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텔 (Wilhelm Tell)"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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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오너라, 쓰디쓴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여. / 나의 고귀한 보석이며 나의 최고의 보물이여 ― / 너에게 목표를 주겠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 경건한 탄원으로는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니라 ― / 하지만 너에게는 저항해서는 안될 것이다 ― 그리고 너 / 친숙한 활시위야, 너는 그렇게도 자주 / 즐거움의 유희 속에서 성실하게 나에게 봉사하였는데 / 심각한 순간에 나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 너, 충직한 활 끈이여, 지금만 견뎌다오. / 너는 그리도 자주 강력한 화살을 날려주지 않았느냐 ― / 지금 화살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표적을 못 맞히면 / 나는 두 번째로 사용할 화살이 없노라. (이원양, 263-264) | 이제 나오너라, 쓰디쓴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여. / 나의 고귀한 보석이며 나의 최고의 보물이여 ― / 너에게 목표를 주겠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 경건한 탄원으로는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니라 ― / 하지만 너에게는 저항해서는 안될 것이다 ― 그리고 너 / 친숙한 활시위야, 너는 그렇게도 자주 / 즐거움의 유희 속에서 성실하게 나에게 봉사하였는데 / 심각한 순간에 나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 너, 충직한 활 끈이여, 지금만 견뎌다오. / 너는 그리도 자주 강력한 화살을 날려주지 않았느냐 ― / 지금 화살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표적을 못 맞히면 / 나는 두 번째로 사용할 화살이 없노라. (이원양, 263-264) | ||
− | 쓰라린 고통을 불러오는 화살이여, 나와라. / 내 소중한 보배,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보물이여, / 네게 표적을 하나 주마. 지금까지는 / 아무리 간청해도 허락해 주지 않던 표적이다. / 하지만 네게는 허용해 주마. / 그리고 너, 흥겨운 경기에서 / 늘 내게 충성을 바쳐 온 익숙한 시위여, / 엄중한 순간에 나를 배신하지 말거라. / 매서운 화살에 그토록 자주 날개를 달아 준 / 충직한 줄이여, 이번만은 꼭 버텨 다오. / 지금 화살이 힘없이 내 손을 빠져나가면 / 다시 한번 쏠 기회는 없다. (이재영, 150) | + | ''쓰라린 고통을 불러오는 화살이여, 나와라. / 내 소중한 보배,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보물이여, / 네게 표적을 하나 주마. 지금까지는 / 아무리 간청해도 허락해 주지 않던 표적이다. / 하지만 네게는 허용해 주마. / 그리고 너, 흥겨운 경기에서 / 늘 내게 충성을 바쳐 온 익숙한 시위여, / 엄중한 순간에 나를 배신하지 말거라. / 매서운 화살에 그토록 자주 날개를 달아 준 / 충직한 줄이여, 이번만은 꼭 버텨 다오. / 지금 화살이 힘없이 내 손을 빠져나가면 / 다시 한번 쏠 기회는 없다. (이재영, 150)'' |
− | 어서 나오렴,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는 화살이여, / 자, 내 소중한 보석이자 최고의 보물이여······ / 너에게 하나의 과녁을 주겠다, / 지금까지 경건한 탄원으로는 뚫을 수 없는 것이었지······. / 하지만 그 표적은 너에게 저항하지 못할 거야······. / 그리고 너 친밀한 활시위여, 너는 그리도 자주 / 놀이하듯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충성을 바쳤지, /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 그리도 자주 나의 준엄한 화살을 날려 보내 준 / 너 충실한 활시위여, 지금만은 좀 견뎌 다오, / 지금 힘없이 내 손에서 빠져나간다면 / 내겐 다시 쏠 화살이 없단다. (홍성광, 175) | + | '''어서 나오렴,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는 화살이여, / 자, 내 소중한 보석이자 최고의 보물이여······ / 너에게 하나의 과녁을 주겠다, / 지금까지 경건한 탄원으로는 뚫을 수 없는 것이었지······. / 하지만 그 표적은 너에게 저항하지 못할 거야······. / 그리고 너 친밀한 활시위여, 너는 그리도 자주 / 놀이하듯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충성을 바쳤지, /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 그리도 자주 나의 준엄한 화살을 날려 보내 준 / 너 충실한 활시위여, 지금만은 좀 견뎌 다오, / 지금 힘없이 내 손에서 빠져나간다면 / 내겐 다시 쏠 화살이 없단다. (홍성광, 175)''' |
우리는 곳곳에서 번역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전 번역의 어려움과 역자의 작품 이해의 편차를 잘 엿볼 수 있는 예라 생각된다. 먼저 첫째 행의 du Bringer bittrer Schmerzen에 대한 번역을 보면, ‘너 쓰디쓴 고통을 가져오는 물건’(안인희), ‘너 쓰라린 고통을 가져오는 것’(한기상), ‘쓰디쓴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이원양), ‘쓰라린 고통을 불러오는 화살’(이재영),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는 화살’(홍성광)로 번역되었다. 이재영과 홍성광은 다른 역자들과 달리 원문에는 없는 화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전의 세 역자는 직역했지만 두 사람은 의역한 것인데, 이 단락의 끝까지 읽어보면 화살(Pfeil)이라는 말이 나오고, 텔이 나오라고 지시하는 대상이 바로 그 화살임이 드러난다. 그냥 물건, 것, 자라고 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여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화살이라고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함으로써 내용이 분명해지고 상황이 잘 전달되었다. 