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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이 드라마는 운문으로 쓰인 극시(ein dramatisches Gedicht)인데 장상용은 순전히 산문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원문에 자주 등장하는 사고선(思考線)과 위의 원문에는 안 나오지만, 이탤릭체로 강조한 표현들도 장상용의 번역에서는 반영되지 않는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위의 첫 번째 밑줄 친 문장은 Weltgebräuche에서 Gesetze까지가 주어로 세상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의 법이고, verdammen(비난하다)이 동사이며, diese Leidenschaft는 목적어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다. 장상용은 이것을 “세상의 관습으로 보나, 자연의 법칙으로 보나, 로마의 율법으로 보나, 모든 것에 어긋나는 빗나간 사랑이겠지”라고 원문의 문장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서 번역했다. 문장 구조와 원문 내용을 조금 바꾸더라도 가독성을 중시하는 번역 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윤도중은 이를 “세상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 교황청의 법규는 이 열정을 단죄하네.”(윤도중, 19)라고 원문 구조 그대로 번역했다. 두 번째 밑줄 친 문장도 윤도중은 “이 길은 광기 아니면 교수대로 나아갈 뿐이야.”(윤도중, 19)라고 직역했고, 장상용은 “언젠가는 정신이 돌아버리고 말 거야. 단두대에서 사라지는 게 고작이겠지.”라고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서 길게 번역했다. |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이 드라마는 운문으로 쓰인 극시(ein dramatisches Gedicht)인데 장상용은 순전히 산문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원문에 자주 등장하는 사고선(思考線)과 위의 원문에는 안 나오지만, 이탤릭체로 강조한 표현들도 장상용의 번역에서는 반영되지 않는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위의 첫 번째 밑줄 친 문장은 Weltgebräuche에서 Gesetze까지가 주어로 세상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의 법이고, verdammen(비난하다)이 동사이며, diese Leidenschaft는 목적어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다. 장상용은 이것을 “세상의 관습으로 보나, 자연의 법칙으로 보나, 로마의 율법으로 보나, 모든 것에 어긋나는 빗나간 사랑이겠지”라고 원문의 문장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서 번역했다. 문장 구조와 원문 내용을 조금 바꾸더라도 가독성을 중시하는 번역 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윤도중은 이를 “세상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 교황청의 법규는 이 열정을 단죄하네.”(윤도중, 19)라고 원문 구조 그대로 번역했다. 두 번째 밑줄 친 문장도 윤도중은 “이 길은 광기 아니면 교수대로 나아갈 뿐이야.”(윤도중, 19)라고 직역했고, 장상용은 “언젠가는 정신이 돌아버리고 말 거야. 단두대에서 사라지는 게 고작이겠지.”라고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서 길게 번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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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10장은 이 희곡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6세기 절대 왕정의 군주 펠리페 2세와 18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선구자 포사 후작이 만나 의미심장한 말들을 주고받는 작품의 핵심 장면이다. 포사는 절대군주제를 비판하면서 아직 무르익지 않은 개혁/혁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 3막 10장은 이 희곡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6세기 절대 왕정의 군주 펠리페 2세와 18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선구자 포사 후작이 만나 의미심장한 말들을 주고받는 작품의 핵심 장면이다. 포사는 절대군주제를 비판하면서 아직 무르익지 않은 개혁/혁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 ||
2025년 4월 14일 (월) 08:46 판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희곡
작가 |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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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787 |
장르 | 희곡 |
작품소개
1783년에서 1787년에 걸쳐 집필된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으로 1787년에 함부르크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16세기에 스페인령이었던 네덜란드의 독립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아들의 약혼녀였던 프랑스 왕가 출신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한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 그의 아들 돈 카를로스 왕자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따왔다. 돈 카를로스는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포사 후작에게 엘리자베스에 대한 괴로운 사랑을 토로한다. 절친한 친구인 포사 후작은 돈 카를로스에게 그들이 함께 품었던 이상과 정치적인 목표를 상기시키고자 노력하고, 계모가 된 엘리자베스 역시 돈 카를로스에게 개인적 연정을 조국에 대한 사랑과 스페인 왕조에 대한 충성으로 바꿀 것을 권고한다. 사랑과 우정에 힘입은 돈 카를로스는 네덜란드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플랑드르 지방 총독을 자청하지만, 아들을 불신하는 펠리페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적 이념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포사 후작이 암살당하고, 자유를 위한 숭고한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돈 카를로스가 부왕에 의해 종교재판에 넘겨지면서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이 희곡은 16세기 스페인 왕정을 무대로 낡은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벌어진 갈등과 대립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시대인 18세기의 프랑스 혁명의 상황을 선취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2008년에 장상용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문학과지성사).
