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노벨레 (Traumnovell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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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0011}}의 노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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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꿈의 노벨레 (Traumnov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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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꿈의 노벨레 || 꿈의 노벨레 || || 슈니틀러 || 박미애 || 1993 || 자유출판사 || 11-13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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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박미애(1993)" />[[#박미애(1993)R|1]] || 꿈의 노벨레 || 꿈의 노벨레 || || 슈니틀러 || 박미애 || 1993 || 자유출판사 || 11-13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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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꿈의 노벨레 || 꿈의 노벨레 || 문지스펙트럼 2-009 || 아르투어 슈니츨러 || 백종유 || 1997 || 문학과지성사 || 13-164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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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백종유(1997)" />[[#백종유(1997)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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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노벨레 || 꿈의 노벨레 || 문지스펙트럼 2-009 || 아르투어 슈니츨러 || 백종유 || 1997 || 문학과지성사 || 13-164 || 완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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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꿈 이야기 || 아이즈 와이드 오픈 || || 아르투어 슈니츨러 || 김재혁 || 1999 || 씨엔씨미디어 || 8-12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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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재혁(1999)" />[[#김재혁(1999)R|3]] || 꿈 이야기 || 아이즈 와이드 오픈 || || 아르투어 슈니츨러 || 김재혁 || 1999 || 씨엔씨미디어 || 8-12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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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꿈의 노벨레 || 민들레꽃의 살해 || || 아르투어 슈니츨러 || 김재혁 || 2005 || 현대문학 || 7-4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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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재혁(2005)" />[[#김재혁(2005)R|4]] || 꿈의 노벨레 || 민들레꽃의 살해 || || 아르투어 슈니츨러 || 김재혁 || 2005 || 현대문학 || 7-4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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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꿈의 노벨레 ||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 세계문학전집 57 || 아르투어 슈니츨러 || 모명숙 || 2010 || 문학동네 || 149-26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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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모명숙(2010)" />[[#모명숙(2010)R|5]] || 꿈의 노벨레 ||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 세계문학전집 57 || 아르투어 슈니츨러 || 모명숙 || 2010 || 문학동네 || 149-26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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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 더 잘 알려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2021년 7월 현재까지 네 명의 번역자에 의해 총 여섯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초역은 1993년 자유출판사에서 나온 박미애의 번역이다. 슈니츨러의 경우 그가 사망한 1931년에 Der blinde Geronimo und sein Bruder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 <신여성>이라는 잡지에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ref>작가명은 슈니첼로 되어 있고 역자 미상이다.</ref> 50년대 후반부터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꾸준히 소개된 점을 고려할 때,<ref>슈니츨러 단편집, 장남준 역(1959 현대문고); 독일단편문학대계, 정경석 외 역(1971 일지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박환덕 역(1977 범조사); 바람둥이 고향에 돌아오다, 홍경호 역(1978 태창출판사) 등.</ref> <꿈의 노벨레>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번역 출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93년의 초역 이후 97년에 백종유의 번역(문학과지성사)이, 99년에는 김재혁의 번역(씨엔씨미디어)이 뒤를 이었다. 백종유의 번역은 2020년 같은 출판사에서 2쇄가 나왔는데, 신세대풍으로 어조가 바뀐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기에 다른 번역본으로 볼 만하다. 김재혁의 번역도 1999년에는 <아이즈 와이드 오픈>(씨엔씨미디어)이란 책에 “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지만, 2005년에는 문학전문출판사(현대문학)에 의해 독일어 원제목인 “꿈의 노벨레”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되었고, 번역의 내용 또는 성격이 다소 변모하여 이 또한 새로운 번역본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모명숙의 것이다.  
 
국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 더 잘 알려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2021년 7월 현재까지 네 명의 번역자에 의해 총 여섯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초역은 1993년 자유출판사에서 나온 박미애의 번역이다. 슈니츨러의 경우 그가 사망한 1931년에 Der blinde Geronimo und sein Bruder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 <신여성>이라는 잡지에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ref>작가명은 슈니첼로 되어 있고 역자 미상이다.</ref> 50년대 후반부터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꾸준히 소개된 점을 고려할 때,<ref>슈니츨러 단편집, 장남준 역(1959 현대문고); 독일단편문학대계, 정경석 외 역(1971 일지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박환덕 역(1977 범조사); 바람둥이 고향에 돌아오다, 홍경호 역(1978 태창출판사) 등.</ref> <꿈의 노벨레>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번역 출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93년의 초역 이후 97년에 백종유의 번역(문학과지성사)이, 99년에는 김재혁의 번역(씨엔씨미디어)이 뒤를 이었다. 백종유의 번역은 2020년 같은 출판사에서 2쇄가 나왔는데, 신세대풍으로 어조가 바뀐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기에 다른 번역본으로 볼 만하다. 김재혁의 번역도 1999년에는 <아이즈 와이드 오픈>(씨엔씨미디어)이란 책에 “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지만, 2005년에는 문학전문출판사(현대문학)에 의해 독일어 원제목인 “꿈의 노벨레”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되었고, 번역의 내용 또는 성격이 다소 변모하여 이 또한 새로운 번역본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모명숙의 것이다.  
  