두 사람의 이런 의역은 독자의 이해 편의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 우리는 곳곳에서 번역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전 번역의 어려움과 역자의 작품 이해의 편차를 잘 엿볼 수 있는 예라 생각된다. 먼저 첫째 행의 du Bringer bittrer Schmerzen에 대한 번역을 보면, ‘너 쓰디쓴 고통을 가져오는 물건’(안인희), ‘너 쓰라린 고통을 가져오는 것’(한기상), ‘쓰디쓴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이원양), ‘쓰라린 고통을 불러오는 화살’(이재영),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는 화살’(홍성광)로 번역되었다. 이재영과 홍성광은 다른 역자들과 달리 원문에는 없는 화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전의 세 역자는 직역했지만 두 사람은 의역한 것인데, 이 단락의 끝까지 읽어보면 화살(Pfeil)이라는 말이 나오고, 텔이 나오라고 지시하는 대상이 바로 그 화살임이 드러난다. 그냥 물건, 것, 자라고 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여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화살이라고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함으로써 내용이 분명해지고 상황이 잘 전달되었다. 두 사람의 이런 의역은 독자의 이해 편의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
2023년 5월 16일 (화) 05:25 판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희곡
작품소개
프리드리히 쉴러의 5막극으로 1804년에 발표되고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스위스 연방동맹과 스위스의 독립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이룬다. 작가가 생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으로, 빌헬름 텔과 뤼틀리 서약을 둘러싼 스위스의 민족 설화를 소재로 한다. 사냥꾼 텔은 자유를 사랑하고 행동하는 인물로, 오스트리아 총독 헤르만 게슬러의 악의에 용감히 맞선다. 권력만을 탐하는 거칠고 타락한 인물 게슬러는 텔에게 아들의 머리 위에 얹힌 사과에 화살을 쏘아 맞히게 하지만, 종국에는 텔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세 주에서 파견된 동맹자들의 봉기로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작품 속의 또 하나의 줄거리는 브루넥 출신의 베르타와 루덴츠 출신의 울리히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텔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들과 느슨하게 연결된다. 박은식이 1907년 <政治小說 瑞士建國誌>란 제목으로 초역했다(대한매일신보사).
초판 정보
Schiller, Friedrich(1804): Wilhelm Tell. Tübingen: J. G. Cotta'sche 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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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政治小說 瑞士建國誌 | 政治小說 瑞士建國誌 | 실러 | 정철; 박은식 | 1907 | 大韓每日申報社 | 1-55 | 완역 | 개작 |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관외이용 온라인 보기 가능 | |
정치쇼설. 셔사건국지 | 정치쇼설. 셔사건국지 | 실러 원작. | 鄭哲 小說體 漢譯; 김병현 역(확인불가) | 1907 | 박문셔관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아단문고 홈페이지에서 원문 확인 가능 | ||
3 | 윌리암 텔 | 윌리암 텔 | 三千里 3, 4 | 실러 | 확인불가 | 1930 | - | 편역; 개작 | 개작; 편역 | "소설. 잡지 三千里의 3, 4호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나 Riss검색 상 소장중인 제주대에서도 3, 4호는 미소장. 아단문고에서 4호를 소장 중인 것으로 보이나 원문서비스 미제공. | |
4 | 윌리암 텔 | 윌리암 텔 | 아이동무 3, 7-11 | 쉴러 | 강승한 | 1935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동화, 국중/riss 미확인 | |
5 | 윌리암 텔 | 獨逸篇 | 縮少世界文字全集 3 | 쉴러 | 古今出版社 概輯部(고금출판사 개집부) | 1955 | 古今出版社 | 119-138 | 편역; 개작 | 개작; 편역 | |
6 | 윌리암 텔 | 윌리암 텔 | 실라아 | 박두진 | 1962 | 백인사 | 8-211 | 완역 | 개작; 편역 | ||
7 | 용감한 빌헬름 텔 | 용감한 빌헬름 텔 | 세계어린이문학전집 19 | 후리드리히본 쉴러 | 우량어린이도서출판회 | 1968 | 대한출판사 | 10-156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실물에는 1972년으로 표기 |
8 | 윌리엄 텔 | 윌리엄 텔 |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 도이칠란트 편 26 | 실러 | 이시철 | 1971 | 금성출판사 | 15-104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초판발행 1971 중판발행 1973 |
9 | 빌헬름 텔(五幕) | 群盜(五幕) | <레싱, G.E. 外 ; 獨逸古典戱曲選> (世界文學全集) 8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姜斗植(강두식) | 1974 | 乙酉文化社 | 359-448 | 편역 | 완역 | |
10 | 윌리엄 텔 | (소년소녀)세계의 문학 | 1975 | 태극출판사 | 101-198 | 편역; 번안 | 번안 | ||||
11 | 윌리암 텔 | 윌리암 텔 | 소년소녀세계의문학 30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이주훈 | 1975 | 태극출판사 | 102-190 | 편역 | 편역; 개작 | 동화, 표제지 30권(독일편 3)에 수록. 1975년 초판 발행 |
12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44 | 쉴러 | 김창활 | 1976 | 계몽사 | 10-241 | 개작 | 개작 | |
13 | 윌리엄 텔 | (소년소녀)독수리 컬러문고 세계명작 | 1978 | 태창출판사 | 16-211 | 번안 | 번안 | ||||
14 | 윌리엄 텔 | 윌리엄 텔 | 재미있는 그림동화 29 | 쉴러 | 확인불가 | 1978 | 弘新文化社 | 1-119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동화, 국중/riss 미확인 |
