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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일섭의 번역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이기 위해 추가하거나 윤문한 부분이 거의 없어 원작의 문장에 충실을 기하려 했다. 그 결과 기존에 계속해서 ‘조국의 상징’ 또는 ‘조국의 선물’ 등으로 번역되던 ‘Heimat’를 “고향”(336)으로 처음 번역했다. 그렇지만 원문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때도 꽤 있다. 가령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장교의 일장 연설에다 대고 탐험가가 그럴 수 없다고 하는 부분을 “아닙니다 Nein”(356; K 153)라고 번역하여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또 소설의 중요한 서두를 보자. | 또 한일섭의 번역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이기 위해 추가하거나 윤문한 부분이 거의 없어 원작의 문장에 충실을 기하려 했다. 그 결과 기존에 계속해서 ‘조국의 상징’ 또는 ‘조국의 선물’ 등으로 번역되던 ‘Heimat’를 “고향”(336)으로 처음 번역했다. 그렇지만 원문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때도 꽤 있다. 가령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장교의 일장 연설에다 대고 탐험가가 그럴 수 없다고 하는 부분을 “아닙니다 Nein”(356; K 153)라고 번역하여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또 소설의 중요한 서두를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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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장치로군요.”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탄복하는 듯한 시선으로 평소부터 잘 알고 있는 그 장치를 새삼스레 살펴보았다.(335) | “독특한 장치로군요.”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탄복하는 듯한 시선으로 평소부터 잘 알고 있는 그 장치를 새삼스레 살펴보았다.(3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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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장치로군요”는 기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장교가 기계를 처음 본 탐험가 앞에서 할 법한 말은 아니다. “이것은 독특한 장치입니다”를 감탄조로 번역하다 보니 범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발화의 맥락을 깊게 고려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의미 전달을 오히려 가로막는 셈이다. | “독특한 장치로군요”는 기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장교가 기계를 처음 본 탐험가 앞에서 할 법한 말은 아니다. “이것은 독특한 장치입니다”를 감탄조로 번역하다 보니 범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발화의 맥락을 깊게 고려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의미 전달을 오히려 가로막는 셈이다. |
2024년 6월 10일 (월) 01:51 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작품소개
1919년에 발표한 카프카의 단편 소설이다. 식민지 영토에 속한 외딴 섬에서 유럽 출신의 한 탐험가가 사형집행 참관인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섬에서 모든 피고인은 일체의 방어 기회 없이 곧바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전임 사령관이 특별하게 고안한 기계장치에 의한 사형집행을 당한다. 사형수의 몸에 글자를 새겨 넣어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가게끔 만든 이 장치는 도면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술적 창작품이다. 죽은 전임 사령관의 지지자였던 장교가 사형집행을 담당하는데, 그는 이 장치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치를 없애고자 하는 신임 사령관에게 반발한다. 상관에게 대들었다는 죄목으로 끌려온 한 죄수에게 처형이 집행되는 중 장교는 신임 사령관의 마음을 돌리도록 도와달라고 탐험가에게 요청한다. 탐험가가 거절하자 장교는 죄수 대신에 스스로 장치에 들어가 자기를 희생한다. 기계장치에 의한 사형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주는 이 소설은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한편에서는 비인간적인 권력 장치에 의한 정의의 왜곡을 비유한다고 해석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죄와 속죄 등 종교적 관념에 대한 우화로 읽히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장교는 비인간적인 형벌체제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악의 편에 속하는 인물로 해석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신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1957년에 박종서와 정경석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일신사).
초판 정보
Kafka, Franz(1919): In der Strafkolonie. Leipzig: Kurt Wolff.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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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流刑地 | 變身 | 現代世界名作選集 | F. 카푸카 | 鄭庚錫; 朴鍾緖(정경석; 박종서) | 1958 | 日新社 | 111-166 | 편역 | 완역 | |
2 | 流刑地 | 카푸카傑作選 | 현대세계명작선집 | 푸란쯔 카푸카 | 鄭庚錫, 朴鍾緖 | 1958 | 日新社 | 113-166 | 편역 | 완역 | |
3 | 流刑地에서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23 | 프란치 카프카 | 李東昇 | 1970 | 尙書閣 | 135-182 | 편역 | 완역 | |
4 | 流刑地에서 | 獨逸短篇文學大系. 現代篇1 | 獨逸短篇文學大系 2 | 프란츠 카프카 | 김윤섭; 박종서 | 1971 | 一志社 | 354-380 | 편역 | 완역 | |
5 | 유형지(流刑地)에서 | 變身 | 文藝文庫(문예문고) 22 | 프란츠 카프카 | 李德衡(이덕형) | 1973 | 文藝出版社 | 97-153 | 편역 | 완역 | |
6 | 流刑地에서 | 城, 變身 外(성, 변신 외) | (三省版)世界文學全集((삼성판) 세계문학전집) 2 | 프란츠 카프카 | 金晸鎭 | 1974 | 三省出版社 | 367-399 | 편역 | 완역 | |
7 | 流刑地에서 | 카프카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세계단편문학전집) 14 | 카프카 | 洪京鎬 | 1974 | 汎潮社 | 165-205 | 편역 | 완역 | |
8 | 流刑地에서 | 城 變身 短篇選 | 三省版 世界文學全集 2 | 카프카 | 金晸鎭 | 1974 | 三省出版社 | 367-399 | 편역 | 완역 | |
