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여인 (Die linkshändige Frau)"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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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개별 번역비평에 들어가기 전에 <왼손잡이 여인>의 독일어 원제인 ‘Die linkshändige Frau’의 우리말 번역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 ‘die’는 정관사 ‘der’의 여성형인데,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번역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왼손잡이의’의 뜻을 지닌 형용사 ‘linkshändig’를 세 명의 역자 모두 간단히 ‘왼손잡이’로 번역한다. 그런데 명사 ‘Frau’의 번역에 있어 역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독일어 단어는 사전을 살펴보면 ‘여주인’, ‘아내’, ‘부인’, ‘여성’, ‘여자’ 등을 의미한다. ‘Frau’를 우리말로 옮길 때, 홍경호는 ‘여인’을, 정경석과 차경아는 ‘여자’를 사용한다. 사전적으로 전자는 ‘어른(또는 성인)이 된 여자’를 뜻하고, 후자는 (흔히)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여자’가 ‘여인’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면 ‘Die linkshändige Frau’는 주인공 마리아네(Marianne)가 어느 날 밤 홀로 거실에 앉아 자꾸만 계속해서 듣는 노래의 제목 ‘The Lefthanded Woman’의 독일어 번역이다. 서른 살의 그녀는 브루노(Bruno)라는 남자와 결혼한 상태로 여덟 살짜리 아들 슈테판(Stefan)이 있다. 노래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왼손잡이 여성은 어떤 깨달음을 통해 자기 해방과 자기 성장의 길을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마리아네의 거울상에 해당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Die linkshändige Frau’의 ‘Frau’는 보편적 성격의 ‘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한정적 의미의 ‘여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작품 내용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 본격적으로 개별 번역비평에 들어가기 전에 <왼손잡이 여인>의 독일어 원제인 ‘Die linkshändige Frau’의 우리말 번역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 ‘die’는 정관사 ‘der’의 여성형인데,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번역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왼손잡이의’의 뜻을 지닌 형용사 ‘linkshändig’를 세 명의 역자 모두 간단히 ‘왼손잡이’로 번역한다. 그런데 명사 ‘Frau’의 번역에 있어 역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독일어 단어는 사전을 살펴보면 ‘여주인’, ‘아내’, ‘부인’, ‘여성’, ‘여자’ 등을 의미한다. ‘Frau’를 우리말로 옮길 때, 홍경호는 ‘여인’을, 정경석과 차경아는 ‘여자’를 사용한다. 사전적으로 전자는 ‘어른(또는 성인)이 된 여자’를 뜻하고, 후자는 (흔히)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여자’가 ‘여인’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면 ‘Die linkshändige Frau’는 주인공 마리아네(Marianne)가 어느 날 밤 홀로 거실에 앉아 자꾸만 계속해서 듣는 노래의 제목 ‘The Lefthanded Woman’의 독일어 번역이다. 서른 살의 그녀는 브루노(Bruno)라는 남자와 결혼한 상태로 여덟 살짜리 아들 슈테판(Stefan)이 있다. 노래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왼손잡이 여성은 어떤 깨달음을 통해 자기 해방과 자기 성장의 길을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마리아네의 거울상에 해당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Die linkshändige Frau’의 ‘Frau’는 보편적 성격의 ‘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한정적 의미의 ‘여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작품 내용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 ||
<왼손잡이 여인>의 전체적 구성을 보자면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극적인 사건들의 부재 속에 내용이 전개된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분위기가 작품 곳곳을 지배하고 있으며, 개별 에피소드들은 분석과 고찰이 철저히 가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느슨한 연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왼손잡이 여인>에 접근하는 것은 가히 어두운 미로를 헤쳐 나가는 것에 비견될 만하다. 그럼에도 주인공 마리아네의 존재가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끄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다음의 개별 번역비평에서는 최대한 이를 염두에 두고자 한다. | <왼손잡이 여인>의 전체적 구성을 보자면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극적인 사건들의 부재 속에 내용이 전개된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분위기가 작품 곳곳을 지배하고 있으며, 개별 에피소드들은 분석과 고찰이 철저히 가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느슨한 연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왼손잡이 여인>에 접근하는 것은 가히 어두운 미로를 헤쳐 나가는 것에 비견될 만하다. 