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에크베르트 (Der blonde Eckbert)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요한 루트비히 티크(Johann Tieck, 1773-1853)의 소설

금발의 에크베르트
(Der blonde Eckbert)
작가요한 루트비히 티크(Johann Tieck)
초판 발행1797
장르소설


작품소개

1797년 발표된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가 요한 루트비히 티크의 예술동화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르츠에 사는 기사 에크베르트와 그의 부인 베르타의 이야기가 중심에 서 있다. 동화는 액자구조로 구성되어, 틀 구조에서는 에크베르트 부부의 현재와 친구 발터의 방문이, 내부 구조에서는 발터에게 털어놓는 베르타의 과거가 서술된다. 부부가 친구 발터의 방문을 받고 과거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현재의 삶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결국 부부는 모두 죽음에 이른다. 베르타의 과거는 그녀의 불우했던 유년기와 숲속의 노인에게서 구원받아 평화롭게 보낸 성장기, 노인을 배신하고 그녀의 재물을 훔쳐 도주하여 에크베르트와 결혼하기까지의 삶을 담고 있다. 베르타가 숲속의 집에 두고 온 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그와 전혀 상관없는 현재의 친구인 발터가 개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현실과 초현실의 차원이 섞이게 된다. 이에 베르타는 죄의식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에 이른다. 이제 부부의 삶의 비밀을 알게 된 친구 발터에 대한 에크베르트의 의심과 증오의 심리극이 전개되며, 그는 친구 발터를 살해하고 이어 발터 및 숲속의 노인을 상기시키는 사람들 또한 살해하며 마지막엔 의식의 분열을 일으키고 자멸한다. 자연착취와 초기 산업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라는 18세기 말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인간의 탐욕과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전통적인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논리로써 다룬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1959년 이영구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대동당).


초판 정보

Tieck, Johann Ludwig(1797): Der blonde Eckbert. In: Volksmärchen. Berlin.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요한 루트비히 티크의 예술동화, <금발의 에크베르트>(1797)는 18세기 후반 독일 예술동화의 태동기에 탄생하였으며 독일 낭만주의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구두로 전승되던 전래동화와 달리 인쇄문학의 시대에 발달한 예술동화는 개인 작가의 창작물이자 처음부터 글로 기술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독일 낭만주의 예술동화로서 <금발의 에크베르트>는 특히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그 하나는 낭만주의 문학관에서 “동화” 장르가 “문학 중의 문학 Poesie der Poesie”으로 평가받으며 문학의 꽃으로 부상한 점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 이성을 찬양한 계몽의 시대를 지나면서 평가절하되었던 상상력의 중요성에 주목했고, 경이롭고 파악 불가능한 자연현상에 대한 믿음을 문학의 주요 구성요소로 재평가하였다. 전통적으로 민중의 정신세계를 각인해왔던 기적과 신비,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인 현상들을 담은 동화, 전설, 민담은 낭만주의자들의 문학 활동에 영감과 소재를 제공하는 주요 원천이 되었다. 특히 작가 티크는 일찍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중문학 생산에 참여하며 이러한 민중과 시민 독자의 취향을 파악했으며, 전래동화의 모티브와 구성요소를 가져와 각색하고, 현시대에 적합한 예술동화로 재형성하였다. 그는 낭만주의 문학이 요청하는 통합적 세계관을 표현하면서, 특히 “경이로운 것 das Wunderbare”의 요소를 강조한다. 다만 이성과 계몽의 시대에 das Wunderbare는 더 이상 전래동화에서처럼 외부에 존재하는 미지의 위협들, 초자연적 세계, 이해 불가능한 현상들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파악 불가능성, 비합리성, 욕망과 광기 등의 비이성적인 면들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이때 자연 혹은 외부의 세계는 인간 내면의 상태와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상징적인 성격을 획득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예술동화의 매체사적 위치다. 전래동화가 집단 상상력의 산물로서 예로부터 구전되어오면서 원래의 모습을 변화시켰지만, 예술동화는 인쇄문화의 대중화라는 매체사적 시점에서 탄생했으며, 개인 작가의 작품으로서 애초에 문자로 생산되고 인쇄되어 확산되었다. 따라서 예술동화는 구두 문화권에서 문자 문화권으로 넘어가는 매체적 전환기의 문학적 생산물로 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개인적인 묵독을 위해 쓰인 당대의 산문문학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인쇄문화와 더불어 대표적 문학 장르로 발전한 산문문학인 소설과는 대척점에 놓인 장르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동화는 매체사적 패러다임 전환기의 특징과 징후들을 품고 있다. 더욱이 티크는 이미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낭독작가이기도 했으니, 이것은 그의 예술동화가 여전히 대중적인 낭독의 방식으로 수용되었음을 말해준다. 구두성과 문자성이 혼합된 당대 문학의 수용맥락에서, 또한 동화 장르의 구술문화적 기원을 고려할 때, 예술동화 역시 “이야기”로서 구상되고 전달되며 수용될 때야 비로소 그 문학성이 온전히 성취된다는 생각이 티크의 동화작품에 깔려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처럼 티크의 예술동화의 문학사적, 매체사적 특징들은 다른 언어로의 번역에서 깊이 숙고되어야 할 과제를 던져준다. 번역의 과제는 “문학 중의 문학”으로서 예술동화가 표현하는 문학성, 그리고 동화가 이야기로서 갖는 구술성을 문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로 요약된다.