9 | 유형지에서 | 변신 | (세계명작시리즈 9-여학생 12월호 부록) 9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홍경호) | 1975 | 女學生社 | 95-144 | 편역 | 완역 | |
10 | 流刑地 | 變身 | 세종문고 39 | 프란츠 카프카 | 鄭康錫(정경석) | 1975 | 世宗出版公社 | 108-154 | 편역 | 완역 | |
11 | 流刑地에서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6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印象·表現主義文學 6 | 카프카 | 박환덕 | 1975 | 大榮出版社 | 333-361 | 편역 | 완역 | |
12 | 유형지(流刑地)에서 | 變身 | 세계명작영한대역시리즈 7 | 프란쯔 카프카 | 李德衡 | 1976 | 德文出版社 | 140-211 | 편역 | 완역 | |
13 | 유형지에서 | 世界短篇文學全集 | 세계단편문학전집 15 | 카프카 | 洪京鎬 | 1976 | 金字堂 | 47-87 | 편역 | 완역 | |
14 | 流刑地에서 | 카프카, 슈니츨러 | 세계단편문학전집 15 | 프란츠 카프카 | 홍경호 | 1976 | 삼덕출판사 | 47-87 | 편역 | 완역 | |
15 | 流刑地 | 變身 | 동서문고 80 | 프란츠 카프카 | 朴鍾緖(박종서) | 1977 | 東西文化社 | 89-134 | 편역 | 완역 | |
16 | 流刑地에서 | 變身 | 삼중당문고 344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홍경호) | 1977 | 三中堂 | 79-122 | 편역 | 완역 | |
17 | 어느 流刑地의 이야기 | 變身 | 카프카 | 이규영 | 1977 | 豊林出版社 | 147-194 | 편역 | 완역 | ||
18 | 流刑地 | 성∙변신 | 동서문고 80 | 프란쯔 카프카 | 박종서 | 1977 | 東西文化社 | 89-134 | 편역 | 완역 | |
19 | 流刑地에서 | 變身(外) | 文藝文庫 22 | 프란츠 카프카 | 李德衡 | 1977 | 文藝出版社 | 95-153 | 편역 | 완역 | |
20 | 유형지에서 | 굶는 광대 | 프란츠 카프카 | 金昌活 | 1978 | 태창出版部 | 173-229 | 편역 | 완역 | ||
21 | 유형지에서 | 변신 | 세계문학대전집 11 | 프란츠 카프카 | 이영구 | 1980 | 太極出版社 | 423-449 | 편역 | 완역 | |
22 | 流刑地에서 | 審判, 아메리카, 變身, 流刑地에서(심판, 아메리카, 변신, 유형지에서) | 世界文學大全集(세계문학대전집) 33 | 프란츠 카프카 | 郭福祿 | 1980 | 徽文出版社 | 539-569 | 편역 | 완역 | |
23 | 流刑地에서 | 城 | 세계문학전집 29 | 프란츠 카프카 | 趙成寬(조성관) | 1981 | 韓英出版社 | 383-412 | 편역 | 완역 | |
24 | 流刑地에서 | 아메리카, 變身, 流刑地에서 外 |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 29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 | 1981 | 금성출판사 | 307-336 | 편역 | 완역 | |
25 | 流刑地에서 | 變身 | 자이언트문고 147 | 프란츠 카프카 | 朴鍾緖(박종서) | 1982 | 文公社 | 89-134 | 편역 | 완역 | |
26 | 유형지에서 | 심판 | 주우세계문학 9 | 프란츠 카프카 | 韓逸燮(한일섭) | 1982 | 主友 | 331-355 | 편역 | 완역 | |
27 | 流刑地에서 | 세계단편문학전집 15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 | 1984 | 三省堂 | 47-87 | 편역 | 완역 | ||
28 | 유형지(流刑地)에서 | 고독과 죽음의 美學 | 카프카 수상집 | 프란츠 카프카 | 崔俊煥 | 1985 | 豊林出版社 | 304-343 | 편역 | 완역 | |
29 | 유형지에서 | (신편)세계문학대전집 17 : 변신, 심판,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 (신편)세계문학대전집 17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1985 | 信永出版社 | 501-529 | 편역 | 완역 | |
30 | 流刑地에서 | 카프카 篇 | World great short stories, (三省堂版) 世界短篇文學全集 15 | 카프카 | 洪京鎬 譯 | 1986 | 三省堂 | 47-87 | 편역 | 완역 | |
31 | 유형지(流刑地)에서 | 변신 외 | 어문각 세계문학문고 119 | 카프카 | 박환덕 | 1986 | 어문각 | 171-220 | 편역 | 완역 | |
32 | 유형지에서 | 관찰 | SHORT BOOK 6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홍경호) | 1987 | 汎潮社 | 165-205 | 편역 | 완역 | |
33 | 流刑地에서 | 變身 | 문예교양전서 48 | 프란츠 카프카 | 李德衡(이덕형) | 1987 | 文藝出版社 | 97-153 | 편역 | 완역 | |
34 | 유형지에서 | 변신 | 골든 세계문학전집 20 | 카프카 | 곽복록 | 1987 | 中央文化社 | 505-535 | 편역 | 완역 | |
35 | 유형지(流刑地)에서 | 아메리카, 變身, 短篇 | 완역판 세계문학 Sunshine Series 44 | 프란츠 카프카 | 洪京鎬 | 1987 | 금성출판사 | 343-377 | 편역 | 완역 | |
36 | 유형지에서 | 변신 | (Silver world literature) 19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1988 | 中央文化社 | 489-524 | 편역 | 완역 | |
37 | 유형지(流刑地)에서 | 변신, 유형지에서(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6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89 | 汎友社 | 205-241 | 편역 | 완역 | |
38 | 유형지에서 | 변신·유형지에서(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2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89 | 범우사 | 206-241 | 편역 | 완역 | |
39 | 流刑地(유형지)에서 | 아메리카, 變身, 短篇 | 금장판 세계문학대전집 88 | 카프카 | 洪京鎬 | 1990 | 金星出版社 | 343-377 | 편역 | 완역 | |
40 | 유형지에서 | 변신, 심판,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 (벨라주) 世界文學大全集 17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1990 | 신영출판사 | 501-529 | 편역 | 완역 | |
41 | 유형지에서 | 변신 | 한권의책 171 | 프란츠 카프카 | 한일섭 | 1990 | 學園社 | 145-182 | 편역 | 완역 | |
42 | 유형지에서 | 변신 | 마로니에북스 33 | 프란츠 카프카 | 최헌욱 | 1991 | 청림출판 | 73-112 | 편역 | 완역 | |
43 | 유형지에서 | 심판 | Touchstone books 17 | 카프카 | 한일섭 | 1992 | 學園社 | 335-364 | 편역 | 완역 | |
44 | 유형지에서 | 변신, 말테의 수기 | Ever books.삼성세계문학 21 | 프란츠 카프카 | 송영택 | 1992 | 삼성출판사 | 67-103 | 편역 | 완역 | |
45 | 유형지에서 | 성(城) | 靑木精選世界文學 73 | 카프카 | 신승희 | 1993 | 청목 | 423-456 | 편역 | 완역 | |
46 | 유형지 (流刑地) 에서 | 변신 | 풍림명작신서 시리즈 15 | 카프카 | 李圭韺 | 1993 | 豊林出版社 | 117-154 | 편역 | 완역 | |
47 | 유형지에서 | 변신 | 한권의 책 79 | 카프카 | 한일섭 | 1994 | 학원사 | 145-182 | 편역 | 완역 | |
48 | 유형지에서 | 심판. 유형지에서 | 혜원세계문학 90 | 프란츠 카프카 | 추지영 | 1995 | 혜원출판사 | 285-325 | 편역 | 완역 | |
49 | 유형지(流刑地)에서 | 변신.유형지에서 | 프란츠 카프카 단편집 6 | 프란츠 카프카 | 안성암 | 1995 | 글벗사 | 81-121 | 편역 | 완역 | |
