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리카 (Angelika)"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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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앙겔리카 (Angel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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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안제리카 || 안제리카 || || 테오도르 슈토름 지음 || 유준섭 || 1959 || 선진문화사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독한대역본,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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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유준섭(1959)" />[[#유준섭(1959)R|1]] || 안제리카 || 안제리카 || || 테오도르 슈토름 지음 || 유준섭 || 1959 || 선진문화사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독한대역본,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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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안겔리카 || 大學時節, 外2篇 || 陽文文庫 100 || T. 슈토름 || 尹順豪 || 1960 || 陽文社 || 83-106 || 편역 || 완역 ||
 
| 2 || 안겔리카 || 大學時節, 外2篇 || 陽文文庫 100 || T. 슈토름 || 尹順豪 || 1960 || 陽文社 || 83-10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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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앙겔리카 || 호반 ||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 시토름 || 이종대 || 1986 || 금성출판사 || 216-256 || 편역 || 완역 || 43번 책의 개정신판
 
| 8 || 앙겔리카 || 호반 ||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 시토름 || 이종대 || 1986 || 금성출판사 || 216-256 || 편역 || 완역 || 43번 책의 개정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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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안겔리카 || 대학 시절 || 세계문학선 19 || 슈토름 || 강두식 || 1994 || 여명출판사 || 225-250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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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 id="강두식(1994)" />[[#강두식(1994)R|9]] || 안겔리카 || 대학 시절 || 세계문학선 19 || 슈토름 || 강두식 || 1994 || 여명출판사 || 225-250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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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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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테오도르 슈토름은 50편이 훨씬 넘는 소설을 남겼는데, <앙겔리카>(1855)는 전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세부적인 장르는 노벨레다. 전체적으로 짙은 낭만적 색채와 분위기를 보이는 이 짧은 노벨레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는 주제적 측면에서 볼 때, 후기의 <[[백마의 기사 (Der Schimmelreiter)|백마의 기사]]>(1888)와 함께 슈토름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작품인 <[[임멘 호수 (Immensee)|임멘 호수]]>(1850)와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다. 슈토름 작품의 한국어 번역 현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무엇보다 방금 언급한 두 대표작에 관심이 쏠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번역비평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앙겔리카>는 홀로 번역되어 출간된 경우보다는 ― 물론 텍스트 분량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 <임멘 호수>, <[[대학시절 (Auf der Universität)|대학 시절]]>(1862), <백마의 기사> 등 슈토름의 다른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는 번역집에 더불어 수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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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내에서 시도된 <앙겔리카> 번역의 작은 역사를 조망하려 하는데, 우선 처음으로 유준섭이 <안게―리카―>라는 제목과 함께 1959년에 해당 작품의 독한대역 단행본을 선진문화사에서 출간한다. 그 후 <앙겔리카>는 1960년 윤순호가 펴낸 <대학 시절 외 2편>(양문사) 그리고 1976년 서순석과 양응주가 공동번역을 통해 내놓은 <호반; 백마의 기사 외>(삼중당)에 ― 후자 속 작품명은 <안겔리카>이다 ― 수록되게 된다. 1994년에는 강두식에 의해 번역되어 바로 앞의 제목으로 <대학 시절>(여명출판사)에 실린다. 특히 이종대는 1978년부터 청소년들을 주 독자층으로 겨냥한, <임멘 호수>를 표제로 한 슈토름 번역 모음집을 통해 <앙겔리카>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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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앙겔리카>는 슈토름 작품의 번역에 있어 중요성과 빈도를 고려할 때 그렇게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지금껏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노벨레는 단순히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는 사실 어려운 점이 있다. <앙겔리카>의 “번역 가능성 Übersetzbarkeit”<ref>Benjamin, Walter(1972): Gesammelte Schriften. Rolf Tiedemann u. Hermann Schweppenhäuser(ed.). Vol. IV. Frankfurt a. M.: Suhrkamp, 9. 앞으로 Gesammelte Schriften은 GS로 줄여져 로마숫자의 권수와 아라비아숫자의 쪽수와 함께 (부분 권수의 표기 없이) 인용된다.</ref>과 밀접하면서도 본질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것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의 발전적 진행이라기보다는 작품 전체를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장면 장면마다 에르하르트(Ehrhardt)와 앙겔리카 두 연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희망과 체념으로 점철된 삶의 부조리와 모순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작품의 내면적 구성 요소에 대한 성찰이 지금까지의 <앙겔리카> 번역에 있어 일정한 작용을 했는지는 번역자들의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해 큰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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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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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번역비평은 번역 시기, 제공 가능한 분석의 단초 등에 따라 유준섭, 강두식 그리고 이종대의 <앙겔리카> 번역을 조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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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준섭(1959)| 유준섭 역의 <안게―리카―>(1959)]]<span id="유준섭(1959)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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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으로 <앙겔리카>를 번역, 소개한 유준섭의 <안게―리카―>는 독한대역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 단행본은 단지 독일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병렬로 배치한 것뿐만 아니라, 각 페이지 하단에 원문의 문법적 요소들, 단어나 구절의 의미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문법·작품·번역의 통합 가능성을 고찰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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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섭의 <앙겔리카> 번역은 무엇보다 원문의 내용과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다음 부분에서는 에르하르트와의 관계가 파국을 맞으면서 나타나게 된 앙겔리카의 양가적 모습들이 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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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entstand allmählich eine doppelte Angelika; beide hatten sie die zarte schmächtige Gestalt, das sonnenblonde Haar, das er vor allem liebte; aber die eine hing an seinen Augen, seinen Lippen und hatte nichts, was nicht auch ihm gehörte; die andere wußte nichts von seinem Herzen, sie wandte, wenn er ihren Arm, ihren Nacken berührte, sich unwillig von ihm ab, wie von einem Frechen […].