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노벨레 (Traumnovell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29번째 줄: 29번째 줄:
 
|}
 
|}
  
{{A04}}<!--번역비평-->
+
{{A04+}}<!--번역비평-->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국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 더 잘 알려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2021년 7월 현재까지 네 명의 번역자에 의해 총 여섯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초역은 1993년 자유출판사에서 나온 박미애의 번역이다. 슈니츨러의 경우 그가 사망한 1931년에 Der blinde Geronimo und sein Bruder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 <신여성>이라는 잡지에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ref>작가명은 슈니첼로 되어 있고 역자 미상이다.</ref> 50년대 후반부터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꾸준히 소개된 점을 고려할 때,<ref>슈니츨러 단편집, 장남준 역(1959 현대문고); 독일단편문학대계, 정경석 외 역(1971 일지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박환덕 역(1977 범조사); 바람둥이 고향에 돌아오다, 홍경호 역(1978 태창출판사) 등.</ref> <꿈의 노벨레>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번역 출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93년의 초역 이후 97년에 백종유의 번역(문학과지성사)이, 99년에는 김재혁의 번역(씨엔씨미디어)이 뒤를 이었다. 백종유의 번역은 2020년 같은 출판사에서 2쇄가 나왔는데, 신세대풍으로 어조가 바뀐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기에 다른 번역본으로 볼 만하다. 김재혁의 번역도 1999년에는 <아이즈 와이드 오픈>(씨엔씨미디어)이란 책에 “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지만, 2005년에는 문학전문출판사(현대문학)에 의해 독일어 원제목인 “꿈의 노벨레”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되었고, 번역의 내용 또는 성격이 다소 변모하여 이 또한 새로운 번역본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모명숙의 것이다.
 +
 
 +
<꿈의 노벨레>의 번역사 또는 수용사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유명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사망 및 그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영향이다. 1999년 10월 씨엔씨미디어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그해 3월에 사망한 큐브릭을 추모하며 발간된 책 속에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서 소개되고 있는바, 이 책에서는 원작자와 원작보다 유명 영화감독과 그의 유작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목차가 그것을 말해준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 <꿈 이야기>, 큐브릭과의 마지막 대담, <꿈 이야기> 작품해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세계. 이후 김재혁의 번역과 백종유의 번역이 개정되어 재출판되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 모명숙의 번역이 나오는 등 원작의 영화화 이후에 더 많은 번역서가 출간된 사실은 문학의 영화화가 문학작품의 수용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일반 독자에게는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보다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더 많이 회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
 
 +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그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
 
 +
'''2. 개별 번역 비평'''
 +
 
 +
1) '''[[#박종서(1969)|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69)]]<span id="박종서(1969)R" />'''
 +
 
 +
박종서 번역본의 의의는 국내 초역이라는 점인데, 이후 이 소설의 이해 및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설의 중요한 개념 및 상황에 대한 번역에서 그런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
 
 +
1951년, 토마스 만이 그의 나이 77세에 발표한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원숙한 세계관과 한층 더 세련된 문체가 돋보인다. 여기에는 서사의 전개에 틈틈이 끼어들면서 자기 생각과 감정 등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서술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 현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한껏 드러내는 전지적 서술자인, 소설 밖의 이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서술자는 로마에 있는 종이란 종이 다 울리고 있다며, 그것을 울리는 존재와 그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Wer also läutet die Glocken Roms? ― Der Geist der Erzählung. ― Kann denn der überall sein, hic et ubique, [...] Allerdings, das vermag er. Er ist luftig, körperlos, allgegenwärtig, nicht unterworfen dem Unterschiede von Hier und Dort.
 +
 
 +
그러면 대체 누가 로오마의 종을 울리고 있을까? ― 전설의 넋이다. ― 그런데 그 넋은 어디나 있는 것일까? [...] 전설의 넋은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공기와 같은 것으로서 형체도 없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것이요, 이곳저곳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292)
 +
 
 +
소설의 서술자는 자신이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편재하면서 종을 울리고 있는 저 “전설의 넋”(박종서는 Der Geist der Erzählung을 이렇게 번역했다)의 육화된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 소설은 중세 고지 독일의 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의 서사시 <그레고리우스>에 기초하고 있는바, 즉 전설에서 그 소재를 가져왔기에 박종서는 Erzählung을 전설로 번역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에는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서사/이야기 Erzählen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렇게 번역된 것 같다. 박종서 이후의 번역자들도 이 서술자를 “전설의 영혼”(이정태), “전설의 혼”(김남경)으로 번역했다. 김현진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다.
 +
 
