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und Julia auf dem Dorfe)

Root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11일 (화) 01:14 판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 1819-1890)의 노벨레


작품소개

고트프리트 켈러가 1856년에 발표한 노벨레 연작집 <젤트빌라 사람들>(1부)에 들어있는 노벨레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기댄 이 작품에서 켈러는 자기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하에서 젊은 연인의 어쩔 수 없는 비극적 최후를 묘사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농부 만츠와 마르티는 좋은 이웃으로 화목하게 지냈는데, 두 사람의 밭 사이에 방치돼 있던 땅을 둘러싸고 송사를 벌이다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물질적 소유욕과 부정적 명예욕으로 인해 쫄딱 망한 두 사람은 상대를 자기 불행의 원천으로 여기며 가족들에게도 그런 생각을 강요한다. 원수가 된 두 집안의 자녀 잘리와 브렌헨은 서로에 대해 아무 소식도 모른 채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자 금방 사랑에 빠져든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명예롭고 양심에 거리낌 없는 결혼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감정이 두 사람을 사로잡고 있다. 두 사람은 오로지 좋은 기반과 토대 위에서 행복해지고 싶었기에,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강물에 투신한다. 이들의 비극적 결말에 대해 기성 사회는 동정심이나 이해심이 전혀 없다. 풍기문란과 무분별한 열정에 대해서만 한탄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당시 시민사회의 고지식한 편협성과 획일성이 드러나는데, 이는 세태에 대한 작가의 풍자적 비판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독일 시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며, 독일문학의 고전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1959년 이병찬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양문문고).


초판 정보

Keller, Gottfried(1856): Romeo und Julia auf dem Dorfe. In: Die Leute von Seldwyla. Braunschweig: Vieweg, 209-359.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陽文文庫 63 G. 켈러 李炳璨 1959 陽文社 6-114 편역 완역
2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곳트프리이트 켈러 丘冀星 1960 乙酉文化社 246-305 편역 완역
3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내 비록 지금 슬퍼도 현대여성파아트너북 켈러 朴南秀 1965 三中堂 5-115 편역 완역
4 마을의 로메오와 유리아 近代獨逸短篇集 世界文學全集 20 곳트프리이트 켈러 구기성 1974 乙酉文化社 246-305 편역 완역 1960년 초판발행 1974년 13판 발행
5 시골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 독일 단편문학 산책 고트프리트 켈러 오용록 2013 신아사 151-203 편역 완역
6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젤트빌라 사람들 창비세계문학 29 고트프리트 켈러 권선형 2014 창비 15-102 편역 완역 <젤트빌라 사람들>의 1부 서언(9-14쪽)과 2부 서언(157-160쪽) 번역수록됨
7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젤트빌라 사람들, 큰글자도서 1 창비세계문학 28 고트프리트 켈러 권선형 2018 창비 216-251 편역 완역 <젤트빌라 사람들>의 1부 서언(9-14쪽)이 번역수록됨


1. 번역 현황 및 개관

스위스의 사실주의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가 1856년에 <젤트빌라 사람들> 이라는 단편집 안에 출판한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59년에 이병찬이 처음으로 <마을의 로미오와 쥴리엣>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양문당에서 출판하였다. 동일 역자는 1973년에 서문당에서 <마을의 로미오와 쥴리에트>라는 제목으로, 1981년에는 삼성미술문화재단에서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에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다시 출판하였다(서문당 문고의 경우 번역자의 이름 찬(燦)이 린(燐)으로 오기되어 ‘이병린’으로 되어 있고 삼성문화재단의 경우 ‘이병걸’로 되어 있음). 모두 이 작품 하나만을 독립적으로 번역하였다. 1960년에는 구기성이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 <근대독일단편집> 속에 8명의 다른 작가의 단편들과 더불어 ‘곳트프리이트 켈러’의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라는 독어식 제명으로 번역본을 수록하였다. 구기성은 작품의 무게와 널리 애독될 수 있는 일반적인 성격을 선정 이유로 밝히고 있다. 1965년에는 박남수가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으로 삼중당의 ‘현대여성파트너북’의 한 권으로 출판하였다. 오랜 휴지기를 거쳐 1997년에 이명우는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라고 제목을 다시 독어식 발음으로 출판하였는데, 이 한 편만 번역한 것이 아니라 <젤트빌라 사람들> 중 또 다른 대표작이라 할 <옷이 사람을 만든다>와 같이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2002년에는 정서웅이 <마을의 로미오와 쥴리엣>으로 다시 영어식 제목으로 돌아가 이 작품 하나만을 가지고 출판하였다. 또다시 상당 기간의 휴지기를 거쳐 2014년 권선형이 <젤트빌라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총 열 작품 중 네 작품을 선정해서 번역하는 가운데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역하여 가장 앞에 배치하였다.

