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Die Blechtrommel)"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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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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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Die Blechtrommel, 1959)은 결코 번역하기 쉬운 작품이 아니다.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에 대한 폭넓은 선(先)지식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작가의 외설적이고도 반어적·풍자적인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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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이 때로는 지난(至難)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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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작품을 우리말로 완역한 역자가 초역자 박환덕(을유문화사, 1974; 범우사, 1985)을 필두로, 황현수(범한출판사, 1984), 최은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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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북, 1, 2권, 동서문화사, 1987), 박수현(일신서적, 1991), 김영석(청목사, 1993), 장희창(민음사, 1999) 등 총 6명이나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며, 이들의 끈기와 성취가 실로 찬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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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필자가 확보할 수 있었던 역본은 김영석 역본을 제외한 박환덕의 범우사판(1985), 황현수의 범한출판사 판(1988 재판), 최은희의동서문화사 판(1987), 박수현의 일신서적 판(1991), 장희창의 민음사 판(1999) 등 5종이었는데, 박환덕의 을유문화사 초판을 구할 수 없어 부득이 범우사 판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심히 아쉬웠으며, 위 6종역본 중, 박수현의 일신서적 판과 장희창의 민음사 판은 <양철북1>과 <양철북2>로, 즉 2권으로 출간되었다.5종 역본을 대강 훑어보고 우선 받게 된 인상은 박환덕의 초역본의 영향이 곳곳에서 관찰된다는 점이었으며, 뒤에 나온 번역본들이 초역본의수준을 크게 넘어서지는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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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제 번역 사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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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재목’, 혹은 ‘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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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자 박환덕은 서울대 인문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서 독문학계의 원로이며 일어에도 능통한 세대에 속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일어 번역본이 초역자로서의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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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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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그의 번역을 보면, “재목 전용부두”(범우사 25)(Holzhafen)<ref>Grass, Günter(1987): Die Blechtrommel. Roman. Vol. 2. Darmstadt/Neuwied:Luchterhand, 21. 이하 원문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ref>,“재목 적치장”(26)(Holzfelder)(22), ‘재목과 재목 사이의 틈’(35)(eineLücke zwischen den Hölzern)(33) 등과 같은 번역이 눈에 띄는데, 여기서 “재목(材木)”은 물론 ‘목재(木材)’일 것인데, 일본어 번역본의 ‘材木’이란 한자어가 우리말로 더 자연스럽다고 할 ‘목재’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남은 것은 그 한자 단어의 시각성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착되어 버린 결과가 아닐까 하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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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목’이란 말이 현재 우리말에서 아주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그는 앞으로 크게 될 재목이다.’라고 말할 때의 ‘재목’은 ‘재료로서의 나무’, 즉 ‘사람의 본 바탕’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대 우리말에서,책상은 ‘목재’, 또는 ‘나무’로 만들지, ‘재목’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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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Holzhafen”을 ‘재목 적치장’으로 번역하지 않고 “목재 적치장’(36)으로 번역한 곳도 있고, 또한, 31쪽에서는 “목재”라 했다가 금방“재목”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상은 박환덕의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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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1974)과 범우사 판(1985)을 대조, 비교해 봐야 그 변화 과정이 자세하게 추적될 수 있겠는데, 을유문화사 판을 구하지 못한 필자로서는 