15 | 윌리암 텔 | 윌리암 텔 | 독수리컬러문고 79 | 실러 | 민잉 | 1978 | 泰昌文化社 | 1-236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국중/riss 미확인 |
16 | 윌리엄텔 | 윌리엄텔 | 우리들문고 100 | 실러 | 고태성 | 1985 | 보성문화사 | 1-227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국중/riss 미확인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오늘의 시민서당 38 | F. 쉴러 | 안인희 | 1988 | 청하 | 11-191 | 완역 | 완역 |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범우희곡선 9 | 프리드리히 실러 | 한기상 | 1993 | 범우사 | 11-199 | 완역 | 완역 | ||
빌헬름 텔 | 간계와 사랑, 빌헬름 텔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서양-문학 9 | 프리드리히 실러 | 이원양 | 1998 | 서울대학교출판부 | 149-298 | 편역 | 완역 | ||
20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3 | 프리드리히 실러 | 강혜경 | 2006 | 마루벌 | 1-31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21 | 빌헬름 텔 | (한권으로 끝내는) 세계명작 & 한국단편 | 서래경 | 2006 | TNB | 33-48 | 편역 | 번안 | |||
22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프리드리히 실러 | 이용숙 | 2006 | 이루파 | 1-31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23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논술대비 세계문학 15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주현 | 2006 | 한국헤밍웨이 | 9-219 | 번안 | 번안 | |
24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푸른담쟁이 세계문학 34 | 프리드리히 실러 | 한기상 | 2007 | 웅진씽크빅 | 8-201 | 완역 | 완역 | |
25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367 | 프리드리히 실러 | 이원양 | 2009 | 지식을만드는지식 | 29-205 | 편역 | 편역 |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을유세계문학전집 18 | 프리드리히 폰 쉴러 | 이재영 | 2009 | 을유문화사 | 7-192 | 완역 | 완역 |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간계와 사랑 | 세계문학전집 277 | 프리드리히 실러 | 홍성광 | 2011 | 민음사 | 7-222 | 편역 | 완역 | ||
28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프리드리히 실러 | 볕드는 마루 | 2011 | 영림카디널 | 315-337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29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웅진 명작 도서관 35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정성란 | 2012 | 웅진씽크빅 | 9-116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30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공부가 되는> 시리즈 45 | 프리드리히 실러 | 글공작소 | 2013 | 아름다운사람들 | 90-117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2권에 수록 |
31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큰글씨책 | 프리드리히 실러 | 이원양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29-205 | 편역 | 편역 | |
32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프리드리히 실러 | 이원양 | 2019 | 지만지드라마 | 3-182 | 편역 | 편역 | ||
33 | 빌헬름 텔 | 윌리엄 텔 | 명화로 보는 음악 동화 5 | 프리드리히 실러 | 강효미 | c2014 | 교원 | 4-37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34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논술대비세계명작 6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윤일현 | [2007] | 한국몬테소리 | 8-139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35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소년소녀세계명작문학, 용기를 심어 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18 | 실러 | 신인래 | [2011] | 훈민출판사 | 6-95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
36 | 빌헬름 텔 | 빌헬름 텔 | 세계 명작 동화 28 | 프리드리히 실러 | 정명숙 | [2018] | 기탄교육 | 4-29 | 편역; 개작 | 편역; 개작 |
번역비평
Ⅰ. 해방 이전의 번역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문학 수용작이라 할 1907년 박은식의 <정치소설. 서사건국지>의 원작은 1804년에 발표된 쉴러의 드라마 <빌헬름 텔>이다. 서사(瑞士)는 스위스의 한자 표기이다. 박은식은 중국의 정철(鄭哲)(1902)의 동명 소설에 토를 달아 번역하였으며 이 작품의 번역을 <대한매일신보>에 10차례에 걸쳐 연재하였다. 박은식은 후에 이 연재소설을 묶어 ‘정치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서사건국지>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정철은 당시 존재했던 여러 일본어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해 제목을 변경하고 소설로 장르를 변경하였다. 넓은 의미로 볼 때 박은식의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일 문학작품의 번역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대의 문화적 순환과 수용의 연관에서 볼 때 일본과 중국을 통해 여러 단계의 이동 경로를 거쳤기 때문에 단순한 번안이라고 하기도 어려우며 이러한 복잡한 이입사, 수용사는 분석과 평가에 더 많은 논의를 요구한다.