<꿈의 노벨레>의 번역사 또는 수용사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유명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사망 및 그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영향이다. 1999년 10월 씨엔씨미디어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그해 3월에 사망한 큐브릭을 추모하며 발간된 책 속에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서 소개되고 있는바, 이 책에서는 원작자와 원작보다 유명 영화감독과 그의 유작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목차가 그것을 말해준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 <꿈 이야기>, 큐브릭과의 마지막 대담, <꿈 이야기> 작품해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세계. 이후 김재혁의 번역과 백종유의 번역이 개정되어 재출판되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 모명숙의 번역이 나오는 등 원작의 영화화 이후에 더 많은 번역서가 출간된 사실은 문학의 영화화가 문학작품의 수용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일반 독자에게는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보다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더 많이 회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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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노벨레>의 번역사 또는 수용사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유명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사망 및 그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영향이다. 1999년 10월 씨엔씨미디어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그해 3월에 사망한 큐브릭을 추모하며 발간된 책 속에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서 소개되고 있는바, 이 책에서는 원작자와 원작보다 유명 영화감독과 그의 유작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ref>이 책의 목차가 그것을 말해준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 <꿈 이야기>, 큐브릭과의 마지막 대담, <꿈 이야기> 작품해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세계.</ref> 이후 김재혁의 번역과 백종유의 번역이 개정되어 재출판되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 모명숙의 번역이 나오는 등 원작의 영화화 이후에 더 많은 번역서가 출간된 사실은 문학의 영화화가 문학작품의 수용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일반 독자에게는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보다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더 많이 회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그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그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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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종서(1969)|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69)]]<span id="박종서(1969)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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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미애(1993)|박미애 역의 <꿈의 노벨레>(1993)]]<span id="박미애(1993)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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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의 번역은 국내 초역이라는 역사적 의의뿐 아니라 번역의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당시의 번역 및 출판 상황에서는 흔치 않았던 번역의 저본 정보를 밝힌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번역본이다. 역자는 아우크스부르크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토마스 만 부부가 <꿈의 노벨레>를 읽고 감동하여 슈니츨러에게 경의를 표했는데, 자신도 그런 감동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번역 동기를 밝힌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성도덕 또는 성 윤리의 이중성이 작품의 주제라며, 그것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비극적 이중성”(7)이라고 작품에 대해 간단히 해설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번역가인 힐데 슈필(Hilde Spiel)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연관하여 해설한 글을 후문으로 덧붙였다. 문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직접 작품해설을 하기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짐작된다. 전문가의 해설을 덧붙여 독자의 작품이해를 도우려는 시도는 좋은데, 그 번역이 작품 자체의 번역과는 달리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움을 낳는다. 책 표지에 작가명을 “슈니틀러”라고 잘못 표기한 점도 덧붙여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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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박미애 번역본의 특징으로 꼽은 번역의 성실성은 직역이라는 번역 방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 1장에서 알베르티네가 남편과의 에로스적 합일을 기대했던 처녀 적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자. 그녀는 남편에게 “내가 처녀로 당신의 부인이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예요.”(박미애 역, 21)라고 말한다. 독일어 원문은 “[...] lag es nicht an mir, dass ich noch jungfräulich deine Gattin wurde [...]”이다. “내가 숫처녀로 당신 아내가 된 것도 알고 보면 내가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아시나봐.”로 번역한 백종유의 초역(25)이나 “당신의 아내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있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요.”로 번역한 김재혁의 초역(18)과 비교해 보면, 박미애 번역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미애는 어떤 부가적인 표현이나 과장 없이 원문을 문자 그대로 번역했다. 이로써 역자의 불필요한 해석이나 오역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김재혁은 알베르티네가 처녀성의 간직이 자신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번역했는데, 그녀는 그보다는 순결의 간직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자신의 에로스적 욕구에 무관심한 남편에게 핀잔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박미애 번역의 이런 특징은 소설 말미 부부의 대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부는 자신들이 겪은 현실과 꿈속에서의 성적 모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일탈로부터 일상의 현실로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이제 자신들이 한동안은 그런 모험에 빠져들지 않을 거라고 아내가 말하자 남편은 “영원히” 그럴 거라며 이 말을 덧붙이려 한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의 말을 막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Niemals in die Zukunft fragen.” 성적 욕망을 자제하려는 인간의 노력 및 그 한계를 암시하는 알베르티네의 이 말은 작가의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역자들의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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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해 결코 묻지 마세요.(박미애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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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세요.(백종유 초역 163/4)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개정판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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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미래를 묻지 마세요.(김재혁 초역 124) 결코 미래를 묻지 마세요.(개정판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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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미래를 대놓고 물어보아서는 안 돼요.(모명숙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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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와 김재혁은 직역을, 백종유와 모명숙은 의역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말에서 ‘묻다’라는 동사가 ‘1이 2에/에게 3을/3에 대하여 묻다’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박미애는 우리말 쓰임새에 맞게 ‘미래에 대해’ 묻지 말라고 번역했고, 김재혁은 ‘미래를’ 묻지 말라고 독일어 문법을 좀 더 반영하며 번역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독일어에서 fragen 동사는 4격지배동사로 보통 ~을/를로 번역되는 4격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동사이기 때문이다. 반면 백종유는 섣불리 미래를 예측해서 장담하지 말라는 원문의 속뜻을 살려서 ‘미래를 속단하지’ 말라고 번역한 것으로, 그리고 모명숙은 현대식 어투를 이용하여 ‘미래를 대놓고 물어보’지 말라고 번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미애의 번역은 다소 건조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역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직역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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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 번역에서는 간혹 오역과 어색한 표현이 발견되고 내용 전달에 용이하다는 판단에 따라 문단 구분을 원문과 달리 조정한 예도 종종 발견된다. 그럼에도 직역 방식을 취하며 성실히 번역한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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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종유(1997)| 백종유 역의 <꿈의 노벨레>(1997)]]<span id="백종유(1997)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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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유가 번역한 <꿈의 노벨레>는 199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문지스펙트럼 외국 문학선을 통해 출간되었다. 백종유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슈니츨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한 슈니츨러 전문가다. 국내외에서 슈니츨러로 박사학위를 한 사람이 소수이기에 그의 번역본은 해당 작가 전공자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는 전공자답게 번역의 저본 정보와 작가 연보 그리고 자신이 쓴 <빈 왈츠의 어두운 심연>이라는 역자 해설을 제공한다. 한편 출판사의 <기획의 말>에는 슈니츨러를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고 칭한 프로이트의 말과 함께 프로이트 심리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슈니츨러의 문학 세계를 소개한다. 반면 역자의 해설에서는 작품과 프로이트와의 연관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이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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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가면무도회에 다녀온 부부는 무도회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예기치 않게 성적 욕구라는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에 관한 진지한 대화로 빠져든다. 이 부분은 1장의, 아니 소설 전체의 핵심 도입부에 해당한다. “[...] und sie redeten von den geheimen Bezirken [...]”이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박미애는 부부가 “비밀스런 지역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14)고, Bezirk라는 단어를 공간적인 의미에 국한하여 ‘지역’이라고 번역했다. 반면 백종유는 “두 사람의 대화는 비밀스런 영역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17)라고 Bezirk의 드문 용법이지만 비유적인 의미인 ‘영역’이라는 단어로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의도가 잘 살아나는 번역을 만들어냈다. 앞의 “Niemals in die Zukunft fragen.”에 대한 번역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백종유는 슈니츨러 전공자답게 원문의 의미를 살려내는 번역을 했는데, 이로써 박미애의 번역보다는 내용이 좀 더 잘 전달되는 측면이 있다.
  
박종서 번역본의 의의는 국내 초역이라는 점인데, 이후 이 소설의 이해 및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설의 중요한 개념 및 상황에 대한 번역에서 그런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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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슈니츨러의 문체는 장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세미콜론의 빈번한 사용으로 문장이 길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이것을 번역에 반영하기란 전혀 쉽지 않다. 백종유는 마침표 대신 콤마를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늘어뜨리거나,<ref>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저 멀리 해변엔 당신도 알다시피 작은 시골집들이 드문드문 있잖아, 그 집들은 제각각 독자적인 작은 세계이지, 어떤 집엔 나무 울타리를 둘러친 정원이 딸려 있고 어떤 집은 그저 숲에 둘러싸여 있지, 그리고 해수욕객을 위한 탈의용 오두막은 말야, 그 집에서부터 시골길과 넓은 해변을 건너야 나타나지, 그만큼 멀리 떨어져서 다른 세상이었던 셈이야.”(20-21쪽)</ref> 단문으로 끊어서 번역하면서 “~ㄴ 것이다”라는 설명식 어법을 사용한다.<ref>몇 군데 예를 들면, “저녁 식사 전에 시작했었던 이야기를 미처 못다 했던 것이다.”(14쪽) “금년의 카니발이 끝나기 직전에 가면 무도회에 가보자고 서둘러 결정했었던 것이다.”(14쪽) “두 사람은 코미디에 빠져든 것이다.”(15쪽)</ref> 나름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원문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부 사이의 어조 번역에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발견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전반적으로 반말인 ‘~어’체를 사용하나 곳곳에서 존댓말인 ‘~요’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 아내는 남편에게 전반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하다가 반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바, 어조가 일관되지 않아 독서의 흐름이 끊기는 현상이 벌어진다.  
  
1951년, 토마스 만이 그의 나이 77세에 발표한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원숙한 세계관과 한층 더 세련된 문체가 돋보인다. 여기에는 서사의 전개에 틈틈이 끼어들면서 자기 생각과 감정 등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서술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 현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한껏 드러내는 전지적 서술자인, 소설 밖의 이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서술자는 로마에 있는 종이란 종이 다 울리고 있다며, 그것을 울리는 존재와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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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유의 번역은 슈니츨러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라는 점과 직역이 아닌 의역을 통해 원문의 의미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Wer also läutet die Glocken Roms? ― Der Geist der Erzählung. ― Kann denn der überall sein, hic et ubique, [...] Allerdings, das vermag er. Er ist luftig, körperlos, allgegenwärtig, nicht unterworfen dem Unterschiede von Hier und Dort.
 
  
그러면 대체 누가 로오마의 종을 울리고 있을까? ― 전설의 넋이다. ― 그런데 그 넋은 어디나 있는 것일까? [...] 전설의 넋은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공기와 같은 것으로서 형체도 없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것이요, 이곳저곳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292)
 
  
소설의 서술자는 자신이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편재하면서 종을 울리고 있는 저 “전설의 넋”(박종서는 Der Geist der Erzählung을 이렇게 번역했다)의 육화된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 소설은 중세 고지 독일의 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의 서사시 <그레고리우스>에 기초하고 있는바, 즉 전설에서 그 소재를 가져왔기에 박종서는 Erzählung을 전설로 번역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에는 소설의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서사/이야기 Erzählen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렇게 번역된 것 같다. 박종서 이후의 번역자들도 이 서술자를 “전설의 영혼”(이정태), “전설의 혼”(김남경)으로 번역했다. 김현진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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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재혁(1999)| 김재혁 역의 <꿈 이야기>(1999)]]<span id="김재혁(1999)R" />'''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서술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meine Gnadenmär”라고 표현한다. 이에 대한 번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된다. 박종서는 이를 “나의 은혜로운 전설”(18)로, 이정태는 “나의 은총의 전설”(12), 김남경은 “나의 은총에 대한 전설”(11)로 번역했다. 반면 김현진은 “은총에 관한 믿기 힘든 이야기”(19)라고 단어의 내용을 풀어 쓰면서 전설이 아닌 이야기로 번역했다. 독일어 사전 두덴에 따르면 Mär는 “이상한 이야기, 믿을 수 없거나 사실이 아닌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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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독문과 교수인 김재혁의 번역작품 제목은 원제와는 조금 다르게 “꿈 이야기”이다. Traumnovelle라는 제목 속의 Novelle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새롭고 신기한 사건을 밀도 있게 형상화한 산문이야기”<ref>도이치문학 용어사전, 재단법인 한독문학번역연구소 김병옥/안삼환/안문영 엮음, 2001, 307.</ref>기승전결이 있는 희곡적 구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분량이 비교적 짧기에 단편소설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말 그대로 짧은 소설(short story)로만 이해될 수 있기에, 그 고유의 소재적, 형식적 특성을 고려하여 노벨레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벨레의 이런 특성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소설의 내용이 한편에선 꿈같은 현실 속에서, 다른 한편에선 현실 같은 꿈속에서 전개되기에 꿈같은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꿈 이야기’로 번역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김재혁은 작품해설에서 부부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253) 작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적 욕망의 파노라마를 그려내”(252)고 있다고 작품을 소개한다.  
소설의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하느님의 어린 양이 로마에 사는 경건한 남자 프로부스의 꿈에 나타나서 새 교황이 선택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프로부스는 어린 양의 계시에 놀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wie das? Symmachus und Eulalius sind beide tot, die Kirche ist ohne Haupt, die Menschheit entbehrt des Richters, und der Stuhl der Welt steht l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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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은 교수이자 시인이며 또 번역을 많이 하기로도 유명하다. 이 역서에서도 그의 그런 면모가 자주 발견되는바, 전반적으로 내용 및 상황 전달이 잘 되고, 번역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프리돌린이 덴마크 해변의 바닷가에서 만난 소녀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을 보자.  
  