그럼에도 주인공 마리아네의 존재가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끄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다음의 개별 번역비평에서는 최대한 이를 염두에 두고자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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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경호 역의 <왼손잡이 女人>(1977)''' | '''1) 홍경호 역의 <왼손잡이 女人>(19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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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서정적 자아가 언젠가 낯선 곳에서 만나고자 하는 왼손잡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마리아네의 자아 찾기를 완성한 이상적 인물이다. 독일어 원문에서는 “ich”, “du” 그리고 “wir”로 주어가 바뀌는데,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소망이 점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정경석은 본동사 “sehen”, “zugehen” 등을 독립된 한 행으로 강조하여 번역한다. 역자는 원문의 3행과 4행을 접속사 “denn”으로부터 분리하고 있으나, 이 두 행과 2행은 모두 같은 조동사 “werden”-본동사 구조로 되어 있다. 차경아는 원문에서 대문자로 강조된 부분을 번역문에서도 강조하여 표기하고 있으며 원인이나 근거를 나타내는 어미 ‘-기에’를 이용하여 “denn” 이하 부분을 접속사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 이때 “werden”에는 가능의 뜻이 부여된다. 홍경호의 번역은 정경석과 차경아의 그것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 “있으리”, “다가가리라” 등의 표현으로 미래에 대한 기원을 더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1인칭 서정적 자아가 언젠가 낯선 곳에서 만나고자 하는 왼손잡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마리아네의 자아 찾기를 완성한 이상적 인물이다. 독일어 원문에서는 “ich”, “du” 그리고 “wir”로 주어가 바뀌는데,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소망이 점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정경석은 본동사 “sehen”, “zugehen” 등을 독립된 한 행으로 강조하여 번역한다. 역자는 원문의 3행과 4행을 접속사 “denn”으로부터 분리하고 있으나, 이 두 행과 2행은 모두 같은 조동사 “werden”-본동사 구조로 되어 있다. 차경아는 원문에서 대문자로 강조된 부분을 번역문에서도 강조하여 표기하고 있으며 원인이나 근거를 나타내는 어미 ‘-기에’를 이용하여 “denn” 이하 부분을 접속사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 이때 “werden”에는 가능의 뜻이 부여된다. 홍경호의 번역은 정경석과 차경아의 그것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 “있으리”, “다가가리라” 등의 표현으로 미래에 대한 기원을 더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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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경석 역의 <왼손잡이 여자>(1977)''' | '''2) 정경석 역의 <왼손잡이 여자>(19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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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Du gehörst zu den wenigen Leuten, vor denen man keine Angst haben muß. Und außerdem bist du eine Frau, vor der man nichts spielen will.《(333) | Bruno: 》Du gehörst zu den wenigen Leuten, vor denen man keine Angst haben muß. Und außerdem bist du eine Frau, vor der man nichts spielen will.《(333) | ||
− | 브르노는 쟁반에서 술 잔을 받아들고 물었다. | + | 브르노는 쟁반에서 술 잔을 받아들고 물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안 마셔? 오늘 저녁에 또 무슨 일이 있어?」 |
− | 부인 내가 뭐 전과 다른가요? | + | 부인 내가 뭐 전과 다른가요?」 |
− | 브르노 | + | 브르노 「전과 다르지.」 |
− | 부인 | + | 부인 「무슨 말이죠?」 |
− | 브르노 | + | 브르노 「당신은 사람들이 조금도 겁을 낼 필요가 없는 그런 여자의 한 사람이야. 그리고 더구나 당신 앞에서는 아무도 장난할 생각을 먹을 수 없는 한 부인이란 말야.」(정경석, 18f.) |
+ | 부르노는 쟁반에서 술잔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 ||
+ | 「당신은 마시지 않겠어? 오늘 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없어?」 | ||
+ | 여자가 대꾸했다. 「내가 다른 때보다 다르기라도 한가요?」 | ||
+ | 「언제나 다르지.」 | ||
+ | 「그게 무슨 뜻이지요?」 | ||
