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Deutsche Lieb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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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世宗文庫 46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1965 || 知文閣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발행연도 불분명. http://www.riss.kr/link?id=M3156637 | | 6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世宗文庫 46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1965 || 知文閣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발행연도 불분명. http://www.riss.kr/link?id=M31566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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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7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 Max Muller || 李德衡 || 1967 || 文藝出版社 || 25-165 || 대역본 || 대역본 || 한독대역판 | + | | <div id="이덕형(1967)" />[[#이덕형(1967)R|7]]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 Max Muller || 李德衡 || 1967 || 文藝出版社 || 25-165 || 대역본 || 대역본 || 한독대역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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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사랑의 回想 || 사랑의 回想 || || 막스 뮐러 || 文瑞龍 || 1970 || 翰林出版社 || 11-155 || 완역 || 완역 || 번역 과정을 상술함. 작중 시 번역에서는 영어로 된 원문을 참고했다고 밝힘 | | 8 || 사랑의 回想 || 사랑의 回想 || || 막스 뮐러 || 文瑞龍 || 1970 || 翰林出版社 || 11-155 || 완역 || 완역 || 번역 과정을 상술함. 작중 시 번역에서는 영어로 된 원문을 참고했다고 밝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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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9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瑞文文庫 134 || 막스 뮐러 || 朴贊機 || 1974 || 瑞文堂 || 9-164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 | | 9<div id="박찬기(1974)" />[[#박찬기(1974)R|9]]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瑞文文庫 134 || 막스 뮐러 || 朴贊機 || 1974 || 瑞文堂 || 9-164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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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 막스 뮐러 || 朴讚元 || 1974 || 興文圖書 || 11-124 || 완역 || 완역 || | | 10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 막스 뮐러 || 朴讚元 || 1974 || 興文圖書 || 11-124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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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 확인불가 || 朴讚元 || 1975 || 개풍인쇄소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발행연도 불분명. http://www.riss.kr/link?id=M5687660 | | 13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 확인불가 || 朴讚元 || 1975 || 개풍인쇄소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발행연도 불분명. http://www.riss.kr/link?id=M56876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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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4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三中堂文庫 300 || 막스 뮐러 || 洪京鎬 || 1976 || 三中堂 || 6-148 || 편역 || 완역 || 저자의 부친인 빌헬름 뮐러의 시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 | + | | <div id="홍경호(1977)" />[[#홍경호(1977)R|14]]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三中堂文庫 300 || 막스 뮐러 || 洪京鎬 || 1976 || 三中堂 || 6-148 || 편역 || 완역 || 저자의 부친인 빌헬름 뮐러의 시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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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글방문고 32 || 막스 뮐러 || 홍경호 || 1986 || 글방문고 || 5-131 || 편역 || 완역 || 1990 중판 | | 3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글방문고 32 || 막스 뮐러 || 홍경호 || 1986 || 글방문고 || 5-131 || 편역 || 완역 || 1990 중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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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 막스 뮐러 || 차경아 || 1987 || 文藝出版社 || 5-112 || 완역 || 완역 || 신역판. 이덕행 역의 1967년판을 초판으로 삼음 | + | | <div id="차경아(1987)" />[[#차경아(1987)R|3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 막스 뮐러 || 차경아 || 1987 || 文藝出版社 || 5-112 || 완역 || 완역 || 신역판. 이덕행 역의 1967년판을 초판으로 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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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풍림명작신서시리즈 6 || 막스 뮐러 || 이영조 || 1987 || 豊林出版社 || 7-122 || 완역 || 완역 || | | 3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풍림명작신서시리즈 6 || 막스 뮐러 || 이영조 || 1987 || 豊林出版社 || 7-122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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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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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인의 사랑>은 매우 독특한 번역 수용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자 종교학자, 동양학자인 막스 뮐러(1823-1900)의 유일한 소설이다. 그는 영국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학문적 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주요한 학술 저작은 영어로 집필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만은 독일어로 썼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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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인의 사랑>의 초판은 1857년에 익명으로 라이프치히의 브로크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책이 인기를 누리고 판을 거듭하면서 저자가 옥스포드의 교수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임이 알려졌다. 뮐러가 죽을 때까지 이 소설은 20판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인기는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출간 즉시 영국에서 영역판이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미국에서는 1874년에 무단으로 다른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뮐러의 아내 조지나 그렌펠(Georgina Grenfell)이 후에 다시 영어로 번역했고, 막스 뮐러는 이 번역본을 원어에 더 충실하고 문체를 더 잘 살린 정본으로 인정했다. <독일인의 사랑>은 이 외에 다른 유럽권의 여러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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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스 뮐러 사후, 그러니까 20세기 이후 이 작품은 점점 잊혀 갔다. 1913년에 독일에서 페이퍼백으로 출간되었으나, 1차세계대전 이후 전통적 미적, 윤리적 가치가 위기에 빠지고 실험적인 현대적 문학, 예술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면서 <독일인의 사랑>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분의 격차와 생과 사의 대립을 뛰어넘은 순수한 영혼과 사랑의 이야기는 당대적 관점에서는 너무 낡은 것으로 보였고, 그 문학사적 가치를 인정하기에는 낭만주의의 아류라는 혐의가 너무 짙었다. 1920년대에 작품이 절판된 이후, 독일에서 프락투어를 현대 표기체로 바꾸어 새로 편집한 판본은 2011년에서야 출간되었다. 막스 뮐러는 학자로서, 특히 인도학자로서 이름을 남겼지만 <독일인의 사랑>의 저자라는 사실은 전혀 중시되지 않는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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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작품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져 가장 널리 읽힌 독일문학 작품의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1957년에 당시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이덕형이 처음으로 번역했는데, 그는 역자 서문에서 독문과 수업을 통해 <독일인의 사랑>을 접하여 작품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서 그는 영역판도 많이 참고했음을 고백한다). 독일문학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 작품이 서울대 독문학과 커리큘럼 속에 들어온 경위에 대해서 추측해볼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단서는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 자료실 소장 목록을 보면) 1944년 도쿄에서 독일어판으로 출판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Max Müller: Deutsche Liebe: mit Einleitung und Anmerkungen versehen von Morio Sagara. Tokio 1944). 그것은 일본의 대학이나 학교에서 독일어 읽기 교재로 <독일인의 사랑>이 사용되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도 1960년대에 이런 교재용 독일어 판본이 출간된 것을 볼 수 있다.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서울: 창문사 1960). 그러한 영향 속에서 읽기 교재로 국내에서도 이 작품이 읽혔고, 그것이 결국 독문학자가 아닌 영문학도의 관심을 끌어 번역 출간되기에 이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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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 초판이 발간되고 10년 뒤에 이덕형은 문예출판사에서 새로 개역판을 출간하면서 <독일인의 사랑> 초역이 유감스럽게도 같은 해 카뮈의 <전락> 출간과 노벨상 수상 소식에 밀려 큰 관심을 보지 못하고 독문학도나 사보는 책이 되었다고 술회하지만, 60년대에도 이덕형의 처음 번역본이 계속 판을 거듭한 것, 1959년 박찬원의 번역이 출간되고 1960년대에도 다른 번역들이 뒤를 따른 것을 보면, 어쨌든 <독일인의 사랑>이 이미 당시에 한국 독자에게 상당히 알려진 작품이 된 것은 분명하다. 신문 기사들을 살펴보면 <독일인의 사랑>의 인기는 1970년대에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인의 사랑>은 늦어도 1971년부터 해외 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추세가 장기적으로 계속되면서 세계문학 필독서의 대열에 올랐다. 높은 인기를 누린 만큼 수많은 번역본의 난립 상태가 된다. 박찬기 외에, 홍경호(삼중당 1976)가 독문학자로서 <독일인의 사랑> 번역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 외에 수많은 번역자의 번역이 70년대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쌓여왔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전국 도서관의 소장 현황을 보면 이덕형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퍼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7년에 문예출판사 번역은 차경아 번역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덕형 번역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독일인의 사랑> 대표 번역의 자리를 차경아 번역이 차지하게 된다. 새로운 역자 차경아는 역자 후기에서 자신도 학생 시절 이덕형 선생님의 번역으로 작품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히며 최초 소개자 이덕형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로써 <독일인의 사랑>의 대표적인 번역본이 30년 만에 영문학자의 번역이 독문학자의 번역으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독문학계의 국외자로서 작품을 처음 독자들에게 소개한 이덕형의 번역이 어떤 특성을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독문학자 차경아의 번역이 어떤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번역 비평의 한 가지 포인트가 된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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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인의 사랑>의 한국에서의 성공은 이제 독일에도 소개되었다. <독일인의 사랑>이 1920년대에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출간되고 절판된 다음, 2011년에 비로소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신판의 편자인 필립 그리프(Philipp Grieb)는 작품 소개글에서 이 소설이 한국에서 독일문학 작품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음을 밝히고 있다. <br> | ||
+ | |||
+ |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독일 문학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매우 다양한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여전히 여러 번역본이 여전히 시중에 나와 있지만, 상업적인 동기를 넘어서 원작에 접근하려는 학문적 진지성과 성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번역본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할 만한 대상으로 이덕형, 박찬기, 홍경호, 차경아의 번역을 선정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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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개별 번역 비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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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덕형(1967)|이덕형 역의 <독일인의 사랑>(1967년 개역판)]]<span id="이덕형(1967)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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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인의 사랑>은 수용의 맥락이 그 어떤 다른 작품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을 초역한 이덕형이 붙인 역자 서문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그는 아직 대학생으로서, 게다가 영문학도로서 일반적으로 독문학 작품 역자로서의 자격이나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독일인의 사랑> 역자가 된 것은 작품을 우리말로 독자들에게 읽히게 해야겠다는 역자 개인의 열정적 관심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이러한 사정은 역자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1957년에 나온 이 책의 역자 서문에서 이덕형은 진정한 사랑이나 연애가 희귀해지고 가벼운 사랑, 몇 번이고 연애를 고쳐 하고 결혼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세태, ‘지금은 20세기야’라는 말 한마디로 그런 것이 오히려 모던한 것으로 통하는 시대, 죽음을 불사하는 순수한 사랑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시대를 한탄한다. 이는 다소 대학생다운 순진한 토로의 느낌을 주지만,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독일인의 사랑>이 수용된 기본적 맥락을 투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br> | ||