(322)<ref>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Storm, Theodor(1958): Angelika. In: Werke. Gesamtausgabe in drei Bänden. Hermann Engelhard(ed.). Vol. 1. Stuttgart: J. G. Cotta’sche Buchhandlung Nacht.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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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하여 점차로 두 사람의 안게―리카―가 생겨났다. 둘이 다 어여쁘고 날씬한 몸집과, 그의 무엇 보다도 더욱 사랑하는 햇빛과 같이 밝은 부론드의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의 눈, 그의 입술에 매달려, 그가 갖지 않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없었다.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마음등은 안중에도 없고, 그가 그 여자의 팔이나 목에 손을 댄다면, 염치 없는 사나이에게 만지작 거려진 것과도 같이 불쾌한 듯이 떨어졌다.(유준섭,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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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어 번역은 독일어 문법구조에 대한 충분한 숙지와 함께 단어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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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두식(1994)| 강두식 역의 <안겔리카>(1994)]]<span id="강두식(1994)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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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번역된 작품을 읽는 ‘보통의 독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그 수용 대상이 내용을 정확히, 흥미롭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판단함에 있어 그 독자에게 원작의 언어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는다(물론 독서 체험을 통해 그가 이러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달리 말해 원작과의 언어적 단절이 그것의 번역을 만족스럽게 수용하는 데 항상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과 번역, 바꿔 말하면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이상의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강두식의 <앙겔리카> 번역은 이와 관련된 텍스트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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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Abendwind erhob sich; und Musik, von der Luft getragen, vom Wasser her, ganz aus der Ferne kam herangeweht. Er[Ehrhard] legte die Arme weit vor sich auf den Tisch; seine Augen glänzten. ≪Musik!≫ sagte er; ≪törichtes Entzücken befällt mich; ― mir ist, als müsse nun noch einmal alles wiederkommen.≫(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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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바람이 일었다. 바람결에 호수 쪽에서 음악 소리가 실려 왔다. 그는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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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소리가 들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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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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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쩐지 모든 것이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강두식,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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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타고 호수 저 편 어딘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에르하르트는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쭉 내밀고 앉아 있었다. 눈빛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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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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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하르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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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을 만큼 환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는군. 나는 지금 어쩐지 모든 일이 다시 한 번 되돌아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이종대, 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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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의 추수감사절 무도회는 그동안 사랑과 소유욕이라는 에르하르트의 양가적 감정에 억눌려 있던 앙겔리카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다음날 두 사람은 그들이 전에 자주 방문했던 나들이 장소에서 우연히 조우한다. 먼저 이종대의 번역에서는 빠진 부분 없이 인용문 전체가 온전히 작업의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두식의 번역은 그 자체로는 글 흐름을 따라가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원문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일정부분이 도착어로 옮겨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단어와 구절 층위에서는 “weit”, “ganz aus der Ferne” 등이 그러하다. 특히 “seine Augen glänzten”, “törichtes Entzücken befällt mich”와 같은 문장은 앙겔리카와의 연인관계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에르하르트가 느끼는 절박한 심정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인데, 어떤 이유에선지 번역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한국어 번역은 그 팽팽한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말인 “넌지시”를 새로 투입했다). 강두식의 <앙겔리카> 번역에서는 이와 같은 번역의 누락이 제법 빈번하게 발견된다. 번역이 원문에 대해 어떤 확장된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이 문제는 보다 깊이 있는 숙고의 필요성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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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종대 역의 <앙겔리카>(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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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앙겔리카>가 들어 있는 <호반>(금성출판사)을 출간한 이래 이종대는 거듭해서 개정판을 내놓고 있다. 