박종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쥠마쿠스나 에울라리우스는 모두 다 죽어버리어, 교회에는 교황이 없고, 인간 사회에는 판사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가 비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상이다.(188) 박종서는 전반적으로 직역을 추구하는데, 이곳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로 원문에 없는 ‘지금의 현상’이란 말을 넣어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후의 역자들도 박종서와 마찬가지로 원문에 없는 “오늘의 현실”(이정태 218)이나 “현재의 상황”(김남경 262) 같은 표현을 덧붙여서 번역했다. 이와 같이 박종서의 초역은 이후 역자들에게 사실상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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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는 거기 그렇게 서 있었어. 처음에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 다음에는 분노하는 듯한 표정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어. 그러다 갑자기 미소를 지었어.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어. 두 눈은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어. 아니 윙크를 하는 것 같았어. 동시에 은근히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녀와 나를 갈라놓은 물을 발로 살짝살짝 찼어. 그러더니 늘씬하고 싱싱한 몸을 쭉 뻗었어.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것 같았어. 게다가 뜨거운 나의 시선이 제 몸에 와서 닿는 것을 느끼고는 은근히 뻐기며 달콤하게 흥분하는 듯한 기색을 역력히 보였어.(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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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d stand nun da, zuerst mit einem erschrockenen, dann mit einem zornigen, endlich mit einem verlegenen Gesicht. Mit einemmal aber lächelte sie, lächelte wunderbar; es war ein Grüßen, ja ein Winken in ihren Augen – und zugleich ein leiser Spott, mit dem sie ganz flüchtig zu ihren Füßen das Wasser streifte, das mich von ihr trennte. Dann reckte sie den jungen schlanken Körper hoch, wie ihrer Schönheit froh, und, wie leicht zu merken war, durch den Glanz meines Blickes, den sie auf sich fühlte, stolz und süß erregt.  
  
박종서의 초역은 전체적으로 직역을 추구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름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어색한 표현 및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1976년의 개정판에서는 이런 점들이 상당 부분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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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녀의 ‘늘씬하고 싱싱한 몸’ 그리고 그녀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독자에게 매우 잘 와닿는다. 생생한 한국어 표현들과 매끄러운 문장으로 가독성 좋은 번역을 제공한다는 점이 김재혁 번역본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가독성은 장문으로 되어 있는 원문을 단문으로 딱딱 끊어서 번역한 결과에 빚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비교적 긴 지문에서 원문의 경우 세 문장이 채 안 되지만, 번역문은 무려 열 문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원문의 긴 문체를 최대한 살리면서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준 예도 없는 건 아니다.<ref>프리돌린이 몰래 비밀 무도회에 가면서 사용한 가면을 알베르티네가 발견하여 침대 머리맡에 놓음으로써 남편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장면으로, 원문은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두 문장으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는 번역문만 제시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이러한 의심을 그에게 넌지시 알리는 방법 –이제는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그 자신- 즉 남편의 얼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은 가면을 자기 베개 옆에다 갖다놓은 그녀의 발상, 장난기가 섞여 있으면서 어떻게 보면 과감하기까지 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경고와 용서의 마음자세를 표현한 이 방법은 프리돌린에게 확실히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그녀 자신의 꿈을 상기하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현실의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12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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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의 번역서에서는 문단의 구분이 원문과 일치하지 않는 곳이 자주 눈에 띈다. 원문의 단락이 길 때 그것을 적당히 나눈 느낌이다. 앞에서 박미애 번역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했던 문장인 “[...] lag es nicht an mir, dass ich noch jungfräulich deine Gattin wurde [...]”에 대한 김재혁의 번역은 “당신의 아내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있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요.”였다. 생생하고 매끄러운 번역을 추구하다 다소 과장되거나(‘따위는’이란 표현은 원문에 없음) 오역이 발생하는(‘중요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자기 탓이 아니었다는 뜻임) 경우가 간혹 있는데, 유려하고 매끄러운 번역과 역자의 자유(?)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2) '''[[#박종서(1976)| 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76)]]<span id="박종서(1976)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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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재혁(2005)| 김재혁 역의 <꿈의 노벨레>(2005)]]<span id="김재혁(2005)R" />'''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52권을 통해 <선택된 인간>을 다시 발표하면서 박종서는 번역 텍스트로 S. 피셔 출판사의 1956년 판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저본 정보를 밝힌 것으로, 이 점에서는 박종서가 이 소설의 번역자 중 유일하다. 번역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지는 면모이다. 그는 역자 해설에서 이 소설이 “이미 出刊된 바 있으나 이번에 改譯하였음도 아울러 밝히는 바”(535)라고 말하는데, 인명을 비롯하여 어휘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현도 가독성을 높이는 쪽으로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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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현대문학에서 나온 김재혁의 두 번째 번역본에서는 일단 제목이 원제에 가깝게 <꿈의 노벨레>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출판 기획에서도 변화가 발견되는바, 이제는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 영화와의 연관성에서 벗어나 독일 문학의 대표작으로 소설이 소개된다. 김재혁은 “독일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을 우리 독자들에게 선뵈려는 의도에서”(389) 여섯 작가가 쓴 일곱 편을 묶어 그 중 알프레트 되블린의 단편소설 <민들레꽃의 살해>를 제목으로 내걸어 책을 출간했다. 일곱 편 모두에 대해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원본을 밝힌 점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번역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할머니 “Baduhenna”는 “바아두헤나”에서 “바두헤나”로, “페에터”는 “베드로”로 “로오마”는 “로마”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바뀌는 등 현대식 표기법이 적용되었다. “나전어”도 “라틴어”로, “교회의 추장(酋長)” 같은 표현도 “교회의 대표자”로 바뀌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어머니 지빌라가 서로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 키스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초판은 “입술을 서로 물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151)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입술을 서로 맞대고 오랜 침묵이 흘렀”(431)다고 나온다. 입술을 물었다는 표현은 자칫 입맞춤으로 연상되지 못할 여지가 있었는데, 맞댄다는 표현으로 수정되면서 그런 점이 개선되었다. 지빌라의 태몽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개정이 일어난다. 이 꿈은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바,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떠남으로써 그녀에게 아픔을 주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더 큰 아픔을 준다는 내용, 즉 오빠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버려졌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중 근친상간을 예시하는 내용이다. 초판에서는 이 “schweren Traum”이 “우울한 꿈”(52)으로 번역됐다가 개정판에서는 “좋지 못한 꿈”(330)으로 바뀌었다. 당사자를 짓누르는 꿈의 성격을 생각할 때 후자가 나은 번역이라 하겠다.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으로 로마에 입성할 때 축하의 종들이 울릴 때도, 원문의 “von selber”를 종이 “자연히”(14)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역이 개정판에서는 종이 “저절로”(292) 울리기 시작했다로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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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적인 측면 말고도 번역의 내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발견된다. 먼저 이전에는 다소 자의적이었던 문단 구분이 이제 원본과 같게 수정되었다. 그리고 자잘한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오역도 수정되었다. 예를 들면, “[...] und sie redeten von den geheimen Bezirken [...]”이라는 문장의 이전 번역은 “그들은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12)였는데, 이번에는 “그들은 은밀한 영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151)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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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의 경우 6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출간하면서 이전 번역의 여러 측면을 개선하였다. 이는 출판사만 바꾸어가면서 기존 번역을 새 번역인 양 재출판하던 기존의 번역 및 출판 관습과는 다른 것으로, 번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변화라 하겠다.
  