50 | 유형지에서 | 변신, 유형지에서 (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2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95 | 범우사 | 223-262 | 편역 | 완역 | |
51 | 유형지에서 | 유형지에서 | Penguin classics 20 | 프란츠 카프카 | 권태욱 등 | 1996 | 펀앤런 | 5-70 | 편역 | 완역 | |
52 | 유형지에서 | 변신 : 단편전집 | 카프카 전집 1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1997 | 솔출판사 | 171-208 | 편역 | 완역 | |
53 | 유형지에서 | 변신 | 계명교양총서 6 | 프란츠 카프카 | 염승섭 | 1998 | 계명대학교출판부 | 107-150 | 편역 | 완역 | |
54 | 유형지에서 | (중학생이 보는)변신 | 중학생 독후감 필독선 24 | 카프카 | 곽복록 | 2001 | 신원문화사 | 112-173 | 편역 | 완역 | |
55 | 유형지에서 | 변신, 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 이덕형 | 2001 | 문예출판사 | 105-166 | 편역 | 완역 | ||
56 | 유형지에서 | 변신 | Bestsellerworldbook 74 | 프란츠 카프카 | 안영란 | 2002 | 소담출판사 | 85-130 | 편역 | 완역 | |
57 | 유형지에서 |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고전편- 유형지에서 | 환상문학전집 12 | 프란츠 카프카 | 이수현 | 2003 | 황금가지 | 284-319 | 편역 | 완역 | |
58 | 유형지에서 | 변신 : 단편전집 | 카프카 전집 1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2003 | 솔출판사 | 171-208 | 편역 | 완역 | |
59 | 유형지에서 | 변신 | Classic letter book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김영룡 | 2004 | 인디북 | 123-184 | 편역 | 완역 | |
60 | 유형지에서 | 변신.시골의사 | 문예 세계문학선 20 | 프란츠 카프카 | 이덕형 | 2004 | 문예출판사 | 89-139 | 편역 | 완역 | |
61 | 유형지에서 | 카프카 문학 : 유형지에서 외 4편.2 | 프란츠 카프카 | 金保會 | 2005 | 보성 | 8-79 | 편역 | 완역 | ||
62 | 유형지에서 | 관찰 | Mr. know 세계문학 |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 2007 | 열린책들 | 161-196 | 편역 | 완역 | |
63 | 유형지에서 | 카프카 : 변신, 화부 | Classic together 3 | 프란츠 카프카 | 박철규 | 2007 | 아름다운날 | 181-244 | 편역 | 완역 | |
64 | 유형지에서 | 변신 |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11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김영룡 | 2008 | 인디북 | 125-184 | 편역 | 완역 | |
65 | 유형지에서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중단편집 | 열린책들 세계문학 10 |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 2010 | 열린책들 | 159-196 | 편역 | 완역 | |
66 | 유형지에서 | 변신 | (국문학 교수들이 추천한 글누림세계명작선) | 프란츠 카프카 | 조윤아 | 2011 | 글누림출판사 | 109-167 | 편역 | 완역 | |
67 | 유형지에서 | 변신.시골의사 | Classic together 3 | 프란츠 카프카 | 박철규 | 2013 | 아름다운날 | 183-244 | 편역 | 완역 | |
68 | 유형지에서 | 선고 | 을유세계문학전집 72 | 프란츠 카프카 | 김태환 | 2015 | 을유출판사 | 104-146 | 편역 | 완역 | |
69 | 유형지에서 | 카프카 단편선 | 월드클래식 시리즈 8 | 프란츠 카프카 | 엄인정 | 2015 | 매월당 | 125-171 | 편역 | 완역 | |
70 | 유형지에서 | 소송, 변신, 시골의사 외 |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 2016 | 열린책들 | 509-562 | 편역 | 완역 | ||
71 | 유형지에서 | 변신 : 단편전집 | 카프카 전집 1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2017 | 솔출판사 | 171-208 | 편역 | 완역 | |
72 | 유형지에서 | 프란츠 카프카 | 세계문학단편선 37 | 프란츠 카프카 | 박병덕 | 2020 | 현대문학 | 205-248 | 편역 | 완역 | |
73 | 유형지에서 | 변신·단식 광대 | 창비세계문학 78 | 프란츠 카프카 | 편영수; 임홍배 | 2020 | 창비 | 93-131 | 편역 | 완역 |
1. 번역 현황 및 개관
카프카의 해당 단편은 1957년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이래 2022년까지 73여 차례 출간되었을 만큼 한국에 널리 소개되어 있다. 한국에서 카프카의 단편 2편이 처음 소개된 때가 1955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유형지에서>가 <변신>, <선고>와 함께 1957년에 두 번째로 번역되었으니, 이는 카프카 문학의 한국어 번역사에서 상당히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번역에 뛰어든 역자만 해도 총 32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1957년 박종서의 초역 이후 한동안 새 번역이 없다가 70년대에 여러 역자에 의해 새 번역이 이루어졌고, 80년대부터는 주로 기존 번역의 재편집/재간이 잦았다. 눈에 띄는 새 번역으로 80년대에 한일섭, 90년대에 카프카 전집의 출간에 맞춘 이주동의 번역이 있다. 새로운 번역이 드문드문 나오는 상황이 지속되던 가운데, 2010년 중반부터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붐을 타고 다시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졌다.
작품 제목은 일찌감치 <유형지에서>로 정착되었다. 박종서가 초역 시에 <流刑地>, 이규영이 <어느 流刑地의 이야기>(1977)라고 번역한 바 있으나 대다수가 <유형지에서>를 제목으로 택하였다. 이제부터는 대표적인 번역을 선별해서 살펴보겠다. 원전에서 직접 번역되었는지의 여부, 번역 및 역자의 영향력 및 시대적 대표성 등을 고려하여 선별하였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종서 역의 <流刑地>(1957)와 <流刑地에서>(1971)
카프카의 해당 단편은 1957년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이래 2022년까지 73여 차례 출간되었을 만큼 한국에 널리 소개되어 있다. 한국에서 카프카의 단편 2편이 처음 소개된 때가 1955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유형지에서>가 <변신>, <선고>와 함께 1957년에 두 번째로 번역되었으니, 이는 카프카 문학의 한국어 번역사에서 상당히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번역에 뛰어든 역자만 해도 총 32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1957년 박종서의 초역 이후 한동안 새 번역이 없다가 70년대에 여러 역자에 의해 새 번역이 이루어졌고, 80년대부터는 주로 기존 번역의 재편집/재간이 잦았다. 눈에 띄는 새 번역으로 80년대에 한일섭, 90년대에 카프카 전집의 출간에 맞춘 이주동의 번역이 있다. 새로운 번역이 드문드문 나오는 상황이 지속되던 가운데, 2010년 중반부터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붐을 타고 다시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졌다.