정철의 <서사건국지> 소설은 독일 원작의 여러 줄기의 이야기들을 생략하고 스위스가 이웃 나라 일이만(日耳萬, 오스트리아)에게 점령을 당했을 때 구국지사인 유림척로(維霖惕露, 빌헬름 텔)가 나타나 예사륵(倪士勒, 게슬러)을 물리치고 독립과 자유를 얻어 공화국이 건설되는 큰 줄기 이야기에 집중이 되어 있다. 또한 독일의 원작과 달리 가족이 큰 역할을 하는데, 아들의 제의로 격문을 써서 병사들을 모으고 애국가를 짓고 스위스의 역사를 알려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유림척로는 민중의 지도자로 앞장서서 예사륵을 죽이고 적군을 무찌르고 서사공화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러한 변경은 중국 전통 소설과의 연속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쉴러의 희곡이 독일 고전주의 정신에서 나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했다면, 중국에서는 영웅서사와 건국서사가 강조된 소설로 변모하였다.
이 점은 박은식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1907년이라는 당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서구 열강의 다툼과 일본 제국주의의 정복욕 앞에 풍전등화처럼 서 있던 조선의 상황을 스위스 건국사 이야기를 통해 투영시켜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박은식은 중국의 계몽주의 개혁가 양계초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열강이 다투는 가운데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애국자이자 개혁자였다. 1905년 일본의 한일보호조약에 대한 고발서인 <시일야방성대곡>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감옥에서 정철의 소설을 번역하였다. 또한 박은식은 당시 한국에서 유행했던 –퇴폐적- 연애 소설과는 거리를 두고 문학을 활용해 국민을 계몽하고 자극하려는 의도에서 정치(지향)소설을 소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도 소설 장르 사에서 새로운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신문 연재소설은 당시에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공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였는데 박은식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정철의 <서사건국지>는 김병현에 의해서도 번역이 되었고, 그 밖에도 <빌헬름 텔>은 해방 전까지 <윌리암 텔>이라는 제목으로 1930년 역자미상 역(삼천리 출판사)과 1935년의 강승한 역(아이동무)이 나와 있으나 영어본에서 중역하거나 아동본으로 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Ⅱ. 해방 이후의 번역
1. 번역 현황 및 개관
이 글에서는 해방 이후에는 <빌헬름 텔>의 번역 및 소개의 양상이 어떠한지 살펴보려 한다. 번역서지 목록을 들여다볼 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번역보다 번안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번역의 역사’보다는 ‘번안의 역사’를 말해야 할 정도로 번안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어린이용으로 개작된 경우가 가장 많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활로 쏘아 맞힌 명사수 이야기, 자유를 위한 민중들의 항거, 외세의 압제에 맞선 애국심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내용은 아동문학용으로 매우 적합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가 어린이인 점을 고려하여 낯선 희곡 형식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동화나 소설로의 개작이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동문학 시리즈에 수록된 다수의 경우가 그것을 말해준다. 제목이 대부분 ‘윌리엄 텔’ 또는 ‘윌리암 텔’이란 점을 볼 때, 아마도 영어에서 번역된 것 같다. 그러니까 영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어린이용 도서로 개작된 경우가 소개의 주류를 이룬다고 하겠다.
또 눈에 띄는 것은 교과서에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독일 문학작품이자 교과서에 실린 몇 안 되는 독일 문학작품 중 하나이다. 1963년 2학기부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일부가, 1984년부터는 3막 3장이 강두식이라고 역자를 밝히면서 실렸는데, 2019년 개정판부터는 수록되지 않았다. 독일에서도 이 작품이 김나지움 독일어(독일의 국어) 수업에서 다루어지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발단, 전개, 절정, 하강, 대단원이라는 클라이맥스 적 구조를 잘 보여주는 이 희곡의 형식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교과서에서도 그런 목적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단원의 길잡이를 보면, 학생들은 이 작품을 통해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를 학습하게 되어 있다. 대학 논술시험을 대비한 편역서가 다수 출판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소개 및 수용의 역사를 지닌 이 작품은 1945년 이후에만도 30종이 넘는 번역서지 목록을 자랑한다. 그런데 그중에 희곡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완역된 번역서는 5종에 불과하다. 1988년에 나온 안인희의 번역이 그 시초이며, 그 이후 한기상(1993), 이원양(1998), 이재영(2009), 홍성광(2011)에 의해 번역되었다. 1907년 소설의 형태로 처음 소개된 후 무려 80년이 지나서야 독일어 텍스트를 저본으로 하면서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한 번역본이 나온 것이다.
2. 개별 번역 비평
앞에서 언급한 완역본 5종만 진정한 의미의 번역서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번역서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초판 연도 순서대로 살펴본 후 작품의 주요 장면을 통해 번역을 비교하려 한다.
