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지기 틸 (Bahnwärter Thiel)"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AU0070}}의 노벨레 {{A01}} <!--작품소개-->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노벨레로 1888년에 당시 자연주의를 대변한 잡지 <디 게젤샤프트>에 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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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0070}}의 노벨레 | {{AU0070}}의 노벨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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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tle =철로지기 틸 (Bahnwärter Thi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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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a1 = [[:분류:하우프트만, 게르하르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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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4}}<!--번역비평--> | {{A04}}<!--번역비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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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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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존재는 일찌감치 알려져서, 1927년 <現代評論>에 염형우가 번역한 <한넬레의 昇天>이 실렸고 1929년 동아일보에 <沈鍾>이 소개되었다. 주요 작품이 본격적으로 번역된 것은 1950년대로, 1955년에 작가의 문학적 본령이라 할 희곡 <해뜨기 전>, <한넬레의 승천>, <침종>이 <(요약) 세계문학전집> 제3권에 발췌 번역을 포함한 요약본으로 실렸다. 그리고 1959년에 노벨레 <철로지기 틸>과 <쏘아나의 異端者>가 완역으로 출판되었다. 강두식이 이 두 편의 노벨레를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한 것으로, 이후 <철로지기 틸>은 지명렬, 이관우, 오용록, 김형국 등 다수의 번역자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하우프트만의 희곡 작품들이 두 명 이하의 번역자에 의해서 번역된 데 비해서, 노벨레인 <철로지기 틸>은 확인되는 번역자의 이름이 열 명에 가깝고 번역 종수는 약 30회 정도에 이른다. 번역과 수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철로지기 틸>이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작품 중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힌 대표작인 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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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두식이 번역한 <선로지기 티일>은 1959년 4월에 출판된 <쏘아나의 異端者 – 外 1 篇>에 수록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이영구의 번역이 출판되었는데, 이 두 번역은 한 손에서 번역된 듯 내용이 같고 두 번역 간에 있는 미미한 차이는 출판을 위한 교열작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1964년에 신구문화사에서 출간된 <노오벨상문학전집>에 수록된 지명렬 역의 <鐵路지기 틸>이 두 번째 번역이다. 지명렬은 이 번역을 수정하여 1966년에 <線路지기 티일>의 제목으로 계몽사에서 편찬한 <세계단편문학전집 독일편>으로 출판하였고, 1968년에 다시 소소하게 손을 보고 제목을 <鐵路지기 틸>로 재수정하여 성문각 출판사의 <독일명작선집>으로 출판하였다. 지명렬의 번역은 1970년대에 <鐵路지기 틸>과 <線路지기 틸> 등으로 제목을 달리하면서 계몽사, 삼진사, 삼중당 등 대형출판사에서 기획한 ‘세계(단편)문학’류 총서로 여러 차례 출판되었다. 실물이 확인된 번역은 십여 종이며 역자의 이름이 없이, 혹은 다른 역자의 이름으로 출판된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늘어 지명렬의 번역이 번역 종수로는 최다이다. 지명렬의 1968년 번역 이후로는 근 사십 년 동안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았다. 1968년에 김윤성의 번역이 있으나 강두식의 번역과 같고, 1971년에 송영택의 번역 <건널목지기 틸>이 출판되었으나 지명렬이 1966년에 출판한 번역과 거의 같아서 표지갈이로 의심된다. 새로운 번역은 2000년대에 들어서 나왔다. 2005년에 이관우가 번역한 <선로지기 틸>이 편역서 <붉은 고양이>에 수록되었다. 이 책은 역자가 독일 문학사조를 대표하는 단편 10편을 선별하여 번역하고 편집한 것인데, 2013년에 출판사를 옮기고 표제를 바꿔서 <독일대표단편문학선. 금발의 에크베르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오용록의 번역은 <건널목지기 틸>이라는 제목으로 역자가 펴낸 <독일단편문학산책>에 수록되었다. 가장 최근의 번역인 김형국의 번역 <철로지기틸>은 2018년 테오도르 슈토름의 작품 <임멘 호수>와 함께 묶여 <임멘호수·철로지기 틸>로 출판되었다. 국내 초역인 강두식의 번역부터 최근 번역인 김형국의 번역에 이르도록 역자들은 이 작품의 저본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 <ref>참고로 이 작품이 독일에서 1888년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한 구절이 “ein fruchtbares Wetter”였는데 판본이 바뀌면서 “ein furchtbares Wetter”로 수정되었다. 강두식의 번역과 지명렬의 1964년 번역은 독일어 초판을 저본으로 삼았던 듯, “이 날씨면 풍년...”으로 번역했다. 이후 지명렬의 1966년 번역부터는 저본이 개정 판본으로 바뀐 듯 “끔찍한 날씨”로 번역되고 있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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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어 원제목의 Bahnwärter는 선로지기, 철로지기, 건널목지기 등으로 번역되었고 한자가 병기되기도 했다. Thiel은 번역이 출판된 시기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서 티일, 틸 등으로 쓰였다. 현재는 선로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기차가 다니는 길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흔히 쓰이는데, 하우프트만의 작품이 발표되었던 1888년에 기차는 곧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면서 철로 만든 운송 기계를 가리켰고, 기차가 강철로 만든 궤도로 달리는 것이 이 운송 기술을 특징지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는 해당 번역본의 제목을 특정하지 않을 시 <철로지기 틸>을 표준제목으로 제안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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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개별 번역 비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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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노벨레인 <철로지기 틸>은 독일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술자가 전지적 시점에서 처참한 기차 사고와 잔혹한 가족 살해의 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며, 틸의 직장인 철길의 초소를 둘러싼 송림의 자연을 세밀히 묘사하고, 기차 사고 장면에서 서술의 시간과 피서술 시간이 일치하는 ‘순간묘사법 Sekundenstil’을 사용하는 등, 이 작품은 자연주의 문학에 전형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작품에는 자연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다수의 특징이 있다. 주인공 틸은 환경에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를 규정하는 환경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내적 자연 Natur’이라는 점에서 자연주의의 범주를 벗어난다. 또한 서술자는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지만 동시에 자연의 색채, 음향과 분위기 그리고 기차는 상징적인 의미로 충만하다. 숲의 고요 속에 침잠해 있으나 질주하는 기차에 의해 발현되는 파괴적인 ‘자연의 마력’과 무심하게 행동하는 틸의 내면에 응고된 채 기차 사고를 도화선으로 폭발하는 길들지 않는 ‘인간의 자연’, 즉 야수적 본능의 섬뜩한 위력이 병렬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소위 ‘철저한 자연주의 der konsequente Naturalismus’ 작품이 오늘날 대부분 잊히고 말았는데 <철로지기 틸>이 여전히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명성을 이어가는 것은 공교롭게도 저 자연주의 사조로 환원되지 않는 문학적 요소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고려하면서 강두식의 초역, 번역 종수가 최다인 지명렬의 번역,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이관우, 오용록, 김형국의 번역을 살펴보기로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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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강두식 역의 <선로지기 티일>(19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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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두식의 번역은 국내 초역이라는 의미와 함께 하우프트만의 문학세계를 단적으로나마 일별할 기회를 마련한 의의가 있다. <철로지기 틸>은 독일어권 작가들의 단편들과 함께 편집되어 독일단편문학류로 출판되거나, 타 언어권의 작품들과 편집되어 ‘세계문학’ 류의 형태로 나왔기 때문에, 이 작품이 작가 하우프트만의 다른 작품과 함께 편집된 것은 현재까지도 강두식의 책이 유일하다. 강두식의 번역은 초역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정확도에 있어서 나중에 나오는 번역들과 견주어 뒤지지 않으며 가독성의 측면에서도 입말을 살려가며 원문을 전달한다. 일례로 상당히 자유롭게 의태어와 의성어를 번역에 첨가하는 경향을 꼽을 수 있다. 독일어 원작 <ref>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Hauptmann, Gerhart(1996): Bahnwärter Thiel. In: Gerhart Hauptmann. Sämtliche Werke. Vol. 6. Berlin: Propyläen Verlag.