우선 <금발의 에크베르트>의 한국어 번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동화는 1959년 이영구가 다른 작품들과 함께 편역하여 출간한 번역집 <金髮의 엣크벨트>에 수록되면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시기적으로 매우 이른 한국어 초역은 한국 내란 이후 불안했던 당대의 상황을 참작할 때 의외라는 인상을 준다. 오늘날 한국의 독문학 연구 및 이와 연계된 독일문학의 한국어 번역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루트비히 티크가 국내에 그리 널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기에 이 의외성은 더욱 크다. 이어 1964년에 독일어 전공자인 이병우가 번역한 <金髮의 에크벨트>가 <世界의文學百選 4>에 수록되었으며, 1967년에 또 한번 이영구의 초역과 동일한 내용이 <카스펠로와 어여쁜 알넬로>라는 제목의 작품집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 번역본에는 역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이영구의 번역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50년도, 60년도에 걸쳐 총 3차례 출간된 티크의 동화는 1970년대에 두 차례 다시 번역된다.

1971년 독문학 전공자 강희영 번역의 <金髮의 에크베르트>가 <獨逸短篇文學大系>에 수록, 출간되었고, 1975년 역시 독일문학 전공자이자 시인이기도 한 송영택의 번역 <金髮의 에크베르트>가 <세계단편문학선;獨·佛 篇>에 실렸다. 1982년 백낙훈이 편역한 <獨逸人의 사랑>에 <金髮의 에크베르트>가 출간되었으며, 1984년, 1990년 삼성판 세계문학전집의 <세계 단편선>에 송영택의 번역이 반복 출간되었다. 이때 제목 표기에 일어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1982년까지 제목에 쓰이던 “金髮”의 한자 표기가 1984년도 판본부터는 한글 “금발”로 표기되고, 60년대의 “엣크벨트” 혹은 “에크벨트”는 70년대부터 주로 “에크베르트”로 표기된다. 오늘날 알려져 있는 <금발의 에크베르트>는 1984년 이후부터 제목으로서 주류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번역가들이 이 작품을 다시 번역, 출간하였다. 2000년 명문당에서 김연삼이 편역한 <독일의 괴담>에 <금발(金髮)의 에크베르트>가 실렸으나, 이 번역본에는 저본이나 역자에 관한 정보가 전혀 주어져 있지 않다. 2005년 독문학 전공자인 이관우가 번역한 <금발의 에크베르트>가 독일대표단편선 <붉은 고양이>에 실렸고, 2006년 조영수가 번역한 <금발의 에크벨트>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에 수록되었다. 2013년 이관우의 번역이 씨네스트 출판사에서 발행한 <독일대표단편문학선 금발의 에크베르트>에 다시 수록되었으며, 2013년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환상문학 걸작선 1>에 조영수의 번역 <금발의 에크벨트>가 다시 수록되었다. 2019년 에브리북 출판사가 E-Book으로 <금발의 에크베르트>를 출간했으나 역자 및 저본에 관해선 어떤 정보도 주어져 있지 않다.