초판 정보
Schiller, Friedrich(1787): Don Karlos. Infant von Spanien. Leipzig: Georg Joachim Goeschen.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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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스: 스페인의 왕자 | 돈 카를로스 | 대산세계문학총서 078 - 희곡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장상용 | 2008 | 문학과지성사 | 10-257 | 편역 | 완역 | ||
돈 카를로스 | 돈 카를로스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 프리드리히 실러 | 윤도중 | 2012 | 지식을만드는지식 | 5-344 | 완역 | 완역 | ||
돈 카를로스 | 돈 카를로스 | 세계문학전집 114 | 프리드리히 실러 | 안인희 | 2014 | 문학동네 | 7-354 | 편역 | 완역 | ||
4 | 돈 카를로스 | 돈 카를로스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 프리드리히 실러 | 윤도중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5-344 | 완역 | 완역 | |
5 | 돈 카를로스 | 돈 카를로스 | 프리드리히 실러 | 윤도중 | 2019 | 지만지드라마 | 3-344 | 완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우리말로 소개된 최초의 독일문학은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 <빌헬름 텔>이다. 1907년 박은식이 “정치소설 서사건국지”로 번안하여 소개했다. 같은 해에 쉴러의 또 다른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가 “애국부인전”이라는 제목으로 장지연에 의해 번안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은 쉴러를 통해 처음 독일문학을 접했다고 할 수 있다.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인 쉴러의 다른 드라마들도 비교적 일찍 번역되었다. <도적 떼>는 1959년에, <메시나 신부>는 1970년에, <발렌슈타인>은 1986년에, <간계와 사랑>은 1990년에, <메리 스튜어트>는 1997년에 번역되었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돈 카를로스>는 이보다 훨씬 늦은 2008년에야 비로소 초역본이 나왔다. 이로써 쉴러의 주요 희곡 8편이 모두 번역 소개됐는데, <돈 카를로스>가 가장 늦게 번역된 것이다. 아마도 이는 이 작품의 국내 연구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2023년 7월 현재 두 편의 석사학위논문과 세 편의 학술논문이 확인될 뿐이다. 자유라는 쉴러의 주제 의식이 역사연구를 통해 더욱 강화되어 이 드라마에서는 16세기에 스페인령이었던 네덜란드의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프랑스 혁명 2년 전인 1787년에 초연되어 18세기 혁명의 상황을 선취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 희곡의 의의를 생각할 때 연구 및 번역 상황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돈 카를로스>의 최초 번역자는 인하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장상용이다. 그의 번역은 대산세계문학총서 078번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는 <오를레앙의 처녀>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2012년 윤도중에 의해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2014년 안인희에 의해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판되어서, 현재까지 총 3명의 역자가 <돈 카를로스>의 번역에 뛰어들었다. 윤도중의 번역은 2014년 같은 출판사에서 큰글씨책으로, 2019년에는 지만지드라마에서 재출판되었다. 2023년 7월 현재 총 5종의 번역서가 존재한다. 장상용, 윤도중, 안인희, 이들 세 명의 번역자는 모두 독일문학 번역에 크게 이바지한 분들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한 학자이자 번역자들이다. 장상용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이 프리드리히 쉴러와 관련된 자신의 “7번째 단행본”(장상용, 438)이라고 말하는데, 2003년 타계하기까지 그는 쉴러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숭실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윤도중은 계몽주의 작가 레싱 전문가로서 레싱과 괴테, 쉴러 등 계몽주의와 고전주의 문학을 다수 번역하였다. 안인희는 쉴러 전문가로서 평생을 번역에 몸 바치어 쉴러의 <빌헬름 텔>, <발렌슈타인>,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를 비롯하여 다수의 번역서를 출판했다.[1]
