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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2일 (목) 10:05 판
테오도르 슈토름(Theodor Storm, 1817-1888)의 소설
작품소개
정확한 저술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슈토름의 초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노벨레다. 슈토름의 초기 노벨레를 관통하는 주제인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서 한 노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액자소설의 형식이다.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깊은 결속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둘은 라인하르트의 대학진학과 함께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결국 엘리자베트는 홀어머니의 권유로 라인하르트의 친구이며 고향도시에서 일찍이 경제적 기반을 닦은 에리히와 결혼한다. 이 소설은 슈토름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널리 알려주었으며, 그의 생전에 이미 30쇄가 출판될 정도로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서정적 민요와 야생화를 함께 수집하며 사랑과 추억을 키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슈토름이 여러 다른 작가들의 후기 낭만주의적 그리고 초기 사실주의적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 주지만, 그 외 의 탄생 배경 관련하여 그다지 밝혀진 바가 없다. 국내에서는 1976년 서순석에 의해 최초로 <호반>으로 번역되어 슈토름 작품집 <삼중당 문고 225>에 수록되었다(삼중당).
초판 정보
Storm, Theodor(1849): Immensee. In: Biernatzki, Karl(ed.): Volksbuch auf das Jahr 1850 für die Herzogtümer Schleswig, Holstein und Lauenburg. Altona: Verlag der Expedition des Altonaer Mercur's.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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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湖畔 | (獨韓對譯) 湖畔 | Theodor Storm | 第一文化社編輯部 | 1955 | 第一文化社 | 4-159 | 완역 | 완역 | 독한대역본 | |
2 | 임멘 湖 | (獨逸短篇選)金髮의 엣크벨트 | 노벨클럽 9 | 슈토름 | 李榮九 | 1959 | 大東堂 | 189-223 | 편역 | 완역 | |
3 | 임멘湖 | 金髮의 엣크벨트 | 노오벨클럽 9 | 슈토름 | 李榮九 | 1959 | 大東堂 | 189-223 | 편역 | 완역 | |
4 | 湖水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테오도어 슈토름 | 丘冀星 | 1960 | 乙酉文化社 | 209-235 | 편역 | 완역 | |
5 | 湖水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테오도어 슈토름 | 구기성 | 1960 | 乙酉文化社 | 210-235 | 편역 | 완역 | |
6 | 호반 | 카스페를과 안네를의 이야기 | 쉬토름 | 확인불가 | 1967 | 文正出版社 | 189-223 | 편역 | 확인불가 |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 |
7 | 호반 | 호반 | 테오도르 슈토름 | 송영택 | 1968 | 壯文社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 |
8 | 임멘湖畔 | 湖畔, 皇太子의 첫사랑 | Theodor Storm | 洪京鎬 | 1973 | 汎友社 | 9-60 | 편역 | 완역 | ||
9 | 湖水 | 近代獨逸短篇集 | 世界文學全集 20 | 테오도어 슈토름 | 구기성 | 1974 | 乙酉文化社 | 210-235 | 편역 | 완역 | 1960년에 나온 책과 동일 |
10 | 湖水 | 世界短篇文學選Ⅱ | (三省版)世界文學全集 29 | T. 시토름 | 李榮久 | 1975 | 三省出版社 | 128-155 | 편역 | 완역 | |
11 | 湖畔 | 시토름 短篇集, 클라이스트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 29 | Storm | 金在玟 | 1976 | 汎朝社 | 11-52 | 편역 | 완역 | |
12 | 湖畔 | 湖畔, 白馬의 驥士 | 三中堂文庫 225 | T. 슈토름 | 徐順錫; 楊應周 | 1976 | 三中堂 | 5-49 | 편역 | 완역 | |
13 | 임멘 湖畔 | 湖畔, 大學時節 | 汎友小說文庫 17 | T. 슈토롬 | 洪京鎬 | 1977 | 汎友社 | 21-68 | 편역 | 완역 | |
