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55번째 줄: 55번째 줄:
 
|}
 
|}
  
{{A04}}<!--번역비평-->
+
{{A04+}}<!--번역비평-->
 +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휘문출판사에서 1968년 발간한 괴테문학전집 6권에 박찬기 번역으로 수록된 이후 1983년 간행된 범조사의 총서 <大思想家生涯와 思想> 7권에 박환덕의 번역으로 <괴테: 나의 생애 - 시와 진실 (下) / 이탈리아 紀行>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었으나, 1998년 박영구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이전에 출간된 것들은 모두 편역이었다. 1977년 <現代女性敎養名著百選> 시리즈(범조사) 제9권으로 박열의 <이탈리아 紀行>, 1986년 하나출판사의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라는 제목의 책에 다른 작가들의 글과 함께 수록된 이충진 번역의 <이태리 여행기>도 편역이다. 1992년 현대소설사가 <괴테전집> 21권으로 펴낸 정서웅 번역의 <로마 체류기>는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두 번째 로마 체류”를 부분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박영구의 완역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나온 후 2000년대에 들어서서 4종의 완역본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박찬기/이봉무/주경순 공역의 <이탈리아 기행 I, II>(민음사 2004), 홍성광 옮김 <이탈리아 기행 I, II>(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곽복록 옮김 <이탈리아 기행>(동서문화사 2016), 안인희 옮김 <이탈리아 여행>(지식향연 2017). 여기서는 이상 5종의 완역본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
 
 +
 
 +
'''1) 저작권 표시'''
 +
 
 +
박영구, 안인희가 <일러두기>에서 번역작업의 저본으로 삼은 원본의 서지사항을 밝힌 반면, 박찬기와 홍성광, 곽복록은 이것을 밝히지 않았다. 물론 <이탈리아 기행>의 생성사와 출판 경위, 그리고 괴테 당시 독자들의 반응에 관해 <작품 해설>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홍성광, 곽복록은 독일에서 출판된 4종의 중요한 괴테 전집 가운데 어떤 것을 저본으로 삼았는지를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
 
 +
박영구는 괴테 전집 함부르크 판을 저본으로 하고, 뮌헨 판을 참고로 한 반면, 안인희는 프랑크푸르트 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에리히 트룬츠의 상세한 해설이 첨부된 함부르크 판은 오랫동안 괴테 연구자들의 정전(正典)으로 인정받아 왔고, 뮌헨 판은 괴테의 작품을 생애 시기에 따라 배열한 것이고, 가장 최근에 완성된 프랑크푸르트 판은 40명의 괴테 연구학자들이 해설을 썼다는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괴테 생전에 “저자의 최후감수를 거친” 바이마르 판을 저본으로 삼거나 참고했다는 언급이 없다. 괴테-텍스트의 원본 확정을 위한 비평적 작업이 독일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사정이 번역작업의 조건형성에 지대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저본의 서지 사항을 밝히는 것은 ‘번역 윤리’의 기초가 된다.     
 +
 
 +
또한 박영구와 안인희는 공통적으로 펭귄출판사의 영역본을 참고했음을 밝히고 있는데, 역자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영구가 참조한 영역본은 오든과 엘리자베트 마이어가 공역한 것이고, 안인희가 참조한 영역본은 콜린스가 번역한 것이다. 아무튼 영역본은 독일어 원문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 범위를 다양한 언어적 차원에서 가늠하는 데에 필요한 바람직한 참조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말과 일본어의 유사성에서 오는 중역(重譯)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세대가 일본어 역의 참조항을 상실하게 된 것은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
 
 +
 
 +
'''2) 제목'''
 +
 
 +
원서 제목인 “Italienische Reise”를 안인희는 <이탈리아 여행>으로 옮겼고, 박찬기, 홍성광, 곽복록은 <이탈리아 기행>으로 옮겼는데, 박영구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으로 작가의 이름을 번역서의 제목에 포함시켰다. ‘여행’과 ‘기행’ 두 낱말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여행(旅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기행(紀行).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 괴테의 텍스트는 이탈리아 여행 자체보다 그 여행 중의 여러 체험을 기록한 기행문이므로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이 더 적합하다.
 +
 +
 +
'''3) 분권'''
 +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이탈리아의 각 지방을 돌아다니고, 특히 로마에 체류하며 겪은 체험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글들을 3부분으로 나누어 엮은 장문의 여행기이므로, 단행본으로 내기에는 분량이 좀 벅차다. 따라서 전체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편집한 것은 독자의 독서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찬기, I권 447쪽, II권 436쪽 / 홍성광 I권 464쪽, II권 292쪽). 한편 박영구(702쪽), 곽복록(703쪽)과 안인희(696쪽)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피가 큰 단행본 쪽을 선택하였다.
 +
 
 +
두 권으로 나눈 경우, 박찬기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 기행으로 이어지는 제2부의 시칠리아 부분을 나누어 1권과 2권에 따로 수록했으나, 홍성광은 <제1부 카를스바트에서 로마까지>,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1권에 묶고, 괴테가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된 <제3부 두 번째 로마체류기>만 따로 2권에 작품 해설과 함께 수록하였다. 후자의 경우 1, 2권의 부피의 차이(464쪽/292쪽)가 현저한 면은 있으나, 각 권의 내용상의 통일성을 유지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 통일성은 특히 주로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 1, 2부의 평서문과 구체적인 수신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위주의 3부의 어투(존댓말)에 기인하는 것인데,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
 
 +
 
 +
'''4) 음차(音借, Transkription)'''
 +
 +
인명과 지명 등 고유명사에 대해서는 안인희가 본문에 원어를 병기했고, 곽복록은 각주에 원문을 밝혔으나, 본문에는 원어의 음차만을 표기했다. 박영구와 박찬기, 그리고 홍성광은 모든 고유명사의 음차만을 사용했는데, 괴테가 독일 독자들을 위해 독일식으로 표기한 이탈리아 지명과 인명을 모두 이탈리아어로 환원시켜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음차한 점이 특기할만하다. 그러나 괴테가 원문에서 이탈리아어를 독일식으로 음차하는 경우, 이를 처리하는 방식이 역자마다 다르다. 예컨대 화가 티슈바인이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삐 풀린 백마가 날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외치는 장면의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
 
 +
Schweif und Mähnen flatterten in die Luft auf, und seine Gestalt in freier Bewegung war so sch;n, daß alles ausrief: “O che bellesse! che bellesse!”
 +
 
 +
박영구: 꼬리와 갈기가 허공에 높이 휘날렸습니다. 자유로이 날뛰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모두들 “오, 케 벨레체! 케 벨리체!”(야, 멋있다! 멋있어, 라는 뜻: 역주)하고 외쳐댔답니다.
 +
박찬기: 꼬리와 갈기가 허공 중에 높이 나풀거렸습니다. 제 마음대로 뛰는 말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모든 사람들이 “와, 저 근사한 놈! 근사한 놈!”하고 외쳐댔습니다.
 +
홍성광: 꼬리와 갈기가 하늘 높이 훨훨 휘날렸습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말의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다들 “오 케 벨레체! 케 벨레체!”하고 소리쳤습니다.(각주: “야, 멋있다, 멋있어!”라는 뜻)
 +
곽복록: 꼬리와 갈기가 하늘 높이 훨훨 휘날리며 거침없이 내달리는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다들 “오, 케 벨레체! 케 벨레체!(멋있다, 멋있어)“ 소리쳤답니다.
 +
안인희: 꼬리와 갈기를 공중에 휘날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두들 소리쳤지요. “O che bellezze! che bellezze! [정말 멋져! 정말 멋져!]”
 +
 
