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멘 호수 (Immense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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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isabeth!<<, sagte der Alte leise; und wie er das Wort gesprochen, war die Zeit verwandelt - er war in seiner Jugend.
 
  >>Elisabeth!<<, sagte der Alte leise; und wie er das Wort gesprochen, war die Zeit verwandelt - er war in seiner Jugend.
그리하여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낸 즉, 세월은 일전一轉하여 -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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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낸 즉, 세월은 일전一轉하여 -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191).
  
 
이영구는 현재 의식과 회상된 과거 사이의 불연속성을 다소 마술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옛사랑의 이름을 부르자, 세월이 바뀌었고, 그리하여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영구는 현재 의식과 회상된 과거 사이의 불연속성을 다소 마술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옛사랑의 이름을 부르자, 세월이 바뀌었고, 그리하여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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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종서(1976)| 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76)]]<span id="박종서(1976)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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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홍경호(1973)|홍경호 역의 <임멘 호반>(1973)]]<span id="홍경호(1973)R" />과 [[#홍경호(2006)|<호반>(2006)]]<span id="홍경호(2006)R" />'''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52권을 통해 <선택된 인간>을 다시 발표하면서 박종서는 번역 텍스트로 S. 피셔 출판사의 1956년 판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저본 정보를 밝힌 것으로, 이 점에서는 박종서가 이 소설의 번역자 중 유일하다. 번역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지는 면모이다. 그는 역자 해설에서 이 소설이 “이미 出刊된 바 있으나 이번에 改譯하였음도 아울러 밝히는 바”(535)라고 말하는데, 인명을 비롯하여 어휘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현도 가독성을 높이는 쪽으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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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70년 번역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번역본을 낸 사람은 홍경호다. 1973년 출간된 홍경호의 <호반; 황태자의 첫 사랑>(범우사)에는 <임멘 호반>이 포함되어 있다. 1977년 출간된 홍경호의 <호반; 대학시절>(범우사)에도 1973년과 동일한 <임멘 호반> 번역본이 실려 있다. 그는 2004년, 2006년, 2008년에 <호수> 또는 <호반>포함된 3개의 번역물 단행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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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호는 가장 많은 번역본을 낸 만큼, 여러 제목이 혼재할 뿐 아니라, 단행본 제목과 단행본 속의 작품명을 다르게 번역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10개 장의 제목에서도 보이는데, 첫 번째 장과 마지막 장이 동일하게 “Der Alte”임에도 첫 장은 “노인”, 10장은 “만년”으로 굳이 구별해서 번역하고 있다. 홍경호에게서는 장의 제목으로서 “Immensee”를 번역할 때도 이러한 유동성이 보이는데, 작품 제목의 번역에 맞추어 “호반” 혹은 “임멘 호반”으로 번역하지 않고, 장의 제목은 “임멘호”로 번역한다. 물론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번역에 대하여 그는 어떤 설명이나 해명을 따로 하고 있지 않다. 그 외에도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혼용하여 번역하기도 한다(1977, 35; 58).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할머니 “Baduhenna”는 “바아두헤나”에서 “바두헤나”로, “페에터”는 “베드로”로 “로오마”는 “로마”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바뀌는 등 현대식 표기법이 적용되었다. “나전어”도 “라틴어”로, “교회의 추장(酋長)” 같은 표현도 “교회의 대표자”로 바뀌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어머니 지빌라가 서로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 키스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초판은 “입술을 서로 물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151)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입술을 서로 맞대고 오랜 침묵이 흘렀”(431)다고 나온다. 입술을 물었다는 표현은 자칫 입맞춤으로 연상되지 못할 여지가 있었는데, 맞댄다는 표현으로 수정되면서 그런 점이 개선되었다. 지빌라의 태몽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개정이 일어난다. 이 꿈은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바,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떠남으로써 그녀에게 아픔을 주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더 큰 아픔을 준다는 내용, 즉 오빠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버려졌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중 근친상간을 예시하는 내용이다. 초판에서는 “schweren Traum”이 “우울한 꿈”(52)으로 번역됐다가 개정판에서는 “좋지 못한 꿈”(330)으로 바뀌었다. 당사자를 짓누르는 꿈의 성격을 생각할 때 후자가 나은 번역이라 하겠다.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으로 로마에 입성할 때 축하의 종들이 울릴 때도, 원문의 “von selber”를 종이 “자연히”(14)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역이 개정판에서는 종이 “저절로”(292) 울리기 시작했다로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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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6년 번역본에서 홍경호는 마침내 이전의 여러 번역본에서 보이던 여러 혼란들을 정리, 수정한다. 일단 단행본 제목과 작품명을 <호반>으로 통일시켰고, 현재시제와 과거시제의 무의미한 공존도 정리했다. 그가 계속 고수한 것은 마지막 장의 제목 “만년”과,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는 순간, 즉 의식이동의 ‘문턱’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홍경호는 의식이동 부분에서 “방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비쳐 들었다”(2006, 64)라는 단 하나의 문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 현재형으로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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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장의 집시 처녀의 노래는 라인하르트의 외로운 말년의 운명에 대한 예견이기도 한데, 그 노래의 한 대목을 “죽음 뿐, 아아 죽음 뿐 오직 나 혼자 떨어져서”(2006, 60)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llein”을 “ich”에 연결시킨 데서 그치지 않고, “sterben”과도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래의 화자가 ‘혼자서’ 죽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가 ‘오직 죽음만’을 갈구한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마치 죽음을 찬미하는 듯한 뉘앙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3) '''[[#이정태(1990)| 이정태 역의 <선택된 인간>(1990)]]<span id="이정태(1990)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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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두식(1994)| 강두식 역의 <호반>(1994)]]<span id="강두식(1994)R" />'''
  