+ | |||
+ | 소설은 귀족과 시민의 계급 차이가 여전히 사랑의 장벽이 되는 사회에서 그것을 뛰어넘는 주인공과 마리아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마리아의 불치병과 죽음은 여기에 비극적 빛을 더하지만,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에 사랑의 마음이 연인 사이에 전해지면서, 작품은 그들의 사랑이 궁극적 화해와 변용에 이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br> | ||
+ | |||
+ | 죽음의 빛이 드리워진 고도로 정신화된 낭만주의적 사랑, 19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한 ‘독일적 사랑’을 역자는 순정이 사라져버린 20세기의 가벼운 연애 풍조에 맞서는 안티테제로서 이해한 것이다. 독일이나 유럽의 문맥에서 낭만주의의 완전한 종언과 현대적 사조의 도래가 낭만주의의 끝자락에 있는 막스 뮐러의 작품을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했다면, 오히려 한국에서는 파괴된 낭만성에 대한 의식이 작품의 활발한 수용 배경이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도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인다. 압축적 근대화는 문화 차원에서도 일어났으니, 한국에는 유럽의 18~19세기적 낭만적 사랑의 개념도 20세기에야 들어왔고, 탈낭만과 현대성의 의식도 곧이어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문화에서는 탈낭만을 현대적인 것, 모던한 것으로 보는 태도와 낭만적 동경의 태도가 같은 시대에 중층적으로 공존했고, 그만큼 현대적인 것에 대한 ‘낭만적 반동’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여 <독일인의 사랑>을 한국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br> | ||
+ | |||
+ | 개역판의 서문에서 10년의 세월 뒤에 학생이 아니라 교수가 된 역자는 좀 더 차분한 어조로 작품의 의미를 해설한다. 그러나 영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냉소적인 20세기 영문학 작품이나 젊은 학생들의 경박한 물질주의는 역자를 다시 “옛날 애인” <독일인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여기서도 이덕형은 잃어버린 낭만적 정신의 부활을 꿈꾼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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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하나 개역판 서문에서 의미 있는 추가 사항은 뮐러와 윌리엄 워즈워스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지적한 점이다. 뮐러는 작품 속에서 워즈워스의 시 <고지의 소녀>를 인용하고 있거니와, 역자는 뮐러가 사상적으로 자연과 유년기에서 인간 존재의 신성한 기원을 상기하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이로써 역자는 뮐러의 소설이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사상적,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읽힐 것을 희망한다.<br> | ||
+ | |||
+ | 이덕형은 번역 초판 서문에서 영역본의 도움을 받으며 번역에 임했다고 밝히면서 비전공자로서 독일어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체적인 번역 수준을 볼 때 그의 독일어 공부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꼼꼼하게 번역했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했다. 다만 오늘의 한국어 감각에 비추어볼 때 어휘는 상당히 낡게 느껴지는 것이 많고(예컨대 스위스를 여전히 “서서”로 번역하거나, Freuden을 기쁨이 아니라 “희락”이라고 하는 것), 문장은 종종 일차적 번역 이후 잘 마무리되지 않아서 덜 정돈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이 지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오래 계속해 있지 못한다”, “괴로워하는 천사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나에게 매력을 갖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다” 같은 번역 문장이 그러하다. 이런 문장들은 “어린 시절의 하늘에 낀 구름은 오래 가지 못한다”나 “고통을 겪는 천사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나의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매력적인 느낌을 남겼다” 정도로 번역함이 자연스러울 것이다.<br> | ||
+ | |||
+ | 시적이고 감성적인 원문의 문체가 의미 전달 위주의 번역을 통해 ‘산문화’되는 경향이 있다. 막스 뮐러의 작품은 주인공 자신이 쓴 수기이고,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회상의 주체가 생각을 더듬어가는 것을 표현하는 듯한 긴 줄표나 감탄문이 많이 사용된다. 이덕형의 번역은 줄표를 거의 없애고 가능한 한 완결된 문장으로 만들거나 감탄문을 서술문으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br> | ||
+ | |||
+ | 그 때엔 우리 자신이 어디 있는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온 세상은 우리의 것이었고 우리는 곧 전 세계의 것이었다. 처음도 끝도 없고 휴식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생명이었다. <br> | ||
+ | 이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br> | ||
+ | |||
+ | Da wussten wir nicht, wo wir waren, und wer wir waren - da war die ganze Welt unser, und wir gehörten der ganzen Welt. Das war ein ewiges Leben - ohne Anfang und ohne Ende - ohne Stillstand, ohne Schmerz.(5)<br> | ||
+ | 원문에 이어지는 줄표들은 추억에 잠기면서 잠시 멈추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어가는 수기의 필자를 떠오르게 하는데, 그것이 모두 생략됨으로써 머뭇거리며 회상하는 자아의 정조가 사라지고 만다. <br> | ||
+ | 다음 대목의 경우도 번역문이 원문을 지나치게 매끄럽게 만들어서 원문의 문체적 인상이 살아나지 않는 예이다. 그 다음으로 | ||
+ | |||
+ | 기억하는 것은 별의 세계나 오랑캐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 열려온 일이다. 부활제의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33)<br> | ||
+ | |||
+ |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br> | ||
+ | |||
+ | Ja, und dann erinnere ich mich, wie wieder eine neue Welt sich mir auftat, und die war schöner als die Sternenwelt und der Veilchenduft. Das war an einem Ostermorgen.(6)<br> | ||
+ | |||
+ | 여기서 화자는 먼저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린 일이 생각난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und’라는 접속사를 넣은 뒤에 그 세계가 앞서 이야기한 다른 세계, 즉 별의 세계와 오랑캐꽃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웠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역자는 화자가 뒤에 덧붙인 문장을 ‘새로운 세계’를 수식하는 관형절로 만들어버린다. 이로써 문장은 원문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읽히나, 글쓰기의 주체가 생각해가면서 말을 만들고 덧붙여가는 과정 자체가 드러나는 수기 특유의 문체는 사라진다. | ||
+ | |||
+ | 부주의한 누락이나 오역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특히 독일어 문법에 대한 세밀한 감각이 필요한 경우에 역자는 많은 실수를 범했다. 예컨대 소설에서 정확한 번역을 위해 필수적인 독일어 시제의 정확한 파악이 안 되는 바람에 과거완료를 단순 과거로, 과거를 현재형으로 번역하여 원문의 본의가 곡해된 경우가 더러 나타났다. 예컨대 의사에게서 헤어질 것을 요구받았을 때 주인공은 마리아의 사랑을 새삼 깨달으며 “Oh, welche Seligkeit war mir so nah”라고 외치는데, 역자는 이를 “어떤 행복이 내게 그토록 가까이 있었던가”라고 하지 않고 “오, 어떠한 천복이 나의 곁에 있는 것일까?”라고 번역하여 주인공의 안타까운 마음을 제대로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아무래도 역자가 독문학 전공자가 아니었다는 사실로 돌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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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외에 이덕형 번역에서 특이한 점은 여성 인칭 대명사 ‘sie’를 ‘그녀’로 옮기지 않고 모두 ‘그 여자’라는 표현으로 통일하다시피 한 것이다.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마리아를 3인칭으로 가리킬 때도 ‘그 여자’라고 하여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녀’라는 대명사의 사용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거부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서양 언어로 된 작품을 번역하면서 여성형 인칭 대명사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무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br> | ||
+ | |||
+ | 상당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덕형의 번역은 <독일인의 사랑>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 번역으로서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을 결정적으로 각인했다. 이 소설이 번역 이전에도 독문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독일인의 사랑”이라고 불렸는지, 아니면 역자가 처음 시도한 번역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어쨌든 원제 “Deutsche Liebe”를 “독일인의 사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어차피 독일이고 독일어로 쓰인 독일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면, 저자가 그것에 굳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독일적 사랑’이라는 의미일 텐데, 여주인공 마리아가 워즈워스의 사랑관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괴테의 베르터 식 사랑과 대비시키는 것을 보면, 왜 막스 뮐러가 이 소설의 사랑을 굳이 ‘독일적’이라고 한 것인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소설 전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세 신비주의 저서의 제목이 ‘독일 신학(Deutsche Theologie)’이라는 사실이 작품 제목과 관련하여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Deutsche Theologie’가 독일인의 신학이 아니라 독일 신학, 혹은 독일적 신학인 것과 마찬가지로 ‘Deutsche Liebe’ 역시 ‘독일 사랑’ ‘독일적 사랑’으로 번역해야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덕형의 초역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래 제목을 다르게 번역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만큼 이덕형의 선택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독일적 사랑’보다는 ‘독일인의 사랑’이 독자들에게 훨씬 더 호소력 있는 제목이라는 상업적 판단이 이런 번역의 고착화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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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형 번역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는 작품 속에 삽입된 매슈 아널드의 시 제목 ‘The Buried Life’의 번역이다. 이덕형은 이를 ‘파묻힌 생명’이라고 옮겼는데, 시의 내용을 보면 ‘묻혀 있는 삶’, ‘감추어진 인생’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life’가 보이지 않는 저층을 관류하는 강에 비유되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묻어둔 듯한 인상을 주는 ‘파묻힌’이라는 표현은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역자들도 마치 관성을 따르는 듯이 모두 ‘파묻힌 생명’이라는 번역 제목을 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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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박찬기(1974)|박찬기 역의 <독일인의 사랑>(1974)]]<span id="박찬기(1974)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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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기는 이덕형과 같은 세대의 번역가라고 할 수 있으며, 연배로는 이덕형보다 몇 년 위의 학자이지만, <독일인의 사랑> 번역자로서는 이덕형보다 훨씬 뒤에야 등장한다. 박찬기의 번역을 이덕형의 번역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두 역자가 같은 세대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다소 장황한 말투 때문에 지금의 한국어 감각에 맞지 않는 번역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뭏든 이곳의 어떠한 것도 내가 상상하였던 것과 같은 가장무도회의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었다”라든가 “한량없이 깊은 그 여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나의 눈초리가 새로이 열려져 간 것이었다”와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또한 박찬기는 sie라는 대명사에 대해 ‘그녀’와 ‘그 여자’를 모두 사용하고 대화 속에 나오는 sie는 마리아와 말하는 사람의 관계를 고려하여 ‘그 분’ 등 적절히 다른 지칭을 사용하여 이덕형보다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번역을 선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주인공)가 애인 마리아를 반복적으로 ‘그 여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의 언어 감각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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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박찬기의 번역은 독문학자의 본격적인 번역으로서 새로운 번역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준다. 물론 이 번역 자체에도 부분적인 오역이나 개선할 점이 남아 있지만, 그리고 때로는 이덕형 번역의 오류가 그대로 이어진 것도 없지 않지만, 박찬기는 많은 부분에서 정확한 독일어 구문 파악에 입각한 유려한 번역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덕형 번역에서 간혹 나타나는 부주의한 누락은 찾아보기 어렵고, 세밀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에 잘 대응되도록 번역되어 있다. 다른 모든 역자들이 원문을 오해하는 가운데 오직 박찬기의 번역에서만 정확한 의미 파악이 이루어진 경우도 간혹 있다. 예컨대 다음 대목의 경우가 그러하다. 일단 원문은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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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 geht doch nichts über ein wirkliches Menschengesicht”, sagte ich, “und selbst ein Rafael hätte so etwas nicht erfinden könn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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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구절은 마리아가 주인공에게 이름 없는 화가가 그린 한 남자의 초상을 보여주었을 때 주인공이 보인 반응이다. 그림 속 남자의 얼굴을 보며 주인공은 그 인상의 진실성 때문에 실존 인물을 그린 것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끝에 마리아에게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래서 진짜 인간의 얼굴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진짜 얼굴을 진실되게 그린 초상이 가장 가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어서 그는 제아무리 뛰어나다 하는 라파엘도 저런 얼굴을 상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고 덧붙인다. 따라서 이는 무명의 화가가 라파엘보다 잘 그렸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라파엘 같은 대가도 상상으로 저렇게 감동적인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낼 재주는 없다. 