작품 제목은 일찌감치 <유형지에서>로 정착되었다. 박종서가 초역 시에 <流刑地>, 이규영이 <어느 流刑地의 이야기>(1977)라고 번역한 바 있으나 대다수가 <유형지에서>를 제목으로 택하였다. 이제부터는 대표적인 번역을 선별해서 살펴보겠다. 원전에서 직접 번역되었는지의 여부, 번역 및 역자의 영향력 및 시대적 대표성 등을 고려하여 선별하였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종서 역의 <流刑地>(1957)와 <流刑地에서>(1971)
1930년대 일본 동경 조치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1948년부터 고려대 교수를 역임한 박종서는 <유형지에서>를 처음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은 <변신>, <사형선고>와 함께 <카푸카걸작선>(일신사)에 묶여 <流刑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나온 독일 문학의 한국어 번역을 문헌학적으로 고찰한 장진길은 한 작가만을 다루는 단행본 <카푸카 걸작선>의 출간이 당시 번역문학 출간의 풍토나 사회 · 경제적 여건에 비추어 볼 때 획기적이었다고 평한다. [1] 이런 평가에 걸맞게 역자는 <해설>에서 상당히 충실하게 카프카의 삶과 문학 세계 전반을 소개한다. 또 번역은 기대 이상으로 작품의 내용을 잘 전달하며, 특히 가독성이 좋다. 예컨대 원문의 구문에 더욱 충실한 한일섭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내빈들은 대개 고관나부래기들이었지만 결석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박종서, 139)
참관인들이-고관도 결석해서는 안 됐습니다-기계 주위에 정돈해 있었습니다.(한일섭, 349)
이렇게 박종서는 당시 독자가 읽기 쉽게 번역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무더운 유형지에서도 두꺼운 제복을 입고 일하는 장교는 자신의 제복을 “고향Heimat”이라 부르는데, 이를 박종서는 “조국의 선물”(115)이라 옮겼다. 제복이 ‘고향’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를 내포하지만, 제복이 ‘조국의 선물’이라면, 장교가 제복을 왜 애지중지하는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박종서의 초역은 이후 번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82년 한일섭이 ‘고향’으로 번역하기 전까지 대부분 “조국의 기념품”(김정진)이나 “조국의 기념”(박환덕), “조국의 상징”(곽복록) 등 의미의 추상 수준을 줄여서 번역하였다. 또한 박종서는 처형기계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der Zeichner”를 “녹사기(錄寫機)”라고 옮겼는데, 이것은 추정컨대 일역의 영향 [2]으로 1977년에 곽복록이 “제도기”라 옮기기 전까지 다수의 번역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박종서의 번역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소설의 절정부에서 장교가 스스로 처형기계 속에 들어갈 때 자기 몸에 새기도록 할 계명을 “본분을 지켜라”라고 번역한 대목이다.
[자이 게레히트 (Sei gerecht)! 본분(本分)을 지켜라]-고 쓰여 있습니다.(155)
역자는 이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다. 우선 독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뒤 원어를 괄호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 말뜻을 다시 한국어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번역해놓았다. 이 대목이 작품 이해의 핵심임을 시사하는 역자의 번역은 <해설>과 연결해 보면 그 의도가 더 잘 드러난다.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 철학에 입각해 소설을 이해하는 역자는 “존재하는 것은 다만 직업인일 뿐이다”(11)라고 말한다. 그는 작품의 장교가 사회에서 맡은 바 임무를 기계적으로 이행하면 그만인 현대 직업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장교는 판사이자 형리로서의 ‘본분’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벌을 받기 위해 처형 기계 속에 눕는다. 그에게 주어진 “법규”가 아무리 “공렴불같은 「스로-강」”[공염불 같은 ‘슬로건’](12)에 불과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비인간적인 명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의문을 품거나 저항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법규를 따른다.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로 태어났기에 존재의 가치를 획득하려면, 즉 세계에 속하려면 그 세계의 “법규”를 따라야만 한다. 그 결과, 현대인은 “한번 꿈틀해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며 다 썩어버린 추잡한 고기덩어리”(12)에 지나지 않게 되었으며, 역자는 카프카의 작품이 이를 말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역자는 “sei gerecht”를 ‘본분을 지켜라’로 번역했다. 이 번역 역시 이후 김정진, 박환덕의 번역에 영향을 미친다[3].
박종서는 1971년에 자신의 번역을 수정하여 <流刑地에서>라는 제목으로 <독일단편문학대계. 현대편 I 괴테에서 욘손까지>에 다시 싣는다. 이 책에서 카프카는 실존주의보다는 표현주의 사조에 속하는 작가로 소개된다. 문장이나 어휘가 보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수정되었으나(예: ‘불란서말’->‘프랑스 말’), 기존 번역에서 오역이라 할 부분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고 핵심적인 대목도 1957년도 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문제의 “sei gerecht”를 독일어 음역 없이 “본분을 지키라”(375)라고 보다 간단하게 옮겨놓았다. 박종서의 번역은 이후에도 출판사를 바꿔 가며 여러 번 재판되었다.
2) 박환덕 역의 <流刑地에서>(1971), <유형지(流刑地)에서>(1986), <유형지에서>(1989)
서울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한 박환덕의 번역은 1971년 박문사에서 발간한 <컬러판 세계단편문학대계> 제6권에 실려 처음 발표되었다[4]. 이 전집에서도 카프카의 소설은 실존주의 문학이 아니라 표현주의 문학으로 소개된다[5]. 이후 1986년 박환덕은 카프카의 단편을 편역한 <변신 외>(어문각)에 기존 번역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새로 낸다. 이는 새로 번역했다고 부르는 편이 맞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어서 그는 3년 만에 <변신 외>를 확대·보완하여 <변신·유형지에서 (외)>(<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를 출간하고 <유형지에서> 번역을 다시 크게 수정한다. 1989년도 판은 출전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막스 브로트가 편집한 전집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주로 작가 “생존시에 출판된 소품과 중단편들”(10)을 간행 시기별로 엮었다고 편집 원칙을 밝힌다. 편집자 막스 브로트의 발문 외 카프카가 쓴 서평도 수록하여 카프카 문학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도모한다. <유형지에서>와 <변신>에 대한 역자의 작품론도 실려 있다. 1989년도 판은 이후 여러 차례 재간되어 2014년까지 출판되었다. 여기서는 1986년도 번역을 과도기에 있는 것으로 보고 1971년도 번역과 1989년도 번역을 주로 비교 대상으로 삼아 고찰해보고자 한다.
