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Blaue Blum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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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AU0020}}의 소설 {{A01}} <!--작품소개-->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노발리스(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의 미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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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푸른 꽃 || 푸른 꽃 || 探求新書 82 || 노봐리스 || 李裕榮 || 1975 || 탐구당 || 9-234 || 편역 || 완역 ||
 
| 2 || 푸른 꽃 || 푸른 꽃 || 探求新書 82 || 노봐리스 || 李裕榮 || 1975 || 탐구당 || 9-23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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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死者들의 노래 || 世界名詩選 || || 노발리스 ||  李永傑 || 1975 || 玄岩社 || 176-180 || 편역 || 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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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파란꽃 || 파란꽃 || 文藝文庫 70 || 노발리스 || 金柱演 || 1978 || 文藝出版社 || 5-226 || 완역 || 완역 ||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1975년 샘터사에서 나온 판본과 동일 내용
 
| 4 || 파란꽃 || 파란꽃 || 文藝文庫 70 || 노발리스 || 金柱演 || 1978 || 文藝出版社 || 5-226 || 완역 || 완역 ||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1975년 샘터사에서 나온 판본과 동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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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파란꽃 || 파란꽃 || 이삭줍기 11 || 노발리스 || 김주연 || 2003 || 열림원 || 8-231 || 완역 || 완역 ||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1975년 샘터사에서 나온 판본과 동일 내용
 