그의 <앙겔리카> 번역들은 전체적으로 동일성의 범주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데, 단어와 구절 그리고 문장부호 등에서 아주 약간의 차이만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에 입수한 판본 중 가장 나중에 나온 1997년 판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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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대가 시도한 <앙겔리카> 번역과 관련하여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그것의 수용자 그룹이 미리 고려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집 <호반>(또는 <호반 외>)이 속한 총서의 명칭이 본래 ‘주니어 세계문학’이라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앙겔리카>의 한국어 번역 텍스트는 청소년 독자를 위해 출간되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제 해당 판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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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대의 <앙겔리카> 번역에서는 원문 텍스트에 대한 번역자의 이해와 해석이 한국어 번역문의 형태적·내용적 성립 과정에 상당히 자유로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번역자가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수용자의 존재를 십분 의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종대는 에르하르트가 앙겔리카에게 취했던 자신의 태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말인 “die Schwäche seiner Natur”를 “자기의 옹졸함”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주인공 간 관계의 복잡한 양상을 은연중에 단순화시키고 그 파탄의 원인을 단지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서 찾으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번역자의 자의적 개입은 문장 층위에서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인용 부분은 추수감사절 무도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 이후 갈등과 긴장 속에서 앙겔리카의 극도로 고조된 감정이 에르하르트에게 양가적으로 작용한 다음의 일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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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bst die Verpflichtungen der Dankbarkeit, so schwer er[Ehrhard] sie seinem Wesen nach empfinden mußte, hatte er nicht gescheut; denn er war keine geringe Natur. Allein es war nichts dadurch gewonnen worden.(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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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그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에르하르트는 결코 비열한 인간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이종대,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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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감사의 의무를 갖는 일까지도, 그것은 그의 성격상 쓰라린 일임에는 틀림 없었으나, 그는 구태어 꺼리지는 않았다. 그는 결코 천한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서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유준섭,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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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번역문을 비교해볼 때, 우선 유준섭은 원문의 단어와 문장구조를 가능한 한 존중하고 있다. 반면 이종대는 한국식 표현을 고려하여 “die Verpflichtungen der Dankbarkeit”를 부정적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로 치환하고 ‘왜냐하면’의 뜻을 가지는 독일어 접속사 ‘denn’의 기능을 무화시킨 후 그것이 이끄는 문장을 바로 뒤의 문장과 결합하는 등 ‘재창조’로서의 번역을 시도하고 있다. 이때 번역자는 문화적 배경이 뒷받침된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보여줌과 동시에 불완전하고 불충분하게 원문의 내용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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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전체 3장으로 이루어진 원작에서는 각각의 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로마숫자가 표기되어 있는데, 한국어 번역의 경우 독일어 원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간 제목이 들어가 있다(다른 판본은 이러한 제목을 좀 더 세분화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텍스트의 내용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삽화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파라텍스트적 요소는 독자에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강두식의 <앙겔리카> 번역에서도 비슷한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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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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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토름의 대표작인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등과 비교해보면 <앙겔리카>는 그동안 한국에서 순탄치 않은 “사후의 삶 Fortleben”<ref>GS IV, 11.</ref>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단순히 그것이 여기에서 맞게 될 종말의 선행적 이미지가 제시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망각이라는 늪 속으로 빠져든 원작은 생산적인 행위로서의 번역에 언제까지나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다. <앙겔리카>의 경우 다분히 통속적이고 진부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이란 피상적 주제보다는 그 이면에서 주도적으로 작용하는 복잡한 심리적 동기가 여전히 주목할만하다. 19세기의 낡은, 잠들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눈뜨게 할 새로운 번역가들의 ‘번역의욕’(Übersetzungswollen)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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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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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섭(1959): 안게―리카―. 선진문화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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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식(1994): 안겔리카. 여명출판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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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대(1997): 앙겔리카. 금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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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 right">유종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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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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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0일 (토) 08:30 기준 최신판

