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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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br><font size="1">(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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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페에터 슐레밀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아달베르트 폰 샤밋소 || 丘冀星 || 1960 || 乙酉文化社 || 60-110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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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구기성(1960)" />[[#구기성(1960)R|1]] || 페에터 슐레밀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아달베르트 폰 샤밋소 || 丘冀星 || 1960 || 乙酉文化社 || 60-110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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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잃어버린 그림자 || 잃어버린 그림자 || 陽文文庫 87 || 샤밋소 || 丘冀星 || 1960 || 陽文社 || 17-106 || 편역 || 완역 || 1960년 초판발행, 1963년 재판발행
 
| 2 || 잃어버린 그림자 || 잃어버린 그림자 || 陽文文庫 87 || 샤밋소 || 丘冀星 || 1960 || 陽文社 || 17-106 || 편역 || 완역 || 1960년 초판발행, 1963년 재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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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페에터 슐레밀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아달베르트 폰 샤밋소 || 丘冀星 || 1974 || 乙酉文化社 || 60-110 || 편역 || 완역 ||
 
| 4 || 페에터 슐레밀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아달베르트 폰 샤밋소 || 丘冀星 || 1974 || 乙酉文化社 || 60-110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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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페터 슐레밀의)기이한 이야기 || || 아델베르트 폰 샤밋소 || 양재우 || 1988 || 명지사 || 7-164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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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양재우(1988)" />[[#양재우(1988)R|5]]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페터 슐레밀의)기이한 이야기 || || 아델베르트 폰 샤밋소 || 양재우 || 1988 || 명지사 || 7-164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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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이삭줍기 3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최문규 || 2002 || 열림원 || 9-132 || 완역 || 완역 || 2002년 초판 발행, 2019년 개정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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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최문규(2002)" />[[#최문규(2002)R|6]]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이삭줍기 3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최문규 || 2002 || 열림원 || 9-132 || 완역 || 완역 || 2002년 초판 발행, 2019년 개정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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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 2 ||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이미화 || 2006 || 이룸 || 9-107 || 편역 || 완역 || 2006년 이룸 출판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초판 발행되었다가 2013년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환상문학 걸작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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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이미화(2006)" />[[#이미화(2006)R|7]] ||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 2 ||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이미화 || 2006 || 이룸 || 9-107 || 편역 || 완역 || 2006년 이룸 출판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초판 발행되었다가 2013년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환상문학 걸작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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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 책벌레만 아는 해외 걸작 2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배인섭 || 2008 || 아롬미디어 || 7-155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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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배인섭(2008)" />[[#배인섭(2008)R|8]] ||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 책벌레만 아는 해외 걸작 2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배인섭 || 2008 || 아롬미디어 || 7-155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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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Boo classics, 부클래식 17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박광자 || 2011 || 부북스 || 7-116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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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박광자(2011)" />[[#박광자(2011)R|9]]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Boo classics, 부클래식 17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박광자 || 2011 || 부북스 || 7-116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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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지식을 만드는 지식 소설선집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임한순 || 2011 || 지식을만드는지식 || 3-139 || 완역 || 완역 ||
 