+ | 「당신은 그 앞에 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은데. 그리고 당신은 쓸데없이 그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좋을 그런 여자야.」(홍경호, 28) | ||
+ | <왼손잡이 여인>은 장르상 소설에 속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인물들 간의 대화가 전부 드라마의 그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이 가상적 무대의 등장인물이자 관찰 대상이 된다. 이때 이러한 표현 형식이 주는 이질감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언어(또는 침묵)의 교환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정경석의 번역이 한트케의 문체가 가지는 독특함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데 반해, 홍경호의 번역은 대화의 희곡적 형식을 소설의 일반적인 표현 양식에 동화시키고 있다. 후자에서는 두 인물의 대화가 보다 더 응집된 형태로 표현된다. | ||
+ | '''3) 차경아 역의 <왼손잡이 女子>(1979)''' | ||
+ | 차경아는 1977년 당시 <문학사상>의 독일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동 잡지의 같은 해 3월호 권말 부록으로 <왼손잡이 여인>을 번역 출판했다. 발표 시기로 따지면 세 명의 역자 중 해당 작품을 가장 먼저 우리말로 번역해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문학사상> 번역본과 1979년에 역자가 단행본에 수록하여 간행한 번역본 사이에는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지만, 특이하게도 전자에는 아마도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 중간 제목 등이 포함되어 있다. | ||
+ | 단행본에 함께 수록된 해설(‘페터 한트케―그 人間과 文學’)에서 차경아는 <왼손잡이 여인>의 번역과 관련하여 한트케의 “냉담한 언어”가 주는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투철하게 객관적으로 응집된 그의 언어를 전혀 다른 체계와 사고(思考)의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반역(反逆)임을 역자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이라는 생산적 활동에 있어 역자는 자신의 언어로 해석을 시도한다. 관찰 대상에 대해 섣부른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철저한 거리 두기를 추구하는 한트케의 경우, 차경아의 의견에 따르면, 그와 같은 시도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왼손잡이 여인>의 번역은 그것을 수행할 때 한트케의 언어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겠다. | ||
− | + | 》Du hast dich nicht verraten. Und niemand wird dich mehr demütigen!《(400) | |
− | + | 「너는 너를 드러내지 않았어. 그 어느 누구도 너를 굴복시키지 못할 거야!」(차경아, 1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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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노라.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그대를 굴복시키지 못하리니!」(정경석, 153) | ||
− | + | 마리아네는 아직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노래 ‘The Lefthanded Woman’의 왼손잡이 여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어떤 희망이 깃들어 있으나,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차경아는 한트케의 절제되고 담담한 어조에 공명한다. 역자는 작가의 간결한 문체를 잘 살리고 있다. 정경석의 번역은 표면적으로는 차경아의 번역과 의미상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않았노라”, “못하리니” 등의 사용과 함께 일종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곳에서 마리아네는 그녀의 운명을 선포한다. | |
− | + | '''3. 평가와 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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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트케는 <왼손잡이 여인>에서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한 여인의 정체성 문제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요즘 같은 감정 과잉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왼손잡이 여인>은 홍경호의 번역이 오랫동안 판을 거듭하며 국내 독자와의 만남과 소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나, 1976년 독일에서 출간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번역을 시도했던 위의 세 역자를 제외하면 아직 한국에서 새로운 역자를 찾지 못했다. 이러한 결핍의 현실과 관련하여 <왼손잡이 여인>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 자체의 어려움에 한정해서 생각해 보자. 이 작품에서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조용한 관찰자인 한트케는 언어와 침묵 사이를 산책하며 이리저리 거닌다. 기존의 번역들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역자들이 이와 같은 언어의 절제와 단순화를 의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때때로 번역문의 의미 구성에 있어 지나친 의욕을 가진 나머지 작가의 미니멀한 표현 의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왼손잡이 여인>의 새로운 번역은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고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 ||