1971년도 판과 이후의 두 판본이 내용상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문제의 “sei gerecht” 번역이다. 1971년 판에서는 박종서 역의 영향 하에 “자이 게레히트(본분을 지키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397)라고 옮겼으나 1986년에는 “자이 게레히트(sei zgerecht) (공정하라!의 뜻)”(209)[6]로 옮기고 1989년에는 “여기에는 ‘자이 게레히트(공정하라)!’라고 씌어 있습니다”(254)로 수정했다. 박종서 역과 마찬가지로 음역을 하여 이 계명의 중요성과 번역불가능성을 강조하는 점은 같으나, 이제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박환덕은 1989년도 판 <유형지에서> 작품론에서 “장교는 구제도에 대해서 올바르게 행동해 왔기 때문에 이 판결을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판결이 부당한 이상, 정의의 행사자인 기계는 더 이상 정상적인 작동을 계속할 수는 없다”(1989, 460)라고 해석한다. 즉 장교는 구제도 내에서는 정의를 행사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가 ‘공정하지’ 못했기에 처벌받는 것이 오히려 부당한 일이 된다. 기계가 와해된 것도 그러한 잘못된 판결에 저항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역자는 이와 연계하여 장교의 마지막도 “그 나름의 구원을 받은 것”(1989, 461)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번역에서 잘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또 박환덕의 번역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죄수가 처음 묘사되는 대목에 나오는 ‘입이 크다’는 뜻의 “breitmäulig”[7]를 “악어처럼 옆으로 쭉 째진 입”(1974, 373), “입은 악어입 같고, 머리털도 얼굴도 우글쭈글한”(1986, 171), “입은 악어같이 넓으며”(1989, 223)라고 옮긴 곳이다. 이는 이후 곽복록 번역에서도 발견되는데, 역자는 원문에 없는 “악어처럼”이라는 말을 추가하여 죄수의 얼굴을 보다 생생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무대가 열대의 어느 섬임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표현은 식민지 원주민의 용모를 이국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서 암암리에 타자화하는 유럽인의 시각을 강화하여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죄수의 얼굴 묘사에서 “두껍게 다물어진 입술 seiner wulstig aneinander gedrückten Lippen”(1971, 378; K 136)을 “꼭 다문 두터운 입술”(1989, 230)로 수정한 것도 죄수가 남방계 인종임을 가리키기 위해서일 수 있다.
1971년도 판과 1989년도 판의 가장 큰 차이는 1971년도 판에 비해 1989년도 판의 문체가 훨씬 평이하고 건조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1971년도 판의 번역이 카프카 문장에 결여되어 있을 생기와 활기를 주입하여 텍스트에 대한 표면적인 흥미를 불러내려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1971년도 판은 쓰이는 어미가 훨씬 다양하며, 좀 더 맛깔스럽게 번역되어 있다. 가령 죄수를 감독해야 할 임무를 망각하고 졸고 있던 사병에게 장교가 돌을 던지는 장면을 보자.
병졸은 흠칫 하고는 눈을 치켜 들었다. 그리고 죄수의 괘씸한 행동을 목격하자, 총을 버리고 구두 뒤축으로 땅바닥을 꽉 디디고 서서 힘껏 죄수를 끌어 당겼다. 죄수는 그만 그 자리에 쿵 쓰러지고 말았다.(1974, 381) 사병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러고는 죄수의 괘씸한 행동을 확인하자 총을 버리고 구두 뒤축으로 땅을 구르면서 죄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죄수가 갑자기 쓰러졌다.(1989, 234)
위의 두 대목을 비교해 보면, 앞의 번역에서 역자는 보다 실감난 묘사를 위해 “꽉”, “쿵”하는 의태부사와 의성부사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눈을 뜨다’보다 ‘치켜 들다’가 인물의 동작을 보다 역동적이고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1989년도 판에서 역자가 해설에서 말하듯 “<유형지에서>의 줄거리는 마치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사건을 보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440)라면, 역자가 문체를 바꾼 것은 건조한 보고체가 이 작품의 문체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새 사령관을 움직이고 있는 저 계집년들 때문에, 이 같은 필생의 노작이 수포로 [...](1974, 387) 그를 쥐고 흔드는 그 여자들 때문에 그와 같은 일생의 역작이 [...] 없어져야 [...](1989, 242)
위 대목은 장교가 탐험가 앞에서 기존 처형 방식을 폐지하려 하는 신임 사령관에게 분통을 터트리는 장면이다. 그는 신임 사령관이 행하려 하는 개혁의 배후에는 그 주위의 여자들이 있다고 본다. 위의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1971년도 번역이 인물의 감정을 보다 강렬하게 표현한다. 특히 이 번역은 다른 역자의 번역과 비교해봐도 “숙녀들Damen”을 “계집년들”이라고 함으로써 장교의 분노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다.
또한 1971년도 판에서는 인물들 간의 위계가 보다 두드러진다. 예컨대 ‘사관’(장교)은 탐험가를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매우 깍듯이 존대한다. 반면 탐험가는 사관을 ‘당신’이라 호칭하고, 사관이 탐험가에게 저자세로 부탁을 하자 미묘하게 말을 낮추면서 ‘했소체’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1989년도 판에서 역자는 두 사람이 모두 서로를 ‘당신’이라고 부르게 바꿈으로써 관계를 보다 평등하게 표현하였다. 또 1971년도 판에서 사관과 탐험가는 죄수를 좀더 하대한다. 탐험가가 장교를 지지해줄 뜻이 없음을 알자 탐험가는 결심한 듯 죄수를 석방시키는데, 1971년도 판에서는 “네 놈은 방면한다”(397)라고 번역되어 있다. 역자는 1989년도 판에서는 이것을 “너는 석방이다”(253)로 수정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그 사이에 보다 평등을 추구함에 따라 시대적 흐름에 맞게 자연스럽게 바뀐 것일 수도 있고, 한국어에 비해 위계 표현이 약한 독일어에 충실하게 역자가 바꾼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렇게 하여 인물들 간의 거리를 표현하는 것이 카프카 문체에 보다 충실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1971년도 역은 1989년도 역과 달리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어감에 맞게 주어가 생략되어 있거나 소유관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고, 인물의 감정을 생생하게 살리는 순우리말 부사가 많이 사용한다. 다른 한편으로 1971년도 역은 1989년도 역에 비해 한자어를 훨씬 많이 사용한다. 역자가 번역을 새로 하면서 시대적 흐름에 맞게 한자어를 쉽게 풀어쓰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수마’는 ‘졸음’으로, “횡전과 상하동을 동시에 행하는”(1974, 377)은 “매우 빠르고 가볍게 좌우 상하로 동시에 흔들리게”(1989, 228), “사령관 직필의”(1974, 377)는 “사령관이 손수 그린”(1989, 229), “그야말로 사건은 분규할 뿐인”(1974, 379)은 “그야말로 일은 시끄러워졌을 것”(1989, 232)으로 수정되었다. 이는 한자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으나, 한자어와 함께 순우리말을 골고루 사용한 1971년도 판에 비해 언어가 평이하고 납작해진 느낌을 준다.
1971년도 판은 가독성을 위해 역자(혹은 편집자)가 자의적으로 문단 갈이를 해놓았다. 앞뒤 문장의 논리가 명확하게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문단을 바꾸어 카프카 텍스트의 낯섦을 약화시켜 놓았다. 1989년도 판은 인물이 직접 화법으로 말하는 곳에서는 문단 갈이를 하나 원문의 배치를 비교적 따르는 편이다.
정리하자면 1971년도 판에 비해 1989년도 판은 역자의 개입을 줄이고 보다 원문에 충실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자의 카프카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깊어짐에 따른 변화일 것이며, 후술하겠지만 원문에 대한 충실성을 보다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일 수 있다.