3) '''[[#이정태(1990)| 이정태 역의 <선택된 인간>(1990)]]<span id="이정태(1990)R" />'''
 
  
이정태의 번역은 1981년 금성출판사의 <(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1990년에는 같은 출판사의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출간되었다. 그의 번역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각 장의 제목에 대한 번역 방식이다. 가령 독일어 제목 “Die Aussetzung”을 “아이를 버리다”로, “Die Entdeckung”을 “탄로가 나다”로 번역했다. 독일어의 명사적 표현을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유럽어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을 하나의 명사나 명사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법이 발달한 명사 중심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동사 중심 언어라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정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 같다. Die Aussetzung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리는 사실을 지칭하고, Die Entdeckung은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서는 이를 각각 “버림 받은 아이”, “누설된 비밀”로 번역했다. 이보다는 이정태의 번역이 단어의 함의를 보다 잘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역자들도 대부분 이정태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경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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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명숙(2010)| 모명숙 역의 <꿈의 노벨레>(2010)]]<span id="모명숙(2010)R" />'''
  
이정태 번역본의 또 다른 특징은 번역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토마스 만의 유려한 장문의 문체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클레멘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와 같이 오랜 전설을 끝까지 이끌어온 나 클레멘스는, 독자 여러분이 주의를 다해 귀를 기울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나 스스로 기울인 수고에 대해 여러분이 주시는 감사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283) “이와 같이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한 보답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나 자신도 포함시켜서,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한 번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서 만날 있도록 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284) 아주 긴 문장은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 된 원문을 똑같이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가독성도 좋아 토마스 만적 문체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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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숙의 <꿈의 노벨레>는 2010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권에 슈니츨러의 다른 작품인 <카사노바의 귀향>과 함께 실려 출판되었다. 역자 모명숙은 독문학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대학 강사와 출판사 주간을 지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라고 소개된다. 다른 번역서들보다 작가 연보를 상세하게 제공하고, 작가의 작품세계 및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고 있는 반면에, 저본에 대한 정보는 제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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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번역본이 4종 나온 덕을 본 것일 수도 있겠으나, 모명숙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매끄럽게 잘 읽힌다. 상황 및 내용 전달이 잘 되는 편이어서 주인공 부부의 감정 세계에 공감할 있게 한다. 슈니츨러는 “인간 내면을 심리적으로 탁월하게 해부하는 작품들”(267)을 썼다고 역자는 해설하는데, 인물의 심리 및 상황과 관련한 번역이 돋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부부가 지난밤의 가면무도회를 계기로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에 대해 얘기하게 되는 장면을 살펴보자.  
  
이정태는 “토마스 만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긴 해설을 통해 이전의 역자들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작품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전의 역자들은 이중의 근친상간에 중점을 두며 줄거리 위주로 소개했는데, 이정태는 이 소설을 “원죄와 은총의 이야기”(449)로 소개하면서, 서술자에 대한 해설도 덧붙인다. 그는 서술자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언어의 인간인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의 문학 정신”(450)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이런 작품 이해가 서술자의 자유로운 서술 태도에 대한 번역에서도 잘 반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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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사람이 일과를 끝마치고, 아이가 잠자리에 들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을 지금에야, 멜랑콜리한 미지의 남자와 빨간색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 등 가장무도회의 환영들이 다시 현실로 떠올랐다. 그리고 전날 밤의 보잘것없는 체험들은 일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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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킨 때문인지 돌연 매혹적이고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었다. 악의는 없지만 음흉한 질문들이, 약삭빠르고 모호한 대답들이 오갔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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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약간 복수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가장무도회에서 누군지 모르는 파트너가 풍겼을 매력의 정도를 과장했고, 상대방이 질투 어린 흥분을 드러내면 놀리며 자신은 흥분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들은 그렇게 지난밤의 아무것도 아닌 모험에 대해 가볍게 잡담을 하다가, 짐작조차 못했던 숨겨진 욕망에 관해 더 진지한 대화에 빠져들었다.(153-4)
  
4) '''[[#김남경(1995)| 김남경 역의 <선택된 인간>(1995)]]<span id="김남경(1995)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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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질세라 재치를 발휘하여 상대방의 질투심을 자극해 놀려먹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흥미롭지만,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는데, 역자는 그런 분위기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이로써 덴마크 휴가지에서 부부가 체험한 내적 일탈의 고백이라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부부의 심리 상태와 관련하여 더욱 공감을 얻으며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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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부의 성적 모험이 현실 같은 꿈 또는 꿈같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에 꿈과 현실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윤리, 남성과 여성의 대비와 더불어 슈니츨러 작품의 주된 구성 요소라 하겠다. 따라서 꿈(Traum)과 현실(Wirklichkeit)이라는 단어의 이해 및 번역이 중요하다. 부부는 자신들이 현실과 꿈속에서의 모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에 감사해야 한다며 꿈과 현실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1세대 독문학자라 할 수 있는 박종서와 이정태의 번역 이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던 차에 1995년 <하서세계문학> 54권을 통해 김남경의 번역본이 발표되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의 장정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분홍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이 소설을 타이틀로 한 단독작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2020년 김현진의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 25년 동안, 약 반년 늦게 나온 최호의 번역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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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gewiß, als ich ahne, daß die Wirklichkeit einer Nacht, ja daß nicht einmal die eines ganzen Menschenlebens zugleich auch seine innerste Wahrheit bedeu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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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 kein Traum”, seufzte er leise, “ist völlig Traum.
  
김남경 번역의 특징은 이전 번역들보다 표현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매끄러워서 동시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어린 양의 계시에 놀란 프로부스가 말하는 장면에서 “der Stuhl der Welt”를 박종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이정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번역했는데, 김남경은 “세계의 성좌”(262)로 번역했는바, 직역의 방식을 취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깔끔하게 전달하였다. 같은 장면에서 어린 양이 프로부스에게 “Euer Gebet ist erhört und die Wahl geschehen.”이라고 말한 것도 박종서는 “당신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닿아서 선출된 것입니다.”로, 이정태는 “당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선택된 것입니다.”(218)로 번역했지만, 김남경은 “당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선출이 이루어졌습니다.”(263) 라고 번역했다. 여기서도 원문을 단어 그대로 보충 설명 없이 매끄럽게 번역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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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마 다음과 같이 번역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남경의 직역 방식은 단점도 드러낸다. 가령 앞에서 언급했던 장의 제목인 Die Entdeckung을 “폭로”라고 번역했는데, ‘탄로가 나다’로 번역한 이정태의 의역에 비해 내용 전달 면에서 불명확하다. 명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어와 달리 우리 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폭로’라고 명사만 제시하면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온다. Die Aussetzung의 경우에는 김남경도 박종서와 같이 ‘아이를 버리다’로 의역했다. 또 다른 장의 제목인 “Die schlimmen Kinder”를 김남경은 “가련한 아이들”로 번역했는데, 아버지 그리말트 공이 돌아가신 날 남매가 동침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제목임을 생각할 때 “나쁜 아이들”(박종서)이나 “못된 아이들”(김현진)이 적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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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의 현실, 그래,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도 동시에 그 사람의 가장 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예감하는 것만큼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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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꿈도 완전히 꿈만은 아니고.” 그가 나지막이 한숨 쉬듯 말했다.  
  
독일어과를 졸업한 번역문학가라는 정보 외에 자세한 역자 정보가 없어서 토마스 만 전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제법 긴 해설과 상세한 작가 연보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소설을 위한 전문적인 해설은 없었다. 국내 독문학계의 토마스 만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번역문학가’라는 역자 소개와 달리 번역 원칙이나 역자의 말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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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Traum은 모두 ‘꿈’이라고 번역했지만, Wirklichkeit의 번역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박미애는 “하룻밤의 사실”, “한 인간의 전 일생의 사실”(137)이라고 ‘사실’로 번역했고, 백종유는 두 번역본 모두에서 “하룻밤 동안 실제로 있었던 일”, “한 인간의 전생애에 걸쳐서 실제로 있었던 모든 일”(1997, 163; 2020, 158)이라고 ‘실제로 있었던 일’로 풀어서 번역했다. 김재혁은 두 번 모두 “하룻밤의 현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이라고 ‘현실’로 번역했는데, Wahrheit를 “진리”(1999, 123; 2005, 308)라고 번역함으로써 내용이 다소 모호해졌다. 모명숙은 “하룻밤의 현실”, “어떤 한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 바로 그 인간의 가장 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263)고 가장 좋은 번역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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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숙의 번역은 상황 및 인물의 심리 전달, 작품이해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별 문제점이 없는 무난함을 보여준다 하겠다.
  