진짜 얼굴을 그린 그림보다 더 뛰어난 그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저 구절에 담긴 의미이다. 박찬기의 다음 번역에서는 이 의미가 잘 살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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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제 인간의 초상화보다 더 나은 것은 있을 수 없군요. 라파엘로 같은 화가도 이와 같은 것을 창작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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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면 “이 참된 화상을 결코 능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라파엘도 이런 창작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덕형). “실제 인물의 초상화로서는 이 이상을 능가할 것은 없겠는데요. 라파엘 같은 사람이라도 이런 것을 그려낼 수는 없을 것 같군요.”(홍경호) “진짜 살아 있는 인간의 얼굴도 이 그림을 능가할 수 없을 겁니다. 라파엘이었다 해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진 못했을 거예요.”(차경아)와 같은 번역은 모두 원문의 본의를 놓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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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으로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은 박찬기 번역의 특이한 면, 혹은 문제점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우선 1866년에 막스 뮐러가 추가한 서문이 누락되어 있다. 둘째, 박찬기는 소설의 제1장 처음 몇 단락을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늘 그 독특한 비밀과 독특한 경이가 있는 것입니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경어체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중립적인 비경어체로 전환된다. 이 전환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소설의 형식이 편지가 아니라 화자-주인공의 수기인 까닭에 경어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소설의 장 제목은 “Die erste Erinnerung”에서 “Die letzte Erinnerung”까지, 각각 ‘첫 번째 회상’, ‘두 번째 회상’, ‘세 번째 회상’, ‘네 번째 회상’, ‘다섯 번째 회상’, ‘여섯 번째 회상’, ‘일곱 번째 회상’, ‘마지막 회상’으로 번역함이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회상을 추억으로 바꿀 수는 있겠으나, 박찬기는 최초의 추억으로 시작하여 제2의 추억, 제3의 추억 등으로 번역하여 제목에서 일관성과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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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홍경호(1977)|홍경호 역의 <독일인의 사랑>(1977)]]<span id="홍경호(1977)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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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경호는 나이로 박찬기보다 10년 후배 독문학자로서, 홍경호의 번역가로서 이력은 1970년대에 시작된다. 1950년대에 이미 번역 활동을 시작한 박찬기와 이덕형과는 생물학적 나이 이상의 세대적 간극이 있다. 그만큼 홍경호 번역의 언어는 낡은 번역투의 느낌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한국어로 읽힌다. | ||
+ | 그러나 아쉽게도 이전 번역의 근본적 오류를 얼마나 극복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긍정적 답변을 하기 어렵다. 문장은 가독성 있고 경제적인 한국어 문장으로 다듬어졌으나, 이전 번역본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원문에 깊이 파고들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일부 과거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은 대목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덕형, 박찬기의 번역 실수나 오역이 걸러지지 않고 홍경호 번역에 들어와 있는 것을 더 자주 발견하게 된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한국어로 번역이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복잡한 내용이 축약되고 단순화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역이라기보다는 원문을 의도적으로 변형하는 번역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원문의 복잡함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없고 차라리 원문의 대의를 손상하지 않는 한에서 번역문을 더 알아보기 쉽게 만드는 것이 낫다는 역자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번역자로서 홍경호는 이런 점에서 원문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취했는데, 이러한 방식의 가독성 높이기 전략을 문학 작품에 적용할 때는 원작의 중요한 의미를 훼손할 위험이 따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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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세상의 차가운 비바람이 어린아이의 마음에 처음으로 불어닥칠 때, 하느님의 빛과 사랑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선에서 사랑의 따뜻한 햇살이 아이에게 비쳐 오지 않는다면 어린아이의 가슴은 두려움에 겨워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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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번역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선에서 오는 사랑의 따뜻한 햇살은 “하느님의 빛과 사랑”에 직접 비유된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 wie ein milder Widerschein des göttlichen Lichts und der göttlichen Liebe”로서, “신의 빛과 신의 사랑을 부드럽게 반사하는 듯한”이라고 해야 원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즉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는 따뜻한 사랑의 눈길 속에 신의 빛과 사랑이 온화하게 되비친다는 것이다. 인간을 신의 반영으로 보는 신학적 비유는 이 소설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며, 그 기원은 인간을 신의 불꽃에서 유출된 그림자로 파악하는 <독일 신학>의 구절이다. 역자는 복잡한 구절을 다소 중복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단순화했겠지만, 이 축약은 막스 뮐러의 신학 사상을 삭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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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3인칭 대명사의 번역은 여전히 ‘그녀’, ‘그 여자’가 모두 사용되어 혼란스럽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녀’와 ‘그 여자’가 혼용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대체로 ‘그녀’를 쓰거나 대체로 ‘그 여자’라고 부른다. 오늘의 언어 감각에서 ‘그녀의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그 여자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는 연인의 발화가 아니라 거리를 둔 제삼자의 관찰로 느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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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경호 번역본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역주를 곳곳에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덕형, 박찬기의 번역본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보인다. 작품 속에 전편(全篇)이 인용된 매슈 아널드의 <파묻힌 생명>과 윌리엄 워즈워스의 <고지의 아가씨>에 영어 원문뿐만 아니라 독일어 번역본까지 함께 제시하고 있음이 특히 눈에 띈다. 원작에조차 이 시들은 영어로만 인용되어 있는데, 여기에 역자가 독일어 번역을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독일어 번역 자체가 상당히 옛날식이고 번역에서까지 독일어 운을 맞추려 하다 보니 원문을 다소 자유롭게 옮긴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 번역을 참고하여 번역할 경우 원문에서 거리가 먼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생겨난다. 홍경호뿐만 아니라 박찬기도 이 번역에 어느 정도 의존한 것으로 짐작된다. 영어 원작에는 없는데 독일어 번역본에서 볼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이 한국어 번역본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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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차경아(1987)|차경아 역의 <독일인의 사랑>(1987)]]<span id="차경아(1987)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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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자 차경아(1943년생)는 여기 비교된 4인의 역자 가운데 가장 젊고, 홍경호와 더불어 한글세대의 학자요 번역가다. 번역 한국어의 문체로 볼 때 이덕형과 박찬기의 번역이 구세대라면, 홍경호와 차경아의 번역은 신세대에 속한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번역 사이에 확연한 차이점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몇몇 어휘(Schleier를 베일로 옮기지 않고 면사포로 옮긴다든지 하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구세대 번역에서 독일어를 한국어로 일단 옮긴 뒤에 이를 사후적으로 우리말답게 정돈하고 조정하는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면도 큰 것으로 보인다. 홍경호와 차경아의 신세대 번역에서는 번역 자체를 위한 노력에 더하여 번역 한국어 문체를 일반 한국어 문체에 근접시키려는 노력이 많이 들어가 있다. 홍경호 번역의 경우에는 그 작업이 과도하여 원문의 의미를 축약하고 단순화하는 데까지 갔다면, 차경아는 원문에의 충실성과 한국어다운 문체의 구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추구하였다. 그 결과 차경아는 비교 대상이 된 번역본 가운데 가장 충실하고 정확하며 한국어의 운용 면에서 현대적 감각에 잘 맞는다. 3인칭 단수 여성형 인칭 대명사는 여기서 비로소 일관되게 ‘그녀’로 번역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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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경아의 번역은 다른 면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덕형 번역 <독일인의 사랑>을 오랫동안 출간해온 문예출판사는 1987년에 역자를 이덕형에서 차경아로 교체한다. 그런 만큼 차경아는 이전 번역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으며 번역에 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로 나온 것은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충실한 번역본이다. | ||
+ | 차경아 번역의 장점은 특히 원작이 일상적 방식을 넘어서는 표현을 구사하는 경우에 잘 드러난다. 이런 표현 앞에서 번역자는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없는 번역을 하거나, 아니면 원문의 의도를 왜곡하여 알기 쉬운 평범한 표현으로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원문 구절을 보자. 화자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관습과 도덕, 배려라는 구실 뒤에서 끝없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탄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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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rf doch selbst die Liebe nicht ihre eigene Sprache sprechen und ihr eigenes Schweigen schweigen, sondern sie muss die Schlagworte der Dichter lernen,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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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경아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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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지어 사랑까지도 고유의 언어를 말하지도, 고유의 침묵을 그대로 침묵하지도 못하며, 시인의 상투어를 배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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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의 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대목은 원작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주지 않으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역자들의 번역은 여기서 현저하게 벗어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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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솔직히 말하고 담담히 침묵을 지키지는 않고 시인의 명구를 빌려본다든지(이덕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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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조차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든지 자기 자신의 침묵을 솔직하게 침묵해 버린다든지 할 수가 없는 것일까? 구태여 시인의 명문구를 빌어다가 쓴다든지(박찬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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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지어 사랑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말하지도, 침묵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침묵하지 못하고, 공연히 시인의 말을 빌려(홍경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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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세 역자의 번역에서는 사랑에 고유한 언어, 고유한 침묵의 방식이 있다는 생각, 그러한 사랑의 고유성이 사회적 편견과 관습 속에서 파괴된다는 작가의 생각이 극히 평범하게 풀어져 버린다. | ||
+ | 차경아는 독일어 시제의 세밀한 의미, 어휘의 뉘앙스 등을 잘 파악하여 번역함으로써 이전 역자들이 범한 오역을 상당히 많이 교정하였다. 물론 이 번역도 결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아쉬운 오역도 더러 발견된다. 특히 이덕형의 오역이 거의 그대로 수용된 듯이 보이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박찬기 번역본에서 정확히 번역된 것이 차경아 번역에서 다시 오역으로 돌아간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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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인간도 죽음을 앞두고 동요가 없을 수는 없다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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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dass kein Mensch vor dem Tode unbeweglich wird”로서 박찬기가 한 것처럼 “어떤 인간도 죽기 전에 안 움직이게 되는 법은 없다고요”가 정확한 번역이다. 즉 살아 있는 한은 계속 움직인다는 뜻이다. | ||
+ | 차경아는 원문에 최대한 밀착하려 한 나머지 다소 딱딱하거나 한국어 어법을 침해하는 듯한 번역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몰랐었다"라는 문장이 그러하다. 물론 독일어 원문의 동사 시제가 모두 과거이긴 하지만(Da wussten wir nicht, wo wir waren, und wer wir waren),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 몰랐다“라고 함이 타당해 보인다. | ||
