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Ein Landarzt)"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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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시골의사 (Ein Landar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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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마을 醫師 || 現代獨逸名作短篇選 || || 프란츠 카프카 || 金炫珏(김현각) || 1959 || 壽文社 || 69-7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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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현각(1959)" />[[#김현각(1959)R|1]] || 마을 醫師 || 現代獨逸名作短篇選 || || 프란츠 카프카 || 金炫珏(김현각) || 1959 || 壽文社 || 69-7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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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시골의사 || 변신 || 위성문고 17 || 프란츠 카프카 || 丘冀星(구기성) || 1960 || 法文社 || 107-116 || 편역 || 완역 ||
 
| 2 || 시골의사 || 변신 || 위성문고 17 || 프란츠 카프카 || 丘冀星(구기성) || 1960 || 法文社 || 107-11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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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시골 醫事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23 || 프란치 카프카 || 李東昇 || 1970 || 尙書閣 || 121-132 || 편역 || 완역 ||
 
| 4 || 시골 醫事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23 || 프란치 카프카 || 李東昇 || 1970 || 尙書閣 || 121-132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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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시골 醫師 || 變身 || 文藝文庫(문예문고) 22 || 프란츠 카프카 || 李德衡(이덕형) || 1973 || 文藝出版社 || 179-19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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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이덕형(1973)" />[[#이덕형(1973)R|5]] || 시골 醫師 || 變身 || 文藝文庫(문예문고) 22 || 프란츠 카프카 || 李德衡(이덕형) || 1973 || 文藝出版社 || 179-19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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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시골 醫師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세계단편문학전집) 14 || 카프카 || 洪京鎬 || 1974 || 汎潮社 || 206-214 || 편역 || 완역 ||
 
| 6 || 시골 醫師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세계단편문학전집) 14 || 카프카 || 洪京鎬 || 1974 || 汎潮社 || 206-21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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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시골 의사 || 동생.변신, 집, 시골의사 || 현대의 세계문학 = Contemporary world literature 15 || 프란츠 카프카 || 지명렬 || 1988 || 汎韓出版社 || 341-346 || 편역 || 완역 ||
 
| 23 || 시골 의사 || 동생.변신, 집, 시골의사 || 현대의 세계문학 = Contemporary world literature 15 || 프란츠 카프카 || 지명렬 || 1988 || 汎韓出版社 || 341-34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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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마을의 의사 || 카프카短篇選 (카프카단편선) || 풍림명작신서 시리즈 47 || 카프카 || 崔俊煥 || 1989 || 豊林出版社 || 11-2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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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최준환(1989)" />[[#최준환(1989)R|24]] || 마을의 의사 || 카프카短篇選 (카프카단편선) || 풍림명작신서 시리즈 47 || 카프카 || 崔俊煥 || 1989 || 豊林出版社 || 11-21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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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시골의사 || 변신, 유형지에서(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6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89 || 汎友社 || 148-155 || 편역 || 완역 ||
 
| 25 || 시골의사 || 변신, 유형지에서(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6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89 || 汎友社 || 148-155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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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시골의사 || 변신 ||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 프란츠 카프카 || 북트랜스 || 2014 || 북로드 || 133-145 || 편역 || 완역 ||
 
| 57 || 시골의사 || 변신 ||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 프란츠 카프카 || 북트랜스 || 2014 || 북로드 || 133-145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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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시골 의사 || 선고 || 을유세계문학전집 72 || 프란츠 카프카 || 김태환 || 2015 || 을유출판사 || 149-15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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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김태환(2015)" />[[#김태환(2015)R|58]] || 시골 의사 || 선고 || 을유세계문학전집 72 || 프란츠 카프카 || 김태환 || 2015 || 을유출판사 || 149-15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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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시골의사 || 카프카 단편선 || 월드클래식 시리즈 8 || 프란츠 카프카 || 엄인정 || 2015 || 매월당 || 80-89 || 편역 || 완역 ||
 
| 59 || 시골의사 || 카프카 단편선 || 월드클래식 시리즈 8 || 프란츠 카프카 || 엄인정 || 2015 || 매월당 || 80-8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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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4}}<!--번역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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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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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남은 마부에게 성적으로 위협을 당하게 된 하녀에 대해 의사는 염려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의사는 환자 가족들에게 때로는 애원과 기대, 때로는 조롱과 위협을 당한다. 마침내 도망치듯 다시 귀갓길에 오르지만,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사의 길고 격정 어린 탄식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짧은 분량에, 단순한 사건이지만, 화자의 자의식과 외부상황의 서술이 기묘하게 엇갈리면서 곤혹과 낭패가 짙은 카프카적 세계가 여실히 구현된다.  
 
집에 남은 마부에게 성적으로 위협을 당하게 된 하녀에 대해 의사는 염려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의사는 환자 가족들에게 때로는 애원과 기대, 때로는 조롱과 위협을 당한다. 마침내 도망치듯 다시 귀갓길에 오르지만,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사의 길고 격정 어린 탄식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짧은 분량에, 단순한 사건이지만, 화자의 자의식과 외부상황의 서술이 기묘하게 엇갈리면서 곤혹과 낭패가 짙은 카프카적 세계가 여실히 구현된다.  
 
   
 
   
1) '''김현각 역의 <마을 醫師>(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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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각(1959)| 김현각 역의 <마을 醫師>(1959)]]<span id="김현각(1959)R" />'''
  