앞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1959년도부터 2019년도까지 집계된 <금발의 에크베르트>의 번역서는 총 14편에 달한다. 이 중 재판(이영구2/송영택3/이관우2/조영수2)과 역자 미상본을 제외하면 총 8명의 번역가가 이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다고 볼 수 있다. 분기별로는 10년을 단위로 볼 때, 각 분기당 평균 2번씩 번역 및 출판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같은 번역현황은 이 작품이 꾸준히 번역, 출간되면서 한국의 독일문학 수용에서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개인 역자의 편역집에 실린 경우엔 역자와 저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점이 눈에 띈다. 독일어 전공자의 번역은 역자 정보와 더불어 모두 단편모음집에 수록된 점도 공통된 특이 사항이다. 그리고 기존엔 독일단편문학으로 소개되던 이 예술동화가 2000년도에 들어오면 괴담이나 환상문학으로 소개됨으로써 보다 대중적인 수용을 지향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번역비평을 위해서 초창기 번역이거나, 재판이 찍힐 정도로 대중성을 확보하여 수용사적 영향력을 입증했거나, 또는 역자 및 원서 저본 등 문헌학적 정보가 비교적 분명하여 번역사적 고찰이 유의미한 작품들을 선정하였다. 여기엔 이병우(1964), 강희영(1971), 이관우(2005/2013), 조영수(2006/2013)가 속하며, 이들의 번역본을 대상으로 그 문학적, 문체적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병우 역의 <金髮의 에크벨트>(1964)

이병우의 번역은 초역은 아니지만 초창기 번역이라는 점에서 비평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휘문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의 문학 백선 4>에 실린 이병우의 번역은 어휘사용에서 초창기 번역의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어 고유명사는 당시의 표기법에 따라 “티이크”, “에크벨트”, “하루스”, “필리프-왈터”, “후란캔”, “벨타” 등으로 옮겨졌고, 60년대에 통용되던 한국어 표현으로서 “우리집 사람”, “희한한 얘길세”, “우리 주인이(남편) 그러는데”, “부모님이 의를 상하신 것이”, “밥버러지”, “여간해서”, “벽난로” 대신 “난로”, “정신이 한번 비뚜로 나가면” 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언어와 문화에 관해 생생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엔 비교적 고답적으로 들리는 이 표현들과 달리 이병우 번역은 초창기 번역임에도 뒤에 나온 번역들에 비해 놀라울 만큼 오역이 적은 편이다. 독어학 전공자인 역자는 대부분 문장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여 옮겼으며, 문장 간의 흐름을 유연하게 살려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어 나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동화를 구술적, 이야기체로 번역하여 이야기로서의 성격을 살려내었고, 단어의 조합이나 감각적 지각 작용을 표현하는 곳에선 문학성이 풍부한 언어로 옮기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먼저, 구술적 번역 전략에 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이 동화는 액자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구조에 해당하는 베르타의 이야기가 전 동화의 60%를 차지한다. 전지적 화자 시점의 서술보다도 베르타가 일인칭 화자로서 자신의 과거사를 “말”로 전달하는 점에서도 구술체는 이 동화의 주요한 문체적 특징에 속한다. 이런 구술적 성격이 잘 드러나는 예로서 한 문장 안에 시점의 변화와 화법의 혼합을 담은 것을 들 수 있다. 다음은 베르타가 화자로서 아버지가 베르타 자신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서술하는 문장이다.