이하에서는 이들 세 명의 역자의 번역본에 대해 개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장상용 번역본의 의의는 단지 국내 초역이라는 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초역은 번역상의 어색함이나 오류를 다수 노출하는데, 장상용의 번역은 상황 및 내용 전달이 잘 되면서 아주 잘 읽힌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평이한 우리말 구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439)다는 번역 전략은 독자가 작품에 빠져들어 읽어나가게 할 만큼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돈 카를로스. 스페인의 왕자>라는 제목과 부제가 말해주듯 이 드라마는 16세기 스페인의 궁정에서 전개되는데, 시간적/공간적 배경과 잘 어울리는 번역 어휘와 어투로 인해 독자는 사건과 인물, 내용에 공감하며 읽게 된다. 역자는 카를 한저(Carl Hanser) 출판사의 쉴러 전집 2권을 저본으로 하면서 국민판 쉴러 전집도 참조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쉴러의 작품 세계 및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통해 이 드라마가 1787년, 작가 나이 27세에 발표되었는데, 이는 작가의 슈투름 운트 드랑 시기에서 고전주의 시기로 넘어가는, 청년기에서 장년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작품이라는 점과 처음으로 운문을 사용함으로써 외형적으로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5막의 비극인 이 드라마의 1막 2장에서 왕자 카를로스는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어린 시절의 친구 포사 후작에게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에 대해 토로한다.
아냐, 그런 미적지근한 말은 듣고 싶지 않네. 말해주게, 분명히 이 넓은 세상에서 나만큼 비참한 인간은 없다고 말 좀 해주게! 듣지 않아도 그대의 대답은 알고 있네. 자식이 어머니를 사모하다니, 세상의 관습으로 보나, 자연의 법칙으로 보나, 로마의 율법으로 보나, 모든 것에 어긋나는 빗나간 사랑이겠지.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아버님의 권리와 정면으로 대립한단 말이네. 그런 줄 알면서도 체념할 수가 없어. 언젠가는 정신이 돌아버리고 말 거야. 단두대에서 사라지는 게 고작이겠지. 희망도 없고, 도덕적이지도 못한 데다가, 극도로 불안해하면서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도 사랑하고 있단 말이네.(장상용, 20-21)
자기 약혼녀 엘리자베스를 부왕인 펠리페 2세가 아내로 삼는 바람에 사랑하는 여인이 어머니가 되었지만, 왕자 돈 카를로스는 여전히 엘리자베스를 사랑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관습에 어긋나는 걸 알지만 ‘체념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포사 후작에게 털어놓고 있는데, 번역이 매끄럽고 좋아서 카를로스의 심정이 잘 느껴진다. 포사 후작이 친구이자 신하라는 점을 고려하여 장상용은 카를로스의 어투를 격식체이면서 하게체인 ‘-게’ 체로 번역했는데, 이 또한 시대적 배경과 잘 맞아떨어지며, 쉴러가 이 드라마의 문체와 관련하여 말한 “품위와 광채”와 호응하는 것으로 판단된다.[2] 쉴러는 1784년 8월 24일 만하임 국립극장 극장장인 달베르크(Wolfgang Heribert von Dalberg)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이제 약강격시구(Jambus)를 매우 잘 구사하게 되었고, 이 시행이 드라마에 “품위와 광채”(Würde und Glanz)를 부여할 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독일어 원문과 비교해 보면 장상용의 뛰어난 가독성은 의역에 빚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Nein! Diese Schonung will ich nicht. Sprichs aus, Sprich, daß auf diesem großen Rund der Erde Kein Elend an das meine grenze – sprich - Was du mir sagen kannst, errate ich schon. Der Sohn liebt seine Mutter. Weltgebräuche, Die Ordnung der Natur und Roms Gesetze Verdammen diese Leidenschaft. Mein Anspruch Stößt fürchterlich auf meines Vaters Rechte. Ich fühls, und dennoch lieb ich. Dieser Weg 280 Führt nur zum Wahnsinn oder Blutgerüste. Ich liebe ohne Hoffnung – lasterhaft - Mit Todesangst und mit Gefahr des Lebens - Das seh ich ja, und dennoch lieb ich.(17-18. 밑줄 강조 필자)[3]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Schiller, Friedrich(1981): Don Carlos. In: Sämtliche Werke. Zweiter Band Dramen II.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