 +
여기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의 구별을 없애버리거나(박찬기), 이탈리아어를 음차하고 그 뜻을 각주나 본문 괄호 안에 설명하거나(홍성광, 곽복록), 이탈리아어를 원문에 그대로 적고 괄호 안에 한글 번역어를 적는 등 각인각색의 해결 방법을 보여준다.
 +
 
 +
 
 +
'''5) 전문용어의 번역'''
 +
   
 +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거장들의 회화와 건축물, 그리고 여러 교단과 관련된 사항뿐만 아니라, 지형과 날씨에 관해서도 지질학적이나 기상학적으로 매우 전문적인 관찰을 하며 전문용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 선택도 중요하다. 예컨대 독일 레겐스부르크 근방의 지질과 관련된 eine Art Totliegendes 라는 암석의 명칭은 “로트리겐트 사석”(박영구), “죽어있는 무생물체”(박찬기), “토틀리겐데스 석회암”(곽복록), “신 적색사암”(홍성광), “역암”(안인희)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분명한 오역과 음차역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똑같은 대상을 표시하는 전문용어의 통일이 필요하다.
 +
 
 +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특한 문화적 내용을 반영하는 일반용어도 번역자마다 그 해석과 목표어 사용이 각각 다른 예도 있다. 예컨대 Podestà는 “시장”(홍성광, 곽복록), “영주”(박영구, 박찬기), “마을 행정관”(안인희)으로 각각 다르게 옮기거나, Messe를 “시장”(박찬기), “큰 장”(홍성광, 곽복록), “연시”(안인희)로 옮겼고, Jahrmarkt를 “시장에서 무언가”(박찬기), “대목장의 물건”(홍성광), “거기서 (...) 어떤 물건”(곽복록), “연시물건”(안인희)으로 옮긴 것은 Jahrmarktgeschenk와 동어로 사용되는 원문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자가 각각 선택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원문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출발어와 목표어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특성의 차이를 번역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근본문제를 던지고 있다.
 +
 
 +
 
 +
'''6) 도판'''
 +
 
 +
박찬기, 곽복록, 안인희는 괴테의 여정이 표시된 이탈리아 지도뿐만 아니라 괴테가 언급한 내용과 관련된 수많은 사진 자료를 수록했는데, 홍성광은 책 표지에 곽복록, 안인희와 같이 티슈바인의 인물화 <캄파냐에서의 괴테> 일부분을 사용한 것 외에는 일체의 사진이나 도표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를 함께 여행한 친구 화가가 당시 장년의 나이에 도달한 괴테의 모습을 이탈리아 캄파냐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린 것으로 그의 여행기 표지화로 안성맞춤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박찬기는 <베네치아의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과 대운하>(I권), <테베르강과 성 베드로 성당>(II권)을 보여주는 파스텔풍의 사진 두 컷을 각 권의 표지화로 사용했다. 박영구, 곽복록과 안인희는 괴테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본문에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구체적으로 돕는 반면, 박찬기의 역서에서는 괴테의 수채화는 볼 수 없다. 앞부분에 이탈리아의 명소들 사진을 여러 장 따로 게재하고, 괴테가 그곳을 방문한 시기를 설명에 언급함으로써 본문 내용과의 연관성을 살렸으나, 번역텍스트의 관련 쪽수를 표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색상이 명료한 사진들은 현대의 이탈리아 풍경을 담은 것으로 괴테가 느낀 18세기의 인상을 연상하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박영구는 괴테 자신이 그린 수채화 <보르게세 별장에서 바라본 아폴리나레 농지>를 표지화로 사용하는 한편, 비록 흑백으로만 나타내기는 했지만, 책 속의 “그림과 사진은 함부르크 판본과 뮌헨 판본에 실린 것 가운데 선별하여 수록”하였다고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다.
 +
 
 +
이러한 시각적 자료들은 물론 독자의 텍스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문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자연사와 한국 독자에게 낯선 유럽의 문화사를 포함하는 다각적인 요소를 지닌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유려한 한국어 텍스트로 재가공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번역서마다 보여주고 있다. 그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에 비해, 그리고 괴테가 구사하는 폭넓고도 추상적 개념들의 정확한 이해의 문제에 비추어 여기서의 개별 비평은 아주 원론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먼저 고백한다.
 +
 
 +
 
 +
'''2. 개별 번역 비평'''
 +
 
 +
1) '''[[#박영구(1998)|박영구 역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1998)]]<span id="박영구(1998)R" />'''
 +
 
 +
최초의 완역본을 낸 박영구는 함부르크 판을 저본으로 사용하고, 뮌헨 판과 2종의 영역본을 참조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선택 수록한 도판의 출처까지도 일러두기에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번역의 역사적 기본조건을 독자들이 가늠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한국어가 유려하며, 어휘 선택과 문장 구성이 원문 텍스트 내용의 이해를 충실하게 전달하기에 적절하고, 각각 다른 상황의 합리적 통일성 유지에 성공하고 있다. 단독 어휘만으로는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간략한 설명을 문장구조 안에 엮어 넣는 등 (예: Antiphone →“번갈아 부르는 응답 송가”: 교창(交唱)이라는 사전 번역도 있음), 전체적으로 신뢰감을 주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카푸친 회”에는 “프란체스코회의 한 분파”라는 역주를 달아 놓았으면서도 그것이 이 수도회의 상징인 카푸츠라는 갈색 두건에서 온 말이라는 설명을 생략한 점이 아쉽다(119쪽). 괴테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사용하는 인칭대명사(“저, 그대들, 당신, 그녀”)가 적합한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고, 원문 내용을 오해한 부분도 가끔 눈에 띄는데, 수정이 요구된다. <1786년 9월 17일 베로나>의 내용에는 이탈리아 가옥의 불결한 위생 상태와 그 원인이 공공건물을 함부로 대하는 평민들의 태도에 있음과 그에 대처하는 올바른 대처 방법으로서 대중의 접근을 제한하면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
 
 +
이런 것을 감수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어엿한 신사 노릇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기 집의 일부가 공공소유라도 되는 듯이 굴어서는 안 된다. 그가 문을 닫으면 그것도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공공건물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전혀 빼앗기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외국인들이 불평을 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78)
 +
 
 +
우선 여기서 “어엿한 신사”와 “사람들”은 원문에 각각 großer Herr, das Volk에 해당하는데, 원문에 의도된 계층 차이가 번역문에서는 뚜렷하게 반영되지 못한다. “할 수 없다”, “~듯이 굴어서는 안 된다”는 “~할 필요가 없다”로 옮겨야 문맥에 맞는다. 또 필리코 네리 성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친서에 추기경들의 속성을 가리키는 “geistlich gesinnt”를 “정신적으로 교화된”이라고 번역한 것은 “종교적”이라는 뜻의 geistlich를 geistig(정신적)와 혼동한 결과이다. 고대 이탈리아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버질로 옮긴 것은 영어번역을 음차한 것이다. 이같은 미세한 결함들은 원문 이해의 미진함이나 외국어 표기법의 일탈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재검토가 된다면 가장 우수한 번역이 될 것이다.
 +
 