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ref>에서 서술자는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일상적인 자연현상을 특별한 사건으로 포착하여 자세히 그리고, 기차가 달려오고 눈 깜짝할 새 지나가거나 급정거하는 작동을 동영상을 찍듯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grollen, branden, überfluten, vibrieren, summen, keuchen, brausen, schnauben, sausen, dröhnen, knarren, quietschen, schnarren, rasseln, klirren 등 소리와 움짐임에 관련된 동사들이 정말로 많은데, 역자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해서 이 동사들이 불러일으키는 청각적 소리와 시각적 운동을 전달한다. 강두식의 경우는 의성 부사와 의태 부사를 자유롭게 동원하여 원작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기차가 다가오는 것을 기차 바퀴가 구르는 “진동과 우르렁거리는 소리”, “둔하게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휘몰아쳐 오는 기마대의 말발굽 소리”(강두식, 143)로 표현하고, 눈 깜짝할 새 다가와서 순식간에 지나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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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s>칙칙거리는 숨찬 소리</ins>와 <ins>우렁찬 소리</ins>는 휘몰아치듯 멀리로부터 공중을 타고 크게 울려 왔다. 그리고는 별안간 적막이 깨어졌다. <ins>미칠 듯한 뇌성</ins>과 광폭이 공간을 채우고 <ins>선로는 휘고 땅은 떨렸다</ins> – 격렬한 기압 – 먼지와 김과 연기와 구름 그리고 <ins>세찬 콧김</ins>을 내뿜으며 괴물은 지나가 버렸다.(강두식, 143) (이하 모든 밑줄 강조는 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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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문에서 서술자는 기차를 기계라기보다는 생명체처럼 “Ungestüm”(53)으로 일컫는데 강두식은 “괴물”로 번역하고 숨찬 소리를, 우렁차게 울리며, 세차게 콧김을 내뿜는 존재로 옮긴다. 나아가 자연현상, 이를테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틸의 초소 방향으로 다가오는 천둥소리는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와 유사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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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리고 이 순간에 국경 밤 하늘의 아주 먼 곳으로부터 <ins>우레와 같은 소리</ins>가 들려 왔다. 처음에는 <ins>둔하고 나직하게 쿠르릉거리고</ins> 있었는데 다음에는 <ins>쿵쾅거리는 짧은 노도</ins>가 되어 점점 가까이 굴러와서는 얼마 아니해서 크게 되어 거대하게 <ins>쾅하고 울리어</ins> 드디어는 주위 일대에 가득 차서 <ins>넘치고 우짖고 진동하고 와르르하면서 터졌다.유리창은 덜커덩거렸고 대지는 진동했다</ins>.(강두식, 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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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짧은 노도”로 번역된 독일어 원문은 “in kurzen, brandenden Erzwellen”(52)으로 여기서 서술자는 천둥이 가까워지면서 시시각각 소리가 커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쇠를 뜻하는 Eisen과 같은 Erz를 쓴다. 기차라는 기계-사물은 자연의 생명체로, 자연현상은 기차를 연상시키는 사물 용어를 써서 어휘의 교차적인 사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철로지기 틸>에서는 자연과 기계가 대조적이거나 대척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로 합쳐져 천둥(원작에는 번개도 포함)과 기차는 그 압도적인 소리와 최강의 진동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기차가 밤의 어둠을 가르며 폭우 속에 달려오는 장면을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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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wei rote, runde Lichter durchdrangen wie die Glotzaugen eines riesigen Ungestüms die Dunkelheit. Ein blutiger Schein ging vor ihnen her, der die Regentropfen in seinen Bereich in Blutstropfen verwandelte. Es war, als fiele ein Blutregen vom Himmel.(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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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둥근 불 두 개가 거대한 괴물의 눈깔과도 같이 어둠을 뚫고 빤짝이는 것이 보였다. 피와 같은 한 줄기의 빛이 그 불에서 이 쪽을 비치고, 그 불빛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핏방울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마치 피의 비가 하늘로부터 내리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강두식, 1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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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로지기 틸>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회자되는 이 장면에서 강두식의 번역은 첫 문장을 “~보였다”로, 헤드라이트의 빛이 앞서가는 것을 “이 쪽을 비추고”로 옮겨서, 붉은빛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을 채우며 달려오는 기차의 질주를 틸의 시선에서 보이는 감각적인 지각으로 만든다. 원작에서는 서술자가 객관적인 위치에서 기차의 출현을 묘사한다면, 강두식의 번역본에서는 서술자의 시선과 틸의 시선이 같아져 독자는 틸의 눈으로 이 장면을 읽게 되고 틸의 감정선을 따라서 전율과 공포를 함께 느끼게 된다. | ||
+ | 강두식의 번역은 의성 부사와 의태 부사를 꼭 필요치 않아도 사용하고 <ref>강두식의 번역문인 “삽은 지직 소리를 내면서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습기찬 흙덩어리는 푹석 파헤쳐져서 대굴대굴 덩어리가 되어 흩어졌다.”(강두식, 144)에는 이에 해당하는 원문인 “Die Spaten schnitt knirschend in das Erdreich; die nassen Schollen fielen dumpf zurück und bröckelten auseinander.”(50)에는 없는 의태 부사가 첨가되어 있다.</ref>, 원작의 ‘생략’(Ellipse) 문체에 주어와 술어를 보충하며 <ref>일례로 “An die Arbeit.” 라는 생략체의 체험화법 문장을 “자 어디 일을 한 번 해 볼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강두식, 144)라고 주어와 술어를 첨가하여 문장을 다시 쓴다.</ref>, 자국화의 경향을 띠기도 한다. 강두식은 틸이 마을의 어린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쳐준다는 의미의 문장인 “[...]und buchstabierte mit den Kleinen a-b-ab, d-u-du [...].”(44)를 “가-나-가나, 다-라-다라 하고 철자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강두식, 136)로 옮기는데, <ref>지명렬은 1964년의 번역에서는 원문의 이 부분을 생략하고 “작은애들에게는 글자의 발음이나 철자법 등의 연습도 시켰다”(36)로 번역했다. 하지만 1966년도의 번역에서는 “... 어린아이들에게는 아아베 아아뿌, 데에우 두 등등 철자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108)고 음차 번역을 했다. 2000년대 이후의 번역에서는 “아-베-아프, 데-우-두”(이관우, 144), “아(a)-베(b)는 압(ab), 데(d)–우(u)는 두(du)” (오용록, 220), a-b-ab, d-u-du(김형국, 81) 등 원어를 그대로 옮기는 경향을 띤다.</ref> 이렇듯 독일어 원문을 한국 독자에게 가깝게 가져오는 일련의 번역전략은 독일어의 ‘낯섦’을 친숙함으로 바꾸려던 1960년대 번역에서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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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지명렬 역의 <鐵路지기 틸>(1964), <線路지기 티일>(19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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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년에 출판된 <鐵路지기 틸>에서 역자인 지명렬은 하우프트만이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소개되었고, 그의 대표작 <외로운 사람들>이 상연된 바도 있었다. 1962년 하우프트만 백년제에는 한국 독일문학회 주최로 <침종>이 시공관에서 별 효과는 없었으나 상연만은 보았다.”(지명렬 1964, 61)는 해설을 덧붙여 1960년대에 하우프트만이 한국 독어독문학계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알린다. 또한 <철로지기 틸>이 “오늘도 대학 강단에서 빈번히 강론되고 있다“(지명렬 1964, 63)고 하여, 이 작품이 대학교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학습하는 자료라는 정보도 준다. 대학 내에서 수용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이었음은 2000년대에 번역한 이관우와 오용록의 역자 해설에서도 찾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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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렬의 번역은 한자어가 많고, 한자의 병기도 많아서 문어체로 기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구어체를 살리는 강두식의 번역과 비교하면 선명히 드러난다. 토비아스를 친 기차가 떠나는 대목을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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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객전무가 재차 호루라기를 삑 분다 – 삑 – 기관차의 연통으로부터 흰 쉭쉭거리는 김을 토해 내고 그 <ins>쇠심줄</ins>을 뻗친다. <ins>몇 초</ins>가 지나자 급행열차는 펄펄 연기의 <ins>깃발</ins>을 휘날리면서 <ins>두 배</ins>의 속력으로 숲속을 휘몰아쳐 간다.(강두식, 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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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객주임이 다시 한번 호루라기를 분다. 「삐 -」 기관차가 연통에서 칙칙 소리내며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ins>철건(鐵腱)</ins>을 내디딘다. <ins>수삼초(數三秒)</ins>가 지나서 급행열차는 <ins>기폭(旗幅)</ins>같은 연기를 바람에 나부끼며 속도를 <ins>배가(倍加)</ins>하여 숲을 뚫고 돌진한다.(지명렬 1966, 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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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렬의 번역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빨간색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철로지기 틸>에는 붉은색, 검은색, 흰색, 초록색 등 상당량의 색채 이미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붉은색은 여러 차례 나타난다. 