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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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br>(Der Tod in Vene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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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이다. 토마스 만 소설의 전형적인 예술가 문제와 동성애 문제뿐 아니라 시민성과 예술성, 에로스와 타나토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원론을 주제화한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 작가 아쉔바흐는 어느 날 창작에 지쳐 산보 길에 나섰다가 낯선 남자를 만난 후 강렬한 내적 충동에 이끌려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섬에서 그는 폴란드 출신의 소년 타치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신화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작가로서 그때까지 지켜온 철저함, 명예, 근면, 도덕, 이성의 원칙을 버리고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당대에 유행한 전염병에 걸려 쓰러지게 된다. 세기전환기의 유미주의와 데카당스 분위기를 특유의 장문 속에 심리적으로 세밀하고 집중적인 문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1959년에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정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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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작품소개-->
Mann, Thomas(1912): Der Tod in Venedig. In: Neue Rundschau 23. <단행본 초판> Mann, Thomas(1913): Der Tod in Venedig, Berlin: S. Fi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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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이다. 토마스 만 소설의 전형적인 예술가 문제와 동성애 문제뿐 아니라 시민성과 예술성, 에로스와 타나토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원론을 주제화한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 작가 아쉔바흐는 어느 날 창작에 지쳐 산보 길에 나섰다가 낯선 남자를 만난 후 강렬한 내적 충동에 이끌려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섬에서 그는 폴란드 출신의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신화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작가로서 그때까지 지켜온 철저함, 명예, 근면, 도덕, 이성의 원칙을 버리고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당대에 유행한 전염병에 걸려 쓰러지게 된다. 세기전환기의 유미주의와 데카당스 분위기를 특유의 장문 속에 심리적으로 세밀하고 집중적인 문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1959년에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정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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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2}}<!--초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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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Thomas(1912): Der Tod in Venedig. In: Neue Rundschau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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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초판> Mann, Thomas(1913): Der Tod in Venedig. Berlin: S. Fischer, 1368-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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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붸니스에서의 죽음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19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59 || 正音社 || 291-364 || 편역 || 완역 || 초판
 
| 1 || 붸니스에서의 죽음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19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59 || 正音社 || 291-364 || 편역 || 완역 ||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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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베니스에서의 죽음 || 幸福으로의 意志 || 陽文文庫 82 || 토오마스 만 || 朴贊機(박찬기) || 1960 || 陽文社 || 117-215 || 편역 || 완역 ||
 
| 2 || 베니스에서의 죽음 || 幸福으로의 意志 || 陽文文庫 82 || 토오마스 만 || 朴贊機(박찬기) || 1960 || 陽文社 || 117-215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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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베니스에서 죽다 || 노벨賞文學大全集, 9 || 노벨賞文學大全集 9 || 토마스 만 || 郭福祿(곽복록) || 1971 || 高麗出版社 || 21-88 || 편역 || 완역 || (前파리주재 스웨덴대사관 문화참사관) 셀 스트렘베리의 「토마스 만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의 선고경과」, (노벨문학상 선고위원) 프레데릭 베이크의 「토마스 만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에 즈음한 환영연설」이 함께 번역되어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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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붸니스에서의 죽음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38 || 토마스 만 || 박종서 || 1969 || 正音社 || 291-364 || 편역 || 완역 || 중판, 총서번호 19에서 38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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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베니스에서 죽다 || 노벨賞文學大全集, 9 || 노벨賞文學大全集 9 || 토마스 만 || 郭福祿(곽복록) || 1971 || 高麗出版社 || 21-88 || 편역 || 완역 || (前파리주재 스웨덴대사관 문화참사관) 셀 스트렘베리의 「토마스 만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의 선고경과」, (노벨문학상 선고위원) 프레데릭 베이크의 「토마스 만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에 즈음한 환영연설」이 함께 번역되어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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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베니스에서의 죽음 || 베니스에서의 죽음 || 瑞文文庫 34 || 토마스 만 || 朴贊機(박찬기) || 1972 || 瑞文堂 || 117-21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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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베니스에서의 죽음 || 베니스에서의 죽음 || 瑞文文庫 34 || 토마스 만 || 朴贊機(박찬기) || 1972 || 瑞文堂 || 117-21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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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베니스에서 죽다 || 世界代表文學全集, 8 || 世界代表文學全集 8 || 토마스 만 || 郭福祿(곽복록) || 1976 || 高麗出版社 || 21-8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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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베니스에서 죽다 || 世界代表文學全集, 8 || 世界代表文學全集 8 || 토마스 만 || 郭福祿(곽복록) || 1976 || 高麗出版社 || 21-8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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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베니스에서 죽다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베니스에서 죽다 || (愛臟版)世界文學大全集 28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81 || 금성출판사 || 321-394 || 편역 || 완역 || 초판, 1984년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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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베니스에서 죽다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베니스에서 죽다 || (愛臟版) 世界文學大全集 28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81 || 금성출판사 || 321-394 || 편역 || 완역 || 초판, 1984년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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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베니스에서 죽다 || 노벨文學賞全集 8 || 노벨文學賞全集 8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84 || 靑化 || 89-182 || 편역 || 완역 || 만의 작품이 포함된 청화출판사 전집 초판. 초판에서는 역자 확인불가. 이후 동일한 규격으로 나온 전집들에는 권혁인이 역자로 적히다가 90년대에 들어와 편집부 편저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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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붸니스에서의 죽음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38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86 || 正音文化社 || 291-364 || 편역 || 완역 || 정음문화사의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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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베니스에서 죽다 || (자이언트) 世界文學大全集 4 || 자이언트 世界文學大全集 4 || 토마스 만 || 權赫仁(권혁인) || 1985 || 靑化 || 89-182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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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베니스에서 죽다 || 토니오 크뢰거 || 靑木精選 世界文學 44 || 토마스 만 || 김애경 || 1990 || 靑木 || 89-181 || 편역 || 완역 || 초판, 2003년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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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붸니스에서의 죽음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 世界文學全集 38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86 || 正音文化社 || 291-364 || 편역 || 완역 || 정음문화사의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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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베니치아에서 죽다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베네치아에서 죽다 || (金星版) 世界文學大全集 116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90 || 금성출판사 || 357-440 || 편역 || 완역 || 초판, 1993년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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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베니스에서 죽다 || 토니오 크뢰거, 베니스에서 죽다, 트리스탄. 마음씨 고운 여장사, 아아네와 암소, 어둠의 장막 속에서, 잠은 우리의 생명, 세실, 무뚝뚝한 모우엔스, 예스파아목사, 三十三年 || 다이아몬드 世界文學大全集 9 || 토마스 만 || 權赫仁(권혁인) || 1987 || 靑化 || 89-182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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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베니스에서 죽다 || 노벨文學賞全集, 5 || 노벨文學賞全集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90 || 한국중앙문화공사 || 89-182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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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베니스에서 죽음 || 트리스탄 || 호암명작신서 7 || 토마스 만 || 이영규 || 1987 || 호암출판사 || 134-22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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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베니스에서의 죽음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8 || 토마스 만 || 박동자 || 1998 || 민음사 || 417-530 || 편역 || 완역 ||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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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베니스에서 죽다 || 토니오 크뢰거 || 靑木精選 世界文學 44 || 토마스 만 || 김애경 || 1990 || 靑木 || 89-181 || 편역 || 완역 || 초판, 2003년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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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베니스에서의 죽음 ||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09 || 누멘 || 91-92 || 편역 || 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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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베니치아에서 죽다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베네치아에서 죽다 || (金星版)世界文學大全集 116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90 || 금성출판사 || 357-440 || 편역 || 완역 || 초판, 1993년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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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 토마스 만 || 홍성광 || 2009 || 열린책들 || 287-398 || 편역 || 완역 || 세계문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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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베니스에서 죽다 || 노벨文學賞全集, 5 || 노벨文學賞全集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90 || 한국중앙문화공사 || 89-182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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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부클래식 48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13 || 부북스 || 7-148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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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베니스에서 죽다 || 노벨文學賞全集 5 || 노벨文學賞全集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92 || 청화출판사 || 89-182 || 편역 || 완역 || 80년대에 적혀 있던 역자 이름이 (권혁인) 없어지고 편집부 편저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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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 세계문학 단편선 3 || 토마스 만 || 박종대 || 2013 || 현대문학 || 215-31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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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베니스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단편집 || 서문문고 34 || 토마스 만 || 박찬기 || 1997 || 서문당 || 157-299 || 편역 || 완역 ||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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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베니스에서의 죽음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8 || 토마스 만 || 박동자 || 1998 || 민음사 || 417-530 || 편역 || 완역 ||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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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Mr. know 세계문학 38 || 토마스 만 || 홍성광 || 2006 || 열린책들 || 227-314 || 편역 || 완역 ||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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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베니스에서의 죽음 ||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09 || 누멘 || 91-92 || 편역 || 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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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 토마스 만 || 홍성광 || 2009 || 열린책들 || 287-398 || 편역 || 완역 || 세계문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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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부클래식 48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13 || 부북스 || 7-148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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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 세계문학 단편선 3 || 토마스 만 || 박종대 || 2013 || 현대문학 || 215-31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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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마리오와 마술사 ||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 || 토마스 만 || 염정용 || 2014 || 인디북 || 111-26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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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
<font size=3><b>번역 현황 및 개관</b></font></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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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의 명성은 이미 유럽 문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1920년대부터 국내에 널리 퍼졌던 반면에, 작품의 직접적인 번역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1959년 처음으로 박종서에 의해 <붸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옮겨진 후, 이듬해에 박찬기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옮겼고, 70년대에는 곽복록이 새로 번역하였다, 80년대에는 이정태, 권혁인, 이영규가 번역하여 가장 많이 번역된 시대임을 보여주며 토마스 만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이 작품은 특히 자주 번역된 작품에 속한다. 이정태와 권혁인은 <베니스에서 죽다>로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제목을 새롭게 번역하였고, 90년대에 들어와 김애경, 박동자 등의 일본어 중역에서 자유로운 세대들이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새로이 번역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가로쓰기 번역본과 한자어를 덜 사용하는 한글세대의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도 박종서와 박찬기, 곽복록의 번역은 계속 판을 거듭하며 중쇄되어 많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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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편소설은 처음부터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출판되었고 다양한 명칭의 전집 속에서 ‘세계문학’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주로 토마스 만의 다른 단편들과 같이 묶여 번역되어오다가, 1998년의 안삼환 편 <토마스 만 단편집>부터 표제작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고, 2006년 홍성광의 번역집에서는 첫 번째 표제작으로서 더 큰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의 윤순식의 번역은 이 작품 한편만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작품의 시의성과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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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에 다시 한번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고 여전히 세계문학이나 고전의 틀 속에서 번역되고 있는데, 새로운 특징은 토마스 만을 전공한 홍성광(2006), 윤순식(2013) 등이나 박종대(2013) 같은 전문번역가가 번역했다는 데 있다. 작품 제목도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과거의 번역들에 비해 현대의 독자들이 한결 쉽게 읽을 수 있는 유려한 문체의 번역을 제공하고 있고, 실제로 이전의 번역을 대치하여 읽히고 있다. 이들 번역의 공통점은 언어와 문체를 현대화하였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는 80년대 이후에 나온 수많은 연구논문과 학위 논문에서 보듯 그간 토마스 만에 관한 연구가 축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의 명성은 이미 유럽 문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1920년대부터 국내에 알려졌었던 반면에, 작품의 직접적인 번역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고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1959년 처음으로 박종서에 의해 「붸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옮겨진 후, 이듬해에 박찬기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옮겼고, 70년대에는 곽복록이 새로 번역하였다, 80년대에는 이정태, 권혁인, 이영규가 번역하여 가장 많이 번역된 시대임을 보여주며 토마스 만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이 작품은 특히 자주 번역된 작품에 속한다. 이정태와 권혁인은 「베니스에서 죽다」로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제목을 새롭게 번역을 하였고, 90년대에 들어와 김애경, 박동자 등의 일본어 중역에서 자유로운 세대들이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새로이 번역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가로쓰기 번역본과 한자어를 덜 사용하는 한글세대의 번역이다. 이 시기에도 박종서와 박찬기, 곽복록의 번역은 계속 판을 거듭하며 중쇄되어 많이 읽혔다. </br></br>
 