 +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서술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meine Gnadenmär”라고 표현한다. 이에 대한 번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된다. 박종서는 이를 “나의 은혜로운 전설”(18)로, 이정태는 “나의 은총의 전설”(12)로, 김남경은 “나의 은총에 대한 전설”(11)로 번역했다. 반면 김현진은 “은총에 관한 믿기 힘든 이야기”(19)라고 단어의 내용을 풀어 쓰면서 전설이 아닌 이야기로 번역했다. 독일어 사전 두덴에 따르면 Mär는 “이상한 이야기, 믿을 수 없거나 사실이 아닌 보고”이다.
 +
소설의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하느님의 어린 양이 로마에 사는 경건한 남자 프로부스의 꿈에 나타나서 새 교황이 선택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프로부스는 어린 양의 계시에 놀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 wie das? Symmachus und Eulalius sind beide tot, die Kirche ist ohne Haupt, die Menschheit entbehrt des Richters, und der Stuhl der Welt steht leer.
 +
 
 +
박종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쥠마쿠스나 에울라리우스는 모두 다 죽어버리어, 교회에는 교황이 없고, 인간 사회에는 판사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가 비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188) 박종서는 전반적으로 직역을 추구하는데, 이곳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로 원문에 없는 ‘지금의 현상’이란 말을 넣어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후의 역자들도 박종서와 마찬가지로 원문에 없는 “오늘의 현실”(이정태 218)이나 “현재의 상황”(김남경 262) 같은 표현을 덧붙여서 번역했다. 이와 같이 박종서의 초역은 이후 역자들에게 사실상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
박종서의 초역은 전체적으로 직역을 추구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름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어색한 표현 및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1976년의 개정판에서는 이런 점들이 상당 부분 개선된다.
 +
 
 +
 
 +
2) '''[[#박종서(1976)| 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76)]]<span id="박종서(1976)R" />'''
 +
 
 +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52권을 통해 <선택된 인간>을 다시 발표하면서 박종서는 번역 텍스트로 S. 피셔 출판사의 1956년 판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저본 정보를 밝힌 것으로, 이 점에서는 박종서가 이 소설의 번역자 중 유일하다. 번역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지는 면모이다. 그는 역자 해설에서 이 소설이 “이미 出刊된 바 있으나 이번에 改譯하였음도 아울러 밝히는 바”(535)라고 말하는데, 인명을 비롯하여 어휘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현도 가독성을 높이는 쪽으로 수정했다.
 +
 
 +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할머니 “Baduhenna”는 “바아두헤나”에서 “바두헤나”로, “페에터”는 “베드로”로 “로오마”는 “로마”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바뀌는 등 현대식 표기법이 적용되었다. “나전어”도 “라틴어”로, “교회의 추장(酋長)” 같은 표현도 “교회의 대표자”로 바뀌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어머니 지빌라가 서로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 키스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초판은 “입술을 서로 물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151)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입술을 서로 맞대고 오랜 침묵이 흘렀”(431)다고 나온다. 입술을 물었다는 표현은 자칫 입맞춤으로 연상되지 못할 여지가 있었는데, 맞댄다는 표현으로 수정되면서 그런 점이 개선되었다. 지빌라의 태몽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개정이 일어난다. 이 꿈은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바,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떠남으로써 그녀에게 아픔을 주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더 큰 아픔을 준다는 내용, 즉 오빠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버려졌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중 근친상간을 예시하는 내용이다. 초판에서는 이 “schweren Traum”이 “우울한 꿈”(52)으로 번역됐다가 개정판에서는 “좋지 못한 꿈”(330)으로 바뀌었다. 당사자를 짓누르는 꿈의 성격을 생각할 때 후자가 나은 번역이라 하겠다.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으로 로마에 입성할 때 축하의 종들이 울릴 때도, 원문의 “von selber”를 종이 “자연히”(14)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역이 개정판에서는 종이 “저절로”(292) 울리기 시작했다로 수정되었다.
 +
 