우선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이 드라마는 운문으로 쓰인 극시(ein dramatisches Gedicht)인데 장상용은 순전히 산문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원문에 자주 등장하는 사고선(思考線)과 위의 원문에는 안 나오지만, 이탤릭체로 강조한 표현들도 장상용의 번역에서는 반영되지 않는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위의 첫 번째 밑줄 친 문장은 Weltgebräuche에서 Gesetze까지가 주어로 세상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의 법이고, verdammen(비난하다)이 동사이며, diese Leidenschaft는 목적어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다. 장상용은 이것을 “세상의 관습으로 보나, 자연의 법칙으로 보나, 로마의 율법으로 보나, 모든 것에 어긋나는 빗나간 사랑이겠지”라고 원문의 문장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서 번역했다. 문장 구조와 원문 내용을 조금 바꾸더라도 가독성을 중시하는 번역 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윤도중은 이를 “세상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 교황청의 법규는 이 열정을 단죄하네.”(윤도중, 19)라고 원문 구조 그대로 번역했다. 두 번째 밑줄 친 문장도 윤도중은 “이 길은 광기 아니면 교수대로 나아갈 뿐이야.”(윤도중, 19)라고 직역했고, 장상용은 “언젠가는 정신이 돌아버리고 말 거야. 단두대에서 사라지는 게 고작이겠지.”라고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서 길게 번역했다.
3막 10장은 이 희곡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6세기 절대 왕정의 군주 펠리페 2세와 18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선구자 포사 후작이 만나 의미심장한 말들을 주고받는 작품의 핵심 장면이다. 포사는 절대군주제를 비판하면서 아직 무르익지 않은 개혁/혁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Die lächerliche Wut Der Neuerung, die nur der Ketten Last, Die sie nicht ganz zerbrechen kann, vergrößert, Wird mein Blut nie erhitzen. Das Jahrhundert Ist meinem Ideal nicht reif. Ich lebe Ein Bürger derer, welche kommen werden. Kann ein Gemälde Ihre Ruhe trüben? ― Ihr Atem löscht es aus.(121-122. 밑줄 강조 필자)
속박의 사슬을 끊을 힘도 없으면서 점점 더 그 짐의 무게에 짓눌리기만 하는, 우스꽝스러운 혁신의 열기가 저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이 세기는 아직 저의 이상을 실현시킬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다가오는 시대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겨우 한 장의 밑그림이 폐하의 심사를 어지럽히기야 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입김만 불어넣어도 금방 꺼져버릴 테니 말입니다.(장상용, 143-144)
개혁의 우스꽝스런 열기는 완전히 끊지 못하는 쇠사슬의 무게만 가중시킬 뿐 제 피를 뜨겁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 시대는 제 이상을 위해서는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올 시대의 시민으로 살겠습니다. 그림이 폐하의 심기를 어둡게 할 수 있습니까? 폐하의 입김이 그걸 지워 버립니다.(윤도중, 185-186)
여기서도 의역을 한 장상용의 번역이 윤도중의 것보다 분량이 많은 점이 눈에 띈다. 장상용은 “같습니다”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원문에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왕과 신하의 대화이기에 역자가 그런 관계성에 적합하게 표현의 누그러뜨리기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의 첫 번째 밑줄 친 문장을 윤도중은 “이 시대는 제 이상을 위해서는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라고 직역했다면, 장상용은 “이 세기는 아직 저의 이상을 실현시킬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의역했다. 밑줄 친 마지막 두 문장에 대한 번역에서도 윤도중은 “그림이 폐하의 심기를 어둡게 할 수 있습니까? 폐하의 입김이 그걸 지워 버립니다.”라고 문장 그대로 번역했다면, 장상용은 “겨우 한 장의 밑그림”이나 “입김만 불어넣어도 금방” 같은 원문 너머의 표현을 넣어 -이는 번역자의 해석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용 전달의 수월성을 추구했다. 장상용은 무엇보다 내용 전달에 초점을 두고 번역함으로써 그의 말대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가독성 좋은 번역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형식 부분(운문, 사고선, 강조 표현)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하겠다.