이 중편소설은 처음부터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출판이 되었고 다양한 명칭의 전집 속에서 ‘세계문학’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주로 토마스 만의 다른 단편 작품들과 같이 묶여서 번역이 되어 오다가, 1998년의 안삼환 편 『토마스 만 단편집』부터 표제작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고, 2006년 홍성광의 번역집에서는 첫 번째 표제작으로서 보다 큰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의 윤순식의 번역은 이 작품 한편만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작품의 시의성과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br></br>
 
2000년대 이후에 다시 한번 활발하게 번역이 되었고 여전히 세계문학이나 고전의 틀 속에서 번역되고 있는데 새로운 특징은 토마스 만을 전공한 홍성광(2006), 윤순식(2013) 등이나 박종대(2013) 같은 전문 번역가가 번역을 하였다는 데 있다. 작품 제목도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과거의 번역들에 비해 현대의 독자들이 한결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을 제공하고 있고, 실제로 이전의 번역들을 대치하여 읽히고 있다. 이들 번역의 공통점은 언어와 문체를 현대화하였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는 80년대 이후에 나온 수많은 연구논문들과 학위 논문에서 보듯 토마스 만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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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font size=3><b>번역 비교 분석</b></font></br>
 
  
「베니스에서의 죽음」 번역본들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해볼 수 있다. 2000년대 이전의 박종서, 박찬기, 이정태, 권혁인, 곽복록의 번역은 대체로 비교적 자유로운 번역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토마스 만 전공자들의 번역은 상대적으로 보다 원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2006년에 나온 홍성광의 번역은 꼼꼼하고 치밀하며 원문의 문체를 살리려 노력하였다. 토마스 만의 특유의 장문을 살려 한국어로도 유사하게 번역하여 원문의 문체를 짐작하게 하고 있으며, 번역본의 한국어 문장들도 나름의 형식적 완결성을 보여준다. 박종대의 번역과 윤순식의 번역도 마찬가지로 세심한 번역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현대의 독자에게 무리 없이 잘 읽히는 번역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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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번역본들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해볼 수 있다. 2000년대 이전의 박종서, 박찬기, 이정태, 권혁인, 곽복록의 번역은 대체로 비교적 자유로운 번역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토마스 만 전공자들의 번역은 상대적으로 훨씬 원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2006년에 나온 홍성광의 번역은 꼼꼼하고 치밀하며 원문의 문체를 살리려 노력하였다. 토마스 특유의 장문을 살려 한국어로도 유사하게 번역하여 원문의 문체를 짐작하게 하고 있으며, 번역본의 한국어 문장들도 나름대로 형식적 완결성을 보여준다. 박종대의 번역과 윤순식의 번역도 마찬가지로 세심한 번역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현대의 독자에게 무리 없이 잘 읽히는 번역을 제공하고 있다.  
  
'''1)언어적 차원'''
 