− |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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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경호(1977): 왼손잡이 女人. 범우사. | ||
− | + | 정경석(1977): 왼손잡이 여자. 덕문출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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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차경아(1979): 왼손잡이 女子. 범조사. | |
− | <div style="text-align: right"> | + | <div style="text-align: right">유종윤</div> |
− | ---- | + | {{A05}}<!--바깥 링크(원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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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분류: 독일문학]] | |
− | + | [[분류: 한트케, 페터]] | |
− | + | [[분류: 비평된작품]] |
2025년 2월 16일 (일) 11:35 기준 최신판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1942-)의 중편소설
작가 |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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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976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201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작가 페터 한트케가 1976년 출간한 중편소설이다. 1978년에 영화화되기도 하였는데, 원작자인 한트케가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했다. 전통적 소설형식을 따른 작품의 주인공은 전에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전업주부로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서른 살의 마리아네이다. 그녀와 회사원 남편 브루노 사이에는 슈테판이라는 여덟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 마리아네는 갑자기 떠오른 어떤 깨달음을 통해 남편과의 별거를 결정한 후 어린 아들과 더불어 자립적인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 소설의 독일어 원제 ‘Die linkshändige Frau’는 주인공이 어느 날 밤 홀로 거실에 앉아 되풀이해서 듣는 노래의 제목인 ‘The Lefthanded Woman’의 독일어 번역에 해당한다. 노래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왼손잡이 여성은 불안과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기 해방과 자기 성장의 길을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마리아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한 여인의 정체성 문제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본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1977년 홍경호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범우사)
초판 정보
Handke, Peter(1976): Die linkshändige Frau. Erzählung. Frankfurt a. M.: Suhrkamp.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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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오랜 시간 부침을 겪은 후 2019년에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오스트리아의 작가 페터 한트케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대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1966년 아직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한트케는 미국 프린스턴에서 개최된 ‘47그룹’(Gruppe 47) 총회에서 기성 문단 및 문인들에 대해 충격적인 도발을 감행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문학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끈 그 모임을 거침없는 언사로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짧은 기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그리고 같은 해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받은 영향이 기저에 깔린 ‘연극적 텍스트’(Sprechstück) ― 보통 구변극(口辯劇)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관객모독>(1966)을 발표해 무대에 올린다. 