+ | 차경아 번역의 다른 장점은 꽤 상세한 역주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홍경호 번역본에 있는 설명이 여기에는 없는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차경아 번역본의 역주가 더 충실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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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평가와 전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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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까지 <독일인의 사랑>의 주요 번역본을 비교해 보았다. 이덕형에서 시작하여 차경아에 이르는 번역의 역사는 분명한 발전의 역사로 나타난다. 이덕형의 번역을 박찬기가 진일보시켰고, 홍경호의 번역은 부분적인 후퇴에도 불구하고 번역 한국어 문체의 발전을 보여주었으며, 차경아는 한국어다움의 측면에서나 원문에의 충실성 면에서 이전의 성과를 넘어서는 번역본을 만들어냈다. | ||
+ | 마지막으로 모든 번역에 해당하는 문제를 몇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번역 제목은 원제의 의미와 무관하게 대중의 기억에 각인된 고유명사가 되었으므로, 이를 새롭게 바꾼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 ||
+ | 지금까지의 번역에서 한 가지 매우 아쉬운 점은 작품 초반에서 대부분의 역자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유년기에 대한 상념으로 시작되는데, 화자에게 유년기는 아직 인간에게 타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이다. 어린아이는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 벽을 느끼지 못하며 자아와 우주 사이의 행복한 일치의 감정에 싸여 있다. 이를 설명하면서 막스 뮐러는 Seligkeit der Alleinheit und Allgemeinsamkeit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 ||
+ | |||
+ | 유일하고 완전한 축복의 나라 (이덕형)<br> | ||
+ | 신성과 보편성의 행복 (박찬기)<br> | ||
+ | 개성과 그 전체성이 충만한 지복 (홍경호)<br> | ||
+ | 완전하고 편재하는 행복감 (차경아)<br> | ||
+ | |||
+ | 여기서 이덕형과 홍경호는 Alleinheit를 홀로라는 의미의 부사 allein이 명사화된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 그리하여 유일이나 개성 같은 말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Alleinheit는 allein+heit가 아니라 All-Einheit이다. 일자이자 전체인 상태라는 의미로 분리할 수 없는 우주 전 존재의 통일성을 가리키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Allgemeinsamkeit는 물론 Allgemeinheit와 다른 말이다. 이것은 All과 Gemeinsamkeit의 합성어이며 모두가 함께 속해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역시 Alleinheit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박찬기는 Alleinheit를 신성으로 번역했는데, 개성이나 유일성보다는 원의에 접근하였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신성의 행복’이라고 했을 때 전체와 하나가 된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의미가 전달될지는 의문이다. ‘보편성의 행복’이라는 번역에서는 Allgemeinsamkeit가 Allgemeinheit로 잘못 옮겨져 있고 그 결과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다. ‘유일하고 완전한 축복의 나라’나 ‘완전하고 편재하는 행복감’은 모두 원문 표현의 특수한 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한 번역이고 ‘개성과 그 전체성으로 충만한 지복’이라는 번역 역시 원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Seligkeit der Alleinheit und Allgemeinsamkeit’가 이 책에서 중심 주제로 이야기되는 사랑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이 어느 번역본에서도 제대로 옮겨지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
+ |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는 소설의 화자와 여주인공 마리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번역할 것인가이다. 인물의 정확한 나이가 나오지는 않지만, 화자가 어린아이일 때 마리아는 아직 성인은 아니되 10대 후반의 나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화자가 마리아를 만난 시절 나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끼리의 관계였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du (친근한 사이에 서로 사용하는 2인칭 단수 대명사)라고 자연스럽게 부른다. 그러나 화자가 대학을 다니다가 고향 도시로 돌아와 마리아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느냐가 문제가 된다. 존칭 2인칭 대명사인 Sie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어린 시절 만났을 때처럼 du라고 부를 것인가. 두 인물이 ‘Sie’냐 ‘du’냐를 고민하는 대목에서 번역자들은 대체로 그것을 ‘당신’이냐 ‘너’냐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고 독일어 발음 그대로 ‘지’, ‘두’로 적고 괄호 속에 그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Sie’와 ‘du’의 구분이 ‘당신’과 ‘너’의 구분에 딱 떨어지게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맥락에서 인칭 대명사를 번역하지 못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번역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두 인물의 관계는 ‘Sie’라고도 ‘du’라고도 하지 못해 다소 어색해하는 단계에서 서로를 자연스럽게 ‘du’로 부르는 관계로 곧 넘어가는데, 이러한 관계의 발전이 번역 속의 대화를 통해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어로는 한결같이 서로에게 상당히 격식 있는 존댓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마리아에게 ‘천사에게는 존칭 Sie를 사용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존칭 Sie는 이 소설의 주제인 사랑과 대척점에 있는 ‘타인과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두 특별한 연인이 극존대에 가까운 말로 계속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작품의 주제 의식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나 분위기상 두 인물의 사이를 서로 반말을 하는 연인 관계로 그릴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친밀한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대화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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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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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형(1967): 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br> | ||
+ | 박찬기(1974): 독일인의 사랑. 서문당.<br> | ||
+ | 홍경호(1977): 독일인의 사랑. 삼중당.<br> | ||
+ | 차경아(1987): 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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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v style="text-align: right">김태환</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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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6일 (화) 08:40 기준 최신판
막스 뮐러(Max Müller, 1823-1900)의 소설
작가 | 막스 뮐러(Max Müller) |
---|---|
초판 발행 | 1857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종교학자, 동양학자인 막스 뮐러가 1857년에 발표한 중편소설(노벨레)이다. 총 8편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화자는 심장병으로 평생 병상에 머무르다 세상을 떠난 귀족 가문 소녀 마리아와의 만남과 순수한 사랑을 회고한다. 어린 시절 마리아를 만나 마음에 깊이 새긴 ‘나’는 대학생이 되어 고향에 왔다가 마리아를 재회한다. ‘나’는 그녀를 자주 방문하여 사랑과 종교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해가지만, 그들의 관계는 ‘나’와 마리아의 신분 격차, 마리아의 건강 상태 등을 우려하는 주변의 반대에 부딪힌다. 사랑이란 사회적 관습과 규율로 묻혀버린 진정한 삶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막스 뮐러의 사랑의 이념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국어판은 이 소설이 이미 오래전에 독일을 비롯한 구미 문화권에서 망각된 시점인 1957년에 이덕형의 번역으로 처음 출간되어 커다란 독자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한일출판사).
초판 정보
Müller, Friedrich Max(1857): Deutsche Liebe. Aus den Papieren eines Fremdlings. Leipzig: F. A. Brockhaus.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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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막스 뮐러 | 李德衡 | 1957 | 한일출판사 | 11-151 | 완역 | 완역 | ||
2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막스 뮐러 | 李德衡 | 1957 | 서울出版社 | 11-151 | 완역 | 완역 | 역자가 영어판을 참고했다고 밝힘 | |
3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막스 뮐러 | 李德衡 | 1958 | 汎文閣 | 11-151 | 완역 | 완역 | 1957년 초판 | |
4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世界文學選集 | 막스 뮐러 | 朴讚元 | 1961 | 一友社 | 11-128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5 | 첫사랑의 追憶 | 첫사랑의 追憶 | 陽文文庫 118 | M. 뮐러 | 朴贊機 | 1963 | 陽文社 | 7-132 | 완역 | 완역 | |
6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世宗文庫 46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1965 | 知文閣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발행연도 불분명. http://www.riss.kr/link?id=M3156637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Max Muller | 李德衡 | 1967 | 文藝出版社 | 25-165 | 대역본 | 대역본 | 한독대역판 | ||
8 | 사랑의 回想 | 사랑의 回想 | 막스 뮐러 | 文瑞龍 | 1970 | 翰林出版社 | 11-155 | 완역 | 완역 | 번역 과정을 상술함. 작중 시 번역에서는 영어로 된 원문을 참고했다고 밝힘 | |
9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瑞文文庫 134 | 막스 뮐러 | 朴贊機 | 1974 | 瑞文堂 | 9-164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10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막스 뮐러 | 朴讚元 | 1974 | 興文圖書 | 11-124 | 완역 | 완역 | ||
11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Max Muller | 李德衡 | 1975 | 德文出版社 | 6-205 | 대역본 | 대역본 | 영한대역판 | |
12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世宗文庫 46 | M. 뮐러 | 金光瞿 | 1975 | 世宗出版公社 | 3-140 | 완역 | 완역 | |
13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확인불가 | 朴讚元 | 1975 | 개풍인쇄소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발행연도 불분명. http://www.riss.kr/link?id=M5687660 |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三中堂文庫 300 | 막스 뮐러 | 洪京鎬 | 1976 | 三中堂 | 6-148 | 편역 | 완역 | 저자의 부친인 빌헬름 뮐러의 시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 | |
15 | 확인불가 | 獨逸人의 사랑 | 확인불가 확인불가 | 확인불가 | 李德衡 | 1976 | 文音出版社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
16 | 독일인의 사랑 | 世界靑春文學名作選 12 |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1976 | 學園出版社 | 5- | 편역 | 확인불가 | 1976년 학원 3월호 부록이라 표기되어 있음, 마지막 페이지 불분명 | |
17 | 獨逸人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동서문고 122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白樂暈 | 1977 | 동서문화사 | 9-118 | 편역 | 완역 | <金髮의 에크베르트> 수록 119-147 |
18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文藝文庫 77 | 막스 뮐러 | 李德衡 | 1979 | 文藝出版社 | 3-155 | 완역 | 완역 | |
19 | 獨逸人의 사랑 | 現代文學全集 6. 獨逸人의 사랑 | 現代文學全集 6 | 막스 월러 | 이근수 | 1981 | 共同文化社 | 7-125 | 편역 | 완역 | |
2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조창섭 | 1981 | 남명문화사 | 5-147 | 완역 | 완역 | 역자가 저자의 머리말을 임의로 미수록했음을 밝힘 | |
21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자이언트문고 114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白樂暈 | 1982 | 文公社 | 9-118 | 편역 | 완역 | <金髮의 에크베르트> 수록 119-147 *동서문화사(1977)과 동일 |
2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범우사르비아문고 40 | 막스 뮐러 | 홍경호 | 1982 | 汎友社 | 17-159 | 완역 | 완역 | |
23 | 獨逸人의 사랑 | 獨逸人의 사랑 | 막스 뮐러 | 張伯逸 | 1982 | 두풍 | 9-133 | 완역 | 완역 | 작중 시의 영어본, 독어본이 수록되어 있음. 이재훈 삽화 | |
2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동호하이틴신서 27 | 막스 뮐러 | 강은형 | 1983 | 동호서관 | 7-140 | 완역 | 완역 | |
25 | 확인불가 | 독일인의 사랑 | 확인불가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최도성 | 1983 | 세경서원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실물 확인불가 |
2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ar book, 베어북 14 | 막스 뮐러 | 조찬빈 | 1984 | 문장사 | 11-119 | 완역 | 완역 | |
2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최도성 | 1984 | 보성출판사 | 3-151 | 완역 | 완역 | ||
2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st hundred books, 삼중당문고 100권의 책 72 | M. 뮐러 | 홍경호 | 1984 | 삼중당 | 7-135 | 편역 | 완역 | 저자의 부친인 빌헬름 뮐러의 시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 |
2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原書合本시리즈 8 | 막스 뮐러 | 金思京 | 1984 | 學一出版社 | 7-102 | 대역본 | 대역본 | 한독대역판 |
3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그랜드북스, Grand books 81 | M. 뮐러 | 尹賢珠 | 1986 | 일신서적공사 | 7-121 | 편역 | 완역 | 초판, <금발의 에크베르트>수록 125-154 |
3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김용곤 | 1986 | 巨岩 | 3-143 | 완역 | 완역 | ||
3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글방문고 32 | 막스 뮐러 | 홍경호 | 1986 | 글방문고 | 5-131 | 편역 | 완역 | 1990 중판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차경아 | 1987 | 文藝出版社 | 5-112 | 완역 | 완역 | 신역판. 이덕행 역의 1967년판을 초판으로 삼음 | ||
3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풍림명작신서시리즈 6 | 막스 뮐러 | 이영조 | 1987 | 豊林出版社 | 7-122 | 완역 | 완역 | |
3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이성계 | 1987 | 민중서각 | 5-112 | 완역 | 완역 | ||
3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語文閣世界文學文庫 129 | 막스 뮐러 | 김명수 | 1988 | 어문각 | 9-121 | 완역 | 완역 | |