 
김현각의 번역은 이 작품의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두고라도, 적어도 한 군데에서는 이후의 어떤 번역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과감하고도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은 하녀 로자가 이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김현각의 번역은 이 작품의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두고라도, 적어도 한 군데에서는 이후의 어떤 번역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과감하고도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은 하녀 로자가 이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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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끌 말을 구하러 나갔다가 성과 없이 돌아온 로자는 갑자기 나타난 불한당 마부로부터 뺨이 물리는 성적 공격을 당한다. 이 순간부터 로자에 대한 화자의 관심과 염려가 시작한다. 화자는 환자를 돌보는 동안에도 매 순간 불현듯 로자를 떠올린다. 화자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로자가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화자가 환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극명해진다. 상처에 관한 기술은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킨다. 상처의 색깔은 분홍색을 의미하는 로자(rosa; 영어의 rose)로서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하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일성의 효과는 한국어 번역에서는 당연히 기대할 수가 없다. 김현각은 상처의 색을 분홍색으로 번역하는 대신 아예 로자라는 원어를 그대로 씀으로써 이러한 연관성을 고수한다. 원문에서 하녀는 Rosa로 표기되지만 번역본에서는 별도의 < > 기호와 함께 <로자>로 표기된다. 김현각은 상처의 분홍색을 원어 그대로 로자로 표현한다. 심지어 하녀의 이름 표기 <로자>를 그대로 사용한다. 분홍색의 상처는 “알같이 부드러운 <로자>”로 번역되어 있다. 이름을 표시하는 괄호까지 그대로 상처의 분홍색을 <로자>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마차를 끌 말을 구하러 나갔다가 성과 없이 돌아온 로자는 갑자기 나타난 불한당 마부로부터 뺨이 물리는 성적 공격을 당한다. 이 순간부터 로자에 대한 화자의 관심과 염려가 시작한다. 화자는 환자를 돌보는 동안에도 매 순간 불현듯 로자를 떠올린다. 화자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로자가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화자가 환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극명해진다. 상처에 관한 기술은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킨다. 상처의 색깔은 분홍색을 의미하는 로자(rosa; 영어의 rose)로서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하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일성의 효과는 한국어 번역에서는 당연히 기대할 수가 없다. 김현각은 상처의 색을 분홍색으로 번역하는 대신 아예 로자라는 원어를 그대로 씀으로써 이러한 연관성을 고수한다. 원문에서 하녀는 Rosa로 표기되지만 번역본에서는 별도의 < > 기호와 함께 <로자>로 표기된다. 김현각은 상처의 분홍색을 원어 그대로 로자로 표현한다. 심지어 하녀의 이름 표기 <로자>를 그대로 사용한다. 분홍색의 상처는 “알같이 부드러운 <로자>”로 번역되어 있다. 이름을 표시하는 괄호까지 그대로 상처의 분홍색을 <로자>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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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바른 쪽 허리 부근에 손 바닥만한 상처가 임을 벌리고 있다. 광산과 같이 환히 열려지고 거대한 핏덩이와 같이 가장자리는 맑으면서 심연(深淵) 속에서 침침해지고 짙은 명암 가운데 있는 알같이 부드러운 <로자> 멀리 떨어져 있다.(75)
 
  그의 바른 쪽 허리 부근에 손 바닥만한 상처가 임을 벌리고 있다. 광산과 같이 환히 열려지고 거대한 핏덩이와 같이 가장자리는 맑으면서 심연(深淵) 속에서 침침해지고 짙은 명암 가운데 있는 알같이 부드러운 <로자> 멀리 떨어져 있다.(75)
 
  In seiner rechten Seite, in der Hüftengegend hat sich eine handtellergroße Wunde aufgetan. Rosa, in vielen Schattierungen, dunkel in der Tiefe, hellwerdend zu den Rändern, zartkörnig, mit ungleichmäßig sich aufsammelndem Blut, offen wie ein Bergwerk obertags. So aus der Entfernung.<ref>독일어 원문은 구텐베르크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https://www.projekt-gutenberg.org/kafka/erzaehlg/chap010.html</ref>
 
  In seiner rechten Seite, in der Hüftengegend hat sich eine handtellergroße Wunde aufgetan. Rosa, in vielen Schattierungen, dunkel in der Tiefe, hellwerdend zu den Rändern, zartkörnig, mit ungleichmäßig sich aufsammelndem Blut, offen wie ein Bergwerk obertags. So aus der Entfernung.<ref>독일어 원문은 구텐베르크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https://www.projekt-gutenberg.org/kafka/erzaehlg/chap010.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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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김현각은 독자에게 로자-상처-성적 욕망 사이의 연관성을 환기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상처 묘사의 번역이 군데군데 정확성이 떨어지고, 로자가 아닌 <로자>로 번역한 점 때문에 단순한 오역의 지분도 꽤 커 보인다.  
 
이렇게 해서 김현각은 독자에게 로자-상처-성적 욕망 사이의 연관성을 환기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상처 묘사의 번역이 군데군데 정확성이 떨어지고, 로자가 아닌 <로자>로 번역한 점 때문에 단순한 오역의 지분도 꽤 커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맨 마지막 대목에서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오역과 함께, 작품의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과감한 용어의 선택이 뒤섞여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맨 마지막 대목에서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오역과 함께, 작품의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과감한 용어의 선택이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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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체 이 불행한 시대의 추위에다 몸을 맡기고 속된 마차와 속되지 않은 말과 함께 노인인 나는 주위를 도는 것이다. 환자라는 약빠른 천민들은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않한다. 속았다! 속았다! 언젠가는 야종(夜鍾)을 잘못 울리는 사람에게도 딸으리라. 그것은 결코 보상될 수 없다.(79)
 
  벌거벗은체 이 불행한 시대의 추위에다 몸을 맡기고 속된 마차와 속되지 않은 말과 함께 노인인 나는 주위를 도는 것이다. 환자라는 약빠른 천민들은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않한다. 속았다! 속았다! 언젠가는 야종(夜鍾)을 잘못 울리는 사람에게도 딸으리라. 그것은 결코 보상될 수 없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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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kt, dem Froste dieses unglückseligsten Zeitalters ausgesetzt,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 treibe ich alter Mann mich umher. Mein Pelz hängt hinten am Wagen, ich kann ihn aber nicht erreichen, und keiner aus dem beweglichen Gesindel der Patienten rührt den Finger. Betrogen! Betrog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 — es ist niemals gutzumachen.
  
Nackt, dem Froste dieses unglückseligsten Zeitalters ausgesetzt,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 treibe ich alter Mann mich umher. Mein Pelz hängt hinten am Wagen, ich kann ihn aber nicht erreichen, und keiner aus dem beweglichen Gesindel der Patienten rührt den Finger. Betrogen! Betrog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 — es ist niemals gutzumach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를 “언젠가는 야종(夜鍾)을 잘못 울리는 사람에게도 딸으리라”고 옮긴 것은 명확한 오역이다. 그런데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의 번역 “속된 마차와 속되지 않은 말과 함께”는 어떤가.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그가 몰고 다니는 마차는 현실에 어울리는 것이다. 화자의 말대로 가볍고, 바퀴도 커서, 우리네 국도에 아주 쓸모있는 그런 마차다.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를 “언젠가는 야종(夜鍾)을 잘못 울리는 사람에게도 딸으리라”고 옮긴 것은 명확한 오역이다. 그런데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의 번역 “속된 마차와 속되지 않은 말과 함께”는 어떤가.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그가 몰고 다니는 마차는 현실에 어울리는 것이다. 화자의 말대로 가볍고, 바퀴도 커서, 우리네 국도에 아주 쓸모있는 그런 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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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inen Wagen hatte ich, leicht, großräderig, ganz wie er für unsere Landstraßen taugt;
 
  [...] einen Wagen hatte ich, leicht, großräderig, ganz wie er für unsere Landstraßen tau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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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마차를 끌고 가는 말은? 처음에 말은 없었다. 하녀가 마을에서 빌리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러다가 갑자기 돼지우리에서 두 마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돼지우리에서 기어 나왔지만, 근육이 실하고, 뭔가 신의 계시라도 따르는 듯 신비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는 말들이다. 아래에서 이어지는 다른 번역본들의 분석에서 보게 되겠지만, 마차와 말은 속된 혹은 세속적, 그리고 속되지 않은, 비세속적, 초월적 존재 원칙 혹은 지향성의 대비를 이룬다. 김현각의 ‘속된-속되지 않은’은 이러한 맥락을 선명하게 해 준다.  
 