이 새롭고도 독창적인 작품은 언어 그 자체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하는 반전통적, 실험적 시도로서 당시 연극계에 커다란 파장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한트케를 세계 연극사의 한 자리에 올려놓게 되었다. 본 번역비평에서 다루려고 하는 <왼손잡이 여인>(1976)은 한트케가 1970년대 초에 내놓은, 아마도 <관객모독>과 더불어 그의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1972), <소망 없는 불행>(1972) 등과 마찬가지로 전통적 소설형식을 따른다. 하지만 내용과 언어의 측면에서 볼 때, 여전히 위에서 언급한 작가의 혁신성과 전복성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왼손잡이 여인>은 1978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원작자인 한트케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했다. 1976년 출간된 이후 독일에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지켰던 <왼손잡이 여인>은 1970년대 후반 세 명의 역자에 의해 한국에 소개된다. 바로 이듬해인 1977년에 홍경호와 정경석은 각각 <왼손잡이 女人>(범우사)과 <왼손잡이 여자>(덕문출판사)라는 제목으로 해당 작품을 번역 출간한다 ― 전자의 범우사 판에는 <소망 없는 불행>도 함께 들어 있다. 특히 홍경호의 번역은 1988년, 2003년, 2011년을 지나서 2017년 제5판까지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단어나 표현 등이 약간 바뀌었을 뿐, 눈에 띄는 중요한 변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또한 1990년에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와 더불어 세명문화사에서 출간된다. 끝으로 차경아는 1979년 <왼손잡이 여인>과 <소망 없는 불행>의 번역이 실린 <왼손잡이 女子>(범조사)를 펴낸다. 역자는 이에 앞서 책의 표제가 제목인 전자를 1977년 <문학사상> 3월호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으로 이제껏 국내에서 시도된 <왼손잡이 여인>의 번역출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위데코(UeDeKo) 서비스페이지의 번역서지 목록을 보면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와 <소망 없는 불행>이 각각 총 9회와 11회 번역 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왼손잡이 여인>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국내에 소개된 한트케의 작품 가운데서는 어쨌든 많이 번역된 작품에 속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본격적으로 개별 번역비평에 들어가기 전에 <왼손잡이 여인>의 독일어 원제인 ‘Die linkshändige Frau’의 우리말 번역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 ‘die’는 정관사 ‘der’의 여성형인데,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번역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왼손잡이의’의 뜻을 지닌 형용사 ‘linkshändig’를 세 명의 역자 모두 간단히 ‘왼손잡이’로 번역한다. 그런데 명사 ‘Frau’의 번역에 있어 역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독일어 단어는 사전을 살펴보면 ‘여주인’, ‘아내’, ‘부인’, ‘여성’, ‘여자’ 등을 의미한다. ‘Frau’를 우리말로 옮길 때, 홍경호는 ‘여인’을, 정경석과 차경아는 ‘여자’를 사용한다. 사전적으로 전자는 ‘어른(또는 성인)이 된 여자’를 뜻하고, 후자는 (흔히)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여자’가 ‘여인’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보면 ‘Die linkshändige Frau’는 주인공 마리아네(Marianne)가 어느 날 밤 홀로 거실에 앉아 자꾸만 계속해서 듣는 노래의 제목 ‘The Lefthanded Woman’의 독일어 번역이다. 서른 살의 그녀는 브루노(Bruno)라는 남자와 결혼한 상태로 여덟 살짜리 아들 슈테판(Stefan)이 있다. 노래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왼손잡이 여성은 어떤 깨달음을 통해 자기 해방과 자기 성장의 길을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마리아네의 거울상에 해당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Die linkshändige Frau’의 ‘Frau’는 보편적 성격의 ‘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한정적 의미의 ‘여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작품 내용에 더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왼손잡이 여인>의 전체적 구성을 보자면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극적인 사건들의 부재 속에 내용이 전개된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분위기가 작품 곳곳을 지배하고 있으며, 개별 에피소드들은 분석과 고찰이 철저히 가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느슨한 연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왼손잡이 여인>에 접근하는 것은 가히 어두운 미로를 헤쳐 나가는 것에 비견될 만하다. 그럼에도 주인공 마리아네의 존재가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끄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다음의 개별 번역비평에서는 최대한 이를 염두에 두고자 한다.