  
5) '''[[#김현진(2020)|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2020)]]<span id="김현진(2020)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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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종유(2020)| 백종유 역의 <꿈의 노벨레>(2020)]]<span id="백종유(2020)R" />'''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12권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문을 어떻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으며,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자”(6) 노력했다고 역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그의 번역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것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가 번역 및 작품해설에 반영되어서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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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나온 백종유의 제2판을 새로운 번역본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적인 어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는 97년 본인의 초판이나 기존의 다른 번역본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97년의 번역본에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어투가 기존의 관습에 따라 남편은 아내에게 주로 반말을, 아내는 남편에게 주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는 다른 번역본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는 어투가 신세대풍으로 바뀌어 부부가 상호 간에 반말체인 ‘~어’체를 사용한다. 부부 사이의 대화 장면 두 군데를 살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 der Geist der Erzählung을 김현진은 전설이 아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서사적 특징에 주목한 점이 다른 번역자들과 특히 구분된다. 이 소설에서는 이중의 근친상간과 속죄, 구원이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정령, 즉 서술자 클레멘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의한 것으로, “토마스 만이 만년에 보여준 해학적 글쓰기와 세계관에서 나온 독자적 효과”(420)이다. 서술자는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구분하여 보고함으로써 자못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종결짓곤 한다. 항해 중이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와 그 일행이 어느 항구 도시에 접근하다 전투가 벌어져 선원 중 명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데, 서술자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ch waren sie ja nur Nebenpersonen.” 이에 대한 번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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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와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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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로 그날 아침에도 그 남자를 봤어.” 알베르티네가 대답했다. “그는 노란 손가방을 들고 호텔 계단을 급히 올라오고 있었어. 날 흘끗 훑어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계단 더 올라가더니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몸을 돌리는 거야.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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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그러나 그네들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976, 392)
 
이정태: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27)
 
김남경: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153)
 
김현진: 그러나 그들은 그저 조연에 불과한 인물들일 뿐이었다.(186)
 
|}
 
  
얼핏 보기에 큰 차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진은 ja라는 부사를 살려서 ‘뿐이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전 세 사람의 건조한 사실 보고식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ja는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데, 다친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주인공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더 주목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김현진의 번역에서는 서술자의 독특한 태도가 느껴지기에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식의 해학적 글쓰기 태도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는바, 김현진은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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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티네, 무슨 일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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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꿨어.”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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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는데 그래?”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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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많아서. 제대로 기억해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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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 잘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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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혼란스럽고, 게다가 난 피곤해. 그리고 당신도 피곤하지 않아?”(98)
  
각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역자는 의역을 추구하는데, 이는 원문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Die Aussetzung은 “아이를 내버리다”로, Die Entdeckung은 “비밀을 알게 되다”로, Die schlimmen Kinder는 “못된 아이들”로 번역함으로써 그 장의 주요 내용이 잘 전달된다. 김현진 번역의 이런 특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술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eine zugleich entsetzliche und hocherbauliche Geschichte”로 지칭한다. 이는 이중의 근친상간이 벌어지지만 철저한 속죄를 통해 신에 의해 교황으로 선택받는다는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지칭한다. 박종서는 “무지막지하고 매우 교훈이 될 있는 전설”(1990, 295)로, 이정태는 “매우 두렵고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0)로, 김남경은 “정말 무섭고도 동시에 지극히 교화(敎化)적인 전설”(10)로 번역했다. 하지만 김현진은 “경악할 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17)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를 다 마친 서술자는 독자가 소설의 이런 내용에서 “es sei zuletzt mit der Sünde ein leichtes Ding”이라고 잘못된 교훈을 끌어낼까 봐 염려한다. 김현진은 이 말을 “죄라는 것은 결국 별것 아니라고”(413)로 번역했다. 반면 박종서는 “죄라는 것은 결국 험한 것이라고”(1976, 523), 이정태는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편리한 것이라고”(283), 김남경은 “죄라는 것은 결국 가벼운 것이다”(341)로 번역했다.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죄가 ‘험한 것’이나 ‘편리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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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대화는 1장에서 알베르티네가 휴가지에서 만난 덴마크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두 번째 대화는 5장에서 알베르티네의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부부가 더는 어떤 위계 관계에 있지 않고 완전히 동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눈에 띄는데,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 및 사고방식이 반영됐다 하겠다. 시대의 문화적/언어적 변화를 번역에 반영함으로써 신세대 독자의 취향에 맞추었다고 할 있는데, 시대에 따른 문학작품의 수용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라 하겠다. 그런데 이는 한편 19세기 말이라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과연 적절한지 하는 문제 제기를 낳기도 한다.  
  
김현진 번역본의 학술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대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원문과 달리 행을 바꾸어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토마스 만의 경우 S. 피셔 출판사의 판본만 존재하기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어느 판본을 저본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과는 다른 번역 제목을 제시했고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하려 노력한 점, 연구가 병행된 번역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의 번역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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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어휘 측면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사랑에 빠진 다른 쌍쌍들”(1997, 15)이 “사랑에 빠진 다른 커플들”(2020, 9)로, “호들갑을 떨었다”(1997, 15)가 “밀당을 했다”(2020, 9)로 바뀌었는데,<ref>독일어 원문은 “plauderten sich vergnügt”이기에 ‘호들갑을 떨었다’가 원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문장에서 부부가 처음 만난 사이처럼 서로 유혹하고 저항하는 모습이 묘사되기에 ‘밀당을 했다’라는 요즘 말로 번역을 바꾼 것 같다. 그런데 ‘밀당’과 같은 표현은 옛 작품을 번역이 아니라 번안한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적절한 선택인지 하는 의문을 낳기도 한다.</ref> 신세대 어투가 반영된 여러 케이스 중 일부라 하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번역이 수정되거나 다듬어지고, 원문의 장문체를 반영하는 쪽으로 바뀌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발견되어 이전보다 나은 번역본이 만들어졌다.<ref>소설의 초반부에서 금방 그런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변화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달라진 곳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 “이러한 영역에 대해 그들은 평상시 아무런 동경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비록 꿈속에서라도 두 사람이 한 순간에 휩쓸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감정과 의식에 있어서 두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였다. 그렇기에 모험-자유-위험이 뒤섞인 바람이 두 사람을 가볍게라도 스쳐지나간 일이 어제 저녁이 처음은 아리란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1997, 17) “이러한 영역에 대해 그들은 평상시 아무런 동경을 느끼고 <u>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u> 운명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비록 꿈속에서라도 두 사람이 <u>한순간에 휘말려들 있는 그런 영역이었다.</u> 감정과 의식에서 두 사람은 전적으로 <u>하나였기에 모험과 자유, 위험이</u> 뒤섞인 바람이, 두 사람을 <u>설핏 스쳐 지나간 일이 어제저녁이</u> 처음은 아니란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2020, 11)</ref>
  
  
 
'''3. 평가와 전망'''
 
'''3. 평가와 전망'''
  
토마스 만의 이 소설은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번역자를 거치면서 번역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최근에 나온 김현진의 번역본은 ‘한국토마스만학회’의 독회를 통한 공동연구 및 작품 이해가 뒷받침되어 나온 것으로, 질 좋은 번역을 위한 새로운 방식 및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어떤 번역에도 오역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및 해석이 나오면 그에 발맞추어 번역도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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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빈의 한 상류층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오스트리아 작가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93년에 처음 소개된 이후 꾸준히 번역되며 읽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인간의 양극성의 문제, 즉 에로스와 에토스, 성적 욕망과 윤리 의식 사이에서 인간이 느끼는 갈등이라는 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인간 누구나 접하게 되는 문제란 점에서 이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읽힐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 번역이 수정되고 다듬어지면서 보다 좋은 번역으로 독자를 찾아가는 모습, 번역에 시대적 문화적 변화가 반영되어 신세대 독자의 취향에 맞추는 모습 등은 이런 기대에 힘을 보탠다. 한 가지 바램은, 슈니츨러가 세미콜론을 이용하여 장문을 많이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무의식과 심층 심리를 탐구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연관된 것이다. 기존 번역들에서도 이를 우리말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긴 했으나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추후의 번역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같이 기대해 보자.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69): 선택된 인간. 정음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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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애(1993): 꿈의 노벨레. 자유출판사.<br>
박종서(1976): 선택된 인간. 삼성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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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유(1997): 꿈의 노벨레. 문학과지성사.<br>
이정태(1990): 선택된 인간. 금성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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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1999): 꿈 이야기. 씨엔씨미디어.<br>
김남경(1995): 선택된 인간. 하서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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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혁(2005): 꿈의 노벨레. 현대문학.<br>
김현진(2020): 선택받은 사람. 나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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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숙(2010): 꿈의 노벨레. 문학동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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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유(2020): 꿈의 노벨레. 문학과지성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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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3일 (토) 01:54 기준 최신판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의 노벨레

꿈의 노벨레 (Traumnovelle)
작가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초판 발행1925/6
장르노벨레


작품소개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925/26년에 발표한 노벨레로,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의 한 상류층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인 의사 프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는 전날 가장무도회에 다녀온 후 감추어진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내는 여름휴가 때 덴마크에서 만난 한 장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할 결심까지 했고, 남편도 그곳에서 마주친 금발의 어린 소녀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늦은 밤 위중한 환자의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선 프리돌린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친구를 통해 비밀 섹스 파티에 가서 꿈같은 모험을 한다. 한편 아내는 꿈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데, 꿈에서 수많은 남자와 정사를 벌이면서,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을 비웃는다. 자기는 다른 여인들과 섹스하고 싶어 하면서 아내는 정조를 지키고, 헌신적이길 바라는 프리돌린의 가부장적인 이중성과 성적 욕망을 억눌러야 했던 알베르티네의 무의식적인 복수가 겹쳐 행복했던 결혼 생활은 파경 직전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의 일탈을 털어놓으면서 자신들의 욕망으로부터 돌아서 다시 가정의 안정을 되찾는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성적 욕망을 정신분석적 방법을 통해 묘사한 이 소설은 1993년 박미애에 의해 처음 번역 출판되었다(자유출판사).


