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결혼준비 (Hochzeitsvorbereitungen auf dem Land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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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tle = 시골의 결혼준비<br><small>(Hochzeitsvorbereitungen auf dem Lande)</smal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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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번역본은 이동승 역과 홍종호 역, 김윤섭 역과 이주동 역의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홍종호는 이동승의 번역을, 이주동은 김윤섭의 번역을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선 번역의 오역을 고치거나 조사나 종결어미를 바꾸고 표현을 바꾸는 등 새로운 번역 시도가 이루어지지만, 후속 번역이 어느 번역을 표준으로 삼았는가는 쉽게 드러난다. 표준 번역과 후속 번역이 공유하는 오역은 원문에 대한 같은 오해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표준 번역에 대한 의존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네 편의 번역본은 이동승 역과 홍종호 역, 김윤섭 역과 이주동 역의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홍종호는 이동승의 번역을, 이주동은 김윤섭의 번역을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선 번역의 오역을 고치거나 조사나 종결어미를 바꾸고 표현을 바꾸는 등 새로운 번역 시도가 이루어지지만, 후속 번역이 어느 번역을 표준으로 삼았는가는 쉽게 드러난다. 표준 번역과 후속 번역이 공유하는 오역은 원문에 대한 같은 오해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표준 번역에 대한 의존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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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ich als der Wagen an Raban vorüber war, verstellte irgendeine Stange den Anblick des Handpferdes dieses Wagens.(237) | Gleich als der Wagen an Raban vorüber war, verstellte irgendeine Stange den Anblick des Handpferdes dieses Wagens.(2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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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라반 곁을 막 지나쳤을 때, 전신주 하나가 이 마차의 오른 쪽 말의 시야를 방해했다.”(이주동 459) | “마차가 라반 곁을 막 지나쳤을 때, 전신주 하나가 이 마차의 오른 쪽 말의 시야를 방해했다.”(이주동 4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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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blick des Pferdes”에서 des Pferdes를 의미상 소유격으로 보는가 아니면 목적격으로 보는가에 있어 이주동과 김윤섭의 번역은 일치한다. 이는 이동승(“라반의 옆을 마차가 지나가자, 오른쪽 말은 금세 전신주에 가려서 보이지가 않았다.” 301), 홍경호의 번역(“마차가 라반 곁을 지나가자 곧 전신주에 가려 오른편 말이 보이지 않았다.”)과는 비교되는 오류이다. 한쪽(이동승―홍경호)은 맞고, 다른 한쪽(김윤섭-이주동)은 틀린 경우 혹은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Anblick des Pferdes”에서 des Pferdes를 의미상 소유격으로 보는가 아니면 목적격으로 보는가에 있어 이주동과 김윤섭의 번역은 일치한다. 이는 이동승(“라반의 옆을 마차가 지나가자, 오른쪽 말은 금세 전신주에 가려서 보이지가 않았다.” 301), 홍경호의 번역(“마차가 라반 곁을 지나가자 곧 전신주에 가려 오른편 말이 보이지 않았다.”)과는 비교되는 오류이다. 한쪽(이동승―홍경호)은 맞고, 다른 한쪽(김윤섭-이주동)은 틀린 경우 혹은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
− | 홍경호와 달리 | + | 홍경호와 달리 '''김윤섭'''은 표준 번역을 두지 않고 독자적 번역을 시도한다. 김윤섭의 번역을 보면 기존 번역을 거의 참조하지 않는 시도의 장단점이 분명해 보인다. 김윤섭의 번역에서는 기존 번역보다 개선된 부분도 물론 있지만 기존 번역에 없는 오역도 많이 발견된다. 또한 “나그네“(60), ”돈전”(60), “엽초”(63), “되물었읍죠”(69) 등 구식 표현과 원문보다 더 강한 어조(“입 안에 찔러 놓고” 48, “싯누렇게” 62)를 띤 표현이나, 원문에 없는 추가적인 표현도 발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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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승'''의 번역은 초역이지만 대체로 잘 읽히는 편이다. 이동승 번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문화(短文化)와 지나친 단락 쪼개기이다. 원문의 병렬 문장이나 복문을 여러 단문으로 풀어놓는 이동승의 번역은 원문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따르고자 한 김윤섭의 번역과 비교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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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 der Wagen vor dem Gasthaus stehenblieb, der Regen stark zu hören war und ― wahrscheinlich war ein Fenster offen ― auch die Stimmen der Gäste, da fragte sich Raban, was besser sei, gleichauszusteigen oder zu warten, bis der Wirt zum Wagen komme.(248) | Als der Wagen vor dem Gasthaus stehenblieb, der Regen stark zu hören war und ― wahrscheinlich war ein Fenster offen ― auch die Stimmen der Gäste, da fragte sich Raban, was besser sei, gleichauszusteigen oder zu warten, bis der Wirt zum Wagen komme.(2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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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여관 앞에서 정거하고 억세게 쏟아지는 빗소리와 ― 필경 창문은 열려 있었다 ― 손님들의 음성도 귓전에 들으면서 라아반은, 당장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면 여관집 주인이 마차 앞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어느 것이 나은가를 물었다.”(김윤섭 70) | “마차가 여관 앞에서 정거하고 억세게 쏟아지는 빗소리와 ― 필경 창문은 열려 있었다 ― 손님들의 음성도 귓전에 들으면서 라아반은, 당장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면 여관집 주인이 마차 앞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어느 것이 나은가를 물었다.”(김윤섭 7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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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승은 숨표로 이어지는 병렬 문장에서 숨표 대신 마침표를 통해 여러 개의 단문을 만들기도 한다. 