Mein Vater glaubte, es wäre nur Eigensinn oder Trägheit von mir, um meine Tage in Müßiggang hinzubringen, genug, er setzte mir mit Drohungen unbeschreiblich zu, da diese aber doch nichts fruchteten, züchtigte er mich auf die grausamste Art, indem er sagte, daß diese Strafe mit jedem Tage wiederkehren sollte, weil ich doch nur ein unnützes Geschöpf sei.[1]

아버지는 이건 아마 필경 고집이 세거나 게을러서 매일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어요. 어쨌든 아버지에겐 이루 말할 수 없이 들볶였었지요. 그런데 그래도 도무지 효과가 없으니까 너 같은 바보는 없으니 이런 벌을 날마다 준다고 하면서 정말 몹시 매를 맞았어요.(이병우, 354. 밑줄 강조 필자)
*비교: 아버지는 내가 세월을 무위도식하며 보내는 것은 오로지 내 고집이나 게으름 탓이라고 믿고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협박을 했지요...그러면서 그는 내가 쓸모없기 때문에 그런 벌이 날마다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지요.(이관우, 284. 밑줄 강조 필자)


원문에서는 베르타가 화자로서 자신을 지적할 때면 “나”로 서술하지만, 번역에서는 그것이 아버지의 생각이나 말에 해당하는 경우, 아버지의 시점으로 바꾸어 옮겨져 있다. “이건”, “너 같은 바보는 없으니”는 문장의 주어인 아버지에게 베르타 자신이 어떻게 보였는지, 아버지의 시점으로 통일하고, 그의 생각을 마치 말하는 것처럼 살려서 옮겼다. 이렇게 베르타가 아버지의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은 전달문인 간접화법보다는 오히려 직접화법에 가깝다. 이로써 베르타를 통해 서술된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게 구어체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시점의 변주와 구어체의 조합은 화자와 자연물/사물과의 관계를 서술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가령 베르타가 어떤 행위나 상황을 서술할 때 역자 이병우는 “..했다”라고 옮기는 대신, 베르타가 사물과의 관계를 유기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상호감정과 관계성이 강조되는 보조동사 “... 해 주었다”를 사용한다.


개는 저를 무척 따라 뭣이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 주었어요. 새는 뭣이든 노래로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으며 물레는 기분좋게 돌아 주었지요. 그래서 전 정말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으며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았어요“(이병우, 359. 밑줄 강조 필자)
*비교: 개는 ...모든 것을 했으며, 새는 ... 대답해 주었고, 내 작은 물레바퀴는 ... 활기차게 돌았으며, 그리하여 나는 ... 전혀 변화를 원하지 않았습니다.(이관우, 293. 밑줄 강조 필자)


무생물인 물레 역시 그냥 잘 돌아간 것이 아니라 ‘베르타를 위해 잘 돌아가 준 것이며’, 이런 일련의 상호관계성을 드러내는 표현은 마지막 문장에 표출된 화자의 내적 만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자연물과 등장인물 간에 작용하는 상호적 영향 관계는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 있는 동화의 세계를 특징짓는다. 자연은 객관적 대상, 단순히 외부 환경이 아니라 항상 인물의 내면과 심리에 작용하거나 반영하는 살아있는 힘으로서 작용한다. 이병우의 번역은 이 두 영역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이라는 동화 세계의 특징을 잘 살리고자 하였다. 또 하나 동화의 구어체적 특성을 현장감 있는 언어들로 살려낸 다음의 문장을 예로 살펴보자.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랬더니 바위 골짜기 사이로 내 목소리가 울려 다시 무섭게 되돌아오지 않겠어요. 밤이 되어 나는 이끼가 낀 곳을 찾아 누웠습니다. 조금도 잠이 오지를 않아요. 밤 중에 아주 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야수의 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바위 틈에 부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또 낯선 새소리 같기도 했어요.(이병우, 355. 밑줄 강조 필자)


위 문단에서 보듯, “되돌아 왔어요”라는 단정적이고 객관적인 서술 대신에 “되돌아오지 않겠어요”라는 반어적 표현은 베르타가 처한 극단적 고립의 상황과 거기서 느끼는 절망감을 더욱 절실하게, 보다 직접적으로 후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시제로 옮긴 “잠이 오지를 않아요” 같은 표현 역시 그 상황에서 느끼는 화자의 심리적 긴장 상태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장감 넘치는 상황묘사를 위해 마치 화자가 그것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이, 혹은 그리는 듯이 구어체로 서술하는 전략은 다음의 문장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기운 좋게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날쌘 한 강아지가 노파에게 달려 들어 꼬리를 흔드는 거에요. 그리곤 제게로 와서는 나를 자세히 보며 기쁜 듯이 노파 쪽으로 돌아갔어요.(이병우, 356. 밑줄 강조 필자)


게다가 역자는 화자가 지금 이야기하는 상황임을 잊지 않도록 원문에는 없는 문법적 허사들을 삽입하여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제시한다.


