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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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0023}}의 편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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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br>(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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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1. 번역 현황 및 개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 사후인 1929년에 출간된 편지 모음집으로 1903년에서 1908년 사이에 카푸스라는 젊은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편의 편지를 담고 있다. 10편의 편지에서 릴케는 사랑, 성, 글쓰기, 창조적 영감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이 편지 모음집은 국내에서는 1972년 홍경호가 처음 완역하여 범우사에서 출판했다. 이후 2020년 강민경의 번역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번역됐다. 홍경호의 번역은 1975년에 범조사에서 다시 출간되고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과 2002년에 재출간된다. 같은 출판사에서 박환덕의 번역이 세계단편문학전집 제30권 <슈니쯜러 단편집·릴케 단편집>에 실렸다. 십여년의 공백이 지난 1987년에 강두식의 번역(중앙문화사)이 나오고 1990년에는 서인석의 번역(명지출판사)이 출간된다. 이후 릴케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 이루어지는데, 김재혁과 안문영의 번역이 여기에 속한다. 1998년에 출판사 오늘의 선택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2001년에 문학과의식에서, 2006년에는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재출간되는데 1998년 번역의 개정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안문영의 번역은 2008년에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릴케의 편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에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수록되었다. 전문 번역가의 번역도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2012년에는 기파랑에서 단행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 수록된 박정미의 번역이 포함된다. 2014년에 소울메이트에서 전문 번역가 김세나의 번역이 출간되는데, 이 번역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홍경호의 번역을 거의 그대로 베낀 표절 수준의 번역이다. 이후에도 2016년에 삼한출판사에서 이옥용의 번역이 나오고, 2018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송영택의 번역이 출간된다. 가장 최근의 번역은 2020년에 디자인이음에서 나온 강민경의 번역이다. 이 편지 집의 번역본은 종이책 출판 후 바로 이어서 eBook으로 후속 출판된 경우가 많다. 홍경호의 eBook은 종이책 출판 30여 년 뒤인 2006년에 비로소 나왔지만, 김세나와 송영택은 같은 해에 나왔고, 박정미는 다소 늦은 2022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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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 사후인 1929년에 출간된 편지 모음집으로 1903년에서 1908년 사이에 카푸스라는 젊은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편의 편지를 담고 있다. 10편의 편지에서 릴케는 사랑, 성, 글쓰기, 창조적 영감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이 편지 모음집은 국내에서는 1972년 홍경호가 처음 완역하여 범우사에서 출판했다. 이후 2020년 강민경의 번역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번역됐다. 홍경호의 번역은 1975년에 범조사에서 다시 출간되고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과 2002년에 재출간된다. 같은 출판사에서 박환덕의 번역이 세계단편문학전집 제30권 <슈니쯜러 단편집·릴케 단편집>에 실렸다. 십여년의 공백이 지난 1987년에 강두식의 번역(중앙문화사)이 나오고 1990년에는 서인석의 번역(명지출판사)이 출간된다. 이후 릴케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 이루어지는데, 김재혁과 안문영의 번역이 여기에 속한다. 1998년에 출판사 오늘의 선택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2001년에 문학과의식에서, 2006년에는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재출간되는데 1998년 번역의 개정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안문영의 번역은 2008년에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릴케의 편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에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수록되었다. 전문 번역가의 번역도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2012년에는 기파랑에서 단행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 수록된 박정미의 번역이 포함된다. 2014년에 소울메이트에서 전문 번역가 김세나의 번역이 출간되는데, 이 번역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홍경호의 번역을 거의 그대로 베낀 표절 수준의 번역이다. 이후에도 2016년에 삼한출판사에서 이옥용의 번역이 나오고, 2018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송영택의 번역이 출간된다. 가장 최근의 번역은 2020년에 디자인이음에서 나온 강민경의 번역이다. 이 편지 집의 번역본은 종이책 출판 후 바로 이어서 eBook으로 후속 출판된 경우가 많다. 홍경호의 eBook은 종이책 출판 30여 년 뒤인 2006년에 비로소 나왔지만, 김세나와 송영택은 같은 해에 나왔고, 박정미는 다소 늦은 2022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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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재혁(2006)| 김재혁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06)]]<span id="김재혁(2006)R" />'''
 
1)'''[[#김재혁(2006)| 김재혁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06)]]<span id="김재혁(2006)R" />'''
  
김재혁이 1998년에 출간한 번역과 2006년의 번역<ref>본문에서는 2006년 판에서 인용함.</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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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이 1998년에 출간한 번역과 2006년의 번역<ref>본문에서는 2006년 판에서 인용함.</ref>을 비교해보면 드물게 서술 어미를 바꾸는 정도의 수정만 보일 뿐 두 번역은 대체로 같다. 다만 1998년의 번역은 독일 인젤(Insel) 출판사에서 나온 원본<ref>Rainer Maria Rilke(1956):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Wiesbaden: Insel. 본문에서 인용 시에는 해당 쪽수를 괄호 안에 숫자로만 표기함.</ref>의 문단 나누기를 그대로 따르지만, 2006년의 번역은 원본과 다르게 임의로 문단을 나누고 있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김재혁은 대체로 큰 오역 없이 가독성 있는 번역을 보여주고 원문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는 번역을 제공하는 편이다. 1903년 7월 16일에 보낸 6번째 편지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예로 들 수 있다. “...wenn Sie ahnen, dass Christus <ins>getäuscht wordenist</ins> von seiner Sehnsucht und Muhammed betrogen von seinem Stolze.”(32) 김재혁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그리움에 의해 <ins>착각에 빠진 것이고</ins>, 또 마호메트는 그 자신의 자만심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임을 당신이 짐작하신다면.”(61) ‘그리스도가 착각에 빠진 것’이라는 표현은 제도화된 기독교 교회에서 전파된 예수 이미지와는 배치되는 릴케의 관점을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김재혁의 번역을 1972년에 나온 홍경호의 번역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홍경호는, “그리스도는 그의 동경으로, 마호멧은 그의 오만 때문에 실망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짐작하신다면”(홍경호, 48)이라고 옮기기 때문이다. 홍경호는 그리스도에 관한 서술 ‘getäuscht’와 마호메트에 관한 서술 ‘betrogen’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실망하다’라는 다른 표현으로 대체한다. 김재혁의 번역이 낯선 의미 연관을 그 자체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홍경호의 번역은 그것을 차단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낯선 표현방식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다음 문장의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mit allem, was wir allein, ohne Teilnehmer und Anhänger tun, <ins>beginnen wir Ihn</ins>, den wir nicht erleben werden, so wenig unsere Vorfahren uns erleben konnten.”에서 김재혁은 밑줄 친 부분을 “우리는 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로 옮기고 있다. 즉 ‘신’이라는 목적어와 ‘시작하다’라는 술어의 연결은 의미론적으로 생경하지만, 김재혁은 어떠한 첨가 없이 문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는 ‘신을 짓기 시작하다’로 옮기면서 원문에는 없는 ‘짓는다’라는 어휘를 첨가한 다른 번역들과 구분된다. 김재혁은 원문에서 눈에 띄는 낯선 것에 대해서는 가감 없는 문자적 번역을 제시하는 데 반해, 일반적으로는 종종 원문에 없는 표현을 첨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Leben Sie jetzt die Fragen”(21)을, “이제부터 당신의 <ins>궁금한</ins>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40)로, “Und werden Sie nicht irre an der Vielheit der Namen und an der Kompliziertheit der Fälle.”(23)를, “그리고 <ins>터무니없이</ins> 다양한 이름들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들 때문에 정신의 갈피를 잃지 마십시오.”(44)로 번역하는데, 밑줄 친 부분처럼 원문에 없는 표현이 번역에서 첨가되는 경우가 많다.
{{각주}} 을 비교해보면 드물게 서술 어미를 바꾸는 정도의 수정만 보일 뿐 두 번역은 대체로 같다. 다만 1998년의 번역은 독일 인젤(Insel) 출판사에서 나온 원본<ref>Rainer Maria Rilke(1956):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Wiesbaden: Insel. 본문에서 인용 시에는 해당 쪽수를 괄호 안에 숫자로만 표기함.</ref>
 