| 10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지식을 만드는 지식 소설선집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 임한순 || 2011 || 지식을만드는지식 || 3-139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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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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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1814년에 펴낸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는, 1960년에 구기성이 처음으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하였고, 동일 역자는 같은 해에 양문사에서 <잃어버린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961년에는 양문사에서 <그림자를 판 사나이>란 제명으로 다시 출간하였다. 이후 긴 휴지기를 거쳐 1988년에 양재우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그리고 1995년에 임한순이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번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2000년대 이후에는 5번이나 새로 번역될 정도로 이 작품은 한국에서 널리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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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본들에서는 우선 번역작품 제목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최초의 번역본들에서는 ‘그림자’를 중심으로 의역이 행해졌는데, 이는 영어 번역본(예: Joseph Jacobs의 영역본 <페터 슐레밀, 그림자 없는 사나이 Peter Schlemihl: The shadowless man> (1899, London: Allen),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일본어 번역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양재우, 임한순의 번역 이후로 최근의 번역들은 원제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다. 2001년에 오용록이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로, 2006년에 이미화가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로>로, 2011년에 박광자가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로 번역하였다. 이때 제목의 “wundersam”이란 다의적 어휘는 “기이하고”, 혹은 “신기하고”, “놀라운”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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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독일의 낭만주의 시기에 쓰인 대표적인 창작동화, 예술동화로서 한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각색이 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원작은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동화로 각색되어 널리 읽혔고, 수용사를 보더라도 김영하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2003)라는 단편소설이나 최근에 큰 인기를 끈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20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장르로 수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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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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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제목만큼이나 작품의 번역도 매우 상이하고 다채롭게 이루어졌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한편으로는 동화, 특히 아동 동화의 영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때 번안에 가까울 정도로 변형이 심하다는 특징이 있고,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에 와서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작품으로서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져 본문뿐 아니라 관련 편지들이 같이 번역되었고 많은 각주, 긴 역자 해설과 더불어 출판되었고,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보다 큰 문학사적 맥락 속에서도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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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성(1960)|1) 구기성 역의 <잃어버린 그림자>(1960)]]<span id="구기성(1960)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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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성의 번역본은 세로 판형으로 인쇄되어 있고 단기 4293년(서기 1960년)에 나왔다고 하나 전반적으로 현대에 읽어도 큰 부담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성실하고 잘 읽히는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작품과 관련된 4편의 편지를 모두 번역해 맨 앞부분에 싣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흥미롭게도 작품의 출처와 주인공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가상의 편지들을 같이 출판하였고. 독일에서도 이 편지들은 작품의 병행글(paratext)로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비록 이 편지들의 의미를 역자 서문에서 따로 해석하고 있지 않으나 최초의 번역에서 이를 같이 출판한 것은 언급할 만하다. <페터 슐레밀의 이상한 이야기>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본 이야기는 “나로서는 몹시 고생스러웠으나, 말하자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항해를 마치고 우리는 마침내 항구에 도착했읍니다.”(26)의 “...습니다”체를 택하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독일어 원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옮기고 있다. 주인공이 작가를 불러내어 말을 거는 부분들은 “친애하는 벗이여, 내가 참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온갖 일의 고통스러운 반복은 생략케 해 주십시오.”(38)라고 정중하게 옮기고 있다. 형식 면에서도 원문에 충실하며 문장이나 문단의 길이 등도 맞추어 번역하고, 대화 등은 문단 내에서 “- - ”와 “「」”, “<>”를 중복하여 사용하고 표기하고 있다. 경어법에 있어서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분이나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서로 존중하는 어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악마에게 일부러 하대하는 장면조차도 “<여보, 여보! 보시오! 대체 당신은 당신의 그림자로도 충분치 않소? 거 참 아주 이상야릇한 흥정도 다 있소.>”(33)라고 말하게 한다. 그 외에도 당대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힛씨히, 넨하우센 등을 사용하여 시대적 격차가 드러나며, 각주를 사용하지 않고 “칠리장화(七里長靴)”, “북도(北道)” 등의 한자를 살린 표기를 통해 해설기능을 하여 독자가 술술 무리 없이 읽게 만들고 있다. <아델베르트의 동화>를 같이 싣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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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1988)|2) 양재우 역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1988)]]<span id="양재우(1988)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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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나온 양재우의 번역본은 단행본의 형식으로 출간되었으며, 역자는 긴 역자 후기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 샤밋소를 후기 낭만파 작가로, 동화를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장르로 소개한다. 시작문인 “비록 나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게 고생스러웠으나 무사한 항해 끝에 우리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7)에서 보듯 “...했다” 체로 번역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원문 텍스트를 성실하게 옮기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역자가 가독성을 위하여 문장을 크게 변형하기도 하였다. 간혹 오역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샤미소에게 원고를 전하는 이유 번역에서 그러하다. 즉 자기가 죽더라도 세상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전하는 부분을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연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학문을 연구함에 있어서 나의 연구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에서일세.”(147)라고 본인의 해석을 덧붙여 길게 옮기고 있다. 양재우는 작품과 관련된 편지 네 통과 삽화들은 작품을 모두 번역한 뒤에 설명 없이 삽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오늘날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현대화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나 푸케(Fouqué)를 후쿠에라고 옮기는 등 때로 옛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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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한순 역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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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임한순은 <기적의 현실, 환상의 동화 III>라는 동화모음집의 마지막 단편으로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역자는 후기에서 시민적 주인공, 사실적인 체험 묘사, 정밀한 묘사 등을 들어 기적적인 현상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데서 작품의 특징을 보고 있고, 이러한 점을 살려 번역하고 있다. 임한순 번역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고 정확하며 무엇보다도 19세기에 나온 작품다운 어휘, 문장, 문체 등을 우리말에서도 살리려 시도한 데 있다. 원문의 긴 단락들을 우리말 번역문에서도 길게 살리려 했고 문장들도 다른 역자들과 원문의 길이를 유지하려 했다. 대화의 경우도 줄바꾸기를 하지 않고 “-”을 사용하여 단락 안에 집어넣었다. 또한 어휘에 있어서도 “나리”, “시종”, “알건달”, “물론입죠” 등을 사용하여 시대성을 살리려 했으며 신분에 따른 경어체도 뚜렷이 구분하여 사용하고 문체 역시 고어투를 살리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역자는 작품 속에 풍부한 각주들을 달아 시공간적으로 거리가 있는 작품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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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순은 이후 자신의 번역본을 스스로 보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수정하여 2019년에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라는 단행본으로 재출간하였다. 대중성과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라 이미 역자들이 동일본을 다른 장정이나 양식으로 재출간하거나 혹은 큰 전집 속에 재수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임한순의 경우 전체적인 검토를 통하여 꼼꼼하게 수정을 가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1995년의 “...했다”체는 2019년에는 “...했네”체로, 주인공이 샤미소에게 보내는 편지체로 바뀌었고 어휘나 문장들도 보다 자연스럽게 세심하게 수정되었다. 