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나이 (Der Sandman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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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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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0003}}의 소설
작품 소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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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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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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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1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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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1 = [[:분류:호프만, E. T. A.|E. T. A. 호프만(E. T. A. Hoff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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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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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민 (2017,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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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작품소개-->
E. T. A.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는 1971년에 처음 국역되었다. 이 소설은 박문사에서 간행한 「세계단편문학대계」(全 10권) 중 3권 「낭만주의문학」에 「모래사람」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단편의 하나로 소개되었다. 단편 번역은 독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이정태(李鼎泰)가 맡았다. 역자가 따로 쓴 후기나 해설은 없으나, 구인환 소설가가 권두에 유럽의 낭만주의 문학 전반을 안내하면서 호프만과 「모래사람」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여기서 이 소설은 “모습이 없는 목소리를” 재현하려 하는 예술가의 고뇌로 인해 “허상과 실상의 사이를 방황”(구인환, 43)하는 호프만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소개된다. 이 번역은 주인공의 이름 나타나엘을 ‘나타나에르’로 표기하고 있어, 일본어 중역이 아닐까 의심된다. (하지만 편찬자의 권두 해설에서는 그 이름이 또 나타나엘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모래사람’이라는 역어를 일관되게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 처음으로 ‘Sandmann’이 언급될 때에는 “모래사내(沙男)”(177)라고 번역했고, 몇 페이지 지나면 다시 “모래사람”(180)으로 지칭한다. 이런 비일관성은 ‘모래 사내’라는 역어에 대한 역자의 고민 부족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타나에르로부터 로타르에게」에서 편지의 말투를 ‘다’체로 시작하여, 중간에 ‘네’로 바꾸는데, 역자가 어떤 문체적 효과를 노리고 번역한 것인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관성이 없다. <br/> : 약 10년 후 「모래 사나이」의 두 번째 번역이 출간된다. 1981년 독문학자 김정회(前 경기대)는 금성사 세계문학대전집(全 120권) 11권 「모래 사나이 ·브람빌라 왕녀」에서 호프만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모래 사나이」를 번역해 출간한다. 이 번역은 앞의 번역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유일한 번역이었기 때문에, 8·90년대 「모래 사나이」 수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번역 또한 여러 의문점을 남기는데, 우선 나타나엘을 ‘나타니엘’로, 로타르Rothar를 ‘로타리오’로 옮겼다. 이 역시 중역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데, 그럼에도 역자는 「모래 사나이」를 한 편의 짜여진 매력적인 작품으로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자는 독일어의 문장 구조나 표현에 얽매이기 보다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읽는 맛을 살리는 이른바 의역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원문과 그 의미가 아주 엇나가 있지는 않다. 예컨대 나타나엘이 친구 로타르에게 자신이 최근 겪은 끔찍한 일을 털어놓으면서 “이 사건의 의미를 밝히는 데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 이른바 인연(因緣)을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것 같군.”(6)이라고 번역한 부분을 보자. 여기서 ‘인연’은 ‘Beziehung’을 옮긴 말로, 똑같은 단어를 ‘연관성’이라고 옮긴 이후의 김현성역과 비교해 볼 때 훨씬 구체적이고 가깝게 들린다. 또한 ‘인연’을 수식하는 말인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tief in mein Leben eingreifende”도 “내 삶에 깊이 관련된”(14)이라고 옮긴 김현성역보다 훨씬 생생하게 그 의미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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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작품집 <밤 풍경>에 묶여 출판된 호프만의 가장 알려진 단편소설이자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대학생 나타나엘은 어릴 적 밤마다 아버지를 자주 찾아왔던 변호사 코펠리우스가 무시무시한 ‘모래 사나이’이며 아버지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리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작가는 서간체의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을 혼합하여 이런 나타나엘의 두려움이 그의 과도한 상상력과 광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래 사나이가 존재하여 나타나엘의 행복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것인지의 여부를 불명확하게 서술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성과 광기의 대립, 악마, 도플갱어, 인조인간 등 어두운 낭만주의(Schwarze Romantik)의 주요 모티프들이 탁월하게 활용되고 있다. 1971년 박문사의 <세계문학대계> 총서 3권 <낭만주의 문학>에 소개된 이정태의 <모래사람>이 가장 오래된 번역으로 확인된다.
  역자는 책 맨 뒤에 「호프만, 그 인간과 작품」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붙여 놓았는데, 이 글은  호프만이 얼마나 개성 넘치는 익살꾼에 “유별난 괴짜”(450)인지를 극적인 스타일로 보여주는 캐리커처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이후에 정착된 작품해설 스타일과도 크게 차이를 보인다. 그는 호프만을 “다재다능한 ‘격정의 방랑가’”(447), “스스로 자처한 ‘격정의 방랑가’”로 바라보고 있으며, 호프만이 충동적이고 정지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임을 강조한다(448). 이런 호프만의 이해에 걸맞게 역자는 번역에서 원문의 격정적인 어조를 – 충실함 이상으로- 살리고 있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부분을 보자: “뭔가 무서운 것이 내 인생 가운데 파고들어와 있는 걸세! ... 그럼 이제부터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보겠네. 아무래도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해도 마치 미치광이처럼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릴 녀석이 내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다네 Nun soll ich Dir sagen, was mir widerfuhr. Ich muß es, das sehe ich ein, aber nur es denkend, lacht es wie toll aus mir heraus.”(5) (vgl. 김현성역: “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야겠지. 그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 해도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오지 뭐야.”(13-4) 김정회는 김현성처럼 수동으로 번역하거나, 김영옥처럼 ‘그것’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녀석’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자기 안의 타자를 당시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수동의 의미로 번역할 때마다 훨씬 더 강렬하게 분열의 느낌을 전달한다. 또한 모래 사나이의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를 묘사할 때도 다른 판본들보다 더 격정적이고 어감이 센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나타나엘의 공포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또 다른 특기할 점은 줄표, 혹은 사고선(Gedankenstrich)를 쓰는 데 거침이 없다는 점이다. 호프만의 원작도 줄표를 대단히 많이, 즐겨 사용하는데, 이 번역은 이것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이런 사고선이 – 그것도 길이가 지금보다도 더 긴 - 당시 한국어에서 많이 관용되었었는지는 전문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역자가 상당히 의식적으로 줄표를 사용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줄표의 사용이 자아내는 효과는 이후에 줄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김현성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이런 사고선을 씀으로써 역자는 나타나엘의 아주 논리적이지만은 않은, 사고와 감정의 비약을 이미지적으로도 보여준다. 이는 역자가 해설에서 호프만의 문체를 두고 “꺾어 일그러진 소용돌이처럼, 마치 말을 찾아 허덕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456)라고 지적한 바와 상통한다.
 
  또한 의도적으로 어조의 변화를 준 특징도 눈여겨볼만 하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역자는 서간체(~네, ~지)로 번역하고 있으나, 중간에 나타나엘이 어릴 적의 기이하고 무서운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부터 정확히 ‘~다’ 어미를 선택한다. 나타나엘이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로타르라는 특정한 수신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 속으로 거의 독백하는 사람처럼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중간에 수신자에게 다시 말을 거는 “상상해 보게나”(김영옥역, 278)와 같은 문장은 과감히 빼기도 한다. 또한 편지 수신인을 호명하면서 이야기하는 말투는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을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면, ~다체는 독자의 눈앞에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생생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불안과 기대로 나의 가슴은 와들와들 떨렸다. —방문 바로 앞에서 뚜렷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손잡이가 심하게 울리며 방문이 요란스레 열린다!—나는 불끈 용기를 내어 조심조심 밖을 엿보았다.” 여기에서 모래 사나이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그를 기다리던 나타나엘의 눈앞에 드디어 방문이 열리는 대목은 현재 시제로 번역되어 그 생생함을 더 잘 전달한다. 또 소설의 절정에서 나타나엘이 클라라와 탑 위에서 코펠리우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다시 광기가 도지는 장면에서도 이런 시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코폴라의 망원경을 찾아내 그것으로 옆쪽을 들여다보았다——클라라가 렌즈 바로 앞에 보인다!——그 순간 온몸의 혈관이 찡 하고 경련을 일으켜—”(44). 역자는 줄표 안의 문장 시제를 임의로 현재로 바꿔서 번역함으로써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밖에도 이후의 역자들이 해석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표현들의 일관된 번역을 위해 노력했다면, 김정회는 ‘불의 원’이나 ‘섬뜩한unheimlich’를 일관되게 번역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당시에는 이 표현의 중요성이 의식되지 못했던 듯하다. 
 