| 11 || 파란꽃 || 파란꽃 || 이삭줍기 11 || 노발리스 || 김주연 || 2003 || 열림원 || 8-231 || 완역 || 완역 ||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1975년 샘터사에서 나온 판본과 동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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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푸른 꽃 || 푸른 꽃 || 세계문학전집 76 || 노발리스 || 김재혁 || 2003 || 민음사 || 7-253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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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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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푸른 꽃’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노발리스의 미완 소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 1802)은 2020년 현재까지 총 여섯 명의 한국인 역자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초역은 1975년 거의 동시에 출간된 김주연의 <파란꽃>(샘터사)과 이유영의 <푸른 꽃>(탐구당)이다. 두 번역본 모두 초판을 찍은 지 40년이 훌쩍 넘었으나 현재까지도 출판사를 바꿔가며 꾸준히 출판되어 독자를 만나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번역이 모두 중세의 전설 속 미네장 가인(歌人)의 이름을 가리키는 원제 대신, 이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die blaue Blume’, 즉 ‘푸른 꽃’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어판(<青い花>, 코마키 다케오 역, 이와나미 문고 1939년)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새로운 제목은, 아무래도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인명이 주는 생경함을 줄이고 낭만주의 문학의 신비하고 시적인 이미지를 훨씬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푸른 꽃’과 ‘파란 꽃’ 중에서는 한국어에서 ‘푸른’이 갖는 보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심상 덕택인지 ‘푸른 꽃’이 살아남아 표준 제목으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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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 새로운 번역이 여러 종 출간되었다. 2003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김재혁의 <푸른 꽃>은 현재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이 되었다. 이외에도 청소년 대상으로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그림 삽화가 들어간 판본(신영환 역, 종이나라 2005/조원규 역, 웅진씽크빅 2012)이 두 종 나온 바 있고, 또 <푸른 꽃을 찾아서>라는 서석남의 번역이 있으며, 그 외에도 작중 내의 동화 중 하나인 <클링스오르의 동화>만 따로 번역되기도 했다. 노발리스(황은미 역), <클링스오어 이야기>, <환상문학 걸작선> 2권, 자음과모음, 2013. (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낭만동화집> 2권, 이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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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엄격함이나 영향력에서 모두 크게 떨어지므로 번역 비평의 대상에서는 제외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김주연, 이유영, 김재혁 이렇게 세 역자의 번역본만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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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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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주연(1975)|1 김주연 역의 <파란꽃>(1975)]]<span id="김주연(1975)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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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문학비평가이자 독문학자인 김주연의 번역 <파란꽃>은 1975년 샘터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 번역은 국내 초역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는 자의식 속에서 독일 문학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한국 독자에게 강조한다. 김주연은 당시의 주먹구구식이었던 번역 출판 상황에 비추어볼 때 놀랍게도 번역의 저본이 되는 판본을 밝히고, 그 판본에 실린 편집자의 주석도 함께 번역해 놓았다. 그는 “골트만 문고판 570번”을 번역의 저본으로 삼았다고 <해설> 말미에 밝혀 놓았으며, 그 판본에서 번역하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도 밝혀놓는 등 번역의 문헌학적 정확성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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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의 번역은 이후 출판사를 옮겨가며(1978년 문예출판사, 2003년 열림원) 꾸준히 출판되었으며 2020년에 표지를 새롭게 단장하여 재출판되었다. 1975년도 판과 1978년도 판은 출판사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한 판본이며, 2003년도 판 역시 일부 문체상의 수정을 거쳐서 고풍스러운 표현들이 보다 현대적으로 수정되고 인명 등의 고유명이 현재의 외국어 표기법에 맞게 수정된 부분이 있으나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해설은 크게 개정되었다. 이전의 해설이 ‘낭만주의 시인’다운 사랑과 죽음을 맞이한 노발리스에 대한 일종의 작가 초상을 그려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면 2003년도 판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대폭 줄이고 노발리스가 당대 받았던 영향들을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데 보다 방점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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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은 다른 역자들과 달리 소설의 제목이자 핵심적인 상징을 ‘파란꽃’이라고 옮겼다. 이 제목은 현재 널리 통용되는 번역인 ‘푸른 꽃’보다 한국어 화자에게 더 낯선 느낌을 줄 수도 있으며, 마테를링크의 유명한 <파랑새>와 함께 어떤 비현실적인 꿈이나 희망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파란 꽃”이 “통일, 용해, 중심의 순간에 붙여진 성스러운 이름”(샘터사 1975, 276)이라고 설명한다. 역자의 추가적인 설명은 없지만, 이러한 어휘 선택이 밝은 희망이나 동경을 나타내는 ‘푸른’ 색의 한국적인 상징론과 구분 짓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추측해볼 수도 있다. ‘파란’은 ‘푸른’에 비해 좀 더 우울과 죽음의 기운을 풍기고, 실제로 서양어에서 ‘파랑’은 그런 의미가 있다. 또한 ‘파란’과 ‘꽃’을 붙여 씀으로써 단순히 청색을 띤 꽃이 아니라 특정한 꽃을 가리키는 느낌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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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색의 번역은 정작 소설에서 중요히 다뤄지는 색채의 상징적 의미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는 측면이 있다. 주인공 하인리히가 꿈속에서 ‘푸른 꽃’을 만나는 핵심적인 장면에서 그는 채도와 명도가 다른 여러 ‘푸른 색’ 자연물에 의해 ‘푸른 꽃’으로 인도된다. 먼저 그는 “짙푸른 바위 Dunkelblaue Felsen”를 만나고, 바라본 하늘은 “검푸르며 schwarzblau”, 그다음에는 “키가 큰 연푸른 꽃 eine hohe lichtblaue Blume”에 매혹되어 드디어 “그 푸른 꽃 die blaue Blume”과 마주한다. 이것은 독일어에서 파란색을 의미하는 “블라우 blau”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푸른 꽃’의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고, 또 그 예언적 의미를 회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김주연은 이것을 “암청색의 바위”, “짙은 파란색의 하늘”, “연초록의 키 큰 꽃 한 송이”, “그 파란꽃”, “널찍한 푸른 깃”(열림원 2020, 17)이라 제각각으로 번역했다. “블라우에 블루메”(푸른 꽃)나 “블뤼테 Blüte” 등 독일어에서는 동일한 두음의 반복으로 운율이 살아나는 구절들을 한국어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반복을 통해 청각적 울림이나 시각적 심상을 만들어내는 표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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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군데군데 오역이 발견되는데 여러 판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오역이 수정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특히 하인리히가 꽃과 낯선 남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이나, 세계의 신비를 잊고 사는 아버지가 하인리히에게 꿈에 대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장면 등 소설의 핵심적인 장면에서 원문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또 8장에서 하인리히와 마틸데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맹세하며 사랑의 성스러움을 설명하는 곳을 보자. “그[무한한 헌신] 속에 사랑이 있는 것이지요. 가장 은밀한, 본래부터 지닌 우리 존재의 신비스러운 흐름이라오.”(열림원 2020, 184) 여기서 “흐름”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어는 “합류 Zusammenfließen”이다. 이유영과 김재혁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그런 헌신 속에서만 사랑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오. 그것이야말로 우리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신비스러운 합류를 이루는 것이오.”(이유영 역, 범우사 2003, 147) “사랑은 헌신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은밀하고 고유한 존재 사이의 신비스러운 융합이거든.”(김재혁 역, 민음사 2003, 172) 두 번역에서는 사랑이 각각으로 고유한 존재들 간에 신비한 합류를 일으킨다는 노발리스가 역설하는 사랑의 정의가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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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유영(1975)| 이유영 역의 <푸른 꽃>(1975)]]<span id="이유영(1975)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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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노발리스 문학으로 학위를 받은(1963년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강대 이유영 교수가 번역한 <푸른 꽃>은 1975년 탐구당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에 저자 이름은 “노봐리스”로 표기되어 있었고,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와 <성곡>(Geistliche Lieder)(이후 <성가>로 제목 수정)도 함께 번역되어 나왔다. 이 역본은 오랫동안 쇄를 거듭하여 나오다가 이후 2003년에 범우사에서 <푸른 꽃(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으며 2020년 현재까지 판매 중이다. 2003년도 판은 새로운 출판사에서 나왔으나 외국어 표기법을 새롭게 한 것을 제외하면 역자의 말이나 해설에 이르기까지 거의 그대로이다. 해설에서는 노발리스의 생애와 문학 전반, 특히 대단히 난해하고 수수께끼 같은 ‘클링스오르의 동화’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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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높은 번역이다. 문단을 원문에 비해 더 쪼개어 놓아 독자로서는 읽기가 편할 수 있으나 자의적으로 문단이 구분되어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한 한국어 독자에게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생략한 곳도 발견된다. 이런 누락이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도 한다. 예컨대 5장에서 하인리히는 자신의 인생을 예언해 놓은 듯한 한 권의 책을 만나고는 깜짝 놀란다. 그는 이 책의 읽을 수 없는 낯선 언어가 대체 무슨 언어냐고 묻는다. 여기서 그는 이것이 프로방스어라는 답을 듣는데, 이유영의 번역에서는 이것을 누락하여 아랍의 세계와 프로방스어, 그리고 로망스 문학 및 중세 문학의 연관성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놓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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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유영의 번역은 작품의 시적인 정취를 독자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데 많은 부분에서 성공한다. <푸른 꽃>은 장르 상 소설이지만, 서사 진행이나 갈등의 심화보다는 예술의 오묘하고 신비한 세계 묘사와 전달에 더 공을 들이는 작품이다. 즉 <푸른 꽃>은 전반적으로 산문적이기보다는 시적이다. 또 노발리스의 문장이 기교를 많이 부리거나 무겁지 않아서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을 준다. 이유영 번역의 많은 곳에서 독자는 이러한 작품의 시적인 세계를 향유할 수 있다. 예컨대 6장에서 시인의 천성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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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유로운 몸의 손님들이며, 그들의 황금 발을 조용히 들여놓을 뿐이다. 