3) 곽복록 역의 <유형지에서>(1980, 1985)
서강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한 곽복록의 <유형지에서> 번역은 1980년 휘문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대전집> 36권에 <변신>, <심판>, <아메리카>와 함께 수록되었다. 이는 동일한 구성으로 1985년에 신영출판사 <세계문학대전집> 제17권에 실린다. 85년도의 번역은 80년도의 번역을 좀더 읽기 좋게 일부 수정했을 뿐, 전체적으로는 큰 변화는 없다. “der Offizier” 번역을 앞서 박환덕의 번역에서 그랬듯이 ‘사관’에서 ‘장교’로 바꾸었다는 변화 정도이다. 크고 작은 오류들도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후에도 출판사를 바꿔 가며 여러 번 재출판되었다.
곽복록은 그전까지 ‘녹사기’로 번역되던 것을 처음으로 ‘제도기’로 옮겼다. 또 특기할 점은 사령관의 “Damen”을 “부인과 그 딸들”(1985, 514)이라 번역한 점이다. 다른 판본들에서는 “사령관들의 부인”(박종서, 1957, 137), “사령관 댁의 숙녀들”(박환덕, 1989, 241), “사령관의 여자들” (한일섭, 348/편영수, 119), “사령관의 숙녀들” (김태환, 122)이라 옮기고 있다. “사령관의 여자들”의 경우, 사령관이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데다 그들에게 휘둘리기까지 하니 부도덕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데 반해, 곽복록의 “부인과 그 딸들”은 원문의 모호함을 약화시키고 사령관이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는 사령관에 대한 장교의 비난을 독자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영향을 미친다.
곽복록의 번역에서는 전반적으로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역자의 주관적인 태도가 비교적 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다음 대목을 보자.
[...] aber ungehörig war es jedenfalls auch, daß der Soldat mit seinen schmutzigen Händen hineingriff und vor dem gierigen Verurteilten davon aß.(K 147-8, 필자의 강조) 그러나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병사가 더러운 손을 반합에 쑤셔넣어 굶주린 사형수 앞에서 미음을 훔쳐 먹고 있는 광경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괘씸한 행동은 없으리라.(1980, 555, 필자의 강조) Dem Reisenden war es peinlich. [...] aber den Anblick der zwei hätte er nicht lange ertragen. “Geht nach Hause”, sagte er.(K 159) 탐험가는 이들의 그런 태도에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최후까지 이 자리에 머무를 결심을 했던 탐험가도 두 사람의 무심한 거동에 분노를 느꼈는지 소리쳤다. / ‘너희들은 돌아가라!’(1985, 525-6, 필자의 강조)
위의 두 대목을 비교적 중립적으로 번역한 한일섭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그러나 사병이 바리에다 더러운 손을 집어넣거나 게걸스러운 죄수 앞에서 죽을 먹는다는 것은 온당치 않는 짓이었다.(한일섭, 350)
그것이 탐험가에는 괴로웠다. 그는 끝까지 여기에 있기로 결심했지만 그 두 사람을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으로 가게나.”라고 그가 말했다.(한일섭, 361)
탐험가가 유형지의 사형제도에 보이는 태도는 3인칭 관찰자적 시점에서 애매모호하게 서술된다. 탐험가는 판결 절차의 부당성과 사형 방식의 비인간성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나, 처형 기계를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장교에 대해서 반감을 보이지 않으며, 죄수에게 딱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위 곽복록의 번역을 보면, 탐험가는 법의 질서 – 그것이 정당하든 아니든 – 를 무시하거나 어지럽히는 사병과 죄수의 행동에 몹시 혐오감을 느끼거나 분노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스스로 처형 기계에 들어가 죽음을 택하는 장교의 행동에 최소한의 경의도 표하지 않는 사병과 죄수를 “무심하다”고 해석하며 여기에 탐험가가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고 원문보다 과장한다, 이는 탐험가가 장교의 선택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역자가 탐험가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문제의 “sei gerecht” 해석에서 엿볼 수 있다. 곽복록은 이를 “정의를 수호하라”(1985, 523)라고 해석하여, 처형 기계가 폐기되면 정의를 수호하지 못한다고 믿는 장교가 차라리 죽음을 자처하는 것처럼 읽힐 여지를 준다. 이는 이후에 많은 역자가 택한 “공정하여라” 해석과 대비될 수 있다. 후자라면 장교가 지금까지 내린 판결이 공정하지 못했음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자 그 점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장교가 위반한 계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장교와 처벌 기계에 대한 서술자의 태도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4) 한일섭 역의 <유형지에서>(1982)
서강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한 한일섭의 번역은 1982년도에 <주우세계문학 9. 프란츠 카프카 심판/변신>에 처음 발표되었다. 이후 1992년에 학원사에서 <심판>을 내면서 기존 번역을 재수록했다.
한일섭의 번역은 처음으로 원문의 문단 배치를 그대로 따른 번역이다. 기존의 번역들은 문장 간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고려했든, 인물의 대화가 나오는 부분에서 행갈이를 하기 위해서든 가독성을 위해 문단을 임의로 쪼개어 놓거나 붙여 놓았다. 그러나 한일섭의 번역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 특히 마지막에 장교가 죽은 장면과 탐험가가 유형지의 찻집을 가는 장면 사이에는 장면의 큰 전환이나 중략을 암시하는 듯한 휴지부가 있는데 그간의 번역본에서는 이 휴지부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었다.
또 한일섭의 번역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이기 위해 추가하거나 윤문한 부분이 거의 없어 원작의 문장에 충실을 기하려 했다. 그 결과 기존에 계속해서 ‘조국의 상징’ 또는 ‘조국의 선물’ 등으로 번역되던 ‘Heimat’를 “고향”(336)으로 처음 번역했다. 그렇지만 원문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때도 꽤 있다. 가령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장교의 일장 연설에다 대고 탐험가가 그럴 수 없다고 하는 부분을 “아닙니다 Nein”(356; K 153)라고 번역하여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또 소설의 중요한 서두를 보자.
“독특한 장치로군요.”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탄복하는 듯한 시선으로 평소부터 잘 알고 있는 그 장치를 새삼스레 살펴보았다.(335)
“독특한 장치로군요”는 기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장교가 기계를 처음 본 탐험가 앞에서 할 법한 말은 아니다. “이것은 독특한 장치입니다”를 감탄조로 번역하다 보니 범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발화의 맥락을 깊게 고려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의미 전달을 오히려 가로막는 셈이다.
역자의 개입이나 해석을 최소화하려 한 가장 두드러지는 결과는, 문체가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딱딱해진다는 것이다.
