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체크 (Woyzeck)"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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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보이체크 (Woyz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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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보이체크 ||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 지만지고전천줄 98 || 게오르크 뷔히너 || 임호일 || 2008 || 지만지 || 27-82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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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임호일(1987)" />[[#임호일(1987)R|1]] || 보이첵 || 뷔히너 文學全集 || 한마당문예 6 || 게오르그 뷔히너 || 임호일 || 1987 || 한마당 || 201-23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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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보이체크 || 뷔히너 문학전집 || 지식을만드는지식 || 게오르크 뷔히너 || 임호일 || 2008 || 지식을만드는지식 || 225-26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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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보이체크 || 보이체크, 당통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309 || 게오르크 뷔히너 || 홍성광 || 2013 || 민음사 || 7-7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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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보이체크 ||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 게오르크 뷔히너 || 임호일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3-57 || 편역 || 완역 ||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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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홍성광(2013)" />[[#홍성광(2013)R|4]] || 보이체크 || 보이체크, 당통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309 || 게오르크 뷔히너 || 홍성광 || 2013 || 민음사 || 7-7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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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보이첵 || 보이첵 ||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49 || 게오르그 뷔히너 || 이재인 || 2015 || 미르북컴퍼니, 더클래식 || 7-7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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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보이체크 ||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 게오르크 뷔히너 || 임호일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3-57 || 편역 || 완역 ||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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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보이체크 ||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 || 게오르크 뷔히너 || 임호일 || 2019 || 지만지드라마 || 1-58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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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이재인(2015)" />[[#이재인(2015)R|6]] || 보이첵 || 보이첵 ||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49 || 게오르그 뷔히너 || 이재인 || 2015 || 미르북컴퍼니, 더클래식 || 7-7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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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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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뷔히너의 마지막 작품으로, 뷔히너가 사망 직전까지 쓰다가 결국 미완성 단편(斷篇, Fragment)이자 유고(遺稿)로 남은 <보이체크>는 독일어권 문학 사상 최초로 프롤레타리아를 주인공으로 하고, 사회 하층민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사회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닫힌 구조를 가진 고전극 형식이 아닌 열린 형식, 이상화된 인간이 아니라 미와 추를 떠나 현실 속의 인간,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작가의 미학이 반영된 인물 묘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독일 드라마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활발하게 무대 위에 오르고 재해석되고 있다. <보이체크>는 막 구분 없이 서로 독립적인 27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완성 유고로 남았고 <보이체크>와 관련해 뷔히너가 남긴 원고가 네 종류(H1, H2, H3, H4)인 까닭에 판본과 각 장면의 배치 순서가 항상 중요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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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는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에도 여전히 매우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는 작품인 데 비해, 우리말 번역은 총 5종뿐이다. <보이체크>의 한국어 초역은 임호일에 의해 1987년에 이루어졌고(<뷔히너 문학 전집>에 실린 <보이체크>), 그 후 두 번째로 2005년에는 최병준의 번역(<보이체크>)이 나왔으며, 2013년에는 홍성광의 번역(<보이체크/당통의 죽음>에 실린 <보이체크>), 2015년에 이재인의 번역(<보이첵 – 뷔히너 단편선>에 실린 「보이첵」), 2020년에 박종대의 번역(<뷔히너 전집>에 실린 <보이체크>)이 나왔다. 본문에서는 이 중 임호일, 홍성광, 이재인, 박종대의 번역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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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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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호일(1987)| 임호일 역의 <보이체크>(1987, 2008, 2014, 2019)]]<span id="임호일(1987)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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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자 임호일은 <보이체크>를 포함한 뷔히너의 작품들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뷔히너 문학 전집>(1987, 한마당)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한국뷔히너학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독문학사에서 가지는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뷔히너의 문학을 한국에 소개한 공로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이 전집은 <당통의 죽음 (Dantons Tod)|당통의 죽음>, <렌츠 (Lenz)|렌츠> 등 뷔히너의 문학 작품 전체의 번역을 싣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헤센 지방의 전령 (Der Hessische Landbote)|헤센 지방의 전령>, <[[두개골 신경에 대하여]]> 등 뷔히너의 정치적, 자연과학적 에세이 및 뷔히너의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한 <뷔히너 서한 발췌록> 역시 수록하여 뷔히너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전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2020년에 박종대의 <뷔히너 전집>이 나올 때까지 임호일의 <뷔히너 문학 전집>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뷔히너 문학 작품의 초역이자 유일한 뷔히너 문학 전집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발터 힌더러 Walter Hinderer의 <뷔히너 주석 Büchner Kommentar>을 참조하여 주석을 상세히 달았음과 함께 저본 역시 밝히고 있다(Hamburger Ausgabe, Georg Büchner Sämtliche Werke und Briefe)는 점, 또한 이후 계속해서 번역을 수정하며 여러 차례 출간한 점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본 비평은 임호일의 2019년 번역(<보이체크/[[레옹스와 레나 (Leonce und Lena)|레옹스와 레나]]>, 지만지)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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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텍스트의 구성은 번호를 매겨(1장, 2장...) 각 장면을 좀 더 질서정연하게 재구성한 다른 번역본들(홍성광, 박종대, 이재인)과 달리 유일하게 비평판처럼 소제목만을 붙여 병렬적으로 구성하였다(예: ‘1장’ 대신 [넓은 들판. 도시가 멀리 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줄거리를 중심으로 인과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각 장면이 서로 병렬적으로 배치된 열린 형식의 특성에 가장 가깝게 번/역본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박종대 역과 함께 마리와 보이체크 사이에서 젠더 비대칭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리와 보이체크가 처음으로 같이 나오는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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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Wer da? Bist du’s Franz? Komm her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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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Kann nit. Muß zum Ve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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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Was hat du F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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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geheimnisvoll'': Marie, es war wieder was, viel, steht nicht geschrieben: und sie da ging ein Rauch vom Land, wie der Rauch vom O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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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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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Es ist hinter mir gegangen bis vor die Stadt. Was soll das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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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F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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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Ich muß fort. ''Er ge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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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Der Mann! So vergeistert. Er hat sein Kind nicht angesehn. Er schnappt noch über mit den Gedanken. Was bist du so still, Bub? Fürchst’ dich? Es wird so dunkel, man meint, man wär blind. [...] Ich halt’s nicht aus. Es schauert 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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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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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거기 누구 왔어요? 프란츠, 당신이에요?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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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안 돼. 점호에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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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무슨 일 있었어요,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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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마리, 또 무슨 일이 있었어. 대단했다고. 책에는 적혀 있지도 않은 일이야. 저기 봐.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어 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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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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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그게 내 뒤를 동구 밖까지 바짝 쫓아오는 거야. 