테오도르 슈토름(Theodor Storm, 1817-1888)의 노벨레

앙겔리카 (Angelika)
작가테오도르 슈토름(Theodor Storm)
초판 발행1855
장르노벨레


작품소개

테오도르 슈토름의 1855년 작 노벨레이다. 제목인 앙겔리카는 여성의 이름이지만, 서술의 포커스는 남자 주인공인 에어하르트가 겪는 내적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다. 에어하르트는 나이가 많아서야 간신히 직업을 구했고 경제적으로 빈한한 처지에 있어서 젊고 예쁜 앙겔리카와 서로 마음을 주고받지만 결혼을 약속하지는 못한다. 앙겔리카의 어머니는 딸이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까닭에 딸을 사교모임에 내보내고, 앙겔리카도 놀이와 댄스 등 청춘의 오락거리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앙겔리카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애인에 대한 죄책감과 즐거운 오락 사이에서 갈등한다. 에어하르트는 그녀에게 미래를 약속하지 않은 채, 다른 남자를 만날 기회도 차단하려고 한다.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한 젊은 의사가 앙겔리카에게 청혼한다. 에어하르트는 승진의 기회를 찾아 먼 곳으로 떠나면서 앙겔리카에게 기약 없이 기다려달라고 요청한다. 일 년 후에 앙겔리카를 찾아가지만, 그녀가 곧 결혼할 거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다시 돌아와 버린다. 이후 친구의 편지를 통해 청혼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이 소식으로 에어하르트는 오히려 앙겔리카에 대한 사랑이 끝났고 추억거리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국내에서는 유준섭이 1959년 <안제리카>라는 제목으로 초역했다(선진문화사).