단문화와 단락 쪼개기 등 원문의 통사 구조에 대한 번역가의 개입이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혹은 번역가 개인의 문체적 특징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통사 구조에의 개입이 의미 전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달리는 기차 칸의 다음 장면에 대한 번역에서 드러난다. | 이동승은 숨표로 이어지는 병렬 문장에서 숨표 대신 마침표를 통해 여러 개의 단문을 만들기도 한다. 단문화와 단락 쪼개기 등 원문의 통사 구조에 대한 번역가의 개입이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혹은 번역가 개인의 문체적 특징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통사 구조에의 개입이 의미 전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달리는 기차 칸의 다음 장면에 대한 번역에서 드러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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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 man aber eine Zwirnspule so oft schon in der Hand gehabt und sie so oft der Kundschaft überreicht, dann kennt man den Preis und kann darüber reden, während Dörfer uns entgegenkommen und vorübereilen, während sie zugleich in die Tiefe des Landes wenden, wo sie für uns verschwinden müssen.(243) | Hat man aber eine Zwirnspule so oft schon in der Hand gehabt und sie so oft der Kundschaft überreicht, dann kennt man den Preis und kann darüber reden, während Dörfer uns entgegenkommen und vorübereilen, während sie zugleich in die Tiefe des Landes wenden, wo sie für uns verschwinden müssen.(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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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실패도 해 보고, 손님들에게 싸구려로 넘겨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격에 대한 이야기 상대가 될 것이다. 마을이 다가왔다간 얼른 사라지곤 하였다. 그것은 낮은 지대로 접어들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이동승 310) | “자주 실패도 해 보고, 손님들에게 싸구려로 넘겨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격에 대한 이야기 상대가 될 것이다. 마을이 다가왔다간 얼른 사라지곤 하였다. 그것은 낮은 지대로 접어들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이동승 310) | ||
− | 예문의 앞부분은 이동승 번역 중에서 오역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 + | |
+ | 예문의 앞부분은 이동승 번역 중에서 오역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홍경호'''는 이 부분을 바로잡기는 했지만, “während~” 이하의 종속절을 하나의 독립된 문장으로 제시한 이동승의 번역 결정은 그대로 수용한다. “während~” 이하의 종속절을 주절과 무관한 문장으로 만들어 주절의 문장과 무관하게 번역함으로써, 속도에 기인한 이미지 변화를 담은 차창 풍경과 거래 장면을 대조시키는 화자의 시선이 전달되지 않는다. 홍경호 번역은 표준으로 삼은 이동승 번역을 대체로 따르고 있는데 이와 구분되는 지점은 원문의 시제를 변경할 때이다. 홍경호는 원문의 과거 시제를 종종 현재 시제로 변경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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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an drang wohl weit im Platze vor, wich aber den treibenden Wagen zuckend aus, sprang von vereinzelten trockenem Stein wieder zu trockenen Steinen und hielt den offenen Schirm in der hocherhobenen Hand, um alles rund herum zu sehn.(236) | Raban drang wohl weit im Platze vor, wich aber den treibenden Wagen zuckend aus, sprang von vereinzelten trockenem Stein wieder zu trockenen Steinen und hielt den offenen Schirm in der hocherhobenen Hand, um alles rund herum zu sehn.(236) | ||
“라반은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지나가는 마차를 급히 피한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마른 돌 위로 껑충 뛴다. 주위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 편 우산을 높이 들어 올린다.”(239) | “라반은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지나가는 마차를 급히 피한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마른 돌 위로 껑충 뛴다. 주위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 편 우산을 높이 들어 올린다.”(2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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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제 변경은 영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번역 전략으로 보인다. | 이러한 시제 변경은 영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번역 전략으로 보인다. | ||
− | 가장 최근에 발표된 | + | 가장 최근에 발표된 '''이주동'''의 번역은 1978년의 김윤섭 번역을 토대로 하면서도 이동승 번역을 대체로 이어받은 홍경호에 비해서는 번역 수정을 더 많이 한 편이다. 김윤섭의 구식 표현을 현대화하고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자연스럽게 고치거나 오역을 바로잡고자 시도하는데, 그런데도 종종 김윤섭의 오역을 그대로 반복하기도 한다. 이주동의 번역은 1970년대에 비해 국내의 카프카 연구 수준의 발전된 단계에 발맞춰 나온 번역이라는 점에서 이전 번역보다 더 나은 작품 이해에 바탕한 번역을 기대하게 한다. 예를 들어 작품에서 자주 상세하게 묘사되는 비 내리는 풍경은 작품의 지엽적인 요소가 아니라 주인공 라반의 감정이 반영된 풍경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꼼꼼한 번역이 기대된다. 김윤섭 번역을 개선한 이주동의 다음 번역은 그러한 기대를 의식한 성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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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f der Erde sah man in der Nässe den Widerschein des Eisens von Steinreihen zu Steinreihen in Windungen und langsam gleiten.(234) | Auf der Erde sah man in der Nässe den Widerschein des Eisens von Steinreihen zu Steinreihen in Windungen und langsam gleiten.