  김정회 역 이후 오랜만에 다시 번역된 「모래 사나이」는 「모래 사내」라는 이름으로 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가 편역한 「기적의 진실과 환상 속의 현실: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1997) 2권에 수록되었다. 독일 동화와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흐름 속에서 새롭게 소개된 이 작품 번역은 독문학자 김영옥이 맡았다. 그는 작품에 붙인 세쪽 가량의 해설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현실 인식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눈을 빼앗긴 낭만주의자의 자기파멸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소개했다. 이 판본은 원문의 문장 구조를 최대한 모방하고 의미가 대체로 정확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한국어로 옮기는 데 성공한 번역으로 의의가 있다. 예컨대 앞의 김정회역에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마구 흐트러진 기분”(5)이라 옮겨진 “[die] zerrissene[] Stimmung des Geistes”(11)을 “갈가리 찢긴 정신상태”(273)로 옮기고 있다. 이 번역본에서도 아주 결정적인 장면 묘사를 긴박하게 하고 싶으면, ‘~다’체로 전환한다. “내 심장은 두려움과 기대에 가득 차서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지. 앞에, 문 바로 앞에서의 날카로운 발걸음 소리 —문고리를 거칠게 잡는 소리. 문이 덜그럭거리며 확 열렸다!”(278)
 
김영옥의 「모래 사내」 출간 3년 만인 2000년에 「모래 사나이」는 또 다시 두 번역자에 의해 번역된다. 독문학자 김선형의 번역으로 「호프만의 환상문학」이라는 호프만 선집에 수록된 「모래 요정」과, 역시 독문학자 라영균의 번역으로 「모래남자」라는 제목으로 단독 출간된 책이 있다. 김선형은 서양 동화나 전설에서 전승되는 ‘Sandmann’의 이미지를 존중하여 ‘모래 요정’이라 옮겼는데, 한국에서 요정이 주로 선하고 아리따운 이미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전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적절한 역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곧 이어 2001년에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모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호프만의 단편선집이 출간한다. 이 판본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2012년도에 찍은 판이 8쇄)로서, 21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판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번역문이 전반적으로 원문보다 어조가 밋밋하여 문학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소설의 맨 첫 문장, “너무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아 모두들 걱정하고 있겠지”(13)는 김영옥역, “모두들 분명 안절부절 못하겠지.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 정말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으니 말이야.”(273)에 비해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쓰는 그 초조하고 답답하며 미칠 것 같은 심정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 또한 스플란차니와 코폴라가 한바탕 혈투를 벌일 때 그들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와 욕설은 다소 정돈된 어조로 옮겨져 있다.  
 
  
쿵쿵거리는 소리, 덜컹거리는 소리, 밀치는 소리, 문에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저주와 욕설이 들렸다.
 
“이거 놔. 내놔. 비열한 놈. 흉악한 놈. 그래서 거기다 신명을 다 바쳤어? 하하하하! 우린 그런 내기는 안 했어. 나는, 나는 눈을 만들었어. 기계장치도. 네 기계 장치는 멍청한 악마야. 빌어먹을 개 같은 멍청한 시계공 주제에. 꺼져, 이 악마. 잠깐. 꼭두각시나 조종하는 놈. 악마 같은 짐승, 거리 서. 꺼져 내놔! (62-3)
 
– Ein Stampfen – ein Klirren – ein Stoßen – Schlagen gegen die Tür, dazwischen Flüche und Verwünschungen. Laß los – laß los – Infamer – Verruchter! – Darum Leib und Leben daran gesetzt? – ha ha ha ha! – so haben wir nicht gewettet – ich, ich hab die Augen gemacht – ich das Räderwerk – dummer Teufel mit deinem Räderwerk – verfluchter Hund von einfältigem Uhrmacher – fort mit dir – Satan – halt – Peipendreher – teuflische Bestie! – halt – fort – laß los! –”(44)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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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2}}<!--초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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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ffmann, E. T. A.(1816): Der Sandmann. In: Nachtstücke. Vol. 1. Berlin: Reimer, 1-82.
  
발 구르는 소리 – 쨍그랑 소리 – 밀치는 소리 – 문에 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욕설과 저주가 들렸다. 놓으라고 – 놓으라고 – 비열한 놈아 – 흉악한 놈아! - 거기 몸과 인생을 다 바쳤다고? - 하하하하! - 약속이 틀리잖아 – 내가, 내가 눈알을 만들었어 – 기계장치는 내가 만들었지 – 멍청한 놈아, 그것도 기계장치냐 – 빌어먹을 개 같은 머저리 기계공아 – 꺼지라고 – 사탄아- 그만- 돌팔이 인형공 - 악마 같은 짐승아! - 그만 – 꺼져 – 놓으라고!-(황종민역, 164)
 