14 | 湖畔 | 湖畔 | 세계문학 44 | 시토름 | 李鍾大 | 1978 | 金星出版社 | 7-56 | 편역 | 완역 | |
15 | 호수 | 世界短篇文學選集 2 | 테오도오 슈토름 | 申洙澈 | 1980 | 啓民出版社 | 316-352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국중도, Riss DB 검색 안됨 | |
16 | 임멘 호반 | 호반 | 범우사르비아문고 44 | 슈토름 | 홍경호 | 1982 | 汎友社 | 11-61 | 편역 | 완역 | |
17 | 호수 | 세계 명작 문학 | 교학사 중학생문고 | 데오도르 시토름 | 박연숙 | 1983 | 교학사 | 103-163 | 편역 | 완역 | vol.25 |
18 | 호반 | 호반 |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 시토름 | 이종대 | 1985 | 금성출판사 | 8-69 | 편역 | 완역 | |
19 | 호반(湖畔)- IMMENSEE | 湖畔 | Theodor Storm | 鄭永鎬 | 1985 | 壯文社 | 6-81 | 완역 | 완역 | 독한대역본 | |
20 | 호반 | 호반 | World literature for junior, 주니어 世界文學 44 | 시토름 | 이종대 | 1986 | 금성출판사 | 8-69 | 편역 | 완역 | 43번 책의 개정신판 |
21 | 호수 |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 | 테오도르 시토름 | 이인환 엮음 | 1991 | 성심도서 | 123-163 | 편역 | 완역 | ||
22 | 호반 | 대학 시절 | 세계문학선 19 | 슈토름 | 강두식 | 1994 | 여명출판사 | 89-142 | 편역 | 완역 | |
23 | 임멘호 | 독일단편문학감상 | 교양신서 54 | 테오도르 슈토름 | 김희철 | 1998 | 학문사 | 7-63 | 편역 | 완역 | |
24 | 호반 | 독일명작문학감상 | 테오도르 슈토름 | 김희철 | 1999 | 학문사 | 63-117 | 편역 | 완역 | ||
25 | 첫사랑 | 첫사랑 | 테오도르 슈토름 | 윤용호 | 2002 | 종문화사 | 8-100 | 완역 | 완역 | ||
26 | 호수 | 사랑의 여러 빛깔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테오도르 슈토름 | 홍경호 | 2004 | 살림출판사 | 73-125 | 편역 | 완역 | |
27 | 임멘 호(湖) | 붉은 고양이 | 테오도르 슈토름 | 이관우 | 2005 | 우물이 있는 집 | 180-229 | 편역 | 완역 | ||
28 | 호반 | 호반·황태자의 첫사랑 | 사르비아 총서 649 | T. 슈토름 | 홍경호 | 2006 | 범우사 | 7-64 | 편역 | 완역 | |
29 | 호반 | 청춘은 아름다워라 호반 | 그랑프리 세계 대표 문학,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논리논술 세계 대표 문학 45 | T. 슈토름 | 엮은이: 이혜진 | 2006 | 삼성비엔씨 | 51-120 | 편역 | 완역 | |
30 | 임멘 호수 | 임멘 호수(湖水) 외 | 테오도르 슈토름 | 우호순 | 2006 | 惠園出版社 | 7-73 | 편역 | 완역 | ||
31 | 호반 | 호반·대학시절 | 범우문고 256 | T. 슈토름 | 홍경호 | 2008 | 범우사 | 9-60 | 편역 | 완역 | |
32 | 임멘 호수 |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0 | 테오도어 슈토름 | 이은희 | 2008 | 고려대학교 출판부 | 7-69 | 편역 | 완역 | |
33 | 임멘 호 | (독일대표단편문학선) 금발의 에크베르트 | 세계단편문학선집 1 | 테오도르 슈토름 | 이관우 | 2013 | 써네스트 | 121-162 | 편역 | 완역 | |
34 | 호반의 연인 | 호반의 연인 | 테오도르 슈토름 | 신언경 | 2013 | 일일사 | 8-111 | 완역 | 완역 | 독한대역본 | |
35 | 임멘 호수: 사랑의 추억 |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고교생 필독 소설선 1 | 테오도르 슈토름 | 확인불가 | 2017 | 서교출판사 | 319-346 | 편역 | 완역 | ||
36 | 임멘호수 | 임멘호수, 철로지기 틸 | 테오도르 슈토름 | 김형국 | 2018 | 인터북스 | 7-65 | 편역 | 완역 | ||
37 | 임멘 호수 | 익사한 아이 | 부클래식, Boo classics 74 | 테오도어 슈토름 | 염승섭 | 2018 | 부북스 | 195-247 | 완역 | 완역 | |
38 | 임멘 호수 |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프시케 | 세계문학전집 164 | 테오도어 슈토름 | 배정희 | 2018 | 문학동네 | 7-56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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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테오도르 슈토름의 <임멘 호수>(1849)의 국내 번역은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1955년 이상휘가 제일문화사와 선진문화사에서 출간한 독한대역본 <호반(湖畔)>이 국내 최초 번역이다. 