  
토마스 만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구와 절이 복잡하게 구성된 장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계구나 절들이 다중으로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형식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작가가 다의적인 어휘를 많이 구사하고 유사한 의미들을 지닌 특정 어휘군을 변주하거나 음악의 시도동기처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어 작품 내용의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언어와 문체에는 토마스 만의 작품이 자주 다루는 예술가 문제, 시민성과 예술성의 이원론, 에로스와 타나토스, 유미주의, 몰락과 죽음의 주제 등이 서구 정신문화의 총합으로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렇듯 언어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치밀하고 복잡한 연관 관계를 지닌 글을 완전히 다른 어군에 속하는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난제로 등장한다. 박찬기는 예를 들어 후기에서 “다른 작품의 몇 배의 노력이 들었다고”고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번역자들의 개성과 차이가 드러난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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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적 차원 '''
예를 들어 소설의 시작 부분을 살펴보자(Thomas Mann(2017), Der Tod in Venedig, Frankfurt a.M.). 원문의 경우 첫 단락은 독어 단행본에서도 거의 2/3쪽을 차지하는 긴 단락이지만 단 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설명한다. 귀족 작위까지 받은 대작가인 주인공은 명성에 걸맞는 ‘프린츠레겐트(왕자군주)가’라는 주소를 가진 뮌헨의 안정된 자기 집을 떠나, 홀로 긴 산책, 즉 모험을 나선다. 거의 길이가 두 배에 달하는 두 번째 문장에서는 주인공의 현재 내적 상황이 긴박함을 묘사한다. 문장의 구조도 주목할만한데, 주문을 정중앙에 위치시키고 그의 오전 상황 묘사를 원인으로서 앞쪽에 배치하고, 그리고 이것은 작가들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고대에서 유래하는 인용을 통하여 뒤쪽에 배치하고 그가 점심이나 낮잠을 통해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는 노력을 덧붙여 앞뒤 균형을 맞춘다. 주인공은 오전 내내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을 하였는데, 이날 따라 “정신의 지속적 작용”을 억제할 수가 없고 또한 휴식이 될 낮잠도 자지 못해 매우 예민한 상태에 놓였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길고 복잡한, 수식절이 여럿 달린 문장을 통해서 주인공의 긴장과 흥분을 최고조로 팽팽하게 당겨진 포물선 속에서 전달받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내적, 외적 상황에 대한 묘사가 끝난 후 상대적으로 간결한 세 번째 문장에서는, 그래서 그는 이 산책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활력을 얻어 다시금 “쓸모 있는 저녁을 ersprießlichen Abend”를 보내고자 한다고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일단 긴장이 완화되고 무사한 귀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러한 외적, 내적 상황 묘사에 유사한 의미를 지닌 어휘들을 배치하여 반복의 효과를 주면서 긴장을 배가시킨다. 시대와 사회는 “위협하는 모양새 gefahrdrohende Miene”를 가지고 있으며 작가로서의 힘든 작업은 “위험하다 gefährlich”고 묘사하여 “위험 Gefahr”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이는 작품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단어이다. 주인공은 극도로 긴장된 작업을 하여 “과도하게 흥분되었으며 überreizt”, 흥분은 점심 식사로도 멈출 수 없었고 낮잠을 자서 덜 수도 없었다. 작품 전체의 내용을 고려하면 작가가 안정과 위기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사실은 이미 첫 문단에서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예술 작업 자체가 위험한 동력을 내포하고 있으며, 과잉작동할 때 그의 안정된 현 상태를 위협하며 또한 작가로서 존경받는 지위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토마스 만 특유의 예술에 대한 이원론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니체와 프로이트의 동시대인으로서의 양가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첫 문단의 번역에서 어휘, 문장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위험 Gefahr”, 이와 대조되는 제어를 암시하는 어휘들의 일관된 의미망이 어떻게 번역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번역가들의 해석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하다.</br></br>
 
이 긴 단락은 대체로 한국어 번역문에서는 짧은 여러 문장으로 나뉘어 번역되고 있다. 최초의 번역자인 박종서는 대체로 자유로운 번역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첫 문단의 세 문장을 일곱 문장으로 옮기고 있다. 쉼표가 넷 있고 관계 종속절이 둘 있는 첫 문장을, 붙임표를 사용한 한 문장으로 옮겨 만연체 문체의 특징을 살리는 듯하다가, 두 번째 문장은 네 개의 짧은 문장으로 잘라내어 가독성은 높아지나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상황 사이의 인과관계나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 작업의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차를 한잔하고 나서 교외로 발걸음을 옮겼다”(291)는 문장은 원문과 달리, 한참 앞당겨져 위치하여 전체 문단의 흐름에서 정지와 휴지를 표시하는 효과를 내어 긴박감이 내외적으로 고조되는 원문의 상황과는 달리 번역문은 한 번 휴지기를 가지고 있다. </br></br>
 
이에 반하여 박찬기의 번역은 첫 단락을 다섯 문장으로, 두 번째 문장의 경우 세 문단으로 나누고 있다. 오전 작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과잉흥분상태가 왔으며, 키케로를 인용하여 이는 고대로부터 작가에게는 흔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세 번째는 지금 낮잠마저 못 자게 되어 더욱 힘들다는 상황이 명료하게 서술되고 있어, 전체의 인과적 맥락이 상대적으로 원문에 충실하게 옮겨지고 있다. 또한 “대단히 위태로운 정세” 그리고 “위험스러운 오전 중의 노작”으로 번역하여 원문의 어휘 “위험 Gefahr”도 번역문에서 일관되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마지막 문장도 “하루 저녁을 유효하게 하여 주리라는 희망”으로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어 긴장의 대조가 잘 드러난다. </br></br>
 
이후에 나온 곽복록의 번역은 다시 자유로운 번역의 원칙을 취하여 “오전 중 내내 쓰던 작품 내용이 매우 골치 아픈 것이고 또 신경을 피로하게 하는 일 인데다가, 요즈음의 세상 돌아가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지라”라고 주인공의 현 상태의 원인을 세 가지로 설명하는데 첫 번째 근거는 저술 작업 때문이 아니라 저술작품의 내용 때문이라고 번역자의 해석을 반영할뿐 아니라, 세 번째 근거는 번역자가 창의적으로 덧붙인, 원문에 없는 내용이다. 이로 인하여 개인적 상황은 사회적 상황에도 근거를 갖게 된다. 곽복록의 경우는 원문의 일관된 과거형 서술 시제를 때로는 과거형으로 때로는 현재형으로 번역하여 변화를 준 점도 눈에 뜨인다. </br></br>
 
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가독성이 높은 번역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홍성광의 경우 박찬기와 유사하게 다섯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지만, 붙임표가 아니라 쉼표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보다 많이 사용되는 어휘들을 사용하여, 독자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수월한 번역을 하고 있다. 특히 긴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쉼표나 “때문에”, “그래서” 등을 반복하여 사용하여 맥락의 이해를 돕고 있고 역자 각주를 도입하여 상황에 대한 해설을 제공한다. 위험을 지시하는 어휘들은 “불길한 조짐”, “몸에 무리가 가는 힘겨운 작업”, “저녁을 보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구체적 상황에 맞춘 어휘들로 옮겨지거나 신체적 인과관계로 해석되어 전체적 맥락보다는 작은 범위에서 밀도 있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이 소설 전체에 관통하는 “낯선 fremd”이라는 어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낯섬은 “낯선 신”뿐 아니라 “낯선 남자들 der Fremde“(뮌헨에서 본 낯선 남자 – 배에서 본 화장한 노인 – 곤돌라 뱃사공 – 타치오 – 리도의 유랑가수)로 인물군의 성격화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인물군에는 예술성, 퇴폐, 몰락, 병, 죽음, 동성애의 이미지가 부가되고 세기말의 데카당스 분위기 속에서 반대극에 서 있는 시민성, 성공, 건강, 삶, 이성애 등과 대립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이 어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아폴론적 원칙에 맞서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형상화하고, 낯선 문화, 낯선 에로스, 낯선 문화의 일관된 연관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br></br>
 
이러한 낯선 자들은 곽복록에게서는 “낯선 사나이”(23) - “미지의 사나이”(24) - “생면부지의 사나이”(37) - “손님”(7) - “알지도 못하는 사람”(79) - “이 알지 못하는 나그네"(81) 등으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박찬기는 “낯선 사나이”(121) - “낯설은 사나이”(121) - “낯설은 사람”(141) - “알지 못하는 사람”(203) - “이국적인 것”(206)으로 번역하여 보다 어휘들의 연관성과 유사성이 잘 드러난다. 이점은 “Fremdländischen”(8) - “Fremdenpoesie”(467) - “Fremdheit”(489) - “Fremdheit”(496) - “Fremden”(503) 등의 관련 어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곽복록이 “외국인”(23) - “이국적인 정서를 풍기는 멜로디 ”(40) - “귀에 익지 않은”(58) - “서먹서먹함”(65) - “객지”(71)로 번역하고 있다면, 박찬기는 “외국인”(121) - “외국 노래”(145) - “귀에 낯설기 때문에”(171) - “낯설음”(181)으로 번역하고 있다. 의역의 경우 놓여있는 문맥 속에서 우리말에 동화되어 독자가 구체적인 개별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큰 틀에서 공통된 흐름 찾기는 아주 꼼꼼한 독서에서나 가능하다. 이보다 직역에 가까운 번역은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이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며 작품 속에 감추어진 다의성을 외국의 독자에게 보다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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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구와 절이 복잡하게 구성된 장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계구나 절이 다중으로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형식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작가가 다의적인 어휘를 많이 구사하고 유사한 의미들을 지닌 특정 어휘군을 변주하거나 음악의 시도동기처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어 작품 내용의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언어와 문체에는 토마스 만의 작품이 자주 다루는 예술가 문제, 시민성과 예술성의 이원론, 에로스와 타나토스, 유미주의, 몰락과 죽음의 주제 등이 서구 정신문화의 총합으로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렇듯 언어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치밀하고 복잡한 연관 관계를 지닌 글을 완전히 다른 어군에 속하는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난제로 등장한다. 박찬기는 예를 들어 후기에서 “다른 작품의 몇 배의 노력이 들었다고”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난제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번역자들의 개성과 차이가 드러난다. <br>
'''2)문화적 차원'''
 