틸의 머리칼은 빨간색이고, 토비아스는 “불타는 듯 빨간색 머리칼 brandrote Haare”을 갖고 있다. 틸은 토비아스를 위한 빨간색 저금통장을 애지중지하며 품고 다닌다. 토비아스가 레네에게 당하는 학대를 가리키는 첫 신호도 토비아스의 붉은 뺨에 난 흰 손가락 자국이다. 기차 사고 장면에서 틸이 기계적으로 들어 올리는 깃발도 붉은색이며, 치명상을 입은 토비아스는 붉은 기에 감싸인다. 틸의 광기가 분출하여 둘째 아들의 목을 조를 때 그의 상태는 “붉은 안개가 그의 감각을 둘러쌌다. Ein roter Nebel umwölkte seine Sinne.”(63)로 표현된다. 붉은 색채는 폭우와 함께 돌진하는 기차를 묘사한 대목에 나오는 “핏방울”, “피의 비”, 틸의 환상에서 민나가 안고 있는 핏빛 덩어리, 기차에 친 토비아스의 검붉은 피, 피를 깔고 누운 레네의 부서진 머리통 등 피의 이미지와 겹치기도 한다. 요컨대 붉은 색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자연주의적 글쓰기인 한편, 처참한 죽음에 대한 상징이자 끔찍한 가족 살해를 암시하는 의미작용을 한다. 일몰과 일출도 붉은색의 스펙트럼 안에 있다. <철로지기 틸>의 독일어 원작은 30쪽 정도 분량으로, 길지 않은 단편에 수 차례 일출과 일몰이 묘사되는 점도 특기할 만한데, 게다가 그때마다 붉은 색채가 주조를 이룬다. 아침 햇살은 양치류에 “열기를 불어넣으며 mit Glut behauend”, 이른 아침 이슬은 “Feuertau”로 표현되고, 저녁의 석양은 “das rote Feuer des Abends”로, 석양이 저무는 것은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쏟아부었다. Die Sonne goss ihre letzte Glut ...”(62)로 표현된다. 그 한 예가 일몰의 광경인데 지명렬의 번역으로 읽어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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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구름덩어리의 가장자리 아래로 얼굴을 내밀고, 검은 바다 같은 초록색의 나무 끝 속으로 지려고 하던 태양은 <ins>진홍색 빛 줄기</ins>를 숲 위에 내리 쏟고 있었다. 철로 둑 저편에 원주(圓柱)같은 소나무들은 마치 저편에서 <ins>불이 붙고 있는 강철같이 빨갛게 달아 올라</ins>왔다. | ||
+ | 선로도 <ins>빨갛게 달기</ins> 시작하여 붉은 뱀같이 보였으나, 그것이 제일 먼저 꺼져 갔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ins>이글이글 타는 불</ins>이 느릿느릿 땅바닥에서 위로 올라갔다. 우선 소나무 기둥을 다음에는 수관(樹冠)의 대부분을 싸늘하게 소멸하는 빛 속에 남겨두고, 마지막에는 다만 나무 끝 제일 가장자리에만 아직도 <ins>붉은 색</ins>의 희미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장엄하게 숭고한 광경이 끝났다.(지명렬 1964, 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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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장면을 그리는 원문에도 “Ströme von Purpur”, “glühten”, “die Glut”, “feurige Schlange”, “rötlich” 등 붉은빛이 주조를 이룬다. 사전적으로 잉걸불을 뜻하는 Glut는 불과 열기 등 촉감과 관련된 어휘면서 붉은색의 시각과 관련된 어휘인데, 역자에 따라서는 열기의 촉감적 의미를 살리기도 한다. 일례로 오용록은 “철둑 저편의 소나무 기둥 아케이드는 안에 불이 붙었는지 쇠처럼 이글거렸다./ 선로 또한 지글거리는 뱀처럼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맨 먼저 식었다.”(오용록, 226)로 번역하여, 더운 열기의 분위기를 살리고 색감의 정조를 약화시켰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명렬의 번역은 “진홍색”, “빨갛게 달아”, “붉은 뱀”, “붉은 색” 등 색채의 시각적 감각을 크게 강조한다. 지명렬은 일몰과 함께 떠오르는 달을 가리키는 “riesiege purpurglühende Kugel”의 자줏빛을 “빨갛게 타는 거대한 공”(지명렬 1964, 55)으로 번역하는 등 일관되게 “붉은~”, “빨간~”으로 표현한다. 원작의 붉은색 계열의 다채로운 변주를 빨갛다고 옮기는 번역은 충분히 섬세하지 못해 보일 수 있지만,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빨간색이 텍스트의 표면으로 돌출되어 오히려 원문의 회화적 느낌이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된다. 다만 그 효과가 만만치 않아서 원작의 느낌이 인상주의적인 풍경이라면, 맹렬한 빨간색이 주조를 이루는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표현주의적인 모습마저 감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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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렬은 1964년의 번역을 수정하여 1966년에 계몽사에서 출판한 <세계단편문학전집 독일편>에 묶었는데, 이 책의 편집자인 강두식의 영향이었는지 제목을 <線路지기 티일>로 바꾸었다. 이 번역본은 1964년의 번역을 전체적으로, 하지만 소소하게 다듬었는데, “자 그러면 일을 시작해 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지명렬 1964, 41)라고 번역했던 것을 “자 그러면 작업개시.”(지명렬 1966, 115)라고 생략문을 살렸고, 틸이 아이들에게 철자를 가르쳐 주는 문장을 1964년에는 생략했다가 1966년에는 음차 번역을 했다. <ref>각주 5) 참조.</ref>여기서 원문을 직역하려는 역자의 경향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촛불”을 “봉랍”으로, “나무끝 가지”를 “수관(樹冠)”으로(지명렬 1966, 131) 바꾸는 등 한자어 사용을 늘리면서 동시에 명사의 사용도 늘려서 문어체의 느낌을 강화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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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지명렬 역의 <鐵路지기 틸>(19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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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명렬은 1968년에 제목을 다시금 <鐵路지기 틸>로 바꾸어서 역자가 직접 편집하고 성문각에서 출판한 <獨逸名作選集>에 수록했다. 이 번역은 역자가 번역 의도를 자세히 설명한 드문 경우인데, 역자는 일차적인 독자 대상을 일반 문학 애호가들보다는 독일문학 전공자로 상정한다. 이에 따라 번역전략도 “원문에 충실을 기하고, 원문에 단어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며 아름다운 번역은 이차적인 문제로 삼았다”고 밝힌다. 원문에 충실하겠다는 번역의 의지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토비아스가 죽는 기차 사고 장면인데, 역자는 사고가 발생하는 부분을 원문과 다르게 편집하는 방식으로 되려 원작의 순간묘사법을 충실히 전달하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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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로지기 틸>은 시간순으로 서술되지만, 이야기되는 시간의 단위가 다르다. 1장은 10년의 세월을, 2장은 6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늦은 오후 시점까지 하루를 이야기한다. 1장과 2장을 합친 것보다 훨씬 긴 3장은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화요일 아침까지의 이야기로 두 번의 휴지부가 세 토막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토막마다 이야기는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짧아진다. 이야기되는 시간이 년 단위, 일 단위,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짧아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과의 차이가 줄어들고, 토비아스가 사고를 당하는 순간은 서술의 시간과 피서술의 시간이 겹치는데, 역자는 기차 사고의 순간을 서술하는 한 문단을 여러 문단으로 쪼개었다. <ref>원문은 다음과 같다. Der Zug wurde sichtbar – er kam näher – in unzählbaren, sich überhastenden Stößen fauchte der Dampf aus dem schwarzen Maschinenschlote. Da: ein – zwei – drei milchweiße Dampfstahlen quollen kerzengerade empor, und gleich darauf brachte die Luft den Pfiff der Maschine getragen. Dreimal hintereinander, kurz, grell, beängstigend. Sie bremsen, dachte Thiel, warum nur? Und wieder gellten die Notpfiffe schreiend, den Widerhall weckend, diesmal in langer, ununterbrochener Reihe.(58)<ref> 이는 원작대로 하나의 문단으로처리했던 역자의 1964년의 번역 및 1966년의 번역과 차별되는 한편 다른 역자들의 번역과도 뚜렷이 구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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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차가 눈에 보였다. - 차차 접근해 왔다 – 기관차의 검은 연통으로부터 수증기가 무수히 성급하게 진동(震動)하며 칙칙 소리내고 있었다. | ||
+ | 그러자 한 번 – 두 번 – 세 번 밀크같이 흰 수증기의 물기둥이 꼿꼿이 바르게 솟아올라가더니 곧 이어서 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공중을 따라 울려왔다. | ||
+ | 「세 번 계속해서 짧게 날카롭고도 불안스럽게 브레이크를 걸고 있구나? 도대체 왜 그럴까?」하고 틸은 생각했다. | ||