{{각주}} 의 문단 나누기를 그대로 따르지만, 2006년의 번역은 원본과 다르게 임의로 문단을 나누고 있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김재혁은 대체로 큰 오역 없이 가독성 있는 번역을 보여주고 원문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는 번역을 제공하는 편이다. 1903년 7월 16일에 보낸 6번째 편지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예로 들 수 있다. “...wenn Sie ahnen, dass Christus getäuscht wordenist von seiner Sehnsucht und Muhammed betrogen von seinem Stolze.”(32) 김재혁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그리움에 의해 착각에 빠진 것이고, 또 마호메트는 그 자신의 자만심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임을 당신이 짐작하신다면.”(61) ‘그리스도가 착각에 빠진 것’이라는 표현은 제도화된 기독교 교회에서 전파된 예수 이미지와는 배치되는 릴케의 관점을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김재혁의 번역을 1972년에 나온 홍경호의 번역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홍경호는, “그리스도는 그의 동경으로, 마호멧은 그의 오만 때문에 실망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짐작하신다면”(홍경호, 48)이라고 옮기기 때문이다. 홍경호는 그리스도에 관한 서술 ‘getäuscht’와 마호메트에 관한 서술 ‘betrogen’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실망하다’라는 다른 표현으로 대체한다. 김재혁의 번역이 낯선 의미 연관을 그 자체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홍경호의 번역은 그것을 차단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낯선 표현방식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다음 문장의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mit allem, was wir allein, ohne Teilnehmer und Anhänger tun, beginnen wir Ihn, den wir nicht erleben werden, so wenig unsere Vorfahren uns erleben konnten.”에서 김재혁은 밑줄 친 부분을 “우리는 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로 옮기고 있다. 즉 ‘신’이라는 목적어와 ‘시작하다’라는 술어의 연결은 의미론적으로 생경하지만, 김재혁은 어떠한 첨가 없이 문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는 ‘신을 짓기 시작하다’로 옮기면서 원문에는 없는 ‘짓는다’라는 어휘를 첨가한 다른 번역들과 구분된다. 김재혁은 원문에서 눈에 띄는 낯선 것에 대해서는 가감 없는 문자적 번역을 제시하는 데 반해, 일반적으로는 종종 원문에 없는 표현을 첨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Leben Sie jetzt die Fragen”(21)을, “이
 
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40)로, “Und werden Sie nicht irre an der Vielheit der Namen und an der Kompliziertheit der Fälle.”(23)를, “그리고 터무니없이 다양한 이름들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들 때문에 정신의 갈피를 잃지 마십시오.”(44)로 번역하는데, 밑줄 친 부분처럼 원문에 없는 표현이 번역에서 첨가되는 경우가 많다.
 
 
    
 
    
  
 
2)'''[[#안문영(2008)| 안문영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08)]]<span id="안문영(2008)R" />'''
 
2)'''[[#안문영(2008)| 안문영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08)]]<span id="안문영(2008)R" />'''
  
안문영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의역보다는 직역을 보여준다. 문장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충실하게 따르거나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선호하거나 원문의 문장 요소에 일대일 대응하기도 하는 데서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문영은 “schlecht ist, daß fast alle diese Erfahrung mißbrauchen und vergeuden und sie als Reiz an die müden Stellen ihres Lebens setzen und als Zerstreuung statt als Sammlung zu Höhepunkten.”(22)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나쁜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험을 오용하고 남용해, 그것을 하나의 자극이나 심심풀이로 그들의 삶의 피곤한 자리에 갖다 놓을 뿐, 정점을 향한 집중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역은 송영택의 번역(“인생에 지쳤을 때의 오락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송영택, 36)나 김재혁의 번역(“자신들의 삶의 따분한 곳을 긁어줄 자극 정도로나 생각하고....”(김재혁, 41)와 비교된다. 이 밖에도 “Haß derer, die sich stumm und mürrisch in die nüchterne Pflicht gefunden haben”(30)을 “말없이 무뚝뚝하게 무미건조한 의무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증오”(38)라고 한 안문영의 직역은, 같은 구절을 “따분한 의무에 얽매여 불만으로 입이 부르튼 자들의 증오심”(김재혁, 58)이라고 옮긴 김재혁의 의역과 비교된다. 기독교에 대한 릴케의 견해가 깔린 다음 문장에 대한 번역에서 안문영은 낯선 것을 수용하는 데 있어 김재혁보다 더 개방적이다. “denken Sie, daß das wenigste, was wir tun können, ist, Ihm das Werden nicht schwerer zu machen, als die Erde es dem Frühling macht, wenn erkommen will.”(33) 안문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마치 봄이 오려고 할 때 대지가 그 봄에게 해주듯이, 그분의 생성을 더 어렵게 만들어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한다. 이와 다르게 김재혁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지가 찾아볼 봄을 위해 준비하듯 그분의 도래를 조금이라고 도와드리는 데 있음을 명심하십시오.”(63)라고 번역한다. 안문영은 ‘신의 생성’이라는 낯선 관념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데 비해, 김재혁은 낯선 관념을 피해 ‘Werden’의 등가어 ‘생성’을 ‘도래’라는 다른 어휘로 대체한다. 낯선 것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던 김재혁이 유독 여기서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만큼 낯섦의 충격의 정도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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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영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의역보다는 직역을 보여준다. 문장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충실하게 따르거나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선호하거나 원문의 문장 요소에 일대일 대응하기도 하는 데서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문영은 “schlecht ist, daß fast alle diese Erfahrung mißbrauchen und vergeuden und sie als Reiz <ins>an die müden Stellen ihres Lebens setzen</ins> und als Zerstreuung statt als Sammlung zu Höhepunkten.”(22)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나쁜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험을 오용하고 남용해, 그것을 하나의 자극이나 심심풀이로 <ins>그들의 삶의 피곤한 자리에 갖다 놓을 뿐</ins>, 정점을 향한 집중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역은 송영택의 번역(<ins>“인생에 지쳤을 때의 오락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ins>(송영택, 36)나 김재혁의 번역(<ins>“자신들의 삶의 따분한 곳을 긁어줄 자극 정도로나 생각하고....”</ins>(김재혁, 41)와 비교된다. 이 밖에도 “Haß derer, die sich stumm und mürrisch in die nüchterne Pflicht gefunden haben”(30)을 “말없이 무뚝뚝하게 무미건조한 의무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증오”(38)라고 한 안문영의 직역은, 같은 구절을 “따분한 의무에 얽매여 불만으로 입이 부르튼 자들의 증오심”(김재혁, 58)이라고 옮긴 김재혁의 의역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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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릴케의 견해가 깔린 다음 문장에 대한 번역에서 안문영은 낯선 것을 수용하는 데 있어 김재혁보다 더 개방적이다. “denken Sie, daß das wenigste, was wir tun können, ist, Ihm <ins>das Werden</ins> nicht schwerer zu machen, als die Erde es dem Frühling macht, wenn erkommen will.”(33) 안문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마치 봄이 오려고 할 때 대지가 그 봄에게 해주듯이, 그분의 <ins>생성</ins>을 더 어렵게 만들어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한다. 이와 다르게 김재혁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지가 찾아볼 봄을 위해 준비하듯 그분의 <ins>도래</ins>를 조금이라고 도와드리는 데 있음을 명심하십시오.”(63)라고 번역한다. 안문영은 ‘신의 생성’이라는 낯선 관념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데 비해, 김재혁은 낯선 관념을 피해 ‘Werden’의 등가어 ‘생성’을 ‘도래’라는 다른 어휘로 대체한다. 낯선 것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던 김재혁이 유독 여기서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만큼 낯섦의 충격의 정도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3)'''[[#박정미(2012)| 박정미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2)]]<span id="박정미(2012)R" />'''
 
