이나 홍성광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이 차이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전혜린의 번역은 원문의 특정한 이미지나 정서를 강화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이로써 뵐의 이 소설은 전쟁 트라우마가 낳은 뿌리 깊은 권태와 허무주의, 그리고 가난과 고립에 시달리는 젊은 부부의 절망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런 점이 당시 한국 독자를 흡인력 있게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 김창활 역의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1977)

다수의 독일문학을 번역한 것으로 잘 알려진 김창활이 옮긴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는 삼중당에서 1977년에 처음 출간됐고 1984년에 재판을 찍었다. 여기에서는 소설의 1인칭 화자를 번갈아 가며 맡는 남녀 주인공의 말투가 전혜린 역본보다 활기에 차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검토작 가운데 유일하게 1인칭 화자가 직접 말하는 듯한 어조를 자주 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의 어조가 덤덤한 쪽에 가깝다면 이쪽은 좀 더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느낌을 주는데, 때로는 친근함을 넘어서 구수한 느낌마저 준다. 프레드가 노점에서 소시지를 사먹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역자가 “Würstverkäuferin”(7)을 “소시지 가게 아가씨”라고 옮겼다면 김창활은 “순대 장수 아주머니”(7)로 옮겼고 또 이에 따라 “munter lächelnd”(7)는 “히죽히죽”(7) 웃는 얼굴이 되었다. 다른 역자들이 같은 부분을 “쾌활한” 혹은 “명랑한” 미소로 번역한 것과 정조상의 큰 차이를 보인다. 김창활은 전혜린과 동시대인이지만 보다 ‘한국적’인 어휘를 자주 택한다. 남편 대신 “주인양반”(110), 화장실 대신 “변소”(21), 벌레 대신 “물것”(46)이 등장하며, ‘처’, ‘처녀’, ‘아낙네’, ‘색시’ 등의 어휘가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어휘의 차이 덕택에 소설의 전체적 톤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전혜린의 번역에서 강조되던 허무주의와 권태의 정조가 전반적으로 약해져 있다.

김창활 번역본은 무척이나 매끄럽게 읽히고 입말을 잘 살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다음의 문장은 원문의 의미를 잘 살리면서도 유려하게 옮겨진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하긴 나로서는 신용의 도수를 높일 만큼 태연한 말투를 전화 속의 음성에 담는 일이 여러 번 가능했다. 음성과 얼굴에서 한꺼번에 듣고 읽을 수 있는 영락없는 궁기가 상대방의 지갑을 닫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기 때문이다.”(49)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혜린의 번역과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전혜린의 번역에서 뛰어난 부분들을 참고하되 한국어 감각에 비추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은 새로 번역하거나 윤문했다는 인상을 준다. 앞선 전혜린 장에서 길게 인용한 부분을 비교해 보자.

이윽고 낚싯대를 들어올렸더니 웨이터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병정이었다. [...] 신선한 피에 흠뻑 젖은 듯한 이, 평화롭게 그의 목덜미를 기어서 숯이 적은 그의 흰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 이, 의식을 잃은 얼굴 위를 기어다니는 이, 귀에 기어 올라갔다가 머리 위로 다시 미끄러지는 더러운 칼라 사이로 들어가버린 대담스러운 이 [...](103)

앞서 전혜린이 ‘이’를 모두 후치시키는 방식으로 원문의 문장을 완전히 뜯어고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김창활의 번역에서도 원문과 전혀 다르게 ‘이’를 후치시키는 식으로 전치가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려운 점이다. 역자가 한국어적 감각과 가독성을 중시하다 보니 생경한 메타포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해 보일 때도 있다. 프레드가 자신의 기억이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허점투성이’라는 보다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뀌어 있다거나, 프레드가 판에 박은 일을 하도록 예정된 자기 아이들의 인생을 보면서 그들이 “죽음의 순환 속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죽음의 순환’에 대한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자녀들이 매일같이 학교에 가는 모습에서 그들이 매여 있는 ‘죽음의 순환’을 보는 프레드의 시각은 확실히 70년대 한국의 정서에 낯설게 다가올 법하다. 하지만 이런 역자의 선택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전후 독일인이 겪던 허무주의적 정서의 성격을 바꿔버릴 수 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은 모두 가난과 궁핍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3) 고위공 역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1984)

독문학자 고위공이 번역한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뵐의 다른 작품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와 함께 묶여서 1982년 주우세계문학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4년에는 학원사로 이름을 바꾼 기존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고 여성지 <주부생활>의 부록으로 증정되기도 했다. 이 번역본의 아쉬운 점은 역자 해설이 없고 저본도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앞선 전혜린의 번역보다 덤덤한 어조로 번역되어 있다. 두드러진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혜린과 이후 홍성광의 번역에 비해서 이 번역본은 행동 주체를 강조하는 경향이 적은 편이다. 프레드가 모친이 죽은 뒤에 느낀 자신의 심정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자. 홍성광이 “어머니가 없으니 집이 텅 빈 느낌이었다”(129)라고 옮긴 부분을 고위공은 “그러자 어머니가 없는 텅 빈 집만 남았다”(80)로 옮긴다. 또 유사한 예를 보자.