  
쿵쾅쿵쾅 바닥을 발로 구르기도 하고—서로 맞부딪치기도 하고—그 사이에 간간이 욕지거리와 저주하는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이것 놔……네 놈이 먼저 놔……비열한 자식……악당놈! 이건 내 목숨이 걸린 거야……하, ,, 하!……전혀 얘기가 틀리잖아……눈알은 눈알은 내가 만든 거야……태엽 장치를 만든 사람은 나라구. 네놈이 네놈이 만든 그 개떡 같은 태엽 장치가 뭐야……싸구려 시계방의 미친개 같은 놈……빨리 나가……악마……그만둬……꺼져버려……놓지 못해!」(김정회역,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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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3}}<!--번역서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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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에 난삽하게 들어 있던 줄표는 번역과정에서 모조리 제거되었는데, 이것이 역자의 선택인지, 아니면 당시 출판사의 편집 원칙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 한국어 텍스트에서 줄표의 삽입을 금기시했던 것인지는 좀더 살펴봐야 하겠으나, 줄표의 삭제로 원문의 문체가 지닌 역동성과 난삽함이 상당 부분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욕설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라는 것이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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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
  김현성의 번역은 장점도 있는데, 이전의 판본들보다 더 자세한 각주를 제공하여 원문의 이해를 돕고, 역시 상세한 해설을 달아 작품을 소개한다. 역자는 해설에서 작품을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프로이트의 ‘das Unheimliche’를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특정한 관점의 해설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이 다루는 여러 주제를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기에 오랫동안 적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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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모래 사나이」(2017). 번역은 최근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황종민이 맡았고, 그간의 연구 성과가 반영된 상당히 전문적인 깊이가 있는 해설 「에테아 호프만의 생애와 소설」도 실려 있다. 이 해설은 작가의 생애를 유년시절부터 법원 관리 시절, 밤베르크에서 악단장으로 고용되어 있던 시기, 창작 시기 등으로 나누어서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하고, 「모래 사나이」와 함께 번역되어 실린 작품들을 모두 꼼꼼하게 해설한다. 「모래 사나이」의 경우 네 문단에 걸쳐서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키틀러의 해석도 소개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코펠리우스를 앙시엠 레짐의 상징이라고도 해석한 부분이다. 또한 이 판본은 각주가 가장 많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은 성격이 학술적이다. 이미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높아진 기대수준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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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민의 번역은 지금까지 여러 번역본이 반복적으로 범한 번역 실수가 거의 없고,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거의 유일하게(권혁준역과 함께) 제대로 옮기고 있다. 나타나엘은 아버지와 코펠리우스의 수상한 실험을 몰래 훔쳐보다가 그만 걸리고 만다. 이때 코펠리우스는 경악스럽게도 나타나엘의 팔다리를 빼서 이리저리 끼워맞춰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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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이정태(1971)" />[[#이정태(1971)R|1]] || 모래사람 || 世界短篇文學大系. 3, 浪漫主義文學 || 世界短篇文學大系 3 || 호프만 || 李鼎泰(이정태) || 1971 || 博文社 || 176-20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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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정회(1981)" />[[#김정회(1981)R|2]] || 모래 사나이 || 모래 사나이; 브람빌라 王女; 벼룩의 우두머리 ||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 39 || 호프만 || 김정회 || 1981 || 금성출판사 || 3-42 || 편역 || 완역 || 저본을 작품집 내의 <크라이슬레이아나>에 대한 것만 밝히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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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영옥(1996)" />[[#김영옥(1996)R|3]] || 모래 사내 || 기적의 진실과 환상속의 현실: 독일작가들의 창작동화. ||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 2 || 에.테.아 호프만 || 김영옥 || 1996 || 서울대학교출판부 || 273-320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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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모래 요정 || 호프만의 환상문학 || || E.T.A. Hoffman || 김선형 || 2000 || 경남대학교출판부 || 7-55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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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모래남자 || 모래남자 || || E.T.A. 호프만 || 라영균 || 2000 || 사회평론 || 7-87 || 편역 || 완역 || 프로이트의 <섬뜩함>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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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현성(2001)" />[[#김현성(2001)R|6]] || 모래 사나이 || 모래 사나이;적막한 집;장자 상속 || 문지스펙트럼 2-020 - 외국문학선 || E.T.A. 호프만 || 김현성 || 2001 || 금성출판사 || 13-7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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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모래 사나이 || 모래 사나이 || 지만지고전천줄 134 || 에른스트 호프만 || 권혁준 || 2008 || 지만지 || 45-119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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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모래 사나이 || 모래 사나이 ||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 에른스트 호프만 || 권혁준 || 2011 || 지식을만드는지식 || 3-75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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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모래 사나이 || 모래 사나이 ||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큰글씨책 || 에른스트 호프만 || 권혁준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3-75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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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황종민(2017)" />[[#황종민(2017)R|10]] || 모래 사나이 || 모래 사나이 || 창비세계문학 62 || E.T.A. 호프만 || 황종민 || 2017 || 창비 || 124-17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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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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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4+}}<!--번역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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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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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이 소설은 1971년 박문사 <세계단편문학대계> 중 <낭만주의문학>에 <모래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어 독일의 중요한 낭만주의 단편 문학의 하나로 소개된 이래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속적으로 번역·수용되어 왔다. 소설의 제목은 현재 널리 알려진 “모래 사나이”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모래사람” 이외에도 “모래 사나이”와 유사한 “모래 사내”(김영옥 역), “모래 요정”(김선형 역), “모래 남자”(라영균 역)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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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출판된 초역은 인명 상에서 일본어의 영향이 엿보여 일본어 중역으로 추측된다. 그 후 10년 만에 새롭게 재번역된 김정회의 <모래 사나이>는 전반적인 번역의 질이 초역본보다 훨씬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작가 호프만의 문학세계를 개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전보다 진일보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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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회의 번역 외에는 오랫동안 다른 번역본이 없었으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다양한 번역본이 쏟아져 나왔다: 김영옥의 <모래 사내>(1997), 김선형의 <모래 요정>(2000), 라영균의 <모래남자>(2000), 김현성의 <모래 사나이>(2001). 이는 <모래 사나이>를 ‘섬뜩함 das Unheimliche’의 미학의 예시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프로이트의 유명한 동명 논문 지크문트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정장진 옮김, 1996), 열린책들. 정장진은 ‘Der Sandmann’을 ‘모래 인간’이라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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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역되면서 소설에 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김현성이 번역한 <모래 사나이>(문학과지성사, 2001)는 2020년 현재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가장 널리 읽힌 판본이다. 이 시기부터 <모래 사나이>는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비판의 실례로, 또 정신분석적 문학 텍스트로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권혁준(지만지, 2011)과 황종민(창비, 2017)의 번역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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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는 가운데 각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본을 몇 가지 선별하여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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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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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정태(1971)|이정태 역의 <모래사람>(1971)]]<span id="이정태(1971)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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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의 한국어 초역 <모래사람>은 박문사 <세계단편문학대계>(全 10권)의 제3권 <낭만주의문학>(1971)에 실려 출간되었다. 번역은 독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이정태(李鼎泰)가 맡았다고 되어 있으나 역자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다. 초역본은 주인공의 이름 나타나엘을 ‘나타나에르’로 표기하고 있어, 앞서 언급했듯 일본어 중역으로 짐작된다. 또한 ‘모래사람 Sandmann’이라는 핵심적인 표현을 일관되게 번역하는 대신, “모래사내(沙男)”(이정태, 177)와 “모래사람”을 섞어 쓰고 있어 역어에 대한 고민 부족을 방증한다. 역자가 따로 쓴 후기나 해설은 없고, <세계단편문학대계>의 편찬자 구인환 소설가가 권두에 유럽의 낭만주의 문학 전반을 안내하면서 호프만과 <모래사람>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여기서 소설은 예술가의 고뇌로 인해 “허상과 실상의 사이를 방황”(구인환, 43)하는 호프만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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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정회(1981)| 김정회 역의 <모래 사나이>(1981)]]<span id="김정회(1981)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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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자 김정회(前 경기대 교수)는 1981년 금성사 세계문학대전집(全 120권) 제11권 <모래 사나이·브람빌라 왕녀>에 호프만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모래 사나이>를 번역했다. 이 번역은 초역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유일한 번역이었기 때문에, 8·90년대 <모래 사나이> 수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번역본 또한 여러 의문점을 남기는데, 우선 나타나엘을 ‘나타니엘’로, 로타르 Rothar를 ‘로타리오’로 옮겨놓아 독일어 원문을 직접 옮긴 것이 맞는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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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김정회의 번역은 호프만의 소설에 담긴 강렬한 감정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작품의 매력을 십분 전달한다. 역자는 전반적으로 독일어의 문장구조나 표현에 얽매이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읽는 맛을 살리는 이른바 의역을 했다. 이러한 번역은 원문과 그 의미가 크게 엇나가지 않으면서도 나타나엘의 격정적인 정신세계를 잘 전달하는 장점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나타나엘이 친구 로타르에게 자신이 최근 겪은 끔찍한 일을 털어놓으면서 “이 사건의 의미를 밝히는 데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 이른바 인연(因緣)을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것 같군.”(김정회, 6)이라고 번역한 부분을 보자. 여기서 ‘인연’은 ‘Beziehung’을 옮긴 말로, 똑같은 단어를 ‘연관성’이라고 옮긴 이후의 김현성 역본과 비교해 볼 때 훨씬 구체적이고 가깝게 들린다. 또한 ‘인연’을 수식하는 말인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 tief in mein Leben eingreifende”도 “내 삶에 깊이 관련된”(김현성, 14)이라고 옮긴 경우보다 훨씬 생생하게 그 의미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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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책 맨 뒤에 <호프만, 그 인간과 작품>이라는 제목의 캐리커처 형식의 해설에서 호프만이 얼마나 개성 넘치는 익살꾼에 “유별난 괴짜”(김정회, 450)인지를 묘사한다. 그는 호프만을 “다재다능한 ‘격정의 방랑가’”(김정회, 447), “스스로 자처한 ‘격정의 방랑가’”로 바라보고 있으며, 호프만이 충동적이고 정지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임을 강조한다(김정회, 448). 이러한 해석을 토대로 역자는 원문의 격정적인 어조를 생동감 넘치게 – 때로는 충실한 수준을 넘어서- 살리고 있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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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부터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보겠네. 아무래도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해도 마치 미치광이처럼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릴 녀석이 내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다네.”(김정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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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야겠지. 그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 해도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오지 뭐야.”(김현성,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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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역의 격정적 어조는 다른 번역본, 예컨대 이후의 김현성 역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곧바로 알 수 있다. 김정회는 여기서 ‘es’(그것)를 김현성처럼 수동으로 번역하여 언급을 피하거나, 혹은 김영옥처럼 ‘그것’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녀석’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자기 안의 타자를 당시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할 뿐만 아니라, 수동문으로 번역할 때보다 주인공이 겪는 분열의 감각을 훨씬 강렬하게 전달한다. 또한 김정회는 모래 사나이의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를 묘사할 때도 다른 판본들보다 더 격정적이고 어감이 센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나타나엘의 공포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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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김정회는 어조를 절묘하게 선택하여 작품의 극적 긴장감을 크게 높인다. 예컨대 그는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서간체(~네, ~지)로 번역하고 있으나, 중간에 나타나엘이 어릴 적의 기이하고 무서운 경험을 회고하는 부분부터 정확히 ‘~다’ 체로 문체를 전환한다. 나타나엘은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로타르라는 특정한 수신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독백하는 사람처럼 자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역자는 중간에 수신자에게 다시 말을 거는 “상상해 보게나”(김영옥, 278)와 같은 문장을 과감히 빼기도 했다. 또한 편지 수신인에게 이야기하는 말투는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을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면, '~다'체는 독자의 눈앞에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생생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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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기대로 나의 가슴은 와들와들 떨렸다. —방문 바로 앞에서 뚜렷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손잡이가 심하게 울리며 방문이 요란스레 열린다!—나는 불끈 용기를 내어 조심조심 밖을 엿보았다.(김정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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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던 나타나엘의 눈앞에 드디어 방문이 열리는 대목은 ‘현재 시제’로 번역되어 생생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나타나엘이 클라라와 탑 위에서 코펠리우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다시 광기가 도지는 장면에서도 이런 시제 변화가 두드러진다. “코폴라의 망원경을 찾아내 그것으로 옆쪽을 들여다보았다——클라라가 렌즈 바로 앞에 보인다!——그 순간 온몸의 혈관이 찡 하고 경련을 일으켜—”(김정회, 44). 역자는 줄표 안의 문장 시제를 임의로 현재로 바꿔서 번역함으로써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독자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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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원작은 줄표(전각 대시)를 대단히 많이, 즐겨 사용하여 나타나엘의 어수선하고 광기 어린 사고의 흐름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준다. 이 줄표를 번역에서 얼마나 많이 재현했는가는 역자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출판 관행에서 한국어 문장에 낯선 문장부호인 줄표가 얼마나 용인되었는가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김정회의 번역은 눈여겨볼 만하다. 역자는 줄표를 한국어 문장에 사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줄표의 사용이 자아내는 효과는 줄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후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난다. 역자는 나타나엘의 아주 논리적이지만은 않은 사고와 감정의 비약을 이미지적으로도 보여준다. 이는 역자가 해설에서 호프만의 문체를 두고 “꺾어 일그러진 소용돌이처럼, 마치 말을 찾아 허덕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김정회, 456)라고 지적한 바와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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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영옥(1997)| 김영옥 역의 <모래 사내>(1997)]]<span id="김영옥(1997)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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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독문학자 김영옥이 새롭게 번역한 <모래 사내>는 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가 편역한 <기적의 진실과 환상 속의 현실: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1997) 2권에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이 판본은 호프만의 이 소설을 ‘경이로운 것’과 ‘환상’을 문학으로 제시한 독일 동화와 낭만주의 문학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고, 세 쪽가량의 해설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현실 인식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눈을 빼앗긴 낭만주의자의 자기 파멸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소개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작품 해석의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영옥의 <모래 사내>는 원문의 문장구조를 최대한 모방하면서도 의미가 대체로 정확하고 가독성이 높은 한국어로 옮겨놓아 이전 번역본에 비해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인용 가능한 번역본을 내놓았다는 의의가 있다.  
  