그들이 있는 곳이면 저절로 날개가 펴진다.”(범우사 20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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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계는 아직 벙어리고 그의 영혼이나 대화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시인이 가까이 왔다. 사랑스러운 처녀가 손에 닿을 것 같다. 모국어로 현금(弦琴)을 들으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을 통해 수줍은 입술이 열리고, 단조로운 화음은 무한한 멜로디로 펼쳐질 것이다.”(범우사 2003,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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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분에서 역자는 “자유로운 손님” 대신 “자유로운 몸의 손님”이라고 하여 뒤에 나올 “황금 발”과 이미지적 유사성을 더 강화하고 언어적 리듬을 부여한다. 또 두 번째 예문에서도 원래는 “벌써 어느 시인이 사랑스러운 소녀의 손을 잡고 가까이 오고 있다”라는 의미여야 할 문장을 역자는 우선 시인의 각성과 사랑의 시작이라는 내용으로 절반씩 쪼갬으로써 시인의 각성과 사랑의 시작이 동시에 일어나며 동일한 비중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시인이 가까이 왔다”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손에 닿는다”가 아닌 “손에 닿을 것 같다”를 추가하여 시예술만이 아니라 사랑 또한 지금 막 이루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표현한다. 이렇게 번역함으로써 시인의 시심이 막 깨어나려 하는 설레는 순간을 원문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또 언어의 리듬감도 살려낸다. 물론 이러한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겼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볼 때 특정한 표현이나 이미지에 잠재된 시적인 성격을 한국어 문장 안에서 원문보다 일관되게 강조하고 강화하는 “시적 번역 poetische Übersetzung”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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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역자가 소설 앞의 헌시에서 시적 화자가 ‘그대’에게 이끌려 가는 “동화적인 초원 fabelhafte Auen”을 “푸르른 동화”(범우사 2003, 8)로 번역한 부분도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형용사와 명사를 바꾸어 ‘동화적인’은 ‘동화’로, ‘초원’은 ‘푸르른’으로 옮겼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소설 제목 ‘푸른 꽃’과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러한 번역은 가령 “전설의 목초지”(김주연), “환상적인 초원”(김재혁)에 비해 정확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시적 번역’이라 부를 수 있다. 이렇게 이유영은 원문 속에 잠재된 의미를 끌어내어 한국어 문장 안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 독자들에게 무언가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언어의 리듬과 심상 등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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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재혁(2003)| 김재혁 역의 <푸른 꽃>(2003)]]<span id="김재혁(2003)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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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활동하며 릴케 시 번역가로 잘 알려진 고려대 독문과 교수 김재혁이 번역한 <푸른 꽃>은 2003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제76권으로 출판되었다. 이 번역본은 해당 세계문학전집의 탄탄한 인기와 명성에 힘입어 2020년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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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역은 앞의 두 번역과 비교할 때 “작품의 후속 내용에 대한 루드비히 티크의 전언”이 실리지 않은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푸른 꽃>은 작가의 요절로 미완으로 남은바, 책의 구상부터 집필을 옆에서 지켜본 작가의 친구 티크가 이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남은 수고를 편집하여 출판될 수 있었다. 그리고 티크는 미완으로 끝난 2부에 계획된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 난해한 9장의 ‘클링스오르의 동화’에 숨겨진 알레고리가 무엇인지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이런 설명이 없다면 독자는 2부가 시작하자마자 뚝 끊어지는 소설의 중단에 아연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어판에서도 티크의 전언을 뒤에 추가하여 독자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 보통이다. 앞의 두 한국어 번역본도 각각 <소설 계속에 대한 루드비히 티크의 보고>(김주연), <속편續篇에 관한 티크의 보고>(이유영)라는 제목으로 이것을 충실히 번역해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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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김재혁의 번역은 이 세 번역 중에서 가장 나중에 시도된 만큼 원문을 가장 꼼꼼하고 충실하게 옮긴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중요한 표현을 누락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거의 없으며, 그러면서도 직역의 경직된 느낌이 별로 없다. 김재혁은 유려하고 안정적인 한국어 문장으로 원문의 의미를 잘 전달한다. 이유영의 번역이 언어의 시적인 감각을 살리는 데 치중하여 의미를 놓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면 김재혁의 번역은 그런 식의 역자의 자유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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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충실성을 넘어서 원문의 의미를 더욱 잘 부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역자는 이런 기회를 피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하인리히가 고향을 떠나 이제 미지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문턱에 서 있다고 느끼는 장면을 보자. 여기서 노발리스의 중요한 세계관이 드러나는데, 노발리스는 하인리히가 고향을 떠나 타향을 향하는 것이 고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부분은 원문에서는 뒤에 딸린 부연문처럼 되어 있어서 그 의미가 아주 또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서인지 김주연과 이유영의 번역에서는 모두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김재혁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이 진짜 고향인 것처럼 느껴졌다”(민음사 2003, 29)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에서 다소 지나치기 쉬운 구절을 한국어 독자는 놓칠 수 없게끔 강조해 보인다. 이러한 강조는 노발리스가 “철학은 본래 향수인바, 어디서나 집에 있고자 하는 충동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멂과 가까움, 고향과 타향의 역설적인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 작품 자체가 바로 그런 아이러니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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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의 번역이 다른 번역과 보이는 미세한 차이를 조금 더 살펴본다면, 예컨대 이유영의 번역에 비해 김재혁의 번역은 좀더 이지적이다. 이러한 차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은 맨 앞의 <헌시>이다. 시적 화자를 시인으로 이끌어준 ‘그대’이자 ‘연인’에게 헌정한 시의 첫 연에서 그대가 ‘나’ 안에서 일으키는 고귀한 충동의 목적에 해당하는 “tief ins Gemüt der weiten Welt zu schauen”의 번역을 보자. 이유영은 이 부분을 “무한한 '''정(精)'''의 세계를 알고자 하는”으로 옮겼다. 앞뒤 맥락으로 볼 때 이 말은 ‘그대’가 시적 화자를 '''사랑이라는 무한한 감정'''으로 인도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비해 김재혁은 똑같은 구절을 “드넓은 세계의 '''깊은 속'''”(민음사 2003, 7)으로 번역하여 이 구절을 이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고픈 시인의 고귀한 충동'''으로 이해하게끔 한다. 실제로 해설에서 김재혁은 “푸른 꽃”이 “오성이 아닌 마음 또는 정서를 통해 볼 수 있는 꽃”(민음사 2003, 274-5)이자 “인식의 상징”(275)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김재혁의 번역에서 시인의 여인이자 뮤즈가 불러일으키는 “고귀한 충동”은 보다 지성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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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젊은 시인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알레고리로 기능하는 ‘그대’를 어떻게 번역할지의 문제에서 김재혁은 예술의 정신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즉 김재혁은 이 시에서 ‘그대’를 실제 살아 숨 쉬는 여성이 아니라, 사랑의 알레고리라고 해석하여 사랑을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제시한다. 이유영이 “그녀의 풍요한 가슴에서 나는 생生을 힘껏 마셨고”(범우사 2003, 9)라고 옮긴 부분을 김재혁은 “노래의 풍만한 가슴으로 내게 힘을 주었고”라고 옮겼고, 이유영의 번역에서는 “그녀가 천사처럼 내 앞에 어른거린다”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김재혁의 번역에서는 “노래가 천사처럼 훨훨 내게 날아오는 게 보였네”라고 옮겨져 있다. 김재혁의 번역에서는 모두 ‘그대’를 보다 거리를 두고, 추상화해서 이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유영과 김주연이 모두 ‘그대’로 지칭되는 여성이 화자를 직접 돌보아주는 것처럼 표현한다면, 김재혁은 화자를 돌봐주는 것은 “그대의 예지”라고 해석했다는 점에서 시예술의 수호신적인 성격을 훨씬 강조한다. 또 김재혁은 “[...] trank mein Leben”을 음악으로 인해 힘을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비해 이유영은 “생(生)을 힘껏 마셨고”라고 옮겼다. 이렇듯 <헌시>에서 김재혁은 예술이 시인에게 주는 에로스적이고 현세적인 쾌락의 측면을 다소 약화시키고, 예술의 경건함을 강조한다. 예컨대 이유영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앙심에 도취시켜, 가슴은 놀랍게도 즐거움에 뛰놀게 하노라”라고 옮긴 부분을 김재혁은 “기쁠 때나 지치고 힘들 때나/우리 마음을 경건함으로 가득 채워주네”로 옮겼다. 원문에 있던 ‘도취’와 ‘향유’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대신 ‘경건함’이 훨씬 강조되어 있다. 종합하자면 김재혁은 노발리스에게 핵심적인 에로스의 힘을 보다 고상하고 철학적인 힘으로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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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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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김주연, 이유영, 김재혁의 세 번역을 비교하면서 각각의 번역의 특징을 간소하게나마 살펴보았다. 1970년대에 처음 번역된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거의 30년 만에 다시 번역되어 보다 충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번역으로 한국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얼핏 보기에는 소박한 서사를 들려주나 그 안의 상징들이 지닌 비의성이 심오하여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번역하기 어려우며, 또 독자가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당시 노발리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야콥 뵈메 사상과 같은 종교적인 언어들이나 화학, 전기학, 광물학 등의 자연과학적 지식들, 당대에 비로소 재발견되기 시작한 중세 문학에 관한 연구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바,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번역한 주해판이 등장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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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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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1975): 파란꽃. 샘터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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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영(1975): 푸른 꽃. 탐구당.<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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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2003): 푸른 꽃. 민음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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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3일 (토) 04:57 기준 최신판