37 | 독일인의 사랑 | 現代世界短篇文學 350人選 2 | (The)world selection short story 2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金平玉 | 1988 | 良友堂 | 197-268 | 편역 | 완역 | |
3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장형근 | 1989 | 고려문학사 | 9-100 | 대역본 | 대역본 | 한영대역판 | |
3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을지선서 64 | 막스 뮐러 | 윤승태 | 1989 | 을지출판사 | 5-131 | 완역 | 완역 | |
4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마로니에 북스 3 | 막스 뮐러 | 김형길 | 1989 | 청림출판 | 5-128 | 완역 | 완역 | |
4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이경숙 | 1990 | 그대로 | 11-124 | 완역 | 완역 | ||
4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동아리 글모음 9 | 막스 뮐러 | 김희구 | 1990 | 덕우출판사 | 7-115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4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황의백 | 1990 | 카나리아 | 4-117 | 완역 | 완역 | ||
4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포에버북스, Forever books 7 | F. M. 뮐러 | 정성호 번역센터 | 1991 | 오늘 | 11-128 | 완역 | 완역 | <금발의 에크베르트>수록 129-161 |
4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밀러 | 차미숙 | 1991 | 예지원 | 15-131 | 완역 | 완역 | ||
4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stseller worldbook 16 | 막스뮐러 | 박용철 | 1991 | 소담출판사 | 9-129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4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선영선서 7 | 막스 뮐러 | 이남수 | 1992 | 선영사 | 9-119 | 완역 | 완역 | 재판, 1988년 초판 |
4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김유주 | 1992 | 우래 | 5-135 | 완역 | 완역 | ||
4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st book, 베스트 북 6 | 막스 뮐러 | 이란욱 | 1994 | 한실미디어 | 9-129 | 완역 | 완역 | |
5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삼성기획신서 29 | 막스 뮐러 | 원강희 | 1994 | 삼성기획 | 7-132 | 완역 | 완역 | |
51 | 독일인의 사랑 | 사랑이 열리는 책나무 | 책나무 2 | 막스 뮐러 | 신라원 편집부 | 1994 | 신라원 | 132-256 | 편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52 | 독일인의 사랑 | 그대를 위해 세상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 종이숲 2 | 막스 뮐러 | 신라원 편집부 | 1994 | 신라원 | 132-256 | 편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5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한아름문고 16 | 막스 뮐러 | 류동백 | 1994 | 교육문화연구회 | 7-134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5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세계명작 31 | 막스 뮐러 | 정돈영 | 1994 | 상서각 | 7-155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정명호 그림 |
5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다이내믹 북스 4 | F. 막스 뮐러 | 오인식 | 1994 | 덕성문화사 | 7-119 | 완역 | 완역 | |
56 | 독일인의 사랑 | 즐거운 독서여행 3 | 민들레 문고 4 |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1994 | 내일을 여는 책 | 220-222 | 편역 | 편역 | 강혜원, 박영신, 이용수 엮음 |
5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범우사르비아문고 40 | 막스 뮐러 | 홍경호 | 1995 | 범우사 | 13-161 | 완역 | 완역 | 2판 |
5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동아리문고 9 | 막스 뮐러 | 김희구 | 1996 | 다모아 | 7-115 | 완역 | 완역 | 중판 2쇄. 덕우출판사의 1990년판이 초판.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5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Hong Shin dream books 51 | 막스 뮐러 | 이경석 | 1997 | 홍신문화사 | 11-138 | 완역 | 완역 | 중판, 1992 년 초판 |
6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서문문고 134 | 막스 뮐러 | 박찬기 | 1997 | 서문당 | 13-179 | 완역 | 완역 | 개정판.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6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채은영 | 1997 | 책마당 | 5-140 | 완역 | 완역 | 이석영 그림 | |
6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열린문고 8 | 막스 뮐러 | 윤현주 | 1998 | 일신서적출판사 | 7-116 | 편역 | 완역 | <금발의 에크베르트>수록 117-147 |
6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이정문 | 1998 | 문화사랑 | 7-121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성혜영 그림 | |
6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Hye Won world best 23 | 막스 뮐러 | 추지영 | 1998 | 혜원출판사 | 3-144 | 완역 | 완역 | |
6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홍신드림북스, Hong Shin dream books 51 | 막스 뮐러 | 이경석 | 1999 | 홍신문화사 | 11-138 | 완역 | 완역 | 중판, 1992 초판 |
6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이남수 | 1999 | 선영사 | 3-155 | 완역 | 완역 | 1판 1쇄 | |
6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사랑을 주제로 한 세계명작 시리즈 1 | 막스 뮐러 | 윤경훈 | 2000 | 푸른나무 | 7-153 | 완역 | 완역 | |
6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하서명작선 81 | 막스 뮐러 | 윤순호 | 2000 | 하서 | 3-174 | 완역 | 완역 | |
6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차경아 | 2000 | 문예출판사 | 6-125 | 완역 | 완역 | 개정판 (다시 펴냄) | |
7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steady books 20 | 막스 뮐러 | 민동선 | 2000 | 청목 | 7-145 | 편역 | 완역 | 저자의 부친인 빌헬름 뮐러의 시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 |
7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작은책시리즈 2-7 | 막스 뮐러 | 이윤주 | 2001 | 오늘의 책 | 5-210 | 완역 | 완역 | 개정판 2007년. 성혜영 그림 |
72 | 독일인의 사랑 | (중학생이 보는)독일인의 사랑 | 중학생 독후감 필독선 18 | 막스 뮐러 | 권응호 | 2001 | 신원문화사 | 10-150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7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F.막스 뮐러 | 오영훈 | 2002 | 북스토리 | 9-186 | 완역 | 완역 | ||
7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세계명작 116 | 막스 뮐러 | 유한준 | 2002 | 대일출판사 | 8-209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7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도희서 | 2002 | 태동출판사 | 5-182 | 완역 | 완역 | ||
7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서유리 | 2003 | 책만드는집 | 12-198 | 완역 | 완역 | ||
7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Hongshin basicbooks 17 | 막스 뮐러 | 이경석 | 2003 | 홍신문화사 | 11-157 | 완역 | 완역 | 초판 2쇄, 1992 년 초판.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7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stsellerworldbook 16 | 막스 뮐러 | 박용철 | 2003 | 소담출판사 | 9-139 | 완역 | 완역 | 중판.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7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세계명작 바로읽기 2 | 막스 뮐러 | 도일우 | 2003 | 숲속의 꿈 | 11-147 | 완역 | 완역 | |
8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청소년필수교양도서 | 막스 뮐러 | 김희구 | 2003 | 윤진 | 5-117 | 완역 | 완역 | 중판. 덕우출판사의 1990년판이 초판.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8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김시형 | 2003 | 베텔스만 코리아 | 5-187 | 완역 | 완역 | ||
8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Highteen Readers 6 | 막스 뮐러 | 원강희 | 2003 | 육문사 | 7-132 | 완역 | 완역 | 중판 |
8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Never ending books 21 | 막스 뮐러 | 김희구 | 2003 | 문학창조사 | 5-117 | 완역 | 완역 | |
8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stseller minibook 6 | 막스 뮐러 | 안영란 | 2004 | 소담출판사 | 10-209 | 완역 | 완역 | |
8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이난옥 | 2004 | 민중출판사 | 10-218 | 완역 | 완역 | 초판 2쇄, 1995년 초판 | |
8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Positive power of classic | 막스 뮐러 | 강명순 | 2004 | 좋은생각 | 8-202 | 완역 | 완역 | 김선진 그림 |
8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세계 명작, 초등학생을 위한 세계명작 | 막스 뮐러 | 차성준 | 2005 | 홍진미디어 | 19-177 | 완역 | 완역 | |
8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World literature for junior, 논리논술과 함께 하는 세계문학, 주니어 논술문학 31 |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2005 | 삼성비엔씨 | 9-148 | 완역 | 완역 | 김소연 엮음. 심명섭 그림 |
8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World's classics | 막스 뮐러 | 김명수 | 2005 | 어문각 | 7-165 | 완역 | 완역 | 개정판. 초판 1991년 |
9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에버그린 북스 12 | 막스 뮐러 | 차경아 | 2005 | 문예출판사 | 6-140 | 완역 | 완역 | 4판 |
9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사르비아 총서 639 | 막스 뮐러 | 홍경호 | 2005 | 범우사 | 11-169 | 완역 | 완역 | 3판 |
9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Never ending worldbook | 막스 뮐러 | 김시오 | 2010 | 브라운힐 | 5-175 | 완역 | 완역 | 2013년 2쇄지만 ISBN은 다름 (9788990324696) |
9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프리미엄 클래식명작 | 막스 뮐러 | 박소연 | 2010 | 글로북스 | 11-223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9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클래식 세계명작 30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2011 | 대교 | 7-139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변우만 엮음 |
95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고려대학교청소년문학시리즈 24 | 막스 뮐러 | 서장원 | 2011 | 고려대학교출판부 | 5-165 | 완역 | 완역 | |
9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1 | 막스 뮐러 | 장혜경 | 2011 | 푸른숲주니어 | 9-147 | 완역 | 완역 | |
97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현행 교육 과정을 충실히 반영 국어·문학 18종 교과서에 나오는)논술세계대표문학 54 |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2011 | 훈민출판사 | 12-177 | 완역 | 완역 | 이연희 엮음.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판권기가 없어 발행연도가 불분명함 |
9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서유리 | 2012 | 책만드는집 | 12-198 | 완역 | 완역 | 개정판 1쇄 *2003년 초판과 동일 | |
9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Classic letter book,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23 | 막스 뮐러 | 염정용 | 2012 | 인디북 | 5-167 | 완역 | 완역 | |
10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Bear book series 1 | F. 막스 뮐러 | 조찬빈 | 2012 | 문장 | 4-159 | 완역 | 완역 | |
10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8 | 막스 뮐러 | 배명자 | 2012 | 미르북컴퍼니 | 6-107 | 완역 | 완역 | 출판사 산호와진주의 판본(2012)은 해당 도서의 전자책임 |
10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장편 소설, 세계문학산책 14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붉은여우 | 2013 | 넥서스 | 7-167 | 완역 | 완역 | |
103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8 | 막스 뮐러 | 배명자 | 2014 | 더클래식", 미르북컴퍼니 | 6-163 | 완역 | 완역 | 개정판, 미니북 |
104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문예 세계문학선 120 | 막스 뮐러 | 차경아 | 2015 | 문예출판사 | 6-157 | 완역 | 완역 | 6판 (2010년 5판과 ISBN 동일) |
105 | 독일인의 사랑 | 필사의 힘 | 월드클래식 라이팅북, World classic writing book 7 |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2016 | 미르북컴퍼니 | 14-248 | 완역 | 완역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
106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Dream books 미니명작 94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확인불가 | 2016 | 금성출판사 | 4-91 | 개작 | 개작 | 저자의 머리말 미수록. NJK 엮음. 시리즈 설명에 원작의 축역과 재구성이 있음이 표기됨. 헬렌 메이틀랜드 암스트롱 외 그림 |
107 | 불꽃 속에서 건져낸 글 | 위대한 서문 |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염정용 | 2017 | 열림원 | 243-246 | 편역 | 편역 | 해당 작품의 서문만 발췌 | |
108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소설, 범우문고, Bumwoo library 307 | 막스 뮐러 | 홍경호 | 2018 | 범우사 | 11-172 | 완역 | 완역 | |
109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김시오 | 2018 | 한비미디어 | 5-175 | 완역 | 완역 | ||
110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8 | 막스 뮐러 | 배명자 | 2019 | 미르북컴퍼니", 더클래식 | 6-151 | 완역 | 완역 | (신)개정판, 미니북 |
111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김영진 | 2021 | 자화상 | 4-144 | 완역 | 완역 | ||
112 | 독일인의 사랑 |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김영진 | 2021 | 자화상 | 4-167 | 완역 | 완역 | 미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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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독일인의 사랑>은 매우 독특한 번역 수용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자 종교학자, 동양학자인 막스 뮐러(1823-1900)의 유일한 소설이다. 그는 영국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학문적 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주요한 학술 저작은 영어로 집필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만은 독일어로 썼다.