Ihr lächelt! 어마, 웃고 계시는군요.(이병우, 358. 밑줄 강조 필자) 
Es war mir jetzt lieber, wenn ich allein war, denn alsdann war ich selbst die Gebieterin im Hause. 그래 저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아졌어요. 글쎄 혼자 있으면 이 집 여주인이 되니까요.(이병우, 359. 밑줄 강조 필자)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반적으로 이병우의 번역은 유려하고, 현장감 있는 어휘들을 선택하거나, 서사의 흐름을 원활하게 이어주는 적절한 접속사 및 문법적 허사를 사용하는 전략을 통해 “이야기”로서 동화에 특유한 구술적 성격을 잘 살려내었다.


2) 강희영 역의 <金髮의 에크베르트>(1971)

독문학 전공자 강희영의 번역본은 한쪽에 걸쳐 티크의 초상화를 곁들인 작가소개,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 끝자락에 제목을 원어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본에 대한 소개는 빠져있다. 이 번역은 이병우의 번역과 불과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독일어 표기가 대부분 현대화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병우의 번역에서 드러났던 오역들은 대부분 수정되어 있으나 여전히 벽난로 대신 “난롯불”을 사용하여 문화적 차이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강희영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매우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긴 하지만, 동화의 이야기체, 구술성, 현장성을 살려내는 언어의 감칠맛은 이병우에 비해 훨씬 감소되어 있다. 이 번역어는 오히려 산문적인 톤과 부자연스런 어법으로 일관된다. 가령 베르타의 소녀 시절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남편이 친구에게 권하는 문장은 이병우에게선 매우 자연스럽게 옮겨져 있다: “여보게, 자네 한 번 우리 집 사람의 젊었을 때 얘기를 들어 보지 않겠나? 정말 희한한 얘길세”. 이와 비교할 때 “이봐요, 아내로부터 그녀의 소녀 시절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기로 합시다. 그 이야기는 매우 묘합니다”(133)로 옮긴 강희영의 번역은 권유로서는 어조가 너무 약하고, “말”이라는 구어체로서 전혀 자연스럽지 못하다. 엄격히 들여다보면 강희영의 원문 충실성은 원문의 문장 간에 보이지 않는 유기적 의미관계를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자에 충실한 번역에 그치고 있다. 가령 베르타가 매일 계속될 아버지의 체벌이 두려워 집에서 도망치는 장면에선 전혀 그 행동의 연관관계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Als der Tag graute, stand ich auf und eröffnete, fast ohne daß ich es wußte, die Tür unsrer kleinen Hütte. Ich stand auf dem freien Felde, bald darauf war ich in einem Walde, in den der Tag kaum noch hineinblickte. 
날이 밝아 왔을 때, 나는 일어나서 거의 의식함이 없이 우리들의 작은 막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넓은 들에 서서, 그 후에 곧 햇볕이 거의 미치지도 못하는 숲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강희영, 134. 밑줄 강조 필자)
*비교: 날이 훤하게 밝았을 때 저는 일어나서 제가 뭣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우리 집 대문을 열었어요. 저는 밖의 들판으로 나갔어요. 그리고는 이윽고 거의 햇빛이 비치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갔어요.(이병우, 354)
날이 밝자 나는 일어나서 거의 나도 모르게 우리의 조그만 오두막집 대문을 열었어요. 나는 넓은 들판 위에 서게 되었고, 그런 다음 곧장 숲속으로 들어섰는데, 그 속으로 막 아침여명이 비쳤습니다.(이관우, 285. 밑줄 강조 필자)
날이 밝아 오자 저는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오두막집의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곧 탁 트인 벌판이었습니다. 벌판에 이어서 숲이 나타났습니다. 숲 속에는 빛이 거의 비치지 않았습니다.(조영수, 631)