+ | 그러자 또다시 비상 기적이 아우성을 치듯이 날카롭게 울려 반향(反響)을 일으키면서 이번에는 중단하지 않고 길게 울렸다.(지명렬 1968, 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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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대목은 순간묘사법의 예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역자는 기차 사고에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장치를 마련하듯 원문에 개입해서 한 문장을 한 문단으로 변형한다. 이로써 사고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보고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알려주고 독자가 짧은 문단들에 의문과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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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이관우 역의 <선로지기 틸>(20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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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오용록 역의 <건널목지기 틸>(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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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관우가 2005년에 번역한 <선로지기 틸>과 오용록이 2013년에 번역한 <건널목지기 틸>은 번역 의도와 기획에 있어서 비교점이 있다. 두 번역자가 공통적으로 일반 독자에게 독일문학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대학교에서 전공교재 및 교양강좌 교재로 사용되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번역하였고, 독일문학사에서 중요한 단편들을 선별해서 번역하고 엮었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 작품설명을 첨부하였다. 두 역자가 작품 <철로지기 틸>을 해설하는 기조도 유사한데, 골똘히 들여다보면 실제 번역전략에서는 차이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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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역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인물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주요 대목들에 다르게 접근한다. 틸은 병약한 민나가 산후에 죽자 토비아스를 키우기 위해 레네와 결혼하는데, 레네의 성정은 “eine harte, herrschsüchtige Gemütsart, Zanksucht und brutale Leidenschaftlichkeit”(38)로 설명된다. 번역해 보자면, 그녀는 거칠고 지배욕이 강한 성정을 갖고 있고, 드잡이질 좋아하고, 포악스러운 열정의 소유자이다. 강두식과 지명렬은 brutale Leidenschaftlichkeit를 “난폭한 정욕”(강두식, 129), “야수적인 정욕”(지명렬 1964, 31)으로 번역했고, 오용록은 “동물적인 정욕”(오용록, 215)으로 번역하여, 이 명사의 의미에서 성(性)적인 의미소를 추출한다. 원작에서는 레네가 틸을 유혹하지 않은 채 그저 틸이 레네에게 저항하기 어려운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이기에, 레네의 성격에 “정욕”을 포함한 것은 역자들이 다시쓰기를 한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관우는 “무자비한 격정”으로 옮긴다. “격정” 또한Leidenschaftlichkeit의 의미에 속하며 레네가 무척 다혈질적인 인물임을 가리키지만, 원작에 들어있는 의미작용을 상당히 순화시켜서 성적인 뉘앙스가 흐려지는 효과를 낳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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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틸은 죽은 아내인 민나와 영적으로 교류하면서 레네에게 육체적으로 매여있는데, 이 내적 분열은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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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r, der mit seinem ersten Weibe durch eine mehr vergeistigte Liebe verbunden gewesen war, geriet durch die Macht roher Triebe in die Gewalt seiner zweiten Frau und wurde zuletzt in allem fast unbedingt von ihr abhängig.(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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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대목은 틸이 헤라클레스처럼 건장한 체구를 가진 사내임에도 레네에게 매여 사는 근원이 그의 “die Macht roher Triebe”, 즉 틸의 안에 있는 길들지 않은 성적 충동의 힘에 있다고 알려준다. 이관우의 번역과 오용록의 번역은 다음과 같이 해당 대목을 옮기고 있다. | ||
+ | |||
+ | 첫 번째 부인과 좀 더 심화된 정신적 사랑으로 결합되었던 그는 거친 충동의 힘에 의해 두 번째 부인의 위력 속으로 빠져들어 결국 모든 면에서 무조건적으로 그녀에게 종속되었다.(이관우, 1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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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째 아내와 정신적 사랑으로 결합되었던 틸은 육욕 때문에 둘째 마누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결국 모든 면에서 거의 절대적으로 그녀에게 쥐여살았다.(오용록, 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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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관우의 번역에서는 “거친 충동의 힘”으로, 오용록의 번역에서는 “육욕”으로 옮겨졌는데, 여기서 두 번역간 상이한 번역전략을 읽을 수 있다. 이관우는 원문의 어휘들을 빠트리지 않고 옮기되, Triebe를 ‘충동’으로 전달하여 어떤 종류의 충동인지 열어놓는다. 오용록은 ‘육욕’이라고 옮겨서 원작의 문장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성욕의 의미를 강화하고, 틸의 종속을 그의 성 본능에 귀착시킨다. <ref>레네가 탈의하는 것을 틸이 보면서 흥분하는 부분에서 틸의 얼굴은 “das von Leidenschaften verzerrte, erdfarbene Gesicht”(55)가 된다. 이 구절을 이관우는 “격앙되어 일그러진 흙빛 얼굴”(이관우, 159)이라는 하여 감정의 파고로 옮기는데, 오용록은 “정욕으로 이지러진 남편의 흙빛 얼굴”(오용록, 232)로 감정의 종류로 전달한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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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네는 말하자면 농촌의 팜므 파탈로 그녀의 튼튼한 사지와 육덕진 몸에서 틸이 제압할 수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힘이 뿜어져 나와 그를 옥죄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틸의 종속적인 상황은 그가 토비아스가 학대당하는 현장을 보면서도 외면하는 순간에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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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inen Augenblick schien es, als müsse er gewaltsam etwas Furchtbares zurückhalten, was in ihm aufstieg; dann legte sich über die gespannten Mienen plötzlich das alte Phlegma, von einem <ins>verstohlnen begehrlichen Aufblitzen der Augen</ins> seltsam belebt.(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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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대목은 울고 있는 토비아스를 슬쩍 본 틸이 속에서 올라오는 끔찍한 뭔가를 억지로 내리누르는 듯 보였으나, 토비아스를 혼내느라고 잔뜩 흥분한 레네의 몸으로 시선이 옮겨간 순간 흘끔거리며 훔쳐보는 두 눈에 욕망이 번득대는 것을 그리고 있다. 이관우 번역과 오용록 번역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 ||
+ | |||
+ | 한 순간 그는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무시무시한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음에 틀림없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돌연 팽팽하게 긴장된 표정 위에 <ins>오래도록 몸에 밴 덤덤함이 자리 잡았는데</ins>, 그것은 <ins>감춰진 욕망의 눈빛으로 기이하게 생기</ins>를 띄었다.(이관우, 148) | ||
+ | |||
+ | 그는 잠시 속에서 치미는 무서운 감정을 억누르는 듯했는데 이내 <ins>그의 눈에는 야릇하게 욕망의 빛이 감돌았다</ins>. 어느새 긴장된 얼굴이 누그러지고 그곳에 이전의 <ins>점액성 기질</ins>이 내려앉았다.(오용록, 224) | ||
+ | |||
+ | 이관우는 원문에 세심하고 어휘와 통사구조를 살리는 번역을 한다. 다만 틸의 눈빛에 번득이는 욕망을 눈 속으로 감춘다. 오용록의 번역은 번역문의 길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원문의 어휘를 지워가는 번역으로 원문의 통사구조도 변형한다. 틸의 성격을 나타내는 “Phlegma”를 “점액성 기질”로 글자번역을 한 것도 원문에 충실했다기보다는, 되려 역자가 원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지는 자유를 허락했다고 보인다. 다만 원문의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야릇하게”라는 부사로 대치(代置)하여 욕망의 눈빛을 틸의 눈 안에 넣음으로써 원문에 담긴 속뜻을 끄집어낸다. 이렇듯 오용록의 번역은 곳곳에서 텍스쳐를 조밀히 구성하는 요소들을 거칠게 다루는 한편, 텍스트에 담긴 정보를 끌어내는 데 집중하는 인상을 준다. 이관우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에 밀착해서 어휘를 놓치지 않고 문장구조를 살리기 때문에 원문의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전달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틸이 밤근무를 위해서 직장으로 가는 길에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깊숙하게 나는 소나무 숲”의 풍경은 여느 번역보다 서정적인 울림을 갖는다. <ref>“육중한 우윳빛 하늘은 나무꼭대기 위로 깊숙이 내려앉아 있었다. 까마귀 떼는 쉬지 않고 깍깍 소리를 지르면서 잿빛 공기속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검은 물웅덩이들은 길의 깊게 패인 곳들을 채우고 흐릿한 자연을 더욱 흐릿하게 반사시켰다.”(이관우 145)</ref> 또 틸이 토비아스와 함께 전신주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죽은 아내인 민나의 소리를 구별하는 부분에서는 틸이 품고 있는 종교적인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을 잘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과 함께 아쉬운 점도 있는데, 틸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뜻의 원문인 “Dann wurde es Nacht.”(61)를 “그리고는 밤이 되었다.”(이관우, 169)라고 글자번역을 한 것이다. 중상을 입은 토비아스를 실은 기차가 지나갈 때 틸은 시야가 흐려졌고 으깨진 몸으로 피 흘리는 토비아스의 환영을 보고 종국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 맥락에서 강두식은 위 문장을 “그리고는 머리가 아찔하고 앞이 캄캄해졌다.”(강두식,157)로, 지명렬은 “그리고 나서 눈앞이 캄캄해졌다.”(지명렬1964, 51)로 번역했다. 이 두 번역은 “Nacht”를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옮겨 원문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관우의 번역뿐 아니라 오용록과 김형국의 번역은 “그리고 밤이 되었다.”로 옮겼는데 이는 이야기의 시간 흐름을 헝클어트리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기차 사고는 한낮에 일어났고, 눈앞이 캄캄해졌던 틸이 (내용상 이는 그가 실신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6월의 “뜨거운 모래” 위에 누워있는 걸 발견하는데, 그런 후에도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석양빛이 비춰든다. <철로지기 틸>의 서술자는 정확히 시간을 제시하여 틸이 아들의 주검 앞에 혼절하고 이웃 사람들이 살해의 현장을 발견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저녁노을 – 붉은 달 – 창백한 달 – 깜깜한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야기한다. “Nacht”를 사전적인 뜻으로 밤으로 옮기면 사건에 윤곽을 부여하는 틀 시간이 흐트러지고 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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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김형국 역의 <철로지기 틸>(20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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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국의 번역에서는 역자의 작품 해석이 번역의 실제에도 반영된 점이 특징적이다. 역자는 작품의 일차 독자이자 해석자로 <철로지기 틸>의 문학적 의미를 “꿈, 환상, 환영, 회상, 기억”(김형국, 140) 등이 틸의 일상과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서 찾는다. 그래서인지 김형국의 번역에서는 틸의 현실에 그의 환상이 침투되어 있다. 틸이 토비아스가 당하는 학대를 외면해왔음을 깨닫고 자책하는 장면에서 그는 과거에 “그런 상태에서 저질렀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일 all das Haarsträubende, welches er in diesem Zustand begangen haben sollte.”(51)을 떠올리는데 김형국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 ||