원작 “Immensee”는 슈토름이 1849년 발표한 이래 그의 생전 30쇄를 기록할 정도로 작가에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안겨다 주며,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대표했다. 이러한 대중성은 이 작품의 국내 번역에서도 대체로 확인된다. 우선, 1950년대부터 2020년까지 대략 70여 년에 걸쳐 총 40회 번역출판 되었고, 그중 동일 번역자의 동일 번역이 시차를 두고 반복 출간된 경우를 제외하면, 총 30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시기별로 나누어 보자면 50년대 2종, 60년대 3종, 70년대 6종, 80년대 6종, 90년대 3종, 2000년대 6종, 2010년대 6종이 확인된다. 70년대 이후로는 - 90년대를 제외하고 - 각 십년대 마다 대략 6종의 다양한 번역이 출판시장에 선보인 셈이고, 관련 번역자의 수는 총 24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임멘 호수>의 이러한 꾸준한 번역출판 및 수용 경향은 첫사랑의 상실과 그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와 비교적 짧은 분량, 간단하고 선명한 스토리 구성, 그리고 서정적이며 긴 여운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일반 독자를 위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나 슈토름 단편 소설집 단행본에 다른 작품과 함께 묶여 번역 출간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별히 사춘기 독자를 겨냥한 청소년문학으로 편집, 소개되기도 했다. 앞서 거론한 최초의 국내 번역인 이상휘의 <호반>처럼 (대학의) 독일어 학습자를 위한 독한대역본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런 경우로는 1955년(이상휘), 1985년(정영호), 그리고 2013년(신언경)의 총 3종이 있다.
<임멘 호수>의 다양한 번역본들을 서로 비교함에 있어서, 의미 있고 유효한 차이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분량도 짧고, 형식면에서도 복잡한 것 없어 보이는 이 작품의 특징을 잠깐 들여다보자. 우선 이 작품은 총 10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중 맨 앞의 1장과 맨 뒤의 10장은 중심인물의 현재 시간 내지 현재 의식에 속한다. 그 중간의 8개 장은 중심인물이 회상하는 과거의 이야기로서, 소설 전체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띤다. 그런데 <임멘 호수>의 형식은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이며 말년작인 <백마의 기사>에서 보여주는 액자소설의 서사적 레이어드에 비하면 단순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는 복수의 화자가 나타나지 않으며, 액자 형식에서 전개되는 일은 단지 서술의 초점이 동일 화자의 현재에서 과거 삶의 일정 구간 속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어느 독자나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 서술상황은 더 이상 분명하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형상화된 액자소설 형식이다. 그런데 분량도 짧고, 형식도 단순한 이 작품에는 이미지와 언어, 시각성과 청각성 사이의 상호작용 가능성이 고도로 농축되어 있다. 호수, 수련과 같은 자연물과 그 이미지는 인물의 운명, 그리고 운명에 대한 인물의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이런저런 시와 노래, 민요는 스토리의 전개를 예견하거나 상징하고, 혹은 인물의 감추어진 속내 사정을 감추거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신경망처럼 다층적으로 설계된 의미작용은 장의 제목이라는 작은 텍스트 구성요소에까지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아 형식적으로 단순, 명료하면서도 모든 요소가 촘촘하게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독자의 심미적 독서 체험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번역본들은 이러한 고밀도의 유기적인 의미작용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본 번역 비평에서는 몇몇 번역본들에서 나타나는 제목, 이미지, 노래와 본문 텍스트 사이의 관계와 함께, 액자 형식의 ‘문턱’, 즉 현재에서 과거로의 이동과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동이 일어나는 대목의 처리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이 작품의 70년 남짓한 번역 역사에서 이영구(1959, 1975), 홍경호(1973, 1977, 1982, 2006), 강두식(1994)을 선별하였다.