초판 정보

Schnitzler, Arthur(1925/6): Traumnovelle. In: Die Dame. 6(Dec. 1925) – 12(Mar. 1926). <단행본 초판> Schnitzler, Arthur(1926): Traumnovelle. Berlin: S. Fischer.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꿈의 노벨레 꿈의 노벨레 슈니틀러 박미애 1993 자유출판사 11-138 편역 완역
2
꿈의 노벨레 꿈의 노벨레 문지스펙트럼 2-009 아르투어 슈니츨러 백종유 1997 문학과지성사 13-164 완역 완역
꿈 이야기 아이즈 와이드 오픈 아르투어 슈니츨러 김재혁 1999 씨엔씨미디어 8-124 편역 완역
꿈의 노벨레 민들레꽃의 살해 아르투어 슈니츨러 김재혁 2005 현대문학 7-44 편역 완역
꿈의 노벨레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모명숙 2010 문학동네 149-264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국내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 더 잘 알려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2021년 7월 현재까지 네 명의 번역자에 의해 총 여섯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초역은 1993년 자유출판사에서 나온 박미애의 번역이다. 슈니츨러의 경우 그가 사망한 1931년에 Der blinde Geronimo und sein Bruder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 <신여성>이라는 잡지에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고,[1] 50년대 후반부터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꾸준히 소개된 점을 고려할 때,[2] <꿈의 노벨레>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번역 출판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93년의 초역 이후 97년에 백종유의 번역(문학과지성사)이, 99년에는 김재혁의 번역(씨엔씨미디어)이 뒤를 이었다. 백종유의 번역은 2020년 같은 출판사에서 2쇄가 나왔는데, 신세대풍으로 어조가 바뀐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기에 다른 번역본으로 볼 만하다. 김재혁의 번역도 1999년에는 <아이즈 와이드 오픈>(씨엔씨미디어)이란 책에 “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지만, 2005년에는 문학전문출판사(현대문학)에 의해 독일어 원제목인 “꿈의 노벨레”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되었고, 번역의 내용 또는 성격이 다소 변모하여 이 또한 새로운 번역본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모명숙의 것이다.

<꿈의 노벨레>의 번역사 또는 수용사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유명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사망 및 그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의 영향이다. 1999년 10월 씨엔씨미디어에서 나온 김재혁의 번역은 그해 3월에 사망한 큐브릭을 추모하며 발간된 책 속에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로서 소개되고 있는바, 이 책에서는 원작자와 원작보다 유명 영화감독과 그의 유작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3] 이후 김재혁의 번역과 백종유의 번역이 개정되어 재출판되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 모명숙의 번역이 나오는 등 원작의 영화화 이후에 더 많은 번역서가 출간된 사실은 문학의 영화화가 문학작품의 수용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일반 독자에게는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보다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더 많이 회자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그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미애 역의 <꿈의 노벨레>(1993)

박미애의 번역은 국내 초역이라는 역사적 의의뿐 아니라 번역의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당시의 번역 및 출판 상황에서는 흔치 않았던 번역의 저본 정보를 밝힌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번역본이다. 역자는 아우크스부르크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토마스 만 부부가 <꿈의 노벨레>를 읽고 감동하여 슈니츨러에게 경의를 표했는데, 자신도 그런 감동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번역 동기를 밝힌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성도덕 또는 성 윤리의 이중성이 작품의 주제라며, 그것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비극적 이중성”(7)이라고 작품에 대해 간단히 해설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번역가인 힐데 슈필(Hilde Spiel)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연관하여 해설한 글을 후문으로 덧붙였다. 문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직접 작품해설을 하기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짐작된다. 전문가의 해설을 덧붙여 독자의 작품이해를 도우려는 시도는 좋은데, 그 번역이 작품 자체의 번역과는 달리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움을 낳는다. 책 표지에 작가명을 “슈니틀러”라고 잘못 표기한 점도 덧붙여 지적한다. 위에서 박미애 번역본의 특징으로 꼽은 번역의 성실성은 직역이라는 번역 방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 1장에서 알베르티네가 남편과의 에로스적 합일을 기대했던 처녀 적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장면을 보자. 그녀는 남편에게 “내가 처녀로 당신의 부인이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예요.”(박미애 역, 21)라고 말한다. 독일어 원문은 “[...] lag es nicht an mir, dass ich noch jungfräulich deine Gattin wurde [...]”이다. “내가 숫처녀로 당신 아내가 된 것도 알고 보면 내가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아시나봐.”로 번역한 백종유의 초역(25)이나 “당신의 아내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있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요.”로 번역한 김재혁의 초역(18)과 비교해 보면, 박미애 번역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미애는 어떤 부가적인 표현이나 과장 없이 원문을 문자 그대로 번역했다. 이로써 역자의 불필요한 해석이나 오역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김재혁은 알베르티네가 처녀성의 간직이 자신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번역했는데, 그녀는 그보다는 순결의 간직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자신의 에로스적 욕구에 무관심한 남편에게 핀잔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박미애 번역의 이런 특징은 소설 말미 부부의 대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부는 자신들이 겪은 현실과 꿈속에서의 성적 모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일탈로부터 일상의 현실로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이제 자신들이 한동안은 그런 모험에 빠져들지 않을 거라고 아내가 말하자 남편은 “영원히” 그럴 거라며 이 말을 덧붙이려 한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의 말을 막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Niemals in die Zukunft fragen.” 성적 욕망을 자제하려는 인간의 노력 및 그 한계를 암시하는 알베르티네의 이 말은 작가의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역자들의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래에 대해 결코 묻지 마세요.(박미애 138)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세요.(백종유 초역 163/4)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개정판 158)
결코 미래를 묻지 마세요.(김재혁 초역 124) 결코 미래를 묻지 마세요.(개정판 309)
결코 미래를 대놓고 물어보아서는 안 돼요.(모명숙 264)

박미애와 김재혁은 직역을, 백종유와 모명숙은 의역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말에서 ‘묻다’라는 동사가 ‘1이 2에/에게 3을/3에 대하여 묻다’로 쓰이는 것을 생각하면, 박미애는 우리말 쓰임새에 맞게 ‘미래에 대해’ 묻지 말라고 번역했고, 김재혁은 ‘미래를’ 묻지 말라고 독일어 문법을 좀 더 반영하며 번역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독일어에서 fragen 동사는 4격지배동사로 보통 ~을/를로 번역되는 4격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동사이기 때문이다. 반면 백종유는 섣불리 미래를 예측해서 장담하지 말라는 원문의 속뜻을 살려서 ‘미래를 속단하지’ 말라고 번역한 것으로, 그리고 모명숙은 현대식 어투를 이용하여 ‘미래를 대놓고 물어보’지 말라고 번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박미애의 번역은 다소 건조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역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직역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박미애 번역에서는 간혹 오역과 어색한 표현이 발견되고 내용 전달에 용이하다는 판단에 따라 문단 구분을 원문과 달리 조정한 예도 종종 발견된다. 그럼에도 직역 방식을 취하며 성실히 번역한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2) 백종유 역의 <꿈의 노벨레>(1997)

백종유가 번역한 <꿈의 노벨레>는 199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문지스펙트럼 외국 문학선을 통해 출간되었다. 백종유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슈니츨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한 슈니츨러 전문가다. 국내외에서 슈니츨러로 박사학위를 한 사람이 소수이기에 그의 번역본은 해당 작가 전공자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는 전공자답게 번역의 저본 정보와 작가 연보 그리고 자신이 쓴 <빈 왈츠의 어두운 심연>이라는 역자 해설을 제공한다. 한편 출판사의 <기획의 말>에는 슈니츨러를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고 칭한 프로이트의 말과 함께 프로이트 심리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슈니츨러의 문학 세계를 소개한다. 반면 역자의 해설에서는 작품과 프로이트와의 연관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이 의아하다.