이정태의 번역은 1981년 금성출판사의 <(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1990년에는 같은 출판사의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출간되었다. 그의 번역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각 장의 제목에 대한 번역 방식이다. 가령 독일어 제목 “Die Aussetzung”을 “아이를 버리다”로, “Die Entdeckung”을 “탄로가 나다”로 번역했다. 독일어의 명사적 표현을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유럽어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을 하나의 명사나 명사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법이 발달한 명사 중심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동사 중심 언어라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정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 같다. Die Aussetzung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리는 사실을 지칭하고, Die Entdeckung은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서는 이를 각각 “버림 받은 아이”, “누설된 비밀”로 번역했다. 이보다는 이정태의 번역이 단어의 함의를 보다 잘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역자들도 대부분 이정태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경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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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간된 강두식의 <호반>(여명출판사)은 편집원칙으로나 번역 전략으로나 다른 번역본에 비해 많은 자유 공간을 허용하고 있다. 우선 책 전체에 걸쳐, 각 장이 시작되는 페이지마다 인상주의 화가나 샤갈 등의 그림이 반 페이지를 차지하도록 편집되어 있고, 때로는 아예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정태 번역본의 또 다른 특징은 번역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토마스 만의 유려한 장문의 문체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클레멘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와 같이 오랜 전설을 끝까지 이끌어온 나 클레멘스는, 독자 여러분이 주의를 다해 귀를 기울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나 스스로 기울인 수고에 대해 여러분이 주시는 감사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283) “이와 같이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한 보답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나 자신도 포함시켜서,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한 번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284) 아주 긴 문장은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 된 원문을 똑같이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가독성도 좋아 토마스 만적 문체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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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식은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번역자는 원본과 상관없이 새로운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1장은 “노인” 대신 “황혼녁”으로, 2장은 “아이들” 대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3장은 “숲속에서” 대신 “딸기사냥”으로, 4장은 “길가에 아이가 서 있었네” 대신 “쓸쓸한 크리스마스”로, 5장은 “고향에서” 대신 “부활제 휴가”로, 6장은 “편지” 대신 “슬픈 편지”로, 7장은 “임멘 호수” 대신 “낯설은 재회”로, 8장은 “어머니의 뜻이었어요” 대신 “민요에 담긴 진실”로, 9장은 “엘리자베트” 대신 “영원한 이별”로, 10장은 “노인” 대신 “외로운 현실”로 제목이 바뀌어 있다. 새 제목들은 해당 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요약하고 있어, 원문의 제목보다 오히려 더 제목 본래적 기능에 충실해 보인다.  
  
이정태는 “토마스 만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긴 해설을 통해 이전의 역자들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작품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전의 역자들은 이중의 근친상간에 중점을 두며 줄거리 위주로 소개했는데, 이정태는 소설을 “원죄와 은총의 이야기”(449)로 소개하면서, 서술자에 대한 해설도 덧붙인다. 그는 서술자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언어의 인간인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의 문학 정신”(450)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이런 작품 이해가 서술자의 자유로운 서술 태도에 대한 번역에서도 잘 반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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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식의 다소 과감하게 상황을 압축 정리해 주는 번역의 장점은 “죽음으로 끝나고, 아아 죽으므로 끝나고. 다만 홀로 살아야 하는 몸”(138)과 같이 라인하르트의 독신자 운명을 가리키는 노래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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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가 타향에서 부지불식간에 엘리자베트로부터, 또 고향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을 돌아보며 귀향을 떠올리는 시구도 마찬가지다.
  
4) '''[[#김남경(1995)| 김남경 역의 <선택된 인간>(1995)]]<span id="김남경(1995)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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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헤매다 날은 저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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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바 모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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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선 어린 소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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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그머니 가리켜 준 나의 귀로“(111)
  