그러나 그 마차를 끌고 가는 말은? 처음에 말은 없었다. 하녀가 마을에서 빌리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러다가 갑자기 돼지우리에서 두 마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돼지우리에서 기어 나왔지만, 근육이 실하고, 뭔가 신의 계시라도 따르는 듯 신비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는 말들이다. 아래에서 이어지는 다른 번역본들의 분석에서 보게 되겠지만, 마차와 말은 속된 혹은 세속적, 그리고 속되지 않은, 비세속적, 초월적 존재 원칙 혹은 지향성의 대비를 이룬다. 김현각의 ‘속된-속되지 않은’은 이러한 맥락을 선명하게 해 준다.  
 
   
 
   
2) '''이덕형 역의 <시골 의사>(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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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덕형(1973)| 이덕형 역의 <시골 의사>(1973)]]<span id="이덕형(1973)R" />'''
  
 
이덕형은 1973년 문예출판사에서 이 작품의 번역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덕형은 1973년 문예출판사에서 이 작품의 번역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화자의 마지막 독백을 보자. 이덕형은 “결코 나는 이 모양으로 집에 갈 수가 없다.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200)고 시작한다. 이로써 시골 의사가 자신의 결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번째 문장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는 그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원인인 듯 들린다. 그러니까 젊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의사가 자신의 의술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렇게 의술을 잃어버린 처지로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는 듯이 들린다. 그런데 meine blühende Praxis는 성황리의 내 병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의 의미는, 마차를 끄는 말들이 “흡사 노인네들처럼 천천히” 달리는 걸로 봐서는 집에 가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화자의 마지막 독백을 보자. 이덕형은 “결코 나는 이 모양으로 집에 갈 수가 없다.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200)고 시작한다. 이로써 시골 의사가 자신의 결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번째 문장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는 그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원인인 듯 들린다. 그러니까 젊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의사가 자신의 의술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렇게 의술을 잃어버린 처지로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는 듯이 들린다. 그런데 meine blühende Praxis는 성황리의 내 병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의 의미는, 마차를 끄는 말들이 “흡사 노인네들처럼 천천히” 달리는 걸로 봐서는 집에 가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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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랴!”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말은 달리지 않았다. 우리는 흡사 노인네들처럼 천천히 눈 덮힌 벌판을 갔다.(199)
 
  “이랴!”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말은 달리지 않았다. 우리는 흡사 노인네들처럼 천천히 눈 덮힌 벌판을 갔다.(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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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ter!“ sagte ich, aber munter ging's nicht; langsam wie alte Männer zogen wir durch die Schneewüste;
  
„Munter!“ sagte ich, aber munter ging's nicht; langsam wie alte Männer zogen wir durch die Schneewüste;
 
  
 
말과 마차의 관계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말과 마차의 관계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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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준환 역의 <마을의 의사>(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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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준환(1989)| 최준환 역의 <마을의 의사>(1989)]]<span id="최준환(1989)R" />'''
  
 
번역가 최준환의 번역에서 청년의 상처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번역가 최준환의 번역에서 청년의 상처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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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옆구리, 허리께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상처가 빠끔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장밋빛이고 안쪽은 진한 빛깔이지만, 언저리로 가까워짐에 따라 밝아지는 식으로 갖가지 색조(色調)를 띠고 있으며, 여기저기 혈관이 부풀어올라 대낮의 광산(鑛山)처럼 개방적인 느낌이다. 이것이 먼 곳에서 본 증상이다.(17)
 
  오른쪽 옆구리, 허리께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상처가 빠끔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장밋빛이고 안쪽은 진한 빛깔이지만, 언저리로 가까워짐에 따라 밝아지는 식으로 갖가지 색조(色調)를 띠고 있으며, 여기저기 혈관이 부풀어올라 대낮의 광산(鑛山)처럼 개방적인 느낌이다. 이것이 먼 곳에서 본 증상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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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의 이름과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상처 사이의 언어적 연관성은 시도되지 않는다. “장밋빛”은 매우 간접적으로만 연결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하녀의 이름과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상처 사이의 언어적 연관성은 시도되지 않는다. “장밋빛”은 매우 간접적으로만 연결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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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 나의 실지(實地)의 경험은 이제야 원숙해가고 있었지만, 그것도 틀려 버리고 말았다. 후계자가 나의 기술을 훔친다. 하지만 내게 힘이 없는 만큼 그곳은 헛된 노력이기는 하다. 우리집에서는 그 보기싫은 마부가 으쓱대고 있다.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 나의 실지(實地)의 경험은 이제야 원숙해가고 있었지만, 그것도 틀려 버리고 말았다. 후계자가 나의 기술을 훔친다. 하지만 내게 힘이 없는 만큼 그곳은 헛된 노력이기는 하다. 우리집에서는 그 보기싫은 마부가 으쓱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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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는 그 먹이이다. 이것은 이제 끝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벌거벗은 채 일년 중에서 가장 혜택받지 못하는 계절의 추위에 드러내어져서 지상(地上)의 것인 수레와 지상의 것이 아닌 말과 함께 늙어빠진 나는 달려간다. 모피외투가 차의 뒤에 걸려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환자 가운데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무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들지를 않는 것이다. 속았다, 속은 것이다! 잘못 울린 야간용의 벨이 말하는 대로 하고 있으면 –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20-21)
 
  로자는 그 먹이이다. 이것은 이제 끝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벌거벗은 채 일년 중에서 가장 혜택받지 못하는 계절의 추위에 드러내어져서 지상(地上)의 것인 수레와 지상의 것이 아닌 말과 함께 늙어빠진 나는 달려간다. 모피외투가 차의 뒤에 걸려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환자 가운데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무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들지를 않는 것이다. 속았다, 속은 것이다! 잘못 울린 야간용의 벨이 말하는 대로 하고 있으면 –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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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 [...] Nackt, dem Froste dieses unglückseligsten Zeitalters ausgesetzt,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 treibe ich alter Mann mich umher. Mein Pelz hängt hinten am Wagen, ich kann ihn aber nicht erreichen, und keiner aus dem beweglichen Gesindel der Patienten rührt den Finger. Betrogen! Betrog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 — es ist niemals gutzumachen.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 [...] Nackt, dem Froste dieses unglückseligsten Zeitalters ausgesetzt,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 treibe ich alter Mann mich umher. Mein Pelz hängt hinten am Wagen, ich kann ihn aber nicht erreichen, und keiner aus dem beweglichen Gesindel der Patienten rührt den Finger. Betrogen! Betrog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 — es ist niemals gutzumachen.
 