번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1960년을 전후로 독일문학 작품들이 처음으로 완역되어 소개되는 흐름 속에서 이 작품도 세계 명작의 하나로 평가되어 세 명이 번역본을 내었다. 이때까지는 주로 문고본이나 세계문학전집, 독일문학 모음집 안에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1990년 이후에는 이명우, 정서웅, 권선형이 단행본으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작품명들을 보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번역하는 영어식 제목과 로메오와 율리아라고 독어식으로 읽는 제목이 번갈아 가며 사용되고 있다. 원작이 독어로 쓰인 작품이라 독어식 음차 번역이 자연스러우나 영어식 제목을 택한 이유는 가장 최근에 번역한 권선형 같은 경우 “셰익스피어 작품과의 유사성”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병찬 역의 <마을의 로미오와 쥴리엣>(1959)

이병찬의 번역은 초역으로서 이 작품을 처음으로 한국 독자에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역자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병찬은 ‘곳트프리이트 켈러’ 작품의 “낭만적 정신”을 강조하면서 “허욕과 윤락과 아집의 수레바퀴 속을 도는 부모를 가진 한 마을의 소년소녀의 감미로운 순정이나 악을 저주하는 고귀한 품성이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정”(4)을 작품의 주된 성격으로 설명한다. 또한 작가의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나 전원의 자연과 풍속에 대한 묘사는 “포이에르 바하의 현실적 철학의 영향”(4)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병찬은 영국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처럼 원수가 된 부모와 그 자식들 간의 절망적 사랑을 강조한 작품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저본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에 보다 집중하는 켈러 초판본을 택하고 있으며, 때문에 번역본은 신혼 첫날을 보낸 두 사람이 새벽 강물을 배경으로 “차가운 물 속으로 스르르르 미끄러졌다”(146)는 비극적 장면으로 끝이 나고 있다.

역자는 전체적으로 원문을 매우 자유롭게 번역하고 있는데 직접 독어본에서 번역했다기보다는 다른 번역본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독어 원문과 다른 문단 나누기가 많이 이루어지고 대화나 시 부분 등이 원본과 다르게 배치되어 있으며, 또한 독일어 원작에 없는 어휘나 설명 등이 자주 추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을 꾸려 나가는 것을 결코 한가로운 이들이 하는 그런 표절적 행위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7)라는 첫 소절에서부터 원문과는 거리를 보여준다. “한가로운 이들이 하는” 등의 새로운 내용을 역자가 덧붙였을 뿐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다는 주절을 설명하기 위한 종속절이 아니라 종속절 자체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병찬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역자가 자주 어휘와 단락을 소소하게 첨가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어휘를 첨가하고 문장과 단락을 변형하고 한국식 관용 표현과 속담 등을 추가한 것 등은 당대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보다 쉽게 작품을 이해하게 해주고 작품의 사건과 주인공들의 운명을 인간의 보편사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2) 구기성 역의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1960)

구기성의 켈러 번역은, 클라이스트부터 시작하여 슈니츨러, 파울 에른스트까지 9편의 단편을 모은 <근대독일단편집 Deutsche Novellen der Neuzeit>의 한 작품으로 들어있다. 역자 서문에서 구기성은 이 작품이 “제목이 암시해 주듯이,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유사한, 상호불화한 두 가정의 소년·소녀의 구슬프고도 가련한 사랑의 이야기”로 “너무나도 치밀하고 사실적인 필치”(17)로 그려져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구기성은 제목에서부터 엿보이듯 독어본에서 직접 번역하고 있으며 재판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초역으로서 흔히 범하기 쉬운 번역상의 사소한 오류들이 일부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원문에 상당히 충실하면서도 가독성이 뛰어난 번역을 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문장구조, 단락 나누기나 대화의 편집 등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비록 세로쓰기로 되어 있고 어휘나 화자의 말투가 옛투(예: “제금장이”(273), “풍기문란과 정욕야성화”(305))이기는 하나, 켈러의 언어와 작품을 잘 이해하면서 매우 충실하게 번역하여 전달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 읽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3) 박남수 역의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1965)