 +
 
 +
3) '''[[#이정태(1990)| 이정태 역의 <선택된 인간>(1990)]]<span id="이정태(1990)R" />'''
 +
 
 +
이정태의 번역은 1981년 금성출판사의 <(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1990년에는 같은 출판사의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출간되었다. 그의 번역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각 장의 제목에 대한 번역 방식이다. 가령 독일어 제목 “Die Aussetzung”을 “아이를 버리다”로, “Die Entdeckung”을 “탄로가 나다”로 번역했다. 독일어의 명사적 표현을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유럽어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을 하나의 명사나 명사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법이 발달한 명사 중심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동사 중심 언어라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정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 같다. Die Aussetzung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리는 사실을 지칭하고, Die Entdeckung은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서는 이를 각각 “버림 받은 아이”, “누설된 비밀”로 번역했다. 이보다는 이정태의 번역이 단어의 함의를 보다 잘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역자들도 대부분 이정태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경향을 보여준다.
 +
 
 +
이정태 번역본의 또 다른 특징은 번역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토마스 만의 유려한 장문의 문체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클레멘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와 같이 오랜 전설을 끝까지 이끌어온 나 클레멘스는, 독자 여러분이 주의를 다해 귀를 기울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나 스스로 기울인 수고에 대해 여러분이 주시는 감사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283) “이와 같이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한 보답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나 자신도 포함시켜서,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한 번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284) 아주 긴 문장은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 된 원문을 똑같이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가독성도 좋아 토마스 만적 문체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해준다.
 +
 
 +
이정태는 “토마스 만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긴 해설을 통해 이전의 역자들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작품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전의 역자들은 이중의 근친상간에 중점을 두며 줄거리 위주로 소개했는데, 이정태는 이 소설을 “원죄와 은총의 이야기”(449)로 소개하면서, 서술자에 대한 해설도 덧붙인다. 그는 서술자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언어의 인간인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의 문학 정신”(450)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이런 작품 이해가 서술자의 자유로운 서술 태도에 대한 번역에서도 잘 반영된 것 같다.
 +
 
 +
4) '''[[#김남경(1995)| 김남경 역의 <선택된 인간>(1995)]]<span id="김남경(1995)R" />'''
 +
 
 +
1세대 독문학자라 할 수 있는 박종서와 이정태의 번역 이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던 차에 1995년 <하서세계문학> 54권을 통해 김남경의 번역본이 발표되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의 장정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분홍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이 소설을 타이틀로 한 단독작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2020년 김현진의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 25년 동안, 약 반년 늦게 나온 최호의 번역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김남경 번역의 특징은 이전 번역들보다 표현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매끄러워서 동시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어린 양의 계시에 놀란 프로부스가 말하는 장면에서 “der Stuhl der Welt”를 박종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이정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번역했는데, 김남경은 “세계의 성좌”(262)로 번역했는바, 직역의 방식을 취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깔끔하게 전달하였다. 같은 장면에서 어린 양이 프로부스에게 “Euer Gebet ist erhört und die Wahl geschehen.”이라고 말한 것도 박종서는 “당신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닿아서 선출된 것입니다.”로, 이정태는 “당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선택된 것입니다.”(218)로 번역했지만, 김남경은 “당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선출이 이루어졌습니다.”(263) 라고 번역했다. 여기서도 원문을 단어 그대로 보충 설명 없이 매끄럽게 번역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
그런데 김남경의 직역 방식은 단점도 드러낸다. 가령 앞에서 언급했던 장의 제목인 Die Entdeckung을 “폭로”라고 번역했는데, ‘탄로가 나다’로 번역한 이정태의 의역에 비해 내용 전달 면에서 불명확하다. 명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어와 달리 우리 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폭로’라고 명사만 제시하면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온다. Die Aussetzung의 경우에는 김남경도 박종서와 같이 ‘아이를 버리다’로 의역했다. 또 다른 장의 제목인 “Die schlimmen Kinder”를 김남경은 “가련한 아이들”로 번역했는데, 아버지 그리말트 공이 돌아가신 날 남매가 동침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제목임을 생각할 때 “나쁜 아이들”(박종서)이나 “못된 아이들”(김현진)이 적합할 듯하다.
 +
 
 +
독일어과를 졸업한 번역문학가라는 정보 외에 자세한 역자 정보가 없어서 토마스 만 전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제법 긴 해설과 상세한 작가 연보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소설을 위한 전문적인 해설은 없었다. 국내 독문학계의 토마스 만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번역문학가’라는 역자 소개와 달리 번역 원칙이나 역자의 말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
 
 +
 
 +
5) '''[[#김현진(2020)|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2020)]]<span id="김현진(2020)R" />'''
 +
 