+ | |||
+ | 동시에 그는 마치 죽은 자의 2년이나 되는 잠과 같은 수면상태에서 깨어나 차후 그런 상태에서 저지르게 될 소름끼치는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김형국, 9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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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문에서는 지난 2년의 상태에서 저지른 과오인데, 시제가 미래형이 된 번역에서는 틸이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멈추지 않고 “차후 저지르게 될” 일, 즉 토비아스를 학대한 레네를 처벌하는 상상에 빠진 듯이 보인다. 이와 유사한 예는 또 있는데, 기차 사고를 당한 토비아스를 들것에 실어 보낸 후에 틸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때린다. 해당 원문은 “Er meint sich zu erwecken; denn es wird ein Traum sein, wie der gestern, sagt er sich.”(60)으로 번역해 보면 ‘그는 자기를 깨우려고 한다. 이것도 어제 그랬듯이 꿈일테니까 라고 혼잣말을 한다.’인데, 김형국의 번역에서는 “그는 자신을 깨워보려는 생각을 한다. 그럴 것이 이것이 어젯밤의 꿈처럼 꿈일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김형국, 112)로 옮겨졌다. 이 번역문에서는 원문의 쌍반점 뒤에 위치한 “denn”이 접속사의 역할을 하여 틸이 자신을 깨우려고 생각한다는 선행 문장과 이것이 꿈이라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후행 문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결과 틸이 기차 사고를 꿈으로 여기면서 현실감을 잃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 ||
+ | |||
+ | 김형국은 이전의 번역들에서 찾을 수 없는 본문삽입형 각주로 용어설명을 첨부하거나 현재시제를 사용해서 틸의 의식 흐름을 성공적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원작에 다수 포진하고 있는 삽입구와 관계절을 상당수 줄표로 처리하여 독서의 흐름을 끊기도 하고, 크고 작은 오역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점도 노정한다. 레네가 “잠이 들었다 entschlief”를 “그녀는 숨을 거뒀다”(김형국, 123)라고 하는 오역은 번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 ||
+ | |||
+ | '''3. 평가 및 전망''' | ||
+ | |||
+ | 모든 독자가 증기기관차의 경험이 있던 시기부터 거의 모든 독자가 증기기관차를 검색해서만 희미하게 짐작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철로지기 틸>의 번역의 역사는 짧지 않다. 강두식의 초역은 한국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원작의 문화적 맥락을 역자의 모국어로 흡수하려는 전략이 눈에 띄는 한편 역자의 탁월한 모국어 능력을 엿볼 수 있고,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역자가 수정을 거듭하는 데서 원작에 진지하게 다가가고 원문에 충실을 기하려는 노고를 읽어낼 수 있다. 2024년 현시점에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입말이 살아있는 강두식의 번역이 두 번의 재출간에 그치고, 문어체가 도드라지는 지명렬의 번역이 <철로지기 틸>의 번역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지명렬의 번역, 특히 그의 1966년 번역이 십여 회에 이르도록 출판된 것은 독자를 포함해서 출판계가 지명렬의 번역을 높이 평가했거나 이 번역이 당시의 문학적 감수성에 맞았기 때문으로 추측해본다. 긴 공백기 이후에 나온 이관우, 오용록, 김형국의 번역들은 전공자와 일반 독자의 문학 교양을 함양한다는 비슷한 번역 의도와 함께 실제 번역도 비슷비슷해서 번역이 점점 발전한다는 느낌이 막 솟아나지는 않는다. 이관우의 번역본에서는 원문에 충실을 기하려는 역자의 태도와 어휘에 섬세하게 다가가는 시도를 읽을 수 있고, 오용록의 번역본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캐내어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김형국의 번역본에서는 역자가 일차 독자로 원작에서 주목한 바가 실제 번역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나중에 나온 세 번역에서 선행 번역을 비판적으로 참조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오역이 생기는 현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로부터 창의적인 번역이라는 번역 윤리가 번역자를 옥죄여서 개별 번역자가 아예 선행 번역을 도외시하는 결정을 내릴 때 생기는 불행한 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주요 작품 중 <Die Ratten>, <Und Pippa tanzt!>, <Rose Bernd>, <Das Friedenfest> 등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작가의 작품들을 모은 번역서의 출판이 강두식의 책 이후 없어서 이 부분을 고려한 번역작업이 나오길 희망해 본다. | ||
+ | |||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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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두식(1959): 선로지기 티일. 陽文社. | ||
+ | 지명렬(1964): 鐵路지기 틸. 新丘文化社. | ||
+ | 지명렬(1966): 線路지기 티일. 啓蒙社. | ||
+ | 지명렬(1968): 鐵路지기 틸. 成文閣. | ||
+ | 이관우(2005): 선로지기 틸. 우물이 있는 집. | ||
+ | 오용록(2013): 건널목지기 틸. 신아사. | ||
+ | 김형국(2018): 철로지기 틸. 인터북스. | ||
+ | <div style="text-align: right">박희경</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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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 비평된작품]] |
2025년 2월 2일 (일) 15:24 기준 최신판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1862-1946)의 노벨레
작가 |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
---|---|
초판 발행 | 1888 |
장르 | 노벨레 |
작품소개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노벨레로 1888년에 당시 자연주의를 대변한 잡지 <디 게젤샤프트>에 발표되었다. 이때에는 “마르크 지역 송림을 배경으로 하는 노벨레 습작”이라는 부제가 있었다. 철길을 관리하는 말단직 종사자 철로지기 틸은 신앙심이 돈독하고 순한 양 같은 남자다. 그는 연약하고 심성 고운 아내 민나가 토비아스를 낳고 죽자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 육덕지고 포악한 레네와 재혼한다. 틸은 인적이 드문 근무지 초소에서 죽은 민나한테 영적인 사랑을 바치면서, 동물적인 (성)본능에 의해 레네의 육체에 메여, 레네가 어린 토비아스를 학대하는 것을 모른 척한다. 레네가 틸의 근무지 근처에 버려진 땅뙈기에 감자를 심겠다고 두 아들을 데리고 간 날에 토비아스는 기차 바퀴에 끼는 사고로 죽고 만다. 넋을 잃은 틸은 광기에 빠져 레네와 아기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이 작품은 계급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산업화가 초래하는 인간비극에 연마한 명작으로 자연주의 문학 사조를 대표한다고 평가받는다. 형식적으로 외면과 내면의 대조(틸의 건장한 외모와 수동적인 내면), 인물의 대비(연약한 민나와 우악스런 레네), 공간의 분리와 단절(슈프레강으로 분리된 집과 근무지) 등 대립이 두드러지며, 문체에 있어서는 서술하는 시간과 서술되는 시간이 일치하는 순간묘사법의 사용이 특징적이다. 주인공인 틸은 아들이 당하는 학대를 방관한 죄책감과 성적 본능 때문에 수치심에 사로잡힌 인물로 자신을 둘러싼 외적 환경과 내적 환경에 휘둘린다. 나아가 기차가 인간을 위협하는 상징으로 또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파괴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국내 초역은 강두식이 번역한 <선로지기 티일>로 1959년 출판된 <쏘아나의 異端者 – 外 1 篇>에 수록되었다(양문사).
초판 정보
Hauptmann, Gerhart(1888): Bahnwärter Thiel. Novellistische Studie aus dem märkischen Kiefernforst. In: Die Gesellschaft - Monatsschrift für Literatur, Kunst und Sozialpolitik, Leipzig: Verlag von Wilhelm Friedrich, 747-792.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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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독일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존재는 일찌감치 알려져서, 1927년 <現代評論>에 염형우가 번역한 <한넬레의 昇天>이 실렸고 1929년 동아일보에 <沈鍾>이 소개되었다. 주요 작품이 본격적으로 번역된 것은 1950년대로, 1955년에 작가의 문학적 본령이라 할 희곡 <해뜨기 전>, <한넬레의 승천>, <침종>이 <(요약) 세계문학전집> 제3권에 발췌 번역을 포함한 요약본으로 실렸다. 그리고 1959년에 노벨레 <철로지기 틸>과 <쏘아나의 異端者>가 완역으로 출판되었다. 강두식이 이 두 편의 노벨레를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한 것으로, 이후 <철로지기 틸>은 지명렬, 이관우, 오용록, 김형국 등 다수의 번역자에 의해서 번역되었다. 하우프트만의 희곡 작품들이 두 명 이하의 번역자에 의해서 번역된 데 비해서, 노벨레인 <철로지기 틸>은 확인되는 번역자의 이름이 열 명에 가깝고 번역 종수는 약 30회 정도에 이른다. 번역과 수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철로지기 틸>이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작품 중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힌 대표작인 셈이다.