노발리스(Friedrich Novalis, 1772-1801)의 소설

푸른 꽃 (Blaue Blume)
작가노발리스(Friedrich Novalis)
초판 발행1802
장르소설


작품소개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노발리스(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의 미완 소설이다. 원제는 중세의 전설적인 미네장 가인의 이름에서 따온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이다. 소설은 본래 제1부 <기대>와 제2부 <실현>의 총 2부로 기획되었으나 2부는 1장 일부를 제외하고는 작가의 요절로 인해 완성되지 못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노발리스의 유고를 정리해 <유고 소설>이라는 부제를 붙여 출판했고, 책 마지막에 <이후의 전개에 대한 티크의 안내문>을 실어 작가가 2부에 계획했던 내용을 알려준다. 노발리스는 중세의 미네장 전설을 사실상 당대 괴테의 교양소설과 대조를 이루는 낭만적 예술가소설로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꿈에서 푸른 꽃을 보고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시달리던 젊은 하인리히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 아우구스부르크로 길을 떠난다. 여행 중에 하인리히는 시인의 여러 사명을 배우고,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자신의 사랑, ‘푸른 꽃’을 발견함과 동시에 시인으로서의 운명을 깨닫는다. 소설 전체에 노발리스의 문학관이 잘 드러나 있으며 특히 <클링스오르의 메르헨>이라는 난해한 ‘이야기 속 이야기’의 우의가 세계를 구원하는 시의 힘과 사랑의 승리를 역설한다. 국내 초역은 1975년 김주연이 번역한 <파란꽃>이다(샘터사).