„’s steht doch überall nicht recht! ’s gut so wie es war! – Der Alte hat’s verstanden!“(18)
 
「어디 할 것 없이 온통 고장투성이군 ! 좋아, 이제 본래대로 됐어! ... 이러한 기술도 다 여러 해 동안 익힌 솜씨거든!」(김정회역, 12)
 
“어디다 끼워 봐도 좋지 않군! 이전 상태로 있는 게 좋아! — 꼰대가 뭔가를 이해하긴 했구만”(김영옥역, 231)
 
“온통 제대로 맞질 않아. 원래 있던 대로가 더 낫군! 늙은이 말이 맞아!”(김현성역, 23)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원래대로가 좋겠어! — 조물주가 제대로 만들었군!”(황종민역, 132)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Der Alt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해석의 관건이다. 이것은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나님께 파우스트의 유혹을 허락 받은 직후에 하나님을 부른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Der Alte”는 신이다. 이것을 이해한 번역은 여기서는 황종민역 뿐이다. 김정회는 아예 의역으로 문제를 가려버렸으며, 김영옥역의 “꼰대”는 메피소토펠레스가 했을 법한 말이나, 이를 설명하는 주석이 없어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며, 김현성도 늙은이라고 그냥 직역하는 데 그쳤다. 또한 마지막 구절의 이해에 따라 앞의 구절의 해석도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김정회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 코펠리우스라는 이름의 악마는 나타나엘이 마치 관절인형이라도 되는 듯이 그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뺐다가 끼워 본다. 이것은 인간도 조물주가 만든 인형, 기계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나타나엘의 팔다리의 구조가 원래가 나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놓으면서 “노친네가 잘 하긴 했네”라고 마지못해 인정한다.
 
창비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그렇듯이 번역의 문체는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때때로 이런 언어적 조탁이 노파의 거친 말투에도 적용되어 노파가 “꼬부랑한”이나 “구부러진”과 같은 말을 제치고 “휘움한”이란 문어체를 쓴다거나 할 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밖에도 황종민의 번역은 기존 번역본들과 달리 현대적인 어조를 지향한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쓸 때도, 기존의 ‘~네’체가 아니라 확연한 반말체인 ‘~어’체를 쓰고, ‘자네’ 대신 ‘너희’라고 칭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반말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연인간의 편지에서 여성의 어투로 간주되는 ‘~요’체를 버리고 ‘~어’체를 택했다. 그러다보니 세 사람의 관계가 보다 평등한 느낌을 주며, 클라라가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상냥하고 혹은 “유순한”(이정태역, 176) 아가씨가 아니라, 나타나엘이 느끼듯 쌀쌀맞고 냉정한 사람으로 나타나 보이는 효과를 준다. 예컨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나타나엘 —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나타나엘! 얼토당토않고—어처구니없고—제 정신이 아닌 그 동화 따위는 불속에 던져버려 »Nathanael – mein herzlieber Nathanael! – wirf das tolle – unsinnige – wahnsinnige Märchen ins Feuer.”(황종민역, 150)는 정말로 독설을 날리는 그 어조가 잘 살아 있다.
 
  또한 이 번역에서는 코폴라의 어색한 독일어를 어떻게 우리 말로 살릴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Ei, nix Wetterglas, nix Wetterglas! – hab auch sköne Oke – sköne Oke!« 이미 김영옥이 “앤경”이라는 역어를 써서 코폴라의 말투를 조금이라도 변별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황종민은 더 과감하게 “알흠다운 눈깔”(153)이라고 번역한다. 이 표현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나타나엘이 죽을 때도 똑같이 반복되므로 악마에 씌인, 혹은 악마적 광기에 지배당한 나타나엘을 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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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현성(2001)| 김현성 역의 <모래 사나이>(2001)]]<span id="김현성(2001)R" />'''
황금 항아리<br/>
 
모래 사나이<br/>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br/>
 
스뀌데리 부인<br/>
 
작품해설 / 에테아 호프만의 생애와 소설<br/>
 
작가연보<br/>
 
발간사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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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출간된 김현성의 <모래 사나이>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번역본은 90년대 말 열린책들에서 프로이트 전집을 펴내면서 정신분석에 대한 수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소설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점에 출간되었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번역본 중에서도 저명한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점, 호프만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소개되어 전문성을 갖추었으면서도 학술서의 외피를 띠지 않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김현성의 번역본은 가장 널리 읽힌 판본이 되었다.
창비세계문학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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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현성의 번역은 다른 번역본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정돈되고 다소 밋밋한 인상을 준다. 예컨대 소설의 맨 첫 문장, “너무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아 모두들 걱정하고 있겠지”(김현성, 13)는 김영옥 번역의 “모두들 분명 안절부절 못하겠지.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 정말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으니 말이야”(273)에 비해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쓰는 그 초조하고 답답하며 미칠 것 같은 심정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또한 원문의 줄표를 옮기지 않아 원문보다 어조가 단조로워졌다. 예컨대 스플란차니와 코폴라가 한바탕 혈투를 벌일 때 그들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와 욕설은 줄표를 살린 번역에 비해 이것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라는 것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원문의 문체가 지닌 역동성과 난삽함이 상당 부분 약해지고 말았다.
  