 +
 
 +
2) '''[[#박찬기(2004)|박찬기 역의 <이탈리아 기행>(2004)]]<span id="박찬기(2004)R" />'''
 +
 
 +
이 번역본은 1968년에 박찬기에 의해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을 후에 이봉무, 주경순이 확대하여 완역본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봉무가 집필한 <작품 해설>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3인의 공동 번역으로 볼 수 있는 이 완역본도 다른 번역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오역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문체가 고르지 못한 점이 최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바이마르에 남아있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종결어미를 반말체로 쓰고 있는데, 이는 존칭 어미를 쓰는 다른 번역본이 더 적절하게 읽힌다. 헤르더를 “귀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손위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당신”(박영구, 안인희), “그대”(곽복록, 홍성광)보다 더 한국적 관행을 따른 것이라고 보겠으나, 반말체와 어울리지도 않고, 그 어휘 자체가 이질감을 준다. 로마 체류 말기에 바이마르의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에 관한 괴테 자신의 서술을 위한 어휘 선택은 이 번역작업의 난맥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기쁨에 대한 말은 적었고, 그와 반대로 떠나야 하는 슬픔은 상당히 공공연했다”.(II권, 418) 이 부분 박영구의 번역을 보면 그 사정이 분명해진다. “(...)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은 그저 적당히 토로하고 있는 반면, 작별의 고통은 감추려 하지 않았다.”(677) 필리포 네리 성자의 청원서에 대한 교황의 친서 번역은 시작 부분부터 그 관계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글의 첫 부분에 다소 자만심이 깃들어 있다. 추기경들이 당신을 자주 방문한다는 말은 이분들이 종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듯하다.”(II, 316/317) 여기서 “Der Papst sagt, daß ...”로 시작되는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박영구는 “교황인 본인은”으로, 곽복록은 “내가 보기에는”으로 옮기고 있으므로, 여기서 “교황”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황과 일반 신부 사이에 서열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해도 교황의 친서를 반말체로 옮긴다는 것은 한국 독자의 정서에 맞지 않을 듯하다. 그밖에도 예수회 신부가 강론하는 성당을 “장로회 교회”(I, 59)로 번역한 것은 원문 내용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은 문체의 난맥상은 부분적으로 원문의 불충분한 이해에도 기인하겠으나, 무엇보다 공역자 3인의 언어적 차원을 일치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고 하겠다. 물론 자본의 저작권 표시가 빠진 것도 이 번역본의 결함이다.
 +
 
 +
 
 +
3) '''[[#홍성광(2008)|홍성광 역의 <이탈리아 기행>(2008)]]<span id="홍성광(2008)R" />'''
 +
 
 +
이 번역은 독일어 원문 텍스트를 아주 충실하게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사실들의 상호관계 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의 상황묘사가 정확하고, 선택 어휘가 적절하여 균형감 있는 목표어 문장으로 그 내용이 명료하게 전달된다. 이 번역의 정확성은 다른 번역들과 전혀 반대되는 해석을 보이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
Diese Szene kam mir so lächerlich vor, daß mein guter Mut sich vermehrte und ich Ihnen nichts, am wenigsten den Efeu schenkte, der Fels und Gemäuer auf das reichste zu verzieren schon Jahrhunderte Zeit gehabt hatte.
 +
이러한 장면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나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이나 바위와 폐허를 장식해 온 담쟁이덩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I, 40)
 +
 
 +
이 구절을 곽복록은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웠던지 나는 더욱 유쾌해졌다. 그래서 바위와 담벼락을 수백 년 동안이나 무성하게 장식해 온 담쟁이덩굴에 대해서까지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다.”(49)로 옮겼고, 다른 번역자들도 같은 뜻으로 번역했다. 이 장면은 괴테가 이방인으로서 이탈리아의 말체시네 고성을 스케치하는 것을 스파이 행동으로 의심쩍게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데, 원문 “nichts, am wenigsten (...) schenkte”에 분명하게 표현된 부정의 의미, 즉 자기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현지인들에게 “선물”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괴테의 의지를 정확하게 해석한 번역은 홍성광뿐이다.
 +
 
 +
한편 “9월 11일 저녁, 트렌토”(I, 34)는 원문 “9월 10일”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사소하지만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저본의 저작권 표시를 하지 않아 아쉽다.
 +
 
 +
 
 +
4) '''[[#곽복록(2016)|곽복록 역의 <이탈리아 기행>(2016)]]<span id="곽복록(2016)R" />'''
 +
 
 +
괴테 자신의 수채화를 비롯해 수많은 도판과 상세한 주석을 수록하고 있는 이 번역본은 번역문체가 매우 유려하여 복잡한 개념이 포함된 원문번역에서도 번역투에서 오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유려함 속에 간혹 원문 해석상의 오류가 감추어져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번역본의 특징은 본문 번역의 장점들보다 <이탈리아 기행>에 대한 상세한 해설에 있다. 연보를 포함하여 704~7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해설은 괴테의 전 생애를 <이탈리아 기행>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부분까지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 기행>을 괴테의 생애 및 창작 세계와 관련지어 해설한 다른 번역자들의 경우보다 그 정도가 지나친 점이 있다. 그중 <이탈리아 기행>의 문학적 특성이나, 그 출판물에 대한 당시 독자들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정보는 흥미롭다.
 +
 
 +
이렇게 해설 내용이 방대함에도 정작 저본의 저작권에 대한 정보나 참고문헌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 그리고 해설 첫 부분에 제사(題辭)처럼 쓴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이탈리아 기행>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럽다. “자신이 본 것들 가운데 무엇이 더 낫고 좋은지를 뚜렷하게 깨달을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면 그것은 어느 새 손안에서 슬며시 빠져나가 버린다. 흔히 사람들은 올바른 것을 잡지 못하고, 그저 익숙한 것에 사로잡히고 만다.”(704)     
 +
 
 +
 
 +
5) '''[[#안인희(2017)|안인희 역의 <이탈리아 여행>(2017)]]<span id="안인희(2017)R" />'''
 +
 
 +
<일러두기>에 저작권 표시를 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출판사 지식향연 기획위원 명의의 발간 취지를 내세운 안인희는 첫 부분, 칼스바트에서 레겐스부르크까지의 거리를 괴테가 24.5마일로 기록한 것에 대해 실제 거리가 178.8 킬로미터라는 점, 괴테 당시에는 1마일의 거리 기준이 제각각이었다는 사실을 각주에서 설명하면서, 영어판 번역본을 따라 104마일로 옮겼음을 밝힌다. 이 부분 박찬기는 “24마일 반”으로 옮기고 괄호 안에 “(독일 마일)”이라고 표시했으며, 곽복록은 “24.5마일” 다음에 괄호 안에 1 mile은 약 1.6km 라는 수식 기호를 첨부했고, 홍성광은 “이십 사오마일”로 옮겼다. 박찬기는 비록 그 표기의 지역적 특수성을 지적하고는 있으나, 오늘날의 독자가 그 실제 거리를 가늠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홍성광의 경우에도 박찬기의 번역이 지니는 문제 이외에 거리와 시간 관계를 나름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괴테의 의도가 그 정확성을 잃게 되었다. 곽복록은 오늘날 통용되는 거리 단위 km와 mile의 환산법(1 mile = ca. 1.6 km)을 그대로 설명에 적용함으로써, 칼스바트와 레겐스부르크 간의 실제거리를 현저하게 단축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안인희의 주석이 괴테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셈이나, 본문 텍스트에 영어판을 따름으로써 괴테가 사용한 “24.5 마일”에 내포된 텍스트의 문화사적 맥락의 가치가 사라지게 되었다.
 +
 
 +
안인희는 “옮긴이의 글”에 “괴테의 재탄생, 『이탈리아 여행』”을 부제로 달고, “1. 이 책에 대하여”와 “VI 맺는 말”에서 <이탈리아 기행> 자체의 문체적 특징과 번역의 어려움을 표현한다. 특히 <맺는 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와 “자연 관찰”이 적절히 섞인 “구성의 묘미”가 작가로서의 괴테가 지닌 “대중성과 오락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 것은 일면 타당하나, ‘고전은 어렵다’라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학자들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다. 번역과 관련해서는 “직역”을 다듬어 가능한 한 쉬운 선택을 하고 “문장의 마지막을 좀 경쾌하게” 만들었다는 말에 유의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사용한 다양한 어미들이 그 경쾌함을 얼마나 재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
 