3)'''[[#박정미(2012)| 박정미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2)]]<span id="박정미(2012)R" />'''
  
박정미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묶어서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박정미는 각 편지의 본문에서 핵심적으로 생각되는 문장을 뽑아 해당 편지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편지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십시오’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박정미의 번역은 대체로 원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준다. 또한 다음 문장의 번역처럼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성공한 경우도 있다. 박정미는, “sein Genuß ist nur deshalb sounbeschreiblich schön und reich, weil er voll ererbter Erinnerungen istaus Zeugen und Gebären von Millionen.”(23)에서 밑줄 친 부분을 “수백만의 탄생을 거치면서 물려받은 기억”(박정미, 45)으로 옮기면서 ‘aus Zeugen’에서 전치사 ‘aus’로 시작되는 구절을 ‘ererben 물려받는다’의 과거분사형 ‘ererbt’를 수식하는 부사구로 이해함으로써 원문의 수식 구조에 부합하는 번역을 제시한다. 이는 “수백만의 생식과 분만의 기억”(송영택, 38), “수백만의 잉태와 분만의 기억들”(김재혁, 43)이라는 번역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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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묶어서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박정미는 각 편지의 본문에서 핵심적으로 생각되는 문장을 뽑아 해당 편지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편지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십시오’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박정미의 번역은 대체로 원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준다. 또한 다음 문장의 번역처럼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성공한 경우도 있다. 박정미는, “sein Genuß ist nur deshalb sounbeschreiblich schön und reich, weil er voll ererbter Erinnerungen ist <ins>aus Zeugen und Gebären von Millionen.”</ins>(23)에서 밑줄 친 부분을 “수백만의 탄생을 거치면서 물려받은 기억”(박정미, 45)으로 옮기면서 ‘aus Zeugen’에서 전치사 ‘aus’로 시작되는 구절을 ‘ererben 물려받는다’의 과거분사형 ‘ererbt’를 수식하는 부사구로 이해함으로써 원문의 수식 구조에 부합하는 번역을 제시한다. 이는 “수백만의 생식과 분만의 기억”(송영택, 38), “수백만의 잉태와 분만의 기억들”(김재혁, 43)이라는 번역의 오
 
류를 시정한 것이다.  
 
류를 시정한 것이다.  
  
박정미는 문장 요소 간 연결이 우리말에서 의미상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 의역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Und es handelt sich darum, alles zu leben. Leben Sie jetzt die Fragen.”(21)을, “그리고 무엇이든지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의문을 가져 보십시오.“(41-42)로 옮긴 번역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번역은,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송영택, 35)라는 직역이나,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김재혁, 40)라고 한 의역과 비교된다. 이 밖에도 “beginnen wir Ihn, den wir nicht erleben werden, so wenig unsere Vorfahren uns erleben konnten.”(33)을, “우리는 조상들이 우리를 체험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체험하지 못할 신을 세우기 시작합니다.”(64)로 번역하면서 “신”과 “시작하다‘의 사이에 원문에는 없는 ’세우기‘라는 표현을 첨가한다. 다음 번역도 의미의 축소 혹은 변조를 보여주는 예에 속한다. “Aber im demselben Maße, in dem wir beginnen, als einzelne das Leben zu versuchen”(38). 박정미는 이를 “그러나 우리가 개개인으로서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75)으로 번역하는데, ‘시도하다’는뜻을 지닌 ‘versuchen’을 ‘살다’라는 평이한 어휘로 대체한다. “Dort werde ich... mich freuen an der großen Stille...”(28)를 “나는 그곳에서...적막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54)로 번역하면서 밑줄 친 구절에 나오는 ‘groß 거대한, 큰’을 빠뜨린다. 이는 “위대한 고요”(김재혁, 53)라고 한 김재혁의 번역이나 “커다란 정적”(송영택, 44)이라고 한 송영택의 번역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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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는 문장 요소 간 연결이 우리말에서 의미상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 의역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Und es handelt sich darum, <ins>alles zu leben</ins>. Leben Sie jetzt die Fragen.”(21)을, “그리고 <ins>무엇이든지 지속하는 게</ins>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의문을 가져 보십시오.“(41-42)로 옮긴 번역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번역은,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송영택, 35)라는 직역이나,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김재혁, 40)라고 한 의역과 비교된다. 이 밖에도 “beginnen wir Ihn, den wir nicht erleben werden, so wenig unsere Vorfahren uns erleben konnten.”(33)을, “우리는 조상들이 우리를 체험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체험하지 못할 신을 세우기 시작합니다.”(64)로 번역하면서 “신”과 “시작하다‘의 사이에 원문에는 없는 ’세우기‘라는 표현을 첨가한다. 다음 번역도 의미의 축소 혹은 변조를 보여주는 예에 속한다. “Aber im demselben Maße, in dem wir beginnen, als einzelne das Leben zu versuchen”(38). 박정미는 이를 “그러나 우리가 개개인으로서 <ins>삶을 살기</ins> 시작한다면”(75)으로 번역하는데, ‘시도하다’는뜻을 지닌 ‘versuchen’을 ‘살다’라는 평이한 어휘로 대체한다. “Dort werde ich... mich freuen an <ins>der großen Stille</ins>...”(28)를 “나는 그곳에서...<ins>적막함</ins>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54)로 번역하면서 밑줄 친 구절에 나오는 ‘groß 거대한, 큰’을 빠뜨린다. 이는 “위대한 고요”(김재혁, 53)라고 한 김재혁의 번역이나 “커다란 정적”(송영택, 44)이라고 한 송영택의 번역과 비교된다.   
  