(2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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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게 젖은 대지 위로 쇠기둥에 반사된 빛이 줄줄이 늘어선 돌 위를 지나 선회하면서 천천히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이주동 456) | 축축하게 젖은 대지 위로 쇠기둥에 반사된 빛이 줄줄이 늘어선 돌 위를 지나 선회하면서 천천히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이주동 4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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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다룬 네 편의 번역을 작품의 두 가지 중요한 모티프를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하자. 하나는 속도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백일몽이다. 다음 예문은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다리 난간의 이미지 변화를 담는다. | 이상에서 다룬 네 편의 번역을 작품의 두 가지 중요한 모티프를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하자. 하나는 속도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백일몽이다. 다음 예문은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다리 난간의 이미지 변화를 담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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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Zug fuhr so langsam an, daß man sich die Umdrehung der Räder vorstellen konnte, gleich aber jagte er eine Senkung hinab und ohne Vorbereitung wurden vor den Fenstern die langen Geländerstangen einer Brücke <u>auseinandergerissen und aneinandergepreßt, wie es schien.</u>(243) | Der Zug fuhr so langsam an, daß man sich die Umdrehung der Räder vorstellen konnte, gleich aber jagte er eine Senkung hinab und ohne Vorbereitung wurden vor den Fenstern die langen Geländerstangen einer Brücke <u>auseinandergerissen und aneinandergepreßt, wie es schien.</u>(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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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가 돌아가는 모양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기차가 떠나갔다. 그러자 곧 기차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뜻밖에도 창 앞에 바라보이는 다리의 긴 난간 기둥들이 <u>마치 찢기고 서로 밀리는 것 같았다.</u>(이주동 469) | 바퀴가 돌아가는 모양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기차가 떠나갔다. 그러자 곧 기차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뜻밖에도 창 앞에 바라보이는 다리의 긴 난간 기둥들이 <u>마치 찢기고 서로 밀리는 것 같았다.</u>(이주동 46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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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달리는 기차의 차창에서 바라본 다리 난간들의 간격이 기차가 접근하면서 급격한 원근법에 따라 어떻게 벌어지고 기차와 멀어지면서 어떻게 다시 좁혀져 보이는지를 묘사한다. 다소 의외인 김윤섭 번역 외에 나머지 번역은 ‘찢기고’ ‘밀린다’는 동일한 표현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auseinandergerissen과 aneinandergepreßt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reißen’은 어떤 것을 난폭하게 여러 부분으로 찢는다는 뜻도 있지만 아주 강하게 잡아당긴다는 뜻도 있다. auseinanderreißen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고, aneinanderpressen은 서로 맞붙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속도 모티프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아서 생기는 번역의 오류를 지금까지 나온 번역본 모두 피해 가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 원문은 달리는 기차의 차창에서 바라본 다리 난간들의 간격이 기차가 접근하면서 급격한 원근법에 따라 어떻게 벌어지고 기차와 멀어지면서 어떻게 다시 좁혀져 보이는지를 묘사한다. 다소 의외인 김윤섭 번역 외에 나머지 번역은 ‘찢기고’ ‘밀린다’는 동일한 표현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auseinandergerissen과 aneinandergepreßt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reißen’은 어떤 것을 난폭하게 여러 부분으로 찢는다는 뜻도 있지만 아주 강하게 잡아당긴다는 뜻도 있다. auseinanderreißen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고, aneinanderpressen은 서로 맞붙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속도 모티프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아서 생기는 번역의 오류를 지금까지 나온 번역본 모두 피해 가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 ||
작품의 중요한 두 번째 모티프는 변신이다. 그다지 내켜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 준비를 위해 시골로 떠나는 라반은 여정 중에 백일몽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커다란 딱정벌레나 사슴벌레 혹은 쌍무늬비구미의 형상”으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고 “옷 입은 몸”만을 시골 결혼식에 보내면 어떨까 하는 공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백일몽은 1915년에 쓴 <변신>에서 주도적으로 도입되는 모티프이다. | 작품의 중요한 두 번째 모티프는 변신이다. 그다지 내켜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 준비를 위해 시골로 떠나는 라반은 여정 중에 백일몽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커다란 딱정벌레나 사슴벌레 혹은 쌍무늬비구미의 형상”으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고 “옷 입은 몸”만을 시골 결혼식에 보내면 어떨까 하는 공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백일몽은 1915년에 쓴 <변신>에서 주도적으로 도입되는 모티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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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 habe, wie ich im Bett liege, die Gestalt eines großen Käfers, eines Hirschkäfers oder eines Maikäfers, glaube ich.(236) | Ich habe, wie ich im Bett liege, die Gestalt eines großen Käfers, eines Hirschkäfers oder eines Maikäfers, glaube ich.