== '''번역서지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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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거리는 소리, 덜컹거리는 소리, 밀치는 소리, 문에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저주와 욕설이 들렸다. ‘이거 놔. 내놔. 비열한 놈. 흉악한 놈. 그래서 거기다 신명을 다 바쳤어? 하하하하! 우린 그런 내기는 안 했어. 나는, 나는 눈을 만들었어. 기계장치도. 네 기계 장치는 멍청한 악마야. 빌어먹을 개 같은 멍청한 시계공 주제에. 꺼져, 이 악마. 잠깐. 꼭두각시나 조종하는 놈. 악마 같은 짐승, 거기 서. 꺼져 내놔!’(김현성, 62-63)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width:100%; text-align: center;"
 
!style="width:10%"|번호 ||style="width:20%"| 작품명(한국어) || style="width:10%"|저자명(원본) || style="width:15%"|저자명(독일어) ||style="width:15%"| 역자 || style="width:20%"|출판사 ||style="width:10%"| 출판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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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모래 사나이||E.T.A. 호프만||E.T.A. Hoffmann||황종민||창비||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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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구르는 소리 – 쨍그랑 소리 – 밀치는 소리 – 문에 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욕설과 저주가 들렸다. 놓으라고 – 놓으라고 – 비열한 놈아 – 흉악한 놈아! - 거기 몸과 인생을 다 바쳤다고? - 하하하하! - 약속이 틀리잖아 – 내가, 내가 눈알을 만들었어 – 기계장치는 내가 만들었지 – 멍청한 놈아, 그것도 기계장치냐 – 빌어먹을 개 같은 머저리 기계공아 – 꺼지라고 – 사탄아- 그만- 돌팔이 인형공 - 악마 같은 짐승아! - 그만 – 꺼져 – 놓으라고!-(황종민, 164)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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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쿵쾅 바닥을 발로 구르기도 하고—서로 맞부딪치기도 하고—그 사이에 간간이 욕지거리와 저주하는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이것 놔……네 놈이 먼저 놔……비열한 자식……악당놈! 이건 내 목숨이 걸린 거야……하, 하, 하, 하!……전혀 얘기가 틀리잖아……눈알은 눈알은 내가 만든 거야……태엽 장치를 만든 사람은 나라구. 네놈이 네놈이 만든 그 개떡 같은 태엽 장치가 뭐야……싸구려 시계방의 미친개 같은 놈……빨리 나가……악마……그만둬……꺼져버려……놓지 못해!>(김정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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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김현성의 번역본은 처음으로 상세한 각주와 해설을 제공하여 원문의 이해를 돕는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다른 호프만의 작품과의 연관성 속에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프로이트의 ‘섬뜩함’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소설에 여러 번 등장하는 “unheimlich”를 모두 일관되게 ‘두려운’이라고 옮겼다. 이는 앞서 번역된 프로이트의 논문에서 이 용어를 ‘두려운 낯설음’이라고 옮긴 것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역자는 특정한 관점의 설명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이 다루는 여러 주제를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이 번역본은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기에 오랫동안 적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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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황종민(2017)| 황종민 역의 <모래 사나이>(2017)]]<span id="황종민(2017)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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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황종민이 번역하여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모래 사나이>(2017)다. 황종민의 번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존 번역본들과 달리 현대적인 어조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쓸 때 기존의 ‘~네’체가 아니라 확연한 반말체인 ‘~어’체를 쓰고, ‘자네’ 대신 ‘너희’라고 칭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반말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연인 간의 편지에서 여성의 어투로 간주되는 ‘~요’체를 버리고 ‘~어’체를 택했다. 그러다 보니 세 사람의 관계가 보다 평등한 느낌을 주며, 클라라가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상냥하고 혹은 “유순한”(이정태, 176) 아가씨가 아니라, 나타나엘이 느끼듯 쌀쌀맞고 냉정한 사람으로 나타나 보이는 효과를 준다. 예컨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나타나엘 —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나타나엘! 얼토당토않고—어처구니없고—제 정신이 아닌 그 동화 따위는 불속에 던져버려”(황종민, 150)는 정말로 독설을 날리는 그 어조가 잘 살아 있다. 그래서 나타나엘이 이후 클라라에게서 마음이 돌아서고 올랭피아에게로 향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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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번역에서는 이탈리아인 코폴라의 어색한 독일어를 어떻게 우리 말로 살릴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미 김영옥이 “앤경”이라는 역어를 써서 코폴라의 말투를 조금이라도 변별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황종민은 더 과감하게 “알흠다운 눈깔”(황종민, 153)이라고 번역한다. 이 표현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악마에 씌인, 혹은 악마적 광기에 지배당한 나타나엘을 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밖에도 “sausend und brausend”와 같이 운이 맞는 표현을 “윙윙 휭휭”(황종민, 148)이라고 옮겨놓은 부분에서도 역자가 원어의 느낌을 다소 어색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얼마나 충실하게 옮기려고 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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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세계문학전집이 그렇듯이 번역의 문체는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어 문학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높여준다. 때때로 이런 언어적 조탁이 노파의 거친 말투에도 적용되어 노파가 “꼬부랑한”이나 “구부러진”과 같은 말을 제치고 “휘움한”이란 문어체를 쓴다거나 할 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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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민의 번역은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인만큼 지금까지 여러 번역본이 반복적으로 범한 번역 실수가 거의 없고,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거의 유일하게(권혁준 역과 함께) 제대로 옮기고 있다. 나타나엘은 아버지와 코펠리우스의 수상쩍은 실험을 몰래 훔쳐보다가 그만 걸리고 만다. 이때 코펠리우스는 경악스럽게도 나타나엘의 팔다리를 빼서 이리저리 끼워 맞춰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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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steht doch überall nicht recht! ’s gut so wie es war! – Der Alte hat’s verstanden!“(18) <어디 할 것 없이 온통 고장투성이군! 좋아, 이제 본래대로 됐어! ... 이러한 기술도 다 여러 해 동안 익힌 솜씨거든!>(김정회, 12) “어디다 끼워 봐도 좋지 않군! 이전 상태로 있는 게 좋아! — 꼰대가 뭔가를 이해하긴 했구만”(김영옥, 231) “온통 제대로 맞질 않아. 원래 있던 대로가 더 낫군! 늙은이 말이 맞아!”(김현성, 23)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원래대로가 좋겠어! — 조물주가 제대로 만들었군!”(황종민,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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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Der Alt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해석의 관건이다. 이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나님께 파우스트의 유혹을 허락받은 직후에 ‘하나님’을 비꼬아 부른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Der Alte”는 신이다. 코펠리우스라는 이름의 악마는 나타나엘이 마치 관절인형이라도 되는 듯이 그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뺐다가 끼워 본다. 이것은 인간도 조물주가 만든 인형, 기계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나타나엘의 팔다리의 구조가 원래가 나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놓으면서 “하나님 노친네가 잘 하긴 했네”라고 마지못해 인정한다. 이것을 이해한 번역은 여기서는 황종민 역 뿐이다. 김정회는 아예 의역으로 문제를 가려버렸으며, 김영옥 역의 “꼰대”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했을 법한 말이나, 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없어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김현성도 늙은이라고 그냥 직역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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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민 역본은 이렇듯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원문의 의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그간의 연구성과가 반영된 상당히 전문적인 깊이가 있는 해설 <에테아 호프만의 생애와 소설>도 제공한다. 이 해설은 작가의 생애를 유년 시절부터 법원 관리 시절, 밤베르크에서 악단장으로 고용되어 있던 시기, 창작 시기 등으로 나누어서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하고, <모래 사나이>와 함께 번역되어 실린 작품들을 모두 꼼꼼하게 해설한다. <모래 사나이>의 경우 네 문단에 걸쳐서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키틀러의 해석까지도 소개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코펠리우스를 앙시앵 레짐의 상징이라고도 해석한 부분이다. 또한 이 판본은 각주가 가장 많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은 그 성격이 학술적이다. 이미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높아진 기대 수준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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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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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모래 사나이>가 한국어로 번역되어온 지난 50여 년 동안 번역의 정확도는 크게 올라갔으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졌다. 현실과 환상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는 낭만주의적 예술가의 자화상이라는 해석에서부터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비판이라는 해석, 과도한 낭만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자의 자기비판이라는 해석 등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왔으며, 그간 간과되었던 표현이나 구조를 새롭게 독해해낸 정신분석 등의 관점이 번역에도 수용되어 번역어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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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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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1971): 모래사람. 박문사.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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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회(1981): 모래 사나이. 금성사.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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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1997): 모래 사내. 서울대학교출판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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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2001): 모래 사나이. 문학과지성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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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민(2017): 모래 사나이. 창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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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 right">이경진</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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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jekt-Gutenberg [https://www.projekt-gutenberg.org/etahoff/sandmann/sandmann.html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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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호프만, E. T.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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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비평된작품]]