지난밤 가면무도회에 다녀온 부부는 무도회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예기치 않게 성적 욕구라는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에 관한 진지한 대화로 빠져든다. 이 부분은 1장의, 아니 소설 전체의 핵심 도입부에 해당한다. “[...] und sie redeten von den geheimen Bezirken [...]”이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박미애는 부부가 “비밀스런 지역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14)고, Bezirk라는 단어를 공간적인 의미에 국한하여 ‘지역’이라고 번역했다. 반면 백종유는 “두 사람의 대화는 비밀스런 영역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17)라고 Bezirk의 드문 용법이지만 비유적인 의미인 ‘영역’이라는 단어로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의도가 잘 살아나는 번역을 만들어냈다. 앞의 “Niemals in die Zukunft fragen.”에 대한 번역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백종유는 슈니츨러 전공자답게 원문의 의미를 살려내는 번역을 했는데, 이로써 박미애의 번역보다는 내용이 좀 더 잘 전달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슈니츨러의 문체는 장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세미콜론의 빈번한 사용으로 문장이 길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이것을 번역에 반영하기란 전혀 쉽지 않다. 백종유는 마침표 대신 콤마를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늘어뜨리거나,[4] 단문으로 끊어서 번역하면서 “~ㄴ 것이다”라는 설명식 어법을 사용한다.[5] 나름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원문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부 사이의 어조 번역에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발견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전반적으로 반말인 ‘~어’체를 사용하나 곳곳에서 존댓말인 ‘~요’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 아내는 남편에게 전반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하다가 반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바, 어조가 일관되지 않아 독서의 흐름이 끊기는 현상이 벌어진다.

백종유의 번역은 슈니츨러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라는 점과 직역이 아닌 의역을 통해 원문의 의미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3) 김재혁 역의 <꿈 이야기>(1999)

고려대 독문과 교수인 김재혁의 번역작품 제목은 원제와는 조금 다르게 “꿈 이야기”이다. Traumnovelle라는 제목 속의 Novelle는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새롭고 신기한 사건을 밀도 있게 형상화한 산문이야기”[6]로 기승전결이 있는 희곡적 구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분량이 비교적 짧기에 단편소설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말 그대로 짧은 소설(short story)로만 이해될 수 있기에, 그 고유의 소재적, 형식적 특성을 고려하여 노벨레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벨레의 이런 특성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소설의 내용이 한편에선 꿈같은 현실 속에서, 다른 한편에선 현실 같은 꿈속에서 전개되기에 꿈같은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꿈 이야기’로 번역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김재혁은 작품해설에서 부부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253) 작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적 욕망의 파노라마를 그려내”(252)고 있다고 작품을 소개한다.

김재혁은 교수이자 시인이며 또 번역을 많이 하기로도 유명하다. 이 역서에서도 그의 그런 면모가 자주 발견되는바, 전반적으로 내용 및 상황 전달이 잘 되고, 번역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프리돌린이 덴마크 해변의 바닷가에서 만난 소녀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을 보자.

그 소녀는 거기 그렇게 서 있었어. 처음에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 다음에는 분노하는 듯한 표정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어. 그러다 갑자기 미소를 지었어.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어. 두 눈은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어. 아니 윙크를 하는 것 같았어. 동시에 은근히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녀와 나를 갈라놓은 물을 발로 살짝살짝 찼어. 그러더니 늘씬하고 싱싱한 몸을 쭉 뻗었어.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것 같았어. 게다가 뜨거운 나의 시선이 제 몸에 와서 닿는 것을 느끼고는 은근히 뻐기며 달콤하게 흥분하는 듯한 기색을 역력히 보였어.(15)
[...] und stand nun da, zuerst mit einem erschrockenen, dann mit einem zornigen, endlich mit einem verlegenen Gesicht. Mit einemmal aber lächelte sie, lächelte wunderbar; es war ein Grüßen, ja ein Winken in ihren Augen – und zugleich ein leiser Spott, mit dem sie ganz flüchtig zu ihren Füßen das Wasser streifte, das mich von ihr trennte. Dann reckte sie den jungen schlanken Körper hoch, wie ihrer Schönheit froh, und, wie leicht zu merken war, durch den Glanz meines Blickes, den sie auf sich fühlte, stolz und süß erregt. 

아름다운 소녀의 ‘늘씬하고 싱싱한 몸’ 그리고 그녀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독자에게 매우 잘 와닿는다. 생생한 한국어 표현들과 매끄러운 문장으로 가독성 좋은 번역을 제공한다는 점이 김재혁 번역본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런 가독성은 장문으로 되어 있는 원문을 단문으로 딱딱 끊어서 번역한 결과에 빚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비교적 긴 지문에서 원문의 경우 세 문장이 채 안 되지만, 번역문은 무려 열 문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원문의 긴 문체를 최대한 살리면서 매끄러운 번역을 보여준 예도 없는 건 아니다.[7]

김재혁의 번역서에서는 문단의 구분이 원문과 일치하지 않는 곳이 자주 눈에 띈다. 원문의 단락이 길 때 그것을 적당히 나눈 느낌이다. 앞에서 박미애 번역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했던 문장인 “[...] lag es nicht an mir, dass ich noch jungfräulich deine Gattin wurde [...]”에 대한 김재혁의 번역은 “당신의 아내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있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지요.”였다. 생생하고 매끄러운 번역을 추구하다 다소 과장되거나(‘따위는’이란 표현은 원문에 없음) 오역이 발생하는(‘중요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자기 탓이 아니었다는 뜻임) 경우가 간혹 있는데, 유려하고 매끄러운 번역과 역자의 자유(?)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4) 김재혁 역의 <꿈의 노벨레>(2005)

2005년 현대문학에서 나온 김재혁의 두 번째 번역본에서는 일단 제목이 원제에 가깝게 <꿈의 노벨레>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출판 기획에서도 변화가 발견되는바, 이제는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 영화와의 연관성에서 벗어나 독일 문학의 대표작으로 이 소설이 소개된다. 김재혁은 “독일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을 우리 독자들에게 선뵈려는 의도에서”(389) 여섯 작가가 쓴 일곱 편을 묶어 그 중 알프레트 되블린의 단편소설 <민들레꽃의 살해>를 제목으로 내걸어 책을 출간했다. 일곱 편 모두에 대해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원본을 밝힌 점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번역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외적인 측면 말고도 번역의 내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발견된다. 먼저 이전에는 다소 자의적이었던 문단 구분이 이제 원본과 같게 수정되었다. 그리고 자잘한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오역도 수정되었다. 예를 들면, “[...] und sie redeten von den geheimen Bezirken [...]”이라는 문장의 이전 번역은 “그들은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12)였는데, 이번에는 “그들은 은밀한 영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151)로 수정되었다.

김재혁의 경우 6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출간하면서 이전 번역의 여러 측면을 개선하였다. 이는 출판사만 바꾸어가면서 기존 번역을 새 번역인 양 재출판하던 기존의 번역 및 출판 관습과는 다른 것으로, 번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변화라 하겠다.


5) 모명숙 역의 <꿈의 노벨레>(2010)

모명숙의 <꿈의 노벨레>는 2010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권에 슈니츨러의 다른 작품인 <카사노바의 귀향>과 함께 실려 출판되었다. 역자 모명숙은 독문학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대학 강사와 출판사 주간을 지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라고 소개된다. 다른 번역서들보다 작가 연보를 상세하게 제공하고, 작가의 작품세계 및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고 있는 반면에, 저본에 대한 정보는 제시되지 않았다. 기존에 번역본이 4종 나온 덕을 본 것일 수도 있겠으나, 모명숙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매끄럽게 잘 읽힌다. 상황 및 내용 전달이 잘 되는 편이어서 주인공 부부의 감정 세계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슈니츨러는 “인간 내면을 심리적으로 탁월하게 해부하는 작품들”(267)을 썼다고 역자는 해설하는데, 인물의 심리 및 상황과 관련한 번역이 돋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부부가 지난밤의 가면무도회를 계기로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에 대해 얘기하게 되는 장면을 살펴보자.

그리고 두 사람이 일과를 끝마치고, 아이가 잠자리에 들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을 지금에야, 멜랑콜리한 미지의 남자와 빨간색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 등 가장무도회의 환영들이 다시 현실로 떠올랐다. 그리고 전날 밤의 보잘것없는 체험들은 일탈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킨 때문인지 돌연 매혹적이고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었다. 악의는 없지만 음흉한 질문들이, 약삭빠르고 모호한 대답들이 오갔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둘 다 약간 복수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가장무도회에서 누군지 모르는 파트너가 풍겼을 매력의 정도를 과장했고, 상대방이 질투 어린 흥분을 드러내면 놀리며 자신은 흥분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들은 그렇게 지난밤의 아무것도 아닌 모험에 대해 가볍게 잡담을 하다가, 짐작조차 못했던 숨겨진 욕망에 관해 더 진지한 대화에 빠져들었다.(153-4)