  
 
4)'''[[#김세나(2014)| 김세나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4)]]<span id="김세나(2014)R" />'''
 
4)'''[[#김세나(2014)| 김세나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4)]]<span id="김세나(2014)R" />'''
  
‘고독한 인간에게 보내는 릴케의 격려’라는 부제를 임의로 단 김세나의 번역본은 텍스트에 사진을 삽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자연 풍경 사진,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인물 사진 등 편지의 내용과 직접적 연관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편지마다 여러 장씩 실린 사진들은 본문의 독서를 잠시 중단시키고 명상으로 초대하는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그러나 김세나의 번역은 독일어 원문을 보고 한 번역이 아니라 1972년에 발표한 홍경호의 번역을 통째로 놓고 미미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어미, 수식어, 조사 등 사소한 부분을 다듬었을지 몰라도 번역어 문장의 순서나 문장의 통사 구조가 홍경호의 번역과 거의 똑같다. 다음에서는 한 대목만 예로 들지만 인용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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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인간에게 보내는 릴케의 격려’라는 부제를 임의로 단 김세나의 번역본은 텍스트에 사진을 삽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자연 풍경 사진,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인물 사진 등 편지의 내용과 직접적 연관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편지마다 여러 장씩 실린 사진들은 본문의 독서를 잠시 중단시키고 명상으로 초대하는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그러나 김세나의 번역은 독일어 원문을 보고 한 번역이 아니라 1972년에 발표한 홍경호의 번역을 통째로 놓고 미미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어미, 수식어, 조사 등 사소한 부분을 다듬었을지 몰라도 번역어 문장의 순서나 문장의 통사 구조가 홍경호의 번역과 거의 똑같다. 다음에서는 한 대목만 예로 들지만 인용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die Erlebnisse, die man ‘Erscheinungen’ nennt, die ganze sogenannte ‘Geisterwelt’, der Tod, alle diese uns so anverwandten Dinge, sind durch die tägliche Abwehr aus dem Leben so sehr hinausgedrängt worden, daß die Sinne, mit denen wir sie fassen könnten, verkümmert sind. Von Gott gar nicht zu reden. Aber die Angst vor dem Unaufklärbaren hat nicht allein das Dasein des einzelnen ärmer gemacht, auch die Beziehungen von Mensch zu Mensch sind durch sie beschränkt, gleichsam aus dem Flußbett unendlicher Möglichkeiten herausgehoben worden auf eine brache Uferstelle, der nichts geschieht.(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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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die Erlebnisse, die man ‘Erscheinungen’ nennt, die ganze sogenannte ‘Geisterwelt’, der Tod, alle diese uns so anverwandten Dinge, sind durch die tägliche Abwehr aus dem Leben so sehr hinausgedrängt worden, daß die Sinne, mit denen wir sie fassen könnten, verkümmert sind. Von Gott gar nicht zu reden. Aber die Angst vor dem Unaufklärbaren hat nicht allein das Dasein des einzelnen ärmer gemacht, auch die Beziehungen von Mensch zu Mensch sind durch sie beschränkt, gleichsam aus dem Flußbett unendlicher Möglichkeiten herausgehoben worden auf eine brache Uferstelle, der nichts geschieht.(44)</blockquote>
  
‘환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것들이 매일 우리 생활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에 잘만하면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불안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을 빈약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그것으로 해서 제한을 받게 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상(河床)으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안(江岸)으로 끌어올려진 셈입니다.(홍경호, 60) 우리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몹시 친근한 이런 모든 것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거부를 통해 삶에서 쫓겨남으로써, 잘만하면 우리가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물며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 더욱 빈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한 그 두려움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강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가에 버려진 셈이지요.(김세나,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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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것들이 매일 우리 생활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에 잘만하면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불안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을 빈약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그것으로 해서 제한을 받게 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상(河床)으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안(江岸)으로 끌어올려진 셈입니다.(홍경호, 60) 우리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몹시 친근한 이런 모든 것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거부를 통해 삶에서 쫓겨남으로써, 잘만하면 우리가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물며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 더욱 빈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한 그 두려움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강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가에 버려진 셈이지요.(김세나, 124)
  
  
 
5)'''[[#송영택(2018)| 송영택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8)]]<span id="송영택(2018)R" />'''
 
5)'''[[#송영택(2018)| 송영택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8)]]<span id="송영택(2018)R" />'''
  
송영택은 2018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에 박정미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함께 싣는다. 번역 후기에서 송영택은 릴케의 삶과 문학을 간략히 소개한 데 이어 작품 해설을 제시하는데, 앞의 두 편지가 릴케 입문서로서의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 송영택의 후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이라는 부제인데, 이 부제는 릴케 문학의 언어적 측면에 주목하는 번역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 부합하게 송영택의 번역은 문장의 형태와 언어형식을 살리는 문자적 번역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원문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다음 문장의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Und die in den Nächten zusammenkommen und verflochten sind in wiegender Wollust, tun eine ernste Arbeit und sammeln Süßigkeiten an, Tiefe und Kraft für das Lied irgendeines kommenden Dichters, der aufstehn wird, um unsägliche Wonnen zu sagen.”(23) 송영택은 이 문장을, “그리고 밤에 한 몸이 되어 출렁이는 쾌락 속에서 서로 엉켜 있는 자들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환희를 노래하고자 언젠가 나타날 시인의 노래를 위하여 감미로움을 모으고, 깊이와 힘을 모아서 진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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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택은 2018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에 박정미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함께 싣는다. 번역 후기에서 송영택은 릴케의 삶과 문학을 간략히 소개한 데 이어 작품 해설을 제시하는데, 앞의 두 편지가 릴케 입문서로서의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 송영택의 후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이라는 부제인데, 이 부제는 릴케 문학의 언어적 측면에 주목하는 번역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 부합하게 송영택의 번역은 문장의 형태와 언어형식을 살리는 문자적 번역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원문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다음 문장의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Und die in den Nächten zusammenkommen und verflochten sind in wiegender Wollust, tun eine ernste Arbeit und sammeln Süßigkeiten an, Tiefe und Kraft für das Lied irgendeines kommenden Dichters, der aufstehn wird, um unsägliche Wonnen zu sagen.”(23) 송영택은 이 문장을, “그리고 밤에 한 몸이 되어 출렁이는 쾌락 속에서 서로 엉켜 있는 자들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환희를 노래하고자 언젠가 나타날 시인의 노래를 위하여 감미로움을 모으고, 깊이와 힘을 모아서 진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38)
  