2024년 7월 27일 (토) 06:37 기준 최신판

E. T. A. 호프만(E. T. A. Hoffmann, 1776-1822)의 소설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작가E. T. A. 호프만(E. T. A. Hoffmann)
초판 발행1816
장르소설


작품소개

1816년 작품집 <밤 풍경>에 묶여 출판된 호프만의 가장 잘 알려진 단편소설이자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대학생 나타나엘은 어릴 적 밤마다 아버지를 자주 찾아왔던 변호사 코펠리우스가 무시무시한 ‘모래 사나이’이며 아버지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리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작가는 서간체의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을 혼합하여 이런 나타나엘의 두려움이 그의 과도한 상상력과 광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래 사나이가 존재하여 나타나엘의 행복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것인지의 여부를 불명확하게 서술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성과 광기의 대립, 악마, 도플갱어, 인조인간 등 어두운 낭만주의(Schwarze Romantik)의 주요 모티프들이 탁월하게 활용되고 있다. 1971년 박문사의 <세계문학대계> 총서 3권 <낭만주의 문학>에 소개된 이정태의 <모래사람>이 가장 오래된 번역으로 확인된다.


초판 정보

Hoffmann, E. T. A.(1816): Der Sandmann. In: Nachtstücke. Vol. 1. Berlin: Reimer, 1-82.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모래사람 世界短篇文學大系. 3, 浪漫主義文學 世界短篇文學大系 3 호프만 李鼎泰(이정태) 1971 博文社 176-206 편역 완역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 브람빌라 王女; 벼룩의 우두머리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 39 호프만 김정회 1981 금성출판사 3-42 편역 완역 저본을 작품집 내의 <크라이슬레이아나>에 대한 것만 밝히고 있음.
모래 사내 기적의 진실과 환상속의 현실: 독일작가들의 창작동화.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 2 에.테.아 호프만 김영옥 1996 서울대학교출판부 273-320 편역 완역
4 모래 요정 호프만의 환상문학 E.T.A. Hoffman 김선형 2000 경남대학교출판부 7-55 편역 완역
5 모래남자 모래남자 E.T.A. 호프만 라영균 2000 사회평론 7-87 편역 완역 프로이트의 <섬뜩함> 수록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적막한 집;장자 상속 문지스펙트럼 2-020 - 외국문학선 E.T.A. 호프만 김현성 2001 금성출판사 13-74 편역 완역
7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 지만지고전천줄 134 에른스트 호프만 권혁준 2008 지만지 45-119 완역 완역
8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에른스트 호프만 권혁준 2011 지식을만드는지식 3-75 완역 완역
9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큰글씨책 에른스트 호프만 권혁준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3-75 완역 완역
모래 사나이 모래 사나이 창비세계문학 62 E.T.A. 호프만 황종민 2017 창비 124-171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호프만의 이 소설은 1971년 박문사 <세계단편문학대계> 중 <낭만주의문학>에 <모래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어 독일의 중요한 낭만주의 단편 문학의 하나로 소개된 이래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속적으로 번역·수용되어 왔다. 소설의 제목은 현재 널리 알려진 “모래 사나이”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모래사람” 이외에도 “모래 사나이”와 유사한 “모래 사내”(김영옥 역), “모래 요정”(김선형 역), “모래 남자”(라영균 역)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1971년에 출판된 초역은 인명 상에서 일본어의 영향이 엿보여 일본어 중역으로 추측된다. 그 후 10년 만에 새롭게 재번역된 김정회의 <모래 사나이>는 전반적인 번역의 질이 초역본보다 훨씬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작가 호프만의 문학세계를 개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전보다 진일보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김정회의 번역 외에는 오랫동안 다른 번역본이 없었으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다양한 번역본이 쏟아져 나왔다: 김영옥의 <모래 사내>(1997), 김선형의 <모래 요정>(2000), 라영균의 <모래남자>(2000), 김현성의 <모래 사나이>(2001). 이는 <모래 사나이>를 ‘섬뜩함 das Unheimliche’의 미학의 예시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프로이트의 유명한 동명 논문 지크문트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정장진 옮김, 1996), 열린책들. 정장진은 ‘Der Sandmann’을 ‘모래 인간’이라 옮겨 놓았다. 이 번역되면서 소설에 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중에서 김현성이 번역한 <모래 사나이>(문학과지성사, 2001)는 2020년 현재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가장 널리 읽힌 판본이다. 이 시기부터 <모래 사나이>는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비판의 실례로, 또 정신분석적 문학 텍스트로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권혁준(지만지, 2011)과 황종민(창비, 2017)의 번역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아래에서는 이 가운데 각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본을 몇 가지 선별하여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정태 역의 <모래사람>(1971)

<모래 사나이>의 한국어 초역 <모래사람>은 박문사 <세계단편문학대계>(全 10권)의 제3권 <낭만주의문학>(1971)에 실려 출간되었다. 번역은 독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이정태(李鼎泰)가 맡았다고 되어 있으나 역자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다. 초역본은 주인공의 이름 나타나엘을 ‘나타나에르’로 표기하고 있어, 앞서 언급했듯 일본어 중역으로 짐작된다. 또한 ‘모래사람 Sandmann’이라는 핵심적인 표현을 일관되게 번역하는 대신, “모래사내(沙男)”(이정태, 177)와 “모래사람”을 섞어 쓰고 있어 역어에 대한 고민 부족을 방증한다. 역자가 따로 쓴 후기나 해설은 없고, <세계단편문학대계>의 편찬자 구인환 소설가가 권두에 유럽의 낭만주의 문학 전반을 안내하면서 호프만과 <모래사람>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여기서 이 소설은 예술가의 고뇌로 인해 “허상과 실상의 사이를 방황”(구인환, 43)하는 호프만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소개된다.