2. 개별 번역 비평
1955년 이상휘의 독한대역본 이후 1959년 이영구의 <임멘 호>와 함께 이 작품의 대중적 번역소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영구의 번역은 대동당의 노(오)벨클럽 총서 중 <독일단편선: 금발의 엣크벨트>에 포함되어 있으며, 아직 세로쓰기 방식의 편집원칙에 따르고 있다. 이영구의 번역은 16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차를 두고 1975년, 삼성출판사에서 <호수>로 다시 출판되었는데, 1959년의 번역과 비교할 때 이렇다 할 만큼 눈에 띄는 수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영구의 경우에서 이미 보이지만, 이 소설의 국내 번역-수용에서 제목이 호수, 호반, 임멘 호, 임멘 호수, 임멘 호반 등으로 무원칙적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간혹 드물게는 “첫사랑”(윤용호 2002), “호반의 연인”(신언경 2013)과 같이 작품의 내용과 호응하는 제목으로 대체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에서는 “호수”, “호반”, “임멘 호”, “임멘 호수”, “임멘 호반”이라는 제목들이 경쟁적으로 사용되었다. 2000년대부터는 “임멘 호수”라는 원제목에 충실한 표현을 채택하는 경향이 점점 뚜렷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오랫동안 국내의 많은 번역가가 원제목의 고유명사 지명[1] 대신 호수라는, 더 나아가 호수 공간의 일부인 호반이라는 보통 명사를 선호한 것은 한국 독자의 귀에 독일어 ‘임멘’이 생소하게 들릴 우려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품의 보편적 주제와 그에 대한 낭만적인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이질적 요소를 미연에 제거하려는 출판전략이었을 것이다. 이영구의 경우 <임멘 호>에서 <호수>로 제목을 바꾼 것은 어쩌면, 동일한 번역을 출판사만 바꾸어 출간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국내 번역 시장의 당시 관행에 제목 바꾸기의 눈가림이 하나 더 덧붙여진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앞서 거론했던, 이 작품의 이해에서 중요하다고 할 만한 여러 관점을 이영구의 <호수>에서 살펴보자. 우선, 주인공이 과거로의 회상으로 빠져드는 대목인 첫 번째 장 “Der Alte”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자. 비교를 위해서 독일어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제시한다.
>>Elisabeth!<<, sagte der Alte leise; und wie er das Wort gesprochen, war die Zeit verwandelt - er war in seiner Jugend.
그리하여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낸 즉, 세월은 일전一轉하여 -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191).
이영구는 현재 의식과 회상된 과거 사이의 불연속성을 다소 마술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고 있다. 옛사랑의 이름을 부르자, 세월이 바뀌었고, 그리하여 그는 소년 시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영구의 번역본이 각 장의 제목과 해당 장에서 소개된 노래 혹은 시 사이의 긴밀한 연결성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도 보자. 어떤 장의 제목이 그 장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말에서 나오는 구절이라면, 번역에서도 역시 그 제목과 노랫말이 그대로 일치해야만 할 것이다. 비록 의미가 같다고 할지라도 그 언어적 형태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그리하여 형식적 완결성과 어귀 반복의 효과가 감소하면, 제목을 포함하여 그 장 전체에서 발산되는 의미적 완결성과 제목의 암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 번째 장 <노방의 아이>에 나오는 두 개의 시는 주인공 라인하르트가 결국 살게 될 운명을 선견 내지 투사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술집에서 노래하는 집시 처녀가 부르는 노래의 마지막 대목을 보자.