초판 정보

Storm, Theodor(1855): Angelika. In: Ein grünes Blatt. Zwei Sommergeschichten. Berlin: Heinrich Schindler, 1-44.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안제리카 안제리카 테오도르 슈토름 지음 유준섭 1959 선진문화사 - 확인불가 확인불가 독한대역본,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2 안겔리카 大學時節, 外2篇 陽文文庫 100 T. 슈토름 尹順豪 1960 陽文社 83-106 편역 완역
3 안겔리카 大學時節 瑞文文庫 26 T. 슈토름 尹順豪 1972 瑞文堂 81-106 편역 완역
4 앙겔리카 湖畔, 白馬의 驥士 三中堂文庫 225 T. 슈토름 徐順錫; 楊應周 1976 三中堂 50-77 편역 완역
5 안겔리카 大學時節 瑞文文庫 26 슈토름 尹順豪 1976 瑞文堂 131-168 편역 완역 리스에 1982년 출간으로 나와 있으나 실물확인 결과 1972년에 출간된 책으로 확인되며 19972년 초역본의 개정판임
6 앙겔리카 湖畔 세계문학 44 시토름 李鍾大 1978 金星出版社 178-212 편역 완역
7 앙겔리카 호반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시토름 이종대 1985 금성출판사 216-256 편역 완역
8 앙겔리카 호반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시토름 이종대 1986 금성출판사 216-256 편역 완역 43번 책의 개정신판
안겔리카 대학 시절 세계문학선 19 슈토름 강두식 1994 여명출판사 225-250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독일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테오도르 슈토름은 50편이 훨씬 넘는 소설을 남겼는데, <앙겔리카>(1855)는 전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세부적인 장르는 노벨레다. 전체적으로 짙은 낭만적 색채와 분위기를 보이는 이 짧은 노벨레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는 주제적 측면에서 볼 때, 후기의 <백마의 기사>(1888)와 함께 슈토름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작품인 <임멘 호수>(1850)와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다. 슈토름 작품의 한국어 번역 현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무엇보다 방금 언급한 두 대표작에 관심이 쏠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번역비평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앙겔리카>는 홀로 번역되어 출간된 경우보다는 ― 물론 텍스트 분량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 <임멘 호수>, <대학 시절>(1862), <백마의 기사> 등 슈토름의 다른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는 번역집에 더불어 수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시도된 <앙겔리카> 번역의 작은 역사를 조망하려 하는데, 우선 처음으로 유준섭이 <안게―리카―>라는 제목과 함께 1959년에 해당 작품의 독한대역 단행본을 선진문화사에서 출간한다. 그 후 <앙겔리카>는 1960년 윤순호가 펴낸 <대학 시절 외 2편>(양문사) 그리고 1976년 서순석과 양응주가 공동번역을 통해 내놓은 <호반; 백마의 기사 외>(삼중당)에 ― 후자 속 작품명은 <안겔리카>이다 ― 수록되게 된다. 1994년에는 강두식에 의해 번역되어 바로 앞의 제목으로 <대학 시절>(여명출판사)에 실린다. 특히 이종대는 1978년부터 청소년들을 주 독자층으로 겨냥한, <임멘 호수>를 표제로 한 슈토름 번역 모음집을 통해 <앙겔리카>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앙겔리카>는 슈토름 작품의 번역에 있어 중요성과 빈도를 고려할 때 그렇게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지금껏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노벨레는 단순히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는 사실 어려운 점이 있다. <앙겔리카>의 “번역 가능성 Übersetzbarkeit”[1]과 밀접하면서도 본질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것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의 발전적 진행이라기보다는 작품 전체를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장면 장면마다 에르하르트(Ehrhardt)와 앙겔리카 두 연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희망과 체념으로 점철된 삶의 부조리와 모순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그들의 사고와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작품의 내면적 구성 요소에 대한 성찰이 지금까지의 <앙겔리카> 번역에 있어 일정한 작용을 했는지는 번역자들의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해 큰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본 번역비평은 번역 시기, 제공 가능한 분석의 단초 등에 따라 유준섭, 강두식 그리고 이종대의 <앙겔리카> 번역을 조명하려 한다.


1) 유준섭 역의 <안게―리카―>(1959)

국내에 처음으로 <앙겔리카>를 번역, 소개한 유준섭의 <안게―리카―>는 독한대역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 단행본은 단지 독일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병렬로 배치한 것뿐만 아니라, 각 페이지 하단에 원문의 문법적 요소들, 단어나 구절의 의미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문법·작품·번역의 통합 가능성을 고찰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유준섭의 <앙겔리카> 번역은 무엇보다 원문의 내용과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다음 부분에서는 에르하르트와의 관계가 파국을 맞으면서 나타나게 된 앙겔리카의 양가적 모습들이 대비되고 있다.