임한순의 번역본은 네 편의 편지와 삽화를 작품 앞에 모두 싣고 있으며, 2019년의 번역본에서는 순서를 바꾸어 샤미소가 페터 슐레밀에게 보낸 편지를 맨 앞으로 보내고 나머지 편지들은 연대기 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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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용록 역의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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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오용록의 번역은 추천사에서 중역본이나 축약본이 아닌 새 번역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번역 역시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문체나 분위기, 언어에 있어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한 번역가의 자의성이 두드러지는 번역으로서 마치 성인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처럼 읽힌다. 역자는 읽기 쉽도록 원작의 큰 문단들을 수많은 작은 문단들로 나누어 번역하였고 부분적으로 의역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원작을 변형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시점을 수미일관되게 견지하고 있으며, 글의 직접적인 수신자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로 상정하고 있고, 그에 걸맞은 어투를 사용한다. 또한 주인공 ‘나’에게 집중하여 많은 복잡한 부분들을 단순화하고 있다. 작품의 첫 문장도 원문에 “우리”라고 되어 있지만 “나”로 고쳐 “나는 몹시 힘들었지만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도착했다.”로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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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역본의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일러스트를 들 수 있다. 독일어 원작에서도 삽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오용록의 번역본에서 이 일러스트는 글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단행본은 “향기 나는 이야기”라는 시리즈 안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틀이 지시하듯 완전히 새로운 삽화가의 그림들을 가득 넣어 작품의 글을 보조하고 있다. 쪽마다 줄거리와 관련 있는 그림들을 삽입하고 있는데, 대체로 은근한 파스텔 색상에 길게 늘여 그려진 인물들, 단순하고 추상화된 사물과 배경을 담은 아름답고 수려한 수채화들이다. 작품의 한 면 전체, 혹은 펼쳤을 때 두 면 대부분이 그림으로 채워진 경우도 드물지 않아 그림이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러스트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감상적이며 작품 속의 갈등이 완화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해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오용록의 한국어 번역본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외국에서도 일러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작품이다. 이 번역본은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고 있다. 오용록은 2011년에 <독일문학산책>이란 제명 하에 독일 문학의 대표 단편들을 번역하여 싣고 있는데, 이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를 일러스트 없이, 또한 앞서의 번역과 큰 변형 없이 글만 맨 앞에 싣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역자 해설을 뒤에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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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규(2002)|5) 최문규 역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2002)]]<span id="최문규(2002)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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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연구자인 최문규가 번역한 2002년 번역본은 최근에 나온 번역으로서는 예외적으로 그간 통용된 의역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최문규는 앞서 나온 오용록의 번역과 달리 전체적으로 더욱 원문에 충실한 꼼꼼한 번역을 하고 있으며, 이 작품을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 독문학계에서 당시 낭만주의 연구가 심화되면서 시대, 작가, 작품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게 된 점이 번역본에서도 많이 반영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역자가 이제까지 이 작품과 연관되어 같이 출판된 편지들의 의미를 밝혀주는 데에서 드러난다. 이는 작품의 해석과도 직결된다. 최문규는 원래 4편의 편지 중 두 편만을 번역하는데, 당대에 실존했던 낭만주의 작가 푸케와 샤미소가 각각 친구였던 변호사 히치히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로 창작된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슐레밀이라는 인물이 실존했었고 그 자신이 직접 쓴 원고를 샤미소에게 건네주었는데, 이를 다시 푸케에게 전달해 푸케가 책을 편집했다는 가상의 맥락을 만들어낸다. 편지에는 추신으로 삽화까지 언급하며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과 가상의 관계 속에서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았다거나 한걸음에 칠 마일을 가는 장화라는 독자들이 믿기 어려운 사건들도 개연성의 경계가 의문시되며 전달이 되고 있다. 최문규는 역자 후기에서 이 편지들의 의미를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특징을 들어 다음처럼 설명한다. 즉 이 작품 속에서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가 “민담과 동화에서 엿볼 수 있는 환상적 요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구분을 해체시키는 숨바꼭질”인 낭만주의적 수법을 통해서 교차하고 있어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번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상의 편지들과 더불어 본문에서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할을 하는 부분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작가 샤미소에게 말을 던지는 부분이다. 작가가 주인공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외부에 존재하는 작가를 친구로 불러내어 말을 전하고 심지어 그가 죽었다고 보고한다. 이렇듯 작품 내에서도 작가와 인물의 관계를 통해 작품의 경계, 개연성의 경계를 성찰케 만드는 부분들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주인공은 처음 욘 씨네 집에서 낯선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망원경, 양탄자, 텐트 등 많은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고 든 놀람과 불안감을 다음과 같이 친구에게 토로한다. “Wenn ich Dir nicht beteuerte, es selbst mit eigenen Augen angesehen zu haben, würdest Du es gewiss nicht glauben.” 이 부분은 오용록의 번역에서는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18)라고 작가라는 중간 전달자가 생략되고 있다. 최문규는 “내가 자네에게 이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분명히 보았음을 맹세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아마 그 사실을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23)라고 “자네”라고 불린 작가 샤미소에게 거는 말임을 강조하여 옮기고 있다. 주인공이 독자들에게 샤미소의 방을 보여준다든지 혹은 “사랑하는 벗 샤미소”라고 부르며 자신의 번민과 갈등을 털어놓는 부분들은 허구인 텍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텍스트의 완결성이나 폐쇄성 혹은 저자 주체성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이질적인 부분들인데, 역자는 이러한 부분들을 강조함으로써 작품의 낭만주의적 특징을 십분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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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2006)|6) 이미화 역의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2006)]]<span id="이미화(2006)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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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는 2006년 차경아가 펴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 II>에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으며, 2013년 같은 이가 펴낸 <환상문학 걸작선2>에도 삽입시키고 있다. 역자는 작가가 쓴 편지들이나 유명 삽화들 없이 본문만 옮기고 있으며 역자 해설도 별도로 달지 않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전체적으로 “...했네” 체로 옮겨 친구에게 전하는 이야기인 듯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 번역한 것이다. 즉 번역은 ”내게는 무척 힘겨운 항해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사히 항해를 마친 후, 마침내 항구에 도착했네.”(9)로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번역본은 원문의 긴 문장들을 짧게 끊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동시대의 어휘나 문체들을 많이 사용하여 현대화하고 있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비교했던 작가에게 전하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다루는 문장은 “맹세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일세. 그게 아니라면 자네도 분명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15)로 두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맹세한다는 말을 부사어로 바꾸어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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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섭(2008)|7) 배인섭 역의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2008)]]<span id="배인섭(2008)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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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나온 배인섭의 번역은 역자의 자의성과 창의성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번역본이다. 독문학박사인 배인섭은 장르를 청소년용 동화라 해도 될 정도로 원작을 많이 변형해 옮기고 있다. 예를 들어 원작에 없는 11장의 소제목을 새로 만들어 달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원작의 문장들은 대폭 축약하거나 단순화하여 대강의 의미만 살리고 있다. 오용록과 마찬가지로 작품과 관련된 편지글은 담고 있지 않고, 작품의 낭만주의 특징을 드러내는 샤미소에게 말을 거는 부분들은 거의 모두 생략하고 단순화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부분은 “이 모든 장면들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내가 감히 그것을 믿으라고 말할 수 없었을거야.”(16)라고 옮겨진다. 그 외에도 작품의 진행을 멈추면서 주인공 페터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며 샤미소에게 호소하는 부분들은 독자에게 건네는 일반적인 문장들로 바뀌어 있다. 역자는 작품의 줄거리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대화들을 강조하여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본 역시 일러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는 동화풍으로 1장에 2-3장 정도로 담겨 있고, 특히 오용록의 일러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특히 그림자와 명암의 대비를 강조하고 있어 주인공의 고통과 갈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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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자(2011)|8) 박광자 역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2011)]]<span id="박광자(2011)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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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나온 박광자의 번역본은 제목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보듯 더욱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꾀하고 있고, 특히 ‘편지’라는 소제목으로 이 작품과 관련된 네 편의 편지들을 맨 앞에 모두 연대순으로 싣고 있어 독자들은 작품을 둘러싸고 작가가 가상으로 만든 전체적인 맥락을 모두 읽어볼 수 있다. 