 +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12권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문을 어떻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으며,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자”(6) 노력했다고 역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그의 번역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것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가 번역 및 작품해설에 반영되어서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이다.
 +
 
 +
앞에서도 언급했듯 der Geist der Erzählung을 김현진은 전설이 아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서사적 특징에 주목한 점이 다른 번역자들과 특히 구분된다. 이 소설에서는 이중의 근친상간과 속죄, 구원이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정령, 즉 서술자 클레멘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의한 것으로, “토마스 만이 만년에 보여준 해학적 글쓰기와 세계관에서 나온 독자적 효과”(420)이다. 서술자는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구분하여 보고함으로써 자못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종결짓곤 한다. 항해 중이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와 그 일행이 어느 항구 도시에 접근하다 전투가 벌어져 선원 중 몇 명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데, 서술자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ch waren sie ja nur Nebenpersonen.” 이에 대한 번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자.
 +
 
 +
{|
 +
|
 +
박종서: 그러나 그네들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976, 392)
 +
이정태: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27)
 +
김남경: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153)
 +
김현진: 그러나 그들은 그저 조연에 불과한 인물들일 뿐이었다.(186)
 +
|}
 +
 
 +
얼핏 보기에 큰 차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진은 ja라는 부사를 살려서 ‘뿐이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전 세 사람의 건조한 사실 보고식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ja는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데, 다친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주인공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더 주목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김현진의 번역에서는 서술자의 독특한 태도가 느껴지기에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식의 해학적 글쓰기 태도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는바, 김현진은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
 
 +
각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역자는 의역을 추구하는데, 이는 원문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Die Aussetzung은 “아이를 내버리다”로, Die Entdeckung은 “비밀을 알게 되다”로, Die schlimmen Kinder는 “못된 아이들”로 번역함으로써 그 장의 주요 내용이 잘 전달된다. 김현진 번역의 이런 특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술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eine zugleich entsetzliche und hocherbauliche Geschichte”로 지칭한다. 이는 이중의 근친상간이 벌어지지만 철저한 속죄를 통해 신에 의해 교황으로 선택받는다는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지칭한다. 박종서는 “무지막지하고 매우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990, 295)로, 이정태는 “매우 두렵고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0)로, 김남경은 “정말 무섭고도 동시에 지극히 교화(敎化)적인 전설”(10)로 번역했다. 하지만 김현진은 “경악할 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17)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를 다 마친 서술자는 독자가 소설의 이런 내용에서 “es sei zuletzt mit der Sünde ein leichtes Ding”이라고 잘못된 교훈을 끌어낼까 봐 염려한다. 김현진은 이 말을 “죄라는 것은 결국 별것 아니라고”(413)로 번역했다. 반면 박종서는 “죄라는 것은 결국 험한 것이라고”(1976, 523), 이정태는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편리한 것이라고”(283), 김남경은 “죄라는 것은 결국 가벼운 것이다”(341)로 번역했다.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죄가 ‘험한 것’이나 ‘편리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
 
 +
김현진 번역본의 학술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대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원문과 달리 행을 바꾸어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토마스 만의 경우 S. 피셔 출판사의 판본만 존재하기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어느 판본을 저본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과는 다른 번역 제목을 제시했고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하려 노력한 점, 연구가 병행된 번역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의 번역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
 
 +
 
 +
'''3. 평가와 전망'''
 +
 
 +
토마스 만의 이 소설은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번역자를 거치면서 번역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최근에 나온 김현진의 번역본은 ‘한국토마스만학회’의 독회를 통한 공동연구 및 작품 이해가 뒷받침되어 나온 것으로, 질 좋은 번역을 위한 새로운 방식 및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어떤 번역에도 오역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및 해석이 나오면 그에 발맞추어 번역도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친다.
 +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박종서(1969): 선택된 인간. 정음사.<br>
 +
박종서(1976): 선택된 인간. 삼성출판사.<br>
 +
이정태(1990): 선택된 인간. 금성출판사.<br>
 +
김남경(1995): 선택된 인간. 하서출판사.<br>
 +
김현진(2020): 선택받은 사람. 나남.<br>
 +
 
 +
<div style="text-align: right">권선형</div>
 +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2023년 6월 22일 (목) 09:13 판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의 노벨레