  
토마스 만 작품의 수용과 해석에서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 이전과 이후가 큰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1975년에 작가의 사후 20년이 지나면서 작가의 일기가 공개된 이후로 새로운 주제들, 즉 성이나, 성적 정체성 혹은 동성애에 대한 연구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국내의 경우 장성현의 『고통과 영광 사이에서』(2000)가 이런 연구의 물고를 텄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세계적 명성과 당대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를 고려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성향을 은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어휘, 개념이나 인물군, 시공간 분위기의 특징 등을 통해 계속 드러내고 있다. 이 문제는 번역에서도 중요한데 즉 작품 속의 동성애에 대한 다의성과 암시를 어떻게 옮겼는가를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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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소설의 시작 부분을 살펴보자.<ref>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하였음. Mann, Thomas(2017): DerTod in Venedig. Frankfurt a. M.: S. Fischer.</ref> 원문의 경우 첫 단락은 독어 단행본에서도 거의 2/3쪽을 차지하는 긴 단락이지만 단 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우 치밀하게 짜여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설명한다. 귀족 작위까지 받은 대작가인 주인공은 명성에 걸맞은 ‘프린츠레겐트(왕자군주)가’라는 귀족적 주소를 가진 뮌헨의 안정된 자기 집을 떠나, 홀로 긴 산책, 즉 모험을 나선다. 길이가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두 번째 문장에서는 주인공의 현재 내적 상황이 상당히 긴박함을 묘사한다. 문장의 구조도 주목할 만한데, 주문을 정중앙에 위치시키고 그의 오전 상황 묘사를 원인으로서 앞쪽에 배치하고, 그러나 이것은 작가들의 보편적인 상황이었음을 고대에서 유래하는 인용을 통하여 일반화시켜 뒤쪽에 배치하고, 그가 점심이나 낮잠을 통해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는 개인적 노력을 덧붙여 앞뒤 균형을 맞춘다. 주인공은 오전 내내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을 하였는데, 이날따라 “정신의 지속적 작용”을 억제할 수가 없고 또한 휴식이 될 수 있는 낮잠도 자지 못해 매우 예민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길고 복잡한, 수식절이 여럿 달린 문장을 통해서 주인공의 긴장과 흥분을 최고조로 팽팽하게 당겨진 포물선 속에서 전달받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내적, 외적 상황에 대한 묘사가 끝난 후 상대적으로 간결한 세 번째 문장에서는, 그래서 그는 이 산책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활력을 얻어 다시금 “쓸모 있는 저녁을 ersprießlichen Abend”를 보내고자 한다고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일단 긴장이 완화된, 무사한 귀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러한 외적, 내적 상황 묘사에 유사한 의미를 지닌 어휘들을 배치하여 반복의 효과를 주면서 긴장을 배가시킨다. 시대와 사회는 “위협하는 모양새 gefahrdrohende Miene”를 가지고 있으며 작가로서의 힘든 작업은 “위험하다 gefährlich”고 묘사하여 “위험 Gefahr”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데, 이는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단어이다. 주인공은 극도로 긴장된 작업을 하여 “과도하게 흥분되었으며 überreizt”, 흥분은 점심 식사로도 멈출 수 없었고 낮잠을 자서 덜 수도 없었다. 작품 전체의 내용을 고려하면 작가가 안정과 위기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사실은 이미 첫 문단에서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예술 작업 자체가 위험한 동력을 내포하고 있으며, 과잉 작동할 때 그의 안정된 현 상태를 위협하며 또한 작가로서 존경받는 지위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토마스 만 특유의 예술에 대한 이원론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니체와 프로이트의 동시대인으로서의 양가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첫 문단의 번역에서 어휘, 문장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위험 Gefahr”, 이와 대조되는 제어를 암시하는 어휘들의 일관된 의미망이 어떻게 번역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번역가들의 해석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br>
아쉔바흐가 타치오에게 품는 동성애적 에로스는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다의적으로 표현되었다. 박종서, 박찬기, 곽복록, 이정태 등의 2000년대 이전 번역에서는 이러한 동성애들이 대체로 이성애로 바뀌어 번역되었었다. 대표적인 예로 주인공 아쉔바흐가 베네치아에 갔을 때 미래에 겪게 될 동성애를 암시하는, 추근대는 뱃사공 노인의 말 중 중성명사로 표현된 “Liebchen, dem allerliebsten, dem schönsten Liebchen ...”(26)의 번역을 들 수 있다. 박종서는 “귀여인 아씨에게, 정말 귀엽고 정말 미인에게”(310)로, 박찬기는 “귀여운 아가씨, 아름답고 어여쁜 아가씨에게”(141)로, 이정태도 “정말 귀엽고, 정말 미인에게, 귀엽고 아름다운 아씨에게”로, 비교적 뒤에 나온 박동자의 번역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애인에게”(444)으로 이성애로 치환시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이성애로의 변환은 오역의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일찌감치 노벨문학상 수상을 중심으로 지성적 작가, 독일 전통문화의 대변자, 양심적 도덕가, 위엄을 갖춘 대가로 굳어져 있는 데에도 기인한다. 또한 한국 문화 속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입장도 폐쇄적이라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성애의 하나로 논의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수용국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동성애를 암시하는 다의적 어휘나 구문, 문장들이 이성애적 에로스로 변환되어 수용가능하게 번역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번역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곽복록이 “귀여운 사람, 제일 귀여운 사람에게, 제일 예쁜, 귀여운 나의”(37-38)로 번역하여 남성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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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하여 2000년대 이후의 번역들은 이러한 동성애적 함의를 은폐하지 않고 살리는 번역을 하고 있다. 홍성광은 “우리의 찬사를, 우리의 찬사를 연인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멋진 연인에게...”(315)로 번역하여 “연인”이라는 어휘를 통하여 다의성을 살리고 있고 박종대는 “애인”(238)으로, 윤순식은 “사랑하는 연인”(40)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언어의 차이로 인한 다소의 난점은 존재하는데, 토마스 만이 “lieb”과 “schön”이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을 활용하다가, 실제로 아쉔바흐가 타치오을 처음 볼 때에도 이 형용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본에서 “연인”, “애인”이라는 일반 명사를 사용한 경우에는 타치오를 묘사할 때의 원문이 같은 어휘였고, 그래서 훨씬 전에 후의 사랑을 미리 예시했음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홍성광은 “소년의 외모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322) 놀랐고, 얼굴 묘사 중 특히 “사랑스런 입”(322)으로 번역하여 앞서의 “연인”과 같은 어휘였음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이 번역본은 에로스와 예술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위의 구절을 “이상하게 결실을 맺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354)로, 그래서 “마치 한바탕 방종한 성적인 관계를 갖고 난 뒤 양심이 불평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354)로, 그리고 4장의 마지막 문장은 “너를 사랑해”(362)로 자연스럽게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의 변화는 그간 한국사회의 문화도 많이 변모하여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뀐 데에도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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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단락은 대체로 한국어 번역문에서는 짧은 여러 문장으로 나뉘어 번역되고 있다. 최초의 번역자인 박종서는 대체로 자유로운 번역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그는 첫 문단의 세 문장을 일곱 문장으로 옮기고 있다. 쉼표가 넷 있고 관계 종속절이 둘 있는 첫 문장을, 붙임표를 사용한 한 문장으로 옮겨 만연체의 특징을 살리는 듯하다가, 두 번째 문장은 네 개의 짧은 문장으로 잘라내어 가독성은 높아지나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상황 사이의 인과관계나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 작업의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차를 한잔하고 나서 교외로 발걸음을 옮겼다”(291)는 문장은 원문과 달리, 한참 앞당겨져 위치하여 전체 문단의 흐름에서 정지와 휴지를 표시하는 효과를 내어 긴박감이 내외적으로 고조되는 원문의 상황과는 달리 번역문은 한 번 휴지기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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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하여 박찬기의 번역은 첫 단락을 다섯 문장으로, 두 번째 문장의 경우 세 문단으로 나누고 있다. 오전 작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과잉 흥분상태가 왔으며, 키케로를 인용하여 이는 고대로부터 작가에게는 흔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세 번째는 지금 낮잠마저 못 자게 되어 더욱 힘들다는 상황이 명료하게 서술되고 있어, 전체의 인과적 맥락이 상대적으로 원문에 충실하게 옮겨지고 있다. 또한 “대단히 위태로운 정세” 그리고 “위험스러운 오전 중의 노작”으로 번역하여 원문의 어휘 “위험 Gefahr”도 번역문에서 일관되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마지막 문장도 “하루 저녁을 유효하게 하여 주리라는 희망”으로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어 긴장의 대조가 잘 드러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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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나온 곽복록의 번역은 다시 자유로운 번역의 원칙을 취하여 “오전 중 내내 쓰던 작품 내용이 매우 골치 아픈 것이고 또 신경을 피로하게 하는 일 인데다가, 요즈음의 세상 돌아가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지라”라고 주인공의 현 상태의 원인을 세 가지로 설명하는데, 첫 번째 근거는 저술 작업 때문이 아니라 저술작품의 내용 때문이라고 번역자의 해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세 번째 근거는 번역자가 창의적으로 덧붙인, 원문에 없는 내용이다. 이로 인하여 개인적 상황은 사회적 상황에도 근거를 갖게 된다. 곽복록의 경우는 원문의 일관된 과거형 서술 시제를 때로는 과거형으로 때로는 현재형으로 번역하여 변화를 준 점도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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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가독성이 높은 번역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홍성광의 경우 박찬기와 유사하게 다섯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지만, 붙임표가 아니라 쉼표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더 많이 사용되는 어휘들을 사용하여, 독자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수월한 번역을 하고 있다. 특히 긴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쉼표나 “때문에”, “그래서” 등을 반복하여 사용하여 맥락의 이해를 돕고, 역자 각주를 도입하여 상황에 대한 해설을 제공한다. 위험을 지시하는 어휘들은 “불길한 조짐”, “몸에 무리가 가는 힘겨운 작업”, “저녁을 보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구체적 상황에 맞춘 어휘들로 옮기거나 신체적 인과관계로 해석되어 전체적 맥락보다는 작은 범위에서 밀도 있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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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하게 이 소설 전체에 관통하는 “낯선 fremd”이라는 어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낯섬은 “낯선 신”뿐 아니라 “낯선 남자들 der Fremde“(뮌헨에서 본 낯선 남자 – 배에서 본 화장한 노인 – 곤돌라 뱃사공 – 타치오 – 리도의 유랑가수)로 인물군의 성격화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인물군에는 예술성, 퇴폐, 몰락, 병, 죽음, 동성애의 이미지가 부가되고 세기말의 데카당스 분위기 속에서 반대 극에 서 있는 시민성, 성공, 건강, 삶, 이성애 등과 대립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이 어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아폴론적 원칙에 맞서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형상화하고, 낯선 문화, 낯선 에로스, 낯선 문화의 일관된 연관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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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낯선 자들은 곽복록에게서는 “낯선 사나이”(23) - “미지의 사나이”(24) - “생면부지의 사나이”(37) - “손님”(7) - “알지도 못하는 사람”(79) - “이 알지 못하는 나그네"(81) 등으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박찬기는 “낯선 사나이”(121) - “낯설은 사나이”(121) - “낯설은 사람”(141) - “알지 못하는 사람”(203) - “이국적인 것”(206)으로 번역하여 어휘들의 연관성과 유사성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이점은 “Fremdländischen”(8) - “Fremdenpoesie”(467) - “Fremdheit”(489) - “Fremdheit”(496) - “Fremden”(503) 등의 관련 어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곽복록이 “외국인”(23) - “이국적인 정서를 풍기는 멜로디”(40) - “귀에 익지 않은”(58) - “서먹서먹함”(65) - “객지”(71)로 번역하고 있다면, 박찬기는 “외국인”(121) - “외국 노래”(145) - “귀에 낯설기 때문에”(171) - “낯설음”(181)으로 번역하고 있다. 의역의 경우 놓여있는 문맥 속에서 우리말에 동화되어 독자가 구체적인 개별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큰 틀에서 공통된 흐름 찾기는 아주 꼼꼼한 독서에서나 가능하다. 이보다 직역에 가까운 번역은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이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며 작품 속에 감추어진 다의성을 외국의 독자에게 더욱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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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문화적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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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작품의 수용과 해석에서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1975년에 작가의 사후 20년이 지나면서 작가의 일기가 공개된 이후로 새로운 주제들, 즉 성이나, 성적 정체성 혹은 동성애에 관한 연구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국내의 경우 장성현의 <고통과 영광 사이에서>(2000)가 이런 방향의 연구의 물고를 텄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세계적 명성과 당대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를 고려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성향을 은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어휘, 개념이나 인물군, 시공간 분위기의 특징 등을 통해 계속 드러내고 있다. 이 문제는 번역에서도 중요한데, 즉 작품 속의 동성애에 대한 다의성과 암시를 어떻게 옮겼는가를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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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쉔바흐가 타치오에게 품는 동성애적 에로스는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다의적으로 표현되었다. 박종서, 박찬기, 곽복록, 이정태 등의 2000년대 이전 번역에서는 이러한 동성애들이 대체로 이성애로 바뀌어 번역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주인공 아쉔바흐가 베네치아에 갔을 때 미래에 겪게 될 동성애를 암시하는, 추근대는 뱃사공 노인의 말 중 중성명사로 표현된 “Liebchen, dem allerliebsten, dem schönsten Liebchen ...”(26)의 번역을 들 수 있다. 박종서는 “귀여운 아씨에게, 정말 귀엽고 정말 미인에게”(310)로, 박찬기는 “귀여운 아가씨, 아름답고 어여쁜 아가씨에게”(141)로, 이정태도 “정말 귀엽고, 정말 미인에게, 귀엽고 아름다운 아씨에게”로, 비교적 뒤에 나온 박동자의 번역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애인에게”(444)이성애로 치환시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이성애로의 변환은 오역의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일찌감치 노벨문학상 수상을 중심으로 지성적 작가, 독일 전통문화의 대변자, 양심적 도덕가, 위엄을 갖춘 대가로 굳어져 있는 데에도 기인한다. 또한 한국 문화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입장도 폐쇄적이라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성애의 하나로 논의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수용국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동성애를 암시하는 다의적 어휘나 구문, 문장들이 이성애적 에로스로 변환되어 수용 가능하게 번역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번역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곽복록이 “귀여운 사람, 제일 귀여운 사람에게, 제일 예쁜, 귀여운 나의”(37-38)로 번역하여 남성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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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하여 2000년대 이후의 번역들은 이러한 동성애적 함의를 은폐하지 않고 살리는 번역을 하고 있다. 홍성광은 “우리의 찬사를, 우리의 찬사를 연인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멋진 연인에게...”(315)로 번역하여 “연인”이라는 어휘를 통하여 다의성을 살리고 있고, 박종대는 “애인”(238)으로, 윤순식은 “사랑하는 연인”(40)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언어의 차이로 인한 다소의 난점은 존재하는데, 토마스 만이 “lieb”와 “schön”이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을 활용하다가, 실제로 아쉔바흐가 타치오를 처음 볼 때도 이 형용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본에서 “연인”, “애인”이라는 일반 명사를 사용한 경우에는 타치오를 묘사할 때의 원문이 같은 어휘였고, 그래서 훨씬 전에 후의 사랑을 미리 예시했음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홍성광은 “소년의 외모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322) 놀랐고, 얼굴 묘사 중 특히 “사랑스런 입”(322)으로 번역하여 앞서의 “연인”과 같은 어휘였음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이 번역본은 에로스와 예술 간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위의 구절을 “이상하게 결실을 맺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354)로, 그래서 “마치 한바탕 방종한 성적인 관계를 갖고 난 뒤 양심이 불평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354)로, 그리고 4장의 마지막 문장은 “너를 사랑해”(362)로 자연스럽게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의 변화는 그간 한국 사회의 문화도 많이 변모하여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수용 태도가 바뀐 데에도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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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b>평가와 전망</b></font></br>
 