다음 예문에서 송영택은 원문의 문장 구조에 따르면서 원문의 리듬을 재현하는 동시에 광경을 대하는 주체의 인상과 느낌이 드러나도록 번역한다. “Gärten sind hier, unvergeßliche Alleen und Treppen, Treppen, von Michelangelo ersonnen, Treppen, die nach dem Vorbild abwärts gleitender Wasser erbaut sind.”(27) 송영택은, “또 이곳에는 정원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가로수길과 돌층계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한 돌층계, 미끄러져 떨어지는 물의 형태를 본뜬 돌층계가 있습니다.”(44)라고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은 김재혁과 박정미의 번역과 대비된다. 김재혁은, “이곳에 정원들과 잊지 못할 가로수 길과 층계들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해낸 이 층계들은 아래로 굽이치는 물줄기를 본떠서 만들어졌습니다.”(김재혁, 52)로, 박정미는, “또 이곳엔 정원과 잊을 수 없는 가로수길 그리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을 본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경사가 낮고 폭이 넓은 계단들이 있습니다.”(박정미,53)로 옮기고 있는데 두 번역 모두 설명하는 식의 화법을 사용하면서 광경 묘사의 역동성을 살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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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예문에서 송영택은 원문의 문장 구조에 따르면서 원문의 리듬을 재현하는 동시에 광경을 대하는 주체의 인상과 느낌이 드러나도록 번역한다. “Gärten sind hier, unvergeßliche Alleen und Treppen, Treppen, von Michelangelo ersonnen, Treppen, die nach dem Vorbild abwärts gleitender Wasser erbaut sind.”(27) 송영택은, “또 이곳에는 정원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가로수길과 돌층계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한 돌층계, 미끄러져 떨어지는 물의 형태를 본뜬 돌층계가 있습니다.”(44)라고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은 김재혁과 박정미의 번역과 대비된다. 김재혁은, “이곳에 정원들과 잊지 못할 가로수 길과 층계들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해낸 이 층계들은 아래로 굽이치는 물줄기를 본떠서 만들어졌습니다.”(김재혁, 52)로, 박정미는, “또 이곳엔 정원과 잊을 수 없는 가로수길 그리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을 본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경사가 낮고 폭이 넓은 계단들이 있습니다.”(박정미,53)로 옮기고 있는데 두 번역 모두 설명하는 식의 화법을 사용하면서 광경 묘사의 역동성을 살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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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3. 평가와 전망'''
  
김재혁, 안문영, 박정미, 송영택의 번역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의 일정 수준을 보여준다. 보통은 나중에 나온 번역이 앞선 번역을 상당히 참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글에서 다룬 번역들은 기존 번역의 답습보다는 독자적인 번역 결과물로 보인다. 물론 번역마다 크고 작은 오역이 발견되고, 의역과 직역의 번역 전략과 낯선 것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또한 특정 부분마다 더 나은 번역이 갈리기도 한다. 그런 만큼 각 번역의 장점을 살린 더 완벽한 번역을 기대해보게 된다. 이런 기대에서 볼 때 2020년에 포켓 판으로 나온 강민경의 번역은 상당한 아쉬움을 준다. 가장 최근의 번역인데도 앞의 번역들보다 원문에의 충실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초 번역가 홍경호의 번역을 표절한 김세나의 번역은 번역 윤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심각한 사례이다. 2014년에 나온 김세나의 종이책 번역은 품절되었지만 eBook의 형태로 최근에도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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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 안문영, 박정미, 송영택의 번역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의 일정 수준을 보여준다. 보통은 나중에 나온 번역이 앞선 번역을 상당히 참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글에서 다룬 번역들은 기존 번역의 답습보다는 독자적인 번역 결과물로 보인다. 물론 번역마다 크고 작은 오역이 발견되고, 의역과 직역의 번역 전략과 낯선 것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또한 특정 부분마다 더 나은 번역이 갈리기도 한다. 그런 만큼 각 번역의 장점을 살린 더 완벽한 번역을 기대해보게 된다. 이런 기대에서 볼 때 2020년에 포켓 판으로 나온 강민경의 번역은 상당한 아쉬움을 준다. 가장 최근의 번역인데도 앞의 번역들보다 원문에의 충실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초 번역가 홍경호의 번역을 표절한 김세나의 번역은 번역 윤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심각한 사례이다. 2014년에 나온 김세나의 종이책 번역은 품절되었지만 eBook의 형태로 최근에도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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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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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릴케, 라이너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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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비평된작품]]

2024년 7월 17일 (수) 11:47 기준 최신판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편지 모음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작가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초판 발행1929
장르편지 모음집


작품소개

릴케 사후인 1929년에 출간된 편지 모음집이다. 1903년에서 1908년 사이에 카푸스라는 젊은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편의 편지는 사랑, 성, 고독, 죽음, 예술, 인간의 존재 이유 등에 대한 젊은 시인의 물음에 대해 릴케 본인의 생각을 전해준다. 젊은 시인 카푸스는 자신이 쓴 시에 대한 비평을 요구했지만, 릴케는 비평보다는 개인적인 충고를 해주면서 인생에 담긴 풍부한 주제에 시선을 던지도록 한다. 릴케는 시인에게 글쓰기를 계속하도록 격려하고, 나아가 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스스로 따져 묻도록 하고, 세상에서의 위치에 대해 숙고해보라고 한다. 편지는 거의 매번 서두에서 카푸스가 보낸 첫 번째 편지를 읽고 릴케 자신이 다니던 사관학교에서의 경험이 떠올라서 불편한 심경이었다고 토로한다. 릴케와 편지 왕래를 하던 초기에 카푸스는 릴케가 고독하고 끔찍한 시간을 보냈던 같은 사관학교를 다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편지들은 문학 비평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릴케는 카푸스에게 비평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시에서 최상의 것과 참된 것을 추구하라고 권고한다. 또 작가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몇 권의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밖에 편지에는 페미니즘, 성 등의 주제들도 언급된다. 릴케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여성을 남성을 위한 보충물로 보는 인습적 사고에 대립된 시각을 보여주기도 하고, 성에 대한 태도에서 유희가 아니라 진지성과 순수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편지들은 글쓰기와 창조적 영감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담으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릴케의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국내에서는 1976년에 박환덕에 의해 처음 완역되었다(범조사).