마지막 편지는 긴 시 형태로 “우리가 그림자에게 본질을 빌려주고는 이제 본질을 그림자와 혼동하고 있어.”라는 작가 스스로가 행한 그림자와 본질의 교환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다. 또한 임한순의 역서처럼 크룩생크가 그린 여러 삽화도 모두 담고 있다. 다른 번역본들이 “...했다”(오용록, 최문규)체를 사용하여 소설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면, 박광자의 번역본은 구기성처럼 “...했습니다”체를 사용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독자와의 거리를 다소 늘이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식으로 수식어가 많이 딸린 긴 문장들을 충실하게 번역하면서도 독자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하여 무리 없이 잘 읽히도록 번역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의 작가에게 말을 거는 문장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고 맹세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도 그것을 믿지 못할 겁니다.”(25)라고 번역하고 있다. 박광자의 번역본은 최문규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원문에 충실하고, 보다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잘 읽힌다. 특히 작가가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작품의 마지막 구절이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문규의 경우 일반인들에게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며 교훈을 전달하려고 다소의 변형을 가하고 있으나, 박광자의 경우 원작에서처럼 친구에게 당부하는 말로 한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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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작품의 집필 의도를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이며, 각 번역본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나기에 비교를 위하여 번역본들을 나란히 아래에 옮긴다. 역자들의 문체뿐 아니라 내용도 편차를 보여주는데, 이때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혼자 사는 것과 세상과 어울려 사는 것을 선택지로 보는지, 혹은 각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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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Du aber, mein Freund, willst Du unter den Menschen leben, so lerne verehren zuvörderst den Schatten, sodann das Geld. Willst Du nur Dir und Deinem bessern Selbst leben, o so brauchst Du keinen 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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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성: “헌데, 그대 나의 벗이여, 그대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림자를,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을 배우십시오. 만일 그대가 오로지 그대와 그대의 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한다면, 오 그대에게 무삼 충고가 필요하리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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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그러나 나의 친구여! 자네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될 것이며, 황금보다는 우선 그림자를 더욱 아끼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일세. 자네가 어떻게 하면 자네 자신에게 보다 의미 있는 남은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오, 자네에게 내가 과연 무슨 충고를 들려줄 수가 있단 말인가?”(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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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순: “그러나 여보게 친구, 자네가 만약 사람들과 더불어 살 생각이라면 가장 먼저 그림자를,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걸세. 자네를 위해, 자네의 좀더 나은 자신만을 위해 살 생각이라면, 아아, 그렇다면 자네는 아무런 충고도 필요없네.”(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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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록: “끝으로 내 친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그 무엇보다 자기 그림자를, 그리고 그 다음으로 돈을 소중히 여겨라. 그러나 혼자 향상된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이런 충고는 필요없을 것이다.”(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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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규: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네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면 말이지. 물론 그런 충고는 자네에겐 필요없을 걸세.”(13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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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섭: “샤미소, 네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그림자의 가치를 인정해야 해. 그리고 그걸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지. 그 다음이 돈이야. 하지만 샤미소, 네가 오로지 너 혼자만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네 자신만 잘 살겠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너에겐 어떤 충고도 필요하지 않을 거야.”(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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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자: “그리고 친구, 당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려면 우선 일차적으로 그림자부터,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 알아야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만을 위해서, 보다 나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 한다면 이런 충고는 필요가 없습니다.”(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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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구기성, 임한순, 박광자의 번역이며, 양재우는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고, 오용록은 친구들에게로 수신범위를 넓힌다면, 배인섭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삶의 경우를 가치절하하는 번역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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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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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이주한 이민작가이자 또한 낭만주의 시대의 새로운 창작동화 작가였던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대표작인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는 최근에 들어와 더욱 각광을 받고 많이 읽히고 동시에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초창기에 주로 줄거리와 사건 위주로 옮긴 번역본들이 나왔고 아동문학으로 소화되었다면, 양재우, 임한순의 번역 이후로는 진지한 독일 문학의 고전으로 다루어졌고, 최문규의 번역 이후로는 근대사회 비판이라는 사회사적 맥락뿐 아니라 독일 문학사에서 낭만주의 문학관을 담은 대표 작품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악마와의 계약, 현대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 그림자 상실, 세계 여행, 개인의 고립, 자연과학의 의미 등은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최근에 동성애, 이주자, 혹은 <파우스트> 등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해석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앞으로 이를 반영한 새로운 번역, 또한 더 다양한 형식의 응용 작품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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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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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성(1960): 잃어버린 그림자. 양문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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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1988):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명지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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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순(1995):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서울대학교출판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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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록(2001):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 이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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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규(2002):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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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2006):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 이룸.<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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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섭(2008):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아롬미디어.<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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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자(2011):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부북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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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1일 (일) 03:50 기준 최신판