  
한국에서는 토마스 만은 독어권 작가 가운데 누구보다도 큰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이며 작품도 꾸준히 새롭게 번역되고 있다. 이 작품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문학전집이나 토마스 만 대표단편선에 자주 포함되며 특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과거보다 시의성이나 중요성이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가 있었으며 최근에는 최근에는 홍성광, 윤순식, 박종대 같은 전문가 내지는 전문번역가들의 번역본이 많이 읽히고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제명을 단 최근의 번역들은 그간의 연구와 번역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또한 독자들의 문화적 취향이 변함에 따라 새롭게 해석된 번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토마스 만의 대표 단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번역 역시 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리고 내용의 다의성과 풍부함을 드러내는 번역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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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토마스 만은 독어권 작가 가운데 누구보다도 큰 인정을 받는 작가이며 작품도 꾸준히 새롭게 번역되고 있다. 이 작품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문학전집이나 토마스 만 대표 단편선에 자주 포함된다. 특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과거보다 시의성이나 중요성이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가 있었으며 최근에는 홍성광, 윤순식, 박종대 같은 전문가 내지는 전문번역가들의 번역본이 많이 읽히고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제명을 단 최근의 번역들은 그간의 연구와 번역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또한 독자들의 문화적 취향이 변함에 따라 새롭게 해석된 번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토마스 만의 대표 단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번역 역시 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리고 내용의 다의성과 풍부함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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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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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1959): 붸니스에서의 죽음. 정음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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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기(1960): 베니스에서의 죽음. 서문당.<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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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록(1976): 베니스에서 죽다. 고려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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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광(2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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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 right">최윤영</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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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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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비평된작품]]