강두식이 번역한 <선로지기 티일>은 1959년 4월에 출판된 <쏘아나의 異端者 – 外 1 篇>에 수록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이영구의 번역이 출판되었는데, 이 두 번역은 한 손에서 번역된 듯 내용이 같고 두 번역 간에 있는 미미한 차이는 출판을 위한 교열작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1964년에 신구문화사에서 출간된 <노오벨상문학전집>에 수록된 지명렬 역의 <鐵路지기 틸>이 두 번째 번역이다. 지명렬은 이 번역을 수정하여 1966년에 <線路지기 티일>의 제목으로 계몽사에서 편찬한 <세계단편문학전집 독일편>으로 출판하였고, 1968년에 다시 소소하게 손을 보고 제목을 <鐵路지기 틸>로 재수정하여 성문각 출판사의 <독일명작선집>으로 출판하였다. 지명렬의 번역은 1970년대에 <鐵路지기 틸>과 <線路지기 틸> 등으로 제목을 달리하면서 계몽사, 삼진사, 삼중당 등 대형출판사에서 기획한 ‘세계(단편)문학’류 총서로 여러 차례 출판되었다. 실물이 확인된 번역은 십여 종이며 역자의 이름이 없이, 혹은 다른 역자의 이름으로 출판된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늘어 지명렬의 번역이 번역 종수로는 최다이다. 지명렬의 1968년 번역 이후로는 근 사십 년 동안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았다. 1968년에 김윤성의 번역이 있으나 강두식의 번역과 같고, 1971년에 송영택의 번역 <건널목지기 틸>이 출판되었으나 지명렬이 1966년에 출판한 번역과 거의 같아서 표지갈이로 의심된다. 새로운 번역은 2000년대에 들어서 나왔다. 2005년에 이관우가 번역한 <선로지기 틸>이 편역서 <붉은 고양이>에 수록되었다. 이 책은 역자가 독일 문학사조를 대표하는 단편 10편을 선별하여 번역하고 편집한 것인데, 2013년에 출판사를 옮기고 표제를 바꿔서 <독일대표단편문학선. 금발의 에크베르트>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오용록의 번역은 <건널목지기 틸>이라는 제목으로 역자가 펴낸 <독일단편문학산책>에 수록되었다. 가장 최근의 번역인 김형국의 번역 <철로지기틸>은 2018년 테오도르 슈토름의 작품 <임멘 호수>와 함께 묶여 <임멘호수·철로지기 틸>로 출판되었다. 국내 초역인 강두식의 번역부터 최근 번역인 김형국의 번역에 이르도록 역자들은 이 작품의 저본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 [1]
독일어 원제목의 Bahnwärter는 선로지기, 철로지기, 건널목지기 등으로 번역되었고 한자가 병기되기도 했다. Thiel은 번역이 출판된 시기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서 티일, 틸 등으로 쓰였다. 현재는 선로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기차가 다니는 길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흔히 쓰이는데, 하우프트만의 작품이 발표되었던 1888년에 기차는 곧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면서 철로 만든 운송 기계를 가리켰고, 기차가 강철로 만든 궤도로 달리는 것이 이 운송 기술을 특징지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는 해당 번역본의 제목을 특정하지 않을 시 <철로지기 틸>을 표준제목으로 제안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노벨레인 <철로지기 틸>은 독일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술자가 전지적 시점에서 처참한 기차 사고와 잔혹한 가족 살해의 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며, 틸의 직장인 철길의 초소를 둘러싼 송림의 자연을 세밀히 묘사하고, 기차 사고 장면에서 서술의 시간과 피서술 시간이 일치하는 ‘순간묘사법 Sekundenstil’을 사용하는 등, 이 작품은 자연주의 문학에 전형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작품에는 자연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다수의 특징이 있다. 주인공 틸은 환경에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를 규정하는 환경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내적 자연 Natur’이라는 점에서 자연주의의 범주를 벗어난다. 또한 서술자는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지만 동시에 자연의 색채, 음향과 분위기 그리고 기차는 상징적인 의미로 충만하다. 숲의 고요 속에 침잠해 있으나 질주하는 기차에 의해 발현되는 파괴적인 ‘자연의 마력’과 무심하게 행동하는 틸의 내면에 응고된 채 기차 사고를 도화선으로 폭발하는 길들지 않는 ‘인간의 자연’, 즉 야수적 본능의 섬뜩한 위력이 병렬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소위 ‘철저한 자연주의 der konsequente Naturalismus’ 작품이 오늘날 대부분 잊히고 말았는데 <철로지기 틸>이 여전히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명성을 이어가는 것은 공교롭게도 저 자연주의 사조로 환원되지 않는 문학적 요소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고려하면서 강두식의 초역, 번역 종수가 최다인 지명렬의 번역,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이관우, 오용록, 김형국의 번역을 살펴보기로 한다.
1) 강두식 역의 <선로지기 티일>(1959)
강두식의 번역은 국내 초역이라는 의미와 함께 하우프트만의 문학세계를 단적으로나마 일별할 기회를 마련한 의의가 있다. <철로지기 틸>은 독일어권 작가들의 단편들과 함께 편집되어 독일단편문학류로 출판되거나, 타 언어권의 작품들과 편집되어 ‘세계문학’ 류의 형태로 나왔기 때문에, 이 작품이 작가 하우프트만의 다른 작품과 함께 편집된 것은 현재까지도 강두식의 책이 유일하다. 강두식의 번역은 초역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정확도에 있어서 나중에 나오는 번역들과 견주어 뒤지지 않으며 가독성의 측면에서도 입말을 살려가며 원문을 전달한다. 일례로 상당히 자유롭게 의태어와 의성어를 번역에 첨가하는 경향을 꼽을 수 있다. 독일어 원작 [2]에서 서술자는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일상적인 자연현상을 특별한 사건으로 포착하여 자세히 그리고, 기차가 달려오고 눈 깜짝할 새 지나가거나 급정거하는 작동을 동영상을 찍듯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grollen, branden, überfluten, vibrieren, summen, keuchen, brausen, schnauben, sausen, dröhnen, knarren, quietschen, schnarren, rasseln, klirren 등 소리와 움짐임에 관련된 동사들이 정말로 많은데, 역자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해서 이 동사들이 불러일으키는 청각적 소리와 시각적 운동을 전달한다. 강두식의 경우는 의성 부사와 의태 부사를 자유롭게 동원하여 원작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기차가 다가오는 것을 기차 바퀴가 구르는 “진동과 우르렁거리는 소리”, “둔하게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휘몰아쳐 오는 기마대의 말발굽 소리”(강두식, 143)로 표현하고, 눈 깜짝할 새 다가와서 순식간에 지나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칙칙거리는 숨찬 소리와 우렁찬 소리는 휘몰아치듯 멀리로부터 공중을 타고 크게 울려 왔다. 그리고는 별안간 적막이 깨어졌다. 미칠 듯한 뇌성과 광폭이 공간을 채우고 선로는 휘고 땅은 떨렸다 – 격렬한 기압 – 먼지와 김과 연기와 구름 그리고 세찬 콧김을 내뿜으며 괴물은 지나가 버렸다.(강두식, 143) (이하 모든 밑줄 강조는 필자)
원문에서 서술자는 기차를 기계라기보다는 생명체처럼 “Ungestüm”(53)으로 일컫는데 강두식은 “괴물”로 번역하고 숨찬 소리를, 우렁차게 울리며, 세차게 콧김을 내뿜는 존재로 옮긴다. 나아가 자연현상, 이를테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틸의 초소 방향으로 다가오는 천둥소리는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와 유사하다.
... 그리고 이 순간에 국경 밤 하늘의 아주 먼 곳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에는 둔하고 나직하게 쿠르릉거리고 있었는데 다음에는 쿵쾅거리는 짧은 노도가 되어 점점 가까이 굴러와서는 얼마 아니해서 크게 되어 거대하게 쾅하고 울리어 드디어는 주위 일대에 가득 차서 넘치고 우짖고 진동하고 와르르하면서 터졌다.유리창은 덜커덩거렸고 대지는 진동했다.(강두식, 146)
“짧은 노도”로 번역된 독일어 원문은 “in kurzen, brandenden Erzwellen”(52)으로 여기서 서술자는 천둥이 가까워지면서 시시각각 소리가 커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쇠를 뜻하는 Eisen과 같은 Erz를 쓴다. 기차라는 기계-사물은 자연의 생명체로, 자연현상은 기차를 연상시키는 사물 용어를 써서 어휘의 교차적인 사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철로지기 틸>에서는 자연과 기계가 대조적이거나 대척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로 합쳐져 천둥(원작에는 번개도 포함)과 기차는 그 압도적인 소리와 최강의 진동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기차가 밤의 어둠을 가르며 폭우 속에 달려오는 장면을 보자.
Zwei rote, runde Lichter durchdrangen wie die Glotzaugen eines riesigen Ungestüms die Dunkelheit. Ein blutiger Schein ging vor ihnen her, der die Regentropfen in seinen Bereich in Blutstropfen verwandelte. Es war, als fiele ein Blutregen vom Himmel.(53)
빨간 둥근 불 두 개가 거대한 괴물의 눈깔과도 같이 어둠을 뚫고 빤짝이는 것이 보였다. 피와 같은 한 줄기의 빛이 그 불에서 이 쪽을 비치고, 그 불빛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핏방울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마치 피의 비가 하늘로부터 내리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강두식, 147)
<철로지기 틸>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회자되는 이 장면에서 강두식의 번역은 첫 문장을 “~보였다”로, 헤드라이트의 빛이 앞서가는 것을 “이 쪽을 비추고”로 옮겨서, 붉은빛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을 채우며 달려오는 기차의 질주를 틸의 시선에서 보이는 감각적인 지각으로 만든다. 원작에서는 서술자가 객관적인 위치에서 기차의 출현을 묘사한다면, 강두식의 번역본에서는 서술자의 시선과 틸의 시선이 같아져 독자는 틸의 눈으로 이 장면을 읽게 되고 틸의 감정선을 따라서 전율과 공포를 함께 느끼게 된다. 강두식의 번역은 의성 부사와 의태 부사를 꼭 필요치 않아도 사용하고 [3], 원작의 ‘생략’(Ellipse) 문체에 주어와 술어를 보충하며 [4], 자국화의 경향을 띠기도 한다. 강두식은 틸이 마을의 어린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쳐준다는 의미의 문장인 “[...]und buchstabierte mit den Kleinen a-b-ab, d-u-du [...].”(44)를 “가-나-가나, 다-라-다라 하고 철자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강두식, 136)로 옮기는데, [5] 이렇듯 독일어 원문을 한국 독자에게 가깝게 가져오는 일련의 번역전략은 독일어의 ‘낯섦’을 친숙함으로 바꾸려던 1960년대 번역에서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2) 지명렬 역의 <鐵路지기 틸>(1964), <線路지기 티일>(1966)
1964년에 출판된 <鐵路지기 틸>에서 역자인 지명렬은 하우프트만이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소개되었고, 그의 대표작 <외로운 사람들>이 상연된 바도 있었다. 1962년 하우프트만 백년제에는 한국 독일문학회 주최로 <침종>이 시공관에서 별 효과는 없었으나 상연만은 보았다.”(지명렬 1964, 61)는 해설을 덧붙여 1960년대에 하우프트만이 한국 독어독문학계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알린다. 또한 <철로지기 틸>이 “오늘도 대학 강단에서 빈번히 강론되고 있다“(지명렬 1964, 63)고 하여, 이 작품이 대학교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학습하는 자료라는 정보도 준다. 대학 내에서 수용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이었음은 2000년대에 번역한 이관우와 오용록의 역자 해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명렬의 번역은 한자어가 많고, 한자의 병기도 많아서 문어체로 기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구어체를 살리는 강두식의 번역과 비교하면 선명히 드러난다. 토비아스를 친 기차가 떠나는 대목을 보자.