(2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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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큰 풍뎅이, 하늘가재 또는 쌍무늬바구미의 모습이라고 믿는다.(홍경호 238) |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큰 풍뎅이, 하늘가재 또는 쌍무늬바구미의 모습이라고 믿는다.(홍경호 2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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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예문 앞에서 라반은 시골로 떠나는 것은 젖은 옷을 입은 몸이고 정작 자신은 침대에 황갈색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는 백일몽에 빠진다. 이러한 백일몽은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딱정벌레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공상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홍경호를 제외한 나머지 번역가는 라반의 머릿속에 떠오른 백일몽의 장면이 아니라 시골로 가긴 가지만 실제로 가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라반의 독백으로 해당 구절을 읽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시골로 가는 껍데기뿐인 몸이 침대에 눕는다고 한 번역에서 여실히 드러난다.(“시골로 가서 그곳에서 눈물을 쏟으며... 이럭 저럭 잠자리에 들겠지” 김윤섭 45/ “거기에서 울면서 저녁 식사를 든다 하더라도 ... 그럭 저럭 잠자리에 들어...” 이주동 457/ “흐느끼며 저녁을 먹는다더라도... 그동안 침대 위에 드러누워...” 이동승 299) 이러한 오해는 위 예문의 번역에 영향을 미친다. 김윤섭 역의 .“..꼴이 아닌가”, 이주동 역의 “...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동승의 “...나 다름 없다” 등은 백일몽의 묘사라기보다는 라반이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시골에 가는 자신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들린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해체되는 백일몽이 1912년에 쓴 <변신> 서두에서 주도적 모티프가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일몽을 비유로 치환하는 것은 원문의 의도를 놓치는 것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장면을 백일몽의 장면으로 가장 가깝게 전달한 번역은 홍경호의 번역이다. 이는 홍경호가 나중에 <변신>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위 예문 앞에서 라반은 시골로 떠나는 것은 젖은 옷을 입은 몸이고 정작 자신은 침대에 황갈색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는 백일몽에 빠진다. 이러한 백일몽은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딱정벌레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공상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홍경호를 제외한 나머지 번역가는 라반의 머릿속에 떠오른 백일몽의 장면이 아니라 시골로 가긴 가지만 실제로 가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라반의 독백으로 해당 구절을 읽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시골로 가는 껍데기뿐인 몸이 침대에 눕는다고 한 번역에서 여실히 드러난다.(“시골로 가서 그곳에서 눈물을 쏟으며... 이럭 저럭 잠자리에 들겠지” 김윤섭 45/ “거기에서 울면서 저녁 식사를 든다 하더라도 ... 그럭 저럭 잠자리에 들어...” 이주동 457/ “흐느끼며 저녁을 먹는다더라도... 그동안 침대 위에 드러누워...” 이동승 299) 이러한 오해는 위 예문의 번역에 영향을 미친다. 김윤섭 역의 .“..꼴이 아닌가”, 이주동 역의 “...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동승의 “...나 다름 없다” 등은 백일몽의 묘사라기보다는 라반이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시골에 가는 자신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들린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해체되는 백일몽이 1912년에 쓴 <변신> 서두에서 주도적 모티프가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일몽을 비유로 치환하는 것은 원문의 의도를 놓치는 것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장면을 백일몽의 장면으로 가장 가깝게 전달한 번역은 홍경호의 번역이다. 이는 홍경호가 나중에 <변신>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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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 '''3. 평가와 전망''' | ||
− | + | 지금까지의 총 4편의 번역본을 보면 표준 번역을 참조하면서 원문 검토가 소홀히 된 경우가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문을 직접 검토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오역이 반복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이주동 번역이 현재 접근 가능한 번역본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주동 번역이 차라리 김윤섭보다 이동승 번역을 토대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카프카의 이 작품은 미완성작이기 때문에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만큼 관심을 받지 못해서 번역본도 많지 않은 편이고 언제 새로운 번역이 시도될지도 미지수이다. 이 작품 역시 카프카식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지고, 거리와 일터에 대한 만화경적인 관찰과 순간촬영이 주인공의 사고의 흐름과 엇갈려 이어지는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다른 산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기차 모티프가 도입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또한 결혼 준비에 대한 부정적이고 복합적인 태도를 그리는 이 작품은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을 한 카프카가 장차 신랑으로 겪게 될 불행한 상황을 선취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기존 번역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개선하는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 |
−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 | + | 이동승(1970): 시골의 결혼 준비. 상서각.<br> | |
− | + | 홍경호(1975): 시골의 결혼 준비. 범조사.<br> | |
− | + | 김윤섭(1978): 시골의 결혼 준비. 덕문출판사.<br> | |
− | + | 이주동(1997): 시골의 결혼 준비. 솔.<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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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v style="text-align: right"> | + | <div style="text-align: right">윤미애</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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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일문학]] | [[분류: 독일문학]] | ||