 +
나는 싱싱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죠, 사랑하는 벗들이여. 시칠리아 여행은 가볍고도 빠른 속도로 해치웠어요. 내가 돌아가거든 여러분이 내가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 판단하시오.(406)
 +
 
 +
아무리 경쾌함을 의도했더라도 원문 내용에 일치하지 않는 번역은 허용범위를 벗어난다. 간접화법이 포함된 다음의 복잡한 문장을 홍성광의 번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
 
 +
아이말로는 그들은 볼차노Bolzano의 연시年市로 가는 중이라는데, 나도 아마 그리로 갈 것 같다. 거기서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아이에게 연시물건을 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약속했다.(안인희 21)
 +
 +
소녀는 큰 장이 서는 볼차노로 간다면서 혹시 나도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닌지 물어보았다. 거기서 자기를 만나면 대목장의 물건을 사달라고 해서 그러겠노라고 약속하기도 했다.(홍성광 18)
 +
 
 +
이와 같은 원문의 간접화법은 번역문에서 종종 무시되고 있다. 오역의 소지와는 별도로 통사오용(統辭誤用)까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그렇게 멋진 무기를 들고 다녀도 되는 사람들은 행운이라고 찬양했다.”(47)에서 주어와 목적어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이와 같은 결함은 “아주 조금”이나마 “옮긴이의 취향”을 “경쾌한 문체”에 담고자 했다는 역자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다. 물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18세기에 쓰인 난해한 글”인 까닭에 적절한 번역이 힘들다는 안인희의 고백은 단순한 변명이기보다는 원문 텍스트가 지닌 난해성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
 +
 
 +
 
 +
'''3. 평가와 전망'''
 +
 
 +
여기서 고찰의 대상이 된 5종의 번역 작품들은 모두 권말에 번역자의 해설을 수록하고 있으며, 괴테의 전기적(傳記的) 필연성과의 관계에서 이탈리아 여행을 설명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준비하는 괴테의 정신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 후 30년 만에 발간이 시작되어 모두 3차례(1816, 1818, 1829)에 걸쳐 3부작으로 발간된 <이탈리아 기행> 자체의 독특한 생성사가 일기와 편지와의 관계와 함께 대부분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박찬기는 이봉무라는 실명을 기록한 작품 해설에서 기행문으로서의 이 원작의 문체적 특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홍성광은 <이탈리아 기행>을 “자서전”이라고 할만한 “매우 주관적인 여행기”라고 규정했으며, “제일 나중에 출간된 <두 번째 로마 체류>에서는 수신서(修身書) 같은 면모도 엿보인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수신서’의 특징을 부연 설명한다. “이는 새로운 세계와 만남으로써 자아가 성숙해지고 더욱 내면화되는 인간, 요컨대 부단히 탐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설명은 <이탈리아 기행>의 문체를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곽복록은 “괴테와 이탈리아”를 작품 해설 대신 제목으로 삼고, 이탈리아 여행의 전후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기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말년의 생애도 불필요할 정도로 장황하게 첨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기행>의 서술특징에 대한 설명도 다른 번역본보다 많이 들어 있다. “아주 다각적인 시야”, “파노라마풍”, “회상의 문장이 아니라, 30년 전의 활기찬 중년의 문장”, “독특한 리듬”,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침” 등 문체의 특징들을 지적하며, “자기 재발견 및 자기형성에 대한 욕구”, “출판을 의도한 문장”,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 담담하게 하는 이야기” 등 그 문체의 기본의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처럼 상세한 설명에는 물론 출발어(독일어)와 목표어(한국어)의 언어적 차이를 고려한 번역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
 
 +
“번역 프로젝트란 곧 번역하는 주체에 의해 설정되는 특수한 목표로, 번역될 텍스트에 대한 역자의 해석, 자율성과 타율성의 정도를 포함하는 개념”<ref>양강하(2021): 베르만의 생산적 번역 비평 이론에 기반한 클라이스트의 『주워온 아이 Der Findling』 번역 비평 – 번역의 다양성 긍정하기. 독일어문화권연구 30, 86쪽에서 재인용.</ref>이라는 베르만의 정의는 번역텍스트를 단순한 “원작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내재적 일관성”을 지니는 “작품”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ref>같은 글, 85쪽 참조.</ref> 안인희가 “옮긴이의 취향이 들어갈 자리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자로서의 개인적 취향을 “조금”만 번역문장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은 그만큼 원문 텍스트의 허용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역의 원칙적인 불완전성을 전제로 한다고 해도, 여기서 고찰한 5종의 <이탈리아 기행> 번역에 “내재적 통일성”의 원리로 작용했을 번역 프로젝트는 과연 창조적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완전히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다. 5종 모두 각각 중요한 자리에서 원문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오역이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외국어 표기, 전문용어의 번역 등에서 종종 일관성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원문 텍스트 어휘를 생략하거나, 그럴듯한 우리말 표현을 첨가하는 경우라도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기도 한다.
 +
 
 +
단순한 인상기가 아닌,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역사와 미술에 대해 폭넓고 깊은 인문학적 지식과 자연과 지리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포함한 “수학(修學)여행”으로서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번역을 위해서는 18세기 독일어의 언어적 특징뿐만 아니라 괴테가 이 글을 쓸 당시의 전기적, 사회사적 여건까지 면밀하게 살펴야 하며, 그것을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서는 출발어와 목표어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포함한 세심한 번역 프로젝트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직 미래의 숙제로 남는다.
 +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박영구(1998):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도서출판푸른숲.<br>
 +
박찬기(2004): 이탈리아 기행 I, II. 민음사.<br>
 +
홍성광(2008): 이탈리아 기행 I, II. 펭귄클래식코리아.<br>
 +
곽복록(2016): 이탈리아 기행. 동서문화사.<br>
 +
안인희(2017): 이탈리아 여행. 지식향연.<br>
 +
 
 +
 
 +
<div style="text-align: right">안문영</div>
 +
 
 +
*'''각주'''
 +
<references/>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61번째 줄: 191번째 줄:
 
[[분류: 독일문학]]
 
[[분류: 독일문학]]
 
[[분류: 괴테, 요한 볼프강 폰]]
 
[[분류: 괴테, 요한 볼프강 폰]]
 +
[[분류: 비평된작품]]

2023년 6월 22일 (목) 12:18 판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자서전


작품소개

괴테가 약 1년 반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여행문학이다. 서른일곱 살의 괴테는 10여 년간 바이마르 궁정에서 헌신적으로 봉직하느라 창작에 몰두하기 어려웠고, 오랜 숙원이었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예술 창작과 자연 탐구의 열망을 새롭게 채우고자 하였다. 괴테는 1786년 9월 칼스바트를 출발해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돌아보고 1788년 6월에 돌아왔다. 여행 도중에 여행일지와 편지를 통해 사실상 여행기를 썼던 셈이지만, 본격적인 <이탈리아 기행> 집필은 거의 30년이 지난 1813년에 시작되었다. 원래 괴테는 당시 집필하고 있던 자서전의 일부로 여행기를 구상했으며, 처음 출판되었을 때의 제목은 <나의 삶에서. 제2부>였다.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제목은 나중에 붙였다. 칼스바트에서 로마까지의 여행을 다룬 1부가 1816년에,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여행한 기록인 2부가 1817년에 출판되었다. 1829년에 출간된 3부 <두 번째 로마 체류>는 1787년 6월에서 1788년 4월까지 로마에 두 번째로 머물렀던 경험을 담고 있다.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자연, 예술,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특히 빙켈만의 영향 하에서 르네상스 거장의 작품들과 팔라디오의 건축,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을 돌아보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고, 문학사에서 ‘바이마르 고전주의’라 명명될 새로운 사조로 나아가게 된다. 국내에서는 1968년 박찬기에 의해 처음 번역되어 <괴에테문학전집> 6권에 수록되었다(휘문출판사).