초판 정보

Novalis(1802): Heinrich von Ofterdingen. Ein nachgelassener Roman. Berlin: Realschul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파란꽃 파란꽃 샘터文庫 4 노발리스 金柱演 1975 샘터사 7-242 완역 완역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2 푸른 꽃 푸른 꽃 探求新書 82 노봐리스 李裕榮 1975 탐구당 9-234 편역 완역
死者들의 노래 世界名詩選 노발리스  李永傑 1975 玄岩社 176-180 편역 편역
4 파란꽃 파란꽃 文藝文庫 70 노발리스 金柱演 1978 文藝出版社 5-226 완역 완역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1975년 샘터사에서 나온 판본과 동일 내용
5 나는 세상을 피하진 않았다 孤獨, 이땅 위의 외토리로 서서 노발리스 朴思受 1978 乙酉文化社 72-74 편역 편역
6 은둔자의 노래 獨逸浪漫主義詩 探求新書 175 노발리스(프리이트리히 폰 하이덴베르크) 宋東準 1980 探求堂 32-45 편역 편역 한독대역본; 푸른꽃 중 은둔자의 노래, 수와 소식이 더 이상, 死者들의 노래
7 사자(死者)들의 노래 영원한 나의 애송시 노발리스 안도섭 1985 혜원출판사 285-289 편역 편역
8 더는 수와 형상들이 아닐때 누가 가슴속에 무엇을 지녔는지 미리 안다면 혜원세계시인선 31 노발리스 정은이 1992 혜원출판사 160-161 편역 완역 한독대역본
9 클링소어의 동화 기적의 진실과 환상 속의 현실,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 1 노발리스 이유선 1997 서울대학교출판부 117-149 편역 편역
10 푸른 꽃 푸른 꽃(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3-1 노발리스 이유영 2003 범우사 7-208 편역 완역
11 파란꽃 파란꽃 이삭줍기 11 노발리스 김주연 2003 열림원 8-231 완역 완역 역자는 후기에 저본의 181-188쪽 <단장> 부분을 제외하고 번역하였음을 밝힘; 2부 이후 <소설 계속에 관한 티크의 보고>라는 챕터로 미완에 대한 티크의 말이 실려 있음; 1975년 샘터사에서 나온 판본과 동일 내용
푸른 꽃 푸른 꽃 세계문학전집 76 노발리스 김재혁 2003 민음사 7-253 완역 완역
13 푸른 꽃 푸른 꽃 School library 7 노발리스 신영환 2005 종이나라 5-318 완역 완역
14 클링스오어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 2 노발리스 황은미 2006 이룸 564-615 편역 편역
15 푸른꽃을 찾아서 푸른꽃을 찾아서 노발리스 서석남 2010 SFM연구소 출판부 13-238 완역 완역
16 푸른 꽃 푸른 꽃 웅진 명작 도서관 46 노발리스 조원규 2012 웅진씽크빅 9-124 완역 축역
17 클링스오어 이야기 환상문학 걸작선 2 황은미 2013 자음과모음 555-603 편역 편역
18 파란꽃 위대한 서문 노발리스 김주연 2017 열림원 202-204 편역 편역 세계 명작의 서문 모음집으로 노발리스 부분은 2002년에 열림원 출판사에서 나온 김주연 번역의 파란꽃 역본을 허락 하에 사용했음을 밝히고 있음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국내에서 ‘푸른 꽃’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노발리스의 미완 소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 1802)은 2020년 현재까지 총 여섯 명의 한국인 역자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초역은 1975년 거의 동시에 출간된 김주연의 <파란꽃>(샘터사)과 이유영의 <푸른 꽃>(탐구당)이다. 두 번역본 모두 초판을 찍은 지 40년이 훌쩍 넘었으나 현재까지도 출판사를 바꿔가며 꾸준히 출판되어 독자를 만나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두 번역이 모두 중세의 전설 속 미네장 가인(歌人)의 이름을 가리키는 원제 대신, 이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die blaue Blume’, 즉 ‘푸른 꽃’을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어판(<青い花>, 코마키 다케오 역, 이와나미 문고 1939년)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새로운 제목은, 아무래도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인명이 주는 생경함을 줄이고 낭만주의 문학의 신비하고 시적인 이미지를 훨씬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푸른 꽃’과 ‘파란 꽃’ 중에서는 한국어에서 ‘푸른’이 갖는 보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심상 덕택인지 ‘푸른 꽃’이 살아남아 표준 제목으로 정착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새로운 번역이 여러 종 출간되었다. 2003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김재혁의 <푸른 꽃>은 현재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이 되었다. 이외에도 청소년 대상으로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 그림 삽화가 들어간 판본(신영환 역, 종이나라 2005/조원규 역, 웅진씽크빅 2012)이 두 종 나온 바 있고, 또 <푸른 꽃을 찾아서>라는 서석남의 번역이 있으며, 그 외에도 작중 내의 동화 중 하나인 <클링스오르의 동화>만 따로 번역되기도 했다. 노발리스(황은미 역), <클링스오어 이야기>, <환상문학 걸작선> 2권, 자음과모음, 2013. (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낭만동화집> 2권, 이룸, 2006.) 번역의 엄격함이나 영향력에서 모두 크게 떨어지므로 번역 비평의 대상에서는 제외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김주연, 이유영, 김재혁 이렇게 세 역자의 번역본만을 살펴보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1)1 김주연 역의 <파란꽃>(1975)