작품소개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925/26년에 발표한 노벨레로,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의 한 상류층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인 의사 프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는 전날 가장무도회에 다녀온 후 감추어진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내는 여름휴가 때 덴마크에서 만난 한 장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할 결심까지 했고, 남편도 그곳에서 마주친 금발의 어린 소녀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늦은 밤 위중한 환자의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선 프리돌린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친구를 통해 비밀 섹스 파티에 가서 꿈같은 모험을 한다. 한편 아내는 꿈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데, 꿈에서 수많은 남자와 정사를 벌이면서,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을 비웃는다. 자기는 다른 여인들과 섹스하고 싶어 하면서 아내는 정조를 지키고, 헌신적이길 바라는 프리돌린의 가부장적인 이중성과 성적 욕망을 억눌러야 했던 알베르티네의 무의식적인 복수가 겹쳐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파경 직전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의 일탈을 털어놓으면서 자신들의 욕망으로부터 돌아서 다시 가정의 안정을 되찾는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성적 욕망을 정신분석적 방법을 통해 묘사한 이 소설은 1993년 박미애에 의해 처음 번역 출판되었다(자유출판사).


초판 정보

Schnitzler, Arthur(1925/6): Traumnovelle. In: Die Dame. 6(Dec. 1925) – 12(Mar. 1926). <단행본 초판> Schnitzler, Arthur(1926): Traumnovelle. Berlin: S. Fischer.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꿈의 노벨레 꿈의 노벨레 슈니틀러 박미애 1993 자유출판사 11-138 편역 완역
2 꿈의 노벨레 꿈의 노벨레 문지스펙트럼 2-009 아르투어 슈니츨러 백종유 1997 문학과지성사 13-164 완역 완역
3 꿈 이야기 아이즈 와이드 오픈 아르투어 슈니츨러 김재혁 1999 씨엔씨미디어 8-124 편역 완역
4 꿈의 노벨레 민들레꽃의 살해 아르투어 슈니츨러 김재혁 2005 현대문학 7-44 편역 완역
5 꿈의 노벨레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모명숙 2010 문학동네 149-264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국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 더 잘 알려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2021년 7월 현재까지 네 명의 번역자에 의해 총 여섯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초역은 1993년 자유출판사에서 나온 박미애의 번역이다. 슈니츨러의 경우 그가 사망한 1931년에 Der blinde Geronimo und sein Bruder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 <신여성>이라는 잡지에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1] 50년대 후반부터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꾸준히 소개된 점을 고려할 때,[2] <꿈의 노벨레>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번역 출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93년의 초역 이후 97년에 백종유의 번역(문학과지성사)이, 99년에는 김재혁의 번역(씨엔씨미디어)이 뒤를 이었다. 백종유의 번역은 2020년 같은 출판사에서 2쇄가 나왔는데, 신세대풍으로 어조가 바뀐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기에 다른 번역본으로 볼 만하다. 김재혁의 번역도 1999년에는 <아이즈 와이드 오픈>(씨엔씨미디어)이란 책에 “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지만, 2005년에는 문학전문출판사(현대문학)에 의해 독일어 원제목인 “꿈의 노벨레”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되었고, 번역의 내용 또는 성격이 다소 변모하여 이 또한 새로운 번역본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모명숙의 것이다.

<꿈의 노벨레>의 번역사 또는 수용사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유명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사망 및 그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영향이다. 1999년 10월 씨엔씨미디어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그해 3월에 사망한 큐브릭을 추모하며 발간된 책 속에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서 소개되고 있는바, 이 책에서는 원작자와 원작보다 유명 영화감독과 그의 유작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목차가 그것을 말해준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 <꿈 이야기>, 큐브릭과의 마지막 대담, <꿈 이야기> 작품해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세계. 이후 김재혁의 번역과 백종유의 번역이 개정되어 재출판되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 모명숙의 번역이 나오는 등 원작의 영화화 이후에 더 많은 번역서가 출간된 사실은 문학의 영화화가 문학작품의 수용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일반 독자에게는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보다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더 많이 회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그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69)

박종서 번역본의 의의는 국내 초역이라는 점인데, 이후 이 소설의 이해 및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설의 중요한 개념 및 상황에 대한 번역에서 그런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1951년, 토마스 만이 그의 나이 77세에 발표한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원숙한 세계관과 한층 더 세련된 문체가 돋보인다. 여기에는 서사의 전개에 틈틈이 끼어들면서 자기 생각과 감정 등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서술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 현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한껏 드러내는 전지적 서술자인, 소설 밖의 이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서술자는 로마에 있는 종이란 종이 다 울리고 있다며, 그것을 울리는 존재와 그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Wer also läutet die Glocken Roms? ― Der Geist der Erzählung. ― Kann denn der überall sein, hic et ubique, [...] Allerdings, das vermag er. Er ist luftig, körperlos, allgegenwärtig, nicht unterworfen dem Unterschiede von Hier und Dort.
그러면 대체 누가 로오마의 종을 울리고 있을까? ― 전설의 넋이다. ― 그런데 그 넋은 어디나 있는 것일까? [...] 전설의 넋은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공기와 같은 것으로서 형체도 없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것이요, 이곳저곳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292)