이점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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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번역에서는 “저목장(貯木場)”(동서문화사 24)으로 바뀌었으나,금방 다시 “재목 적치장(積置場)”(24)과 “재목과 재목 사이의 틈”(34)으로번역됨으로써 ‘재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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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수 번역에서도 ‘Holzhafen’과 ‘Holzfelder’가 다 같이 “재목저장소”(범한출판사 22)로 번역되어 있으며, “재목과 재목 사이의 빈틈”(31)을 봐도, ‘재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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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의 번역을 보아도, “재목 저장소”(일신서적 23), “재목 적치장”(24), “재목과 재목 사이의 틈바구니”(35)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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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나온 장희창의 번을 보면, “목재 전용 부두”(민음사 29)라는 올바른 번역을 하고 있다가도, “재목 적치장”(30), “재목과 재목 사이에서 틈”(44)에서는 ‘재목’을 ‘목재’로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일역과 그것을 참고한 박환덕 초역의 흔적이 여기서도 아직 조금은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중반에 대학생이 된 세대인 역자 장희창이 독일어 ‘Holz’에서 ‘목재’가 아닌 ‘재목’이란 단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희창의 번역을 보다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재목’이 거의 다 ‘목재’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할수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예: 42, 43, 45, 47,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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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투리 말투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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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짧은 예시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짐작되겠지만, 박환덕의 초역이다음에 나온 번역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으며, 실제로 박환덕의초역 다음에 나온 번역들이 다른 면에서도 초역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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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5종의 비슷한 번역을 일일이 비교하는 괜히 번거로운 작업을 피하고, 초역인 박환덕 역과 최근 역인 장희창 역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보다 집중적으로 해 나가기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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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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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양철북>(원서 512쪽)에서 오스카의 할머니 아나 콜랴이체크의사투리가 섞인 말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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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바이 인(人)은 이렇게 당했던 거야. 오스카르야, 언제나 머리를 두들겨 맞기만 하고. 그래도 너희들은 좀더 살기 좋은 땅으로 가 버리면 좋겠는데. 할머니는 역시 남기로 하겠다. 카슈바이 인은 이주(移住)라는 것을 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나 본고장에 살고 있으면서 다른 무리들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서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어쨌든 우리들은 진짜 폴란드 인도 아니고 진짜 독일인도 아니야. 카슈바이 인은 독일인이 될 자격도 없고 폴란드 인이 될 자격도 없는 거야. 그 무리들은 어쨌든 엄밀하게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이니까 말이야!”(박환덕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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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야, 카슈바이인은 늘 이렇게 당해 왔단다. 언제나 머리를 두들겨 맞았지. 너희들만은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는데. 할머니는 남겠지만 말이야. 카슈바이인에게 이주라는 건 없는 거야. 언제까지나 고향에 머물러 살면서 다른 자들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 머리를 내밀어야 하지. 여하튼 우리는 진짜 폴란드인도 아니고 진짜 독일인도 아니야. 카슈바이인은 독일인도 폴란드인도 되지 못하는 거야. 이들은 언제든 까다롭게 생각한단 말이야!”(장희창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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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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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그라스, 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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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0일 (화) 03:23 판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2015)의 소설