1세대 독문학자라 할 수 있는 박종서와 이정태의 번역 이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던 차에 1995년 <하서세계문학> 54권을 통해 김남경의 번역본이 발표되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의 장정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분홍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이 소설을 타이틀로 한 단독작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2020년 김현진의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 25년 동안, 약 반년 늦게 나온 최호의 번역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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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식은 이렇게 시는 시대로 생생하게 만들어 주고, 새로운 제목으로 장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거나 해석해 주었다. 이로써 시와 그것이 포함되어 있던 장의 제목이 하나의 공통된 문구로 호응하는 원문의 텍스트적 현상으로부터 그의 번역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원문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특히 네 번째와 여덟 번째 장에서 보이는) 시와 장 제목 간 일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두는 번역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던 이영구와 홍경호의 번역본에서도 원문이 추구하는 제목과 본문 속 노래 혹은 시 사이의 텍스트적 동질성의 심미적 효과에 대한 관심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남경 번역의 특징은 이전 번역들보다 표현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매끄러워서 동시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어린 양의 계시에 놀란 프로부스가 말하는 장면에서 “der Stuhl der Welt”를 박종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이정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번역했는데, 김남경은 “세계의 성좌”(262)로 번역했는바, 직역의 방식을 취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깔끔하게 전달하였다. 같은 장면에서 어린 양이 프로부스에게 “Euer Gebet ist erhört und die Wahl geschehen.”이라고 말한 것도 박종서는 “당신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닿아서 선출된 것입니다.”로, 이정태는 “당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선택된 것입니다.”(218)로 번역했지만, 김남경은 “당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선출이 이루어졌습니다.”(263) 라고 번역했다. 여기서도 원문을 단어 그대로 보충 설명 없이 매끄럽게 번역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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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의해 낭독되거나 혹은 노래 되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일 경우, 제목과 본문 사이의 연속성과 내적 완결성은 무시되고 만다. 네 번째 장과 여덟 번째 장은 라인하르트의 방황과 엘리자베트의 사랑의 좌절에 대한 장으로서 감정적 응축과 발산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노래와 시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많은 번역본에서 이 관점이 고려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강두식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런데 김남경의 직역 방식은 단점도 드러낸다. 가령 앞에서 언급했던 장의 제목인 Die Entdeckung을 “폭로”라고 번역했는데, ‘탄로가 나다’로 번역한 이정태의 의역에 비해 내용 전달 면에서 불명확하다. 명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어와 달리 우리 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폭로’라고 명사만 제시하면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온다. Die Aussetzung의 경우에는 김남경도 박종서와 같이 ‘아이를 버리다’로 의역했다. 또 다른 장의 제목인 “Die schlimmen Kinder”를 김남경은 “가련한 아이들”로 번역했는데, 아버지 그리말트 공이 돌아가신 날 남매가 동침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제목임을 생각할 때 “나쁜 아이들”(박종서)이나 “못된 아이들”(김현진)이 적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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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소설의 문턱 즉, 주인공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대목에서도 강두식은 원문의 다소 마술공연을 연상시키는 서술적 전개와는 달리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93)라고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독일어과를 졸업한 번역문학가라는 정보 외에 자세한 역자 정보가 없어서 토마스 만 전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제법 긴 해설과 상세한 작가 연보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소설을 위한 전문적인 해설은 없었다. 국내 독문학계의 토마스 만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번역문학가’라는 역자 소개와 달리 번역 원칙이나 역자의 말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5) '''[[#김현진(2020)|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2020)]]<span id="김현진(2020)R" />'''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12권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문을 어떻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으며,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자”(6) 노력했다고 역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그의 번역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것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가 번역 및 작품해설에 반영되어서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der Geist der Erzählung을 김현진은 전설이 아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서사적 특징에 주목한 점이 다른 번역자들과 특히 구분된다. 이 소설에서는 이중의 근친상간과 속죄, 구원이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정령, 서술자 클레멘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의한 것으로, “토마스 만이 만년에 보여준 해학적 글쓰기와 세계관에서 나온 독자적 효과”(420)이다. 서술자는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구분하여 보고함으로써 자못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종결짓곤 한다. 항해 중이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와 그 일행이 어느 항구 도시에 접근하다 전투가 벌어져 선원 중 몇 명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데, 서술자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ch waren sie ja nur Nebenpersonen.” 이에 대한 번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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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그러나 그네들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976, 392)
 
이정태: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27)
 
김남경: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153)
 
김현진: 그러나 그들은 그저 조연에 불과한 인물들일 뿐이었다.(186)
 
|}
 
 
 