<독일인의 사랑>의 초판은 1857년에 익명으로 라이프치히의 브로크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책이 인기를 누리고 판을 거듭하면서 저자가 옥스포드의 교수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임이 알려졌다. 뮐러가 죽을 때까지 이 소설은 20판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인기는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출간 즉시 영국에서 영역판이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미국에서는 1874년에 무단으로 다른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뮐러의 아내 조지나 그렌펠(Georgina Grenfell)이 후에 다시 영어로 번역했고, 막스 뮐러는 이 번역본을 원어에 더 충실하고 문체를 더 잘 살린 정본으로 인정했다. <독일인의 사랑>은 이 외에 다른 유럽권의 여러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막스 뮐러 사후, 그러니까 20세기 이후 이 작품은 점점 잊혀 갔다. 1913년에 독일에서 페이퍼백으로 출간되었으나, 1차세계대전 이후 전통적 미적, 윤리적 가치가 위기에 빠지고 실험적인 현대적 문학, 예술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면서 <독일인의 사랑>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분의 격차와 생과 사의 대립을 뛰어넘은 순수한 영혼과 사랑의 이야기는 당대적 관점에서는 너무 낡은 것으로 보였고, 그 문학사적 가치를 인정하기에는 낭만주의의 아류라는 혐의가 너무 짙었다. 1920년대에 작품이 절판된 이후, 독일에서 프락투어를 현대 표기체로 바꾸어 새로 편집한 판본은 2011년에서야 출간되었다. 막스 뮐러는 학자로서, 특히 인도학자로서 이름을 남겼지만 <독일인의 사랑>의 저자라는 사실은 전혀 중시되지 않는다.
이런 작품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져 가장 널리 읽힌 독일문학 작품의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1957년에 당시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이덕형이 처음으로 번역했는데, 그는 역자 서문에서 독문과 수업을 통해 <독일인의 사랑>을 접하여 작품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서 그는 영역판도 많이 참고했음을 고백한다). 독일문학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 작품이 서울대 독문학과 커리큘럼 속에 들어온 경위에 대해서 추측해볼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단서는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 자료실 소장 목록을 보면) 1944년 도쿄에서 독일어판으로 출판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Max Müller: Deutsche Liebe: mit Einleitung und Anmerkungen versehen von Morio Sagara. Tokio 1944). 그것은 일본의 대학이나 학교에서 독일어 읽기 교재로 <독일인의 사랑>이 사용되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도 1960년대에 이런 교재용 독일어 판본이 출간된 것을 볼 수 있다.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서울: 창문사 1960). 그러한 영향 속에서 읽기 교재로 국내에서도 이 작품이 읽혔고, 그것이 결국 독문학자가 아닌 영문학도의 관심을 끌어 번역 출간되기에 이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초판이 발간되고 10년 뒤에 이덕형은 문예출판사에서 새로 개역판을 출간하면서 <독일인의 사랑> 초역이 유감스럽게도 같은 해 카뮈의 <전락> 출간과 노벨상 수상 소식에 밀려 큰 관심을 보지 못하고 독문학도나 사보는 책이 되었다고 술회하지만, 60년대에도 이덕형의 처음 번역본이 계속 판을 거듭한 것, 1959년 박찬원의 번역이 출간되고 1960년대에도 다른 번역들이 뒤를 따른 것을 보면, 어쨌든 <독일인의 사랑>이 이미 당시에 한국 독자에게 상당히 알려진 작품이 된 것은 분명하다. 신문 기사들을 살펴보면 <독일인의 사랑>의 인기는 1970년대에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인의 사랑>은 늦어도 1971년부터 해외 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추세가 장기적으로 계속되면서 세계문학 필독서의 대열에 올랐다. 높은 인기를 누린 만큼 수많은 번역본의 난립 상태가 된다. 박찬기 외에, 홍경호(삼중당 1976)가 독문학자로서 <독일인의 사랑> 번역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 외에 수많은 번역자의 번역이 70년대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쌓여왔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전국 도서관의 소장 현황을 보면 이덕형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퍼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7년에 문예출판사 번역은 차경아 번역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덕형 번역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독일인의 사랑> 대표 번역의 자리를 차경아 번역이 차지하게 된다. 새로운 역자 차경아는 역자 후기에서 자신도 학생 시절 이덕형 선생님의 번역으로 작품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히며 최초 소개자 이덕형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로써 <독일인의 사랑>의 대표적인 번역본이 30년 만에 영문학자의 번역이 독문학자의 번역으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독문학계의 국외자로서 작품을 처음 독자들에게 소개한 이덕형의 번역이 어떤 특성을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독문학자 차경아의 번역이 어떤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번역 비평의 한 가지 포인트가 된다.
<독일인의 사랑>의 한국에서의 성공은 이제 독일에도 소개되었다. <독일인의 사랑>이 1920년대에 독일에서 마지막으로 출간되고 절판된 다음, 2011년에 비로소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신판의 편자인 필립 그리프(Philipp Grieb)는 작품 소개글에서 이 소설이 한국에서 독일문학 작품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독일 문학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매우 다양한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여전히 여러 번역본이 여전히 시중에 나와 있지만, 상업적인 동기를 넘어서 원작에 접근하려는 학문적 진지성과 성실성을 인정할 수 있는 번역본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할 만한 대상으로 이덕형, 박찬기, 홍경호, 차경아의 번역을 선정하였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덕형 역의 <독일인의 사랑>(1967년 개역판)
<독일인의 사랑>은 수용의 맥락이 그 어떤 다른 작품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을 초역한 이덕형이 붙인 역자 서문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그는 아직 대학생으로서, 게다가 영문학도로서 일반적으로 독문학 작품 역자로서의 자격이나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독일인의 사랑> 역자가 된 것은 작품을 우리말로 독자들에게 읽히게 해야겠다는 역자 개인의 열정적 관심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이러한 사정은 역자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1957년에 나온 이 책의 역자 서문에서 이덕형은 진정한 사랑이나 연애가 희귀해지고 가벼운 사랑, 몇 번이고 연애를 고쳐 하고 결혼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세태, ‘지금은 20세기야’라는 말 한마디로 그런 것이 오히려 모던한 것으로 통하는 시대, 죽음을 불사하는 순수한 사랑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시대를 한탄한다. 이는 다소 대학생다운 순진한 토로의 느낌을 주지만,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독일인의 사랑>이 수용된 기본적 맥락을 투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소설은 귀족과 시민의 계급 차이가 여전히 사랑의 장벽이 되는 사회에서 그것을 뛰어넘는 주인공과 마리아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마리아의 불치병과 죽음은 여기에 비극적 빛을 더하지만,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에 사랑의 마음이 연인 사이에 전해지면서, 작품은 그들의 사랑이 궁극적 화해와 변용에 이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죽음의 빛이 드리워진 고도로 정신화된 낭만주의적 사랑, 19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한 ‘독일적 사랑’을 역자는 순정이 사라져버린 20세기의 가벼운 연애 풍조에 맞서는 안티테제로서 이해한 것이다. 독일이나 유럽의 문맥에서 낭만주의의 완전한 종언과 현대적 사조의 도래가 낭만주의의 끝자락에 있는 막스 뮐러의 작품을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했다면, 오히려 한국에서는 파괴된 낭만성에 대한 의식이 작품의 활발한 수용 배경이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도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인다. 압축적 근대화는 문화 차원에서도 일어났으니, 한국에는 유럽의 18~19세기적 낭만적 사랑의 개념도 20세기에야 들어왔고, 탈낭만과 현대성의 의식도 곧이어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문화에서는 탈낭만을 현대적인 것, 모던한 것으로 보는 태도와 낭만적 동경의 태도가 같은 시대에 중층적으로 공존했고, 그만큼 현대적인 것에 대한 ‘낭만적 반동’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여 <독일인의 사랑>을 한국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개역판의 서문에서 10년의 세월 뒤에 학생이 아니라 교수가 된 역자는 좀 더 차분한 어조로 작품의 의미를 해설한다. 그러나 영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냉소적인 20세기 영문학 작품이나 젊은 학생들의 경박한 물질주의는 역자를 다시 “옛날 애인” <독일인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여기서도 이덕형은 잃어버린 낭만적 정신의 부활을 꿈꾼다.
또 하나 개역판 서문에서 의미 있는 추가 사항은 뮐러와 윌리엄 워즈워스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지적한 점이다. 뮐러는 작품 속에서 워즈워스의 시 <고지의 소녀>를 인용하고 있거니와, 역자는 뮐러가 사상적으로 자연과 유년기에서 인간 존재의 신성한 기원을 상기하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이로써 역자는 뮐러의 소설이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사상적,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읽힐 것을 희망한다.
이덕형은 번역 초판 서문에서 영역본의 도움을 받으며 번역에 임했다고 밝히면서 비전공자로서 독일어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체적인 번역 수준을 볼 때 그의 독일어 공부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꼼꼼하게 번역했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했다. 다만 오늘의 한국어 감각에 비추어볼 때 어휘는 상당히 낡게 느껴지는 것이 많고(예컨대 스위스를 여전히 “서서”로 번역하거나, Freuden을 기쁨이 아니라 “희락”이라고 하는 것), 문장은 종종 일차적 번역 이후 잘 마무리되지 않아서 덜 정돈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이 지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오래 계속해 있지 못한다”, “괴로워하는 천사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나에게 매력을 갖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다” 같은 번역 문장이 그러하다. 이런 문장들은 “어린 시절의 하늘에 낀 구름은 오래 가지 못한다”나 “고통을 겪는 천사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나의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매력적인 느낌을 남겼다” 정도로 번역함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시적이고 감성적인 원문의 문체가 의미 전달 위주의 번역을 통해 ‘산문화’되는 경향이 있다. 막스 뮐러의 작품은 주인공 자신이 쓴 수기이고,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회상의 주체가 생각을 더듬어가는 것을 표현하는 듯한 긴 줄표나 감탄문이 많이 사용된다. 이덕형의 번역은 줄표를 거의 없애고 가능한 한 완결된 문장으로 만들거나 감탄문을 서술문으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그 때엔 우리 자신이 어디 있는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온 세상은 우리의 것이었고 우리는 곧 전 세계의 것이었다. 처음도 끝도 없고 휴식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생명이었다.