초판 정보

Goethe, Johann Wolfgang von(1816-1817): Aus meinem Leben. Zweite Abteilung. Erster und Zweiter Teil. Stuttgart/Tübingen: Cotta.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伊太利 紀行 괴에테文學全集 괴에테文學全集 6 괴에테 朴贊機 1968 徽文出版社 419-487 편역 편역 다권본 중 6권 수록
2 이탈리아 紀行 이탈리아 紀行.印度紀行.물과 原始林 사이에서.움직이는 饗宴..바다의 선물 現代女性敎養名著百選 9 괴테 朴烈(박열) 1977 汎潮社 9-147 편역 편역
3 이탈리아 紀行 現代女性敎養名著百選 9 現代女性敎養名著百選 9 괴테 朴烈 1977 汎潮社 9-147 편역 편역
4 이탈리아 紀行 나의 生涯 : 詩와 眞實 (下) 大思想家 生涯와 思想 7 괴테 朴煥德 1983 汎潮社 377-516 편역 편역 (下)권에 수록
5 이태리 여행기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괴테 이충진 1986 하나 224-235 편역 편역 역자가 괴테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작품들에서 임의로 발췌역하여 엮음
6 이태리 여행기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괴테 이충진 1986 하나 224-235 편역 편역 4명 작가의 에세이 모음집으로 10쪽 분량의 발췌역
7 로마체류기 로마체류기 괴테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1992 현대소설 9-251 편역 편역 역자가 해설에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두번째 로마 체류'를 부분 번역했다고 밝히며, 제목 또한 임의로 원문과는 다르게 붙였음을 밝힘
8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괴테 박영구 1998 푸른숲 11-694 완역 완역
9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괴테 박영구 1998 푸른숲 11-694 완역 완역
10 이탈리아 여행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이탈리아 여행 1 괴테 박영구 2003 생각의 나무 12-312 완역 완역 1998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푸른숲)을 새로 편집하여 발간.
11 이탈리아 여행 (괴테의 그림과 글로 떠나는)이탈리아 여행 2 괴테 박영구 2003 생각의 나무 12-297 완역 완역 1998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푸른숲)을 새로 편집하여 발간.
12 이탈리아 기행 1 이탈리아 기행 1 세계문학전집 10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박찬기 2004 민음사 31-447 완역 완역
13 이탈리아 기행 2 이탈리아 기행 2 세계문학전집 106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박찬기 2004 민음사 29-436 완역 완역
14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 기행 1 Penguin classics, 펭귄 클래식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홍성광 2008 웅진씽크빅 7-464 완역 완역
15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 기행 2 Penguin classics, 펭귄 클래식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홍성광 2008 웅진씽크빅 7-292 완역 완역
16 이탈리아 여행기 이탈리아 여행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37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37-212 완역 편역
17 이탈리아 여행기 이탈리아 여행기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큰글씨책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37-212 완역 편역
18 이탈리아 기행 이탈리아 기행 세계문학전집 5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곽복록 2016 동서문화사 17-703 완역 완역
19 이탈리아 여행 이탈리아 여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안인희 2016 지식향연 15-894 완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휘문출판사에서 1968년 발간한 괴테문학전집 6권에 박찬기 번역으로 수록된 이후 1983년 간행된 범조사의 총서 <大思想家生涯와 思想> 7권에 박환덕의 번역으로 <괴테: 나의 생애 - 시와 진실 (下) / 이탈리아 紀行>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었으나, 1998년 박영구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이전에 출간된 것들은 모두 편역이었다. 1977년 <現代女性敎養名著百選> 시리즈(범조사) 제9권으로 박열의 <이탈리아 紀行>, 1986년 하나출판사의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라는 제목의 책에 다른 작가들의 글과 함께 수록된 이충진 번역의 <이태리 여행기>도 편역이다. 1992년 현대소설사가 <괴테전집> 21권으로 펴낸 정서웅 번역의 <로마 체류기>는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두 번째 로마 체류”를 부분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박영구의 완역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나온 후 2000년대에 들어서서 4종의 완역본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박찬기/이봉무/주경순 공역의 <이탈리아 기행 I, II>(민음사 2004), 홍성광 옮김 <이탈리아 기행 I, II>(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곽복록 옮김 <이탈리아 기행>(동서문화사 2016), 안인희 옮김 <이탈리아 여행>(지식향연 2017). 여기서는 이상 5종의 완역본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1) 저작권 표시

박영구, 안인희가 <일러두기>에서 번역작업의 저본으로 삼은 원본의 서지사항을 밝힌 반면, 박찬기와 홍성광, 곽복록은 이것을 밝히지 않았다. 물론 <이탈리아 기행>의 생성사와 출판 경위, 그리고 괴테 당시 독자들의 반응에 관해 <작품 해설>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홍성광, 곽복록은 독일에서 출판된 4종의 중요한 괴테 전집 가운데 어떤 것을 저본으로 삼았는지를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박영구는 괴테 전집 함부르크 판을 저본으로 하고, 뮌헨 판을 참고로 한 반면, 안인희는 프랑크푸르트 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에리히 트룬츠의 상세한 해설이 첨부된 함부르크 판은 오랫동안 괴테 연구자들의 정전(正典)으로 인정받아 왔고, 뮌헨 판은 괴테의 작품을 생애 시기에 따라 배열한 것이고, 가장 최근에 완성된 프랑크푸르트 판은 40명의 괴테 연구학자들이 해설을 썼다는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괴테 생전에 “저자의 최후감수를 거친” 바이마르 판을 저본으로 삼거나 참고했다는 언급이 없다. 괴테-텍스트의 원본 확정을 위한 비평적 작업이 독일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사정이 번역작업의 조건형성에 지대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저본의 서지 사항을 밝히는 것은 ‘번역 윤리’의 기초가 된다.

또한 박영구와 안인희는 공통적으로 펭귄출판사의 영역본을 참고했음을 밝히고 있는데, 역자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영구가 참조한 영역본은 오든과 엘리자베트 마이어가 공역한 것이고, 안인희가 참조한 영역본은 콜린스가 번역한 것이다. 아무튼 영역본은 독일어 원문 텍스트의 해석 가능성 범위를 다양한 언어적 차원에서 가늠하는 데에 필요한 바람직한 참조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말과 일본어의 유사성에서 오는 중역(重譯)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세대가 일본어 역의 참조항을 상실하게 된 것은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2) 제목

원서 제목인 “Italienische Reise”를 안인희는 <이탈리아 여행>으로 옮겼고, 박찬기, 홍성광, 곽복록은 <이탈리아 기행>으로 옮겼는데, 박영구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으로 작가의 이름을 번역서의 제목에 포함시켰다. ‘여행’과 ‘기행’ 두 낱말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여행(旅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기행(紀行).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 괴테의 텍스트는 이탈리아 여행 자체보다 그 여행 중의 여러 체험을 기록한 기행문이므로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이 더 적합하다.


3) 분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까지 이탈리아의 각 지방을 돌아다니고, 특히 로마에 체류하며 겪은 체험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글들을 3부분으로 나누어 엮은 장문의 여행기이므로, 단행본으로 내기에는 분량이 좀 벅차다. 따라서 전체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편집한 것은 독자의 독서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찬기, I권 447쪽, II권 436쪽 / 홍성광 I권 464쪽, II권 292쪽). 한편 박영구(702쪽), 곽복록(703쪽)과 안인희(696쪽)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피가 큰 단행본 쪽을 선택하였다.