2024년 7월 17일 (수) 11:51 기준 최신판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
작가토마스 만(Thomas Mann)
초판 발행1912
장르소설


작품소개

1913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이다. 토마스 만 소설의 전형적인 예술가 문제와 동성애 문제뿐 아니라 시민성과 예술성, 에로스와 타나토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원론을 주제화한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 작가 아쉔바흐는 어느 날 창작에 지쳐 산보 길에 나섰다가 낯선 남자를 만난 후 강렬한 내적 충동에 이끌려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섬에서 그는 폴란드 출신의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신화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작가로서 그때까지 지켜온 철저함, 명예, 근면, 도덕, 이성의 원칙을 버리고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당대에 유행한 전염병에 걸려 쓰러지게 된다. 세기전환기의 유미주의와 데카당스 분위기를 특유의 장문 속에 심리적으로 세밀하고 집중적인 문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1959년에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정음사).


초판 정보

Mann, Thomas(1912): Der Tod in Venedig. In: Neue Rundschau 23. <단행본 초판> Mann, Thomas(1913): Der Tod in Venedig. Berlin: S. Fischer, 1368-1398.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붸니스에서의 죽음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世界文學全集 19 토마스 만 朴鍾緖(박종서) 1959 正音社 291-364 편역 완역 초판
2 베니스에서의 죽음 幸福으로의 意志 陽文文庫 82 토오마스 만 朴贊機(박찬기) 1960 陽文社 117-215 편역 완역
3 붸니스에서의 죽음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世界文學全集 38 토마스 만 박종서 1969 正音社 291-364 편역 완역 중판, 총서번호 19에서 38로 변화
4 베니스에서 죽다 노벨賞文學大全集, 9 노벨賞文學大全集 9 토마스 만 郭福祿(곽복록) 1971 高麗出版社 21-88 편역 완역 (前파리주재 스웨덴대사관 문화참사관) 셀 스트렘베리의 「토마스 만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의 선고경과」, (노벨문학상 선고위원) 프레데릭 베이크의 「토마스 만에 대한 노벨문학상 수여에 즈음한 환영연설」이 함께 번역되어 실림
5 베니스에서의 죽음 베니스에서의 죽음 瑞文文庫 34 토마스 만 朴贊機(박찬기) 1972 瑞文堂 117-216 편역 완역
6 베니스에서 죽다 世界代表文學全集, 8 世界代表文學全集 8 토마스 만 郭福祿(곽복록) 1976 高麗出版社 21-88 편역 완역
7 베니스에서 죽다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베니스에서 죽다 (愛臟版)世界文學大全集 28 토마스 만 李鼎泰(이정태) 1981 금성출판사 321-394 편역 완역 초판, 1984년 중판
8 베니스에서 죽다 노벨文學賞全集 8 노벨文學賞全集 8 토마스 만 확인불가 1984 靑化 89-182 편역 완역 만의 작품이 포함된 청화출판사 전집 초판. 초판에서는 역자 확인불가. 이후 동일한 규격으로 나온 전집들에는 권혁인이 역자로 적히다가 90년대에 들어와 편집부 편저로 바뀜
9 베니스에서 죽다 (자이언트) 世界文學大全集 4 자이언트 世界文學大全集 4 토마스 만 權赫仁(권혁인) 1985 靑化 89-182 편역 완역
10 붸니스에서의 죽음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世界文學全集 38 토마스 만 朴鍾緖(박종서) 1986 正音文化社 291-364 편역 완역 정음문화사의 초판
11 베니스에서 죽다 토니오 크뢰거, 베니스에서 죽다, 트리스탄. 마음씨 고운 여장사, 아아네와 암소, 어둠의 장막 속에서, 잠은 우리의 생명, 세실, 무뚝뚝한 모우엔스, 예스파아목사, 三十三年 다이아몬드 世界文學大全集 9 토마스 만 權赫仁(권혁인) 1987 靑化 89-182 편역 완역
12 베니스에서 죽음 트리스탄 호암명작신서 7 토마스 만 이영규 1987 호암출판사 134-224 편역 완역
13 베니스에서 죽다 토니오 크뢰거 靑木精選 世界文學 44 토마스 만 김애경 1990 靑木 89-181 편역 완역 초판, 2003년 중판
14 베니치아에서 죽다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베네치아에서 죽다 (金星版)世界文學大全集 116 토마스 만 李鼎泰(이정태) 1990 금성출판사 357-440 편역 완역 초판, 1993년 중판
15 베니스에서 죽다 노벨文學賞全集, 5 노벨文學賞全集 5 토마스 만 확인불가 1990 한국중앙문화공사 89-182 편역 완역
16 베니스에서 죽다 노벨文學賞全集 5 노벨文學賞全集 5 토마스 만 확인불가 1992 청화출판사 89-182 편역 완역 80년대에 적혀 있던 역자 이름이 (권혁인) 없어지고 편집부 편저로 바뀜
17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단편집 서문문고 34 토마스 만 박찬기 1997 서문당 157-299 편역 완역 개정판
18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박동자 1998 민음사 417-530 편역 완역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1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Mr. know 세계문학 38 토마스 만 홍성광 2006 열린책들 227-314 편역 완역 초판
20 베니스에서의 죽음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토마스 만 윤순식 2009 누멘 91-92 편역 편역
21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홍성광 2009 열린책들 287-398 편역 완역 세계문학판
22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부클래식 48 토마스 만 윤순식 2013 부북스 7-148 완역 완역
23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세계문학 단편선 3 토마스 만 박종대 2013 현대문학 215-311 편역 완역
24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마리오와 마술사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 토마스 만 염정용 2014 인디북 111-264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의 명성은 이미 유럽 문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1920년대부터 국내에 널리 퍼졌던 반면에, 작품의 직접적인 번역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1959년 처음으로 박종서에 의해 <붸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옮겨진 후, 이듬해에 박찬기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옮겼고, 70년대에는 곽복록이 새로 번역하였다, 80년대에는 이정태, 권혁인, 이영규가 번역하여 가장 많이 번역된 시대임을 보여주며 토마스 만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이 작품은 특히 자주 번역된 작품에 속한다. 이정태와 권혁인은 <베니스에서 죽다>로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제목을 새롭게 번역하였고, 90년대에 들어와 김애경, 박동자 등의 일본어 중역에서 자유로운 세대들이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새로이 번역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가로쓰기 번역본과 한자어를 덜 사용하는 한글세대의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도 박종서와 박찬기, 곽복록의 번역은 계속 판을 거듭하며 중쇄되어 많이 읽혔다.