얼핏 보기에 큰 차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진은 ja라는 부사를 살려서 ‘뿐이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전 세 사람의 건조한 사실 보고식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ja는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데, 다친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주인공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더 주목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김현진의 번역에서는 서술자의 독특한 태도가 느껴지기에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식의 해학적 글쓰기 태도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는바, 김현진은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각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역자는 의역을 추구하는데, 이는 원문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Die Aussetzung은 “아이를 내버리다”로, Die Entdeckung은 “비밀을 알게 되다”로, Die schlimmen Kinder는 “못된 아이들”로 번역함으로써 그 장의 주요 내용이 잘 전달된다. 김현진 번역의 이런 특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술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eine zugleich entsetzliche und hocherbauliche Geschichte”로 지칭한다. 이는 이중의 근친상간이 벌어지지만 철저한 속죄를 통해 신에 의해 교황으로 선택받는다는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지칭한다. 박종서는 “무지막지하고 매우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990, 295)로, 이정태는 “매우 두렵고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0)로, 김남경은 “정말 무섭고도 동시에 지극히 교화(敎化)적인 전설”(10)로 번역했다. 하지만 김현진은 “경악할 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17)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를 다 마친 서술자는 독자가 소설의 이런 내용에서 “es sei zuletzt mit der Sünde ein leichtes Ding”이라고 잘못된 교훈을 끌어낼까 봐 염려한다. 김현진은 이 말을 “죄라는 것은 결국 별것 아니라고”(413)로 번역했다. 반면 박종서는 “죄라는 것은 결국 험한 것이라고”(1976, 523), 이정태는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편리한 것이라고”(283), 김남경은 “죄라는 것은 결국 가벼운 것이다”(341)로 번역했다.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죄가 ‘험한 것’이나 ‘편리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현진 번역본의 학술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대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원문과 달리 행을 바꾸어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토마스 만의 경우 S. 피셔 출판사의 판본만 존재하기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어느 판본을 저본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과는 다른 번역 제목을 제시했고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하려 노력한 점, 연구가 병행된 번역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의 번역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3. 평가와 전망'''
 
'''3. 평가와 전망'''
  
토마스 만의 이 소설은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번역자를 거치면서 번역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최근에 나온 김현진의 번역본은 ‘한국토마스만학회’의 독회를 통한 공동연구 및 작품 이해가 뒷받침되어 나온 것으로, 질 좋은 번역을 위한 새로운 방식 및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어떤 번역에도 오역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및 해석이 나오면 그에 발맞추어 번역도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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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름의 <임멘 호수>의 번역 70여 년 동안, 번역의 오류도 많이 수정되었고, 작품의 이해도 그만큼 더 깊어졌다. 짧은 분량, 그리고 많은 사회역사적 전제가 필요 없는 주제 때문에 <임멘 호수>의 해석과 번역을 둘러싸고 큰 이견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본 번역 비평에서는 작품 제목, 작품 내 장 제목, 노래의 운명예견적, 운명해석적 기능과 의미, 그리고 액자소설적 시간대 이동 방식을 중심으로 선별된 몇몇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69): 선택된 인간. 정음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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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구(1975): 호수. 삼성출판사.<br>
박종서(1976): 선택된 인간. 삼성출판사.<br>
+
홍경호(1977): 임멘 호반. 범우사.<br>
이정태(1990): 선택된 인간. 금성출판사.<br>
+
홍경호(2006): 호반. 범우사.<br>
김남경(1995): 선택된 인간. 하서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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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식(1994): 호반. 여명출판사.<br>
김현진(2020): 선택받은 사람. 나남.<br>
 
  
<div style="text-align: right">권선형</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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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 right">배정희</div>
  
 +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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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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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일문학]]
 
[[분류: 독일문학]]
 
[[분류: 슈토름, 테오도르]]
 
[[분류: 슈토름, 테오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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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비평된작품]]

2023년 6월 23일 (금) 01:53 기준 최신판

테오도르 슈토름(Theodor Storm, 1817-1888)의 소설


작품소개

정확한 저술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슈토름의 초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노벨레다. 슈토름의 초기 노벨레를 관통하는 주제인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서 한 노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액자소설의 형식이다.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깊은 결속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둘은 라인하르트의 대학진학과 함께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결국 엘리자베트는 홀어머니의 권유로 라인하르트의 친구이며 고향도시에서 일찍이 경제적 기반을 닦은 에리히와 결혼한다. 이 소설은 슈토름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널리 알려주었으며, 그의 생전에 이미 30쇄가 출판될 정도로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서정적 민요와 야생화를 함께 수집하며 사랑과 추억을 키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슈토름이 여러 다른 작가들의 후기 낭만주의적 그리고 초기 사실주의적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주지만, 그 외 의 탄생 배경 관련하여 그다지 밝혀진 바가 없다. 국내에서는 1976년 서순석에 의해 최초로 <호반>으로 번역되어 슈토름 작품집 <삼중당 문고 225>에 수록되었다(삼중당).