청하에서 <오늘의 시민서당> 38로 나온 안인희 역의 <빌헬름 텔>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독일어 원본에 따라 희곡으로 완역된 최초의 번역본이다. <일러두기>를 통해 번역 및 편집에 관한 주요 사항들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점, 한저 출판사의 쉴러 전집(Sämtliche Werke)을 번역의 대본으로 삼았다고 저본을 밝힌 점, 이 작품이 운문으로 쓰였기에 운문 형태의 번역을 시도하면서 전공자를 위해 시행(詩行)을 숫자로 표시한 점 등은 번역자와 출판사가 번역 및 출판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이후의 어떤 완역서에서도 시행이 표시되지 않았기에, 최초의 완역본이자 학술적으로 인용 가능한 역본이라 하겠다. 역자는 또 “문체의 등급”을 정하는 데 고심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농부와 사냥꾼 같은 평민층이 주체가 된 극이지만 문체의 품격이 높기에 그 의도를 존중하려고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고아한 문체를 선택했다고 밝힌다. <작품해설>에서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쉬운 언어로 쉴러의 미학 이론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범우사에서 <범우희곡선> 9로 나온 한기상 역의 <빌헬름 텔>은 1993년에 초판을 찍은 후 1998년에 2판 1쇄를, 2001년에 2판 2쇄를 찍었다.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2001년 2판 2쇄임을 밝힌다. 범우사에서 펴내는 <범우문고> 등 각종 시리즈에 대한 소개/광고가 책 뒤편에 상세하게 나오는 반면, <범우희곡선>의 발간사나 편집 원칙 등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다. 번역서 맨 앞에 <이 책을 읽는 분에게>라는 2쪽짜리 글이 있는데, 번역과 관련한 역자의 생각이나 저본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빌헬름 텔 해설 및 독일 이상주의와 폭력 양상의 비판>이라는 작품해석이 번역서 맨 뒤에 실려 있는데,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해설이라기보다는 학술적인 논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번역에서 오류가 자주 발견되어 매우 아쉽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의 서양-문학 9로 나온 이원양의 번역본은 산문의 형식으로 번역되었다. 안인희는 운문의 형식을 유지하며 번역했는데, 한기상과 마찬가지로 이원양은 산문 번역을 택했다. 이원양의 경우 <역자 서문>에서 운문 번역과 관련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적당히 문장을 끊어서 시행만을 원문과 맞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오랫동안 번역을 망설여왔는데, 결국 일반 독자를 위해 “산문 번역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서 실러의 원문에 가장 근접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산문 번역을 택한 이유를 밝힌다. 두어 번 나오는 노래와 4막 3장에서 텔이 독백하는 장면만 예외적으로 운문으로 번역하였다. 이원양의 경우 번역의 등가성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형식과 내용 중 내용의 등가성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뒤에서 밝히겠지만 원문의 줄표를 그대로 살린 점, 해설에서 이 작품에 대한 독일어권의 공연 및 수용에 관해 소개한 점 등을 볼 때 무대 위 공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번역한 면모가 엿보였다. 번역을 위해서는 한저 출판사의 쉴러 전집과 레클람 판, 두 가지를 이용했다고 밝힌다.
이재영 역의 <빌헬름 텔>은 을유문화사의 <을유세계문학전집> 18로 나왔다. 2009년에 초판이 나왔고 2018년 초판 3쇄가 나왔으며, 이것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밝힌다. 우선 운문의 형태로 번역한 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읽으면서 운율이 느껴져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그리고 기존 번역의 오류를 다수 개선한 점, 요즘 독자를 위해 풀어쓰기 번역을 시도한 점이 이 번역본의 특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번역이 우수한 데에 반해 번역에 대한 성찰이나 전략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점이 특이했다. 이미 여러 번 번역된 작품인 만큼 “좀 더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문장을 만들어 내고 피할 수 있는 오류는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언급이 전부이다. 반면에 <자유를 위한 저항과 혁명, 그리고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제법 긴 작품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쉴러 전집의 민족본(Nationalausgabe)을 저본으로 사용했다고 밝힌다.
홍성광의 번역본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7번에 쉴러의 다른 희곡 작품 <간계와 사랑>과 함께 출판되었다. 초판은 2011년에 나왔고,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2019년 1판 9쇄이다. 8년 사이에 9쇄가 찍힌 것이니,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으로 판단된다. 홍성광도 운문의 형태로 번역했고 읽으면서 운율을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의 경우 한국어 감각이 좋고, 곳곳에서 친근한 문체랄까, 주인공 텔의 심리에 어울리는 어투를 사용함으로써 상황 전달이 잘 되는 장점이 느껴졌다. 이재영과 마찬가지로 홍성광도 <자유와 정의, 격정과 혁명의 작가 실러>라는 30쪽짜리 긴 작품해설로 독자의 작품 이해를 돕고 있다. 반면에 번역의 원칙이나 전략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의 경우 저본도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공통된 점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에서 저본을 밝히지 않는지 모르겠으나, 민음사의 그것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세계문학전집임을 고려할 때, 번역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작품의 주요 장면을 통해 각각의 번역본을 비교해 보자. 1막 3장에 텔과 슈타우파허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슈타우파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폭정에 같이 맞서자며 텔을 설득하려 한다.