1) 홍경호 역의 <왼손잡이 女人>(1977)
홍경호는 1970년대 후반에 한트케를 처음 우리말로 번역 소개한 역자이다. 그는 1972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를 ‘그토록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한국문학>의 1977년 1월호 별책부록으로 출간한다. 시기상으로 볼 때, <왼손잡이 여인>의 번역은 아마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위에서 밝혔듯이 <왼손잡이 여인>의 독일어 원제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 마리아네가 듣기를 거듭 반복하는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상호 텍스트성을 지닌 이 노래의 가사는 남편과 별거 상태로 어린 아들과 함께 자립의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그녀의 현재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럼, 노래의 마지막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Ich möchte dich IN EINEM FREMDEN ERDTEIL sehen
Denn da werde ich dich unter den andern endlich allein sehen Und du wirst unter tausend andern MICH sehen Und wir werden endlich aufeinander zugehen(383) <raf>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Handke, Peter(2018): Die linkshändige Frau. In: Prosa. Vol. 2. Berlin: Suhrkamp.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raf>
나 어느 낯선 대륙에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수많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 있는 그대를 만날 수 있으리 그대도 수천의 타인들 가운데서 나를 보고 우리들 끝내는 서로를 향해 다가가리라.(홍경호, 92)
나는 그대를 어느 낯선 대륙에서
보고 싶어 딴 사람들 속에서 그대만을 보고 싶어서 그러면 그대도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볼 것이요 그러면 우리들은 드디어 서로 향해 걸어갈 것이다.(정경석, 119)
나는 어느 낯선 대륙에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러면 타인들 틈에서 진정 혼자인 너를 만날 수 있겠기에 그리고 숱한 타인들 틈에서 네가 나를 만날 수 있겠기에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겠기에(차경아, 84)
1인칭 서정적 자아가 언젠가 낯선 곳에서 만나고자 하는 왼손잡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마리아네의 자아 찾기를 완성한 이상적 인물이다. 독일어 원문에서는 “ich”, “du” 그리고 “wir”로 주어가 바뀌는데,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소망이 점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정경석은 본동사 “sehen”, “zugehen” 등을 독립된 한 행으로 강조하여 번역한다. 역자는 원문의 3행과 4행을 접속사 “denn”으로부터 분리하고 있으나, 이 두 행과 2행은 모두 같은 조동사 “werden”-본동사 구조로 되어 있다. 차경아는 원문에서 대문자로 강조된 부분을 번역문에서도 강조하여 표기하고 있으며 원인이나 근거를 나타내는 어미 ‘-기에’를 이용하여 “denn” 이하 부분을 접속사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 이때 “werden”에는 가능의 뜻이 부여된다. 홍경호의 번역은 정경석과 차경아의 그것과 비교할 때 무엇보다 “있으리”, “다가가리라” 등의 표현으로 미래에 대한 기원을 더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2) 정경석 역의 <왼손잡이 여자>(1977)
정경석은 일찍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아르투어 슈니츨러,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루이제 린저 등 다양한 독일어권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이다. <왼손잡이 여인>에는 문장 부호를 통해 각 구성 부분이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문장들이 많다. 정경석은 이 작품의 번역에 있어 기본적으로 풀어쓰기의 방법을 쓰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한트케의 독특한 표현 형식을 그대로 따르기도 한다. <왼손잡이 여인>의 주인공 마리아네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의 목소리로 규정하는 능동적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불안하고 유동적인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내적 독백이나 직접적 발언 등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한트케는 그것을 밝히는 역할을 외적 존재에게 부여하는데, 마리아네와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가 되곤 한다.
Bruno nahm das Schnapsglas vom Tablett und fragte: 》Du trinkst nichts? Hast du noch etwas vor für diese Nacht?《
Die Frau: 》Bin ich denn anders als sonst?《 Bruno: 》Anders wie immer.《 Die Frau: 》Was heißt das?《 Bruno: 》Du gehörst zu den wenigen Leuten, vor denen man keine Angst haben muß. Und außerdem bist du eine Frau, vor der man nichts spielen will.《(333)
브르노는 쟁반에서 술 잔을 받아들고 물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안 마셔? 오늘 저녁에 또 무슨 일이 있어?」 부인 내가 뭐 전과 다른가요?」 브르노 「전과 다르지.」 부인 「무슨 말이죠?」 브르노 「당신은 사람들이 조금도 겁을 낼 필요가 없는 그런 여자의 한 사람이야. 그리고 더구나 당신 앞에서는 아무도 장난할 생각을 먹을 수 없는 한 부인이란 말야.」(정경석, 18f.)