초판 정보

Rilke, Rainer Maria(1929):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Leipzig: Insel.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의 獨白 라이너 마리아 릴케 金海星, 宋海石 1960 三韓出版社 - 편역 완역
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어느 孤獨한 순간엔가 世界의 에세이 文學 라이너 마리아 릴케 李文求 1968 文音社 11-23 편역 발췌역 다수 작가 수필집; 릴케 작품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 발췌 수록
3 젊은 詩人에의 편지 릴케의 사랑의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趙成 1968 創又社 - 편역 완역
4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 사랑의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宋海石, 金海星 1969 오륜출판사 - 편역 완역
5 젊은 詩人에게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1972 汎友社 - 편역 완역
6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宋海石, 金海星 1973 大一出版社 - 편역 완역
7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히페리온, 現代의 理性과 反理性 世界名敎養大全集 11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申一澈 1975 汎潮社 - 편역 완역
8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슈니쯜러 短篇集, 릴케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集 30 라이너 마리아 릴케 朴煥德(박환덕) 1976 汎朝社 355-409 편역 완역
9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便紙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便紙 汎友에세이選 36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1976 汎友社 - 편역 완역
10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동서문고 43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1977 동서문화사 - 편역 완역
11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便紙 젊은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桂苑薔薇新書 15 라이너 마리아 릴케 白樂暈 1978 桂苑出版社 - 편역 완역
12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자이언트문고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1982 文公社 - 편역 완역
1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便紙 漢陽文庫 7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1983 漢陽大學校出版院 - 편역 완역
14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世界思想敎養大全集 라이너 마리아 릴케 洪京鎬 1983 明書苑 - 편역 완역
15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金旭 1984 豊林出版社 - 편역 완역
16 젊은 시인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범우사르비아문고 19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경호 1985 汎友社 20-75 편역 완역
17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충진 1986 하나 - 편역 편역
18 젊은 詩人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ear book, 베어북= 22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백낙운 1986 문장 - 편역 완역
19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말테의 수기. 데미안, 향수 골든世界文學全集 22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강두식 1987 中央文化社 197-234 편역 완역
20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의 편지 사색과 지성 2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성 1987 창우사 - 편역 완역
21 젊은 시인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범우문고 56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경호 1987 汎友社 - 편역 완역
2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데미안, 향수.말테의 수기 外 Silver world literature 14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강두식 1988 中央文化社 529-573 편역 완역
2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한권의책 149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현성 1989 學園社 - 편역 완역
24 젊은 詩人에게 주는 편지 젊은 詩人에게 주는 편지 獨韓對譯叢書 6 라이너 마리아 릴케 徐石演(서석연) 1990 明志出版社 1-163 완역 완역 독한대역본
25 젊은 시인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estseller worldbook 3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동민 1993 소담출판사 8-56 편역 완역
2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Hong Shin dream books, 홍신드림북스= 58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경석 1997 홍신문화사 - 편역 완역
27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1998 오늘의 선택 6-103 완역 완역
28 젊은 시인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범우문고 56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경호 1999 범우사 17-80 편역 완역
29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2001 문학과의식 9-151 완역 완역
30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세계의 명수필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경호 2001 을유문화사 237-241 발췌역 완역 다수 작가 수필집; 해당 작품에서 일부만 발췌하여 수록함
31 젊은 시인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사르비아총서 619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경호 2002 범우사 17-77 편역 완역
32 젊은 시인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순철 2005 북프렌즈 - 편역 완역
3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School library 9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정우교 2005 종이나라 - 편역 완역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서양문학의 향기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2006 고려대학교 출판부 5-102 완역 완역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의 편지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233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문영 2008 지식을만드는지식 25-95 편역 완역
3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의 편지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233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문영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25-95 편역 완역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Guiparang classic 8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박정미 2012 기파랑 13-106 편역 완역
38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Guiparang classic 8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박정미 2012 기파랑 - 편역 완역
39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세계문학산책, 서한집 43 라이너 마리아 릴케 붉은여우 2013 넥서스 - 편역 완역
40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말테의 수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World book 208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백정승 2014 동서문화사 329-371 편역 완역 릴케 작품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세나 2014 소울메이트, 원앤원콘텐츠그룹 6-149 완역 완역
4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세나 2014 소울메이트, 원앤원콘텐츠그룹 4-83 완역 완역 큰글씨책
4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의 편지 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큰글씨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문영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1-71 편역 완역
44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옥용 2016 三韓出版社 7-107 완역 완역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찬란한 고독을 위한 릴케의 문장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송영택 2018 문예출판사 9-79 편역 완역
4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음문고 11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강민경 2020 디자인이음 11-118 완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 사후인 1929년에 출간된 편지 모음집으로 1903년에서 1908년 사이에 카푸스라는 젊은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편의 편지를 담고 있다. 10편의 편지에서 릴케는 사랑, 성, 글쓰기, 창조적 영감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이 편지 모음집은 국내에서는 1972년 홍경호가 처음 완역하여 범우사에서 출판했다. 이후 2020년 강민경의 번역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번역됐다. 홍경호의 번역은 1975년에 범조사에서 다시 출간되고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과 2002년에 재출간된다. 같은 출판사에서 박환덕의 번역이 세계단편문학전집 제30권 <슈니쯜러 단편집·릴케 단편집>에 실렸다. 십여년의 공백이 지난 1987년에 강두식의 번역(중앙문화사)이 나오고 1990년에는 서인석의 번역(명지출판사)이 출간된다. 이후 릴케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 이루어지는데, 김재혁과 안문영의 번역이 여기에 속한다. 1998년에 출판사 오늘의 선택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2001년에 문학과의식에서, 2006년에는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재출간되는데 1998년 번역의 개정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안문영의 번역은 2008년에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릴케의 편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에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수록되었다. 전문 번역가의 번역도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2012년에는 기파랑에서 단행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 수록된 박정미의 번역이 포함된다. 2014년에 소울메이트에서 전문 번역가 김세나의 번역이 출간되는데, 이 번역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홍경호의 번역을 거의 그대로 베낀 표절 수준의 번역이다. 이후에도 2016년에 삼한출판사에서 이옥용의 번역이 나오고, 2018년에 문예출판사에서 송영택의 번역이 출간된다. 가장 최근의 번역은 2020년에 디자인이음에서 나온 강민경의 번역이다. 이 편지 집의 번역본은 종이책 출판 후 바로 이어서 eBook으로 후속 출판된 경우가 많다. 홍경호의 eBook은 종이책 출판 30여 년 뒤인 2006년에 비로소 나왔지만, 김세나와 송영택은 같은 해에 나왔고, 박정미는 다소 늦은 2022년에 나왔다.


2. 개별 번역 비평

다음 분석은 릴케 연구자 김재혁과 안문영의 번역, 전문 번역가 박정미의 번역, 시인 출신 송영택의 번역을 대상으로 삼는다. 김세나의 번역은 최초 번역자 홍경호 번역의 베껴 쓰기의 예로 들기로 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강민경의 번역은 원문에의 충실성이 약하고 오역이 많은 편이라 분석에서 제외한다.