두 권으로 나눈 경우, 박찬기는 나폴리, 시칠리아, 나폴리 기행으로 이어지는 제2부의 시칠리아 부분을 나누어 1권과 2권에 따로 수록했으나, 홍성광은 <제1부 카를스바트에서 로마까지>, <제2부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1권에 묶고, 괴테가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된 <제3부 두 번째 로마체류기>만 따로 2권에 작품 해설과 함께 수록하였다. 후자의 경우 1, 2권의 부피의 차이(464쪽/292쪽)가 현저한 면은 있으나, 각 권의 내용상의 통일성을 유지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 통일성은 특히 주로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 1, 2부의 평서문과 구체적인 수신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위주의 3부의 어투(존댓말)에 기인하는 것인데,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4) 음차(音借, Transkription)

인명과 지명 등 고유명사에 대해서는 안인희가 본문에 원어를 병기했고, 곽복록은 각주에 원문을 밝혔으나, 본문에는 원어의 음차만을 표기했다. 박영구와 박찬기, 그리고 홍성광은 모든 고유명사의 음차만을 사용했는데, 괴테가 독일 독자들을 위해 독일식으로 표기한 이탈리아 지명과 인명을 모두 이탈리아어로 환원시켜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음차한 점이 특기할만하다. 그러나 괴테가 원문에서 이탈리아어를 독일식으로 음차하는 경우, 이를 처리하는 방식이 역자마다 다르다. 예컨대 화가 티슈바인이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삐 풀린 백마가 날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외치는 장면의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Schweif und Mähnen flatterten in die Luft auf, und seine Gestalt in freier Bewegung war so sch;n, daß alles ausrief: “O che bellesse! che bellesse!”
박영구: 꼬리와 갈기가 허공에 높이 휘날렸습니다. 자유로이 날뛰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모두들 “오, 케 벨레체! 케 벨리체!”(야, 멋있다! 멋있어, 라는 뜻: 역주)하고 외쳐댔답니다.
박찬기: 꼬리와 갈기가 허공 중에 높이 나풀거렸습니다. 제 마음대로 뛰는 말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모든 사람들이 “와, 저 근사한 놈! 근사한 놈!”하고 외쳐댔습니다.
홍성광: 꼬리와 갈기가 하늘 높이 훨훨 휘날렸습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말의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다들 “오 케 벨레체! 케 벨레체!”하고 소리쳤습니다.(각주: “야, 멋있다, 멋있어!”라는 뜻)
곽복록: 꼬리와 갈기가 하늘 높이 훨훨 휘날리며 거침없이 내달리는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다들 “오, 케 벨레체! 케 벨레체!(멋있다, 멋있어)“ 소리쳤답니다.
안인희: 꼬리와 갈기를 공중에 휘날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두들 소리쳤지요. “O che bellezze! che bellezze! [정말 멋져! 정말 멋져!]”

여기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의 구별을 없애버리거나(박찬기), 이탈리아어를 음차하고 그 뜻을 각주나 본문 괄호 안에 설명하거나(홍성광, 곽복록), 이탈리아어를 원문에 그대로 적고 괄호 안에 한글 번역어를 적는 등 각인각색의 해결 방법을 보여준다.


5) 전문용어의 번역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거장들의 회화와 건축물, 그리고 여러 교단과 관련된 사항뿐만 아니라, 지형과 날씨에 관해서도 지질학적이나 기상학적으로 매우 전문적인 관찰을 하며 전문용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 선택도 중요하다. 예컨대 독일 레겐스부르크 근방의 지질과 관련된 eine Art Totliegendes 라는 암석의 명칭은 “로트리겐트 사석”(박영구), “죽어있는 무생물체”(박찬기), “토틀리겐데스 석회암”(곽복록), “신 적색사암”(홍성광), “역암”(안인희)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분명한 오역과 음차역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똑같은 대상을 표시하는 전문용어의 통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특한 문화적 내용을 반영하는 일반용어도 번역자마다 그 해석과 목표어 사용이 각각 다른 예도 있다. 예컨대 Podestà는 “시장”(홍성광, 곽복록), “영주”(박영구, 박찬기), “마을 행정관”(안인희)으로 각각 다르게 옮기거나, Messe를 “시장”(박찬기), “큰 장”(홍성광, 곽복록), “연시”(안인희)로 옮겼고, Jahrmarkt를 “시장에서 무언가”(박찬기), “대목장의 물건”(홍성광), “거기서 (...) 어떤 물건”(곽복록), “연시물건”(안인희)으로 옮긴 것은 Jahrmarktgeschenk와 동어로 사용되는 원문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자가 각각 선택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원문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출발어와 목표어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특성의 차이를 번역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근본문제를 던지고 있다.


6) 도판

박찬기, 곽복록, 안인희는 괴테의 여정이 표시된 이탈리아 지도뿐만 아니라 괴테가 언급한 내용과 관련된 수많은 사진 자료를 수록했는데, 홍성광은 책 표지에 곽복록, 안인희와 같이 티슈바인의 인물화 <캄파냐에서의 괴테> 일부분을 사용한 것 외에는 일체의 사진이나 도표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를 함께 여행한 친구 화가가 당시 장년의 나이에 도달한 괴테의 모습을 이탈리아 캄파냐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린 것으로 그의 여행기 표지화로 안성맞춤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박찬기는 <베네치아의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과 대운하>(I권), <테베르강과 성 베드로 성당>(II권)을 보여주는 파스텔풍의 사진 두 컷을 각 권의 표지화로 사용했다. 박영구, 곽복록과 안인희는 괴테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본문에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구체적으로 돕는 반면, 박찬기의 역서에서는 괴테의 수채화는 볼 수 없다. 앞부분에 이탈리아의 명소들 사진을 여러 장 따로 게재하고, 괴테가 그곳을 방문한 시기를 설명에 언급함으로써 본문 내용과의 연관성을 살렸으나, 번역텍스트의 관련 쪽수를 표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색상이 명료한 사진들은 현대의 이탈리아 풍경을 담은 것으로 괴테가 느낀 18세기의 인상을 연상하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박영구는 괴테 자신이 그린 수채화 <보르게세 별장에서 바라본 아폴리나레 농지>를 표지화로 사용하는 한편, 비록 흑백으로만 나타내기는 했지만, 책 속의 “그림과 사진은 함부르크 판본과 뮌헨 판본에 실린 것 가운데 선별하여 수록”하였다고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자료들은 물론 독자의 텍스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문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자연사와 한국 독자에게 낯선 유럽의 문화사를 포함하는 다각적인 요소를 지닌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유려한 한국어 텍스트로 재가공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번역서마다 보여주고 있다. 그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에 비해, 그리고 괴테가 구사하는 폭넓고도 추상적 개념들의 정확한 이해의 문제에 비추어 여기서의 개별 비평은 아주 원론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먼저 고백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영구 역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1998)