작품소개

1959년에 발표된 귄터 그라스의 장편 소설로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오스카는 정신병동에 있는 30세의 남자로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어머니 아그네스를 잉태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단치히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회상이 1부의 주를 이룬다. 오스카는 세 살 때 계단에서 구른 후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난쟁이로 살아간다. 작은 키와 어린아이라는 점 때문에 오스카는 세상을 아래로부터 제약 없이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는 시대적 부패상황에 대해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 유리창을 깨거나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양철북을 두들겨 경고한다. 어머니의 부정과 어머니를 둘러싼 남자들(마체라트, 얀 브론스키 등)의 성적 문란함과 도덕적 퇴폐 상황은 나치 전당대회의 춤에서처럼 때로는 익살맞게, 혹은 말머리에 우글거리는 뱀장어 떼 등을 통해 즉물적으로 거침없이 비판되고 있다. 이러한 소시민 사회의 타락과 부패는 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과 주변 국가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으로 확대해석 되어 나치 발흥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이 소설은 당대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돋보이는 시대소설이며 또한 독일 악동소설의 전통도 잇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전후문학으로서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79년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1974년에 박환덕이 처음으로 번역하였다(을유문화사).


초판 정보

Grass, Günter(1959): Die Blechtrommel. Neuwied: Hermann Luchterhand Verla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양철북 양철북 世界文學全集 86 귄터 그라스 박환덕 1974 乙酉文化社 13-563 완역 완역 1979년, 1980년에 재판 출간
2 양철북 양철북 世界文學全集 59 귄터 그라스 박환덕 1979 乙酉文化社 13-563 완역 완역 1974년 초판발행. 1979년 신장판(新裝版) 초판발행.
3 양철북 양철북 현대의 세계문학, Contemporary world literature 14 귄터 그라스 황현수 1984 汎韓出版社 9-612 완역 완역
4 양철북 양철북 汎友批評版世界文學選 14 귄터 그라스 박환덕 1985 汎友社 12-647 완역 완역 초판. 이후 88년, 90년 등 쇄를 거듭함.
5 양철북 양철북 Contemporary world literature, 현대의 세계문학 14 귄터 그라스 황현수 1988 汎韓出版社 9-612 완역 완역 1988년 재판 발행
6 양철북 Ⅰ 양철북 1 世界名作 100選 72 G. 그라스 박수현 1991 一信書籍出版社 8-368 편역 완역
7 양철북 Ⅱ 양철북 2 世界名作 100選 73 G. 그라스 박수현 1991 一信書籍出版社 5-372 편역 완역
8 양철북 양철북 靑木精選世界文學 72 귄터 그라스 김영석 1993 청목사 7-555 완역 완역
9 양철북 양철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Jan-42 귄터 그라스 박환덕 1999 범우사 13-602 완역 완역 1985년 초판 발행, 1999년 2판 발행.
10 양철북 양철북 1 세계문학전집 32 귄터 그라스 장희창 1999 민음사 9-479 편역 완역
11 양철북 양철북 2 세계문학전집 33 귄터 그라스 장희창 1999 민음사 9-491 편역 완역
12 양철북 양철북 월드북, World book 113 귄터 그라스 최은희 2010 동서문화사 11-629 완역 완역 1987년 1판, 2010년 2판, 2016년 3판 발행이라 표시되어 있으나 1판 정보 확인 안됨
13 양철북 양철북 세계문학전집 49 귄터 그라스 최은희 2016 동서문화사 11-629 완역 완역 1987년 1판, 2010년 2판, 2016년 3판 발행이라 표시되어 있으나 1판 정보 확인 안됨


1. 번역 현황 및 개관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Die Blechtrommel, 1959)은 결코 번역하기 쉬운 작품이 아니다.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에 대한 폭넓은 선(先)지식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작가의 외설적이고도 반어적·풍자적인 문체 를 우리말로 옮긴다는 것이 때로는 지난(至難)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우리말로 완역한 역자가 초역자 박환덕(을유문화사, 1974; 범우사, 1985)을 필두로, 황현수(범한출판사, 1984), 최은희(양 철북, 1, 2권, 동서문화사, 1987), 박수현(일신서적, 1991), 김영석(청목사, 1993), 장희창(민음사, 1999) 등 총 6명이나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며, 이들의 끈기와 성취가 실로 찬탄할 만하다.

그 사이에 필자가 확보할 수 있었던 역본은 김영석 역본을 제외한 박환덕의 범우사판(1985), 황현수의 범한출판사 판(1988 재판), 최은희의동서문화사 판(1987), 박수현의 일신서적 판(1991), 장희창의 민음사 판(1999) 등 5종이었는데, 박환덕의 을유문화사 초판을 구할 수 없어 부득이 범우사 판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심히 아쉬웠으며, 위 6종역본 중, 박수현의 일신서적 판과 장희창의 민음사 판은 <양철북1>과 <양철북2>로, 즉 2권으로 출간되었다.5종 역본을 대강 훑어보고 우선 받게 된 인상은 박환덕의 초역본의 영향이 곳곳에서 관찰된다는 점이었으며, 뒤에 나온 번역본들이 초역본의수준을 크게 넘어서지는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실제 번역 사례 고찰

1)‘재목’, 혹은 ‘목재’

초역자 박환덕은 서울대 인문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서 독문학계의 원로이며 일어에도 능통한 세대에 속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일어 번역본이 초역자로서의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그의 번역을 보면, “재목 전용부두”(범우사 25)(Holzhafen)[1],“재목 적치장”(26)(Holzfelder)(22), ‘재목과 재목 사이의 틈’(35)(eineLücke zwischen den Hölzern)(33) 등과 같은 번역이 눈에 띄는데, 여기서 “재목(材木)”은 물론 ‘목재(木材)’일 것인데, 일본어 번역본의 ‘材木’이란 한자어가 우리말로 더 자연스럽다고 할 ‘목재’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남은 것은 그 한자 단어의 시각성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착되어 버린 결과가 아닐까 하고 추정된다.