Wie nahmen wir all den Ausdruck der Verklärung von dem gemarterten Gesicht, wie hielten wir unsere Wangen in den Schein dieser endlich erreichten und schon vergehenden Gerechtigkeit! Was für Zeiten, mein Kamerad!(K 147)
우리 모두가 그 수난의 얼굴에서 변용의 모습을 느꼈고, 마침내 도달했다가 벌써 떠나고 있는 정의의 빛에다 우리 모두의 뺨을 적셨던 것입니다! 여보게나, 그때가 얼마나 멋진 때였는가!(한일섭, 1982, 343) 아, 그 가책과 고통으로 이그러진 얼굴에서 숭고한 변용의 표정을 보았을 때의 우리들 모두의 감격, 빛났는가 하는 순간 벌써 꺼져 가는 정의의 빛을 흠뻑 받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상기한 뺨, 오오, 감격스럽던 그 시절이여! 이봐요.자네......(곽복록, 1985, 515)
위에서 극명히 드러나듯 한일섭은 장교의 감정이 격하게 고조된 부분조차 산문적으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감탄문의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반면 곽복록의 번역은 말하는 자의 파토스가 원문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는 ‘~ 감격’, ‘~ 뺨’과 같이 명사로 끝나도록 문장 구조가 전치되어 있어 훨씬 시적이고 격앙된 느낌을 준다. 이는 1957년도 박종서 번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후 많은 역본에 영향을 주어 박환덕과 곽복록 번역에도 어휘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한일섭 번역은 비록 원문보다도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어쨌든 당시로서는 새로운 번역의 어조를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새로움은 원문을 보다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옮기려 하는 현재의 번역보다는 과거의 번역과 비교해 볼 때 더 두드러질 것이다.
5) 염승섭 역의 <유형지에서>(1997)
계명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한 염승섭의 번역은 1997년에 카프카 단편집 <변신>에 수록되어 발표되었다. 역자는 <머리말>에서 이미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 카프카 단편을 또다시 번역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힌다. 기존 번역이 수업 교재로 쓰기에 불충분하여 정확하면서도 “카프카의 문체적 특성을 최대한으로 반영”하는 새 번역을 선보이고자 했다는 것이다. 염승섭의 번역은 학술적 정확성을 강조한 만큼 처음으로 번역 저본을 밝힌다(“가장 믿을 만한 판본인, 파울 라베(Paul Raabe)가 출간한 Franz Kafka, Sämtliche Erzählungen(Frankfurt a. M.: S. Fischer, 1970)이고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하여 영역판 Franz Kafka/The Complete Stories(New York: Schocken Books, 1971)을 참조했음을 밝혀 둔다.”(iv)). 이렇듯 염승섭의 번역은 세계문학선집이나 독일문학선집을 위한 번역과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후자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전자는 독문학 전공생을 겨냥하기에 원문을 최대한 직역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번역은 수업 교재답게 역자의 적극적인 해석이나 논평이 중간에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평소에 “냄새 고약한 생선들”(126)만 먹고 살던 죄수가 처형 직전에 분에 넘치게 사탕을 잔뜩 먹었다며 장교가 불평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역자는 각주에서 이러한 대목으로 보아 이곳 유형지가 “인도지나 특히 월남”(126)일 것이라 설명한다.
염승섭의 번역은 기존 번역에서 굳어져 있던 표현들을 깨고 새롭게 번역한 부분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독일어 원문에 너무 충실하려다 보니 지시대명사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 결과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고 글의 문학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그러나 그것들은 고향을 의미합니다”(108)에서 ‘그것들’이 받는 것은 군복이다. 그러나 이는 얼른 봐서는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어색한 느낌을 준다.
6) 이주동 역의 <유형지에서>(1997)
전 서강대 독문과 이주동 교수는 한국어판 카프카 ‘결정본’을 내겠다는 야심찬 목표에 따라 1997년부터 솔출판사에서 <카프카 전집>을 내기 시작했다. <유형지에서> 번역은 카프카의 단편을 모은 전집 1권에 실려 있다. 초판은 1997년도에 출간되었고 개정판은 2003년에 출간되었는데 <유형지에서> 번역은 개정된 것이 없다. 한국어 최초로 발간된 카프카 전집인데다, 가장 믿을만한 판본을 기초로 했다는 점에서 번역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독자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형지에서> 번역은 이러한 기대를 크게 좌절시킨다. 그 이유는 이 번역이 한일섭의 번역을 지나치게 참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앞 서너 쪽은 그래도 어휘가 조금은 달라져 있어 한일섭의 번역문과 조금은 차이를 보이나, 뒤로 갈수록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일섭의 번역에서 아쉬웠던 점조차 수정되어 있지 않다.
7) 김태환 역의 <유형지에서>(2015)
카프카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한 서울대 독문과 김태환 교수의 번역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오는 세계문학 시리즈로 카프카의 단편을 모아 낸 <변신 · 선고 외>에 실려 발표되었다. 번역 저본은 <Die Erzählungen>(Fischer, 2013)이다.
김태환의 번역은 기존 번역에서 굳어져 있던 표현들을 새롭게 번역한 점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탐험가’로 굳어져 있던 ‘der Forschungsreisende’를 ‘탐험 여행가’라고 번역하고, ‘der Reisende’를 ‘여행가’라고 번역하였다. 또한 대위에게 대들어 사형선고를 받게 된 ‘죄수’를 보통은 “당번”(박환덕, 한일섭), “부하”(곽복록), “당번병”(편영수)이라고 옮기는데, 여기서는 염승섭 역과 같이 직역하여 “하인der Diener”(113)으로 옮겼다.
역자는 원문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해석을 열어놓는 번역을 추구한다. 예컨대 역자들 간에 번역의 차이가 크게 나는 한 대목을 살펴보자.
Der Reisende überlegte: Es ist immer bedenklich, in fremde Verhältnisse entscheidend einzugreifen. Er war weder Bürger der Strafkolonie, noch Bürger des Staates, dem sie angehörte. Wenn er diese Exekution verurteilen oder gar hintertreiben wollte, konnte man ihm sagen: Du bist ein Fremder, sei still. Darauf hätte er nichts erwidern, sondern nur hinzufügen können, daß er sich in diesem Falle selbst nicht begreife, denn [...] Nun lagen aber hier die Dinge allerdings sehr verführerisch. Die Ungerechtigkeit des Verfahrens und die Unmenschlichkeit der Exekution war zweifellos. Niemand konnte irgendeine Eigennützigkeit des Reisenden annehmen, denn der Verurteilte war ihm fremd, kein Landsmann und ein zum Mitleid gar nicht auffordernder Mensch.(K 144, 필자의 강조)
여행가는 생각했다. 타국의 상황에 중대한 개입을 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는 이 유형지의 시민이 아니었고, 유형지가 속해 있는 모국의 국적자도 아니었다. 만일 그가 처형을 비난하거나 심지어 훼방을 놓으려 든다면, 그는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으리라. 자네는 외국인이니 조용히 있게. 이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할 것이 없고 그저 다음과 같이 덧붙일 수 있을 뿐이다. [...] 내가 지금 왜 그러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노라고. 그런데 이곳의 상황이 대단히 유혹적인 것은 사실이다. 재판 절차의 부당성과 처형의 비인간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행자가 어떤 사심을 지니고 있다고 의심할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죄수는 낯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여행가의 동포도 아니고, 전혀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위인도 못 된다.(121-2, 필자의 강조)
위 대목은 여행가가 장교와 현 사령관이 처형 기계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해석이 유난히 까다로운 부분은 위의 밑줄 친 곳이다. 우선 첫째로는 무엇이 “유혹적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렇기에 박종서는 “이 지방의 여러 가지 사정”(135), 박환덕은 “이곳의 여러 가지 사정”(1989, 239), 곽복록은 “이 지방의 풍물”(513)이 호기심이나 관심을 끈다고 옮겼다. 이러한 번역은 여행가의 생각이 처형 제도에서 이곳의 여러 사정이나 풍물로 다소 산만하게 옮겨가는 것처럼 오독할 여지를 준다.