1) 김재혁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06)

김재혁이 1998년에 출간한 번역과 2006년의 번역[1]을 비교해보면 드물게 서술 어미를 바꾸는 정도의 수정만 보일 뿐 두 번역은 대체로 같다. 다만 1998년의 번역은 독일 인젤(Insel) 출판사에서 나온 원본[2]의 문단 나누기를 그대로 따르지만, 2006년의 번역은 원본과 다르게 임의로 문단을 나누고 있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김재혁은 대체로 큰 오역 없이 가독성 있는 번역을 보여주고 원문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는 번역을 제공하는 편이다. 1903년 7월 16일에 보낸 6번째 편지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예로 들 수 있다. “...wenn Sie ahnen, dass Christus getäuscht wordenist von seiner Sehnsucht und Muhammed betrogen von seinem Stolze.”(32) 김재혁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그리움에 의해 착각에 빠진 것이고, 또 마호메트는 그 자신의 자만심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임을 당신이 짐작하신다면.”(61) ‘그리스도가 착각에 빠진 것’이라는 표현은 제도화된 기독교 교회에서 전파된 예수 이미지와는 배치되는 릴케의 관점을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김재혁의 번역을 1972년에 나온 홍경호의 번역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홍경호는, “그리스도는 그의 동경으로, 마호멧은 그의 오만 때문에 실망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짐작하신다면”(홍경호, 48)이라고 옮기기 때문이다. 홍경호는 그리스도에 관한 서술 ‘getäuscht’와 마호메트에 관한 서술 ‘betrogen’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실망하다’라는 다른 표현으로 대체한다. 김재혁의 번역이 낯선 의미 연관을 그 자체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홍경호의 번역은 그것을 차단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낯선 표현방식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다음 문장의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mit allem, was wir allein, ohne Teilnehmer und Anhänger tun, beginnen wir Ihn, den wir nicht erleben werden, so wenig unsere Vorfahren uns erleben konnten.”에서 김재혁은 밑줄 친 부분을 “우리는 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로 옮기고 있다. 즉 ‘신’이라는 목적어와 ‘시작하다’라는 술어의 연결은 의미론적으로 생경하지만, 김재혁은 어떠한 첨가 없이 문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는 ‘신을 짓기 시작하다’로 옮기면서 원문에는 없는 ‘짓는다’라는 어휘를 첨가한 다른 번역들과 구분된다. 김재혁은 원문에서 눈에 띄는 낯선 것에 대해서는 가감 없는 문자적 번역을 제시하는 데 반해, 일반적으로는 종종 원문에 없는 표현을 첨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Leben Sie jetzt die Fragen”(21)을,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40)로, “Und werden Sie nicht irre an der Vielheit der Namen und an der Kompliziertheit der Fälle.”(23)를, “그리고 터무니없이 다양한 이름들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들 때문에 정신의 갈피를 잃지 마십시오.”(44)로 번역하는데, 밑줄 친 부분처럼 원문에 없는 표현이 번역에서 첨가되는 경우가 많다.


2) 안문영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08)

안문영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의역보다는 직역을 보여준다. 문장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충실하게 따르거나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선호하거나 원문의 문장 요소에 일대일 대응하기도 하는 데서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문영은 “schlecht ist, daß fast alle diese Erfahrung mißbrauchen und vergeuden und sie als Reiz an die müden Stellen ihres Lebens setzen und als Zerstreuung statt als Sammlung zu Höhepunkten.”(22)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나쁜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험을 오용하고 남용해, 그것을 하나의 자극이나 심심풀이로 그들의 삶의 피곤한 자리에 갖다 놓을 뿐, 정점을 향한 집중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역은 송영택의 번역(“인생에 지쳤을 때의 오락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송영택, 36)나 김재혁의 번역(“자신들의 삶의 따분한 곳을 긁어줄 자극 정도로나 생각하고....”(김재혁, 41)와 비교된다. 이 밖에도 “Haß derer, die sich stumm und mürrisch in die nüchterne Pflicht gefunden haben”(30)을 “말없이 무뚝뚝하게 무미건조한 의무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증오”(38)라고 한 안문영의 직역은, 같은 구절을 “따분한 의무에 얽매여 불만으로 입이 부르튼 자들의 증오심”(김재혁, 58)이라고 옮긴 김재혁의 의역과 비교된다.

기독교에 대한 릴케의 견해가 깔린 다음 문장에 대한 번역에서 안문영은 낯선 것을 수용하는 데 있어 김재혁보다 더 개방적이다. “denken Sie, daß das wenigste, was wir tun können, ist, Ihm das Werden nicht schwerer zu machen, als die Erde es dem Frühling macht, wenn erkommen will.”(33) 안문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마치 봄이 오려고 할 때 대지가 그 봄에게 해주듯이, 그분의 생성을 더 어렵게 만들어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한다. 이와 다르게 김재혁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지가 찾아볼 봄을 위해 준비하듯 그분의 도래를 조금이라고 도와드리는 데 있음을 명심하십시오.”(63)라고 번역한다. 안문영은 ‘신의 생성’이라는 낯선 관념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데 비해, 김재혁은 낯선 관념을 피해 ‘Werden’의 등가어 ‘생성’을 ‘도래’라는 다른 어휘로 대체한다. 낯선 것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던 김재혁이 유독 여기서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만큼 낯섦의 충격의 정도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3) 박정미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2)

박정미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와 묶어서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박정미는 각 편지의 본문에서 핵심적으로 생각되는 문장을 뽑아 해당 편지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편지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십시오’라는 제목 아래 실려 있다. 박정미의 번역은 대체로 원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준다. 또한 다음 문장의 번역처럼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성공한 경우도 있다. 박정미는, “sein Genuß ist nur deshalb sounbeschreiblich schön und reich, weil er voll ererbter Erinnerungen ist aus Zeugen und Gebären von Millionen.”(23)에서 밑줄 친 부분을 “수백만의 탄생을 거치면서 물려받은 기억”(박정미, 45)으로 옮기면서 ‘aus Zeugen’에서 전치사 ‘aus’로 시작되는 구절을 ‘ererben 물려받는다’의 과거분사형 ‘ererbt’를 수식하는 부사구로 이해함으로써 원문의 수식 구조에 부합하는 번역을 제시한다. 이는 “수백만의 생식과 분만의 기억”(송영택, 38), “수백만의 잉태와 분만의 기억들”(김재혁, 43)이라는 번역의 오 류를 시정한 것이다.