초판 정보

Storm, Theodor(1849): Immensee. In: Biernatzki, Karl(ed.): Volksbuch auf das Jahr 1850 für die Herzogtümer Schleswig, Holstein und Lauenburg. Altona: Verlag der Expedition des Altonaer Mercur's.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湖畔 (獨韓對譯) 湖畔 Theodor Storm 第一文化社編輯部 1955 第一文化社 4-159 완역 완역 독한대역본
2 임멘 湖 (獨逸短篇選)金髮의 엣크벨트 노벨클럽 9 슈토름 李榮九 1959 大東堂 189-223 편역 완역
3 임멘湖 金髮의 엣크벨트 노오벨클럽 9 슈토름 李榮九 1959 大東堂 189-223 편역 완역
4 湖水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테오도어 슈토름 丘冀星 1960 乙酉文化社 209-235 편역 완역
5 湖水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테오도어 슈토름 구기성 1960 乙酉文化社 210-235 편역 완역
6 호반 카스페를과 안네를의 이야기 쉬토름 확인불가 1967 文正出版社 189-223 편역 확인불가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7 호반 호반 테오도르 슈토름 송영택 1968 壯文社 - 확인불가 확인불가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8 임멘湖畔 湖畔, 皇太子의 첫사랑 Theodor Storm 洪京鎬 1973 汎友社 9-60 편역 완역
9 湖水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테오도어 슈토름 구기성 1974 乙酉文化社 210-235 편역 완역 1960년에 나온 책과 동일
10 湖水 世界短篇文學選Ⅱ (三省版)世界文學全集 29 T. 시토름 李榮久 1975 三省出版社 128-155 편역 완역
11 湖畔 시토름 短篇集, 클라이스트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集 29 Storm 金在玟 1976 汎朝社 11-52 편역 완역
12 湖畔 湖畔, 白馬의 驥士 三中堂文庫 225 T. 슈토름 徐順錫; 楊應周 1976 三中堂 5-49 편역 완역
13 임멘 湖畔 湖畔, 大學時節 汎友小說文庫 17 T. 슈토롬 洪京鎬 1977 汎友社 21-68 편역 완역
14 湖畔 湖畔 세계문학 44 시토름 李鍾大 1978 金星出版社 7-56 편역 완역
15 호수 世界短篇文學選集 2 테오도오 슈토름 申洙澈 1980 啓民出版社 316-352 확인불가 확인불가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16 임멘 호반 호반 범우사르비아문고 44 슈토름 홍경호 1982 汎友社 11-61 편역 완역
17 호수 세계 명작 문학 교학사 중학생문고 데오도르 시토름 박연숙 1983 교학사 103-163 편역 완역 vol.25
18 호반 호반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시토름 이종대 1985 금성출판사 8-69 편역 완역
19 호반(湖畔)- IMMENSEE 湖畔 Theodor Storm 鄭永鎬 1985 壯文社 6-81 완역 완역 독한대역본
20 호반 호반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시토름 이종대 1986 금성출판사 8-69 편역 완역 43번 책의 개정신판
21 호수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 테오도르 시토름 이인환 엮음 1991 성심도서 123-163 편역 완역
22 호반 대학 시절 세계문학선 19 슈토름 강두식 1994 여명출판사 89-142 편역 완역
23 임멘호 독일단편문학감상 교양신서 54 테오도르 슈토름 김희철 1998 학문사 7-63 편역 완역
24 호반 독일명작문학감상 테오도르 슈토름 김희철 1999 학문사 63-117 편역 완역
25 첫사랑 첫사랑 테오도르 슈토름 윤용호 2002 종문화사 8-100 완역 완역
26 호수 사랑의 여러 빛깔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테오도르 슈토름 홍경호 2004 살림출판사 73-125 편역 완역
27 임멘 호(湖) 붉은 고양이 테오도르 슈토름 이관우 2005 우물이 있는 집 180-229 편역 완역
28 호반 호반·황태자의 첫사랑 사르비아 총서 649 T. 슈토름 홍경호 2006 범우사 7-64 편역 완역
29 호반 청춘은 아름다워라 호반 그랑프리 세계 대표 문학,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논리논술 세계 대표 문학 45 T. 슈토름 엮은이: 이혜진 2006 삼성비엔씨 51-120 편역 완역
30 임멘 호수 임멘 호수(湖水) 외 테오도르 슈토름 우호순 2006 惠園出版社 7-73 편역 완역
31 호반 호반·대학시절 범우문고 256 T. 슈토름 홍경호 2008 범우사 9-60 편역 완역
32 임멘 호수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0 테오도어 슈토름 이은희 2008 고려대학교 출판부 7-69 편역 완역
33 임멘 호 (독일대표단편문학선) 금발의 에크베르트 세계단편문학선집 1 테오도르 슈토름 이관우 2013 써네스트 121-162 편역 완역
34 호반의 연인 호반의 연인 테오도르 슈토름 신언경 2013 일일사 8-111 완역 완역 독한대역본
35 임멘 호수: 사랑의 추억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 1 테오도르 슈토름 확인불가 2017 서교출판사 319-346 편역 완역
36 임멘호수 임멘호수, 철로지기 틸 테오도르 슈토름 김형국 2018 인터북스 7-65 편역 완역
37 임멘 호수 익사한 아이 부클래식, Boo classics 74 테오도어 슈토름 염승섭 2018 부북스 195-247 완역 완역
38 임멘 호수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프시케 세계문학전집 164 테오도어 슈토름 배정희 2018 문학동네 7-56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테오도르 슈토름의 <임멘 호수>(1849)의 국내 번역은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1955년 이상휘가 제일문화사와 선진문화사에서 출간한 독한대역본 <호반(湖畔)>이 국내 최초 번역이다. 원작 “Immensee”는 슈토름이 1849년 발표한 이래 그의 생전 30쇄를 기록할 정도로 작가에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안겨다 주며,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대표했다. 이러한 대중성은 이 작품의 국내 번역에서도 대체로 확인된다. 우선, 1950년대부터 2020년까지 대략 70여 년에 걸쳐 총 40회 번역출판 되었고, 그중 동일 번역자의 동일 번역이 시차를 두고 반복 출간된 경우를 제외하면, 총 30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시기별로 나누어 보자면 50년대 2종, 60년대 3종, 70년대 6종, 80년대 6종, 90년대 3종, 2000년대 6종, 2010년대 6종이 확인된다. 70년대 이후로는 - 90년대를 제외하고 - 각 십년대 마다 대략 6종의 다양한 번역이 출판시장에 선보인 셈이고, 관련 번역자의 수는 총 24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임멘 호수>의 이러한 꾸준한 번역출판 및 수용 경향은 첫사랑의 상실과 그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와 비교적 짧은 분량, 간단하고 선명한 스토리 구성, 그리고 서정적이며 긴 여운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일반 독자를 위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나 슈토름 단편 소설집 단행본에 다른 작품과 함께 묶여 번역 출간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별히 사춘기 독자를 겨냥한 청소년문학으로 편집, 소개되기도 했다. 앞서 거론한 최초의 국내 번역인 이상휘의 <호반>처럼 (대학의) 독일어 학습자를 위한 독한대역본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런 경우로는 1955년(이상휘), 1985년(정영호), 그리고 2013년(신언경)의 총 3종이 있다.