2) 김정회 역의 <모래 사나이>(1981)

독문학자 김정회(前 경기대 교수)는 1981년 금성사 세계문학대전집(全 120권) 제11권 <모래 사나이·브람빌라 왕녀>에 호프만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모래 사나이>를 번역했다. 이 번역은 초역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유일한 번역이었기 때문에, 8·90년대 <모래 사나이> 수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번역본 또한 여러 의문점을 남기는데, 우선 나타나엘을 ‘나타니엘’로, 로타르 Rothar를 ‘로타리오’로 옮겨놓아 독일어 원문을 직접 옮긴 것이 맞는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김정회의 번역은 호프만의 소설에 담긴 강렬한 감정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작품의 매력을 십분 전달한다. 역자는 전반적으로 독일어의 문장구조나 표현에 얽매이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읽는 맛을 살리는 이른바 의역을 했다. 이러한 번역은 원문과 그 의미가 크게 엇나가지 않으면서도 나타나엘의 격정적인 정신세계를 잘 전달하는 장점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나타나엘이 친구 로타르에게 자신이 최근 겪은 끔찍한 일을 털어놓으면서 “이 사건의 의미를 밝히는 데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 이른바 인연(因緣)을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것 같군.”(김정회, 6)이라고 번역한 부분을 보자. 여기서 ‘인연’은 ‘Beziehung’을 옮긴 말로, 똑같은 단어를 ‘연관성’이라고 옮긴 이후의 김현성 역본과 비교해 볼 때 훨씬 구체적이고 가깝게 들린다. 또한 ‘인연’을 수식하는 말인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 tief in mein Leben eingreifende”도 “내 삶에 깊이 관련된”(김현성, 14)이라고 옮긴 경우보다 훨씬 생생하게 그 의미가 다가온다. 역자는 책 맨 뒤에 <호프만, 그 인간과 작품>이라는 제목의 캐리커처 형식의 해설에서 호프만이 얼마나 개성 넘치는 익살꾼에 “유별난 괴짜”(김정회, 450)인지를 묘사한다. 그는 호프만을 “다재다능한 ‘격정의 방랑가’”(김정회, 447), “스스로 자처한 ‘격정의 방랑가’”로 바라보고 있으며, 호프만이 충동적이고 정지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임을 강조한다(김정회, 448). 이러한 해석을 토대로 역자는 원문의 격정적인 어조를 생동감 넘치게 – 때로는 충실한 수준을 넘어서- 살리고 있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부분을 보자:

“그럼 이제부터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보겠네. 아무래도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해도 마치 미치광이처럼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릴 녀석이 내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다네.”(김정회, 5) 
“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야겠지. 그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 해도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오지 뭐야.”(김현성, 13-4)

이 번역의 격정적 어조는 다른 번역본, 예컨대 이후의 김현성 역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곧바로 알 수 있다. 김정회는 여기서 ‘es’(그것)를 김현성처럼 수동으로 번역하여 언급을 피하거나, 혹은 김영옥처럼 ‘그것’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녀석’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자기 안의 타자를 당시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할 뿐만 아니라, 수동문으로 번역할 때보다 주인공이 겪는 분열의 감각을 훨씬 강렬하게 전달한다. 또한 김정회는 모래 사나이의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를 묘사할 때도 다른 판본들보다 더 격정적이고 어감이 센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나타나엘의 공포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김정회는 어조를 절묘하게 선택하여 작품의 극적 긴장감을 크게 높인다. 예컨대 그는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서간체(~네, ~지)로 번역하고 있으나, 중간에 나타나엘이 어릴 적의 기이하고 무서운 경험을 회고하는 부분부터 정확히 ‘~다’ 체로 문체를 전환한다. 나타나엘은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로타르라는 특정한 수신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독백하는 사람처럼 자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역자는 중간에 수신자에게 다시 말을 거는 “상상해 보게나”(김영옥, 278)와 같은 문장을 과감히 빼기도 했다. 또한 편지 수신인에게 이야기하는 말투는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을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면, '~다'체는 독자의 눈앞에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생생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불안과 기대로 나의 가슴은 와들와들 떨렸다. —방문 바로 앞에서 뚜렷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손잡이가 심하게 울리며 방문이 요란스레 열린다!—나는 불끈 용기를 내어 조심조심 밖을 엿보았다.(김정회, 9) 

모래 사나이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던 나타나엘의 눈앞에 드디어 방문이 열리는 대목은 ‘현재 시제’로 번역되어 그 생생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나타나엘이 클라라와 탑 위에서 코펠리우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다시 광기가 도지는 장면에서도 이런 시제 변화가 두드러진다. “코폴라의 망원경을 찾아내 그것으로 옆쪽을 들여다보았다——클라라가 렌즈 바로 앞에 보인다!——그 순간 온몸의 혈관이 찡 하고 경련을 일으켜—”(김정회, 44). 역자는 줄표 안의 문장 시제를 임의로 현재로 바꿔서 번역함으로써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독자에게 던진다. 호프만의 원작은 줄표(전각 대시)를 대단히 많이, 즐겨 사용하여 나타나엘의 어수선하고 광기 어린 사고의 흐름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준다. 이 줄표를 번역에서 얼마나 많이 재현했는가는 역자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출판 관행에서 한국어 문장에 낯선 문장부호인 줄표가 얼마나 용인되었는가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김정회의 번역은 눈여겨볼 만하다. 역자는 줄표를 한국어 문장에 사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줄표의 사용이 자아내는 효과는 줄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후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난다. 역자는 나타나엘의 아주 논리적이지만은 않은 사고와 감정의 비약을 이미지적으로도 보여준다. 이는 역자가 해설에서 호프만의 문체를 두고 “꺾어 일그러진 소용돌이처럼, 마치 말을 찾아 허덕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김정회, 456)라고 지적한 바와 상통한다.


3) 김영옥 역의 <모래 사내>(1997)

1997년 독문학자 김영옥이 새롭게 번역한 <모래 사내>는 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가 편역한 <기적의 진실과 환상 속의 현실: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1997) 2권에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이 판본은 호프만의 이 소설을 ‘경이로운 것’과 ‘환상’을 문학으로 제시한 독일 동화와 낭만주의 문학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고, 세 쪽가량의 해설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현실 인식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눈을 빼앗긴 낭만주의자의 자기 파멸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소개하여 한국 독자들에게 작품 해석의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영옥의 <모래 사내>는 원문의 문장구조를 최대한 모방하면서도 의미가 대체로 정확하고 가독성이 높은 한국어로 옮겨놓아 이전 번역본에 비해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인용 가능한 번역본을 내놓았다는 의의가 있다.


4) 김현성 역의 <모래 사나이>(2001)

2001년에 출간된 김현성의 <모래 사나이>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번역본은 90년대 말 열린책들에서 프로이트 전집을 펴내면서 정신분석에 대한 수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소설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점에 출간되었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번역본 중에서도 저명한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점, 호프만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소개되어 전문성을 갖추었으면서도 학술서의 외피를 띠지 않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김현성의 번역본은 가장 널리 읽힌 판본이 되었다. 그런데 김현성의 번역은 다른 번역본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정돈되고 다소 밋밋한 인상을 준다. 예컨대 소설의 맨 첫 문장, “너무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아 모두들 걱정하고 있겠지”(김현성, 13)는 김영옥 번역의 “모두들 분명 안절부절 못하겠지.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 정말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으니 말이야”(273)에 비해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쓰는 그 초조하고 답답하며 미칠 것 같은 심정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또한 원문의 줄표를 옮기지 않아 원문보다 어조가 단조로워졌다. 예컨대 스플란차니와 코폴라가 한바탕 혈투를 벌일 때 그들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와 욕설은 줄표를 살린 번역에 비해 이것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라는 것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원문의 문체가 지닌 역동성과 난삽함이 상당 부분 약해지고 말았다.