  
 
최준환의 번역에서 시골 의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는 그럭저럭 집으로 돌아왔거나 혹은 곧 집에 도착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눈이 덮인 벌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황을 그리는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그는 umhertreiben을 (집을 향해) “달려간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는 기어이 맨 마지막 문장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와 호응하지 않고 만다.  
 
최준환의 번역에서 시골 의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는 그럭저럭 집으로 돌아왔거나 혹은 곧 집에 도착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눈이 덮인 벌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황을 그리는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그는 umhertreiben을 (집을 향해) “달려간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는 기어이 맨 마지막 문장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와 호응하지 않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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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태환 역의 <시골 의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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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태환(2015)| 김태환 역의 <시골 의사>(2015)]]<span id="김태환(2015)R" />'''
  
 
김태환은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의 niemals를 앞의 여러 번역본에서처럼 (과거에) “~한 적이 없다”로 번역하는 대신에, (미래에) ”결코 ~하지 못한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되돌릴 수 없구나”라는 자신의 희망 없는 낭패스러운 처지에 대한 화자의 한탄이 선명해졌다.
 
김태환은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의 niemals를 앞의 여러 번역본에서처럼 (과거에) “~한 적이 없다”로 번역하는 대신에, (미래에) ”결코 ~하지 못한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되돌릴 수 없구나”라는 자신의 희망 없는 낭패스러운 처지에 대한 화자의 한탄이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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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해서 나는 끝내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번창하는 내 진료소는 망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치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그는 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집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 있다. 로자는 그의 희생양이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이는 벌거벗은 채, 극도로 불행한 시대의 서릿발을 맞으며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적인 말들과 함께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모피 외투는 마차 뒤에 걸려 있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그리고 움직이는 환자들의 무리 가운데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다! 속았어! 한번 잘못 울린 야간 벨 소리에 따라나섰다가 – 다시는 되돌릴 수 없구나.(157-158)
 
  그렇게 해서 나는 끝내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번창하는 내 진료소는 망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치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그는 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집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 있다. 로자는 그의 희생양이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이는 벌거벗은 채, 극도로 불행한 시대의 서릿발을 맞으며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적인 말들과 함께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모피 외투는 마차 뒤에 걸려 있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그리고 움직이는 환자들의 무리 가운데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다! 속았어! 한번 잘못 울린 야간 벨 소리에 따라나섰다가 – 다시는 되돌릴 수 없구나.(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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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마차와 말은 의사의 삶의 외적 수단과 그것을 이끌고 가는 내적 원동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의사라는 그의 직업, 즉 삶의 외적 수단이 현세적이고, 현실적임에 반해, 그 외적 수단을 추동하며 이끌어가는 그의 본능적 원초적인 힘은 세속적, 현세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김태환은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적인 말들”이라는 번역으로 이러한 마차와 말의 모순적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마차와 말은 의사의 삶의 외적 수단과 그것을 이끌고 가는 내적 원동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의사라는 그의 직업, 즉 삶의 외적 수단이 현세적이고, 현실적임에 반해, 그 외적 수단을 추동하며 이끌어가는 그의 본능적 원초적인 힘은 세속적, 현세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김태환은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적인 말들”이라는 번역으로 이러한 마차와 말의 모순적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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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번역으로서 박종대 역의 <시골 의사>를 보자. 역시 맨 마지막의, 화자의 탄식을 들어보자.
 
가장 최근의 번역으로서 박종대 역의 <시골 의사>를 보자. 역시 맨 마지막의, 화자의 탄식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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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코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창 잘나가던 의사 자리를 잃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쳐갔다. 그러나 소용없다. 나를 대체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 집에서는 그 역겨운 마부 놈이 난동을 부리고, 로자는 그놈의 제물이 된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 몸은 벌거벗은 채,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를 타고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 속을 정처 없이 떠돈다. 외투는 마차 뒤쪽에 걸려 있다. 거기까지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자 놈들 중에서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는다. 속았어! 속았어!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에 한 번 응한 것뿐인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95)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코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창 잘나가던 의사 자리를 잃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쳐갔다. 그러나 소용없다. 나를 대체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 집에서는 그 역겨운 마부 놈이 난동을 부리고, 로자는 그놈의 제물이 된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 몸은 벌거벗은 채,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를 타고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 속을 정처 없이 떠돈다. 외투는 마차 뒤쪽에 걸려 있다. 거기까지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자 놈들 중에서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는다. 속았어! 속았어!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에 한 번 응한 것뿐인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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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대 역시 의사의 귀가 불가능성을 “결코 ~하지 못한다”로 번역한다. 마차와 말의 경우,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대구(對句)는 가령 이 세상의 것과 이 세상 아닌 것의 대구에 비해, 저 세계, 즉 죽음을 거치고 난 뒤의 세계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김현각의 ‘속된-속되지 않은’의 대구가 작가 자신의 현실적인 직업 선택과 내적 욕구 사이의 모순에 찬 삶과 좀 더 호응하지 않는가.  
 
박종대 역시 의사의 귀가 불가능성을 “결코 ~하지 못한다”로 번역한다. 마차와 말의 경우,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대구(對句)는 가령 이 세상의 것과 이 세상 아닌 것의 대구에 비해, 저 세계, 즉 죽음을 거치고 난 뒤의 세계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김현각의 ‘속된-속되지 않은’의 대구가 작가 자신의 현실적인 직업 선택과 내적 욕구 사이의 모순에 찬 삶과 좀 더 호응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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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별 비평된 번역목록'''
 
4. '''개별 비평된 번역목록'''
  
김현각(1959): 마을 醫師. 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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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각(1959): 마을 醫師. 수문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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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1973): 시골 醫師. 문예출판사.<br>
이덕형(1973): 시골 醫師.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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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환(1989): 마을의 의사. 풍림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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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2015): 시골 의사. 을유문화사.<br>
최준환(1989): 마을의 의사. 풍림출판사
 
 
 
김태환(2015): 시골 의사. 을유문화사.
 
 
 
 
박종대(2022): 시골 의사. 책세상.  
 