<임멘 호수>의 다양한 번역본들을 서로 비교함에 있어서, 의미 있고 유효한 차이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분량도 짧고, 형식면에서도 복잡한 것 없어 보이는 이 작품의 특징을 잠깐 들여다보자. 우선 이 작품은 총 10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중 맨 앞의 1장과 맨 뒤의 10장은 중심인물의 현재 시간 내지 현재 의식에 속한다. 그 중간의 8개 장은 중심인물이 회상하는 과거의 이야기로서, 소설 전체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띤다. 그런데 <임멘 호수>의 형식은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이며 말년작인 <백마의 기사>에서 보여주는 액자소설의 서사적 레이어드에 비하면 단순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는 복수의 화자가 나타나지 않으며, 액자 형식에서 전개되는 일은 단지 서술의 초점이 동일 화자의 현재에서 과거 삶의 일정 구간 속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어느 독자나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 서술상황은 더 이상 분명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형상화된 액자소설 형식이다. 그런데 분량도 짧고, 형식도 단순한 이 작품에는 이미지와 언어, 시각성과 청각성 사이의 상호작용 가능성이 고도로 농축되어 있다. 호수, 수련과 같은 자연물과 그 이미지는 인물의 운명, 그리고 운명에 대한 인물의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이런저런 시와 노래, 민요는 스토리의 전개를 예견하거나 상징하고, 혹은 인물의 감추어진 속내 사정을 감추거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신경망처럼 다층적으로 설계된 의미작용은 장의 제목이라는 작은 텍스트 구성요소에까지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아 형식적으로 단순, 명료하면서도 모든 요소가 촘촘하게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독자의 심미적 독서 체험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번역본들은 이러한 고밀도의 유기적인 의미작용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본 번역 비평에서는 몇몇 번역본들에서 나타나는 제목, 이미지, 노래와 본문 텍스트 사이의 관계와 함께, 액자 형식의 ‘문턱’, 즉 현재에서 과거로의 이동과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동이 일어나는 대목의 처리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이 작품의 70년 남짓한 번역 역사에서 이영구(1959, 1975), 홍경호(1973, 1977, 1982, 2006), 강두식(1994)을 선별하였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영구 역의 <호수>(1975)

1955년 이상휘의 독한대역본 이후 1959년 이영구의 <임멘 호>와 함께 이 작품의 대중적 번역소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영구의 번역은 대동당의 노(오)벨클럽 총서 중 <독일단편선: 금발의 엣크벨트>에 포함되어 있으며, 아직 세로쓰기 방식의 편집원칙에 따르고 있다. 이영구의 번역은 16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차를 두고 1975년, 삼성출판사에서 <호수>로 다시 출판되었는데, 1959년의 번역과 비교할 때 이렇다 할 만큼 눈에 띄는 수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영구의 경우에서 이미 보이지만, 이 소설의 국내 번역-수용에서 제목이 호수, 호반, 임멘 호, 임멘 호수, 임멘 호반 등으로 무원칙적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간혹 드물게는 “첫사랑”(윤용호 2002), “호반의 연인”(신언경 2013)과 같이 작품의 내용과 호응하는 제목으로 대체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에서는 “호수”, “호반”, “임멘 호”, “임멘 호수”, “임멘 호반”이라는 제목들이 경쟁적으로 사용되었다. 2000년대부터는 “임멘 호수”라는 원제목에 충실한 표현을 채택하는 경향이 점점 뚜렷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오랫동안 국내의 많은 번역가가 원제목의 고유명사 지명[1] 대신 호수라는, 더 나아가 호수 공간의 일부인 호반이라는 보통 명사를 선호한 것은 한국 독자의 귀에 독일어 ‘임멘’이 생소하게 들릴 우려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품의 보편적 주제와 그에 대한 낭만적인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이질적 요소를 미연에 제거하려는 출판전략이었을 것이다. 이영구의 경우 <임멘 호>에서 <호수>로 제목을 바꾼 것은 어쩌면, 동일한 번역을 출판사만 바꾸어 출간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국내 번역 시장의 당시 관행에 제목 바꾸기의 눈가림이 하나 더 덧붙여진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앞서 거론했던, 이 작품의 이해에서 중요하다고 할 만한 여러 관점을 이영구의 <호수>에서 살펴보자. 우선, 주인공이 과거로의 회상으로 빠져드는 대목인 첫 번째 장 “Der Alte”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자. 비교를 위해서 독일어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제시한다.