여객전무가 재차 호루라기를 삑 분다 – 삑 – 기관차의 연통으로부터 흰 쉭쉭거리는 김을 토해 내고 그 쇠심줄을 뻗친다. 몇 초가 지나자 급행열차는 펄펄 연기의 깃발을 휘날리면서 두 배의 속력으로 숲속을 휘몰아쳐 간다.(강두식, 156)
여객주임이 다시 한번 호루라기를 분다. 「삐 -」 기관차가 연통에서 칙칙 소리내며 흰 수증기를 내뿜으며 철건(鐵腱)을 내디딘다. 수삼초(數三秒)가 지나서 급행열차는 기폭(旗幅)같은 연기를 바람에 나부끼며 속도를 배가(倍加)하여 숲을 뚫고 돌진한다.(지명렬 1966, 125)
지명렬의 번역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빨간색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철로지기 틸>에는 붉은색, 검은색, 흰색, 초록색 등 상당량의 색채 이미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붉은색은 여러 차례 나타난다. 틸의 머리칼은 빨간색이고, 토비아스는 “불타는 듯 빨간색 머리칼 brandrote Haare”을 갖고 있다. 틸은 토비아스를 위한 빨간색 저금통장을 애지중지하며 품고 다닌다. 토비아스가 레네에게 당하는 학대를 가리키는 첫 신호도 토비아스의 붉은 뺨에 난 흰 손가락 자국이다. 기차 사고 장면에서 틸이 기계적으로 들어 올리는 깃발도 붉은색이며, 치명상을 입은 토비아스는 붉은 기에 감싸인다. 틸의 광기가 분출하여 둘째 아들의 목을 조를 때 그의 상태는 “붉은 안개가 그의 감각을 둘러쌌다. Ein roter Nebel umwölkte seine Sinne.”(63)로 표현된다. 붉은 색채는 폭우와 함께 돌진하는 기차를 묘사한 대목에 나오는 “핏방울”, “피의 비”, 틸의 환상에서 민나가 안고 있는 핏빛 덩어리, 기차에 친 토비아스의 검붉은 피, 피를 깔고 누운 레네의 부서진 머리통 등 피의 이미지와 겹치기도 한다. 요컨대 붉은 색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자연주의적 글쓰기인 한편, 처참한 죽음에 대한 상징이자 끔찍한 가족 살해를 암시하는 의미작용을 한다. 일몰과 일출도 붉은색의 스펙트럼 안에 있다. <철로지기 틸>의 독일어 원작은 30쪽 정도 분량으로, 길지 않은 단편에 수 차례 일출과 일몰이 묘사되는 점도 특기할 만한데, 게다가 그때마다 붉은 색채가 주조를 이룬다. 아침 햇살은 양치류에 “열기를 불어넣으며 mit Glut behauend”, 이른 아침 이슬은 “Feuertau”로 표현되고, 저녁의 석양은 “das rote Feuer des Abends”로, 석양이 저무는 것은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쏟아부었다. Die Sonne goss ihre letzte Glut ...”(62)로 표현된다. 그 한 예가 일몰의 광경인데 지명렬의 번역으로 읽어보자.
거대한 구름덩어리의 가장자리 아래로 얼굴을 내밀고, 검은 바다 같은 초록색의 나무 끝 속으로 지려고 하던 태양은 진홍색 빛 줄기를 숲 위에 내리 쏟고 있었다. 철로 둑 저편에 원주(圓柱)같은 소나무들은 마치 저편에서 불이 붙고 있는 강철같이 빨갛게 달아 올라왔다.
선로도 빨갛게 달기 시작하여 붉은 뱀같이 보였으나, 그것이 제일 먼저 꺼져 갔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이글이글 타는 불이 느릿느릿 땅바닥에서 위로 올라갔다. 우선 소나무 기둥을 다음에는 수관(樹冠)의 대부분을 싸늘하게 소멸하는 빛 속에 남겨두고, 마지막에는 다만 나무 끝 제일 가장자리에만 아직도 붉은 색의 희미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장엄하게 숭고한 광경이 끝났다.(지명렬 1964, 41)
이 장면을 그리는 원문에도 “Ströme von Purpur”, “glühten”, “die Glut”, “feurige Schlange”, “rötlich” 등 붉은빛이 주조를 이룬다. 사전적으로 잉걸불을 뜻하는 Glut는 불과 열기 등 촉감과 관련된 어휘면서 붉은색의 시각과 관련된 어휘인데, 역자에 따라서는 열기의 촉감적 의미를 살리기도 한다. 일례로 오용록은 “철둑 저편의 소나무 기둥 아케이드는 안에 불이 붙었는지 쇠처럼 이글거렸다./ 선로 또한 지글거리는 뱀처럼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맨 먼저 식었다.”(오용록, 226)로 번역하여, 더운 열기의 분위기를 살리고 색감의 정조를 약화시켰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명렬의 번역은 “진홍색”, “빨갛게 달아”, “붉은 뱀”, “붉은 색” 등 색채의 시각적 감각을 크게 강조한다. 지명렬은 일몰과 함께 떠오르는 달을 가리키는 “riesiege purpurglühende Kugel”의 자줏빛을 “빨갛게 타는 거대한 공”(지명렬 1964, 55)으로 번역하는 등 일관되게 “붉은~”, “빨간~”으로 표현한다. 원작의 붉은색 계열의 다채로운 변주를 빨갛다고 옮기는 번역은 충분히 섬세하지 못해 보일 수 있지만,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빨간색이 텍스트의 표면으로 돌출되어 오히려 원문의 회화적 느낌이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된다. 다만 그 효과가 만만치 않아서 원작의 느낌이 인상주의적인 풍경이라면, 맹렬한 빨간색이 주조를 이루는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표현주의적인 모습마저 감지된다.
지명렬은 1964년의 번역을 수정하여 1966년에 계몽사에서 출판한 <세계단편문학전집 독일편>에 묶었는데, 이 책의 편집자인 강두식의 영향이었는지 제목을 <線路지기 티일>로 바꾸었다. 이 번역본은 1964년의 번역을 전체적으로, 하지만 소소하게 다듬었는데, “자 그러면 일을 시작해 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지명렬 1964, 41)라고 번역했던 것을 “자 그러면 작업개시.”(지명렬 1966, 115)라고 생략문을 살렸고, 틸이 아이들에게 철자를 가르쳐 주는 문장을 1964년에는 생략했다가 1966년에는 음차 번역을 했다. [6]여기서 원문을 직역하려는 역자의 경향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촛불”을 “봉랍”으로, “나무끝 가지”를 “수관(樹冠)”으로(지명렬 1966, 131) 바꾸는 등 한자어 사용을 늘리면서 동시에 명사의 사용도 늘려서 문어체의 느낌을 강화했다.
3) 지명렬 역의 <鐵路지기 틸>(1968)
지명렬은 1968년에 제목을 다시금 <鐵路지기 틸>로 바꾸어서 역자가 직접 편집하고 성문각에서 출판한 <獨逸名作選集>에 수록했다. 이 번역은 역자가 번역 의도를 자세히 설명한 드문 경우인데, 역자는 일차적인 독자 대상을 일반 문학 애호가들보다는 독일문학 전공자로 상정한다. 이에 따라 번역전략도 “원문에 충실을 기하고, 원문에 단어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며 아름다운 번역은 이차적인 문제로 삼았다”고 밝힌다. 원문에 충실하겠다는 번역의 의지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토비아스가 죽는 기차 사고 장면인데, 역자는 사고가 발생하는 부분을 원문과 다르게 편집하는 방식으로 되려 원작의 순간묘사법을 충실히 전달하려고 한다.