독일어 원문에는 공간의 변화에 따르는 동작이 아니라 정지상태를 뜻하는 “서 있었다”, “있었다”와 같은 자동사가 사용되었으나, 그것으로 티크는 베르타의 무의식적인 행동들과 그 수행과정에서 문득문득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깨닫는 순간적 의식상태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런 의도와 달리 강희영의 번역은 단순히 문자번역의 한계에 갇히어 그 문장의 진의도, 또 어떤 의미 있는 문장 간의 연관성도 살려내지 못했다. 다른 번역들과 비교해 보면, 이병우는 정적인 자동사 대신 “나갔다”, “들어갔다”라는 행동어를 사용하여 공간의 이동과 병행시키고, 베르타의 진행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 이관우의 경우 강희영처럼 원문 그대로 옮기고자 했으나 이 역시 문장 간에 이어지는 도주의 진행이 부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게다가 오역까지 겸하고 있다. 반면 조영수는 도주의 움직임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베르타의 지각과정으로 옮겼다.

앞서 살펴보았듯, 강희영의 번역은 문자 충실성이라는 의미에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화로서 갖는 작품의 시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체를 살려내는 대신 산문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어법이 주를 이루고, 행간의 의미와 개별 문장 간의 내적인 연관성도 잘 살려내지 못했다.


3) 이관우 역의 <금발의 에크베르트>(2005)

이관우의 번역은 조영수의 번역과 더불어 가장 최근의 번역에 속한다. 그런 만큼 앞선 번역본에서 지적했던 독일어 표기법과 어법은 현대화되었고,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요소들은 그 고유성을 보존하려는 경향을 띤다. 일례로, 에크베르트가 친구에게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권유하는 문장은 “이봐 친구, 자네 내 아내에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 한 번 들려달라고 해 보게, 그건 참으로 기이한 얘기라네”-“좋지”로 현대적 어법이 사용되었고, 한국의 “난롯가”는 이제 서구의 “벽난로”(이관우, 283)로, “Bergmann”은 “광부”로 정확하게 옮겨져 있다.

그런데 이관우의 번역은 최근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치명적인 오역을 담고 있는 번역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죽는 건 두려웠다”를 그 반대인 “죽음이 두렵지도 않았습니다”(287)로, “게다가 그녀는 내가 거기 있는 척도 하지 않았다”를 “그녀는 내가 있어서 그렇다는 듯 그 밖에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290)로, “그녀는 마침내 진심으로 내 마음에 들게 되었고”를 거꾸로 “나는 마침내 진심으로 그녀의 마음에 들게 되었고”(291)로, “우리들은, 특히 어릴 때는 무슨 일에도 익숙해지는 법인가 보지요”는 “우리의 감각은 모든 면에서, 무엇보다도 어린애 같은 성향에서 친숙해진 듯했습니다”(291)로, 집안 하녀에게 품은 두려움과 의심은 “주인 할머니에 대한 두려움”(299)으로, 에크베르트가 친구 발터에게 자기 부부의 비밀을 기꺼이 털어놓은 후 후회하는 문장 “인간은 바보가 아닐까?”를 “저 녀석은 바보는 아닐까?”(300)로, “발터가 아내의 이야기를 악용하지 않을까?”라는 문장은 “저 녀석이 아내를 강제로 범하지는 않을까?”(300)로 온전히 잘못 옮겨져 있다. 여기서 지적한 오역들을 도외시하고 보면 이관우의 번역은 그 현대적 어법과 표현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보여준다.