서로 질세라 재치를 발휘하여 상대방의 질투심을 자극해 놀려먹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흥미롭지만,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는데, 역자는 그런 분위기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이로써 덴마크 휴가지에서 부부가 체험한 내적 일탈의 고백이라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부부의 심리 상태와 관련하여 더욱 공감을 얻으며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부의 성적 모험이 현실 같은 꿈 또는 꿈같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에 꿈과 현실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윤리, 남성과 여성의 대비와 더불어 슈니츨러 작품의 주된 구성 요소라 하겠다. 따라서 꿈(Traum)과 현실(Wirklichkeit)이라는 단어의 이해 및 번역이 중요하다. 부부는 자신들이 현실과 꿈속에서의 모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에 감사해야 한다며 꿈과 현실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So gewiß, als ich ahne, daß die Wirklichkeit einer Nacht, ja daß nicht einmal die eines ganzen Menschenlebens zugleich auch seine innerste Wahrheit bedeutet.”
“Und kein Traum”, seufzte er leise, “ist völlig Traum.”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룻밤의 현실, 그래,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도 동시에 그 사람의 가장 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예감하는 것만큼 확신해.”
“그 어떤 꿈도 완전히 꿈만은 아니고.” 그가 나지막이 한숨 쉬듯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한 여섯 종의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Traum은 모두 ‘꿈’이라고 번역했지만, Wirklichkeit의 번역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박미애는 “하룻밤의 사실”, “한 인간의 전 일생의 사실”(137)이라고 ‘사실’로 번역했고, 백종유는 두 번역본 모두에서 “하룻밤 동안 실제로 있었던 일”, “한 인간의 전생애에 걸쳐서 실제로 있었던 모든 일”(1997, 163; 2020, 158)이라고 ‘실제로 있었던 일’로 풀어서 번역했다. 김재혁은 두 번 모두 “하룻밤의 현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이라고 ‘현실’로 번역했는데, Wahrheit를 “진리”(1999, 123; 2005, 308)라고 번역함으로써 내용이 다소 모호해졌다. 모명숙은 “하룻밤의 현실”, “어떤 한 인생 전체의 현실조차 바로 그 인간의 가장 내적인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263)고 가장 좋은 번역을 보여준다. 모명숙의 번역은 상황 및 인물의 심리 전달, 작품이해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별 문제점이 없는 무난함을 보여준다 하겠다.


6) 백종유 역의 <꿈의 노벨레>(2020)

2020년에 나온 백종유의 제2판을 새로운 번역본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적인 어조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는 97년 본인의 초판이나 기존의 다른 번역본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97년의 번역본에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어투가 기존의 관습에 따라 남편은 아내에게 주로 반말을, 아내는 남편에게 주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는 다른 번역본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는 어투가 신세대풍으로 바뀌어 부부가 상호 간에 반말체인 ‘~어’체를 사용한다. 부부 사이의 대화 장면 두 군데를 살펴보자.

“그 남자와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가 물었다. 
“난 바로 그날 아침에도 그 남자를 봤어.” 알베르티네가 대답했다. “그는 노란 손가방을 들고 호텔 계단을 급히 올라오고 있었어. 날 흘끗 훑어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몇 계단 더 올라가더니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몸을 돌리는 거야. [...]”(12)


“알베르티네, 무슨 일이 있었어?”
“꿈꿨어.”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는데 그래?”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 너무 많아서. 제대로 기억해낼 수 없어.”
“그래도 혹시 잘 생각해보면.” 
“너무 혼란스럽고, 게다가 난 피곤해. 그리고 당신도 피곤하지 않아?”(98)

첫 번째 대화는 1장에서 알베르티네가 휴가지에서 만난 덴마크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두 번째 대화는 5장에서 알베르티네의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부부가 더는 어떤 위계 관계에 있지 않고 완전히 동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눈에 띄는데,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 및 사고방식이 반영됐다 하겠다. 시대의 문화적/언어적 변화를 번역에 반영함으로써 신세대 독자의 취향에 맞추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시대에 따른 문학작품의 수용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라 하겠다. 그런데 이는 한편 19세기 말이라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과연 적절한지 하는 문제 제기를 낳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어휘 측면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사랑에 빠진 다른 쌍쌍들”(1997, 15)이 “사랑에 빠진 다른 커플들”(2020, 9)로, “호들갑을 떨었다”(1997, 15)가 “밀당을 했다”(2020, 9)로 바뀌었는데,[8] 신세대 어투가 반영된 여러 케이스 중 일부라 하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번역이 수정되거나 다듬어지고, 원문의 장문체를 반영하는 쪽으로 바뀌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발견되어 이전보다 나은 번역본이 만들어졌다.[9]


3. 평가와 전망

19세기 말 빈의 한 상류층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오스트리아 작가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93년에 처음 소개된 이후 꾸준히 번역되며 읽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인간의 양극성의 문제, 즉 에로스와 에토스, 성적 욕망과 윤리 의식 사이에서 인간이 느끼는 갈등이라는 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인간 누구나 접하게 되는 문제란 점에서 이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읽힐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 번역이 수정되고 다듬어지면서 보다 좋은 번역으로 독자를 찾아가는 모습, 번역에 시대적 문화적 변화가 반영되어 신세대 독자의 취향에 맞추는 모습 등은 이런 기대에 힘을 보탠다. 한 가지 바램은, 슈니츨러가 세미콜론을 이용하여 장문을 많이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무의식과 심층 심리를 탐구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연관된 것이다. 기존 번역들에서도 이를 우리말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긴 했으나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추후의 번역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같이 기대해 보자.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미애(1993): 꿈의 노벨레. 자유출판사.
백종유(1997): 꿈의 노벨레. 문학과지성사.
김재혁(1999): 꿈 이야기. 씨엔씨미디어.
김재혁(2005): 꿈의 노벨레. 현대문학.
모명숙(2010): 꿈의 노벨레. 문학동네.
백종유(2020): 꿈의 노벨레. 문학과지성사.

권선형
  • 각주
  1. 작가명은 슈니첼로 되어 있고 역자 미상이다.
  2. 슈니츨러 단편집, 장남준 역(1959 현대문고); 독일단편문학대계, 정경석 외 역(1971 일지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박환덕 역(1977 범조사); 바람둥이 고향에 돌아오다, 홍경호 역(1978 태창출판사) 등.
  3. 이 책의 목차가 그것을 말해준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소설 <꿈 이야기>, 큐브릭과의 마지막 대담, <꿈 이야기> 작품해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세계.
  4.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저 멀리 해변엔 당신도 알다시피 작은 시골집들이 드문드문 있잖아, 그 집들은 제각각 독자적인 작은 세계이지, 어떤 집엔 나무 울타리를 둘러친 정원이 딸려 있고 어떤 집은 그저 숲에 둘러싸여 있지, 그리고 해수욕객을 위한 탈의용 오두막은 말야, 그 집에서부터 시골길과 넓은 해변을 건너야 나타나지, 그만큼 멀리 떨어져서 다른 세상이었던 셈이야.”(20-21쪽)
  5. 몇 군데 예를 들면, “저녁 식사 전에 시작했었던 이야기를 미처 못다 했던 것이다.”(14쪽) “금년의 카니발이 끝나기 직전에 가면 무도회에 가보자고 서둘러 결정했었던 것이다.”(14쪽) “두 사람은 코미디에 빠져든 것이다.”(15쪽)
  6. 도이치문학 용어사전, 재단법인 한독문학번역연구소 김병옥/안삼환/안문영 엮음, 2001, 307.
  7. 프리돌린이 몰래 비밀 무도회에 가면서 사용한 가면을 알베르티네가 발견하여 침대 머리맡에 놓음으로써 남편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장면으로, 원문은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두 문장으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는 번역문만 제시하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이러한 의심을 그에게 넌지시 알리는 방법 –이제는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그 자신- 즉 남편의 얼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은 가면을 자기 베개 옆에다 갖다놓은 그녀의 발상, 장난기가 섞여 있으면서 어떻게 보면 과감하기까지 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경고와 용서의 마음자세를 표현한 이 방법은 프리돌린에게 확실히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그녀 자신의 꿈을 상기하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현실의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122)
  8. 독일어 원문은 “plauderten sich vergnügt”이기에 ‘호들갑을 떨었다’가 원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문장에서 부부가 처음 만난 사이처럼 서로 유혹하고 저항하는 모습이 묘사되기에 ‘밀당을 했다’라는 요즘 말로 번역을 바꾼 것 같다. 그런데 ‘밀당’과 같은 표현은 옛 작품을 번역이 아니라 번안한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적절한 선택인지 하는 의문을 낳기도 한다.
  9. 소설의 초반부에서 금방 그런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변화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달라진 곳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 “이러한 영역에 대해 그들은 평상시 아무런 동경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비록 꿈속에서라도 두 사람이 한 순간에 휩쓸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감정과 의식에 있어서 두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였다. 그렇기에 모험-자유-위험이 뒤섞인 바람이 두 사람을 가볍게라도 스쳐지나간 일이 어제 저녁이 처음은 아리란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1997, 17) “이러한 영역에 대해 그들은 평상시 아무런 동경을 느끼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비록 꿈속에서라도 두 사람이 한순간에 휘말려들 수 있는 그런 영역이었다. 감정과 의식에서 두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였기에 모험과 자유, 위험이 뒤섞인 바람이, 두 사람을 설핏 스쳐 지나간 일이 어제저녁이 처음은 아니란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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