이 중편소설은 처음부터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출판되었고 다양한 명칭의 전집 속에서 ‘세계문학’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주로 토마스 만의 다른 단편들과 같이 묶여 번역되어오다가, 1998년의 안삼환 편 <토마스 만 단편집>부터 표제작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고, 2006년 홍성광의 번역집에서는 첫 번째 표제작으로서 더 큰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의 윤순식의 번역은 이 작품 한편만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작품의 시의성과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에 다시 한번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고 여전히 세계문학이나 고전의 틀 속에서 번역되고 있는데, 새로운 특징은 토마스 만을 전공한 홍성광(2006), 윤순식(2013) 등이나 박종대(2013) 같은 전문번역가가 번역했다는 데 있다. 작품 제목도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과거의 번역들에 비해 현대의 독자들이 한결 쉽게 읽을 수 있는 유려한 문체의 번역을 제공하고 있고, 실제로 이전의 번역을 대치하여 읽히고 있다. 이들 번역의 공통점은 언어와 문체를 현대화하였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는 80년대 이후에 나온 수많은 연구논문과 학위 논문에서 보듯 그간 토마스 만에 관한 연구가 축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이 작품의 번역본들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해볼 수 있다. 2000년대 이전의 박종서, 박찬기, 이정태, 권혁인, 곽복록의 번역은 대체로 비교적 자유로운 번역을 많이 하고 있으며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토마스 만 전공자들의 번역은 상대적으로 훨씬 원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2006년에 나온 홍성광의 번역은 꼼꼼하고 치밀하며 원문의 문체를 살리려 노력하였다.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을 살려 한국어로도 유사하게 번역하여 원문의 문체를 짐작하게 하고 있으며, 번역본의 한국어 문장들도 나름대로 형식적 완결성을 보여준다. 박종대의 번역과 윤순식의 번역도 마찬가지로 세심한 번역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며 현대의 독자에게 무리 없이 잘 읽히는 번역을 제공하고 있다.


1) 언어적 차원

토마스 만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구와 절이 복잡하게 구성된 장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계구나 절이 다중으로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형식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작가가 다의적인 어휘를 많이 구사하고 유사한 의미들을 지닌 특정 어휘군을 변주하거나 음악의 시도동기처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어 작품 내용의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언어와 문체에는 토마스 만의 작품이 자주 다루는 예술가 문제, 시민성과 예술성의 이원론, 에로스와 타나토스, 유미주의, 몰락과 죽음의 주제 등이 서구 정신문화의 총합으로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렇듯 언어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치밀하고 복잡한 연관 관계를 지닌 글을 완전히 다른 어군에 속하는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난제로 등장한다. 박찬기는 예를 들어 후기에서 “다른 작품의 몇 배의 노력이 들었다고”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난제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번역자들의 개성과 차이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소설의 시작 부분을 살펴보자.[1] 원문의 경우 첫 단락은 독어 단행본에서도 거의 2/3쪽을 차지하는 긴 단락이지만 단 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매우 치밀하게 짜여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설명한다. 귀족 작위까지 받은 대작가인 주인공은 명성에 걸맞은 ‘프린츠레겐트(왕자군주)가’라는 귀족적 주소를 가진 뮌헨의 안정된 자기 집을 떠나, 홀로 긴 산책, 즉 모험을 나선다. 길이가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두 번째 문장에서는 주인공의 현재 내적 상황이 상당히 긴박함을 묘사한다. 문장의 구조도 주목할 만한데, 주문을 정중앙에 위치시키고 그의 오전 상황 묘사를 원인으로서 앞쪽에 배치하고, 그러나 이것은 작가들의 보편적인 상황이었음을 고대에서 유래하는 인용을 통하여 일반화시켜 뒤쪽에 배치하고, 그가 점심이나 낮잠을 통해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다는 개인적 노력을 덧붙여 앞뒤 균형을 맞춘다. 주인공은 오전 내내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을 하였는데, 이날따라 “정신의 지속적 작용”을 억제할 수가 없고 또한 휴식이 될 수 있는 낮잠도 자지 못해 매우 예민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길고 복잡한, 수식절이 여럿 달린 문장을 통해서 주인공의 긴장과 흥분을 최고조로 팽팽하게 당겨진 포물선 속에서 전달받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내적, 외적 상황에 대한 묘사가 끝난 후 상대적으로 간결한 세 번째 문장에서는, 그래서 그는 이 산책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활력을 얻어 다시금 “쓸모 있는 저녁을 ersprießlichen Abend”를 보내고자 한다고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일단 긴장이 완화된, 무사한 귀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러한 외적, 내적 상황 묘사에 유사한 의미를 지닌 어휘들을 배치하여 반복의 효과를 주면서 긴장을 배가시킨다. 시대와 사회는 “위협하는 모양새 gefahrdrohende Miene”를 가지고 있으며 작가로서의 힘든 작업은 “위험하다 gefährlich”고 묘사하여 “위험 Gefahr”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데, 이는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단어이다. 주인공은 극도로 긴장된 작업을 하여 “과도하게 흥분되었으며 überreizt”, 흥분은 점심 식사로도 멈출 수 없었고 낮잠을 자서 덜 수도 없었다. 작품 전체의 내용을 고려하면 작가가 안정과 위기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사실은 이미 첫 문단에서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예술 작업 자체가 위험한 동력을 내포하고 있으며, 과잉 작동할 때 그의 안정된 현 상태를 위협하며 또한 작가로서 존경받는 지위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서 토마스 만 특유의 예술에 대한 이원론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니체와 프로이트의 동시대인으로서의 양가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첫 문단의 번역에서 어휘, 문장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위험 Gefahr”, 이와 대조되는 제어를 암시하는 어휘들의 일관된 의미망이 어떻게 번역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번역가들의 해석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긴 단락은 대체로 한국어 번역문에서는 짧은 여러 문장으로 나뉘어 번역되고 있다. 최초의 번역자인 박종서는 대체로 자유로운 번역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그는 첫 문단의 세 문장을 일곱 문장으로 옮기고 있다. 쉼표가 넷 있고 관계 종속절이 둘 있는 첫 문장을, 붙임표를 사용한 한 문장으로 옮겨 만연체의 특징을 살리는 듯하다가, 두 번째 문장은 네 개의 짧은 문장으로 잘라내어 가독성은 높아지나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상황 사이의 인과관계나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 작업의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차를 한잔하고 나서 교외로 발걸음을 옮겼다”(291)는 문장은 원문과 달리, 한참 앞당겨져 위치하여 전체 문단의 흐름에서 정지와 휴지를 표시하는 효과를 내어 긴박감이 내외적으로 고조되는 원문의 상황과는 달리 번역문은 한 번 휴지기를 갖게 된다.

이에 반하여 박찬기의 번역은 첫 단락을 다섯 문장으로, 두 번째 문장의 경우 세 문단으로 나누고 있다. 오전 작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과잉 흥분상태가 왔으며, 키케로를 인용하여 이는 고대로부터 작가에게는 흔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세 번째는 지금 낮잠마저 못 자게 되어 더욱 힘들다는 상황이 명료하게 서술되고 있어, 전체의 인과적 맥락이 상대적으로 원문에 충실하게 옮겨지고 있다. 또한 “대단히 위태로운 정세” 그리고 “위험스러운 오전 중의 노작”으로 번역하여 원문의 어휘 “위험 Gefahr”도 번역문에서 일관되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마지막 문장도 “하루 저녁을 유효하게 하여 주리라는 희망”으로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어 긴장의 대조가 잘 드러난다.