홍성광: 내 주위에서 시간이 둔중한 맷돌을 지고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흐느껴 울며 기도한다.(104) 
고위공: 나는 울며 기도한다. 시간의 맷돌이 천천히 갈리며 지나가는 것이 들린다.(66)


앞서 비교를 위해 인용했던 대목도 다시 살펴보자.


전혜린: 나는 또 다시 내 두 아이들을 본다. 그것은 내가 낳았고 죽는 것을 본 쌍동이 레기나와 로버트다.(41-42) 
고위공: 쌍둥이인 레기나와 로버트의 얼굴이 보인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41)


위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고위공의 역본에서는 ‘~을 느꼈다’, ‘~생각했다’, ‘~을 본다’와 같은 능동적 표현이 적은 편이다. 그 결과 행동 불능에 빠진 프레드의 먹먹한 심정을 보다 잘 전달하기도 하며, 여운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4) 정찬종 역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96)

정찬종의 번역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고려원 세계문학총서>의 하나로 1996년에 출간되었다. 짤막한 작품해설 <폐허 속에서 찾아낸 인간애>가 수록되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전반적으로 원문의 문단을 잘게 쪼개서 가독성을 높였다. 전체적으로는 고위공의 번역과 상당히 유사하며, 앞의 번역에서 눈에 띄는 오역 몇 가지 정도만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5) 홍성광 역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11)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독일 문학을 활발하게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는 홍성광이 맡았다. 이 번역본은 열린책들에서 2011년 출간되었다. 보다 전문적인 <역자해설>을 수록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저본(<쾰른 전집> 제6권, 2007)을 밝히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인만큼 문체가 가장 현대적이다. 예컨대 ‘화란집’은 ‘네덜란드집’으로 수정되어 있다. 앞선 번역본에서 발견되는 자잘한 오역들도 수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의미의 맥락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 예컨대 ”테 있는 좋은 모자와 좋지 않은 모자, 모자를 안 쓴 사람들의 젖은 머리칼“(10)을 보자. 원문에는 그냥 “좋은 모자gute Hüte”라고 되어 있지만 역자는 “테 있는”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1950년경 서독에서의 ‘좋은 모자’에 대한 이미지를 한국 독자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또 공허한 설교의 말들이 케테에게 “Fäulnis”(41)처럼 밀려오는 것을 표현할 때 고위공의 번역에서는 “쓰레기”(43)처럼 밀려온다, 정찬종은 “부패”(73)처럼 밀려온다고 했다면 홍성광은 “썩은 음식”(60)이라고 옮겨놓았다. 비교해 보면 정찬종은 사전 그대로의 의미를 가져다 썼고, 고위공은 의역을 했다면, 홍성광의 번역이 가장 원문에 가까우면서도 한국어 문맥에서 이해가 잘 되게끔 번역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원문의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번역본임을 알 수 있다. 가장 안정적이고 균형 있는 번역본이라 할 수 있다.


3. 평가와 전망

지금까지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한국어 번역 현황과 주요한 개별 번역본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한때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뵐의 작품은 전후 독일의 황폐한 현실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중요한 문화적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소설에서 프레드와 케테가 나누는 대화에 독일어 원문에는 없는 위계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의 번역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자가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하는 이른바 한국에서의 ‘전통적인’ 남녀 말투를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이 전후 소설일 뿐만 아니라 ‘결혼소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부부간의 대화를 어떻게 번역하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소설에 대한 인상, 또 인물에 대한 해석을 좌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새롭게 번역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의 전후 문학의 틀과는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새롭게 해석할 계기가 주어진다면, 이에 맞춰 새롭고 신선한 번역이 나오기를 희망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전혜린(1967):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민문화사.

김창활(1977):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 삼중당.

고위공(1984):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학원사.

정찬종(1996):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려원.

홍성광(2011):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린책들.

이경진
  • 각주
  1.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유종열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번역은 확인 결과 하인리히 뵐의 다른 단편 <닫힌 시절의 사랑>(Das Brot der frühen Jahre)의 번역으로 보인다. 제목이 잘못 붙여져 출판된 것이다. 따라서 유종열을 제외하면 이 작품의 역자는 현재까지 총 열한 명으로 집계된다.
  2. 유진옥(1988): 하인리히 뵐의 문학세계. 삼영사, 9.
  3. 전혜린 역본 인용은 모두 1967년도 판을 기준으로 한다.
  4. 원문 인용은 모두 울스타인(Ullstein) 출판사에서 나온 1957년도 판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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