박남수의 번역본은 <내 비록 지금 슬퍼도>라는 표제어를 단 단편집 속에 수록되어 있다. 라게를뢰프라는 스웨덴 출신의 노벨상 수상 작가의 다른 단편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 편집이 되어 있으며, 번역자는 어려서 읽은 작품의 “앳되고 순정적인 사랑에”(363) 감명을 느껴 이를 보존하고 싶었다는 것을 동기로 밝히고 있다. 번역은 어휘, 구문, 문장들의 연결이 원본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옮겨져 있고 오역들도 적지 않아 독어본에서 직접 번역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시작 문장부터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기초로 해서 씌어진 것이다”(5)라는 단정이 나온다든지 “이렇듯 한 이야기가 분량에 있어서 많지는 않지만”(5)이라는 오역 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켈러 작품의 종속문을 가진 긴 구문들은 내용에서도 조심스러움을 담고 있는데, 박남수는 자주 문장들을 짧게 끊고 직독 직해가 가능하게 바꾸고 내용을 추가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싸움에서 젊은 남녀가 재회하고 빠져드는 광경 묘사에서도 “결국 그들은 모두 아버지들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39)라고 결론을 선취하는 내용을 추가하고 있고, 이들 죽음에 대한 마지막 평가는 “풍기퇴폐, 연애방종화의 한 본보기”(115)로 옮기고 있다. 비록 원본에 충실치 않지만, 삽화들을 넣는다든지 두 남녀의 사랑의 감각적 측면을 강조한다든지 하여 독자가 흥미진진하게 사랑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대중화 성향을 보여준다.


4) 이명우 역의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1997)

이병찬의 번역보다 거의 30여 년 뒤에 나온 이명우의 번역본은 역자 서문에서 말하듯 “이미 번역본이 나와 있긴 하지만” “직접 독어 원본으로부터” 다시 번역했다고 씀으로써 새 번역이 필요했던 시대적 간극을 설명하고 있다. 번역본은 가로쓰기로 바뀌어 일단 읽기 쉽게 편집이 되어 있다. 역자는 원작과의 대조를 통하여 더욱 꼼꼼하게 번역하여 이병찬이나 박남수의 번역과는 작지 않은 차이가 드러난다. 이명우의 경우 1875년에 나온 완결판을 번역의 토대로 삼고 있다. 원본에서 충실히 옮기려는 시도 때문에 부분적으로 이해가 바로 되지 않는, 낯설고 거친 어휘와 문장들도 자주 등장한다. 초판본과 완결본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작품 말미에 있는 두 주인공의 자살에 대한 당대 사회의 비판이 담겨있는 신문 기사가 있는가의 유무에서 드러난다. 이명우는 이 부분을 “점점 만연되어가는 도덕적 퇴폐와 풍기문란 현상에 대한 또 하나의 징표”(130)라고 번역을 하면서 동시에 소설 속의 사건을 보는 자신의 시각을 드러낸다. 즉 원문은 “ein Zeichen von der um sich greifenden Entsittlichung und Verwilderung der Leidenschaften”으로, 노년의 작가가 “야만(무분별) Verwilderung”이란 어휘에서 보다시피 젊은이들의 사랑과 열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운데에서도 작품 전체의 구성과 전개에서처럼 ‘비도덕 Entsittlichung’과 ‘정열 Leidenschaft’을 대비시키는데, 이와 달리 역자는 “도덕적 퇴폐와 풍기문란”으로 정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아 한 방향에서의 부정적 시각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점은 역자가 직접 쓴 ‘작품 설명’에서도 드러나는데, 패가망신, 정사, 멸문지화, 물욕, 아집, 화목한 선린정신 등의 주제어에서 보듯 작품의 사건들을 인간사의 도덕적 타락으로 보고 있다.