어쩌자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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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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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가 봐야겠어.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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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저 사람 좀 봐! 저렇게 넋이 빠지다니. 자기 자식도 한번 쳐다보지 않고. 아직도 그 생각에만 빠져 있어. 넌 왜 그렇게 조용하니, 아가? 무서워서 그래? 방 안이 점점 컴컴해지네. 장님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야. [...] 참을 수가 없어. 온몸이 떨려와.(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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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호일의 번역본 역시 다른 세 번역본과 공통적으로 보이체크와 민중들이 사용하는 헤센 지방 방언 및 구어를 살리기 위해 특별한 요소를 추가하지는 않았다. 자주 삽입되는 민요나 동화 등의 구어적인 표현들 번역에서도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번역 전략을 사용한 번역본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 임호일의 번역본은 상당히 많은 각주를 사용하여 시간적, 공간적으로 낯선 문화의 요소들을 충실히 전달하려고 한다. 각주가 23개로 홍성광(7개), 박종대(14개)에 비해 가장 많다. 그러나 ‘성촉절’ 같은 단어는 각주가 붙어 있지 않은데, 이는 오히려 박종대 역에서 처음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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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예문에서도 임호일 역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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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Aber Herr Doktor, wenn einem die Natur kom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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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그렇지만 선생님, 그건 생리적인 본능입니다.(임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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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본능적인 생리현상이었습니다, 선생님.(홍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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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 생리 현상을 어쩌겠습니까.(이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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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박사님, 그건 자연현상인데요.(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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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대목에서 Doktor를 의사(임호일, 홍성광), 박사(박종대)라고 번역하는 데서 두 방향이 차이가 난다. 호칭으로 부를 때는 선생님, 박사님 등이 가능하겠지만, 직업 표시를 하는 데서는 맥락을 볼 때 박사라기보다는 의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wenn einem die Natur kommt”의 번역을 세 번역자는 “생리적인 본능”, “본능적인 생리현상”, “자연현상” 등으로 번역하였다. “자연현상”이라는 번역은 가장 추상도가 높은 느낌을 전달한다. “현상”이라는 말도 추상적이지만, “생리적인 본능“ 역시 구어적인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뒤에 이어지는 의사의 대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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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TOR'''  Die Natur kommt, die Natur kommt! Die Natur! Hab’ ich nicht nachgewiesen, daß '''<ins>der Musculus constrictor vesicae</ins>''' dem Willen unterworfen ist? Die Natur! Woyzeck, der Mensch ist frei, in dem Menschen verklärt sich die Individualität zur Freiheit. Den Harn nicht halten kön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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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자연현상, 자연현상, 자연현상이라고! 내가 증명해 보이지 않았나? '''<ins>방광괄약근, 다시 말해 ‘musculus constrictor vesicae’는</ins>''' 의지의 지배를 받는단 말이야. 자연현상이라니! 보이체크, 인간은 자유로워. 자유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개체가 인간이란 말이야. 소변 하나 제대로 조절할 수 없다니!(임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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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생리적인 본능! 생리적인 본능이라! 본능!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의지로 방광 괄약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능이라니! 보이체크, 인간은 자유로워! 인간이 훌륭한 건 자유로운 개체이기 때문이야! 소변 하나 참지 못하다니!(홍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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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생리 현상, 생리 현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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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증명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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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광 괄약근은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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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적 현상! 보이첵. 인간은 자유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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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구현하는 인격체가 인간이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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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변을 참지 못하다니!(이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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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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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생리 현상이라고? 본능이라고? 보이체크, 내가 말하지 않았니? 인간은 의지로 방광 괄약근을 조절할 수 있다고. 그런데 본능이라니! 보이체크, 인간은 자유로워. 인간이 아름다운 건 자유롭게 의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깟 소변 하나 참지 못하다니!(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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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문은 평범한 보이체크와 다르게 전문용어를 현학적으로 사용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의사는 보이체크에게 돈을 주고 그에게 날마다 완두콩을 먹게 하는 실험을 한다. 위의 번역들 가운데 임호일은 ‘방광괄약근’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를 우리말 번역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특이한 방식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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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홍성광(2013)| 홍성광 역의 <보이체크>(2013)]]<span id="홍성광(2013)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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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자이자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홍성광의 2013년 번역에서는 전체적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눈에 띈다. 역자는 가급적 추상적이거나 문어적인 표현보다는 읽기에 편안하고 구어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세 번역본에서 모두 각주가 사용되고 있지만, 홍성광 번역에서는 임호일 번역에 비해 각주 수도 대폭 줄고 꼭 필요한 것에 한정하여 가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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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눈에 띄는 점은 세 번역본 중에서 유일하게 이 번역본에서 마리와 보이체크가 서로 대칭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군악대장과 마리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하나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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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Was hast 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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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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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Unter deinen Fingern glänzt’s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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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Ein Ohrinnglein; hab’s gefu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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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Ich habe so noch nix gefunden. Zwei auf ein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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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Bin ich ein Men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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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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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그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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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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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손가락 사이에 번쩍거리는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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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잃어버렸던 귀고리를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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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전에 못 보던 건데, 한꺼번에 두 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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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그럼 내가 질 나쁜 여자란 말이야?(홍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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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mbourmajor'''  Ma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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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ihn ansehend, mit Ausdurck: Geh’ einmal vor dich hin. - Über die Brust wie ein Stier und ein Bart wie ein Löw... So ist keiner... Ich bin stolz vor allen Weib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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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mbourmajor'''  Wenn ich am Sonntag erst den großen Federbusch hab’ und die weißen Handschuh, Donnerwetter, Marie, der Prinz sagt immer: Mensch, Er ist ein Ke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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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spöttisch:  Ach was! Tritt vor ihn hin.