>>Elisabeth!<<, sagte der Alte leise; und wie er das Wort gesprochen, war die Zeit verwandelt - er war in seiner Jugend.
그리하여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낸 즉, 세월은 일전一轉하여 -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191).

이영구는 현재 의식과 회상된 과거 사이의 불연속성을 다소 마술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옛사랑의 이름을 부르자, 세월이 바뀌었고, 그리하여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영구의 번역본이 각 장의 제목과 해당 장에서 소개된 노래 혹은 시 사이의 긴밀한 연결성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도 보자. 어떤 장의 제목이 그 장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말에서 나오는 구절이라면, 번역에서도 역시 그 제목과 노랫말이 그대로 일치해야만 할 것이다. 비록 의미가 같다고 할지라도 그 언어적 형태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그리하여 형식적 완결성과 어귀 반복의 효과가 감소하면, 제목을 포함하여 그 장 전체에서 발산되는 의미적 완결성과 제목의 암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 번째 장 <노방의 아이>에 나오는 두 개의 시는 주인공 라인하르트가 결국 살게 될 운명을 선견 내지 투사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술집에서 노래하는 집시 처녀가 부르는 노래의 마지막 대목을 보자.

[...]
Sterben, ach sterben
Soll ich allein.
[...] 
죽고 말리라, 아아 죽고 말리라.
오직 홀로서 너를 여의고(221).

이 구절은 ‘홀로이 죽어야만 하리’, 즉 홀로 죽어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홀로 죽어야 하는 외로운 노인 라인하르트의 현재와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죽고 말리라’는 표현이 난데없이 죽음에 대한 결연한 태도를 연상시킨다.

그다음 시는 3번째 행 “Da stand das Kind am Wege”가 장의 제목이기도 한데, 장 제목은 “노방의 아이”로 번역되어 있고, 시구는 “길가에 서서 어린 소녀의”로 다소 혼란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장의 제목과 시구가 호응함으로써 확보되는 형식적 완결성이 전혀 추구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Er wäre fast verirret
Und wusste nicht hinaus;
Da stand das Kind am Wege
Und winkte ihm nach Haus!
길 잃은 나그네가
갈 길 몰라 하였을 때에
길가에 서서 어린 소녀의
가리키는 집에의 길!(203)


2) 홍경호 역의 <임멘 호반>(1973)<호반>(2006)

이 소설의 70년 번역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번역본을 낸 사람은 홍경호다. 1973년 출간된 홍경호의 <호반; 황태자의 첫 사랑>(범우사)에는 <임멘 호반>이 포함되어 있다. 1977년 출간된 홍경호의 <호반; 대학시절>(범우사)에도 1973년과 동일한 <임멘 호반> 번역본이 실려 있다. 그는 2004년, 2006년, 2008년에 <호수> 또는 <호반>이 포함된 3개의 번역물 단행본을 출간했다. 홍경호는 가장 많은 번역본을 낸 만큼, 여러 제목이 혼재할 뿐 아니라, 단행본 제목과 단행본 속의 작품명을 다르게 번역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10개 장의 제목에서도 보이는데, 첫 번째 장과 마지막 장이 동일하게 “Der Alte”임에도 첫 장은 “노인”, 10장은 “만년”으로 굳이 구별해서 번역하고 있다. 홍경호에게서는 장의 제목으로서 “Immensee”를 번역할 때도 이러한 유동성이 보이는데, 작품 제목의 번역에 맞추어 “호반” 혹은 “임멘 호반”으로 번역하지 않고, 장의 제목은 “임멘호”로 번역한다. 물론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번역에 대하여 그는 어떤 설명이나 해명을 따로 하고 있지 않다. 그 외에도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혼용하여 번역하기도 한다(1977, 35; 58).

그런데 2006년 번역본에서 홍경호는 마침내 이전의 여러 번역본에서 보이던 여러 혼란들을 정리, 수정한다. 일단 단행본 제목과 작품명을 <호반>으로 통일시켰고, 현재시제와 과거시제의 무의미한 공존도 정리했다. 그가 계속 고수한 것은 마지막 장의 제목 “만년”과,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는 순간, 즉 의식이동의 ‘문턱’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홍경호는 이 의식이동 부분에서 “방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비쳐 들었다”(2006, 64)라는 단 하나의 문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 현재형으로 번역하고 있다.