박종대(2022): 시골 의사.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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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일문학]]
 
[[분류: 독일문학]]
 
[[분류:카프카,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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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비평된작품]]

2024년 8월 15일 (목) 08:21 기준 최신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시골의사 (Ein Landarzt)
작가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초판 발행1918
장르소설


작품소개

1917년에 발표된 카프카의 단편소설이다. 카프카가 1919년에 펴낸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눈보라 속에서 왕진을 가야 하는데 마차를 끌 말이 없어서 애태우고 있는 시골의사에게 낯선 마부가 나타나 돼지우리에서 두 필의 말을 불러낸다. 의사는 마부가 하녀 로자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떠나기를 거부하지만 마부의 신호에 마술처럼 환자의 집에 도착한다. 의사는 병상의 소년을 보고 꾀병이라고 생각하고 허망한 로자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다가 환자 가족에 이끌려 소년을 다시 들여다보고 허리께에 끔찍하게 벌어져 있는 상처를 발견한다. 그는 환자 옆에 눕혀졌다가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뛰쳐나가 마차에 올라탄다. 말들은 아주 천천히 나아갈 뿐이다. 소설은 결코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의사의 한탄으로 끝난다. 카프카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별히 난해한 것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시골의사 자신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순과 비약, 환상성, 에로틱한 상징들과 죽음의 테마는 기괴한 악몽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의 수수께끼 같은 성격은 학자들로 하여금 정신분석적 방법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론적 모델을 시험해보도록 유인했으나 어떤 해석도 이 작품을 완전히 해명해냈다고 하기는 어렵다. 구원받을 길 없이 삶에서 물러나 있는 소년과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점차 해체되어가는 의사의 모습은 카프카의 <변신>, <소송>과 같은 작품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국내에서는 김희송의 번역으로 1958년에 20세기 단편선집에 최초로 소개되었다(경기문화사).


초판 정보

Kafka, Franz(1918): Ein Landarzt. In: Die neue Dichtung - Ein Almanach. Leipzig: Kurt Wolff. <단행본 초판> Kafka, Franz(1920): Ein Landarzt. In: Ein Landarzt. Kleine Erzählungen. München/Leipzig: Kurt Wolff, 6-33.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마을 醫師 現代獨逸名作短篇選 프란츠 카프카 金炫珏(김현각) 1959 壽文社 69-79 편역 완역
2 시골의사 변신 위성문고 17 프란츠 카프카 丘冀星(구기성) 1960 法文社 107-116 편역 완역
3 시골 醫師 世界文學100選集 3 프란쯔 카프카 확인불가 1964 현문사 363-368 편역 완역
4 시골 醫事 카프카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大系 23 프란치 카프카 李東昇 1970 尙書閣 121-132 편역 완역
시골 醫師 變身 文藝文庫(문예문고) 22 프란츠 카프카 李德衡(이덕형) 1973 文藝出版社 179-191 편역 완역
6 시골 醫師 카프카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集(세계단편문학전집) 14 카프카 洪京鎬 1974 汎潮社 206-214 편역 완역
7 시골 醫師 世界短篇文學大全集 6 世界短篇文學大全集. 印象·表現主義文學 6 카프카 박환덕 1975 大榮出版社 362-367 편역 완역
8 시골 의사 變身 동서문고 80 프란츠 카프카 朴鍾緖(박종서) 1977 東西文化社 135-144 편역 완역
9 시골 醫師 變身 삼중당문고 344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홍경호) 1977 三中堂 123-132 편역 완역
10 시골 의사 성∙변신 동서문고 80 프란쯔 카프카 박종서 1977 東西文化社 135-144 편역 완역
11 시골 醫師 變身(外) 文藝文庫 22 프란츠 카프카 李德衡 1977 文藝出版社 177-191 편역 완역
12 시골 醫師 觀察 세계명작꽁뜨선 1 프란츠 카프카 金浚埴(김준식) 1980 文志社 188-197 편역 완역
13 시골의사 變身 자이언트문고 147 프란츠 카프카 朴鍾緖(박종서) 1982 文公社 135-144 편역 완역
14 시골 의사 심판 주우세계문학 9 프란츠 카프카 韓逸燮(한일섭) 1982 主友 302-307 편역 완역
15 시골의사 독일 短篇選과 독문학 散考 프란츠 카프카 곽복록 1982 한밭출판사 192-200 편역 완역
16 시골 의사 동생.변신, 집, 시골의사 Contemporary world literature, 현대의 세계문학 15 프란츠 카프카 지명렬 1984 汎韓出版社 341-346 편역 완역
17 시골 의사 집으로 가는 길 아데아총서 16 프란츠 카프카 全英愛 1984 民音社 69-76 편역 완역
18 시골 의사 변신 외 어문각 세계문학문고 119 카프카 박환덕 1986 어문각 97-108 편역 완역
19 시골 醫師 變身 문예교양전서 48 프란츠 카프카 李德衡(이덕형) 1987 文藝出版社 179-191 편역 완역
20 시골의사 크눌프 : 그 생애의 세 가지 이야기 프란츠 카프카 조경원 1987 대우출판공사 274-285 편역 완역
21 시골 의사 독일단편걸작선 영한대역문고 시골의사 68 프란츠 카프카 시사영어사 편집국 1987 시사영어사 174-189 편역 완역
22 시골 醫師(의사) 아메리카, 變身, 短篇 완역판 세계문학 Sunshine Series 44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 1987 금성출판사 434-440 편역 완역
23 시골 의사 동생.변신, 집, 시골의사 현대의 세계문학 = Contemporary world literature 15 프란츠 카프카 지명렬 1988 汎韓出版社 341-346 편역 완역
마을의 의사 카프카短篇選 (카프카단편선) 풍림명작신서 시리즈 47 카프카 崔俊煥 1989 豊林出版社 11-21 편역 완역
25 시골의사 변신, 유형지에서(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6 프란츠 카프카 박환덕 1989 汎友社 148-155 편역 완역
26 시골 의사 변신·유형지에서(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2 프란츠 카프카 박환덕 1989 범우사 146-155 편역 완역
27 시골 醫師(의사) 아메리카, 變身, 短篇 금장판 세계문학대전집 88 카프카 洪京鎬 1990 金星出版社 434-440 편역 완역
28 시골 의사 변신 한권의책 171 프란츠 카프카 한일섭 1990 學園社 101-109 편역 완역
29 시골 의사 심판 Touchstone books 17 카프카 한일섭 1992 學園社 300-306 편역 완역
30 시골 의사 변신, 심판, 시골 의사 세계문학동아리 프란츠 카프카 동서문화번역위원회 1993 宇石 319-326 편역 완역
31 시골 의사 변신 한권의 책 79 카프카 한일섭 1994 학원사 101-109 편역 완역
32 시골 의사(醫師) 변신.유형지에서 프란츠 카프카 단편집 6 프란츠 카프카 안성암 1995 글벗사 123-133 편역 완역
33 시골 의사 변신, 유형지에서 (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2 프란츠 카프카 박환덕 1995 범우사 161-169 편역 완역
34 시골 의사 변신 :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1997 솔출판사 211-219 편역 완역
35 시골의사 변신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1998 민음사 96-104 편역 완역
36 시골의사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이덕형 2001 문예출판사 187-200 편역 완역
37 시골 의사 변신 :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2003 솔출판사 211-219 편역 완역
38 시골 의사 변신.시골의사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이덕형 2004 문예출판사 159-170 편역 완역
39 시골 의사 카프카 문학 : 유형지에서 외 4편.2 프란츠 카프카 金保會 2005 보성 80-95 편역 완역
40 시골 의사 관찰 Mr. know 세계문학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2007 열린책들 199-256 편역 완역
41 시골의사 카프카 변신 월드 노블 시리즈 프란츠 카프카 이지영 2007 보성출판사 113-129 편역 완역
42 시골 의사 카프카 : 변신, 화부 Classic together 3 프란츠 카프카 박철규 2007 아름다운날 111-126 편역 완역
43 시골 의사 변신 아침독서 10분 운동 필독서 프란츠 카프카 최미영 2008 느낌이있는책 127-141 편역 완역
44 시골 의사 변신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2008 책만드는집 219-232 편역 완역
45 시골의사 변신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1 프란츠 카프카 김재혁 2008 고려대학교출판부 125-141 편역 완역
46 시골 의사 변신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2008 책만드는집 219-232 편역 완역
47 시골 의사 변신 외 프란츠 카프카 송명희 2009 교원 107-122 편역 완역
48 시골 의사 변신: 프란츠 카프카 중단편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10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2010 열린책들 201-209 편역 완역
49 시골의사 변신 (국문학 교수들이 추천한 글누림세계명작선) 프란츠 카프카 조윤아 2011 글누림출판사 197-208 편역 완역
50 시골 의사 카프카 단편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2011 지만지고전천줄 27-41 편역 완역
51 시골 의사 카프카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2013 지식을만드는지식 125-140 편역 완역
52 시골 의사 변신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2013 책만드는집 219-232 편역 완역
53 시골의사 변신.시골의사 Classic together 3 프란츠 카프카 박철규 2013 아름다운날 113-126 편역 완역
54 시골 의사 변신 프란츠 카프카 장혜경 2013 푸른숲주니어 120-132 편역 완역
55 시골의사 선고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큰글씨책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127-139 편역 완역
56 시골의사 칼다 기차의 추억 프란츠 카프카 이준미 2014 하늘연못 245-257 편역 완역
57 시골의사 변신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프란츠 카프카 북트랜스 2014 북로드 133-145 편역 완역
시골 의사 선고 을유세계문학전집 72 프란츠 카프카 김태환 2015 을유출판사 149-158 편역 완역
59 시골의사 카프카 단편선 월드클래식 시리즈 8 프란츠 카프카 엄인정 2015 매월당 80-89 편역 완역
60 시골의사 변신 외 Never ending world book 7 프란츠 카프카 김시오 2015 브라운힐 165-182 편역 완역
61 시골의사 변신 : 카프카 단편선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51 프란츠 카프카 한영란 2015 더클래식:미르북컴퍼니 118-128 편역 완역
62 시골 의사 변신 : 카프카 단편선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85 프란츠 카프카 한영란 2015 더클래식:미르북컴퍼니 107-117 편역 완역
63 시골의사 변신 1일 1독 10 프란츠 카프카 더페이지 2016 북스데이 173-188 편역 완역
64 시골의사 변신 아로파 세계문학 9 프란츠 카프카 최성욱 2016 아로파 95-103 편역 완역
65 시골 의사 소송, 변신, 시골의사 외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2016 열린책들 433-444 편역 완역
66 시골 의사 변신 책만드는집 세계 문학, classic 4 프란츠 카프카 송소민 2017 책만드는집 217- 편역 완역
67 시골의사 카프카 대표 단편선 프란츠 카프카 김시오 2017 한비미디어 165-182 편역 완역
68 시골 의사 변신 :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2017 솔출판사 211-219 편역 완역
69 시골의사 변신(미니북) 프란츠 카프카 김민준 2018 자화상 117-133 편역 완역
70 시골의사 변신(문고판) 프란츠 카프카 김민준 2018 자화상 103-117 편역 완역
71 시골 의사 판결 프란츠 카프카 한영란 2019 미르북컴퍼니, 더스토리 132-144 편역 완역
72 시골 의사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문득 2 프란츠 카프카 김해생 2019 스피리투스 44-53 편역 완역
73 시골의사 변신 포켓북시리즈 프란츠 카프카 하소연 2019 자화상 135-151 편역 완역
74 어느 시골 의사 프란츠 카프카 세계문학단편선 37 프란츠 카프카 박병덕 2020 현대문학 253-262 편역 완역
75 시골 의사 변신·단식 광대 창비세계문학 78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임홍배 2020 창비 132-141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카프카의 <시골의사>는 1917년에 집필되어, 1918년에 <Die neue Dichtung. Ein Almanach>에 처음으로 소개된 후, 작가의 다른 산문 13편과 함께 1920년 동명의 작품 모음집에 그 표제작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국내 첫 번역은 1959년 김현각에 의한 <마을 醫師>(현대독일명작단편선, 수문사)로서, 1957년에 초역된 <변신>, 1960년에 초역된 <단식광대>처럼 비교적 일찍 번역된 카프카의 작품에 속한다. 독어 제목은 <Ein Landarzt>로서 마을 의사, 시골 의사, 어느 시골 의사 등으로 번역되었다.