[[분류: 카프카, 프란츠]] | [[분류: 카프카, 프란츠]] | ||
+ | [[분류: 비평된작품]] |
2024년 7월 26일 (금) 06:23 기준 최신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작가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
---|---|
초판 발행 | 1953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1907년에 프란츠 카프카가 쓴 미완성 초기작으로 소설의 일부로 기획된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근무하는 서른 살의 라반은 휴가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부 베티가 있는 시골로 간다. 라반이 기차역으로 가는 중에는 도시의 거리, 지나가는 마차와 승객, 광장, 도시 사람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나오고, 지인인 레르멘트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나온다. 저녁을 같이 보내자는 지인의 제안을 물리치고 기차를 탄 라반은 같은 칸의 상인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의 대화도 듣는다. 라반이 시골의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비가 요란하게 내리는데, 아무도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이 없어 합승마차를 탄다. 여관에 도착하지만 라반은 내리기를 주저하고 이야기는 여기서 끊어진다. 신랑 라반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신부는 그다지 매력 있는 여자도 아니고, 시골에서 그가 만나게 될 사람들도 별로 달갑지 않다.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게 라반의 우울한 기분은 점점 더 세차게 비가 내리는 풍경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시골에 가는 여정에서 라반은 종종 백일몽으로 도피하는데, 자신은 “커다란 딱정벌레나 사슴벌레 혹은 쌍 무늬 비구미의 형상”으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고 “옷 입은 몸”만을 시골 결혼식에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상은 1915년에 쓴 <변신>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모티브이다. 작품 제목에 나오는 결혼준비는 이야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라반과 그의 약혼녀와의 만남도 기술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을 한 카프카가 장차 신랑으로 겪게 될 불행한 상황을 선취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1970년에 이동승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상서각).
초판 정보
Kafka, Franz(1953): Hochzeitsvorbereitungen auf dem Lande. In: Hochzeitsvorbereitungen auf dem Lande und andere Prosa aus dem Nachlass. Frankfurt a. M.: S. Fischer.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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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시골의 結婚 準備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23 | 프란치 카프카 | 李東昇 | 1970 | 尙書閣 | 295-325 | 편역 | 완역 | |
2 | 시골의 結婚準備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세계단편문학전집) 14 | 카프카 | 洪京鎬 | 1974 | 汎潮社 | 310-337 | 편역 | 완역 | |
3 | 시골의 結婚준비 | 變身 | 삼중당문고 344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홍경호) | 1977 | 三中堂 | 234-263 | 편역 | 완역 | |
4 | 시골에서의 婚禮準備 |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 프란츠 카프카 | 金潤涉 | 1978 | 德文出版社 | 37-72 | 편역 | 완역 | ||
5 | 시골의 결혼 준비 | 변신 : 단편전집 | 카프카 전집 1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1997 | 솔출판사 | 415-445 | 편역 | 완역 | |
6 | 시골의 결혼 준비 | 변신 : 단편전집 | 카프카 전집 1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2003 | 솔출판사 | 453-483 | 편역 | 완역 | |
7 | 시골의 결혼 준비 | 변신 : 단편전집 | 카프카 전집 1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2017 | 솔출판사 | 453-483 | 편역 | 완역 | |
8 | 시골의 혼인 준비 | 변신 외 | 프란츠 카프카 | 김재희 | 2018 | 서연비람 | 31-74 | 편역 | 완역 | ||
9 |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 프란츠 카프카 | 세계문학단편선 37 | 프란츠 카프카 | 박병덕 | 2020 | 현대문학 | 483-518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시골의 결혼 준비>[1]는 프란츠 카프카가 1907년에 쓴 미완성 초기작으로 세 가지 버전이 전해진다. 국내에는 지금까지 네 편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도시의 교통을 기술하는 이미지들이 나열된 세 번째 버전을 담은 번역본은 나와 있지 않다. 번역본의 출간 시기와 관련해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1997년의 이주동 번역 외에 나머지 세 편의 번역이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동승, 홍경호, 김윤섭의 번역이 모두 1970년대에 나왔다. 이 작품의 초역에 해당하는 이동승의 번역은 1970년에 상서각에서 “세계단편문학대계” 제23권으로 나온 <카프카 단편집>에 실려 있다. 홍경호의 번역은 1975년에 범조사에서 나온 “세계단편문학전집” 제14권에 들어있다. 홍경호의 번역은 1977년 삼중당에서 삼중당문고 제344권으로 나왔는데, 앞의 번역본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1978년에 덕문출판사에서 나온 김윤섭의 번역은 앞의 번역들과 달리 시리즈의 일환이 아니라 단독으로 출간된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라는 작품집에 실렸다. 1997년 이주동의 번역은 카프카 전집 발행 기획에 따라 출간된 전집 제1권 <변신. 단편 전집>에 들어있다. 이 책은 2003년과 2019년에 개정판으로 출판되는데, 2003년과 2019년은 각각 개정 1판, 개정 2판으로 나왔다. 발행 연도에 비추어보면 네 편의 번역본 중 최근 독자에게 접근 가능한 번역본은 이주동의 번역본으로 보인다. 다른 번역본들은 대학 도서관에서조차 구하기 어려운 편이다. 2년 뒤 재출간된 홍경호의 번역을 제외하고 이동승, 김윤섭의 번역이 이후 재출간되었는지는 확인을 요한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 비해 번역 출판의 역사가 빈약한 것은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번역가들은 모두 독문학자들인데, 이동승 외에 나머지 3명은 카프카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작품 제목과 달리 결혼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 이 작품은 도시에 근무하는 서른 살의 라반이 휴가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부 베티가 있는 시골로 가는 여정을 그린다. 라반이 기차역으로 가는 중에 도시의 거리, 지나가는 마차와 승객, 광장, 도시 사람들, 기차의 차창 밖 풍경 등이 등장하면서 라반이 여정 중에 빠져드는 생각들과 엇갈려 묘사된다.