쿵쿵거리는 소리, 덜컹거리는 소리, 밀치는 소리, 문에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저주와 욕설이 들렸다. ‘이거 놔. 내놔. 비열한 놈. 흉악한 놈. 그래서 거기다 신명을 다 바쳤어? 하하하하! 우린 그런 내기는 안 했어. 나는, 나는 눈을 만들었어. 기계장치도. 네 기계 장치는 멍청한 악마야. 빌어먹을 개 같은 멍청한 시계공 주제에. 꺼져, 이 악마. 잠깐. 꼭두각시나 조종하는 놈. 악마 같은 짐승, 거기 서. 꺼져 내놔!’(김현성, 62-63)
 발 구르는 소리 – 쨍그랑 소리 – 밀치는 소리 – 문에 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욕설과 저주가 들렸다. 놓으라고 – 놓으라고 – 비열한 놈아 – 흉악한 놈아! - 거기 몸과 인생을 다 바쳤다고? - 하하하하! - 약속이 틀리잖아 – 내가, 내가 눈알을 만들었어 – 기계장치는 내가 만들었지 – 멍청한 놈아, 그것도 기계장치냐 – 빌어먹을 개 같은 머저리 기계공아 – 꺼지라고 – 사탄아- 그만- 돌팔이 인형공 - 악마 같은 짐승아! - 그만 – 꺼져 – 놓으라고!-(황종민, 164)
쿵쾅쿵쾅 바닥을 발로 구르기도 하고—서로 맞부딪치기도 하고—그 사이에 간간이 욕지거리와 저주하는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이것 놔……네 놈이 먼저 놔……비열한 자식……악당놈! 이건 내 목숨이 걸린 거야……하, 하, 하, 하!……전혀 얘기가 틀리잖아……눈알은 눈알은 내가 만든 거야……태엽 장치를 만든 사람은 나라구. 네놈이 네놈이 만든 그 개떡 같은 태엽 장치가 뭐야……싸구려 시계방의 미친개 같은 놈……빨리 나가……악마……그만둬……꺼져버려……놓지 못해!>(김정회, 40)

그 외에 김현성의 번역본은 처음으로 상세한 각주와 해설을 제공하여 원문의 이해를 돕는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다른 호프만의 작품과의 연관성 속에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프로이트의 ‘섬뜩함’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소설에 여러 번 등장하는 “unheimlich”를 모두 일관되게 ‘두려운’이라고 옮겼다. 이는 앞서 번역된 프로이트의 논문에서 이 용어를 ‘두려운 낯설음’이라고 옮긴 것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역자는 특정한 관점의 설명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이 다루는 여러 주제를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이 번역본은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기에 오랫동안 적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5) 황종민 역의 <모래 사나이>(2017)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황종민이 번역하여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된 <모래 사나이>(2017)다. 황종민의 번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존 번역본들과 달리 현대적인 어조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쓸 때 기존의 ‘~네’체가 아니라 확연한 반말체인 ‘~어’체를 쓰고, ‘자네’ 대신 ‘너희’라고 칭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반말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연인 간의 편지에서 여성의 어투로 간주되는 ‘~요’체를 버리고 ‘~어’체를 택했다. 그러다 보니 세 사람의 관계가 보다 평등한 느낌을 주며, 클라라가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상냥하고 혹은 “유순한”(이정태, 176) 아가씨가 아니라, 나타나엘이 느끼듯 쌀쌀맞고 냉정한 사람으로 나타나 보이는 효과를 준다. 예컨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나타나엘 —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나타나엘! 얼토당토않고—어처구니없고—제 정신이 아닌 그 동화 따위는 불속에 던져버려”(황종민, 150)는 정말로 독설을 날리는 그 어조가 잘 살아 있다. 그래서 나타나엘이 이후 클라라에게서 마음이 돌아서고 올랭피아에게로 향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준다. 또한 이 번역에서는 이탈리아인 코폴라의 어색한 독일어를 어떻게 우리 말로 살릴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미 김영옥이 “앤경”이라는 역어를 써서 코폴라의 말투를 조금이라도 변별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황종민은 더 과감하게 “알흠다운 눈깔”(황종민, 153)이라고 번역한다. 이 표현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악마에 씌인, 혹은 악마적 광기에 지배당한 나타나엘을 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밖에도 “sausend und brausend”와 같이 운이 맞는 표현을 “윙윙 휭휭”(황종민, 148)이라고 옮겨놓은 부분에서도 역자가 원어의 느낌을 다소 어색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얼마나 충실하게 옮기려고 했는지를 보여준다. 창비 세계문학전집이 그렇듯이 번역의 문체는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어 문학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높여준다. 때때로 이런 언어적 조탁이 노파의 거친 말투에도 적용되어 노파가 “꼬부랑한”이나 “구부러진”과 같은 말을 제치고 “휘움한”이란 문어체를 쓴다거나 할 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황종민의 번역은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인만큼 지금까지 여러 번역본이 반복적으로 범한 번역 실수가 거의 없고,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거의 유일하게(권혁준 역과 함께) 제대로 옮기고 있다. 나타나엘은 아버지와 코펠리우스의 수상쩍은 실험을 몰래 훔쳐보다가 그만 걸리고 만다. 이때 코펠리우스는 경악스럽게도 나타나엘의 팔다리를 빼서 이리저리 끼워 맞춰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s steht doch überall nicht recht! ’s gut so wie es war! – Der Alte hat’s verstanden!“(18) <어디 할 것 없이 온통 고장투성이군! 좋아, 이제 본래대로 됐어! ... 이러한 기술도 다 여러 해 동안 익힌 솜씨거든!>(김정회, 12) “어디다 끼워 봐도 좋지 않군! 이전 상태로 있는 게 좋아! — 꼰대가 뭔가를 이해하긴 했구만”(김영옥, 231) “온통 제대로 맞질 않아. 원래 있던 대로가 더 낫군! 늙은이 말이 맞아!”(김현성, 23)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원래대로가 좋겠어! — 조물주가 제대로 만들었군!”(황종민, 132)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Der Alt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해석의 관건이다. 이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나님께 파우스트의 유혹을 허락받은 직후에 ‘하나님’을 비꼬아 부른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Der Alte”는 신이다. 코펠리우스라는 이름의 악마는 나타나엘이 마치 관절인형이라도 되는 듯이 그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뺐다가 끼워 본다. 이것은 인간도 조물주가 만든 인형, 기계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나타나엘의 팔다리의 구조가 원래가 나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놓으면서 “하나님 노친네가 잘 하긴 했네”라고 마지못해 인정한다. 이것을 이해한 번역은 여기서는 황종민 역 뿐이다. 김정회는 아예 의역으로 문제를 가려버렸으며, 김영옥 역의 “꼰대”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했을 법한 말이나, 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없어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김현성도 늙은이라고 그냥 직역하는 데 그쳤다. 황종민 역본은 이렇듯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원문의 의미에 가장 충실한 번역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그간의 연구성과가 반영된 상당히 전문적인 깊이가 있는 해설 <에테아 호프만의 생애와 소설>도 제공한다. 이 해설은 작가의 생애를 유년 시절부터 법원 관리 시절, 밤베르크에서 악단장으로 고용되어 있던 시기, 창작 시기 등으로 나누어서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하고, <모래 사나이>와 함께 번역되어 실린 작품들을 모두 꼼꼼하게 해설한다. <모래 사나이>의 경우 네 문단에 걸쳐서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키틀러의 해석까지도 소개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코펠리우스를 앙시앵 레짐의 상징이라고도 해석한 부분이다. 또한 이 판본은 각주가 가장 많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은 그 성격이 학술적이다. 이미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높아진 기대 수준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와 전망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가 한국어로 번역되어온 지난 50여 년 동안 번역의 정확도는 크게 올라갔으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졌다. 현실과 환상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는 낭만주의적 예술가의 자화상이라는 해석에서부터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비판이라는 해석, 과도한 낭만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자의 자기비판이라는 해석 등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왔으며, 그간 간과되었던 표현이나 구조를 새롭게 독해해낸 정신분석 등의 관점이 번역에도 수용되어 번역어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정태(1971): 모래사람. 박문사.
김정회(1981): 모래 사나이. 금성사.
김영옥(1997): 모래 사내. 서울대학교출판부.
김현성(2001): 모래 사나이. 문학과지성사.
황종민(2017): 모래 사나이. 창비.

이경진

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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