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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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악대장'''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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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그를 바라보며, 표정을 실어) 앞으로 좀 걸어 봐! 황소 같은 가슴에다 수염은 사자 같고, 이런 남자는 없을 거야! 난 모든 여자들 앞에서 자부심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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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악대장'''  내가 일요일에 깃털 달린 커다란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끼고 나타나면 말이야, 와우! 왕자님께선 항상 말씀하시지. 정말 멋진 녀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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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비꼬듯이) 아, 그래!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사내란!(홍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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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문에서처럼 마리가 보이체크와, 그리고 군악대장과의 사이에서 대등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나중에 보이체크의 손에 살해당하는 마리가 보이체크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수동적이기만 한 희생양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며, 마리를 좀 더 행위와 욕망의 주체로, 보이체크처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가시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박종대 역에서 살펴볼 것이듯이 마리와 보이체크, 마리와 군악대장 사이의 대화를 비대칭적으로 번역하는 것 역시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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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재인(2015)| 이재인 역의 <보이첵>(2015, 개정증보판은 2022)]]<span id="홍성광(2013)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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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은 독문학을 공부한 후 독어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독일어를 강의하고 있는 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이재인 역시 다른 역자들처럼 상세한 역자 해설을 썼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리얼리스트로서의 뷔히너의 면모와 <보이체크>의 현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인의 번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행을 자주 바꿈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갖는 흐르는 물과 같고 병렬적인 문체적 특성을 크게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홍성광의 번역에서처럼 젠더 대칭적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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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박종대 역의 <보이체크>(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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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대는 임호일의 <뷔히너 문학 전집>(1987)에 이어 큰 시간 간격을 가지고 두 번째로 <뷔히너 전집>을 낸, 독문학을 전공한 전문 번역가이다. 역시 다른 역자들처럼 전공 지식에 바탕을 둔 상세한 역자 해설을 덧붙이고 있으며, 이 가운데 <보이체크>에 대한 해설에서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 판본 문제, 저본 등을 밝힌다. 역자는 “사회적, 역사적 결정론과 자기 소외는 뷔히너 문학의 주요 특징”이라고 하면서, <보이체크>를 보이체크라는 한 인간의 비극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바라보는데, 이때 이 비극은 “목적론적 운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요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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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대의 번역에서 보이체크가 마리를 살해하는 장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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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Weißt du auch, wie lang es jetzt ist Ma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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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Um Pfingsten 2 Ja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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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Weißt du auch, wie lang es noch zu sein w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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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Ich muß fort, der Nachttau fäl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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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Friert’s dich Marie, und doch bist du warm. Was du heiße Lippen hast! heiß, heißn Hurenatem und doch möcht’ ich den Himmel gebe sie noch einmal zu küssen... und wenn man kalt ist, so friert man nicht mehr. Du wirst vom Morgentau nicht frie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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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Was sagst 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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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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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hwei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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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Was der Mond rot auf ge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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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yzeck'''  Wie ein blutig Ei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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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Was hast du vor? Franz, du bist so blaß. <Er greift zum Messer.> Franz halt. Um des Himmels w<illen>, Hü - Hül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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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우리가 얼마나 같이 살았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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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오순절이면 2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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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이 살게 될지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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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가야겠어요. 벌써 밤이슬이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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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추운가? 당신이? 당신처럼 뜨거운 여자가? 당신 입술이 얼마나 뜨거운지 몰라? 창녀의 입김처럼 뜨거워! 그런데도 빌어먹을, 당신 입술에 다시 한번 키스하고 싶어. 몸이 차가워지면 더 이상 얼어붙는 일은 없어. 당신은 아침 이슬에도 얼어붙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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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무슨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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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아무 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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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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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붉은 달이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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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  피 묻은 낫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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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당신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프란츠, 당신 얼굴이 사색이에요. (칼을 본다) 프란츠, 안 돼요! 무슨 짓이에요?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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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광의 번역에서와 다르게 위의 예문에서는 보이체크와 마리의 마지막 대화가 철저하게 비대칭적인 언어로 되어 있다. 죽기 직전까지 마리가 보이체크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물론 도착 문화의 언어적 관습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위, 의사, 군악대장 등 (남성들의) 사회 내 위계질서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보이체크보다 마리의 위치가 더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동안 보이체크에 대한 해석에서 마리는 주목받지 못하고 마리의 살해는 보이체크가 보여 주는 사회적 비극의 필연적인 귀결로 해석되곤 했다. 그리고 여러 역자들의 해석 역시 거의 동일하게 이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마리라는 인물에도 새롭게 주목을 하며 이 작품을 ‘보이체크의 비극과 마리의 비극’으로 바라볼 때, 젠더 사이의 위계의 문제는 번역에 있어서도 차이를 낳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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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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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는 위에서 살펴본 네 번역본을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의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 위의 네 번역본의 번역자들은 모두 독문학자이며, 뷔히너와 그의 작품 세계 일반, 그리고 <보이체크>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번역을 하였다. 따라서 위의 세 번역본 사이의 차이는 미세하며, 이 차이를 바탕으로 번역비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기존의 <보이체크>의 번역본들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다른 요소들, 예컨대 공연하기에 적합하도록 구어적 특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번역이라든지, 방언 번역, 또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 및 새로운 언어 감각이나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개성적이고 다양한 번역들이 앞으로 많이 등장하리라고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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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0일 (토) 07:38 기준 최신판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1813-1837)의 희곡