[...] Sterben, ach sterben Soll ich allein. [...] 죽고 말리라, 아아 죽고 말리라. 오직 홀로서 너를 여의고(221).
이 구절은 ‘홀로이 죽어야만 하리’, 즉 홀로 죽어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홀로 죽어야 하는 외로운 노인 라인하르트의 현재와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죽고 말리라’는 표현이 난데없이 죽음에 대한 결연한 태도를 연상시킨다.
그다음 시는 3번째 행 “Da stand das Kind am Wege”가 장의 제목이기도 한데, 장 제목은 “노방의 아이”로 번역되어 있고, 시구는 “길가에 서서 어린 소녀의”로 다소 혼란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장의 제목과 시구가 호응함으로써 확보되는 형식적 완결성이 전혀 추구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Er wäre fast verirret Und wusste nicht hinaus; Da stand das Kind am Wege Und winkte ihm nach Haus! 길 잃은 나그네가 갈 길 몰라 하였을 때에 길가에 서서 어린 소녀의 가리키는 집에의 길!(203)
2) 홍경호 역의 <임멘 호반>(1973)과 <호반>(2006)
이 소설의 70년 번역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번역본을 낸 사람은 홍경호다. 1973년 출간된 홍경호의 <호반; 황태자의 첫 사랑>(범우사)에는 <임멘 호반>이 포함되어 있다. 1977년 출간된 홍경호의 <호반; 대학시절>(범우사)에도 1973년과 동일한 <임멘 호반> 번역본이 실려 있다. 그는 2004년, 2006년, 2008년에 <호수> 또는 <호반>이 포함된 3개의 번역물 단행본을 출간했다. 홍경호는 가장 많은 번역본을 낸 만큼, 여러 제목이 혼재할 뿐 아니라, 단행본 제목과 단행본 속의 작품명을 다르게 번역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10개 장의 제목에서도 보이는데, 첫 번째 장과 마지막 장이 동일하게 “Der Alte”임에도 첫 장은 “노인”, 10장은 “만년”으로 굳이 구별해서 번역하고 있다. 홍경호에게서는 장의 제목으로서 “Immensee”를 번역할 때도 이러한 유동성이 보이는데, 작품 제목의 번역에 맞추어 “호반” 혹은 “임멘 호반”으로 번역하지 않고, 장의 제목은 “임멘호”로 번역한다. 물론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번역에 대하여 그는 어떤 설명이나 해명을 따로 하고 있지 않다. 그 외에도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혼용하여 번역하기도 한다(1977, 35; 58).
그런데 2006년 번역본에서 홍경호는 마침내 이전의 여러 번역본에서 보이던 여러 혼란들을 정리, 수정한다. 일단 단행본 제목과 작품명을 <호반>으로 통일시켰고, 현재시제와 과거시제의 무의미한 공존도 정리했다. 그가 계속 고수한 것은 마지막 장의 제목 “만년”과,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는 순간, 즉 의식이동의 ‘문턱’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홍경호는 이 의식이동 부분에서 “방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비쳐 들었다”(2006, 64)라는 단 하나의 문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 현재형으로 번역하고 있다.
네 번째 장의 집시 처녀의 노래는 라인하르트의 외로운 말년의 운명에 대한 예견이기도 한데, 그 노래의 한 대목을 “죽음 뿐, 아아 죽음 뿐 오직 나 혼자 떨어져서”(2006, 60)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llein”을 “ich”에 연결시킨 데서 그치지 않고, “sterben”과도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래의 화자가 ‘혼자서’ 죽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가 ‘오직 죽음만’을 갈구한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마치 죽음을 찬미하는 듯한 뉘앙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1994년 출간된 강두식의 <호반>(여명출판사)은 편집원칙으로나 번역 전략으로나 다른 번역본에 비해 많은 자유 공간을 허용하고 있다. 우선 책 전체에 걸쳐, 각 장이 시작되는 페이지마다 인상주의 화가나 샤갈 등의 그림이 반 페이지를 차지하도록 편집되어 있고, 때로는 아예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기도 한다.