소설의 서술자는 자신이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편재하면서 종을 울리고 있는 저 “전설의 넋”(박종서는 Der Geist der Erzählung을 이렇게 번역했다)의 육화된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 소설은 중세 고지 독일의 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의 서사시 <그레고리우스>에 기초하고 있는바, 즉 전설에서 그 소재를 가져왔기에 박종서는 Erzählung을 전설로 번역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에는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서사/이야기 Erzählen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렇게 번역된 것 같다. 박종서 이후의 번역자들도 이 서술자를 “전설의 영혼”(이정태), “전설의 혼”(김남경)으로 번역했다. 김현진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서술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meine Gnadenmär”라고 표현한다. 이에 대한 번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된다. 박종서는 이를 “나의 은혜로운 전설”(18)로, 이정태는 “나의 은총의 전설”(12)로, 김남경은 “나의 은총에 대한 전설”(11)로 번역했다. 반면 김현진은 “은총에 관한 믿기 힘든 이야기”(19)라고 단어의 내용을 풀어 쓰면서 전설이 아닌 이야기로 번역했다. 독일어 사전 두덴에 따르면 Mär는 “이상한 이야기, 믿을 수 없거나 사실이 아닌 보고”이다. 소설의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하느님의 어린 양이 로마에 사는 경건한 남자 프로부스의 꿈에 나타나서 새 교황이 선택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프로부스는 어린 양의 계시에 놀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wie das? Symmachus und Eulalius sind beide tot, die Kirche ist ohne Haupt, die Menschheit entbehrt des Richters, und der Stuhl der Welt steht leer.

박종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쥠마쿠스나 에울라리우스는 모두 다 죽어버리어, 교회에는 교황이 없고, 인간 사회에는 판사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가 비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188) 박종서는 전반적으로 직역을 추구하는데, 이곳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로 원문에 없는 ‘지금의 현상’이란 말을 넣어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후의 역자들도 박종서와 마찬가지로 원문에 없는 “오늘의 현실”(이정태 218)이나 “현재의 상황”(김남경 262) 같은 표현을 덧붙여서 번역했다. 이와 같이 박종서의 초역은 이후 역자들에게 사실상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종서의 초역은 전체적으로 직역을 추구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름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어색한 표현 및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1976년의 개정판에서는 이런 점들이 상당 부분 개선된다.


2) 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76)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52권을 통해 <선택된 인간>을 다시 발표하면서 박종서는 번역 텍스트로 S. 피셔 출판사의 1956년 판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저본 정보를 밝힌 것으로, 이 점에서는 박종서가 이 소설의 번역자 중 유일하다. 번역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지는 면모이다. 그는 역자 해설에서 이 소설이 “이미 出刊된 바 있으나 이번에 改譯하였음도 아울러 밝히는 바”(535)라고 말하는데, 인명을 비롯하여 어휘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현도 가독성을 높이는 쪽으로 수정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할머니 “Baduhenna”는 “바아두헤나”에서 “바두헤나”로, “페에터”는 “베드로”로 “로오마”는 “로마”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바뀌는 등 현대식 표기법이 적용되었다. “나전어”도 “라틴어”로, “교회의 추장(酋長)” 같은 표현도 “교회의 대표자”로 바뀌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어머니 지빌라가 서로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 키스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초판은 “입술을 서로 물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151)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입술을 서로 맞대고 오랜 침묵이 흘렀”(431)다고 나온다. 입술을 물었다는 표현은 자칫 입맞춤으로 연상되지 못할 여지가 있었는데, 맞댄다는 표현으로 수정되면서 그런 점이 개선되었다. 지빌라의 태몽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개정이 일어난다. 이 꿈은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바,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떠남으로써 그녀에게 아픔을 주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더 큰 아픔을 준다는 내용, 즉 오빠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버려졌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중 근친상간을 예시하는 내용이다. 초판에서는 이 “schweren Traum”이 “우울한 꿈”(52)으로 번역됐다가 개정판에서는 “좋지 못한 꿈”(330)으로 바뀌었다. 당사자를 짓누르는 꿈의 성격을 생각할 때 후자가 나은 번역이라 하겠다.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으로 로마에 입성할 때 축하의 종들이 울릴 때도, 원문의 “von selber”를 종이 “자연히”(14)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역이 개정판에서는 종이 “저절로”(292) 울리기 시작했다로 수정되었다.