윤도중의 번역본은 장상용의 그것보다 4년 늦은 2012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판되었다. 윤도중은 카를 한저 출판사의 쉴러 전집을 저본으로 했으며, 이 드라마가 “운문으로 된 비극”인데 “역자의 능력 부족으로 원문의 운율을 살리지 못해 산문으로 옮긴 데 대해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358)고 말한다. 윤도중은 해설에서 이 작품의 주제는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돈 카를로스와 펠리페 2세, 포사 후작의 관계를 분석하면 드러난다며 이들의 성격과 처한 상황에 관해 설명한다. 카를로스와 왕은 무엇보다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으며 포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사는 “그들을 도구로서만 생각”(350)한다며, “현실 정치 세계에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정치적·인간적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치밀한 계산에 따른 속임수나 간계를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347) 부정적인 인물로 포사를 설명한다. 사실 포사 후작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 두 가지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그를 자유의 시인 쉴러의 대변자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간을 수단화하는 이념적 폭군으로 보기도 한다. 윤도중은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장상용의 번역과의 비교에서 드러난 것처럼 윤도중 번역본의 특징은 최대한 원문 그대로 번역하는 직역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직역은 많은 어색함을 동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윤도중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무리 없이 잘 읽힌다. 4막 13장에서 카를로스는 부왕의 친위대장인 레르마 백작으로부터 포사 후작이 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카를로스는 포사가 자유주의 사상의 실현이라는 자신의 이상과 정치적 목표를 위해 카를로스 자신이 아닌 힘을 가진 왕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Er hat Mich liebgehabt, sehr lieb. Ich war ihm teuer Wie seine eigne Seele. O, das weiß ich - Das haben tausend Proben mir erwiesen. Doch sollen Millionen ihm, soll ihm Das Vaterland nicht teurer sein als einer? Sein Busen war für einen Freund zu groß, Und Carlos’ Glück zu klein für seine Liebe. 3970 Er opferte mich seiner Tugend. Kann Ich ihn drum schelten? - Ja, es ist gewiß! Jetzt ists gewiß. Jetzt hab ich ihn verloren.(158. 밑줄 강조 필자)
그 사람은 나를 좋아했어, 아주 많이. 나는 그에게 그 자신의 영혼처럼 소중한 존재였지. 오, 나는 그걸 알아. 수많은 시험이 그걸 입증해 주었지. 하지만 그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이 한 사람보다 더 소중하지 않겠나? 그의 가슴은 벗 하나만 품기엔 너무 컸고, 카를로스의 행복은 그의 사랑에는 너무 작았어. 그는 자신의 미덕을 위해 나를 희생시켰구나. 내가 그 때문에 그를 탓할 수 있겠나? 그래, 확실해. 이젠 분명해. 이제 그 사람을 잃고 말았구나.(윤도중, 245)
카를로스는 대의를 위한 포사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친구를 잃은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그런 그의 심정이 잘 느껴진다. 한 군데만(“카를로스의 행복은 그의 사랑에는 너무 작았어.”) 아주 조금 어색할 뿐 전체적으로 의미 전달이 잘 된다. 위의 밑줄 친 문장의 경우 장상용은 “O, das weiß ich”를 “그것을 내가 어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로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바꾸면서 (의문부호는 없지만 ‘-까’는 의문형 종결어미이다) 카를로스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번역을 했다. “Das haben tausend Proben mir erwiesen”은 “그것은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에요”(장상용, 186)라고 “여러 가지 사실”이나 “쉽게” 같은 원문에 없는 말들을 넣어가며 가독성에 주력했다. 이에 비해 윤도중은 원문대로 “오, 나는 그걸 알아. 수많은 시험이 그걸 입증해 주었지.”라고 직역했는데, 어색함이 아니라 오히려 원문과 같은 깔끔함이 전해진다. 그리고 카를로스의 이 심정 토로는 정황상 레르마 백작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혼잣말로 보는 것이 맞을 거 같다. 장상용은 처음에는 레르마 백작에게 하는 말로 번역하다가 마지막 문장에 가서는 “그래, 틀림없이 바로 그거야. 확실해. 이제 나는 그 사내를 잃어버린 거야.”(장상용, 186)라고 독백 조로 번역했는데, 윤도중은 처음부터 독백조로 번역했다. 윤도중의 번역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원문에서는 부정(不定)대명사 “einer”와 부정관사 “einen”이 이탤릭체로 표기됨으로써 카를로스가 “수많은 사람들” 또는 “조국”에 비하여 자신은 그저 한 명의 개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점과 카를로스가 말을 중지하고 잠시 생각하는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고선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상용과 마찬가지로 윤도중도 형식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은 점이 아쉽다.