아델베르트 샤미소(Adelbert Chamisso, 1781-1838)의 소설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
작가아델베르트 샤미소(Adelbert Chamisso)
초판 발행1814
장르소설


작품소개

1814년에 발표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페터는 영국의 한 부호 집에 갔다가 주머니에서 모든 것을 꺼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낯선 사나이를 만나고 그의 제안으로 자신의 그림자와 돈주머니를 바꾼다. 그러나 그림자가 없다는 것 때문에 곧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배척당한다. 이후 그는 벤델이라는 충직한 하인의 도움으로 다시 인간사회에 편입하고자 시도하며 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라스커라는 하인에게 배반을 당하고 애인에게도 버림받는다. 낯선 사나이의 정체는 악마였으며 다시 나타나 페터에게 그림자와 영혼을 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페터는 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한다. 이후 그는 우연히 한 번에 7만 마일을 가는 장화를 손에 넣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로서 외롭지만 자족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 소설은 독일 낭만주의의 창작동화의 하나로서 한편으로는 사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 당시 점차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자본주의 사회의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1960년에 구기성에 의해 <그림자를 판 사나이>로 처음 번역되었다(을유문화사).


초판 정보

Chamisso, Adelbert von(1814):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 In: Fouqué, Friedrich Baron de la Motte(ed.):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 Mitgeteilt von Adelbert von Chamisso. Nürnberg: J. L. Schra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페에터 슐레밀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아달베르트 폰 샤밋소 丘冀星 1960 乙酉文化社 60-110 편역 완역
2 잃어버린 그림자 잃어버린 그림자 陽文文庫 87 샤밋소 丘冀星 1960 陽文社 17-106 편역 완역 1960년 초판발행, 1963년 재판발행
3 그림자를 잃은 사나이 그림동화 소년 소녀 세계 명작 2 샤밋소 이옥희 1973 신한출판사 110-142 편역 편역
4 페에터 슐레밀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아달베르트 폰 샤밋소 丘冀星 1974 乙酉文化社 60-110 편역 완역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페터 슐레밀의)기이한 이야기 아델베르트 폰 샤밋소 양재우 1988 명지사 7-164 완역 완역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삭줍기 3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최문규 2002 열림원 9-132 완역 완역 2002년 초판 발행, 2019년 개정판 발행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 2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이미화 2006 이룸 9-107 편역 완역 2006년 이룸 출판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초판 발행되었다가 2013년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환상문학 걸작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발행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책벌레만 아는 해외 걸작 2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배인섭 2008 아롬미디어 7-155 완역 완역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Boo classics, 부클래식 17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박광자 2011 부북스 7-116 완역 완역
10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지식을 만드는 지식 소설선집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임한순 2011 지식을만드는지식 3-139 완역 완역
11 영혼의 두 그림자 영혼의 두 그림자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윤호은 2012 새터 7-136 완역 완역
12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 독일 단편문학 산책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오용록 2013 신아사 9-64 편역 완역
13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 환상문학 걸작선 2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이미화 2013 자음과모음 9-103 편역 완역 2006년 이룸 출판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초판 발행되었다가 2013년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환상문학 걸작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발행
14 그림자 없는 사나이 그림자 없는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윤호은 2014 새터 7-136 완역 완역
15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큰글씨책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임한순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3-139 완역 완역
16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삭줍기 환상문학 1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최문규 2019 열림원 9-138 완역 완역 2002년 초판 발행, 2019년 개정판 발행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1814년에 펴낸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는, 1960년에 구기성이 처음으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하였고, 동일 역자는 같은 해에 양문사에서 <잃어버린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961년에는 양문사에서 <그림자를 판 사나이>란 제명으로 다시 출간하였다. 이후 긴 휴지기를 거쳐 1988년에 양재우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그리고 1995년에 임한순이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번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2000년대 이후에는 5번이나 새로 번역될 정도로 이 작품은 한국에서 널리 수용되었다.

새로운 번역본들에서는 우선 번역작품 제목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최초의 번역본들에서는 ‘그림자’를 중심으로 의역이 행해졌는데, 이는 영어 번역본(예: Joseph Jacobs의 영역본 <페터 슐레밀, 그림자 없는 사나이 Peter Schlemihl: The shadowless man> (1899, London: Allen),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일본어 번역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양재우, 임한순의 번역 이후로 최근의 번역들은 원제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다. 2001년에 오용록이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로, 2006년에 이미화가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로>로, 2011년에 박광자가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로 번역하였다. 이때 제목의 “wundersam”이란 다의적 어휘는 “기이하고”, 혹은 “신기하고”, “놀라운”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의 낭만주의 시기에 쓰인 대표적인 창작동화, 예술동화로서 한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각색이 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원작은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동화로 각색되어 널리 읽혔고, 수용사를 보더라도 김영하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2003)라는 단편소설이나 최근에 큰 인기를 끈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20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장르로 수용되고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번역 제목만큼이나 작품의 번역도 매우 상이하고 다채롭게 이루어졌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한편으로는 동화, 특히 아동 동화의 영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때 번안에 가까울 정도로 변형이 심하다는 특징이 있고, 무엇보다도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에 와서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작품으로서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져 본문뿐 아니라 관련 편지들이 같이 번역되었고 많은 각주, 긴 역자 해설과 더불어 출판되었고,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보다 큰 문학사적 맥락 속에서도 읽혔다.