김현각의 번역 후 1960년 구기성의 번역이 뒤따랐고, 이후 십년대마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다양한 번역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8종, 80년대에 15종, 90년대에 9종, 2000년대에는 12종이 등장하여 2010년대에 26종으로 최고점을 찍기까지, 일찍이 80년대에 유독 결실이 컸던 것은 독문학의 많은 다른 작품의 번역과 수용에서도 여실히 확인되는 현상으로서, 여기에는 대학 내 독문학과의 신설과 양적 확대라는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다. 1959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시골의사>의 번역은 번역자의 중복과 미상을 제외하면 총 48종에 이른다(2024년 6월 기준). 분량상 이 단편만 단독으로 번역출판된 적은 없고, 일반적으로 선집이나 전집에 편입되어 출판되며, 드물게 표제작으로 실리기도 했다.

국내 독자들이 카프카의 독특한 문학적 접근방식에 매료되어 이를 음미하게 된 지 이제 거의 8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시골의사>에서는 한국어 번역을 통한 국내 독자와의 만남이 어떻게 준비되고 전개됐을까. 본 번역 비평에서는 김현각의 번역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번역 하나씩, 그리고 2010년대와 2020년대에서 각각 하나씩 번역본을 선정하여 비교해 보기로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서 선정하지는 않았는데,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다양한 번역이 쏟아진 1980년대와 2010년대 사이의 이 시기는 이전의 성과가 안정적으로 다져지는 데 의미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선정된 번역본은 때로는 카프카 전공 연구자의 번역일 경우도 있고 때로는 전문 번역가의 번역일 경우도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이 작품에는 일인칭 화자인 시골 의사가 등장하여 사회적 역할과 성취에 대한 내면적 긴장과 엇갈림을 토로하고 있다. 의사는 야간 비상벨 소리를 듣고 멀리 있는 환자를 보러 나서지만, 마차를 끌 말이 없어 우왕좌왕한다. 갑자기 집안 어디에서 두 마리 말과 마부가 나타나지만, 엉뚱하게도 마부는 말을 모는 대신 집에 남겠다고 한다.