강두식은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번역자는 원본과 상관없이 새로운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1장은 “노인” 대신 “황혼녁”으로, 2장은 “아이들” 대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3장은 “숲속에서” 대신 “딸기사냥”으로, 4장은 “길가에 아이가 서 있었네” 대신 “쓸쓸한 크리스마스”로, 5장은 “고향에서” 대신 “부활제 휴가”로, 6장은 “편지” 대신 “슬픈 편지”로, 7장은 “임멘 호수” 대신 “낯설은 재회”로, 8장은 “어머니의 뜻이었어요” 대신 “민요에 담긴 진실”로, 9장은 “엘리자베트” 대신 “영원한 이별”로, 10장은 “노인” 대신 “외로운 현실”로 제목이 바뀌어 있다. 새 제목들은 해당 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요약하고 있어, 원문의 제목보다 오히려 더 제목 본래적 기능에 충실해 보인다.
강두식의 다소 과감하게 상황을 압축 정리해 주는 번역의 장점은 “죽음으로 끝나고, 아아 죽으므로 끝나고. 다만 홀로 살아야 하는 이 몸”(138)과 같이 라인하르트의 독신자 운명을 가리키는 노래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라인하르트가 타향에서 부지불식간에 엘리자베트로부터, 또 고향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을 돌아보며 귀향을 떠올리는 시구도 마찬가지다.
“길 헤매다 날은 저물어 어찌할 바 모르고 있을 때 길가에 선 어린 소녀가 살그머니 가리켜 준 나의 귀로“(111)
강두식은 이렇게 시는 시대로 생생하게 만들어 주고, 새로운 제목으로 장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거나 해석해 주었다. 이로써 시와 그것이 포함되어 있던 장의 제목이 하나의 공통된 문구로 호응하는 원문의 텍스트적 현상으로부터 그의 번역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원문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특히 네 번째와 여덟 번째 장에서 보이는) 시와 장 제목 간 일치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두는 번역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던 이영구와 홍경호의 번역본에서도 원문이 추구하는 제목과 본문 속 노래 혹은 시 사이의 텍스트적 동질성의 심미적 효과에 대한 관심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물에 의해 낭독되거나 혹은 노래 되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일 경우, 제목과 본문 사이의 연속성과 내적 완결성은 무시되고 만다. 네 번째 장과 여덟 번째 장은 라인하르트의 방황과 엘리자베트의 사랑의 좌절에 대한 장으로서 감정적 응축과 발산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노래와 시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많은 번역본에서 이 관점이 고려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강두식의 경우도 그러하다.
액자소설의 문턱 즉, 주인공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대목에서도 강두식은 원문의 다소 마술공연을 연상시키는 서술적 전개와는 달리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93)라고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3. 평가와 전망
슈토름의 <임멘 호수>의 번역 70여 년 동안, 번역의 오류도 많이 수정되었고, 작품의 이해도 그만큼 더 깊어졌다. 짧은 분량, 그리고 많은 사회역사적 전제가 필요 없는 주제 때문에 <임멘 호수>의 해석과 번역을 둘러싸고 큰 이견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본 번역 비평에서는 작품 제목, 작품 내 장 제목, 노래의 운명예견적, 운명해석적 기능과 의미, 그리고 액자소설적 시간대 이동 방식을 중심으로 선별된 몇몇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영구(1975): 호수. 삼성출판사.
홍경호(1977): 임멘 호반. 범우사.
홍경호(2006): 호반. 범우사.
강두식(1994): 호반. 여명출판사.
- 각주
- ↑ 임멘제는 스위스의 슈비츠 캔톤의 퀴스나흐트 지역의 한 지명이다(Immensee – Wikipedia). 슈토름의 작품에서 임멘 호수는 독일 남부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임멘 호수는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가 어린 시절 자란 고향 마을 인근 지역이다. 주인공 라인하르트는 첫사랑 엘리자베트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임멘 호숫가의 저택에서 그녀를 재회하고 영원히 작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