네 번째 장의 집시 처녀의 노래는 라인하르트의 외로운 말년의 운명에 대한 예견이기도 한데, 그 노래의 한 대목을 “죽음 뿐, 아아 죽음 뿐 오직 나 혼자 떨어져서”(2006, 60)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llein”을 “ich”에 연결시킨 데서 그치지 않고, “sterben”과도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래의 화자가 ‘혼자서’ 죽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가 ‘오직 죽음만’을 갈구한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마치 죽음을 찬미하는 듯한 뉘앙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3) 강두식 역의 <호반>(1994)

1994년 출간된 강두식의 <호반>(여명출판사)은 편집원칙으로나 번역 전략으로나 다른 번역본에 비해 많은 자유 공간을 허용하고 있다. 우선 책 전체에 걸쳐, 각 장이 시작되는 페이지마다 인상주의 화가나 샤갈 등의 그림이 반 페이지를 차지하도록 편집되어 있고, 때로는 아예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기도 한다.

강두식은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번역자는 원본과 상관없이 새로운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1장은 “노인” 대신 “황혼녁”으로, 2장은 “아이들” 대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3장은 “숲속에서” 대신 “딸기사냥”으로, 4장은 “길가에 아이가 서 있었네” 대신 “쓸쓸한 크리스마스”로, 5장은 “고향에서” 대신 “부활제 휴가”로, 6장은 “편지” 대신 “슬픈 편지”로, 7장은 “임멘 호수” 대신 “낯설은 재회”로, 8장은 “어머니의 뜻이었어요” 대신 “민요에 담긴 진실”로, 9장은 “엘리자베트” 대신 “영원한 이별”로, 10장은 “노인” 대신 “외로운 현실”로 제목이 바뀌어 있다. 새 제목들은 해당 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요약하고 있어, 원문의 제목보다 오히려 더 제목 본래적 기능에 충실해 보인다.

강두식의 다소 과감하게 상황을 압축 정리해 주는 번역의 장점은 “죽음으로 끝나고, 아아 죽으므로 끝나고. 다만 홀로 살아야 하는 이 몸”(138)과 같이 라인하르트의 독신자 운명을 가리키는 노래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라인하르트가 타향에서 부지불식간에 엘리자베트로부터, 또 고향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을 돌아보며 귀향을 떠올리는 시구도 마찬가지다.

“길 헤매다 날은 저물어
어찌할 바 모르고 있을 때
길가에 선 어린 소녀가
살그머니 가리켜 준 나의 귀로“(111)  

강두식은 이렇게 시는 시대로 생생하게 만들어 주고, 새로운 제목으로 장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거나 해석해 주었다. 이로써 시와 그것이 포함되어 있던 장의 제목이 하나의 공통된 문구로 호응하는 원문의 텍스트적 현상으로부터 그의 번역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원문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특히 네 번째와 여덟 번째 장에서 보이는) 시와 장 제목 간 일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두는 번역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던 이영구와 홍경호의 번역본에서도 원문이 추구하는 제목과 본문 속 노래 혹은 시 사이의 텍스트적 동질성의 심미적 효과에 대한 관심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물에 의해 낭독되거나 혹은 노래 되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일 경우, 제목과 본문 사이의 연속성과 내적 완결성은 무시되고 만다. 네 번째 장과 여덟 번째 장은 라인하르트의 방황과 엘리자베트의 사랑의 좌절에 대한 장으로서 감정적 응축과 발산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노래와 시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많은 번역본에서 이 관점이 고려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강두식의 경우도 그러하다.

액자소설의 문턱 즉, 주인공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대목에서도 강두식은 원문의 다소 마술공연을 연상시키는 서술적 전개와는 달리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93)라고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3. 평가와 전망

슈토름의 <임멘 호수>의 번역 70여 년 동안, 번역의 오류도 많이 수정되었고, 작품의 이해도 그만큼 더 깊어졌다. 짧은 분량, 그리고 많은 사회역사적 전제가 필요 없는 주제 때문에 <임멘 호수>의 해석과 번역을 둘러싸고 큰 이견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본 번역 비평에서는 작품 제목, 작품 내 장 제목, 노래의 운명예견적, 운명해석적 기능과 의미, 그리고 액자소설적 시간대 이동 방식을 중심으로 선별된 몇몇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영구(1975): 호수. 삼성출판사.
홍경호(1977): 임멘 호반. 범우사.
홍경호(2006): 호반. 범우사.
강두식(1994): 호반. 여명출판사.

배정희
  • 각주
  1. 임멘제는 스위스의 슈비츠 캔톤의 퀴스나흐트 지역의 한 지명이다(Immensee – Wikipedia). 슈토름의 작품에서 임멘 호수는 독일 남부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임멘 호수는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가 어린 시절 자란 고향 마을 인근 지역이다. 주인공 라인하르트는 첫사랑 엘리자베트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임멘 호숫가의 저택에서 그녀를 재회하고 영원히 작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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