집에 남은 마부에게 성적으로 위협을 당하게 된 하녀에 대해 의사는 염려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의사는 환자 가족들에게 때로는 애원과 기대, 때로는 조롱과 위협을 당한다. 마침내 도망치듯 다시 귀갓길에 오르지만,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사의 길고 격정 어린 탄식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짧은 분량에, 단순한 사건이지만, 화자의 자의식과 외부상황의 서술이 기묘하게 엇갈리면서 곤혹과 낭패가 짙은 카프카적 세계가 여실히 구현된다.


1) 김현각 역의 <마을 醫師>(1959)

김현각의 번역은 이 작품의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두고라도, 적어도 한 군데에서는 이후의 어떤 번역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과감하고도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은 하녀 로자가 이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마차를 끌 말을 구하러 나갔다가 성과 없이 돌아온 로자는 갑자기 나타난 불한당 마부로부터 뺨이 물리는 성적 공격을 당한다. 이 순간부터 로자에 대한 화자의 관심과 염려가 시작한다. 화자는 환자를 돌보는 동안에도 매 순간 불현듯 로자를 떠올린다. 화자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로자가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화자가 환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극명해진다. 상처에 관한 기술은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킨다. 상처의 색깔은 분홍색을 의미하는 로자(rosa; 영어의 rose)로서 이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하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일성의 효과는 한국어 번역에서는 당연히 기대할 수가 없다. 김현각은 상처의 색을 분홍색으로 번역하는 대신 아예 로자라는 원어를 그대로 씀으로써 이러한 연관성을 고수한다. 원문에서 하녀는 Rosa로 표기되지만 번역본에서는 별도의 < > 기호와 함께 <로자>로 표기된다. 김현각은 상처의 분홍색을 원어 그대로 로자로 표현한다. 심지어 하녀의 이름 표기 <로자>를 그대로 사용한다. 분홍색의 상처는 “알같이 부드러운 <로자>”로 번역되어 있다. 이름을 표시하는 괄호까지 그대로 상처의 분홍색을 <로자>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바른 쪽 허리 부근에 손 바닥만한 상처가 임을 벌리고 있다. 광산과 같이 환히 열려지고 거대한 핏덩이와 같이 가장자리는 맑으면서 심연(深淵) 속에서 침침해지고 짙은 명암 가운데 있는 알같이 부드러운 <로자> 멀리 떨어져 있다.(75)
In seiner rechten Seite, in der Hüftengegend hat sich eine handtellergroße Wunde aufgetan. Rosa, in vielen Schattierungen, dunkel in der Tiefe, hellwerdend zu den Rändern, zartkörnig, mit ungleichmäßig sich aufsammelndem Blut, offen wie ein Bergwerk obertags. So aus der Entfernung.[1]


이렇게 해서 김현각은 독자에게 로자-상처-성적 욕망 사이의 연관성을 환기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상처 묘사의 번역이 군데군데 정확성이 떨어지고, 로자가 아닌 <로자>로 번역한 점 때문에 단순한 오역의 지분도 꽤 커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맨 마지막 대목에서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오역과 함께, 작품의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과감한 용어의 선택이 뒤섞여 있다.


벌거벗은체 이 불행한 시대의 추위에다 몸을 맡기고 속된 마차와 속되지 않은 말과 함께 노인인 나는 주위를 도는 것이다. 환자라는 약빠른 천민들은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않한다. 속았다! 속았다! 언젠가는 야종(夜鍾)을 잘못 울리는 사람에게도 딸으리라. 그것은 결코 보상될 수 없다.(79)

Nackt, dem Froste dieses unglückseligsten Zeitalters ausgesetzt,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 treibe ich alter Mann mich umher. Mein Pelz hängt hinten am Wagen, ich kann ihn aber nicht erreichen, und keiner aus dem beweglichen Gesindel der Patienten rührt den Finger. Betrogen! Betrog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 — es ist niemals gutzumach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를 “언젠가는 야종(夜鍾)을 잘못 울리는 사람에게도 딸으리라”고 옮긴 것은 명확한 오역이다. 그런데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의 번역 “속된 마차와 속되지 않은 말과 함께”는 어떤가.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그가 몰고 다니는 마차는 현실에 어울리는 것이다. 화자의 말대로 가볍고, 바퀴도 커서, 우리네 국도에 아주 쓸모있는 그런 마차다.


[...] einen Wagen hatte ich, leicht, großräderig, ganz wie er für unsere Landstraßen taugt;


그러나 그 마차를 끌고 가는 말은? 처음에 말은 없었다. 하녀가 마을에서 빌리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러다가 갑자기 돼지우리에서 두 마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돼지우리에서 기어 나왔지만, 근육이 실하고, 뭔가 신의 계시라도 따르는 듯 신비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는 말들이다. 아래에서 이어지는 다른 번역본들의 분석에서 보게 되겠지만, 마차와 말은 속된 혹은 세속적, 그리고 속되지 않은, 비세속적, 초월적 존재 원칙 혹은 지향성의 대비를 이룬다. 김현각의 ‘속된-속되지 않은’은 이러한 맥락을 선명하게 해 준다.


2) 이덕형 역의 <시골 의사>(1973)

이덕형은 1973년 문예출판사에서 이 작품의 번역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화자의 마지막 독백을 보자. 이덕형은 “결코 나는 이 모양으로 집에 갈 수가 없다.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200)고 시작한다. 이로써 시골 의사가 자신의 결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번째 문장 “나의 찬란한 의술은 사라져버렸다.”는 그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원인인 듯 들린다. 그러니까 젊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의사가 자신의 의술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렇게 의술을 잃어버린 처지로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는 듯이 들린다. 그런데 meine blühende Praxis는 성황리의 내 병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의 의미는, 마차를 끄는 말들이 “흡사 노인네들처럼 천천히” 달리는 걸로 봐서는 집에 가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이랴!”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말은 달리지 않았다. 우리는 흡사 노인네들처럼 천천히 눈 덮힌 벌판을 갔다.(199)

„Munter!“ sagte ich, aber munter ging's nicht; langsam wie alte Männer zogen wir durch die Schneewüste;


말과 마차의 관계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벌거숭이로 이 불행한 시대에 몸을 내맡기고 현세의 마차와 현세의 것이 아닌 말을 몰고, 이 늙은 나는 빙빙 돌고 있을 뿐이다. 나의 털외투는 마차 뒤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손이 미치지 않는다. 환자 중의 불한당 중에서 움직일 수는 있는 그 어떤 놈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속았구나! 속았구나! 한번 야간 비상종이 잘못 울린 것을 따랐더니 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200)

이덕형은 “현세의 마차와 현세의 것이 아닌 말”로 번역하고 있다.