TELL | Mein Haus entbehrt des Vaters. Lebet wohl. |
STAUFFACHER | Mir ist das Herz so voll, mit Euch zu reden. |
TELL | Das schwere Herz wird nicht durch Worte leicht. |
STAUFFACHER | Doch könnten Worte uns zu Taten führen. |
TELL | Die einzge Tat ist jetzt Geduld und Schweigen. |
STAUFFACHER | Soll man ertragen, was unleidlich ist? # 1 |
텔 | 집에서들 가장을 기다리고 있소. 잘 가시오! |
슈타우파허 |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일념이외다. |
텔 | 무거운 마음은 말을 통해 가벼워지지는 않아요. |
슈타우파허 | 그러나 말은 우리를 행동에로 인도해 줄 터인데. |
텔 | 지금은 행동이란 인내와 침묵뿐이오. |
슈타우파허 | 참을 수 없는 것을 견디어야 할까요? (안인희, 40) |
텔 | 내 집에는 아버지가 없잖아요(집에서 기다려요). 안녕히 계십시오. |
슈타우파허 | 내 가슴은...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픈 마음으로 꽉 차 있답니다. |
텔 | 말로써 우울한 기분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
슈타우파허 | 그렇지만 말이 우리들을 행동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텐데요. |
텔 | 지금 할 일은 단지 참고 침묵하는 것이지요. |
슈타우파허 |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만 한단 말이오? (한기상, 39) |
텔 | 집에서는 가장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
슈타우파허 |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 속에 가득하오이다. |
텔 | 무거운 마음은 말을 한다고 가벼워지지는 않는 법이죠. |
슈타우파허 | 하지만 말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요. |
텔 | 지금 유일한 행동이란 인내와 침묵입니다. |
슈타우파허 | 참을 수 없는 것도 인내를 해야 됩니까? (이원양, 172-173) |
텔 |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 이만. |
슈타우파허 |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소. |
텔 | 말을 한다고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
슈타우파허 | 그래도 말을 나누다 보면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오. |
텔 | 지금 해야 할 유일한 행동이란 인내와 침묵뿐입니다. |
슈타우파허 |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참기만 해야 한다는 거요? (이재영, 31) |
텔 | 집에서는 가장을 기다리고 있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슈타우파허 | 내 마음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텔 | 말을 한다고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
슈타우파허 | 하지만 말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지요. |
텔 |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란 참고 침묵하는 겁니다. |
슈타우파허 |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으라는 건가요? (홍성광, 38-39) |
이 대화의 번역에서 두 가지 점에만 주목하여 비평하려 한다. 하나는 동어 반복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문체이다. 텔과 슈타우파허는 상대가 사용한 단어/명사를 받아 재사용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또 다른 단어/명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단어들이 두 번씩 등장한다. Herz(마음), Wort(말), Tat(행동)가 그것이다. 이런 주고받기식 또는 언어 유희적 대화 방식으로 인해 장면의 재미가 더해진다. 안인희와 이원양, 이재영, 홍성광은 이 점을 인식하고 번역에 반영하였다. 그들의 경우 마음과 말, 행동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안인희의 경우 처음에는 마음을 ‘일념’이라는 단어로 대신하였는데, 국어사전에 의하면 일념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역자가 말한 고아한 문체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원양의 경우 어순도 원문의 그것을 그대로 따랐다. 앞사람이 사용한 마음, 말, 행동이란 단어가 먼저 나오고, 그것에 대한 뒷사람의 대응어가 뒤따른다. 원문과의 등가성에 신경을 많이 쓴 역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반면 한기상은 Herz를 한 번은 ‘기분’으로, Tat를 한 번은 ‘할 일’로 번역하였는데, 그로 인해 동어 반복의 묘미가 드러나지 않았다. 동어 반복 기법이라는 원문의 특징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 문체를 살펴보면, 이 장면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단어/명사 위주의 간결하고 함축적인 대화 전개가 특징을 이룬다. 안인희와 이원양은 원문의 간결성과 함축성을 최대한 유지하며 번역하였다. das schwere Herz를 두 사람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die einzge Tat를 ‘행동’(안인희는 einzig란 단어를 번역하지 않음)과 ‘유일한 행동’으로 번역하였다. 반면에 이재영과 홍성광은 das schwere Herz를 ‘마음’과 ‘무거운 마음’으로 번역한 점에서는 앞의 두 역자와 큰 차이가 없는데(이재영은 schwer를 번역하지 않음), die einzge Tat를 각각 ‘지금 해야 할 유일한 행동’과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풀어쓰기식 번역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문장의 운문적 성격은 감소되고 산문적 성격이 증가했는데, 요즘 독자에게 더욱 쉽게 다가가는 번역을 추구하려는 의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영의 두 번째 문장인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소.’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번역으로 이해된다. 최근의 번역들은 독자의 이해 편의성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 특징이라 생각된다.
이제 작품의 또 다른 주요 장면인 텔이 태수 게슬러를 살해하기 위해 숨어 기다리면서 독백하는 4막 3장의 한 단락을 살펴보자. 게슬러의 만행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텔은 자신의 활로 그 일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Komm du hervor, du Bringer bittrer Schmerzen,
Mein teures Kleinod jetzt, mein höchster Schatz ―
Ein Ziel will ich dir geben, das bis jetzt
Der frommen Bitte undurchdringlich war ―
Doch dir soll es nicht widerstehn ― Und du,
Vertraute Bogensehne, die so oft
Mir treu gedient hat in der Freude Spielen,
Verlaß mich nicht im fürchterlichen Ernst.