저명한 문학비평가이자 독문학자인 김주연의 번역 <파란꽃>은 1975년 샘터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 번역은 국내 초역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는 자의식 속에서 독일 문학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한국 독자에게 강조한다. 김주연은 당시의 주먹구구식이었던 번역 출판 상황에 비추어볼 때 놀랍게도 번역의 저본이 되는 판본을 밝히고, 그 판본에 실린 편집자의 주석도 함께 번역해 놓았다. 그는 “골트만 문고판 570번”을 번역의 저본으로 삼았다고 <해설> 말미에 밝혀 놓았으며, 그 판본에서 번역하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도 밝혀놓는 등 번역의 문헌학적 정확성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김주연의 번역은 이후 출판사를 옮겨가며(1978년 문예출판사, 2003년 열림원) 꾸준히 출판되었으며 2020년에 표지를 새롭게 단장하여 재출판되었다. 1975년도 판과 1978년도 판은 출판사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한 판본이며, 2003년도 판 역시 일부 문체상의 수정을 거쳐서 고풍스러운 표현들이 보다 현대적으로 수정되고 인명 등의 고유명이 현재의 외국어 표기법에 맞게 수정된 부분이 있으나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해설은 크게 개정되었다. 이전의 해설이 ‘낭만주의 시인’다운 사랑과 죽음을 맞이한 노발리스에 대한 일종의 작가 초상을 그려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면 2003년도 판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대폭 줄이고 노발리스가 당대 받았던 영향들을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데 보다 방점이 찍혀 있다.

김주연은 다른 역자들과 달리 소설의 제목이자 핵심적인 상징을 ‘파란꽃’이라고 옮겼다. 이 제목은 현재 널리 통용되는 번역인 ‘푸른 꽃’보다 한국어 화자에게 더 낯선 느낌을 줄 수도 있으며, 마테를링크의 유명한 <파랑새>와 함께 어떤 비현실적인 꿈이나 희망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파란 꽃”이 “통일, 용해, 중심의 순간에 붙여진 성스러운 이름”(샘터사 1975, 276)이라고 설명한다. 역자의 추가적인 설명은 없지만, 이러한 어휘 선택이 밝은 희망이나 동경을 나타내는 ‘푸른’ 색의 한국적인 상징론과 구분 짓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추측해볼 수도 있다. ‘파란’은 ‘푸른’에 비해 좀 더 우울과 죽음의 기운을 풍기고, 실제로 서양어에서 ‘파랑’은 그런 의미가 있다. 또한 ‘파란’과 ‘꽃’을 붙여 씀으로써 단순히 청색을 띤 꽃이 아니라 특정한 꽃을 가리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색의 번역은 정작 소설에서 중요히 다뤄지는 색채의 상징적 의미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는 측면이 있다. 주인공 하인리히가 꿈속에서 ‘푸른 꽃’을 만나는 핵심적인 장면에서 그는 채도와 명도가 다른 여러 ‘푸른 색’ 자연물에 의해 ‘푸른 꽃’으로 인도된다. 먼저 그는 “짙푸른 바위 Dunkelblaue Felsen”를 만나고, 바라본 하늘은 “검푸르며 schwarzblau”, 그다음에는 “키가 큰 연푸른 꽃 eine hohe lichtblaue Blume”에 매혹되어 드디어 “그 푸른 꽃 die blaue Blume”과 마주한다. 이것은 독일어에서 파란색을 의미하는 “블라우 blau”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푸른 꽃’의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고, 또 그 예언적 의미를 회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김주연은 이것을 “암청색의 바위”, “짙은 파란색의 하늘”, “연초록의 키 큰 꽃 한 송이”, “그 파란꽃”, “널찍한 푸른 깃”(열림원 2020, 17)이라 제각각으로 번역했다. “블라우에 블루메”(푸른 꽃)나 “블뤼테 Blüte” 등 독일어에서는 동일한 두음의 반복으로 운율이 살아나는 구절들을 한국어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반복을 통해 청각적 울림이나 시각적 심상을 만들어내는 표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전반적으로 군데군데 오역이 발견되는데 여러 판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오역이 수정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특히 하인리히가 꽃과 낯선 남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이나, 세계의 신비를 잊고 사는 아버지가 하인리히에게 꿈에 대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장면 등 소설의 핵심적인 장면에서 원문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또 8장에서 하인리히와 마틸데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맹세하며 사랑의 성스러움을 설명하는 곳을 보자. “그[무한한 헌신] 속에 사랑이 있는 것이지요. 가장 은밀한, 본래부터 지닌 우리 존재의 신비스러운 흐름이라오.”(열림원 2020, 184) 여기서 “흐름”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어는 “합류 Zusammenfließen”이다. 이유영과 김재혁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그런 헌신 속에서만 사랑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오. 그것이야말로 우리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신비스러운 합류를 이루는 것이오.”(이유영 역, 범우사 2003, 147) “사랑은 헌신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은밀하고 고유한 존재 사이의 신비스러운 융합이거든.”(김재혁 역, 민음사 2003, 172) 두 번역에서는 사랑이 각각으로 고유한 존재들 간에 신비한 합류를 일으킨다는 노발리스가 역설하는 사랑의 정의가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2) 이유영 역의 <푸른 꽃>(1975)