또한 위의 밑줄 친 부분은 논변상의 작은 전회가 일어나는 부분이기도 한데, 여행가는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의 사법제도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음을 안다. 그런데도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에게 몹시 “유혹적”이다. 그 이유를 그가 어떤 사심을 지니고 있어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죄수를 위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삼자이고 이곳의 재판이나 사형제도가 부당하고 비인간적인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편영수는 위 ‘유혹’을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라 해석하여 “그렇지만 물론 이곳의 상황은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자극한다”(109)라고 옮겼다. 이는 해당 부분을 훨씬 논리적으로 만든 것이다. 아울러 그 앞의, 여행가가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겠다는 부분을 “그저 이 사건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109)라고 옮겨서, 여행가의 고민이 지닌 무의식적인 성격도 약화시킨다. 이에 비해 김태환은 그렇게 개입하고픈 역자의 ‘유혹’을 뿌리친다. 그는 카프카의 <성> 번역을 검토하면서 카프카 번역에서 역자의 ‘전지적’ 해석적 개입이 왜 문제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 바 있다.[8] 그의 번역은 카프카 문체에 대한 섬세하고 깊은 이해에 기반하여 원문이 본래부터 지닌 모호함과 아리송함을 그대로 보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8) 편영수 역의 <유형지에서>(2020)
카프카를 전공한 전 전주대 독문과 편영수 교수의 번역은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으로 발간된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변신·단식광대>에 발표되었다. 단편선 자체는 편영수와 임홍배의 공역이나 <유형지에서>는 편영수의 번역이라고 <일러두기>에 밝히고 있다. 번역의 특징을 살펴보기 이전에 번역서의 두드러지는 점은 무려 115쪽가량의 긴 작품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는 것이다. 해설을 쓴 임홍배는 <유형지에서>를 비롯한 카프카의 작품을 자세하게 해설한다. 특히 소설을 둘러싼 제국주의적·식민주의적 맥락을 지금까지의 번역본들 가운데 가장 명시적으로 소개한다.
이 번역 역시 김태환의 번역과 유사하게도 ‘탐험가’라는 굳어진 표현 대신 “학술답사 여행자”를 택했으며, 이후에는 ‘여행자’라고 줄여서 부른다. 이는 이후에 여행자가 신임사령관에 의해 “세계 각국의 사법제도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은 서양의 한 위대한 연구자”(115)로 앞세워질 것을 장교가 왜 두려워했는지 보다 쉽게 이해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김태환의 번역과 마찬가지로 원문을 정확하면서도 한국어로도 매끄럽게 옮기고 있으나 앞에서 비교한 바처럼 문장과 문장 간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보다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Der Reisende dagegen war sehr beunruhigt; die Maschine ging offenbar in Trümmer.(K 160)
반면에 여행자는 몹시 불안했다. 기계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편영수, 128)
반면 여행가는 마음이 몹시 불안했다. 기계는 분명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김태환, 142)
두 문장은 세미콜론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미콜론에 인과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분명치 않고 또 인과접속사를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가 매우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영수의 번역은 두 문장을 인과관계로 연결시킨다. 이런 점들을 볼 때 그의 번역이 김태환의 번역에 비해 문장 간의 논리적 공백을 메워서 가독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고 하겠다.
3. 평가와 전망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한국어 번역의 역사는 벌써 70주년을 바라볼 만큼 오래되었다. 초창기에는 카프카의 문체를 한국어 안에서 살려내려는 노력보다는 한국의 독자가 그의 문학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내용상의 난해함을 덜어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점차 카프카 문학에 관한 연구가 쌓여가고 이에 대한 전문적인 관심이 확대됨에 따라 원문의 낯섦을 피하지 않고 원문의 구문이나 표현을 보다 충실하게 번역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카프카에 대한 한국어 독자의 이해가 깊어진 만큼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57): 유형지. 일신사. 박종서(1971): 유형지에서. 일지사. 박환덕(1971): 유형지에서. 박문사. 박환덕(1986): 유형지에서. 어문각. 박환덕(1989): 유형지에서. 범우사. 곽복록(1980): 유형지에서. 휘문출판사. 곽복록(1985): 유형지에서. 신영출판사. 한일섭(1982): 유형지에서. 주우사. 한일섭(1992): 유형지에서. 학원사. 염승섭(1997): 유형지에서. 계명대출판부. 이주동(1997): 유형지에서. 솔 김태환(2015): 유형지에서. 을유문화사 편영수(2020): 유형지에서. 창비.
- 각주
- ↑ 장진길, 독일문학의 한국어 번역에 대한 문헌학적 고찰 (I). In: 카프카 연구 20, 2008, 192.
- ↑ 流刑地にて, 谷友幸譯. In: カフカ全集 3, 新潮社 1953, 153
- ↑ 그러나 김정진은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장교의 죽음이 자신의 신념을 위한 순교라고 본다. “장교의 얼굴에 구제의 변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눈은 확신에 넘친 채 크게 부릅뜨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장교의 죽음은 순사하는 종교가의 성스러운 죽음과도 비유된다. 인류의 원죄를 짊어지고 속죄하는 양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김정진 역, 삼성사 세계문학전집 2. 성/변신 외, 삼성출판사 1975, 410.)
- ↑ 이 글에서 참고한 책은 1974년도 판이다. 그러나 1971년도 판에서 수정되지 않고 단순히 증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 정인영의 해설 참고. <컬러판 세계단편문학대계> 6권, 박문사 1974.
- ↑ ‘gerecht’의 표기에 난 오타가 그대로 인쇄되었다.
- ↑ Franz Kafka: Erzählungen. Michael Müller(ed.)(1995), Stuttgart: Reclam, 131. 이하 본문에 약어 K와 쪽수만 표기.
- ↑ 김태환, 카프카의 <성> 번역: 번역의 함정으로서의 텍스트, 2023 (미출간 원고).
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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