1) 구기성 역의 <잃어버린 그림자>(1960)

구기성의 번역본은 세로 판형으로 인쇄되어 있고 단기 4293년(서기 1960년)에 나왔다고 하나 전반적으로 현대에 읽어도 큰 부담이 없을 만큼 세련되고 성실하고 잘 읽히는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작품과 관련된 4편의 편지를 모두 번역해 맨 앞부분에 싣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흥미롭게도 작품의 출처와 주인공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가상의 편지들을 같이 출판하였고. 독일에서도 이 편지들은 작품의 병행글(paratext)로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비록 이 편지들의 의미를 역자 서문에서 따로 해석하고 있지 않으나 최초의 번역에서 이를 같이 출판한 것은 언급할 만하다. <페터 슐레밀의 이상한 이야기>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본 이야기는 “나로서는 몹시 고생스러웠으나, 말하자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항해를 마치고 우리는 마침내 항구에 도착했읍니다.”(26)의 “...습니다”체를 택하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독일어 원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옮기고 있다. 주인공이 작가를 불러내어 말을 거는 부분들은 “친애하는 벗이여, 내가 참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온갖 일의 고통스러운 반복은 생략케 해 주십시오.”(38)라고 정중하게 옮기고 있다. 형식 면에서도 원문에 충실하며 문장이나 문단의 길이 등도 맞추어 번역하고, 대화 등은 문단 내에서 “- - ”와 “「」”, “<>”를 중복하여 사용하고 표기하고 있다. 경어법에 있어서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분이나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서로 존중하는 어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악마에게 일부러 하대하는 장면조차도 “<여보, 여보! 보시오! 대체 당신은 당신의 그림자로도 충분치 않소? 거 참 아주 이상야릇한 흥정도 다 있소.>”(33)라고 말하게 한다. 그 외에도 당대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힛씨히, 넨하우센 등을 사용하여 시대적 격차가 드러나며, 각주를 사용하지 않고 “칠리장화(七里長靴)”, “북도(北道)” 등의 한자를 살린 표기를 통해 해설기능을 하여 독자가 술술 무리 없이 읽게 만들고 있다. <아델베르트의 동화>를 같이 싣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2) 양재우 역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1988)

1988년에 나온 양재우의 번역본은 단행본의 형식으로 출간되었으며, 역자는 긴 역자 후기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 샤밋소를 후기 낭만파 작가로, 동화를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장르로 소개한다. 시작문인 “비록 나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게 고생스러웠으나 무사한 항해 끝에 우리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7)에서 보듯 “...했다” 체로 번역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원문 텍스트를 성실하게 옮기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역자가 가독성을 위하여 문장을 크게 변형하기도 하였다. 간혹 오역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샤미소에게 원고를 전하는 이유 번역에서 그러하다. 즉 자기가 죽더라도 세상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전하는 부분을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연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학문을 연구함에 있어서 나의 연구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에서일세.”(147)라고 본인의 해석을 덧붙여 길게 옮기고 있다. 양재우는 작품과 관련된 편지 네 통과 삽화들은 작품을 모두 번역한 뒤에 설명 없이 삽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오늘날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현대화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나 푸케(Fouqué)를 후쿠에라고 옮기는 등 때로 옛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3) 임한순 역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1995)

1995년에 임한순은 <기적의 현실, 환상의 동화 III>라는 동화모음집의 마지막 단편으로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역자는 후기에서 시민적 주인공, 사실적인 체험 묘사, 정밀한 묘사 등을 들어 기적적인 현상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데서 작품의 특징을 보고 있고, 이러한 점을 살려 번역하고 있다. 임한순 번역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고 정확하며 무엇보다도 19세기에 나온 작품다운 어휘, 문장, 문체 등을 우리말에서도 살리려 시도한 데 있다. 원문의 긴 단락들을 우리말 번역문에서도 길게 살리려 했고 문장들도 다른 역자들과 원문의 길이를 유지하려 했다. 대화의 경우도 줄바꾸기를 하지 않고 “-”을 사용하여 단락 안에 집어넣었다. 또한 어휘에 있어서도 “나리”, “시종”, “알건달”, “물론입죠” 등을 사용하여 시대성을 살리려 했으며 신분에 따른 경어체도 뚜렷이 구분하여 사용하고 문체 역시 고어투를 살리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역자는 작품 속에 풍부한 각주들을 달아 시공간적으로 거리가 있는 작품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임한순은 이후 자신의 번역본을 스스로 보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수정하여 2019년에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라는 단행본으로 재출간하였다. 대중성과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라 이미 역자들이 동일본을 다른 장정이나 양식으로 재출간하거나 혹은 큰 전집 속에 재수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임한순의 경우 전체적인 검토를 통하여 꼼꼼하게 수정을 가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1995년의 “...했다”체는 2019년에는 “...했네”체로, 주인공이 샤미소에게 보내는 편지체로 바뀌었고 어휘나 문장들도 보다 자연스럽게 세심하게 수정되었다. 임한순의 번역본은 네 편의 편지와 삽화를 작품 앞에 모두 싣고 있으며, 2019년의 번역본에서는 순서를 바꾸어 샤미소가 페터 슐레밀에게 보낸 편지를 맨 앞으로 보내고 나머지 편지들은 연대기 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4) 오용록 역의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2001)

2001년의 오용록의 번역은 추천사에서 중역본이나 축약본이 아닌 새 번역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번역 역시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하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문체나 분위기, 언어에 있어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한 번역가의 자의성이 두드러지는 번역으로서 마치 성인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처럼 읽힌다. 역자는 읽기 쉽도록 원작의 큰 문단들을 수많은 작은 문단들로 나누어 번역하였고 부분적으로 의역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원작을 변형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시점을 수미일관되게 견지하고 있으며, 글의 직접적인 수신자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로 상정하고 있고, 그에 걸맞은 어투를 사용한다. 또한 주인공 ‘나’에게 집중하여 많은 복잡한 부분들을 단순화하고 있다. 작품의 첫 문장도 원문에 “우리”라고 되어 있지만 “나”로 고쳐 “나는 몹시 힘들었지만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도착했다.”로 시작하고 있다.