물론, ‘재목’이란 말이 현재 우리말에서 아주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그는 앞으로 크게 될 재목이다.’라고 말할 때의 ‘재목’은 ‘재료로서의 나무’, 즉 ‘사람의 본 바탕’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대 우리말에서,책상은 ‘목재’, 또는 ‘나무’로 만들지, ‘재목’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하긴, “Holzhafen”을 ‘재목 적치장’으로 번역하지 않고 “목재 적치장’(36)으로 번역한 곳도 있고, 또한, 31쪽에서는 “목재”라 했다가 금방“재목”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상은 박환덕의 을유문화사 판(1974)과 범우사 판(1985)을 대조, 비교해 봐야 그 변화 과정이 자세하게 추적될 수 있겠는데, 을유문화사 판을 구하지 못한 필자로서는 이점이 못내 아쉬웠다.

최은희 번역에서는 “저목장(貯木場)”(동서문화사 24)으로 바뀌었으나,금방 다시 “재목 적치장(積置場)”(24)과 “재목과 재목 사이의 틈”(34)으로번역됨으로써 ‘재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황현수 번역에서도 ‘Holzhafen’과 ‘Holzfelder’가 다 같이 “재목저장소”(범한출판사 22)로 번역되어 있으며, “재목과 재목 사이의 빈틈”(31)을 봐도, ‘재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박수현의 번역을 보아도, “재목 저장소”(일신서적 23), “재목 적치장”(24), “재목과 재목 사이의 틈바구니”(35)로 되어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장희창의 번을 보면, “목재 전용 부두”(민음사 29)라는 올바른 번역을 하고 있다가도, “재목 적치장”(30), “재목과 재목 사이에서 틈”(44)에서는 ‘재목’을 ‘목재’로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일역과 그것을 참고한 박환덕 초역의 흔적이 여기서도 아직 조금은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중반에 대학생이 된 세대인 역자 장희창이 독일어 ‘Holz’에서 ‘목재’가 아닌 ‘재목’이란 단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희창의 번역을 보다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재목’이 거의 다 ‘목재’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할수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예: 42, 43, 45, 47, 51).

2) 사투리 말투의 번역

위의 짧은 예시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짐작되겠지만, 박환덕의 초역이다음에 나온 번역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으며, 실제로 박환덕의초역 다음에 나온 번역들이 다른 면에서도 초역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 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5종의 비슷한 번역을 일일이 비교하는 괜히 번거로운 작업을 피하고, 초역인 박환덕 역과 최근 역인 장희창 역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보다 집중적으로 해 나가기로 하 겠다.

우선, <양철북>(원서 512쪽)에서 오스카의 할머니 아나 콜랴이체크의사투리가 섞인 말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카슈바이 인(人)은 이렇게 당했던 거야. 오스카르야, 언제나 머리를 두들겨 맞기만 하고. 그래도 너희들은 좀더 살기 좋은 땅으로 가 버리면 좋겠는데. 할머니는 역시 남기로 하겠다. 카슈바이 인은 이주(移住)라는 것을 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나 본고장에 살고 있으면서 다른 무리들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서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어쨌든 우리들은 진짜 폴란드 인도 아니고 진짜 독일인도 아니야. 카슈바이 인은 독일인이 될 자격도 없고 폴란드 인이 될 자격도 없는 거야. 그 무리들은 어쨌든 엄밀하게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이니까 말이야!”(박환덕 420)

“오스카야, 카슈바이인은 늘 이렇게 당해 왔단다. 언제나 머리를 두들겨 맞았지. 너희들만은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는데. 할머니는 남겠지만 말이야. 카슈바이인에게 이주라는 건 없는 거야. 언제까지나 고향에 머물러 살면서 다른 자들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 머리를 내밀어야 하지. 여하튼 우리는 진짜 폴란드인도 아니고 진짜 독일인도 아니야. 카슈바이인은 독일인도 폴란드인도 되지 못하는 거야. 이들은 언제든 까다롭게 생각한단 말이야!”(장희창 130)



바깥 링크

  • 각주
  1. Grass, Günter(1987): Die Blechtrommel. Roman. Vol. 2. Darmstadt/Neuwied:Luchterhand, 21. 이하 원문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