So entstand allmählich eine doppelte Angelika; beide hatten sie die zarte schmächtige Gestalt, das sonnenblonde Haar, das er vor allem liebte; aber die eine hing an seinen Augen, seinen Lippen und hatte nichts, was nicht auch ihm gehörte; die andere wußte nichts von seinem Herzen, sie wandte, wenn er ihren Arm, ihren Nacken berührte, sich unwillig von ihm ab, wie von einem Frechen […].(322)[2]

그와 같이 하여 점차로 두 사람의 안게―리카―가 생겨났다. 둘이 다 어여쁘고 날씬한 몸집과, 그의 무엇 보다도 더욱 사랑하는 햇빛과 같이 밝은 부론드의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의 눈, 그의 입술에 매달려, 그가 갖지 않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없었다.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마음등은 안중에도 없고, 그가 그 여자의 팔이나 목에 손을 댄다면, 염치 없는 사나이에게 만지작 거려진 것과도 같이 불쾌한 듯이 떨어졌다.(유준섭, 63)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어 번역은 독일어 문법구조에 대한 충분한 숙지와 함께 단어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다.


2) 강두식 역의 <안겔리카>(1994)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번역된 작품을 읽는 ‘보통의 독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그 수용 대상이 내용을 정확히, 흥미롭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판단함에 있어 그 독자에게 원작의 언어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는다(물론 독서 체험을 통해 그가 이러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달리 말해 원작과의 언어적 단절이 그것의 번역을 만족스럽게 수용하는 데 항상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과 번역, 바꿔 말하면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이상의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강두식의 <앙겔리카> 번역은 이와 관련된 텍스트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Der Abendwind erhob sich; und Musik, von der Luft getragen, vom Wasser her, ganz aus der Ferne kam herangeweht. Er[Ehrhard] legte die Arme weit vor sich auf den Tisch; seine Augen glänzten. ≪Musik!≫ sagte er; ≪törichtes Entzücken befällt mich; ― mir ist, als müsse nun noch einmal alles wiederkommen.≫(316)

저녁 바람이 일었다. 바람결에 호수 쪽에서 음악 소리가 실려 왔다. 그는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음악 소리가 들리는군.” 그가 넌지시 말했다. “나는 어쩐지 모든 것이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강두식, 237)
저녁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타고 호수 저 편 어딘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에르하르트는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쭉 내밀고 앉아 있었다. 눈빛이 반짝거렸다. “음악이야!” 에르하르트가 말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환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는군. 나는 지금 어쩐지 모든 일이 다시 한 번 되돌아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이종대, 214-215)


바로 어제의 추수감사절 무도회는 그동안 사랑과 소유욕이라는 에르하르트의 양가적 감정에 억눌려 있던 앙겔리카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다음날 두 사람은 그들이 전에 자주 방문했던 나들이 장소에서 우연히 조우한다. 먼저 이종대의 번역에서는 빠진 부분 없이 인용문 전체가 온전히 작업의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두식의 번역은 그 자체로는 글 흐름을 따라가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원문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일정부분이 도착어로 옮겨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단어와 구절 층위에서는 “weit”, “ganz aus der Ferne” 등이 그러하다. 특히 “seine Augen glänzten”, “törichtes Entzücken befällt mich”와 같은 문장은 앙겔리카와의 연인관계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에르하르트가 느끼는 절박한 심정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인데, 어떤 이유에선지 번역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한국어 번역은 그 팽팽한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말인 “넌지시”를 새로 투입했다). 강두식의 <앙겔리카> 번역에서는 이와 같은 번역의 누락이 제법 빈번하게 발견된다. 번역이 원문에 대해 어떤 확장된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이 문제는 보다 깊이 있는 숙고의 필요성을 자극한다.


3) 이종대 역의 <앙겔리카>(1997)