1973년 초판 이후, 2001년에 2판이, 2004년에 3판이 나왔다.


3) 최준환 역의 <마을의 의사>(1989)

번역가 최준환의 번역에서 청년의 상처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오른쪽 옆구리, 허리께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상처가 빠끔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장밋빛이고 안쪽은 진한 빛깔이지만, 언저리로 가까워짐에 따라 밝아지는 식으로 갖가지 색조(色調)를 띠고 있으며, 여기저기 혈관이 부풀어올라 대낮의 광산(鑛山)처럼 개방적인 느낌이다. 이것이 먼 곳에서 본 증상이다.(17)


하녀의 이름과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상처 사이의 언어적 연관성은 시도되지 않는다. “장밋빛”은 매우 간접적으로만 연결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대목인 화자의 탄식 부분을 살펴보자.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 나의 실지(實地)의 경험은 이제야 원숙해가고 있었지만, 그것도 틀려 버리고 말았다. 후계자가 나의 기술을 훔친다. 하지만 내게 힘이 없는 만큼 그곳은 헛된 노력이기는 하다. 우리집에서는 그 보기싫은 마부가 으쓱대고 있다.


로자는 그 먹이이다. 이것은 이제 끝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벌거벗은 채 일년 중에서 가장 혜택받지 못하는 계절의 추위에 드러내어져서 지상(地上)의 것인 수레와 지상의 것이 아닌 말과 함께 늙어빠진 나는 달려간다. 모피외투가 차의 뒤에 걸려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환자 가운데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무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들지를 않는 것이다. 속았다, 속은 것이다! 잘못 울린 야간용의 벨이 말하는 대로 하고 있으면 –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20-21)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 [...] Nackt, dem Froste dieses unglückseligsten Zeitalters ausgesetzt, mit irdischem Wagen, unirdischen Pferden, treibe ich alter Mann mich umher. Mein Pelz hängt hinten am Wagen, ich kann ihn aber nicht erreichen, und keiner aus dem beweglichen Gesindel der Patienten rührt den Finger. Betrogen! Betrogen! Einmal dem Fehlläuten der Nachtglocke gefolgt — es ist niemals gutzumachen.


최준환의 번역에서 시골 의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는 그럭저럭 집으로 돌아왔거나 혹은 곧 집에 도착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눈이 덮인 벌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황을 그리는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그는 umhertreiben을 (집을 향해) “달려간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이런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은 없다”는 기어이 맨 마지막 문장 “다시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와 호응하지 않고 만다.

그 외 이런저런 다른 오역들도 물론 눈에 띄지만, 최준환이 “지상의 것인 수레와 지상의 것이 아닌 말”로 번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 김태환 역의 <시골 의사>(2015)

김태환은 Niemals komme ich so nach Hause의 niemals를 앞의 여러 번역본에서처럼 (과거에) “~한 적이 없다”로 번역하는 대신에, (미래에) ”결코 ~하지 못한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되돌릴 수 없구나”라는 자신의 희망 없는 낭패스러운 처지에 대한 화자의 한탄이 선명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끝내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번창하는 내 진료소는 망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치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그는 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집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 있다. 로자는 그의 희생양이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이는 벌거벗은 채, 극도로 불행한 시대의 서릿발을 맞으며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적인 말들과 함께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모피 외투는 마차 뒤에 걸려 있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그리고 움직이는 환자들의 무리 가운데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다! 속았어! 한번 잘못 울린 야간 벨 소리에 따라나섰다가 – 다시는 되돌릴 수 없구나.(157-158)


이 작품에서 마차와 말은 의사의 삶의 외적 수단과 그것을 이끌고 가는 내적 원동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의사라는 그의 직업, 즉 삶의 외적 수단이 현세적이고, 현실적임에 반해, 그 외적 수단을 추동하며 이끌어가는 그의 본능적 원초적인 힘은 세속적, 현세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김태환은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적인 말들”이라는 번역으로 이러한 마차와 말의 모순적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5) 박종대 역의 <시골 의사>(2022)

가장 최근의 번역으로서 박종대 역의 <시골 의사>를 보자. 역시 맨 마지막의, 화자의 탄식을 들어보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코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창 잘나가던 의사 자리를 잃었다. 후임자가 내 자리를 훔쳐갔다. 그러나 소용없다. 나를 대체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 집에서는 그 역겨운 마부 놈이 난동을 부리고, 로자는 그놈의 제물이 된다.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늙은 몸은 벌거벗은 채,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를 타고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 속을 정처 없이 떠돈다. 외투는 마차 뒤쪽에 걸려 있다. 거기까지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자 놈들 중에서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는다. 속았어! 속았어!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에 한 번 응한 것뿐인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95)


박종대 역시 의사의 귀가 불가능성을 “결코 ~하지 못한다”로 번역한다. 마차와 말의 경우,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세상의 마차”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대구(對句)는 가령 이 세상의 것과 이 세상 아닌 것의 대구에 비해, 저 세계, 즉 죽음을 거치고 난 뒤의 세계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김현각의 ‘속된-속되지 않은’의 대구가 작가 자신의 현실적인 직업 선택과 내적 욕구 사이의 모순에 찬 삶과 좀 더 호응하지 않는가.


3. 평가와 전망

본 번역 비평에서는 카프카의 단편 <시골의사>의 번역본 5종을 비교해 보았다. 비평적 쟁점은 첫째, Rosa가 가지는 이중의미, 즉 여성의 이름으로서의 의미와 색깔의 명칭으로서의 의미관계가 번역에서는 어떻게 암시되고 일깨워지는지, 혹은 완전히 포기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쟁점은 전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이자 갈무리로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단락이었다. 화자의 귀가 여부, 그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의 변동, 그리고 그의 활동의 외양과 내면의 모순성이 어떻게 번역으로 드러나는지에 주목해 보았다.

문학 텍스트에서 강하게 암시, 환기되는 연관성이 번역에서 묻히거나 무시되거나, 혹은 포기되는 일은 다반사다. ‘우리들 의식의 얼어붙은 얼음을 깨뜨리는 도끼’로서의 책을 추구했던 카프카이기에 그의 번역자도 ‘도끼’ 같은 언어를 찾아야 할 상황을 자주 만날 것이다. <시골의사>의 여러 번역본은 한 단어, 하나의 어휘가 어떻게 텍스트의 중심 이슈를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목록

김현각(1959): 마을 醫師. 수문사.
이덕형(1973): 시골 醫師. 문예출판사.
최준환(1989): 마을의 의사. 풍림출판사
김태환(2015): 시골 의사. 을유문화사.
박종대(2022): 시골 의사. 책세상.

배정희


바깥 링크

1. Projekt-Gutenberg 보기

  1. 독일어 원문은 구텐베르크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디지털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https://www.projekt-gutenberg.org/kafka/erzaehlg/chap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