5) 정서웅 역의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2002)

정서웅의 번역은 제목에서 보다시피 다시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장선상에서 작품을 해석하고 번역하고 있다. 정서웅의 번역은 저본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이명우의 번역에 담겨있는 자잘한 오류들을 수정하고 있으며 다소 투박하고 거친 문체도 유려하게 수정하고 동시대의 어법으로 바꾸고 있다. 작품 말미의 신문 기사는 원작과 달리 줄 바꿈을 통해 기사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풍기문란과 무분별한 열정”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 이 “열정 Leidenschaft”는 사회적 시각에서는 풍기문란으로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출구 없는 젊은 청춘의 정열적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작품 전체에 흐르는 큰 분위기를 보여준다. 정서웅은 이명우보다는 역자의 자유 여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한 단락 나누기를 자주 하여 독자가 읽기 쉽도록 소설을 변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편의 문학작품으로 잘 읽히는 번역을 하고 있으나 소소히 누락된 부분이 가끔 눈에 띈다.

정서웅이 책 후반부에 ‘<젤트빌라의 사람들> 프롤로그’라는 이름으로 ‘서언’을 같이 번역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데,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자주 언급되는 ‘젤트빌라 사람들’의 성향을 보여줌으로써 당대 스위스 사회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처음에 아버지들인 만츠와 마르티가 건실하고 부지런하며 존경받는 농부로 등장할 때는 젤트빌라 사람들을 “젤트빌라의 사기꾼”으로 부르면서 자신들과 구분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주변부에 속하는 떠돌이 바이올린쟁이의 재산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며 경매 이후 점차 그들과 닮아 속물이 되어가다가 결국에는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사회의 밑바닥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이렇게 기준틀로 작용하는 소설 틀이야기의 공간적 문화적 배경을 밝혀주는 것은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소설 안에서 ‘젤트빌라’는 오래된 스위스의 평범한 마을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부침이 심한 당대 스위스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과 우려가 위트와 재치로 포장된 가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6) 권선형 역의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2014)

권선형의 번역은 사실주의 전공자의 번역이며 처음으로 단편집 <젤트빌라 사람들>이라는 제명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네 편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1부는 서언과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 사람>, 그리고 2부는 서언과 <옷이 사람을 만든다>, <자기 행운의 개척자>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모음집에 담긴 모든 작품을 번역한 것은 아니지만 <젤트빌라 사람들>의 여러 작품과 같이 소개한 것은 의미가 크다.

권선형은 역자 후기에서 사회적 배경을 ‘문화운동의 변증법’이라는 켈러 스스로가 쓴 문학관, 미학관으로부터 설명하고 있다. 이 개념은 작가가 옛 고전 작품의 사건들이 자기 시대에도 일어나는 사실들을 목도하면서 이 사건들이 걸치고 있는 새로운 옷, 즉 동시대적 환경을 배경으로 서술하려는 의도를 가리킨다. 무엇보다도 19세기 후반기에 급격하게 산업화, 도시화, 자본주의화 되는 스위스 사회의 변화와 관련된다. 즉 다시 말해서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제목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더불어 또 다른 방점을 이루는 ‘마을’, 즉 스위스의 당대 현실이 강조된 것이다. 이는 경매, 소유권 다툼과 소송, 복권, 투기 등의 과정을 통해 묘사된다.