일찍이 노발리스 문학으로 학위를 받은(1963년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강대 이유영 교수가 번역한 <푸른 꽃>은 1975년 탐구당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에 저자 이름은 “노봐리스”로 표기되어 있었고,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와 <성곡>(Geistliche Lieder)(이후 <성가>로 제목 수정)도 함께 번역되어 나왔다. 이 역본은 오랫동안 쇄를 거듭하여 나오다가 이후 2003년에 범우사에서 <푸른 꽃(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으며 2020년 현재까지 판매 중이다. 2003년도 판은 새로운 출판사에서 나왔으나 외국어 표기법을 새롭게 한 것을 제외하면 역자의 말이나 해설에 이르기까지 거의 그대로이다. 해설에서는 노발리스의 생애와 문학 전반, 특히 대단히 난해하고 수수께끼 같은 ‘클링스오르의 동화’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높은 번역이다. 문단을 원문에 비해 더 쪼개어 놓아 독자로서는 읽기가 편할 수 있으나 자의적으로 문단이 구분되어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한 한국어 독자에게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생략한 곳도 발견된다. 이런 누락이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도 한다. 예컨대 5장에서 하인리히는 자신의 인생을 예언해 놓은 듯한 한 권의 책을 만나고는 깜짝 놀란다. 그는 이 책의 읽을 수 없는 낯선 언어가 대체 무슨 언어냐고 묻는다. 여기서 그는 이것이 프로방스어라는 답을 듣는데, 이유영의 번역에서는 이것을 누락하여 아랍의 세계와 프로방스어, 그리고 로망스 문학 및 중세 문학의 연관성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놓치게 한다.

그럼에도 이유영의 번역은 작품의 시적인 정취를 독자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데 많은 부분에서 성공한다. <푸른 꽃>은 장르 상 소설이지만, 서사 진행이나 갈등의 심화보다는 예술의 오묘하고 신비한 세계 묘사와 전달에 더 공을 들이는 작품이다. 즉 <푸른 꽃>은 전반적으로 산문적이기보다는 시적이다. 또 노발리스의 문장이 기교를 많이 부리거나 무겁지 않아서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을 준다. 이유영 번역의 많은 곳에서 독자는 이러한 작품의 시적인 세계를 향유할 수 있다. 예컨대 6장에서 시인의 천성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보자.


“그들은 자유로운 몸의 손님들이며, 그들의 황금 발을 조용히 들여놓을 뿐이다. 그들이 있는 곳이면 저절로 날개가 펴진다.”(범우사 2003, 112-3)


“그러나 세계는 아직 벙어리고 그의 영혼이나 대화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시인이 가까이 왔다. 사랑스러운 처녀가 손에 닿을 것 같다. 모국어로 현금(弦琴)을 들으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을 통해 수줍은 입술이 열리고, 단조로운 화음은 무한한 멜로디로 펼쳐질 것이다.”(범우사 2003, 113) 


첫 번째 부분에서 역자는 “자유로운 손님” 대신 “자유로운 몸의 손님”이라고 하여 뒤에 나올 “황금 발”과 이미지적 유사성을 더 강화하고 언어적 리듬을 부여한다. 또 두 번째 예문에서도 원래는 “벌써 어느 시인이 사랑스러운 소녀의 손을 잡고 가까이 오고 있다”라는 의미여야 할 문장을 역자는 우선 시인의 각성과 사랑의 시작이라는 내용으로 절반씩 쪼갬으로써 시인의 각성과 사랑의 시작이 동시에 일어나며 동일한 비중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시인이 가까이 왔다”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손에 닿는다”가 아닌 “손에 닿을 것 같다”를 추가하여 시예술만이 아니라 사랑 또한 지금 막 이루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표현한다. 이렇게 번역함으로써 시인의 시심이 막 깨어나려 하는 설레는 순간을 원문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또 언어의 리듬감도 살려낸다. 물론 이러한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겼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볼 때 특정한 표현이나 이미지에 잠재된 시적인 성격을 한국어 문장 안에서 원문보다 일관되게 강조하고 강화하는 “시적 번역 poetische Übersetzung”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역자가 소설 앞의 헌시에서 시적 화자가 ‘그대’에게 이끌려 가는 “동화적인 초원 fabelhafte Auen”을 “푸르른 동화”(범우사 2003, 8)로 번역한 부분도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형용사와 명사를 바꾸어 ‘동화적인’은 ‘동화’로, ‘초원’은 ‘푸르른’으로 옮겼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소설 제목 ‘푸른 꽃’과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러한 번역은 가령 “전설의 목초지”(김주연), “환상적인 초원”(김재혁)에 비해 정확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 ‘시적 번역’이라 부를 수 있다. 이렇게 이유영은 원문 속에 잠재된 의미를 끌어내어 한국어 문장 안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 독자들에게 무언가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언어의 리듬과 심상 등을 활용하여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3) 김재혁 역의 <푸른 꽃>(2003)

시인으로 활동하며 릴케 시 번역가로 잘 알려진 고려대 독문과 교수 김재혁이 번역한 <푸른 꽃>은 2003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제76권으로 출판되었다. 이 번역본은 해당 세계문학전집의 탄탄한 인기와 명성에 힘입어 2020년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다.

이 번역은 앞의 두 번역과 비교할 때 “작품의 후속 내용에 대한 루드비히 티크의 전언”이 실리지 않은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푸른 꽃>은 작가의 요절로 미완으로 남은바, 책의 구상부터 집필을 옆에서 지켜본 작가의 친구 티크가 이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남은 수고를 편집하여 출판될 수 있었다. 그리고 티크는 미완으로 끝난 2부에 계획된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 난해한 9장의 ‘클링스오르의 동화’에 숨겨진 알레고리가 무엇인지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이런 설명이 없다면 독자는 2부가 시작하자마자 뚝 끊어지는 소설의 중단에 아연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어판에서도 티크의 전언을 뒤에 추가하여 독자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 보통이다. 앞의 두 한국어 번역본도 각각 <소설 계속에 대한 루드비히 티크의 보고>(김주연), <속편續篇에 관한 티크의 보고>(이유영)라는 제목으로 이것을 충실히 번역해 싣고 있다.