최초의 완역본을 낸 박영구는 함부르크 판을 저본으로 사용하고, 뮌헨 판과 2종의 영역본을 참조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선택 수록한 도판의 출처까지도 일러두기에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번역의 역사적 기본조건을 독자들이 가늠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한국어가 유려하며, 어휘 선택과 문장 구성이 원문 텍스트 내용의 이해를 충실하게 전달하기에 적절하고, 각각 다른 상황의 합리적 통일성 유지에 성공하고 있다. 단독 어휘만으로는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간략한 설명을 문장구조 안에 엮어 넣는 등 (예: Antiphone →“번갈아 부르는 응답 송가”: 교창(交唱)이라는 사전 번역도 있음), 전체적으로 신뢰감을 주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카푸친 회”에는 “프란체스코회의 한 분파”라는 역주를 달아 놓았으면서도 그것이 이 수도회의 상징인 카푸츠라는 갈색 두건에서 온 말이라는 설명을 생략한 점이 아쉽다(119쪽). 괴테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사용하는 인칭대명사(“저, 그대들, 당신, 그녀”)가 적합한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고, 원문 내용을 오해한 부분도 가끔 눈에 띄는데, 수정이 요구된다. <1786년 9월 17일 베로나>의 내용에는 이탈리아 가옥의 불결한 위생 상태와 그 원인이 공공건물을 함부로 대하는 평민들의 태도에 있음과 그에 대처하는 올바른 대처 방법으로서 대중의 접근을 제한하면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것을 감수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어엿한 신사 노릇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기 집의 일부가 공공소유라도 되는 듯이 굴어서는 안 된다. 그가 문을 닫으면 그것도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공공건물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전혀 빼앗기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외국인들이 불평을 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78) 

우선 여기서 “어엿한 신사”와 “사람들”은 원문에 각각 großer Herr, das Volk에 해당하는데, 원문에 의도된 계층 차이가 번역문에서는 뚜렷하게 반영되지 못한다. “할 수 없다”, “~듯이 굴어서는 안 된다”는 “~할 필요가 없다”로 옮겨야 문맥에 맞는다. 또 필리코 네리 성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친서에 추기경들의 속성을 가리키는 “geistlich gesinnt”를 “정신적으로 교화된”이라고 번역한 것은 “종교적”이라는 뜻의 geistlich를 geistig(정신적)와 혼동한 결과이다. 고대 이탈리아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버질로 옮긴 것은 영어번역을 음차한 것이다. 이같은 미세한 결함들은 원문 이해의 미진함이나 외국어 표기법의 일탈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재검토가 된다면 가장 우수한 번역이 될 것이다.


2) 박찬기 역의 <이탈리아 기행>(2004)

이 번역본은 1968년에 박찬기에 의해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을 후에 이봉무, 주경순이 확대하여 완역본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봉무가 집필한 <작품 해설>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3인의 공동 번역으로 볼 수 있는 이 완역본도 다른 번역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오역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문체가 고르지 못한 점이 최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바이마르에 남아있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종결어미를 반말체로 쓰고 있는데, 이는 존칭 어미를 쓰는 다른 번역본이 더 적절하게 읽힌다. 헤르더를 “귀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손위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당신”(박영구, 안인희), “그대”(곽복록, 홍성광)보다 더 한국적 관행을 따른 것이라고 보겠으나, 반말체와 어울리지도 않고, 그 어휘 자체가 이질감을 준다. 로마 체류 말기에 바이마르의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에 관한 괴테 자신의 서술을 위한 어휘 선택은 이 번역작업의 난맥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기쁨에 대한 말은 적었고, 그와 반대로 떠나야 하는 슬픔은 상당히 공공연했다”.(II권, 418) 이 부분 박영구의 번역을 보면 그 사정이 분명해진다. “(...)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은 그저 적당히 토로하고 있는 반면, 작별의 고통은 감추려 하지 않았다.”(677) 필리포 네리 성자의 청원서에 대한 교황의 친서 번역은 시작 부분부터 그 관계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글의 첫 부분에 다소 자만심이 깃들어 있다. 추기경들이 당신을 자주 방문한다는 말은 이분들이 종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듯하다.”(II, 316/317) 여기서 “Der Papst sagt, daß ...”로 시작되는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박영구는 “교황인 본인은”으로, 곽복록은 “내가 보기에는”으로 옮기고 있으므로, 여기서 “교황”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황과 일반 신부 사이에 서열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해도 교황의 친서를 반말체로 옮긴다는 것은 한국 독자의 정서에 맞지 않을 듯하다. 그밖에도 예수회 신부가 강론하는 성당을 “장로회 교회”(I, 59)로 번역한 것은 원문 내용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은 문체의 난맥상은 부분적으로 원문의 불충분한 이해에도 기인하겠으나, 무엇보다 공역자 3인의 언어적 차원을 일치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고 하겠다. 물론 자본의 저작권 표시가 빠진 것도 이 번역본의 결함이다.


3) 홍성광 역의 <이탈리아 기행>(2008)

이 번역은 독일어 원문 텍스트를 아주 충실하게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사실들의 상호관계 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의 상황묘사가 정확하고, 선택 어휘가 적절하여 균형감 있는 목표어 문장으로 그 내용이 명료하게 전달된다. 이 번역의 정확성은 다른 번역들과 전혀 반대되는 해석을 보이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Diese Szene kam mir so lächerlich vor, daß mein guter Mut sich vermehrte und ich Ihnen nichts, am wenigsten den Efeu schenkte, der Fels und Gemäuer auf das reichste zu verzieren schon Jahrhunderte Zeit gehabt hatte.
이러한 장면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나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이나 바위와 폐허를 장식해 온 담쟁이덩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I, 40) 

이 구절을 곽복록은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웠던지 나는 더욱 유쾌해졌다. 그래서 바위와 담벼락을 수백 년 동안이나 무성하게 장식해 온 담쟁이덩굴에 대해서까지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다.”(49)로 옮겼고, 다른 번역자들도 같은 뜻으로 번역했다. 이 장면은 괴테가 이방인으로서 이탈리아의 말체시네 고성을 스케치하는 것을 스파이 행동으로 의심쩍게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데, 원문 “nichts, am wenigsten (...) schenkte”에 분명하게 표현된 부정의 의미, 즉 자기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현지인들에게 “선물”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괴테의 의지를 정확하게 해석한 번역은 홍성광뿐이다.

한편 “9월 11일 저녁, 트렌토”(I, 34)는 원문 “9월 10일”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사소하지만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저본의 저작권 표시를 하지 않아 아쉽다.


4) 곽복록 역의 <이탈리아 기행>(2016)

괴테 자신의 수채화를 비롯해 수많은 도판과 상세한 주석을 수록하고 있는 이 번역본은 번역문체가 매우 유려하여 복잡한 개념이 포함된 원문번역에서도 번역투에서 오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유려함 속에 간혹 원문 해석상의 오류가 감추어져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번역본의 특징은 본문 번역의 장점들보다 <이탈리아 기행>에 대한 상세한 해설에 있다. 연보를 포함하여 704~7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해설은 괴테의 전 생애를 <이탈리아 기행>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부분까지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 기행>을 괴테의 생애 및 창작 세계와 관련지어 해설한 다른 번역자들의 경우보다 그 정도가 지나친 점이 있다. 그중 <이탈리아 기행>의 문학적 특성이나, 그 출판물에 대한 당시 독자들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정보는 흥미롭다.