박정미는 문장 요소 간 연결이 우리말에서 의미상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 의역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Und es handelt sich darum, alles zu leben. Leben Sie jetzt die Fragen.”(21)을, “그리고 무엇이든지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의문을 가져 보십시오.“(41-42)로 옮긴 번역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번역은,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송영택, 35)라는 직역이나,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김재혁, 40)라고 한 의역과 비교된다. 이 밖에도 “beginnen wir Ihn, den wir nicht erleben werden, so wenig unsere Vorfahren uns erleben konnten.”(33)을, “우리는 조상들이 우리를 체험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체험하지 못할 신을 세우기 시작합니다.”(64)로 번역하면서 “신”과 “시작하다‘의 사이에 원문에는 없는 ’세우기‘라는 표현을 첨가한다. 다음 번역도 의미의 축소 혹은 변조를 보여주는 예에 속한다. “Aber im demselben Maße, in dem wir beginnen, als einzelne das Leben zu versuchen”(38). 박정미는 이를 “그러나 우리가 개개인으로서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75)으로 번역하는데, ‘시도하다’는뜻을 지닌 ‘versuchen’을 ‘살다’라는 평이한 어휘로 대체한다. “Dort werde ich... mich freuen an der großen Stille...”(28)를 “나는 그곳에서...적막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54)로 번역하면서 밑줄 친 구절에 나오는 ‘groß 거대한, 큰’을 빠뜨린다. 이는 “위대한 고요”(김재혁, 53)라고 한 김재혁의 번역이나 “커다란 정적”(송영택, 44)이라고 한 송영택의 번역과 비교된다.


4) 김세나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4)

‘고독한 인간에게 보내는 릴케의 격려’라는 부제를 임의로 단 김세나의 번역본은 텍스트에 사진을 삽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자연 풍경 사진, 기도하거나 명상하는 인물 사진 등 편지의 내용과 직접적 연관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편지마다 여러 장씩 실린 사진들은 본문의 독서를 잠시 중단시키고 명상으로 초대하는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참신하다. 그러나 김세나의 번역은 독일어 원문을 보고 한 번역이 아니라 1972년에 발표한 홍경호의 번역을 통째로 놓고 미미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어미, 수식어, 조사 등 사소한 부분을 다듬었을지 몰라도 번역어 문장의 순서나 문장의 통사 구조가 홍경호의 번역과 거의 똑같다. 다음에서는 한 대목만 예로 들지만 인용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die Erlebnisse, die man ‘Erscheinungen’ nennt, die ganze sogenannte ‘Geisterwelt’, der Tod, alle diese uns so anverwandten Dinge, sind durch die tägliche Abwehr aus dem Leben so sehr hinausgedrängt worden, daß die Sinne, mit denen wir sie fassen könnten, verkümmert sind. Von Gott gar nicht zu reden. Aber die Angst vor dem Unaufklärbaren hat nicht allein das Dasein des einzelnen ärmer gemacht, auch die Beziehungen von Mensch zu Mensch sind durch sie beschränkt, gleichsam aus dem Flußbett unendlicher Möglichkeiten herausgehoben worden auf eine brache Uferstelle, der nichts geschieht.(44)

‘환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것들이 매일 우리 생활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에 잘만하면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불안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을 빈약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그것으로 해서 제한을 받게 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상(河床)으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안(江岸)으로 끌어올려진 셈입니다.(홍경호, 60) 우리가 현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몹시 친근한 이런 모든 것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거부를 통해 삶에서 쫓겨남으로써, 잘만하면 우리가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물며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 더욱 빈약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한 그 두려움 때문에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강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가에 버려진 셈이지요.(김세나, 124)


5) 송영택 역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18)

송영택은 2018년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에 박정미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함께 싣는다. 번역 후기에서 송영택은 릴케의 삶과 문학을 간략히 소개한 데 이어 작품 해설을 제시하는데, 앞의 두 편지가 릴케 입문서로서의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 송영택의 후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근대 언어예술의 거장’이라는 부제인데, 이 부제는 릴케 문학의 언어적 측면에 주목하는 번역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 부합하게 송영택의 번역은 문장의 형태와 언어형식을 살리는 문자적 번역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원문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은 다음 문장의 번역에서도 나타난다. “Und die in den Nächten zusammenkommen und verflochten sind in wiegender Wollust, tun eine ernste Arbeit und sammeln Süßigkeiten an, Tiefe und Kraft für das Lied irgendeines kommenden Dichters, der aufstehn wird, um unsägliche Wonnen zu sagen.”(23) 송영택은 이 문장을, “그리고 밤에 한 몸이 되어 출렁이는 쾌락 속에서 서로 엉켜 있는 자들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환희를 노래하고자 언젠가 나타날 시인의 노래를 위하여 감미로움을 모으고, 깊이와 힘을 모아서 진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38)

다음 예문에서 송영택은 원문의 문장 구조에 따르면서 원문의 리듬을 재현하는 동시에 광경을 대하는 주체의 인상과 느낌이 드러나도록 번역한다. “Gärten sind hier, unvergeßliche Alleen und Treppen, Treppen, von Michelangelo ersonnen, Treppen, die nach dem Vorbild abwärts gleitender Wasser erbaut sind.”(27) 송영택은, “또 이곳에는 정원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가로수길과 돌층계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한 돌층계, 미끄러져 떨어지는 물의 형태를 본뜬 돌층계가 있습니다.”(44)라고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은 김재혁과 박정미의 번역과 대비된다. 김재혁은, “이곳에 정원들과 잊지 못할 가로수 길과 층계들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고안해낸 이 층계들은 아래로 굽이치는 물줄기를 본떠서 만들어졌습니다.”(김재혁, 52)로, 박정미는, “또 이곳엔 정원과 잊을 수 없는 가로수길 그리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을 본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경사가 낮고 폭이 넓은 계단들이 있습니다.”(박정미,53)로 옮기고 있는데 두 번역 모두 설명하는 식의 화법을 사용하면서 광경 묘사의 역동성을 살리지 못한다.


3. 평가와 전망

김재혁, 안문영, 박정미, 송영택의 번역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의 일정 수준을 보여준다. 보통은 나중에 나온 번역이 앞선 번역을 상당히 참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글에서 다룬 번역들은 기존 번역의 답습보다는 독자적인 번역 결과물로 보인다. 물론 번역마다 크고 작은 오역이 발견되고, 의역과 직역의 번역 전략과 낯선 것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또한 특정 부분마다 더 나은 번역이 갈리기도 한다. 그런 만큼 각 번역의 장점을 살린 더 완벽한 번역을 기대해보게 된다. 이런 기대에서 볼 때 2020년에 포켓 판으로 나온 강민경의 번역은 상당한 아쉬움을 준다. 가장 최근의 번역인데도 앞의 번역들보다 원문에의 충실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초 번역가 홍경호의 번역을 표절한 김세나의 번역은 번역 윤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심각한 사례이다. 2014년에 나온 김세나의 종이책 번역은 품절되었지만 eBook의 형태로 최근에도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김재혁(2006):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안문영(2008):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지식을만드는지식.
박정미(201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기파랑.
김세나(2014):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소울메이트.
송영택(2018):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문예출판사.


윤미애
  • 각주
  1. 본문에서는 2006년 판에서 인용함.
  2. Rainer Maria Rilke(1956): 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 Wiesbaden: Insel. 본문에서 인용 시에는 해당 쪽수를 괄호 안에 숫자로만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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