부르노는 쟁반에서 술잔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당신은 마시지 않겠어? 오늘 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여자가 대꾸했다. 「내가 다른 때보다 다르기라도 한가요?」 「언제나 다르지.」 「그게 무슨 뜻이지요?」 「당신은 그 앞에 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은데. 그리고 당신은 쓸데없이 그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좋을 그런 여자야.」(홍경호, 28)
<왼손잡이 여인>은 장르상 소설에 속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인물들 간의 대화가 전부 드라마의 그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이 가상적 무대의 등장인물이자 관찰 대상이 된다. 이때 이러한 표현 형식이 주는 이질감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언어(또는 침묵)의 교환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정경석의 번역이 한트케의 문체가 가지는 독특함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데 반해, 홍경호의 번역은 대화의 희곡적 형식을 소설의 일반적인 표현 양식에 동화시키고 있다. 후자에서는 두 인물의 대화가 보다 더 응집된 형태로 표현된다.
3) 차경아 역의 <왼손잡이 女子>(1979)
차경아는 1977년 당시 <문학사상>의 독일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동 잡지의 같은 해 3월호 권말 부록으로 <왼손잡이 여인>을 번역 출판했다. 발표 시기로 따지면 세 명의 역자 중 해당 작품을 가장 먼저 우리말로 번역해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문학사상> 번역본과 1979년에 역자가 단행본에 수록하여 간행한 번역본 사이에는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지만, 특이하게도 전자에는 아마도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 중간 제목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단행본에 함께 수록된 해설(‘페터 한트케―그 人間과 文學’)에서 차경아는 <왼손잡이 여인>의 번역과 관련하여 한트케의 “냉담한 언어”가 주는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투철하게 객관적으로 응집된 그의 언어를 전혀 다른 체계와 사고(思考)의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반역(反逆)임을 역자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이라는 생산적 활동에 있어 역자는 자신의 언어로 해석을 시도한다. 관찰 대상에 대해 섣부른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철저한 거리 두기를 추구하는 한트케의 경우, 차경아의 의견에 따르면, 그와 같은 시도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왼손잡이 여인>의 번역은 그것을 수행할 때 한트케의 언어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겠다.
》Du hast dich nicht verraten. Und niemand wird dich mehr demütigen!《(400)
「너는 너를 드러내지 않았어. 그 어느 누구도 너를 굴복시키지 못할 거야!」(차경아, 105)
「그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노라.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그대를 굴복시키지 못하리니!」(정경석, 153)
마리아네는 아직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노래 ‘The Lefthanded Woman’의 왼손잡이 여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어떤 희망이 깃들어 있으나,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차경아는 한트케의 절제되고 담담한 어조에 공명한다. 역자는 작가의 간결한 문체를 잘 살리고 있다. 정경석의 번역은 표면적으로는 차경아의 번역과 의미상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않았노라”, “못하리니” 등의 사용과 함께 일종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곳에서 마리아네는 그녀의 운명을 선포한다.
3. 평가와 전망
한트케는 <왼손잡이 여인>에서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한 여인의 정체성 문제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요즘 같은 감정 과잉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왼손잡이 여인>은 홍경호의 번역이 오랫동안 판을 거듭하며 국내 독자와의 만남과 소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나, 1976년 독일에서 출간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번역을 시도했던 위의 세 역자를 제외하면 아직 한국에서 새로운 역자를 찾지 못했다. 이러한 결핍의 현실과 관련하여 <왼손잡이 여인>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 자체의 어려움에 한정해서 생각해 보자. 이 작품에서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조용한 관찰자인 한트케는 언어와 침묵 사이를 산책하며 이리저리 거닌다. 기존의 번역들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역자들이 이와 같은 언어의 절제와 단순화를 의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때때로 번역문의 의미 구성에 있어 지나친 의욕을 가진 나머지 작가의 미니멀한 표현 의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왼손잡이 여인>의 새로운 번역은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고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홍경호(1977): 왼손잡이 女人. 범우사.
정경석(1977): 왼손잡이 여자. 덕문출판사.
차경아(1979): 왼손잡이 女子. 범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