3) 이정태 역의 <선택된 인간>(1990)

이정태의 번역은 1981년 금성출판사의 <(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1990년에는 같은 출판사의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출간되었다. 그의 번역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각 장의 제목에 대한 번역 방식이다. 가령 독일어 제목 “Die Aussetzung”을 “아이를 버리다”로, “Die Entdeckung”을 “탄로가 나다”로 번역했다. 독일어의 명사적 표현을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유럽어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을 하나의 명사나 명사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법이 발달한 명사 중심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동사 중심 언어라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정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 같다. Die Aussetzung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리는 사실을 지칭하고, Die Entdeckung은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서는 이를 각각 “버림 받은 아이”, “누설된 비밀”로 번역했다. 이보다는 이정태의 번역이 단어의 함의를 보다 잘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역자들도 대부분 이정태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경향을 보여준다.

이정태 번역본의 또 다른 특징은 번역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토마스 만의 유려한 장문의 문체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클레멘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와 같이 오랜 전설을 끝까지 이끌어온 나 클레멘스는, 독자 여러분이 주의를 다해 귀를 기울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나 스스로 기울인 수고에 대해 여러분이 주시는 감사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283) “이와 같이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한 보답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나 자신도 포함시켜서,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한 번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284) 아주 긴 문장은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 된 원문을 똑같이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가독성도 좋아 토마스 만적 문체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해준다.

이정태는 “토마스 만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긴 해설을 통해 이전의 역자들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작품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전의 역자들은 이중의 근친상간에 중점을 두며 줄거리 위주로 소개했는데, 이정태는 이 소설을 “원죄와 은총의 이야기”(449)로 소개하면서, 서술자에 대한 해설도 덧붙인다. 그는 서술자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언어의 인간인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의 문학 정신”(450)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이런 작품 이해가 서술자의 자유로운 서술 태도에 대한 번역에서도 잘 반영된 것 같다.

4) 김남경 역의 <선택된 인간>(1995)

1세대 독문학자라 할 수 있는 박종서와 이정태의 번역 이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던 차에 1995년 <하서세계문학> 54권을 통해 김남경의 번역본이 발표되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의 장정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분홍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이 소설을 타이틀로 한 단독작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2020년 김현진의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 25년 동안, 약 반년 늦게 나온 최호의 번역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남경 번역의 특징은 이전 번역들보다 표현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매끄러워서 동시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어린 양의 계시에 놀란 프로부스가 말하는 장면에서 “der Stuhl der Welt”를 박종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이정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번역했는데, 김남경은 “세계의 성좌”(262)로 번역했는바, 직역의 방식을 취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깔끔하게 전달하였다. 같은 장면에서 어린 양이 프로부스에게 “Euer Gebet ist erhört und die Wahl geschehen.”이라고 말한 것도 박종서는 “당신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닿아서 선출된 것입니다.”로, 이정태는 “당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선택된 것입니다.”(218)로 번역했지만, 김남경은 “당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선출이 이루어졌습니다.”(263) 라고 번역했다. 여기서도 원문을 단어 그대로 보충 설명 없이 매끄럽게 번역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김남경의 직역 방식은 단점도 드러낸다. 가령 앞에서 언급했던 장의 제목인 Die Entdeckung을 “폭로”라고 번역했는데, ‘탄로가 나다’로 번역한 이정태의 의역에 비해 내용 전달 면에서 불명확하다. 명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어와 달리 우리 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폭로’라고 명사만 제시하면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온다. Die Aussetzung의 경우에는 김남경도 박종서와 같이 ‘아이를 버리다’로 의역했다. 또 다른 장의 제목인 “Die schlimmen Kinder”를 김남경은 “가련한 아이들”로 번역했는데, 아버지 그리말트 공이 돌아가신 날 남매가 동침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제목임을 생각할 때 “나쁜 아이들”(박종서)이나 “못된 아이들”(김현진)이 적합할 듯하다.