그럼에도 김재혁의 번역은 이 세 번역 중에서 가장 나중에 시도된 만큼 원문을 가장 꼼꼼하고 충실하게 옮긴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중요한 표현을 누락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거의 없으며, 그러면서도 직역의 경직된 느낌이 별로 없다. 김재혁은 유려하고 안정적인 한국어 문장으로 원문의 의미를 잘 전달한다. 이유영의 번역이 언어의 시적인 감각을 살리는 데 치중하여 의미를 놓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면 김재혁의 번역은 그런 식의 역자의 자유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충실성을 넘어서 원문의 의미를 더욱 잘 부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역자는 이런 기회를 피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하인리히가 고향을 떠나 이제 미지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문턱에 서 있다고 느끼는 장면을 보자. 여기서 노발리스의 중요한 세계관이 드러나는데, 노발리스는 하인리히가 고향을 떠나 타향을 향하는 것이 고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 부분은 원문에서는 뒤에 딸린 부연문처럼 되어 있어서 그 의미가 아주 또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서인지 김주연과 이유영의 번역에서는 모두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김재혁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이 진짜 고향인 것처럼 느껴졌다”(민음사 2003, 29)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에서 다소 지나치기 쉬운 구절을 한국어 독자는 놓칠 수 없게끔 강조해 보인다. 이러한 강조는 노발리스가 “철학은 본래 향수인바, 어디서나 집에 있고자 하는 충동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멂과 가까움, 고향과 타향의 역설적인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 작품 자체가 바로 그런 아이러니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김재혁의 번역이 다른 번역과 보이는 미세한 차이를 조금 더 살펴본다면, 예컨대 이유영의 번역에 비해 김재혁의 번역은 좀더 이지적이다. 이러한 차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은 맨 앞의 <헌시>이다. 시적 화자를 시인으로 이끌어준 ‘그대’이자 ‘연인’에게 헌정한 시의 첫 연에서 그대가 ‘나’ 안에서 일으키는 고귀한 충동의 목적에 해당하는 “tief ins Gemüt der weiten Welt zu schauen”의 번역을 보자. 이유영은 이 부분을 “무한한 정(精)의 세계를 알고자 하는”으로 옮겼다. 앞뒤 맥락으로 볼 때 이 말은 ‘그대’가 시적 화자를 사랑이라는 무한한 감정으로 인도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비해 김재혁은 똑같은 구절을 “드넓은 세계의 깊은 속”(민음사 2003, 7)으로 번역하여 이 구절을 이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고픈 시인의 고귀한 충동으로 이해하게끔 한다. 실제로 해설에서 김재혁은 “푸른 꽃”이 “오성이 아닌 마음 또는 정서를 통해 볼 수 있는 꽃”(민음사 2003, 274-5)이자 “인식의 상징”(275)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김재혁의 번역에서 시인의 여인이자 뮤즈가 불러일으키는 “고귀한 충동”은 보다 지성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젊은 시인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알레고리로 기능하는 ‘그대’를 어떻게 번역할지의 문제에서 김재혁은 예술의 정신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즉 김재혁은 이 시에서 ‘그대’를 실제 살아 숨 쉬는 여성이 아니라, 사랑의 알레고리라고 해석하여 사랑을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제시한다. 이유영이 “그녀의 풍요한 가슴에서 나는 생生을 힘껏 마셨고”(범우사 2003, 9)라고 옮긴 부분을 김재혁은 “노래의 풍만한 가슴으로 내게 힘을 주었고”라고 옮겼고, 이유영의 번역에서는 “그녀가 천사처럼 내 앞에 어른거린다”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김재혁의 번역에서는 “노래가 천사처럼 훨훨 내게 날아오는 게 보였네”라고 옮겨져 있다. 김재혁의 번역에서는 모두 ‘그대’를 보다 거리를 두고, 추상화해서 이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유영과 김주연이 모두 ‘그대’로 지칭되는 여성이 화자를 직접 돌보아주는 것처럼 표현한다면, 김재혁은 화자를 돌봐주는 것은 “그대의 예지”라고 해석했다는 점에서 시예술의 수호신적인 성격을 훨씬 강조한다. 또 김재혁은 “[...] trank mein Leben”을 음악으로 인해 힘을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비해 이유영은 “생(生)을 힘껏 마셨고”라고 옮겼다. 이렇듯 <헌시>에서 김재혁은 예술이 시인에게 주는 에로스적이고 현세적인 쾌락의 측면을 다소 약화시키고, 예술의 경건함을 강조한다. 예컨대 이유영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앙심에 도취시켜, 가슴은 놀랍게도 즐거움에 뛰놀게 하노라”라고 옮긴 부분을 김재혁은 “기쁠 때나 지치고 힘들 때나/우리 마음을 경건함으로 가득 채워주네”로 옮겼다. 원문에 있던 ‘도취’와 ‘향유’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대신 ‘경건함’이 훨씬 강조되어 있다. 종합하자면 김재혁은 노발리스에게 핵심적인 에로스의 힘을 보다 고상하고 철학적인 힘으로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3. 평가와 전망

지금까지 김주연, 이유영, 김재혁의 세 번역을 비교하면서 각각의 번역의 특징을 간소하게나마 살펴보았다. 1970년대에 처음 번역된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거의 30년 만에 다시 번역되어 보다 충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번역으로 한국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얼핏 보기에는 소박한 서사를 들려주나 그 안의 상징들이 지닌 비의성이 심오하여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번역하기 어려우며, 또 독자가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당시 노발리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야콥 뵈메 사상과 같은 종교적인 언어들이나 화학, 전기학, 광물학 등의 자연과학적 지식들, 당대에 비로소 재발견되기 시작한 중세 문학에 관한 연구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바,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번역한 주해판이 등장하기를 희망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김주연(1975): 파란꽃. 샘터사.
이유영(1975): 푸른 꽃. 탐구당.
김재혁(2003): 푸른 꽃. 민음사.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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