이 번역본의 두드러진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일러스트를 들 수 있다. 독일어 원작에서도 삽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오용록의 번역본에서 이 일러스트는 글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단행본은 “향기 나는 이야기”라는 시리즈 안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틀이 지시하듯 완전히 새로운 삽화가의 그림들을 가득 넣어 작품의 글을 보조하고 있다. 쪽마다 줄거리와 관련 있는 그림들을 삽입하고 있는데, 대체로 은근한 파스텔 색상에 길게 늘여 그려진 인물들, 단순하고 추상화된 사물과 배경을 담은 아름답고 수려한 수채화들이다. 작품의 한 면 전체, 혹은 펼쳤을 때 두 면 대부분이 그림으로 채워진 경우도 드물지 않아 그림이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러스트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감상적이며 작품 속의 갈등이 완화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해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오용록의 한국어 번역본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외국에서도 일러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작품이다. 이 번역본은 지금까지도 많이 읽히고 있다. 오용록은 2011년에 <독일문학산책>이란 제명 하에 독일 문학의 대표 단편들을 번역하여 싣고 있는데, 이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를 일러스트 없이, 또한 앞서의 번역과 큰 변형 없이 글만 맨 앞에 싣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역자 해설을 뒤에 붙이고 있다.


5) 최문규 역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2002)

낭만주의 연구자인 최문규가 번역한 2002년 번역본은 최근에 나온 번역으로서는 예외적으로 그간 통용된 의역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최문규는 앞서 나온 오용록의 번역과 달리 전체적으로 더욱 원문에 충실한 꼼꼼한 번역을 하고 있으며, 이 작품을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 독문학계에서 당시 낭만주의 연구가 심화되면서 시대, 작가, 작품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게 된 점이 번역본에서도 많이 반영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역자가 이제까지 이 작품과 연관되어 같이 출판된 편지들의 의미를 밝혀주는 데에서 드러난다. 이는 작품의 해석과도 직결된다. 최문규는 원래 4편의 편지 중 두 편만을 번역하는데, 당대에 실존했던 낭만주의 작가 푸케와 샤미소가 각각 친구였던 변호사 히치히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로 창작된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슐레밀이라는 인물이 실존했었고 그 자신이 직접 쓴 원고를 샤미소에게 건네주었는데, 이를 다시 푸케에게 전달해 푸케가 책을 편집했다는 가상의 맥락을 만들어낸다. 편지에는 추신으로 삽화까지 언급하며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과 가상의 관계 속에서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았다거나 한걸음에 칠 마일을 가는 장화라는 독자들이 믿기 어려운 사건들도 개연성의 경계가 의문시되며 전달이 되고 있다. 최문규는 역자 후기에서 이 편지들의 의미를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특징을 들어 다음처럼 설명한다. 즉 이 작품 속에서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가 “민담과 동화에서 엿볼 수 있는 환상적 요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구분을 해체시키는 숨바꼭질”인 낭만주의적 수법을 통해서 교차하고 있어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번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상의 편지들과 더불어 본문에서도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할을 하는 부분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작가 샤미소에게 말을 던지는 부분이다. 작가가 주인공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외부에 존재하는 작가를 친구로 불러내어 말을 전하고 심지어 그가 죽었다고 보고한다. 이렇듯 작품 내에서도 작가와 인물의 관계를 통해 작품의 경계, 개연성의 경계를 성찰케 만드는 부분들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주인공은 처음 욘 씨네 집에서 낯선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망원경, 양탄자, 텐트 등 많은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고 든 놀람과 불안감을 다음과 같이 친구에게 토로한다. “Wenn ich Dir nicht beteuerte, es selbst mit eigenen Augen angesehen zu haben, würdest Du es gewiss nicht glauben.” 이 부분은 오용록의 번역에서는 “내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18)라고 작가라는 중간 전달자가 생략되고 있다. 최문규는 “내가 자네에게 이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분명히 보았음을 맹세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아마 그 사실을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23)라고 “자네”라고 불린 작가 샤미소에게 거는 말임을 강조하여 옮기고 있다. 주인공이 독자들에게 샤미소의 방을 보여준다든지 혹은 “사랑하는 벗 샤미소”라고 부르며 자신의 번민과 갈등을 털어놓는 부분들은 허구인 텍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텍스트의 완결성이나 폐쇄성 혹은 저자 주체성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이질적인 부분들인데, 역자는 이러한 부분들을 강조함으로써 작품의 낭만주의적 특징을 십분 살리고 있다


6) 이미화 역의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2006)

이미화는 2006년 차경아가 펴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낭만동화집 II>에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으며, 2013년 같은 이가 펴낸 <환상문학 걸작선2>에도 삽입시키고 있다. 역자는 작가가 쓴 편지들이나 유명 삽화들 없이 본문만 옮기고 있으며 역자 해설도 별도로 달지 않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전체적으로 “...했네” 체로 옮겨 친구에게 전하는 이야기인 듯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 번역한 것이다. 즉 번역은 ”내게는 무척 힘겨운 항해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사히 항해를 마친 후, 마침내 항구에 도착했네.”(9)로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번역본은 원문의 긴 문장들을 짧게 끊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동시대의 어휘나 문체들을 많이 사용하여 현대화하고 있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비교했던 작가에게 전하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다루는 문장은 “맹세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일세. 그게 아니라면 자네도 분명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15)로 두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맹세한다는 말을 부사어로 바꾸어 번역하고 있다.


7) 배인섭 역의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2008)

2008년에 나온 배인섭의 번역은 역자의 자의성과 창의성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번역본이다. 독문학박사인 배인섭은 장르를 청소년용 동화라 해도 될 정도로 원작을 많이 변형해 옮기고 있다. 예를 들어 원작에 없는 11장의 소제목을 새로 만들어 달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원작의 문장들은 대폭 축약하거나 단순화하여 대강의 의미만 살리고 있다. 오용록과 마찬가지로 작품과 관련된 편지글은 담고 있지 않고, 작품의 낭만주의 특징을 드러내는 샤미소에게 말을 거는 부분들은 거의 모두 생략하고 단순화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부분은 “이 모든 장면들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내가 감히 그것을 믿으라고 말할 수 없었을거야.”(16)라고 옮겨진다. 그 외에도 작품의 진행을 멈추면서 주인공 페터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며 샤미소에게 호소하는 부분들은 독자에게 건네는 일반적인 문장들로 바뀌어 있다. 역자는 작품의 줄거리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대화들을 강조하여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본 역시 일러스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는 동화풍으로 1장에 2-3장 정도로 담겨 있고, 특히 오용록의 일러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특히 그림자와 명암의 대비를 강조하고 있어 주인공의 고통과 갈등을 드러낸다.