이렇게 해설 내용이 방대함에도 정작 저본의 저작권에 대한 정보나 참고문헌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 그리고 해설 첫 부분에 제사(題辭)처럼 쓴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이탈리아 기행>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럽다. “자신이 본 것들 가운데 무엇이 더 낫고 좋은지를 뚜렷하게 깨달을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면 그것은 어느 새 손안에서 슬며시 빠져나가 버린다. 흔히 사람들은 올바른 것을 잡지 못하고, 그저 익숙한 것에 사로잡히고 만다.”(704)


5) 안인희 역의 <이탈리아 여행>(2017)

<일러두기>에 저작권 표시를 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출판사 지식향연 기획위원 명의의 발간 취지를 내세운 안인희는 첫 부분, 칼스바트에서 레겐스부르크까지의 거리를 괴테가 24.5마일로 기록한 것에 대해 실제 거리가 178.8 킬로미터라는 점, 괴테 당시에는 1마일의 거리 기준이 제각각이었다는 사실을 각주에서 설명하면서, 영어판 번역본을 따라 104마일로 옮겼음을 밝힌다. 이 부분 박찬기는 “24마일 반”으로 옮기고 괄호 안에 “(독일 마일)”이라고 표시했으며, 곽복록은 “24.5마일” 다음에 괄호 안에 1 mile은 약 1.6km 라는 수식 기호를 첨부했고, 홍성광은 “이십 사오마일”로 옮겼다. 박찬기는 비록 그 표기의 지역적 특수성을 지적하고는 있으나, 오늘날의 독자가 그 실제 거리를 가늠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홍성광의 경우에도 박찬기의 번역이 지니는 문제 이외에 거리와 시간 관계를 나름 정확하게 설명하려는 괴테의 의도가 그 정확성을 잃게 되었다. 곽복록은 오늘날 통용되는 거리 단위 km와 mile의 환산법(1 mile = ca. 1.6 km)을 그대로 설명에 적용함으로써, 칼스바트와 레겐스부르크 간의 실제거리를 현저하게 단축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안인희의 주석이 괴테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셈이나, 본문 텍스트에 영어판을 따름으로써 괴테가 사용한 “24.5 마일”에 내포된 텍스트의 문화사적 맥락의 가치가 사라지게 되었다.

안인희는 “옮긴이의 글”에 “괴테의 재탄생, 『이탈리아 여행』”을 부제로 달고, “1. 이 책에 대하여”와 “VI 맺는 말”에서 <이탈리아 기행> 자체의 문체적 특징과 번역의 어려움을 표현한다. 특히 <맺는 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와 “자연 관찰”이 적절히 섞인 “구성의 묘미”가 작가로서의 괴테가 지닌 “대중성과 오락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 것은 일면 타당하나, ‘고전은 어렵다’라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학자들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다. 번역과 관련해서는 “직역”을 다듬어 가능한 한 쉬운 선택을 하고 “문장의 마지막을 좀 경쾌하게” 만들었다는 말에 유의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사용한 다양한 어미들이 그 경쾌함을 얼마나 재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싱싱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죠, 사랑하는 벗들이여. 시칠리아 여행은 가볍고도 빠른 속도로 해치웠어요. 내가 돌아가거든 여러분이 내가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 판단하시오.(406) 

아무리 경쾌함을 의도했더라도 원문 내용에 일치하지 않는 번역은 허용범위를 벗어난다. 간접화법이 포함된 다음의 복잡한 문장을 홍성광의 번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아이말로는 그들은 볼차노Bolzano의 연시年市로 가는 중이라는데, 나도 아마 그리로 갈 것 같다. 거기서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아이에게 연시물건을 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약속했다.(안인희 21) 

소녀는 큰 장이 서는 볼차노로 간다면서 혹시 나도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닌지 물어보았다. 거기서 자기를 만나면 대목장의 물건을 사달라고 해서 그러겠노라고 약속하기도 했다.(홍성광 18) 

이와 같은 원문의 간접화법은 번역문에서 종종 무시되고 있다. 오역의 소지와는 별도로 통사오용(統辭誤用)까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그렇게 멋진 무기를 들고 다녀도 되는 사람들은 행운이라고 찬양했다.”(47)에서 주어와 목적어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이와 같은 결함은 “아주 조금”이나마 “옮긴이의 취향”을 “경쾌한 문체”에 담고자 했다는 역자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다. 물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18세기에 쓰인 난해한 글”인 까닭에 적절한 번역이 힘들다는 안인희의 고백은 단순한 변명이기보다는 원문 텍스트가 지닌 난해성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


3. 평가와 전망

여기서 고찰의 대상이 된 5종의 번역 작품들은 모두 권말에 번역자의 해설을 수록하고 있으며, 괴테의 전기적(傳記的) 필연성과의 관계에서 이탈리아 여행을 설명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슈투름 운트 드랑의 세계관을 극복하고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준비하는 괴테의 정신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 후 30년 만에 발간이 시작되어 모두 3차례(1816, 1818, 1829)에 걸쳐 3부작으로 발간된 <이탈리아 기행> 자체의 독특한 생성사가 일기와 편지와의 관계와 함께 대부분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박찬기는 이봉무라는 실명을 기록한 작품 해설에서 기행문으로서의 이 원작의 문체적 특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홍성광은 <이탈리아 기행>을 “자서전”이라고 할만한 “매우 주관적인 여행기”라고 규정했으며, “제일 나중에 출간된 <두 번째 로마 체류>에서는 수신서(修身書) 같은 면모도 엿보인다”고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수신서’의 특징을 부연 설명한다. “이는 새로운 세계와 만남으로써 자아가 성숙해지고 더욱 내면화되는 인간, 요컨대 부단히 탐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설명은 <이탈리아 기행>의 문체를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곽복록은 “괴테와 이탈리아”를 작품 해설 대신 제목으로 삼고, 이탈리아 여행의 전후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기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말년의 생애도 불필요할 정도로 장황하게 첨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기행>의 서술특징에 대한 설명도 다른 번역본보다 많이 들어 있다. “아주 다각적인 시야”, “파노라마풍”, “회상의 문장이 아니라, 30년 전의 활기찬 중년의 문장”, “독특한 리듬”,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침” 등 문체의 특징들을 지적하며, “자기 재발견 및 자기형성에 대한 욕구”, “출판을 의도한 문장”,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 담담하게 하는 이야기” 등 그 문체의 기본의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처럼 상세한 설명에는 물론 출발어(독일어)와 목표어(한국어)의 언어적 차이를 고려한 번역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번역 프로젝트란 곧 번역하는 주체에 의해 설정되는 특수한 목표로, 번역될 텍스트에 대한 역자의 해석, 자율성과 타율성의 정도를 포함하는 개념”[1]이라는 베르만의 정의는 번역텍스트를 단순한 “원작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내재적 일관성”을 지니는 “작품”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2] 안인희가 “옮긴이의 취향이 들어갈 자리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자로서의 개인적 취향을 “조금”만 번역문장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은 그만큼 원문 텍스트의 허용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역의 원칙적인 불완전성을 전제로 한다고 해도, 여기서 고찰한 5종의 <이탈리아 기행> 번역에 “내재적 통일성”의 원리로 작용했을 번역 프로젝트는 과연 창조적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완전히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다. 5종 모두 각각 중요한 자리에서 원문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오역이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외국어 표기, 전문용어의 번역 등에서 종종 일관성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원문 텍스트 어휘를 생략하거나, 그럴듯한 우리말 표현을 첨가하는 경우라도 그 이유가 설명되지 않기도 한다.

단순한 인상기가 아닌,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역사와 미술에 대해 폭넓고 깊은 인문학적 지식과 자연과 지리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포함한 “수학(修學)여행”으로서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번역을 위해서는 18세기 독일어의 언어적 특징뿐만 아니라 괴테가 이 글을 쓸 당시의 전기적, 사회사적 여건까지 면밀하게 살펴야 하며, 그것을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서는 출발어와 목표어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전략을 포함한 세심한 번역 프로젝트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직 미래의 숙제로 남는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영구(1998):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도서출판푸른숲.
박찬기(2004): 이탈리아 기행 I, II. 민음사.
홍성광(2008): 이탈리아 기행 I, II. 펭귄클래식코리아.
곽복록(2016): 이탈리아 기행. 동서문화사.
안인희(2017): 이탈리아 여행. 지식향연.


안문영
  • 각주
  1. 양강하(2021): 베르만의 생산적 번역 비평 이론에 기반한 클라이스트의 『주워온 아이 Der Findling』 번역 비평 – 번역의 다양성 긍정하기. 독일어문화권연구 30, 86쪽에서 재인용.
  2. 같은 글, 85쪽 참조.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