2014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4권으로 나온 안인희 역의 <돈 카를로스>는 앞의 두 번역본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을 보여준다. 앞의 두 번역자가 원문의 형식적인 면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과 달리 안인희는 극시인 이 드라마의 “얌부스 율격(약강격)을” “우리말로 율격까지 옮기지는 못했으나, 원문의 행을 그대로 지키려 노력”했고, “10행 단위로 텍스트 옆에 행을 표시”(안인희, 4)했다. 저본으로는 카를 한저 출판사의 쉴러 전집을 사용했다고 밝히면서, 원문에서 이탤릭체로 강조한 부분을 고딕체로 표기했다고 일러두기를 통해 말한다. 그리고 “『돈 카를로스』, 사랑과 우정의 삼중주”라는 제목의 해설을 통해 이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형성과정, 편지 및 판본에 관해 상세히 소개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번역서에 긴 부록이 들어있는 점이다. <라인 탈리아>에 수록된 헌사, <라인 탈리아>의 서문, <탈리아>에 수록된 각주, <돈 카를로스>에 부치는 편지가 그것인데, 이는 이 드라마의 이해를 위한 작가 자신의 글들로 안인희가 저본으로 사용한 한저 출판사 쉴러 전집에 작품과 함께 실린 글들이다. 쉴러는 1785년 자신이 발행한 잡지 <라인 탈리아>에 <돈 카를로스>의 일부를 수록했다. 이 잡지는 1호로 폐간된 후에 <탈리아>라는 제호로 속간되었다. 이 잡지들에 실린 <돈 카를로스>와 관련된 세 편의 글과, 작가가 이 드라마에 대한 세간의 비난에 대해 포사 후작의 행동과 동기를 정당화하고 그와 카를로스의 관계를 드라마의 기본 이념 차원에서 설명하기 위해 쓴 12편의 편지도 쉴러 전집에 같이 실려있는데, 안인희는 이 글들을 다 번역하여 같이 수록한 것이다. 안인희 역의 <돈 카를로스>는 원본에 가장 충실을 기하려 한 학술적 성격의 번역서라는 점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앞에서 인용했던 4막 13장 돈 카를로스의 아쉬움 토로, 즉 레르마 백작의 말을 듣고 절친인 포사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했던 말에 대한 안인희의 번역을 살펴보자.