보이체크 (Woyzeck)
작가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t)
초판 발행1879
장르희곡

작품소개

1836년 7월과 10월 사이에 집필하기 시작한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으로 1913년 11월 8일 처음으로 뮌헨의 레지덴츠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821년에 미망인을 살해한 죄로 처형된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라는 실존 인물의 삶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일개 병사인 프란츠 보이체크는 마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마리와 함께 부양한다. 그는 부족한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몰인정한 의사의 임상 실험 대상자가 된다. 보이체크의 상사인 대위와 의사는 보이체크를 신체적이자 심리적으로 착취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기도 한다. 군악대장도 보이체크를 무시하고 매사에 그를 조롱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억압적 태도는 보이체크의 내면에 분노와 좌절을 불러일으키지만, 동거녀 마리는 유일하게 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그러던 중 보이체크는 마리가 군악대장과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게 되고, 마리가 어느 술집에서 군악대장과 춤추는 것을 보자 자신의 의심이 맞았다고 확신한다. 그는 자기를 배신한 마리를 죽이라는 환청에 빠져 칼을 준비하고, 저녁 산책을 하는 마리를 근처 숲으로 유인하여 호숫가에서 찔러 죽인 후 연못에 투신해 자살한다. 이 작품은 억압받는 제4계급인 민중을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민중을 가난으로 삶이 훼손된 계층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대위나 의사에서 보듯 도덕과 자연을 내세우는 시민 계층의 위선을 폭로한다. 고전주의적 미학에 반하는 새로운 희곡기법을 보여주어 표현주의 드라마의 효시로 간주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1987년 임호일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한마당).