2. 개별 번역 비평
네 편의 번역본은 이동승 역과 홍종호 역, 김윤섭 역과 이주동 역의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홍종호는 이동승의 번역을, 이주동은 김윤섭의 번역을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선 번역의 오역을 고치거나 조사나 종결어미를 바꾸고 표현을 바꾸는 등 새로운 번역 시도가 이루어지지만, 후속 번역이 어느 번역을 표준으로 삼았는가는 쉽게 드러난다. 표준 번역과 후속 번역이 공유하는 오역은 원문에 대한 같은 오해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표준 번역에 대한 의존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Gleich als der Wagen an Raban vorüber war, verstellte irgendeine Stange den Anblick des Handpferdes dieses Wagens.(237)
“마차가 라아반 앞으로 지나갔을 때 하나의 장대가 그 마차의 예비 말의 시야를 가로막았다.”(김윤섭 47)
“마차가 라반 곁을 막 지나쳤을 때, 전신주 하나가 이 마차의 오른 쪽 말의 시야를 방해했다.”(이주동 459)
“Anblick des Pferdes”에서 des Pferdes를 의미상 소유격으로 보는가 아니면 목적격으로 보는가에 있어 이주동과 김윤섭의 번역은 일치한다. 이는 이동승(“라반의 옆을 마차가 지나가자, 오른쪽 말은 금세 전신주에 가려서 보이지가 않았다.” 301), 홍경호의 번역(“마차가 라반 곁을 지나가자 곧 전신주에 가려 오른편 말이 보이지 않았다.”)과는 비교되는 오류이다. 한쪽(이동승―홍경호)은 맞고, 다른 한쪽(김윤섭-이주동)은 틀린 경우 혹은 그 반대인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홍경호와 달리 김윤섭은 표준 번역을 두지 않고 독자적 번역을 시도한다. 김윤섭의 번역을 보면 기존 번역을 거의 참조하지 않는 시도의 장단점이 분명해 보인다. 김윤섭의 번역에서는 기존 번역보다 개선된 부분도 물론 있지만 기존 번역에 없는 오역도 많이 발견된다. 또한 “나그네“(60), ”돈전”(60), “엽초”(63), “되물었읍죠”(69) 등 구식 표현과 원문보다 더 강한 어조(“입 안에 찔러 놓고” 48, “싯누렇게” 62)를 띤 표현이나, 원문에 없는 추가적인 표현도 발견된다.
이동승의 번역은 초역이지만 대체로 잘 읽히는 편이다. 이동승 번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문화(短文化)와 지나친 단락 쪼개기이다. 원문의 병렬 문장이나 복문을 여러 단문으로 풀어놓는 이동승의 번역은 원문의 통사 구조를 되도록 따르고자 한 김윤섭의 번역과 비교된다.
Als der Wagen vor dem Gasthaus stehenblieb, der Regen stark zu hören war und ― wahrscheinlich war ein Fenster offen ― auch die Stimmen der Gäste, da fragte sich Raban, was besser sei, gleichauszusteigen oder zu warten, bis der Wirt zum Wagen komme.(248)
“마차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비]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창문이 열린 탓인지 손님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라반은 마차에서 얼른 내리는 것과,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의, 어느 쪽이 더 나을까, 하고 따져보았다.”(이동승 319)
“마차가 여관 앞에서 정거하고 억세게 쏟아지는 빗소리와 ― 필경 창문은 열려 있었다 ― 손님들의 음성도 귓전에 들으면서 라아반은, 당장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면 여관집 주인이 마차 앞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어느 것이 나은가를 물었다.”(김윤섭 70)
이동승은 숨표로 이어지는 병렬 문장에서 숨표 대신 마침표를 통해 여러 개의 단문을 만들기도 한다. 단문화와 단락 쪼개기 등 원문의 통사 구조에 대한 번역가의 개입이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혹은 번역가 개인의 문체적 특징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통사 구조에의 개입이 의미 전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달리는 기차 칸의 다음 장면에 대한 번역에서 드러난다.