그는 나를 사랑했어. 몹시. 나는 그에게 그 자신의 영혼만큼이나 소중했는데. 오, 난 그걸 알고 있어. 천 번의 시험으로 입증된 일인데. 하지만 그에게는 한 사람보다는 수백만 명이, 조국이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의 마음은 한 친구에게 머물기엔 너무 크지. 그리고 카를로스의 행복이란 그의 사랑엔 너무 하찮지. 3970 그는 자신의 미덕을 위해 나를 희생시켰구나. 그렇다고 그를 나무랄 수 있을까? 그래, 그건 확실하다! 이젠 확실해. 이제 난 그를 잃었구나.(안인희, 254)
앞의 장에서 제시한 원문과 비교해 볼 때, 안인희의 번역은 원문의 운문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마치 독일어만 한국어로 대치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 같은 원문의 문장 구조를 지켜 번역했고, 물음표와 느낌표, 감탄사 같은 문장 성분들도 그대로 한국어로 옮겼다. 그래서 문장의 길이 또한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러두기에서 말한 것처럼 원문의 이탤릭체를 고딕체로 표기하여 강조했다. 원문에 두 번 나오는 사고선만 반영하지 않은 점이 예외라 하겠다. 이제 번역의 내용적 측면을 살펴보면, 안인희도 윤도중과 마찬가지로 직역을 추구한 점을 알 수 있다. 윤도중은 “Und Carlos’ Glück zu klein für seine Liebe.”에서 klein을 단어의 일차적 의미로 국한해서 “카를로스의 행복은 그의 사랑에는 너무 작았어.”라고 번역했는데, 안인희는 klein의 비유적 의미인 ‘하찮다’를 이용하여 “그리고 카를로스의 행복이란 그의 사랑엔 너무 하찮지.”라고 번역함으로써 어색하지 않게 내용이 잘 전달되게 했다. 그리고 “-어”[4], “-지”[5], “-구나”[6]와 같은 문맥에 맞는 종결어미를 사용함으로써 카를로스의 위의 말이 독백인 점이 잘 드러나게 했다. 그런데 안인희의 번역에는 종결형이 일관적이지 않고 어색한 곳도 종종 발견된다. 앞의 장상용 역의 <돈 카를로스> 장에서 인용했던 1막 2장의 장면, 즉 카를로스가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친구 포사 후작에게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털어놓는 장면에 대한 안인희의 번역을 살펴보자.
아니! 그런 너그러움을 바라는 게 아니다. 말해라, 말해. 지구 전체의 그 어떤 비참함도 내 비참에 견줄 수 없다고―말해라― 네가 할 말을 난 벌써 짐작하고 있지.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한다니. 세계의 관습, 자연의 질서, 로마법, 이 모든 게 내 열정을 저주한다고. 내 열망은 끔찍하게도 내 아버지의 권리와 충돌한다. 나도 그걸 느껴. 그런데도 사랑한다. 이건 280 광증 아니면 처형대로 통하는 길. 나는 희망 없는 사랑을 한다. 죄 많은 사랑, 죽음의 공포와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한다.(안인희, 23-24. 밑줄 강조 필자)
안인희의 번역에서는 문장의 종결형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네가 할 말을 난 벌써 짐작하고 있지.”나 “나도 그걸 느껴.”와 같은 경우 두 사람이 친구라는 점을 고려한 어투라 하겠다. 하지만 밑줄로 표시한 것처럼 “-(한)다”라는 서술형 종결 어미가 여러 번 사용되는데, 카를로스가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 포사에게 털어놓는 상황에서 이런 종결형이 적합한지 의문이다. 그리고 카를로스는 포사에게 “말해라”라고 두 번 명령조로 말하는데, 이는 “Sprichs aus / Sprich”에 대한 번역이다. 카를로스(A)는 왕자이고 포사(B)는 친구이자 신하로서 A는 B에게 duzen(말을 놓다)을 하고 B는 A에게 Siezen(존댓말을 쓰다)을 하는 상황이지만, 장상용과 윤도중은 “말해주게”라고 “손아래나 허물없는 사이에 무엇을 시키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인 “-게”[7]로 번역한 것과 대비된다. 카를로스는 포사를 신하보다는 친구로 생각하고 있고, 두 사람이 나중에 서로 duzen하는 것을 볼 때, “말해라”보다는 “말해주게”가 더 적합한 듯하다. 한편 카를로스의 이런 일관적이지 않은 어투로 인해 카를로스가 미숙하고 불안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추어지는데, 주인공의 그런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역자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번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문의 어투는 그렇지 않기에 원문에 호응하는 번역은 아닌 거 같다. 안인희의 번역은 중요한 장면에서 의미 전달이 잘 안 되는 단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앞에서 인용했던 포사가 왕 앞에서 아직 무르익지 않은 개혁/혁신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 대한 안인희의 번역을 살펴보자.