초판 정보

Büchner, Georg(1879): Wozzeck(Woyzeck). In: Franzos, Karl Emil(ed.): Georg Büchner’s Sämtliche Werke. Frankfurt a. M.: J. D. Sauerländer‘s Verlag, 161-201.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보이첵 뷔히너 文學全集 한마당문예 6 게오르그 뷔히너 임호일 1987 한마당 201-238 편역 완역
2 보이체크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지만지고전천줄 98 게오르크 뷔히너 임호일 2008 지만지 27-82 편역 완역
3 보이체크 뷔히너 문학전집 지식을만드는지식 게오르크 뷔히너 임호일 2008 지식을만드는지식 225-266 편역 완역
보이체크 보이체크, 당통의 죽음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크 뷔히너 홍성광 2013 민음사 7-74 편역 완역
5 보이체크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게오르크 뷔히너 임호일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3-57 편역 완역 큰글씨책
보이첵 보이첵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49 게오르그 뷔히너 이재인 2015 미르북컴퍼니, 더클래식 7-79 편역 완역
7 보이체크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게오르크 뷔히너 임호일 2019 지만지드라마 1-58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게오르크 뷔히너의 마지막 작품으로, 뷔히너가 사망 직전까지 쓰다가 결국 미완성 단편(斷篇, Fragment)이자 유고(遺稿)로 남은 <보이체크>는 독일어권 문학 사상 최초로 프롤레타리아를 주인공으로 하고, 사회 하층민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사회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닫힌 구조를 가진 고전극 형식이 아닌 열린 형식, 이상화된 인간이 아니라 미와 추를 떠나 현실 속의 인간,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작가의 미학이 반영된 인물 묘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독일 드라마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활발하게 무대 위에 오르고 재해석되고 있다. <보이체크>는 막 구분 없이 서로 독립적인 27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완성 유고로 남았고 <보이체크>와 관련해 뷔히너가 남긴 원고가 네 종류(H1, H2, H3, H4)인 까닭에 판본과 각 장면의 배치 순서가 항상 중요한 문제가 된다.

<보이체크>는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에도 여전히 매우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는 작품인 데 비해, 우리말 번역은 총 5종뿐이다. <보이체크>의 한국어 초역은 임호일에 의해 1987년에 이루어졌고(<뷔히너 문학 전집>에 실린 <보이체크>), 그 후 두 번째로 2005년에는 최병준의 번역(<보이체크>)이 나왔으며, 2013년에는 홍성광의 번역(<보이체크/당통의 죽음>에 실린 <보이체크>), 2015년에 이재인의 번역(<보이첵 – 뷔히너 단편선>에 실린 「보이첵」), 2020년에 박종대의 번역(<뷔히너 전집>에 실린 <보이체크>)이 나왔다. 본문에서는 이 중 임호일, 홍성광, 이재인, 박종대의 번역을 살펴보기로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임호일 역의 <보이체크>(1987, 2008, 2014, 2019)

독문학자 임호일은 <보이체크>를 포함한 뷔히너의 작품들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뷔히너 문학 전집>(1987, 한마당)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한국뷔히너학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독문학사에서 가지는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뷔히너의 문학을 한국에 소개한 공로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이 전집은 <당통의 죽음 (Dantons Tod)|당통의 죽음>, <렌츠 (Lenz)|렌츠> 등 뷔히너의 문학 작품 전체의 번역을 싣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헤센 지방의 전령 (Der Hessische Landbote)|헤센 지방의 전령>, <두개골 신경에 대하여> 등 뷔히너의 정치적, 자연과학적 에세이 및 뷔히너의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한 <뷔히너 서한 발췌록> 역시 수록하여 뷔히너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전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2020년에 박종대의 <뷔히너 전집>이 나올 때까지 임호일의 <뷔히너 문학 전집>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뷔히너 문학 작품의 초역이자 유일한 뷔히너 문학 전집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발터 힌더러 Walter Hinderer의 <뷔히너 주석 Büchner Kommentar>을 참조하여 주석을 상세히 달았음과 함께 저본 역시 밝히고 있다(Hamburger Ausgabe, Georg Büchner Sämtliche Werke und Briefe)는 점, 또한 이후 계속해서 번역을 수정하며 여러 차례 출간한 점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본 비평은 임호일의 2019년 번역(<보이체크/레옹스와 레나>, 지만지)을 대상으로 한다.