Hat man aber eine Zwirnspule so oft schon in der Hand gehabt und sie so oft der Kundschaft überreicht, dann kennt man den Preis und kann darüber reden, während Dörfer uns entgegenkommen und vorübereilen, während sie zugleich in die Tiefe des Landes wenden, wo sie für uns verschwinden müssen.(243)
“자주 실패도 해 보고, 손님들에게 싸구려로 넘겨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격에 대한 이야기 상대가 될 것이다. 마을이 다가왔다간 얼른 사라지곤 하였다. 그것은 낮은 지대로 접어들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이동승 310)
예문의 앞부분은 이동승 번역 중에서 오역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홍경호는 이 부분을 바로잡기는 했지만, “während~” 이하의 종속절을 하나의 독립된 문장으로 제시한 이동승의 번역 결정은 그대로 수용한다. “während~” 이하의 종속절을 주절과 무관한 문장으로 만들어 주절의 문장과 무관하게 번역함으로써, 속도에 기인한 이미지 변화를 담은 차창 풍경과 거래 장면을 대조시키는 화자의 시선이 전달되지 않는다. 홍경호 번역은 표준으로 삼은 이동승 번역을 대체로 따르고 있는데 이와 구분되는 지점은 원문의 시제를 변경할 때이다. 홍경호는 원문의 과거 시제를 종종 현재 시제로 변경한다.
Raban drang wohl weit im Platze vor, wich aber den treibenden Wagen zuckend aus, sprang von vereinzelten trockenem Stein wieder zu trockenen Steinen und hielt den offenen Schirm in der hocherhobenen Hand, um alles rund herum zu sehn.(236)
“라반은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지나가는 마차를 급히 피한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마른 돌 위로 껑충 뛴다. 주위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 편 우산을 높이 들어 올린다.”(239)
이러한 시제 변경은 영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번역 전략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이주동의 번역은 1978년의 김윤섭 번역을 토대로 하면서도 이동승 번역을 대체로 이어받은 홍경호에 비해서는 번역 수정을 더 많이 한 편이다. 김윤섭의 구식 표현을 현대화하고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자연스럽게 고치거나 오역을 바로잡고자 시도하는데, 그런데도 종종 김윤섭의 오역을 그대로 반복하기도 한다. 이주동의 번역은 1970년대에 비해 국내의 카프카 연구 수준의 발전된 단계에 발맞춰 나온 번역이라는 점에서 이전 번역보다 더 나은 작품 이해에 바탕한 번역을 기대하게 한다. 예를 들어 작품에서 자주 상세하게 묘사되는 비 내리는 풍경은 작품의 지엽적인 요소가 아니라 주인공 라반의 감정이 반영된 풍경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꼼꼼한 번역이 기대된다. 김윤섭 번역을 개선한 이주동의 다음 번역은 그러한 기대를 의식한 성과로 보인다.
Auf der Erde sah man in der Nässe den Widerschein des Eisens von Steinreihen zu Steinreihen in Windungen und langsam gleiten.(234)
습기 어린 땅바닥 위에는 쇠기둥이 반사하는 그림자가 커브를 틀 때 줄줄이 늘어선 돌과 돌을 밟고 서서히 미끄러져 가는 광경이 보였다.(김윤섭 43)
축축하게 젖은 대지 위로 쇠기둥에 반사된 빛이 줄줄이 늘어선 돌 위를 지나 선회하면서 천천히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이주동 456)
이상에서 다룬 네 편의 번역을 작품의 두 가지 중요한 모티프를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하자. 하나는 속도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백일몽이다. 다음 예문은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다리 난간의 이미지 변화를 담는다.