독일어과를 졸업한 번역문학가라는 정보 외에 자세한 역자 정보가 없어서 토마스 만 전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제법 긴 해설과 상세한 작가 연보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소설을 위한 전문적인 해설은 없었다. 국내 독문학계의 토마스 만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번역문학가’라는 역자 소개와 달리 번역 원칙이나 역자의 말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5)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2020)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12권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문을 어떻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으며,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자”(6) 노력했다고 역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그의 번역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것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가 번역 및 작품해설에 반영되어서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der Geist der Erzählung을 김현진은 전설이 아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서사적 특징에 주목한 점이 다른 번역자들과 특히 구분된다. 이 소설에서는 이중의 근친상간과 속죄, 구원이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정령, 즉 서술자 클레멘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의한 것으로, “토마스 만이 만년에 보여준 해학적 글쓰기와 세계관에서 나온 독자적 효과”(420)이다. 서술자는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구분하여 보고함으로써 자못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종결짓곤 한다. 항해 중이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와 그 일행이 어느 항구 도시에 접근하다 전투가 벌어져 선원 중 몇 명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데, 서술자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ch waren sie ja nur Nebenpersonen.” 이에 대한 번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자.

박종서: 그러나 그네들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976, 392)
이정태: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27)
김남경: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153)
김현진: 그러나 그들은 그저 조연에 불과한 인물들일 뿐이었다.(186)

얼핏 보기에 큰 차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진은 ja라는 부사를 살려서 ‘뿐이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전 세 사람의 건조한 사실 보고식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ja는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데, 다친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주인공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더 주목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김현진의 번역에서는 서술자의 독특한 태도가 느껴지기에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식의 해학적 글쓰기 태도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는바, 김현진은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각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역자는 의역을 추구하는데, 이는 원문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Die Aussetzung은 “아이를 내버리다”로, Die Entdeckung은 “비밀을 알게 되다”로, Die schlimmen Kinder는 “못된 아이들”로 번역함으로써 그 장의 주요 내용이 잘 전달된다. 김현진 번역의 이런 특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술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eine zugleich entsetzliche und hocherbauliche Geschichte”로 지칭한다. 이는 이중의 근친상간이 벌어지지만 철저한 속죄를 통해 신에 의해 교황으로 선택받는다는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지칭한다. 박종서는 “무지막지하고 매우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990, 295)로, 이정태는 “매우 두렵고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0)로, 김남경은 “정말 무섭고도 동시에 지극히 교화(敎化)적인 전설”(10)로 번역했다. 하지만 김현진은 “경악할 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17)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를 다 마친 서술자는 독자가 소설의 이런 내용에서 “es sei zuletzt mit der Sünde ein leichtes Ding”이라고 잘못된 교훈을 끌어낼까 봐 염려한다. 김현진은 이 말을 “죄라는 것은 결국 별것 아니라고”(413)로 번역했다. 반면 박종서는 “죄라는 것은 결국 험한 것이라고”(1976, 523), 이정태는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편리한 것이라고”(283), 김남경은 “죄라는 것은 결국 가벼운 것이다”(341)로 번역했다.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죄가 ‘험한 것’이나 ‘편리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현진 번역본의 학술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대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원문과 달리 행을 바꾸어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토마스 만의 경우 S. 피셔 출판사의 판본만 존재하기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어느 판본을 저본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과는 다른 번역 제목을 제시했고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하려 노력한 점, 연구가 병행된 번역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의 번역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3. 평가와 전망

토마스 만의 이 소설은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번역자를 거치면서 번역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최근에 나온 김현진의 번역본은 ‘한국토마스만학회’의 독회를 통한 공동연구 및 작품 이해가 뒷받침되어 나온 것으로, 질 좋은 번역을 위한 새로운 방식 및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어떤 번역에도 오역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및 해석이 나오면 그에 발맞추어 번역도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69): 선택된 인간. 정음사.
박종서(1976): 선택된 인간. 삼성출판사.
이정태(1990): 선택된 인간. 금성출판사.
김남경(1995): 선택된 인간. 하서출판사.
김현진(2020): 선택받은 사람. 나남.

권선형


바깥 링크

  1. 작가명은 슈니첼로 되어 있고 역자 미상이다.
  2. 슈니츨러 단편집, 장남준 역(1959 현대문고); 독일단편문학대계, 정경석 외 역(1971 일지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박환덕 역(1977 범조사); 바람둥이 고향에 돌아오다, 홍경호 역(1978 태창출판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