Nur jetzt noch halte fest, du treuer Strang,
Der mir so oft den herben Pfeil beflügelt ―
Entränn er jetzo kraftlos meinen Händen,
Ich habe keinen zweiten zu versenden. (1004-1005)
이리 나오너라, 너 쓰디쓴 고통을 가져오는 물건, / 이젠 내 소중한 보물, 가장 귀중한 그대여― / 네게 표적을 주리라, 지금까지 어떤 경건한 / 탄원歎願도 꿰뚫은 적이 없는 표적을― / 그러나 그것이 네게 역겨워서는 안 된다― 그리고 / 너, 믿음직한 활줄아, 그렇게도 자주 기쁨의 / 유희시에 내게 충성을 해준 너, / 가장 진지한 순간에 나를 버리지는 말아라. / 이제 더욱 굳세어라, 너 충성스런 활줄이여, / 그리도 자주 탄탄한 화살을 날려보내준 너― / 지금 화살이 힘없이 내 손에서 / 빠져나간다면 난 남은 화살이 없다. (안인희, 153-154)
나와라, 너 쓰라린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여, 나의 고귀한 보물, 지금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 ···지금까지는 경건한 간청으로 인해 관철되지 못했던 표적을 너에게 주겠다. ···그 표적은 너에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 즐거운 승부에서 그렇게 자주 내게 충성스러웠던 친숙한 활시위여, 냉엄하리만큼 진지한 상황에서 나를 버리지 말아라. 그렇게도 자주 나의 준엄한 화살에 날개를 붙여주던 너 충실한 활시위여, 지금만은 꼭 달라붙어 있어라. 지금 네가 힘없이 내 손에서 빠져 나온다면, 나는 두 번째 화살을 보내야만 한다. (한기상, 159-160)
이제 나오너라, 쓰디쓴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여. / 나의 고귀한 보석이며 나의 최고의 보물이여 ― / 너에게 목표를 주겠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 경건한 탄원으로는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니라 ― / 하지만 너에게는 저항해서는 안될 것이다 ― 그리고 너 / 친숙한 활시위야, 너는 그렇게도 자주 / 즐거움의 유희 속에서 성실하게 나에게 봉사하였는데 / 심각한 순간에 나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 너, 충직한 활 끈이여, 지금만 견뎌다오. / 너는 그리도 자주 강력한 화살을 날려주지 않았느냐 ― / 지금 화살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표적을 못 맞히면 / 나는 두 번째로 사용할 화살이 없노라. (이원양, 263-264)
쓰라린 고통을 불러오는 화살이여, 나와라. / 내 소중한 보배,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보물이여, / 네게 표적을 하나 주마. 지금까지는 / 아무리 간청해도 허락해 주지 않던 표적이다. / 하지만 네게는 허용해 주마. / 그리고 너, 흥겨운 경기에서 / 늘 내게 충성을 바쳐 온 익숙한 시위여, / 엄중한 순간에 나를 배신하지 말거라. / 매서운 화살에 그토록 자주 날개를 달아 준 / 충직한 줄이여, 이번만은 꼭 버텨 다오. / 지금 화살이 힘없이 내 손을 빠져나가면 / 다시 한번 쏠 기회는 없다. (이재영, 150)
어서 나오렴,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는 화살이여, / 자, 내 소중한 보석이자 최고의 보물이여······ / 너에게 하나의 과녁을 주겠다, / 지금까지 경건한 탄원으로는 뚫을 수 없는 것이었지······. / 하지만 그 표적은 너에게 저항하지 못할 거야······. / 그리고 너 친밀한 활시위여, 너는 그리도 자주 / 놀이하듯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충성을 바쳤지, /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저버리지 말아다오. / 그리도 자주 나의 준엄한 화살을 날려 보내 준 / 너 충실한 활시위여, 지금만은 좀 견뎌 다오, / 지금 힘없이 내 손에서 빠져나간다면 / 내겐 다시 쏠 화살이 없단다. (홍성광, 175)
우리는 곳곳에서 번역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전 번역의 어려움과 역자의 작품 이해의 편차를 잘 엿볼 수 있는 예라 생각된다. 먼저 첫째 행의 du Bringer bittrer Schmerzen에 대한 번역을 보면, ‘너 쓰디쓴 고통을 가져오는 물건’(안인희), ‘너 쓰라린 고통을 가져오는 것’(한기상), ‘쓰디쓴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이원양), ‘쓰라린 고통을 불러오는 화살’(이재영), ‘쓰라린 고통을 안겨 주는 화살’(홍성광)로 번역되었다. 이재영과 홍성광은 다른 역자들과 달리 원문에는 없는 화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전의 세 역자는 직역했지만 두 사람은 의역한 것인데, 이 단락의 끝까지 읽어보면 화살(Pfeil)이라는 말이 나오고, 텔이 나오라고 지시하는 대상이 바로 그 화살임이 드러난다. 그냥 물건, 것, 자라고 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여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화살이라고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함으로써 내용이 분명해지고 상황이 잘 전달되었다. 두 사람의 이런 의역은 독자의 이해 편의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이제 둘째 행의 Kleinod에 대한 번역을 보자. 안인희와 한기상은 ‘보물’로, 이원양과 홍성광은 ‘보석’으로, 이재영은 ‘보배’로 번역했다. Kleinod라는 단어가 전이적 의미에서 사용된다는 것과 지시하는 대상이 화살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보석이나 보물보다는 보배라는 번역어가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셋째에서 다섯째 행, 즉 Ein Ziel ~ widerstehn까지의 번역에서는 편차가 제법 크다. 텔은 화살에게 Ziel을 부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게슬러이다. 