<철로지기 틸>은 시간순으로 서술되지만, 이야기되는 시간의 단위가 다르다. 1장은 10년의 세월을, 2장은 6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늦은 오후 시점까지 하루를 이야기한다. 1장과 2장을 합친 것보다 훨씬 긴 3장은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화요일 아침까지의 이야기로 두 번의 휴지부가 세 토막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토막마다 이야기는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짧아진다. 이야기되는 시간이 년 단위, 일 단위,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짧아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과의 차이가 줄어들고, 토비아스가 사고를 당하는 순간은 서술의 시간과 피서술의 시간이 겹치는데, 역자는 기차 사고의 순간을 서술하는 한 문단을 여러 문단으로 쪼개었다. 인용 오류: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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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 없습니다 또 틸이 토비아스와 함께 전신주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죽은 아내인 민나의 소리를 구별하는 부분에서는 틸이 품고 있는 종교적인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을 잘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과 함께 아쉬운 점도 있는데, 틸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뜻의 원문인 “Dann wurde es Nacht.”(61)를 “그리고는 밤이 되었다.”(이관우, 169)라고 글자번역을 한 것이다. 중상을 입은 토비아스를 실은 기차가 지나갈 때 틸은 시야가 흐려졌고 으깨진 몸으로 피 흘리는 토비아스의 환영을 보고 종국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 맥락에서 강두식은 위 문장을 “그리고는 머리가 아찔하고 앞이 캄캄해졌다.”(강두식,157)로, 지명렬은 “그리고 나서 눈앞이 캄캄해졌다.”(지명렬1964, 51)로 번역했다. 이 두 번역은 “Nacht”를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옮겨 원문의 의미를 전달한다. 이관우의 번역뿐 아니라 오용록과 김형국의 번역은 “그리고 밤이 되었다.”로 옮겼는데 이는 이야기의 시간 흐름을 헝클어트리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기차 사고는 한낮에 일어났고, 눈앞이 캄캄해졌던 틸이 (내용상 이는 그가 실신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6월의 “뜨거운 모래” 위에 누워있는 걸 발견하는데, 그런 후에도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석양빛이 비춰든다. <철로지기 틸>의 서술자는 정확히 시간을 제시하여 틸이 아들의 주검 앞에 혼절하고 이웃 사람들이 살해의 현장을 발견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저녁노을 – 붉은 달 – 창백한 달 – 깜깜한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야기한다. “Nacht”를 사전적인 뜻으로 밤으로 옮기면 사건에 윤곽을 부여하는 틀 시간이 흐트러지고 만다.
6) 김형국 역의 <철로지기 틸>(2018)
김형국의 번역에서는 역자의 작품 해석이 번역의 실제에도 반영된 점이 특징적이다. 역자는 작품의 일차 독자이자 해석자로 <철로지기 틸>의 문학적 의미를 “꿈, 환상, 환영, 회상, 기억”(김형국, 140) 등이 틸의 일상과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서 찾는다. 그래서인지 김형국의 번역에서는 틸의 현실에 그의 환상이 침투되어 있다. 틸이 토비아스가 당하는 학대를 외면해왔음을 깨닫고 자책하는 장면에서 그는 과거에 “그런 상태에서 저질렀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일 all das Haarsträubende, welches er in diesem Zustand begangen haben sollte.”(51)을 떠올리는데 김형국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동시에 그는 마치 죽은 자의 2년이나 되는 잠과 같은 수면상태에서 깨어나 차후 그런 상태에서 저지르게 될 소름끼치는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김형국, 94).
원문에서는 지난 2년의 상태에서 저지른 과오인데, 시제가 미래형이 된 번역에서는 틸이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멈추지 않고 “차후 저지르게 될” 일, 즉 토비아스를 학대한 레네를 처벌하는 상상에 빠진 듯이 보인다. 이와 유사한 예는 또 있는데, 기차 사고를 당한 토비아스를 들것에 실어 보낸 후에 틸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때린다. 해당 원문은 “Er meint sich zu erwecken; denn es wird ein Traum sein, wie der gestern, sagt er sich.”(60)으로 번역해 보면 ‘그는 자기를 깨우려고 한다. 이것도 어제 그랬듯이 꿈일테니까 라고 혼잣말을 한다.’인데, 김형국의 번역에서는 “그는 자신을 깨워보려는 생각을 한다. 그럴 것이 이것이 어젯밤의 꿈처럼 꿈일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김형국, 112)로 옮겨졌다. 이 번역문에서는 원문의 쌍반점 뒤에 위치한 “denn”이 접속사의 역할을 하여 틸이 자신을 깨우려고 생각한다는 선행 문장과 이것이 꿈이라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후행 문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결과 틸이 기차 사고를 꿈으로 여기면서 현실감을 잃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형국은 이전의 번역들에서 찾을 수 없는 본문삽입형 각주로 용어설명을 첨부하거나 현재시제를 사용해서 틸의 의식 흐름을 성공적으로 옮기기도 하는데, 원작에 다수 포진하고 있는 삽입구와 관계절을 상당수 줄표로 처리하여 독서의 흐름을 끊기도 하고, 크고 작은 오역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점도 노정한다. 레네가 “잠이 들었다 entschlief”를 “그녀는 숨을 거뒀다”(김형국, 123)라고 하는 오역은 번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3. 평가 및 전망
모든 독자가 증기기관차의 경험이 있던 시기부터 거의 모든 독자가 증기기관차를 검색해서만 희미하게 짐작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철로지기 틸>의 번역의 역사는 짧지 않다. 강두식의 초역은 한국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원작의 문화적 맥락을 역자의 모국어로 흡수하려는 전략이 눈에 띄는 한편 역자의 탁월한 모국어 능력을 엿볼 수 있고,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역자가 수정을 거듭하는 데서 원작에 진지하게 다가가고 원문에 충실을 기하려는 노고를 읽어낼 수 있다. 2024년 현시점에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입말이 살아있는 강두식의 번역이 두 번의 재출간에 그치고, 문어체가 도드라지는 지명렬의 번역이 <철로지기 틸>의 번역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지명렬의 번역, 특히 그의 1966년 번역이 십여 회에 이르도록 출판된 것은 독자를 포함해서 출판계가 지명렬의 번역을 높이 평가했거나 이 번역이 당시의 문학적 감수성에 맞았기 때문으로 추측해본다. 긴 공백기 이후에 나온 이관우, 오용록, 김형국의 번역들은 전공자와 일반 독자의 문학 교양을 함양한다는 비슷한 번역 의도와 함께 실제 번역도 비슷비슷해서 번역이 점점 발전한다는 느낌이 막 솟아나지는 않는다. 이관우의 번역본에서는 원문에 충실을 기하려는 역자의 태도와 어휘에 섬세하게 다가가는 시도를 읽을 수 있고, 오용록의 번역본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캐내어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김형국의 번역본에서는 역자가 일차 독자로 원작에서 주목한 바가 실제 번역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나중에 나온 세 번역에서 선행 번역을 비판적으로 참조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오역이 생기는 현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로부터 창의적인 번역이라는 번역 윤리가 번역자를 옥죄여서 개별 번역자가 아예 선행 번역을 도외시하는 결정을 내릴 때 생기는 불행한 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주요 작품 중 <Die Ratten>, <Und Pippa tanzt!>, <Rose Bernd>, <Das Friedenfest> 등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작가의 작품들을 모은 번역서의 출판이 강두식의 책 이후 없어서 이 부분을 고려한 번역작업이 나오길 희망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강두식(1959): 선로지기 티일. 陽文社. 지명렬(1964): 鐵路지기 틸. 新丘文化社. 지명렬(1966): 線路지기 티일. 啓蒙社. 지명렬(1968): 鐵路지기 틸. 成文閣. 이관우(2005): 선로지기 틸. 우물이 있는 집. 오용록(2013): 건널목지기 틸. 신아사. 김형국(2018): 철로지기 틸. 인터북스.
바깥 링크
- ↑ 참고로 이 작품이 독일에서 1888년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한 구절이 “ein fruchtbares Wetter”였는데 판본이 바뀌면서 “ein furchtbares Wetter”로 수정되었다. 강두식의 번역과 지명렬의 1964년 번역은 독일어 초판을 저본으로 삼았던 듯, “이 날씨면 풍년...”으로 번역했다. 이후 지명렬의 1966년 번역부터는 저본이 개정 판본으로 바뀐 듯 “끔찍한 날씨”로 번역되고 있다.
- ↑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Hauptmann, Gerhart(1996): Bahnwärter Thiel. In: Gerhart Hauptmann. Sämtliche Werke. Vol. 6. Berlin: Propyläen Verlag.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
- ↑ 강두식의 번역문인 “삽은 지직 소리를 내면서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습기찬 흙덩어리는 푹석 파헤쳐져서 대굴대굴 덩어리가 되어 흩어졌다.”(강두식, 144)에는 이에 해당하는 원문인 “Die Spaten schnitt knirschend in das Erdreich; die nassen Schollen fielen dumpf zurück und bröckelten auseinander.”(50)에는 없는 의태 부사가 첨가되어 있다.
- ↑ 일례로 “An die Arbeit.” 라는 생략체의 체험화법 문장을 “자 어디 일을 한 번 해 볼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강두식, 144)라고 주어와 술어를 첨가하여 문장을 다시 쓴다.
- ↑ 지명렬은 1964년의 번역에서는 원문의 이 부분을 생략하고 “작은애들에게는 글자의 발음이나 철자법 등의 연습도 시켰다”(36)로 번역했다. 하지만 1966년도의 번역에서는 “... 어린아이들에게는 아아베 아아뿌, 데에우 두 등등 철자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108)고 음차 번역을 했다. 2000년대 이후의 번역에서는 “아-베-아프, 데-우-두”(이관우, 144), “아(a)-베(b)는 압(ab), 데(d)–우(u)는 두(du)” (오용록, 220), a-b-ab, d-u-du(김형국, 81) 등 원어를 그대로 옮기는 경향을 띤다.
- ↑ 각주 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