4) 조영수 역의 <금발의 에크베르트>(2013)

조영수의 번역이 실려있는 <환상문학 걸작선 1>은 경기대 교수진이 이미 2006년도에 번역하여 이룸출판사에서 출간한 작품집이며, 2013년에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다시 펴냈다. 그러므로 재판에 속한다. 이 작품집은 수록된 번역작품을 하나의 장으로 구분하였으며, 각 장의 첫 쪽에 간략한 작가소개가 있고, 마지막 쪽에 역자의 이름을 밝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최근에 나온 조영수의 번역은 초창기 번역인 이병우처럼 흐르는 듯한 이야기체를 기본 문체로 택함으로써 동화의 구술적 특성을 살리는 데 주력하였다. 단문들로 이어지는 원문에서는 문장 사이에 접속사가 생략되거나 함축된 인과관계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조영수는 개별 문장 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서사적 연관관계로 살려내어 하나의 이야기로 제시한다. 이 점에서도 이병우와 매우 유사한 번역 태도를 보여준다.


종종 구석에 앉아서 갑자기 제가 부자가 되면 어떻게 하여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 또는 금과 은을 가지고 어떻게 부모님의 머리 위에 뿌려 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부모님이 놀라워하시면 내 기분이 얼마나 상쾌해질까를 실컷 상상하곤 했습니다. 저는 제게 땅속의 보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거나 보석으로 변하는 조약돌을 주는 요정이 나타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이한 환상에 빠져서 무언가를 도와드리거나 가지러 가기 위하여 일어서야만 했을 때 더욱더 일에 서툴렀습니다. 왜냐하면 제 머릿속은 이상한 상상으로 어지러웠기 때문입니다.(조영수, 630)


조영수 번역은 또한 동화의 초현실적 분위기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입체적이고 감각적이며, 색채와 음향과 느낌이 잘 전달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상당히 시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저녁노을 속에 우뚝 솟은 나무의 가지 끝까지, 가장 부드러운 붉은색과 금색이 모든 것에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들에는 황홀한 빛이 펼쳐져 있었고, 숲과 나뭇잎은 고요히 서 있었으며 푸른 하늘은 열린 낙원 같았습니다. 샘이 졸졸 흐르는 소리는 때때로 나무의 팔랑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맑은 정적을 뚫고 애수를 띤 즐거움 속에서 울리고 있었습니다. 제 젊은 영혼은 이제 처음으로 세상과 세상사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조영수, 635-636. 밑줄 강조 필자)
숲속의 고독이 나를 기쁘게 만드니 내일도 오늘같이 영원히 그러리라, 오 얼마나 나를 기쁘게 하는지 숲 속의 고독이.(조영수, 636)
숲의 고독이여, 얼마나 너는 머리 떨어져 있는지! 오, 너는 알게 되리니, 머지않아 후회만 남게 됨을. 나의 유일한 기쁨인 숲의 고독이여.(조영수, 647)


그러나 서사의 연결성을 중시하고, 그래서 행간의 의미를 밝혀주는 조영수 번역은 분명 작품의 구성과 내용 이해를 돕지만 이 때문에 원문을 오역하거나 곡해하는 문제점이 때때로 발생하기도 한다. 전래동화와 달리 티크의 예술동화는 사이코 스릴러적인 성격이 강한 현대문학이다. 그래서 의심, 불확실성과 공포감을 야기하는 심리적 복선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 그런데 동화의 전형적인 어법을 따르는 조영수는 그 섬세한 암시들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고 매끄러운 번역에 주력하다가 오히려 미끄러지는 번역상의 사고를 자주 일으킨다. 가령, “Sein Weib liebte die Einsamkeit ebensosehr, und beide schienen sich von Herzen zu lieben, nur klagten sie gewöhnlich darüber, daß der Himmel ihre Ehe mit keinen Kindern segnen wolle.”라는 문장에서 동사 “beide schienen”은 앞뒤 두 문장의 직설법 “liebte”, “klagten”의 단정적인 어법과는 분명히 다른 화자의 시각을 드러낸다. 조영수는 이 문단을 “그의 부인도 그와 똑같이 고독을 즐겼고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으며 단지 하늘이 여태껏 자식을 점지해 주지 않은 것만을 슬퍼했다”(조영수, 627)고 모두 직설법으로 옮김으로써 화법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했고, 이로써 이 문장에 깔린 복선을 살리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문장의 유연한 의미생산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한 단어 혹은 표현의 정확성을 놓쳐 결국 문장의 전 의미가 비틀리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령 일회적인 행위와 사건을 서술하는 장면인데, 마치 전형적으로 되풀이되는 행동양식인 것처럼 처리한 경우들이 여기 속한다.