전체 텍스트의 구성은 번호를 매겨(1장, 2장...) 각 장면을 좀 더 질서정연하게 재구성한 다른 번역본들(홍성광, 박종대, 이재인)과 달리 유일하게 비평판처럼 소제목만을 붙여 병렬적으로 구성하였다(예: ‘1장’ 대신 [넓은 들판. 도시가 멀리 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줄거리를 중심으로 인과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각 장면이 서로 병렬적으로 배치된 열린 형식의 특성에 가장 가깝게 번/역본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박종대 역과 함께 마리와 보이체크 사이에서 젠더 비대칭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리와 보이체크가 처음으로 같이 나오는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Marie    Wer da? Bist du’s Franz? Komm herein! 
Woyzeck Kann nit. Muß zum Verles.
Marie    Was hat du Franz?
Woyzeck geheimnisvoll: Marie, es war wieder was, viel, steht nicht geschrieben: und sie da ging ein Rauch vom Land, wie der Rauch vom Ofen?
Marie    Mann!
Woyzeck Es ist hinter mir gegangen bis vor die Stadt. Was soll das werden?
Marie    Franz!
Woyzeck Ich muß fort. Er geht.
Marie   Der Mann! So vergeistert. Er hat sein Kind nicht angesehn. Er schnappt noch über mit den Gedanken. Was bist du so still, Bub? Fürchst’ dich? Es wird so dunkel, man meint, man wär blind. [...] Ich halt’s nicht aus. Es schauert mich.

마리 거기 누구 왔어요? 프란츠, 당신이에요? 들어와요! 보이체크 안 돼. 점호에 가야 해. 마리 무슨 일 있었어요, 프란츠? 보이체크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마리, 또 무슨 일이 있었어. 대단했다고. 책에는 적혀 있지도 않은 일이야. 저기 봐.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어 오르잖아. 마리 여보! 보이체크 그게 내 뒤를 동구 밖까지 바짝 쫓아오는 거야. 어쩌자고 그러지? 마리 프란츠! 보이체크 가 봐야겠어. (퇴장한다.) 마리 저 사람 좀 봐! 저렇게 넋이 빠지다니. 자기 자식도 한번 쳐다보지 않고. 아직도 그 생각에만 빠져 있어. 넌 왜 그렇게 조용하니, 아가? 무서워서 그래? 방 안이 점점 컴컴해지네. 장님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야. [...] 참을 수가 없어. 온몸이 떨려와.(퇴장)


또한 임호일의 번역본 역시 다른 세 번역본과 공통적으로 보이체크와 민중들이 사용하는 헤센 지방 방언 및 구어를 살리기 위해 특별한 요소를 추가하지는 않았다. 자주 삽입되는 민요나 동화 등의 구어적인 표현들 번역에서도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번역 전략을 사용한 번역본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 임호일의 번역본은 상당히 많은 각주를 사용하여 시간적, 공간적으로 낯선 문화의 요소들을 충실히 전달하려고 한다. 각주가 23개로 홍성광(7개), 박종대(14개)에 비해 가장 많다. 그러나 ‘성촉절’ 같은 단어는 각주가 붙어 있지 않은데, 이는 오히려 박종대 역에서 처음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다음의 예문에서도 임호일 역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Woyzeck      Aber Herr Doktor, wenn einem die Natur kommt.
보이체크      그렇지만 선생님, 그건 생리적인 본능입니다.(임호일)
              그건 본능적인 생리현상이었습니다, 선생님.(홍성광)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 생리 현상을 어쩌겠습니까.(이재인)
              하지만 박사님, 그건 자연현상인데요.(박종대)


일단 이 대목에서 Doktor를 의사(임호일, 홍성광), 박사(박종대)라고 번역하는 데서 두 방향이 차이가 난다. 호칭으로 부를 때는 선생님, 박사님 등이 가능하겠지만, 직업 표시를 하는 데서는 맥락을 볼 때 박사라기보다는 의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wenn einem die Natur kommt”의 번역을 세 번역자는 “생리적인 본능”, “본능적인 생리현상”, “자연현상” 등으로 번역하였다. “자연현상”이라는 번역은 가장 추상도가 높은 느낌을 전달한다. “현상”이라는 말도 추상적이지만, “생리적인 본능“ 역시 구어적인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뒤에 이어지는 의사의 대사를 살펴보자.


DOKTOR  Die Natur kommt, die Natur kommt! Die Natur! Hab’ ich nicht nachgewiesen, daß der Musculus constrictor vesicae dem Willen unterworfen ist? Die Natur! Woyzeck, der Mensch ist frei, in dem Menschen verklärt sich die Individualität zur Freiheit. Den Harn nicht halten können! 