그 소원들을 완전히 부수지도 못하면서 쇠사슬의 무게만 더욱 키우는 혁신을 향한 우스꽝스러운 열광이 저의 피를 뜨겁게 달구지는 못할 겁니다. 이 세기는 저의 이상에 알맞게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다가올 세계의 시민으로 살지요. 그림 하나가 마마의 평화를 해칠 수 있을까요? 마마의 숨결이 그것을 지워버릴 겁니다.(안인희, 194)
포사의 이 진술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대의 자유사상에 의한 “혁신”은 아직 절대군주제를 뒤엎을만한 힘이 없고 포사 자신의 피를 “달구지” 못한다는 점(1), 이번 세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에 자신은 다가올 세기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2), 왕의 입김에 의해서 그 개혁의 열기는 꺼져버릴 거라는 점(3)을 말하고 있다. 이 중 (1)과 (3)의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원문에 없고 문맥에도 맞지 않는 “소원”이라는 말이 나오고 “Jahrhundert”(세기)를 “세계”로 잘못 번역한 점, 왕의 심기/심사라는 의미의 “Ihre Ruhe”를 “마마의 평화”로 번역한 것 등이 내용 전달을 어렵게 한다. 안인희의 번역서는 저본에 충실해지려 한 장점이 있지만, 종종 내용 전달이 잘 안 되는 단점도 보여준다.
3. 평가와 전망
<돈 카를로스>는 쉴러의 다른 희곡들에 비해 상당히 뒤늦게 2008년에야 비로소 장상용의 초역본이 나왔지만, 2012년과 2014년에 윤도중과 안인희에 의해 새로운 번역서가 나오고 윤도중의 번역이 2014년과 2019년에 다른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면서 약 10년 사이에 5권의 번역서가 나왔다. 출발은 늦었지만 짧은 기간 안에 3종의 괄목할만한 번역서가 나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의역을 통해 가독성을 살린 장상용의 초역에서 직역을 추구하면서도 비교적 내용 전달이 매끄러운 윤도중의 번역을 거쳐 운문이라는 원문의 형식을 지키며 번역에 행을 표시하고 저본인 쉴러 전집의 작품과 관련한 글들도 번역하여 수록함으로써 학술적 성격이 강한 안인희 번역서에 이르는 이 작품의 번역사는 번역서가 나올 때마다 원문에의 충실성 쪽으로 나아간 점에서 하나의 발전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직역에 의한 번역의 경우 종종 가독성 면에서 문제를 보인 점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제 원문에 더욱 충실하면서도 내용과 분위기도 잘 전달되는 새로운 번역서의 출현을 기대해보면서 글을 마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장상용(2008): 돈 카를로스. 문학과지성사.
윤도중(2012): 돈 카를로스. 지식을만드는지식.
안인희(2014): 돈 카를로스. 문학동네.
바깥 링크
1. Projekt-Gutenberg 보기
- ↑ 안인희는 2022년 9월 24일 재단법인 한독문학번역연구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독일문학 번역에 공로가 큰 번역가 세 명에게 수여한 “번역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 쉴러는 1784년 8월 24일 만하임 국립극장 극장장인 달베르크(Wolfgang Heribert von Dalberg)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이제 약강격시구(Jambus)를 매우 잘 구사하게 되었고, 이 시행이 드라마에 “품위와 광채”(Würde und Glanz)를 부여할 거라고 말한 바 있다.
- ↑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Schiller, Friedrich(1981): Don Carlos. In: Sämtliche Werke. Zweiter Band Dramen II.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
- ↑ 선어말 어미 ‘-었-’, ‘-겠-’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서술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의 “-어9” https://ko.dict.naver.com/#/entry/koko/f7efc6e7aaca4f73a29108773d3e001f
- ↑ 어떤 사실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거나 묻거나 명령하거나 제안하는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의 “-지24” https://ko.dict.naver.com/#/entry/koko/031a794c5a08448f90f84ebc2dfe13a9
- ↑ “혼잣말에 쓰여, 화자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주목함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흔히 감탄의 뜻이 수반된다.”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의 “-구나3” https://ko.dict.naver.com/#/entry/koko/9aa2dd4dccc74437a100a22b7ac4fb83
- ↑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의 “-게12”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24c3af227c64ff98ef08ff84bd2b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