이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Da wussten wir nicht, wo wir waren, und wer wir waren - da war die ganze Welt unser, und wir gehörten der ganzen Welt. Das war ein ewiges Leben - ohne Anfang und ohne Ende - ohne Stillstand, ohne Schmerz.(5)
원문에 이어지는 줄표들은 추억에 잠기면서 잠시 멈추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어가는 수기의 필자를 떠오르게 하는데, 그것이 모두 생략됨으로써 머뭇거리며 회상하는 자아의 정조가 사라지고 만다.
다음 대목의 경우도 번역문이 원문을 지나치게 매끄럽게 만들어서 원문의 문체적 인상이 살아나지 않는 예이다. 그 다음으로
기억하는 것은 별의 세계나 오랑캐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 열려온 일이다. 부활제의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33)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Ja, und dann erinnere ich mich, wie wieder eine neue Welt sich mir auftat, und die war schöner als die Sternenwelt und der Veilchenduft. Das war an einem Ostermorgen.(6)
여기서 화자는 먼저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린 일이 생각난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und’라는 접속사를 넣은 뒤에 그 세계가 앞서 이야기한 다른 세계, 즉 별의 세계와 오랑캐꽃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웠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역자는 화자가 뒤에 덧붙인 문장을 ‘새로운 세계’를 수식하는 관형절로 만들어버린다. 이로써 문장은 원문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읽히나, 글쓰기의 주체가 생각해가면서 말을 만들고 덧붙여가는 과정 자체가 드러나는 수기 특유의 문체는 사라진다.
부주의한 누락이나 오역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특히 독일어 문법에 대한 세밀한 감각이 필요한 경우에 역자는 많은 실수를 범했다. 예컨대 소설에서 정확한 번역을 위해 필수적인 독일어 시제의 정확한 파악이 안 되는 바람에 과거완료를 단순 과거로, 과거를 현재형으로 번역하여 원문의 본의가 곡해된 경우가 더러 나타났다. 예컨대 의사에게서 헤어질 것을 요구받았을 때 주인공은 마리아의 사랑을 새삼 깨달으며 “Oh, welche Seligkeit war mir so nah”라고 외치는데, 역자는 이를 “어떤 행복이 내게 그토록 가까이 있었던가”라고 하지 않고 “오, 어떠한 천복이 나의 곁에 있는 것일까?”라고 번역하여 주인공의 안타까운 마음을 제대로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아무래도 역자가 독문학 전공자가 아니었다는 사실로 돌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 외에 이덕형 번역에서 특이한 점은 여성 인칭 대명사 ‘sie’를 ‘그녀’로 옮기지 않고 모두 ‘그 여자’라는 표현으로 통일하다시피 한 것이다.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마리아를 3인칭으로 가리킬 때도 ‘그 여자’라고 하여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녀’라는 대명사의 사용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거부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서양 언어로 된 작품을 번역하면서 여성형 인칭 대명사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무리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상당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덕형의 번역은 <독일인의 사랑>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 번역으로서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을 결정적으로 각인했다. 이 소설이 번역 이전에도 독문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독일인의 사랑”이라고 불렸는지, 아니면 역자가 처음 시도한 번역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어쨌든 원제 “Deutsche Liebe”를 “독일인의 사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어차피 독일이고 독일어로 쓰인 독일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면, 저자가 그것에 굳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독일적 사랑’이라는 의미일 텐데, 여주인공 마리아가 워즈워스의 사랑관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괴테의 베르터 식 사랑과 대비시키는 것을 보면, 왜 막스 뮐러가 이 소설의 사랑을 굳이 ‘독일적’이라고 한 것인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소설 전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세 신비주의 저서의 제목이 ‘독일 신학(Deutsche Theologie)’이라는 사실이 작품 제목과 관련하여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Deutsche Theologie’가 독일인의 신학이 아니라 독일 신학, 혹은 독일적 신학인 것과 마찬가지로 ‘Deutsche Liebe’ 역시 ‘독일 사랑’ ‘독일적 사랑’으로 번역해야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덕형의 초역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래 제목을 다르게 번역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만큼 이덕형의 선택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독일적 사랑’보다는 ‘독일인의 사랑’이 독자들에게 훨씬 더 호소력 있는 제목이라는 상업적 판단이 이런 번역의 고착화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
이덕형 번역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는 작품 속에 삽입된 매슈 아널드의 시 제목 ‘The Buried Life’의 번역이다. 이덕형은 이를 ‘파묻힌 생명’이라고 옮겼는데, 시의 내용을 보면 ‘묻혀 있는 삶’, ‘감추어진 인생’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life’가 보이지 않는 저층을 관류하는 강에 비유되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묻어둔 듯한 인상을 주는 ‘파묻힌’이라는 표현은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역자들도 마치 관성을 따르는 듯이 모두 ‘파묻힌 생명’이라는 번역 제목을 택했다.
박찬기는 이덕형과 같은 세대의 번역가라고 할 수 있으며, 연배로는 이덕형보다 몇 년 위의 학자이지만, <독일인의 사랑> 번역자로서는 이덕형보다 훨씬 뒤에야 등장한다. 박찬기의 번역을 이덕형의 번역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두 역자가 같은 세대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다소 장황한 말투 때문에 지금의 한국어 감각에 맞지 않는 번역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뭏든 이곳의 어떠한 것도 내가 상상하였던 것과 같은 가장무도회의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었다”라든가 “한량없이 깊은 그 여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나의 눈초리가 새로이 열려져 간 것이었다”와 같은 문장이 그러하다. 또한 박찬기는 sie라는 대명사에 대해 ‘그녀’와 ‘그 여자’를 모두 사용하고 대화 속에 나오는 sie는 마리아와 말하는 사람의 관계를 고려하여 ‘그 분’ 등 적절히 다른 지칭을 사용하여 이덕형보다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번역을 선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주인공)가 애인 마리아를 반복적으로 ‘그 여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의 언어 감각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박찬기의 번역은 독문학자의 본격적인 번역으로서 새로운 번역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준다. 물론 이 번역 자체에도 부분적인 오역이나 개선할 점이 남아 있지만, 그리고 때로는 이덕형 번역의 오류가 그대로 이어진 것도 없지 않지만, 박찬기는 많은 부분에서 정확한 독일어 구문 파악에 입각한 유려한 번역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덕형 번역에서 간혹 나타나는 부주의한 누락은 찾아보기 어렵고, 세밀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에 잘 대응되도록 번역되어 있다. 다른 모든 역자들이 원문을 오해하는 가운데 오직 박찬기의 번역에서만 정확한 의미 파악이 이루어진 경우도 간혹 있다. 예컨대 다음 대목의 경우가 그러하다. 일단 원문은 다음과 같다.
“Es geht doch nichts über ein wirkliches Menschengesicht”, sagte ich, “und selbst ein Rafael hätte so etwas nicht erfinden können.”
이 구절은 마리아가 주인공에게 이름 없는 화가가 그린 한 남자의 초상을 보여주었을 때 주인공이 보인 반응이다. 그림 속 남자의 얼굴을 보며 주인공은 그 인상의 진실성 때문에 실존 인물을 그린 것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끝에 마리아에게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래서 진짜 인간의 얼굴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진짜 얼굴을 진실되게 그린 초상이 가장 가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어서 그는 제아무리 뛰어나다 하는 라파엘도 저런 얼굴을 상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고 덧붙인다. 따라서 이는 무명의 화가가 라파엘보다 잘 그렸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라파엘 같은 대가도 상상으로 저렇게 감동적인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낼 재주는 없다. 진짜 얼굴을 그린 그림보다 더 뛰어난 그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저 구절에 담긴 의미이다. 박찬기의 다음 번역에서는 이 의미가 잘 살아 있다.
“실제 인간의 초상화보다 더 나은 것은 있을 수 없군요. 라파엘로 같은 화가도 이와 같은 것을 창작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면 “이 참된 화상을 결코 능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라파엘도 이런 창작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덕형). “실제 인물의 초상화로서는 이 이상을 능가할 것은 없겠는데요. 라파엘 같은 사람이라도 이런 것을 그려낼 수는 없을 것 같군요.”(홍경호) “진짜 살아 있는 인간의 얼굴도 이 그림을 능가할 수 없을 겁니다. 라파엘이었다 해도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진 못했을 거예요.”(차경아)와 같은 번역은 모두 원문의 본의를 놓치고 있다.
끝으로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은 박찬기 번역의 특이한 면, 혹은 문제점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우선 1866년에 막스 뮐러가 추가한 서문이 누락되어 있다. 둘째, 박찬기는 소설의 제1장 처음 몇 단락을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늘 그 독특한 비밀과 독특한 경이가 있는 것입니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경어체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중립적인 비경어체로 전환된다. 이 전환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소설의 형식이 편지가 아니라 화자-주인공의 수기인 까닭에 경어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소설의 장 제목은 “Die erste Erinnerung”에서 “Die letzte Erinnerung”까지, 각각 ‘첫 번째 회상’, ‘두 번째 회상’, ‘세 번째 회상’, ‘네 번째 회상’, ‘다섯 번째 회상’, ‘여섯 번째 회상’, ‘일곱 번째 회상’, ‘마지막 회상’으로 번역함이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회상을 추억으로 바꿀 수는 있겠으나, 박찬기는 최초의 추억으로 시작하여 제2의 추억, 제3의 추억 등으로 번역하여 제목에서 일관성과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홍경호는 나이로 박찬기보다 10년 후배 독문학자로서, 홍경호의 번역가로서 이력은 1970년대에 시작된다. 1950년대에 이미 번역 활동을 시작한 박찬기와 이덕형과는 생물학적 나이 이상의 세대적 간극이 있다. 그만큼 홍경호 번역의 언어는 낡은 번역투의 느낌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한국어로 읽힌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전 번역의 근본적 오류를 얼마나 극복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긍정적 답변을 하기 어렵다. 문장은 가독성 있고 경제적인 한국어 문장으로 다듬어졌으나, 이전 번역본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원문에 깊이 파고들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일부 과거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은 대목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덕형, 박찬기의 번역 실수나 오역이 걸러지지 않고 홍경호 번역에 들어와 있는 것을 더 자주 발견하게 된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한국어로 번역이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복잡한 내용이 축약되고 단순화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역이라기보다는 원문을 의도적으로 변형하는 번역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원문의 복잡함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없고 차라리 원문의 대의를 손상하지 않는 한에서 번역문을 더 알아보기 쉽게 만드는 것이 낫다는 역자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번역자로서 홍경호는 이런 점에서 원문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취했는데, 이러한 방식의 가독성 높이기 전략을 문학 작품에 적용할 때는 원작의 중요한 의미를 훼손할 위험이 따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낯선 세상의 차가운 비바람이 어린아이의 마음에 처음으로 불어닥칠 때, 하느님의 빛과 사랑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선에서 사랑의 따뜻한 햇살이 아이에게 비쳐 오지 않는다면 어린아이의 가슴은 두려움에 겨워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 번역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선에서 오는 사랑의 따뜻한 햇살은 “하느님의 빛과 사랑”에 직접 비유된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 wie ein milder Widerschein des göttlichen Lichts und der göttlichen Liebe”로서, “신의 빛과 신의 사랑을 부드럽게 반사하는 듯한”이라고 해야 원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즉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는 따뜻한 사랑의 눈길 속에 신의 빛과 사랑이 온화하게 되비친다는 것이다. 인간을 신의 반영으로 보는 신학적 비유는 이 소설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며, 그 기원은 인간을 신의 불꽃에서 유출된 그림자로 파악하는 <독일 신학>의 구절이다. 역자는 복잡한 구절을 다소 중복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단순화했겠지만, 이 축약은 막스 뮐러의 신학 사상을 삭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성 3인칭 대명사의 번역은 여전히 ‘그녀’, ‘그 여자’가 모두 사용되어 혼란스럽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녀’와 ‘그 여자’가 혼용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대체로 ‘그녀’를 쓰거나 대체로 ‘그 여자’라고 부른다. 오늘의 언어 감각에서 ‘그녀의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그 여자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는 연인의 발화가 아니라 거리를 둔 제삼자의 관찰로 느껴진다.