의사 자연현상, 자연현상, 자연현상이라고! 내가 증명해 보이지 않았나? 방광괄약근, 다시 말해 ‘musculus constrictor vesicae’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단 말이야. 자연현상이라니! 보이체크, 인간은 자유로워. 자유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개체가 인간이란 말이야. 소변 하나 제대로 조절할 수 없다니!(임호일)
의사 생리적인 본능! 생리적인 본능이라! 본능!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의지로 방광 괄약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능이라니! 보이체크, 인간은 자유로워! 인간이 훌륭한 건 자유로운 개체이기 때문이야! 소변 하나 참지 못하다니!(홍성광)
의사 생리 현상, 생리 현상이라고! 내가 증명하지 않았나. 방광 괄약근은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이야. 생리적 현상! 보이첵. 인간은 자유롭네. 자유를 구현하는 인격체가 인간이란 말일세. 소변을 참지 못하다니!(이재인)
박사 생리 현상이라고? 본능이라고? 보이체크, 내가 말하지 않았니? 인간은 의지로 방광 괄약근을 조절할 수 있다고. 그런데 본능이라니! 보이체크, 인간은 자유로워. 인간이 아름다운 건 자유롭게 의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깟 소변 하나 참지 못하다니!(박종대)


위의 인용문은 평범한 보이체크와 다르게 전문용어를 현학적으로 사용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의사는 보이체크에게 돈을 주고 그에게 날마다 완두콩을 먹게 하는 실험을 한다. 위의 번역들 가운데 임호일은 ‘방광괄약근’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를 우리말 번역에도 그대로 사용하는 특이한 방식을 사용한다.


2) 홍성광 역의 <보이체크>(2013)

독문학자이자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홍성광의 2013년 번역에서는 전체적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눈에 띈다. 역자는 가급적 추상적이거나 문어적인 표현보다는 읽기에 편안하고 구어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세 번역본에서 모두 각주가 사용되고 있지만, 홍성광 번역에서는 임호일 번역에 비해 각주 수도 대폭 줄고 꼭 필요한 것에 한정하여 가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눈에 띄는 점은 세 번역본 중에서 유일하게 이 번역본에서 마리와 보이체크가 서로 대칭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군악대장과 마리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하나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Woyzeck  Was hast du?
Marie     Nix.
Woyzeck Unter deinen Fingern glänzt’s ja.
Marie     Ein Ohrinnglein; hab’s gefunden.
Woyzeck  Ich habe so noch nix gefunden. Zwei auf einmal.
Marie     Bin ich ein Mensch?

보이체크 그게 뭐지? 마리 아무것도 아니야. 보이체크 손가락 사이에 번쩍거리는 게 있는데. 마리 잃어버렸던 귀고리를 찾았어. 보이체크 전에 못 보던 건데, 한꺼번에 두 개나? 마리 그럼 내가 질 나쁜 여자란 말이야?(홍성광)
Tambourmajor Marie! Marie ihn ansehend, mit Ausdurck: Geh’ einmal vor dich hin. - Über die Brust wie ein Stier und ein Bart wie ein Löw... So ist keiner... Ich bin stolz vor allen Weibern. Tambourmajor Wenn ich am Sonntag erst den großen Federbusch hab’ und die weißen Handschuh, Donnerwetter, Marie, der Prinz sagt immer: Mensch, Er ist ein Kerl. Marie spöttisch: Ach was! Tritt vor ihn hin. Mann!
군악대장 마리! 마리 (그를 바라보며, 표정을 실어) 앞으로 좀 걸어 봐! 황소 같은 가슴에다 수염은 사자 같고, 이런 남자는 없을 거야! 난 모든 여자들 앞에서 자부심을 느껴. 군악대장 내가 일요일에 깃털 달린 커다란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끼고 나타나면 말이야, 와우! 왕자님께선 항상 말씀하시지. 정말 멋진 녀석이라고. 마리 (비꼬듯이) 아, 그래!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사내란!(홍성광)


위의 예문에서처럼 마리가 보이체크와, 그리고 군악대장과의 사이에서 대등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나중에 보이체크의 손에 살해당하는 마리가 보이체크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수동적이기만 한 희생양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며, 마리를 좀 더 행위와 욕망의 주체로, 보이체크처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가시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박종대 역에서 살펴볼 것이듯이 마리와 보이체크, 마리와 군악대장 사이의 대화를 비대칭적으로 번역하는 것 역시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3) 이재인 역의 <보이첵>(2015, 개정증보판은 2022)

이재인은 독문학을 공부한 후 독어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독일어를 강의하고 있는 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이재인 역시 다른 역자들처럼 상세한 역자 해설을 썼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리얼리스트로서의 뷔히너의 면모와 <보이체크>의 현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인의 번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행을 자주 바꿈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갖는 흐르는 물과 같고 병렬적인 문체적 특성을 크게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홍성광의 번역에서처럼 젠더 대칭적 번역을 하고 있다.