이후에 나온 곽복록의 번역은 다시 자유로운 번역의 원칙을 취하여 “오전 중 내내 쓰던 작품 내용이 매우 골치 아픈 것이고 또 신경을 피로하게 하는 일 인데다가, 요즈음의 세상 돌아가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지라”라고 주인공의 현 상태의 원인을 세 가지로 설명하는데, 첫 번째 근거는 저술 작업 때문이 아니라 저술작품의 내용 때문이라고 번역자의 해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세 번째 근거는 번역자가 창의적으로 덧붙인, 원문에 없는 내용이다. 이로 인하여 개인적 상황은 사회적 상황에도 근거를 갖게 된다. 곽복록의 경우는 원문의 일관된 과거형 서술 시제를 때로는 과거형으로 때로는 현재형으로 번역하여 변화를 준 점도 눈에 뜨인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가독성이 높은 번역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홍성광의 경우 박찬기와 유사하게 다섯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지만, 붙임표가 아니라 쉼표를 적절하게 사용하며, 더 많이 사용되는 어휘들을 사용하여, 독자가 읽기 쉽고 이해하기 수월한 번역을 하고 있다. 특히 긴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쉼표나 “때문에”, “그래서” 등을 반복하여 사용하여 맥락의 이해를 돕고, 역자 각주를 도입하여 상황에 대한 해설을 제공한다. 위험을 지시하는 어휘들은 “불길한 조짐”, “몸에 무리가 가는 힘겨운 작업”, “저녁을 보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구체적 상황에 맞춘 어휘들로 옮기거나 신체적 인과관계로 해석되어 전체적 맥락보다는 작은 범위에서 밀도 있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이 소설 전체에 관통하는 “낯선 fremd”이라는 어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낯섬은 “낯선 신”뿐 아니라 “낯선 남자들 der Fremde“(뮌헨에서 본 낯선 남자 – 배에서 본 화장한 노인 – 곤돌라 뱃사공 – 타치오 – 리도의 유랑가수)로 인물군의 성격화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인물군에는 예술성, 퇴폐, 몰락, 병, 죽음, 동성애의 이미지가 부가되고 세기말의 데카당스 분위기 속에서 반대 극에 서 있는 시민성, 성공, 건강, 삶, 이성애 등과 대립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이 어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아폴론적 원칙에 맞서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형상화하고, 낯선 문화, 낯선 에로스, 낯선 문화의 일관된 연관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낯선 자들은 곽복록에게서는 “낯선 사나이”(23) - “미지의 사나이”(24) - “생면부지의 사나이”(37) - “손님”(7) - “알지도 못하는 사람”(79) - “이 알지 못하는 나그네"(81) 등으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박찬기는 “낯선 사나이”(121) - “낯설은 사나이”(121) - “낯설은 사람”(141) - “알지 못하는 사람”(203) - “이국적인 것”(206)으로 번역하여 어휘들의 연관성과 유사성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이점은 “Fremdländischen”(8) - “Fremdenpoesie”(467) - “Fremdheit”(489) - “Fremdheit”(496) - “Fremden”(503) 등의 관련 어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곽복록이 “외국인”(23) - “이국적인 정서를 풍기는 멜로디”(40) - “귀에 익지 않은”(58) - “서먹서먹함”(65) - “객지”(71)로 번역하고 있다면, 박찬기는 “외국인”(121) - “외국 노래”(145) - “귀에 낯설기 때문에”(171) - “낯설음”(181)으로 번역하고 있다. 의역의 경우 놓여있는 문맥 속에서 우리말에 동화되어 독자가 구체적인 개별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큰 틀에서 공통된 흐름 찾기는 아주 꼼꼼한 독서에서나 가능하다. 이보다 직역에 가까운 번역은 작품을 관통하는 흐름이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며 작품 속에 감추어진 다의성을 외국의 독자에게 더욱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다.


2.2 문화적 차원

토마스 만 작품의 수용과 해석에서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1975년에 작가의 사후 20년이 지나면서 작가의 일기가 공개된 이후로 새로운 주제들, 즉 성이나, 성적 정체성 혹은 동성애에 관한 연구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국내의 경우 장성현의 <고통과 영광 사이에서>(2000)가 이런 방향의 연구의 물고를 텄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세계적 명성과 당대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를 고려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성향을 은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어휘, 개념이나 인물군, 시공간 분위기의 특징 등을 통해 계속 드러내고 있다. 이 문제는 번역에서도 중요한데, 즉 작품 속의 동성애에 대한 다의성과 암시를 어떻게 옮겼는가를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쉔바흐가 타치오에게 품는 동성애적 에로스는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다의적으로 표현되었다. 박종서, 박찬기, 곽복록, 이정태 등의 2000년대 이전 번역에서는 이러한 동성애들이 대체로 이성애로 바뀌어 번역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주인공 아쉔바흐가 베네치아에 갔을 때 미래에 겪게 될 동성애를 암시하는, 추근대는 뱃사공 노인의 말 중 중성명사로 표현된 “Liebchen, dem allerliebsten, dem schönsten Liebchen ...”(26)의 번역을 들 수 있다. 박종서는 “귀여운 아씨에게, 정말 귀엽고 정말 미인에게”(310)로, 박찬기는 “귀여운 아가씨, 아름답고 어여쁜 아가씨에게”(141)로, 이정태도 “정말 귀엽고, 정말 미인에게, 귀엽고 아름다운 아씨에게”로, 비교적 뒤에 나온 박동자의 번역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애인에게”(444)로 이성애로 치환시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이성애로의 변환은 오역의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일찌감치 노벨문학상 수상을 중심으로 지성적 작가, 독일 전통문화의 대변자, 양심적 도덕가, 위엄을 갖춘 대가로 굳어져 있는 데에도 기인한다. 또한 한국 문화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입장도 폐쇄적이라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성애의 하나로 논의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수용국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동성애를 암시하는 다의적 어휘나 구문, 문장들이 이성애적 에로스로 변환되어 수용 가능하게 번역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번역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곽복록이 “귀여운 사람, 제일 귀여운 사람에게, 제일 예쁜, 귀여운 나의”(37-38)로 번역하여 남성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하여 2000년대 이후의 번역들은 이러한 동성애적 함의를 은폐하지 않고 살리는 번역을 하고 있다. 홍성광은 “우리의 찬사를, 우리의 찬사를 연인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멋진 연인에게...”(315)로 번역하여 “연인”이라는 어휘를 통하여 다의성을 살리고 있고, 박종대는 “애인”(238)으로, 윤순식은 “사랑하는 연인”(40)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언어의 차이로 인한 다소의 난점은 존재하는데, 토마스 만이 “lieb”와 “schön”이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을 활용하다가, 실제로 아쉔바흐가 타치오를 처음 볼 때도 이 형용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본에서 “연인”, “애인”이라는 일반 명사를 사용한 경우에는 타치오를 묘사할 때의 원문이 같은 어휘였고, 그래서 훨씬 전에 후의 사랑을 미리 예시했음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홍성광은 “소년의 외모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322) 놀랐고, 얼굴 묘사 중 특히 “사랑스런 입”(322)으로 번역하여 앞서의 “연인”과 같은 어휘였음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이 번역본은 에로스와 예술 간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위의 구절을 “이상하게 결실을 맺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354)로, 그래서 “마치 한바탕 방종한 성적인 관계를 갖고 난 뒤 양심이 불평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354)로, 그리고 4장의 마지막 문장은 “너를 사랑해”(362)로 자연스럽게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의 변화는 그간 한국 사회의 문화도 많이 변모하여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수용 태도가 바뀐 데에도 기인한다.


3. 평가와 전망

한국에서 토마스 만은 독어권 작가 가운데 누구보다도 큰 인정을 받는 작가이며 작품도 꾸준히 새롭게 번역되고 있다. 이 작품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세계문학전집이나 토마스 만 대표 단편선에 자주 포함된다. 특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과거보다 시의성이나 중요성이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가 있었으며 최근에는 홍성광, 윤순식, 박종대 같은 전문가 내지는 전문번역가들의 번역본이 많이 읽히고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라는 제명을 단 최근의 번역들은 그간의 연구와 번역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또한 독자들의 문화적 취향이 변함에 따라 새롭게 해석된 번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토마스 만의 대표 단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번역 역시 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리고 내용의 다의성과 풍부함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59): 붸니스에서의 죽음. 정음사.
박찬기(1960): 베니스에서의 죽음. 서문당.
곽복록(1976): 베니스에서 죽다. 고려출판사.
홍성광(2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최윤영
  • 각주
  1.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하였음. Mann, Thomas(2017): DerTod in Venedig. Frankfurt a. M.: S. Fischer.

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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