Der Zug fuhr so langsam an, daß man sich die Umdrehung der Räder vorstellen konnte, gleich aber jagte er eine Senkung hinab und ohne Vorbereitung wurden vor den Fenstern die langen Geländerstangen einer Brücke auseinandergerissen und aneinandergepreßt, wie es schien.(243)
기차는 조용히 출발하여,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기차는 곧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뜻밖에도 창 앞에 바라보이는 다리의 기다란 난간 기둥들이 찢기고 밀리는 것 같았다.(이동승 312)
기차는 서서히 출발해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곧 내리막길을 달린다. 뜻밖에 창 앞 다리의 긴 난간 기둥들이 찢기고 밀리는 것 같다.(홍경호 249)
바퀴 돌아가는 모양을 머리로 상상할 수 있으리만큼 천천히 기차는 떠났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도 기차는 단숨에 경사진 와지(窪地)를 건너 뛰었고 창밖으로 다리의 긴 난간 철봉대를 훑어 가면서 짓눌러대는 것이었다.(김윤섭 61)
바퀴가 돌아가는 모양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기차가 떠나갔다. 그러자 곧 기차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뜻밖에도 창 앞에 바라보이는 다리의 긴 난간 기둥들이 마치 찢기고 서로 밀리는 것 같았다.(이주동 469)
원문은 달리는 기차의 차창에서 바라본 다리 난간들의 간격이 기차가 접근하면서 급격한 원근법에 따라 어떻게 벌어지고 기차와 멀어지면서 어떻게 다시 좁혀져 보이는지를 묘사한다. 다소 의외인 김윤섭 번역 외에 나머지 번역은 ‘찢기고’ ‘밀린다’는 동일한 표현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auseinandergerissen과 aneinandergepreßt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reißen’은 어떤 것을 난폭하게 여러 부분으로 찢는다는 뜻도 있지만 아주 강하게 잡아당긴다는 뜻도 있다. auseinanderreißen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고, aneinanderpressen은 서로 맞붙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속도 모티프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아서 생기는 번역의 오류를 지금까지 나온 번역본 모두 피해 가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작품의 중요한 두 번째 모티프는 변신이다. 그다지 내켜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 준비를 위해 시골로 떠나는 라반은 여정 중에 백일몽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커다란 딱정벌레나 사슴벌레 혹은 쌍무늬비구미의 형상”으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고 “옷 입은 몸”만을 시골 결혼식에 보내면 어떨까 하는 공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백일몽은 1915년에 쓴 <변신>에서 주도적으로 도입되는 모티프이다.
Ich habe, wie ich im Bett liege, die Gestalt eines großen Käfers, eines Hirschkäfers oder eines Maikäfers, glaube ich.(236)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은 커다란 투구풍뎅이 꼴이 아닌가. 하늘 가재가 아니면 쌍무늬 바구미 같은 갑충의 몰골이지.(김윤섭 45)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한 마리의 커다란 딱정벌레나 하늘 가재 아니면 쌍무늬바구미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주동 458)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나는, 이를테면 커다란 풍뎅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하늘가재나 쌍무늬바구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이동승 300)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큰 풍뎅이, 하늘가재 또는 쌍무늬바구미의 모습이라고 믿는다.(홍경호 238)
위 예문 앞에서 라반은 시골로 떠나는 것은 젖은 옷을 입은 몸이고 정작 자신은 침대에 황갈색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는 백일몽에 빠진다. 이러한 백일몽은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딱정벌레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공상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홍경호를 제외한 나머지 번역가는 라반의 머릿속에 떠오른 백일몽의 장면이 아니라 시골로 가긴 가지만 실제로 가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라반의 독백으로 해당 구절을 읽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시골로 가는 껍데기뿐인 몸이 침대에 눕는다고 한 번역에서 여실히 드러난다.(“시골로 가서 그곳에서 눈물을 쏟으며... 이럭 저럭 잠자리에 들겠지” 김윤섭 45/ “거기에서 울면서 저녁 식사를 든다 하더라도 ... 그럭 저럭 잠자리에 들어...” 이주동 457/ “흐느끼며 저녁을 먹는다더라도... 그동안 침대 위에 드러누워...” 이동승 299) 이러한 오해는 위 예문의 번역에 영향을 미친다. 김윤섭 역의 .“..꼴이 아닌가”, 이주동 역의 “...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동승의 “...나 다름 없다” 등은 백일몽의 묘사라기보다는 라반이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시골에 가는 자신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들린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해체되는 백일몽이 1912년에 쓴 <변신> 서두에서 주도적 모티프가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일몽을 비유로 치환하는 것은 원문의 의도를 놓치는 것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장면을 백일몽의 장면으로 가장 가깝게 전달한 번역은 홍경호의 번역이다. 이는 홍경호가 나중에 <변신>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3. 평가와 전망
지금까지의 총 4편의 번역본을 보면 표준 번역을 참조하면서 원문 검토가 소홀히 된 경우가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문을 직접 검토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오역이 반복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현상이다. 이주동 번역이 현재 접근 가능한 번역본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주동 번역이 차라리 김윤섭보다 이동승 번역을 토대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카프카의 이 작품은 미완성작이기 때문에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만큼 관심을 받지 못해서 번역본도 많지 않은 편이고 언제 새로운 번역이 시도될지도 미지수이다. 이 작품 역시 카프카식의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지고, 거리와 일터에 대한 만화경적인 관찰과 순간촬영이 주인공의 사고의 흐름과 엇갈려 이어지는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다른 산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기차 모티프가 도입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또한 결혼 준비에 대한 부정적이고 복합적인 태도를 그리는 이 작품은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을 한 카프카가 장차 신랑으로 겪게 될 불행한 상황을 선취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기존 번역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개선하는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동승(1970): 시골의 결혼 준비. 상서각.
홍경호(1975): 시골의 결혼 준비. 범조사.
김윤섭(1978): 시골의 결혼 준비. 덕문출판사.
이주동(1997): 시골의 결혼 준비. 솔.
바깥 링크
1. Projekt-Gutenberg 보기
- ↑ Kafka, Franz(1986): Sämtliche Erzählungen. Raabe, Paul(ed.). Frankfurt a. M.: S. Fischer, 233-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