역자는 역자 후기에서 소설이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며 신문 기사를 인용하고 있고 더불어 까다로운 본문의 서언도 잘 이해가 되게 번역하고 있다. 앞서의 번역들과 달리 보편인간사적인 운명이라기보다는 당대 스위스 사회의 변혁의 물결이라는 틀 속에서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이는 특히 시민계급의 분화와 변화에 집중하는 “시민적 사실주의”라 불리는 독어권 사실주의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모범이었던 두 시민 농부 만츠와 마르티가 몰락을 거듭하여 냇가에서 싸움할 때, 주인공 잘리와 브렌헨은 오랜만에 해후하게 된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서로를 탓하며 야수와 같이 달라붙어 싸우는 아버지들 옆에서 아들과 딸은 잠깐 서로를 볼 기회가 생기며 이때 놀라며 설레게 되는데 이 장면은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하다. 우선 빗속의 육탄전을 불사하는 완전히 타락한 가장들을 보여주며 이 아버지들 때문에 인생에 불행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자식들의 운명이 얽힘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지점은 잘리와 브렌헨이 다시 만나 사랑을 불태우는 시발점이 된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청춘의 정열뿐 아니라 현재와 다른, 존경받던 시민 농부였던 아버지들의 과거와 그에 대한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이때 잘리의 모습은 “weder vornehm noch sehr stolz mehr”라고 묘사되는데, 이 두 형용어는 한편으로는 더는 과거와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평가하는 시민적 기준이 아직도 유효함을 보여주어 젊은이들의 사랑의 성격을 동시에 규정해준다. 이상적 시민상과 몰락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즉 이들의 사랑에는 현재의 정열뿐 아니라 잊지 못하는 과거의 명예와 도덕이 같이 작용한다. 이 대목의 번역을 살펴볼 때, 이병찬이 “그리 좋은 차림을 갖추고 있지도 않고 또한 그리 거만하지도 않고”(50)로, 구기성이 “고귀하나 매우 거만하게 보이지 않고”(265), 정서웅은 “더 이상 귀티가 나거나 오만하지 않으며”(42), 이명우가 “고상하지도 뽐내보이지도 않은 채”(51)로 번역하여 인물의 외양이나 성격으로 부각시킨다면, 권선형은 “고상하거나 그렇게 당당하지 않고”(43)로 번역하여 작품 전체에 작용하는 시민사회의 가치 기준을 반영한 형용어로 번역한다. 권선형은 작품 전반부에 관통하는 이러한 이상적 시민상과 몰락한 시민상을 지시하는 어휘나 의미들을 찬찬히 짚어내면서 번역하여 다른 번역자들이 일반적 인간의 운명 등으로 해석하는 것과 달리 번역한다(예: “질서있고 이성적인 일”(34), “거칠고 부도덕하게”(47), “아버지들이 착실하게 밭을 갈 때의 모습”(52), “예의바른”의 지속적 사용, “시민사회에서는 명예롭고 양심에 거리낌 없는 결혼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91), “풍기문란과 무분별한 열정”(102) 등). 예를 들어 이외에도 작가 켈러의 장기가 돋보이는 스위스 시골 마을의 정경 묘사나 자연이나 풍경 묘사에서 이전의 번역들이 놓친 형용어 등을 꼼꼼하게 번역해 내고 있다(예: 천국정원 묘사 등).


3. 평가와 전망

‘스위스의 괴테’, 혹은 ‘스위스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 할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1959년에 처음 번역된 이래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번역되고 있다. 외국 문학의 번역은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 및 연구와 발맞추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번역도 60년대에 세계문학의 대표작으로 한 차례 집중적으로 나온 이후에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연구 호황기와 더불어 또 한 차례 많이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20년 정도의 기간에 독일과 한국에서 사실주의 문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나온 한국 연구자들의 국내외 학위 논문들의 대부분이 쓰였다. 유럽의 사실주의와 구분하여 독일 사실주의를 전통적인 독일 관념론의 영향 가운데에서 해석하는 ‘시적 사실주의’ 방향의 이론들이 한국에 도입되고 연구가 본격화되며 켈러 작품에 대한 이해가 넓고 깊고 풍성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번역자들이 직접 쓴 역자 후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정서웅, 권선형).

하지만 켈러가 “문화운동의 변증법”이라는 주제어 하에 문학이 고려해야 할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말하면서 동시에 문학의 독자성을 강조한 “시문학의 제국직속성”을 이야기하였음을 고려한다면, 또한 독일 사실주의의 특징이 유럽의 여타 사실주의와 달리 특유의 세계관을 반영한 ‘후모어 Humor’ 등에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번역이 아직 기다려진다.

이 작품은 단편 모음집인 <젤트빌라 사람들> 가운데 한 작품이지만 독어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켈러의 대표적 단편으로서 자주 독립적으로 번역되고 있다. 켈러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젤트빌라 사람들>은 1856년에 나온 초판의 다섯 편과 1873년에 나온 증보편의 다섯 편을 합쳐 모두 열 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상도시 젤트빌라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가 모두 다 번역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병찬(1959): 마을의 로미오와 쥴리엣. 양문당.

구기성(1960):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 을유문화사.

박남수(1965):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삼중당.

이명우(1997):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 충북대학교출판부.

정서웅(2002):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열림원.

권선형(2014):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창비.

최윤영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