그러니 Ziel은 ‘목표’(이원양)나 ‘과녁’(홍성광)도 맞지만 ‘표적’(안인희, 한기상, 이재영)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 표적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경건한 청(der frommen Bitte)에도 불구하고 관통할 수 없었는데(undurchdringlich), 하지만 네게는(dir) 저항하지(widerstehn) 못할 거라고 텔은 자신의 화살이 표적을 꼭 맞히기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말하고 있다. 한기상, 이원양, 홍성광은 widerstehn을 저항하다로 번역했지만, 안인희는 역겹다로, 이재영은 허용하다로 잘못 표현했다. ‘지금까지는 경건한 간청으로 인해 관철되지 못했던 표적’이라는 한기상의 번역은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일곱째와 여덟째 행에는 der Freude Spielen과 im fürchterlichen Ernst라는 서로 대비되는 표현이 등장한다. 전자는 사냥하면서 살아온 텔의 종래의 활쏘기를, 후자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활을 쏘아야 하는 현 상황을 지칭한다. 특히 전자에 대한 번역이 제각각인데, ‘즐거운 승부에서’(한기상)나 ‘흥겨운 경기에서’(이재영)보다는 ‘기쁨의 유희시에’(안인희)와 ‘즐거움의 유희 속에서’(이원양), ‘놀이하듯 기쁜 마음으로’(홍성광)가 의미를 보다 잘 반영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마지막 행인 Ich habe keinen zweiten zu versenden.의 번역에서는 어투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안인희와 한기상, 이재영은 ‘-다’체를 사용했고, 이원양은 ‘-노라’체를, 홍성광은 ‘-단다’체를 사용했다. 텔이 자신의 화살과 활에게 du(너)라고 칭하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점을 생각할 때, 평이한 ‘-다’체 보다는 ‘-노라’나 ‘-단다’가 텔의 절박한 심정에 걸맞은 어투로 생각된다.
끝으로 문장 부호 처리와 관련하여 살펴보고 비교를 마치려 한다. 원문에는 줄표(―)가 네 번 나오고, 다섯째 줄의 dir는 이탤릭체로 강조되어 있다. 쉴러는 4막 3장의 텔의 독백 장면에서 줄표를 자주 사용하는데, 살인을 앞둔 복잡한 심리 상태로 인해 텔의 사고 진행이 종종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줄표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텔의 사고 전개 과정에 몰입할 것을 요청받는다. 또한, 이 작품이 희곡, 즉 연극 대본임을 상기한다면, 텔 역을 맡은 배우는 줄표가 있는 곳에서 잠시 대사를 멈출 것이다. 그리고 원문에서 강조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을 좀 더 힘차게 발화(發話)할 것이다. 따라서 번역자들이 이런 줄표와 강조 표시를 번역에 어떻게 반영했는지는 내용 번역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인희와 이원양은 줄표를 그대로 살렸지만, 이재영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반면에 한기상과 홍성광은 줄임표로 대신하였는데, 홍성광은 점이 6개(······)인 온전한 줄임표를, 한기상은 3개짜리 좀 특이한 줄임표를 사용하였다. 한기상은 줄임표를 새로 시작하는 말 앞에 붙여 놓았는데, 일반적인 쓰임새가 아니어서 낯설게 느껴졌다. 원문의 이탤릭체 강조의 경우 한기상, 이원양, 홍성광의 번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아 아쉬웠다. 반면에 안인희는 윗점으로 강조를 표시했는데, 눈에 썩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이재영은 고딕체로 글씨체를 달리함과 동시에 진하게 인쇄함으로써 강조가 잘 드러났다. 문장 부호 사용과 관련하여 출판사마다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으나, 역자들이 원문의 문장 부호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번역에 잘 반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3. 평가와 전망
이 작품의 높은 인지도를 생각할 때 원본처럼 희곡 형태의 완역본이 5종이라는 점은 다소 의아한 감이 든다. 대다수가 동화나 소설의 형태로 번안된 것에서 보듯이 희곡 작품이 산문 작품보다 인기가 적다는 것을 출판사들이 너무 고려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더욱이 운문으로 된 희곡의 번역은 이원양의 말처럼 “적당히 문장을 끊어서 시행만을 원문과 맞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번역의 어려움도 한몫했을 수도 있다. 이제 운문 작품의 번역에 관해 학계에서 논의가 일어나고 가능한 선에서 방향 제시가 도출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기반 위에서 <빌헬름 텔>을 비롯한 운문으로 된 희곡 작품들과 시들이 새롭게 번역되기를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은식(1907): 정치소설 서사건국지. 대한매일신보.
정철(1907): 정치쇼설 셔사건국지. 박문셔관.
안인희(1988): 빌헬름 텔. 청하.
한기상(1993): 빌헬름 텔. 범우사.
이원양(1998): 빌헬름 텔. 서울대학교출판부.
이재영(2009): 빌헬름 텔. 을유문화사.
홍성광(2011): 빌헬름 텔. 민음사.
바깥 링크
1. Projekt-Gutenberg 보기
2. Deutsche National Bibliothek 보기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기
# 1 Friedrich Schiller(1981): Wilhelm Tell. In: Friedrich Schiller Sämtliche Werke. Vol. 2, Dramen II.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931. 이하에서는 쪽수를 본문에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