1978년 <앙겔리카>가 들어 있는 <호반>(금성출판사)을 출간한 이래 이종대는 거듭해서 개정판을 내놓고 있다. 그의 <앙겔리카> 번역들은 전체적으로 동일성의 범주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데, 단어와 구절 그리고 문장부호 등에서 아주 약간의 차이만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에 입수한 판본 중 가장 나중에 나온 1997년 판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종대가 시도한 <앙겔리카> 번역과 관련하여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그것의 수용자 그룹이 미리 고려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집 <호반>(또는 <호반 외>)이 속한 총서의 명칭이 본래 ‘주니어 세계문학’이라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앙겔리카>의 한국어 번역 텍스트는 청소년 독자를 위해 출간되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제 해당 판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종대의 <앙겔리카> 번역에서는 원문 텍스트에 대한 번역자의 이해와 해석이 한국어 번역문의 형태적·내용적 성립 과정에 상당히 자유로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번역자가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수용자의 존재를 십분 의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종대는 에르하르트가 앙겔리카에게 취했던 자신의 태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말인 “die Schwäche seiner Natur”를 “자기의 옹졸함”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주인공 간 관계의 복잡한 양상을 은연중에 단순화시키고 그 파탄의 원인을 단지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서 찾으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번역자의 자의적 개입은 문장 층위에서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인용 부분은 추수감사절 무도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해프닝에 가까운 사건 이후 갈등과 긴장 속에서 앙겔리카의 극도로 고조된 감정이 에르하르트에게 양가적으로 작용한 다음의 일을 나타내고 있다.


[S]elbst die Verpflichtungen der Dankbarkeit, so schwer er[Ehrhard] sie seinem Wesen nach empfinden mußte, hatte er nicht gescheut; denn er war keine geringe Natur. Allein es war nichts dadurch gewonnen worden.(318)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그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에르하르트는 결코 비열한 인간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이종대, 217)
남에게 감사의 의무를 갖는 일까지도, 그것은 그의 성격상 쓰라린 일임에는 틀림 없었으나, 그는 구태어 꺼리지는 않았다. 그는 결코 천한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 의해서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유준섭, 45)


이 두 번역문을 비교해볼 때, 우선 유준섭은 원문의 단어와 문장구조를 가능한 한 존중하고 있다. 반면 이종대는 한국식 표현을 고려하여 “die Verpflichtungen der Dankbarkeit”를 부정적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로 치환하고 ‘왜냐하면’의 뜻을 가지는 독일어 접속사 ‘denn’의 기능을 무화시킨 후 그것이 이끄는 문장을 바로 뒤의 문장과 결합하는 등 ‘재창조’로서의 번역을 시도하고 있다. 이때 번역자는 문화적 배경이 뒷받침된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보여줌과 동시에 불완전하고 불충분하게 원문의 내용을 전달한다.

끝으로 전체 3장으로 이루어진 원작에서는 각각의 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로마숫자가 표기되어 있는데, 한국어 번역의 경우 독일어 원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간 제목이 들어가 있다(다른 판본은 이러한 제목을 좀 더 세분화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텍스트의 내용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삽화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파라텍스트적 요소는 독자에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강두식의 <앙겔리카> 번역에서도 비슷한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3. 평가와 전망

슈토름의 대표작인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등과 비교해보면 <앙겔리카>는 그동안 한국에서 순탄치 않은 “사후의 삶 Fortleben”[3]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단순히 그것이 여기에서 맞게 될 종말의 선행적 이미지가 제시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망각이라는 늪 속으로 빠져든 원작은 생산적인 행위로서의 번역에 언제까지나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다. <앙겔리카>의 경우 다분히 통속적이고 진부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이란 피상적 주제보다는 그 이면에서 주도적으로 작용하는 복잡한 심리적 동기가 여전히 주목할만하다. 19세기의 낡은, 잠들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눈뜨게 할 새로운 번역가들의 ‘번역의욕’(Übersetzungswollen)을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유준섭(1959): 안게―리카―. 선진문화사.
강두식(1994): 안겔리카. 여명출판사.
이종대(1997): 앙겔리카. 금성출판사.


유종윤
  • 각주
  1. Benjamin, Walter(1972): Gesammelte Schriften. Rolf Tiedemann u. Hermann Schweppenhäuser(ed.). Vol. IV. Frankfurt a. M.: Suhrkamp, 9. 앞으로 Gesammelte Schriften은 GS로 줄여져 로마숫자의 권수와 아라비아숫자의 쪽수와 함께 (부분 권수의 표기 없이) 인용된다.
  2.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Storm, Theodor(1958): Angelika. In: Werke. Gesamtausgabe in drei Bänden. Hermann Engelhard(ed.). Vol. 1. Stuttgart: J. G. Cotta’sche Buchhandlung Nacht.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
  3. GS IV,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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