8) 박광자 역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2011)

2011년 나온 박광자의 번역본은 제목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에서 보듯 더욱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꾀하고 있고, 특히 ‘편지’라는 소제목으로 이 작품과 관련된 네 편의 편지들을 맨 앞에 모두 연대순으로 싣고 있어 독자들은 작품을 둘러싸고 작가가 가상으로 만든 전체적인 맥락을 모두 읽어볼 수 있다. 마지막 편지는 긴 시 형태로 “우리가 그림자에게 본질을 빌려주고는 이제 본질을 그림자와 혼동하고 있어.”라는 작가 스스로가 행한 그림자와 본질의 교환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다. 또한 임한순의 역서처럼 크룩생크가 그린 여러 삽화도 모두 담고 있다. 다른 번역본들이 “...했다”(오용록, 최문규)체를 사용하여 소설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면, 박광자의 번역본은 구기성처럼 “...했습니다”체를 사용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독자와의 거리를 다소 늘이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식으로 수식어가 많이 딸린 긴 문장들을 충실하게 번역하면서도 독자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하여 무리 없이 잘 읽히도록 번역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의 작가에게 말을 거는 문장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고 맹세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도 그것을 믿지 못할 겁니다.”(25)라고 번역하고 있다. 박광자의 번역본은 최문규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원문에 충실하고, 보다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잘 읽힌다. 특히 작가가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작품의 마지막 구절이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문규의 경우 일반인들에게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며 교훈을 전달하려고 다소의 변형을 가하고 있으나, 박광자의 경우 원작에서처럼 친구에게 당부하는 말로 한정시키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작품의 집필 의도를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이며, 각 번역본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나기에 비교를 위하여 번역본들을 나란히 아래에 옮긴다. 역자들의 문체뿐 아니라 내용도 편차를 보여주는데, 이때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혼자 사는 것과 세상과 어울려 사는 것을 선택지로 보는지, 혹은 각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잘 드러난다.


원작: “Du aber, mein Freund, willst Du unter den Menschen leben, so lerne verehren zuvörderst den Schatten, sodann das Geld. Willst Du nur Dir und Deinem bessern Selbst leben, o so brauchst Du keinen Rat.”


구기성: “헌데, 그대 나의 벗이여, 그대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림자를,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을 배우십시오. 만일 그대가 오로지 그대와 그대의 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한다면, 오 그대에게 무삼 충고가 필요하리오.”(106)


양재우: “그러나 나의 친구여! 자네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될 것이며, 황금보다는 우선 그림자를 더욱 아끼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일세. 자네가 어떻게 하면 자네 자신에게 보다 의미 있는 남은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오, 자네에게 내가 과연 무슨 충고를 들려줄 수가 있단 말인가?”(147)


임한순: “그러나 여보게 친구, 자네가 만약 사람들과 더불어 살 생각이라면 가장 먼저 그림자를,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걸세. 자네를 위해, 자네의 좀더 나은 자신만을 위해 살 생각이라면, 아아, 그렇다면 자네는 아무런 충고도 필요없네.”(370)


오용록: “끝으로 내 친구들에게 할 말이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그 무엇보다 자기 그림자를, 그리고 그 다음으로 돈을 소중히 여겨라. 그러나 혼자 향상된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이런 충고는 필요없을 것이다.”(151)


최문규: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네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면 말이지. 물론 그런 충고는 자네에겐 필요없을 걸세.”(131-132)


배인섭: “샤미소, 네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그림자의 가치를 인정해야 해. 그리고 그걸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지. 그 다음이 돈이야. 하지만 샤미소, 네가 오로지 너 혼자만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네 자신만 잘 살겠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너에겐 어떤 충고도 필요하지 않을 거야.”(155)


박광자: “그리고 친구, 당신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려면 우선 일차적으로 그림자부터, 그 다음에 돈을 존중할 줄 알아야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만을 위해서, 보다 나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려 한다면 이런 충고는 필요가 없습니다.”(115)


이 구절에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구기성, 임한순, 박광자의 번역이며, 양재우는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고, 오용록은 친구들에게로 수신범위를 넓힌다면, 배인섭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삶의 경우를 가치절하하는 번역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3. 평가와 전망

프랑스에서 이주한 이민작가이자 또한 낭만주의 시대의 새로운 창작동화 작가였던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대표작인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는 최근에 들어와 더욱 각광을 받고 많이 읽히고 동시에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초창기에 주로 줄거리와 사건 위주로 옮긴 번역본들이 나왔고 아동문학으로 소화되었다면, 양재우, 임한순의 번역 이후로는 진지한 독일 문학의 고전으로 다루어졌고, 최문규의 번역 이후로는 근대사회 비판이라는 사회사적 맥락뿐 아니라 독일 문학사에서 낭만주의 문학관을 담은 대표 작품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작품이 담고 있는 악마와의 계약, 현대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 그림자 상실, 세계 여행, 개인의 고립, 자연과학의 의미 등은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최근에 동성애, 이주자, 혹은 <파우스트> 등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해석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앞으로 이를 반영한 새로운 번역, 또한 더 다양한 형식의 응용 작품들을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구기성(1960): 잃어버린 그림자. 양문사.
양재우(1988):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명지사.
임한순(1995):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서울대학교출판부.
오용록(2001): 페터 슐레밀의 신기한 이야기. 이유.
최문규(2002):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이미화(2006): 페터 슐레밀의 놀라운 이야기. 이룸.
배인섭(2008):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아롬미디어.
박광자(2011):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부북스.

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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