바위는 점점 더 험해졌고 저는 절벽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자주 현기증을 느꼈고 제 발 아래에 있는 길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절망적인 기분이었으며 울고 또 고함을 질렀습니다 [...] 저는 기도를 올렸으며 거의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곤 했습니다.(조영수, 633. 밑줄 강조 필자) 


위 문장은 베르타의 도주 길이 점강법을 통해 점점 더 나빠지다가 드디어 최악의 상태에 도달하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가파른 바위산을 헤매던 베르타의 발아래서 결국 길이 끊기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가는 서사의 상승곡선을 간과하고 역자는 동화의 도식적인 어법에 갇혀 이 체험을 거듭 반복되는 고난의 체험들로 옮겨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다.


3. 평가와 전망

여기서 살펴본 4개의 번역본은 영향사적 관계 속에서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고 더욱 발전된 번역으로 나가는 경향도 보여주지만, 대체로 각자의 장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병우와 조영수는 동화 장르의 특성에 맞는 구술적 이야기체를 기본 어조로 유지하며, 원문의 문장들이 문자로 남아 있지 않고 독자의 머릿속에서 장면들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쳐 구성적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에 반해 강희영은 원문의 문자적 의미에 충실한 번역을 추구하다 보니 개별 문장들이 함께 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종합적인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이것은 그의 번역이 매우 산문적이고 그래서 미학적 체험보다는 오히려 줄거리 전달에 치우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관우 역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추구하고 현대적 어법을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내용 파악과 수월한 독서를 가능하게 하지만, 상당수에 달하는 치명적인 오역을 담고 있어 개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서 살펴본 4개의 번역본에서 한결같이 불충분하게 느껴진 문제는 die alte Frau의 번역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처해있던 어린 베르타를 구해준 이 숲속의 노인을 성인이 된 베르타가 회상할 때 “그 늙은 여자”/ “그 여자”/ “등이 굽은 늙은 여자 한 사람이”(조영수), “노파”(이병우, 강희영), “어느 나이든 여자”/ “노파”/ “나의 주인 할머니”(이관우)로 옮기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어린 베르타의 정서에는 “할머니”가 더 맞지 않을지, 혹은 다른 대안이 가능한지, 그 미완의 해결이 과제로 남아 있다.

차후의 번역에 대한 전망과 관련하여, <금발의 에크베르트>의 번역은 특히 두 가지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먼저 동화라는 장르에 걸맞은 시적 표현들로 옮기는 것이다. 인쇄문화가 대중화되던 시절, 이 시기를 지배한 산문문학의 대표적 장르로서 소설이 문학적 왕좌에 등극하던 시기에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동화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시문학이라는 문학관을 피력했다. 그러므로 티크의 예술동화를 구성하는 형상어들, 공감각적이거나 개별 지각 작용을 촉구하는 표현을 살려내어 미학적 체험을 가능하게 옮기는 것은 이 번역의 주요 과제임이 분명하다. 또 하나는 구어적, 운율적 언어의 특성이 살아나도록 옮기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여기 소개한 한국어 번역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화다운 표현보다는 산문적이며 문어체의 언어를 사용했고, 그럼으로써 이야기로서의 동화를 생산해내는 데 한계를 보여준다. 구어체의 활용은 이 동화의 내부구조에 해당하는 베르타의 “이야기”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점을 보아도 중요하다.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오역들은 물론이고 동화 장르의 특성에 적합한 문체와 구어체적 언어 구사의 연구가 차기 번역의 과제로 남아 있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병우(1964): 金髮의 에크벨트. 휘문출판사.
강희영(1971): 金髮의 에크베르트. 일지사.
이관우(2005): 금발의 에크베르트. 우물이 있는 집.
조영수(2013): 금발의 에크베르트. 자음과모음.

김연신
  • 각주
  1. 독일어 원문은 구텐베르크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https://www.projekt-gutenberg.org/tieck/eckbert/eckbert.html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