홍경호 번역본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역주를 곳곳에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덕형, 박찬기의 번역본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보인다. 작품 속에 전편(全篇)이 인용된 매슈 아널드의 <파묻힌 생명>과 윌리엄 워즈워스의 <고지의 아가씨>에 영어 원문뿐만 아니라 독일어 번역본까지 함께 제시하고 있음이 특히 눈에 띈다. 원작에조차 이 시들은 영어로만 인용되어 있는데, 여기에 역자가 독일어 번역을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독일어 번역 자체가 상당히 옛날식이고 번역에서까지 독일어 운을 맞추려 하다 보니 원문을 다소 자유롭게 옮긴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 번역을 참고하여 번역할 경우 원문에서 거리가 먼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생겨난다. 홍경호뿐만 아니라 박찬기도 이 번역에 어느 정도 의존한 것으로 짐작된다. 영어 원작에는 없는데 독일어 번역본에서 볼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이 한국어 번역본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자 차경아(1943년생)는 여기 비교된 4인의 역자 가운데 가장 젊고, 홍경호와 더불어 한글세대의 학자요 번역가다. 번역 한국어의 문체로 볼 때 이덕형과 박찬기의 번역이 구세대라면, 홍경호와 차경아의 번역은 신세대에 속한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번역 사이에 확연한 차이점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몇몇 어휘(Schleier를 베일로 옮기지 않고 면사포로 옮긴다든지 하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구세대 번역에서 독일어를 한국어로 일단 옮긴 뒤에 이를 사후적으로 우리말답게 정돈하고 조정하는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면도 큰 것으로 보인다. 홍경호와 차경아의 신세대 번역에서는 번역 자체를 위한 노력에 더하여 번역 한국어 문체를 일반 한국어 문체에 근접시키려는 노력이 많이 들어가 있다. 홍경호 번역의 경우에는 그 작업이 과도하여 원문의 의미를 축약하고 단순화하는 데까지 갔다면, 차경아는 원문에의 충실성과 한국어다운 문체의 구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추구하였다. 그 결과 차경아는 비교 대상이 된 번역본 가운데 가장 충실하고 정확하며 한국어의 운용 면에서 현대적 감각에 잘 맞는다. 3인칭 단수 여성형 인칭 대명사는 여기서 비로소 일관되게 ‘그녀’로 번역되었다.
차경아의 번역은 다른 면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덕형 번역 <독일인의 사랑>을 오랫동안 출간해온 문예출판사는 1987년에 역자를 이덕형에서 차경아로 교체한다. 그런 만큼 차경아는 이전 번역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으며 번역에 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로 나온 것은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충실한 번역본이다. 차경아 번역의 장점은 특히 원작이 일상적 방식을 넘어서는 표현을 구사하는 경우에 잘 드러난다. 이런 표현 앞에서 번역자는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없는 번역을 하거나, 아니면 원문의 의도를 왜곡하여 알기 쉬운 평범한 표현으로 치환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원문 구절을 보자. 화자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관습과 도덕, 배려라는 구실 뒤에서 끝없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탄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Darf doch selbst die Liebe nicht ihre eigene Sprache sprechen und ihr eigenes Schweigen schweigen, sondern sie muss die Schlagworte der Dichter lernen, [...].
차경아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고유의 언어를 말하지도, 고유의 침묵을 그대로 침묵하지도 못하며, 시인의 상투어를 배워[...]
거의 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대목은 원작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주지 않으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역자들의 번역은 여기서 현저하게 벗어난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솔직히 말하고 담담히 침묵을 지키지는 않고 시인의 명구를 빌려본다든지(이덕형)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조차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든지 자기 자신의 침묵을 솔직하게 침묵해 버린다든지 할 수가 없는 것일까? 구태여 시인의 명문구를 빌어다가 쓴다든지(박찬기)
심지어 사랑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말하지도, 침묵하고 싶은 말을 솔직히 침묵하지 못하고, 공연히 시인의 말을 빌려(홍경호)
위 세 역자의 번역에서는 사랑에 고유한 언어, 고유한 침묵의 방식이 있다는 생각, 그러한 사랑의 고유성이 사회적 편견과 관습 속에서 파괴된다는 작가의 생각이 극히 평범하게 풀어져 버린다. 차경아는 독일어 시제의 세밀한 의미, 어휘의 뉘앙스 등을 잘 파악하여 번역함으로써 이전 역자들이 범한 오역을 상당히 많이 교정하였다. 물론 이 번역도 결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아쉬운 오역도 더러 발견된다. 특히 이덕형의 오역이 거의 그대로 수용된 듯이 보이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박찬기 번역본에서 정확히 번역된 것이 차경아 번역에서 다시 오역으로 돌아간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인간도 죽음을 앞두고 동요가 없을 수는 없다고요.
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dass kein Mensch vor dem Tode unbeweglich wird”로서 박찬기가 한 것처럼 “어떤 인간도 죽기 전에 안 움직이게 되는 법은 없다고요”가 정확한 번역이다. 즉 살아 있는 한은 계속 움직인다는 뜻이다. 차경아는 원문에 최대한 밀착하려 한 나머지 다소 딱딱하거나 한국어 어법을 침해하는 듯한 번역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몰랐었다"라는 문장이 그러하다. 물론 독일어 원문의 동사 시제가 모두 과거이긴 하지만(Da wussten wir nicht, wo wir waren, und wer wir waren),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 몰랐다“라고 함이 타당해 보인다. 차경아 번역의 다른 장점은 꽤 상세한 역주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홍경호 번역본에 있는 설명이 여기에는 없는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차경아 번역본의 역주가 더 충실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3. 평가와 전망
지금까지 <독일인의 사랑>의 주요 번역본을 비교해 보았다. 이덕형에서 시작하여 차경아에 이르는 번역의 역사는 분명한 발전의 역사로 나타난다. 이덕형의 번역을 박찬기가 진일보시켰고, 홍경호의 번역은 부분적인 후퇴에도 불구하고 번역 한국어 문체의 발전을 보여주었으며, 차경아는 한국어다움의 측면에서나 원문에의 충실성 면에서 이전의 성과를 넘어서는 번역본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모든 번역에 해당하는 문제를 몇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독일인의 사랑’이라는 제목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번역 제목은 원제의 의미와 무관하게 대중의 기억에 각인된 고유명사가 되었으므로, 이를 새롭게 바꾼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번역에서 한 가지 매우 아쉬운 점은 작품 초반에서 대부분의 역자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유년기에 대한 상념으로 시작되는데, 화자에게 유년기는 아직 인간에게 타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이다. 어린아이는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 벽을 느끼지 못하며 자아와 우주 사이의 행복한 일치의 감정에 싸여 있다. 이를 설명하면서 막스 뮐러는 Seligkeit der Alleinheit und Allgemeinsamkeit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유일하고 완전한 축복의 나라 (이덕형)
신성과 보편성의 행복 (박찬기)
개성과 그 전체성이 충만한 지복 (홍경호)
완전하고 편재하는 행복감 (차경아)
여기서 이덕형과 홍경호는 Alleinheit를 홀로라는 의미의 부사 allein이 명사화된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 그리하여 유일이나 개성 같은 말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Alleinheit는 allein+heit가 아니라 All-Einheit이다. 일자이자 전체인 상태라는 의미로 분리할 수 없는 우주 전 존재의 통일성을 가리키며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Allgemeinsamkeit는 물론 Allgemeinheit와 다른 말이다. 이것은 All과 Gemeinsamkeit의 합성어이며 모두가 함께 속해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역시 Alleinheit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박찬기는 Alleinheit를 신성으로 번역했는데, 개성이나 유일성보다는 원의에 접근하였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신성의 행복’이라고 했을 때 전체와 하나가 된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의미가 전달될지는 의문이다. ‘보편성의 행복’이라는 번역에서는 Allgemeinsamkeit가 Allgemeinheit로 잘못 옮겨져 있고 그 결과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다. ‘유일하고 완전한 축복의 나라’나 ‘완전하고 편재하는 행복감’은 모두 원문 표현의 특수한 의미를 전혀 살리지 못한 번역이고 ‘개성과 그 전체성으로 충만한 지복’이라는 번역 역시 원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Seligkeit der Alleinheit und Allgemeinsamkeit’가 이 책에서 중심 주제로 이야기되는 사랑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이 어느 번역본에서도 제대로 옮겨지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는 소설의 화자와 여주인공 마리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번역할 것인가이다. 인물의 정확한 나이가 나오지는 않지만, 화자가 어린아이일 때 마리아는 아직 성인은 아니되 10대 후반의 나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화자가 마리아를 만난 시절 나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끼리의 관계였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du (친근한 사이에 서로 사용하는 2인칭 단수 대명사)라고 자연스럽게 부른다. 그러나 화자가 대학을 다니다가 고향 도시로 돌아와 마리아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는 서로를 어떻게 부르느냐가 문제가 된다. 존칭 2인칭 대명사인 Sie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어린 시절 만났을 때처럼 du라고 부를 것인가. 두 인물이 ‘Sie’냐 ‘du’냐를 고민하는 대목에서 번역자들은 대체로 그것을 ‘당신’이냐 ‘너’냐의 문제로 번역하지 않고 독일어 발음 그대로 ‘지’, ‘두’로 적고 괄호 속에 그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Sie’와 ‘du’의 구분이 ‘당신’과 ‘너’의 구분에 딱 떨어지게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맥락에서 인칭 대명사를 번역하지 못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번역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두 인물의 관계는 ‘Sie’라고도 ‘du’라고도 하지 못해 다소 어색해하는 단계에서 서로를 자연스럽게 ‘du’로 부르는 관계로 곧 넘어가는데, 이러한 관계의 발전이 번역 속의 대화를 통해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어로는 한결같이 서로에게 상당히 격식 있는 존댓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마리아에게 ‘천사에게는 존칭 Sie를 사용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존칭 Sie는 이 소설의 주제인 사랑과 대척점에 있는 ‘타인과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두 특별한 연인이 극존대에 가까운 말로 계속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작품의 주제 의식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나 분위기상 두 인물의 사이를 서로 반말을 하는 연인 관계로 그릴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친밀한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대화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덕형(1967): 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
박찬기(1974): 독일인의 사랑. 서문당.
홍경호(1977): 독일인의 사랑. 삼중당.
차경아(1987): 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