4) 박종대 역의 <보이체크>(2020)

박종대는 임호일의 <뷔히너 문학 전집>(1987)에 이어 큰 시간 간격을 가지고 두 번째로 <뷔히너 전집>을 낸, 독문학을 전공한 전문 번역가이다. 역시 다른 역자들처럼 전공 지식에 바탕을 둔 상세한 역자 해설을 덧붙이고 있으며, 이 가운데 <보이체크>에 대한 해설에서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 판본 문제, 저본 등을 밝힌다. 역자는 “사회적, 역사적 결정론과 자기 소외는 뷔히너 문학의 주요 특징”이라고 하면서, <보이체크>를 보이체크라는 한 인간의 비극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바라보는데, 이때 이 비극은 “목적론적 운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요인”이라고 한다.

박종대의 번역에서 보이체크가 마리를 살해하는 장면을 살펴보도록 한다.


Woyzeck  Weißt du auch, wie lang es jetzt ist Marie?
Marie     Um Pfingsten 2 Jahr. 
Woyzeck  Weißt du auch, wie lang es noch zu sein wird?
Marie     Ich muß fort, der Nachttau fällt. 
Woyzeck  Friert’s dich Marie, und doch bist du warm. Was du heiße Lippen hast! heiß, heißn Hurenatem und doch möcht’ ich den Himmel gebe sie noch einmal zu küssen... und wenn man kalt ist, so friert man nicht mehr. Du wirst vom Morgentau nicht frieren. 
Marie     Was sagst du?
Woyzeck  Nix.
 Schweigen.
Marie     Was der Mond rot auf geht.
Woyzeck  Wie ein blutig Eisen.
Marie    Was hast du vor? Franz, du bist so blaß. <Er greift zum Messer.> Franz halt. Um des Himmels w<illen>, Hü - Hülfe 

보이체크 우리가 얼마나 같이 살았는지 알아? 마리 오순절이면 2년이죠. 보이체크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이 살게 될지도 알아? 마리 가야겠어요. 벌써 밤이슬이 내려요. 보이체크 추운가? 당신이? 당신처럼 뜨거운 여자가? 당신 입술이 얼마나 뜨거운지 몰라? 창녀의 입김처럼 뜨거워! 그런데도 빌어먹을, 당신 입술에 다시 한번 키스하고 싶어. 몸이 차가워지면 더 이상 얼어붙는 일은 없어. 당신은 아침 이슬에도 얼어붙지 않을 거야. 마리 무슨 소리예요? 보이체크 아무 것도 아냐. (침묵) 마리 붉은 달이 떠올라요. 보이체크 피 묻은 낫 같군. 마리 당신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프란츠, 당신 얼굴이 사색이에요. (칼을 본다) 프란츠, 안 돼요! 무슨 짓이에요?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홍성광의 번역에서와 다르게 위의 예문에서는 보이체크와 마리의 마지막 대화가 철저하게 비대칭적인 언어로 되어 있다. 죽기 직전까지 마리가 보이체크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물론 도착 문화의 언어적 관습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위, 의사, 군악대장 등 (남성들의) 사회 내 위계질서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보이체크보다 마리의 위치가 더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동안 보이체크에 대한 해석에서 마리는 주목받지 못하고 마리의 살해는 보이체크가 보여 주는 사회적 비극의 필연적인 귀결로 해석되곤 했다. 그리고 여러 역자들의 해석 역시 거의 동일하게 이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마리라는 인물에도 새롭게 주목을 하며 이 작품을 ‘보이체크의 비극과 마리의 비극’으로 바라볼 때, 젠더 사이의 위계의 문제는 번역에 있어서도 차이를 낳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3. 평가와 전망

<보이체크>는 위에서 살펴본 네 번역본을 포함하여 총 다섯 명의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 위의 네 번역본의 번역자들은 모두 독문학자이며, 뷔히너와 그의 작품 세계 일반, 그리고 <보이체크>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번역을 하였다. 따라서 위의 세 번역본 사이의 차이는 미세하며, 이 차이를 바탕으로 번역비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기존의 <보이체크>의 번역본들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다른 요소들, 예컨대 공연하기에 적합하도록 구어적 특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번역이라든지, 방언 번역, 또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 및 새로운 언어 감각이나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개성적이고 다양한 번역들이 앞으로 많이 등장하리라고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임호일(1987): 보이첵. 한마당.
임호일(2019): 보이체크. 지만지.
홍성광(2013): 보이체크. 민음사.
박종대(2020): 보이체크. 열린책들.
이재인(2022): 보이첵. 더클래식.

조향
  • 각주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