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시간 (Die gestundete Zeit)

Bib02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4일 (월) 08:52 판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잉에보르크 바흐만(Ingeborg Bachmann , 1926-1973)의 시


작품소개

오스트리아 여류작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이 1953년에 발표한 시로 같은 해 출간된 시집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이 시는 운율 없는 24개의 시행과 4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혹독한 날들이 오리라”로 시작하는 1연과 2연의 내용은 현재 시간이 끝에 도달했음을 서술한다. 3연은 어투를 바꾸어 명령법으로 출발을 촉구한다. 마지막 4연에서는 “더 혹독한 날들이 오리라”라는 1연의 첫 행만 홀로 반복하여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경고와 절박함을 드러낸다. 독일어권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는 먼저 역사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시에서 현재 시간으로 표현된 내용은 전후 경제적 재건의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위기감을 잊고 안일해진 전후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래서 제목에서부터 시간의 유예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독자에게 내적 긴장과 자기성찰을 촉구한다. 반면 해석의 틀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내어 보편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으로 옮겨 읽자면, 이 시는 인간 존재의 유한한 시간성을 주제화하며, 이를 ‘너와 그녀’의 사랑의 관계를 매개로 삼아 성찰하고 있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적 자아는 ‘너’의 자리에서 자신의 시간이 곧 끝날 유예된 시간임을 자각하고 이제 출발의 시점에 와 있다는 불가피한 이별의 의식을 드러낸다. 다가올 새로운 시간은 더 혹독한 날들로 예감된다. 모래, 바다, 바닷가의 축사 등이 시적 사건의 틀을 이루며, 물고기의 식은 내장, 꺼져가는 루피네의 빛은 현재 시간이 끝나감을, 연인과의 포옹과 여인의 침묵은 도래한 작별을, 신발 끈을 조이고 개들을 축사로 되돌려 보내고, 안개 속을 더듬는 눈길은 불확실하고 더 힘든 날들로의 출발의 메타포로 사용된다. 국내 초역은 1985년 김주연에 의해 이루어졌다(열음사).


초판 정보

Bachmann, Ingeborg(1953): Die gestundete Zeit. In: Die Neue Zeitung. Die amerikanische Zeitung in Deutschland. 12. Mar. 1953.

<단행본 초판> Bachmann, Ingeborg(1953): Die gestundete Zeit. In: Die gestundete Zeit. Frankfurt a. M.: Frankfurter Verlagsanstalt.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유예된 시간 世界名詩選 바하만 이영걸 1978 玄岩社 199-199 편역 완역
2 猶豫된 시간 20世紀 獨逸詩 2 探求新書 178 잉게보르크 바흐만 이동승 1981 探求堂 206-207 대역본 완역
3 유예된 시간 장미의 벼락속에서 y시선, 열음世界詩人選 2-2, 2 인게보르크 바하만 김주연 1985 열음사 20-22 편역/대역 완역
4 유예된 시간 소금과 빵 세계문제시인선집 6 잉게보르크 바하만 차경아 1986 청하 40-42 편역 완역 시집『유예된 시간』에 수록. 바하만의 첫 시집 『유예된 시간』과『큰 곰좌에의 호소』를 원문 순서대로 수록, 추가 4편의 시는 이후 간헐적으로 발표된 시 중에서 발췌하여 엮음.
5 유예된 시간 이력서 잉게보르크 바하만 작품집 1 잉게보르크 바하만 신교춘 1987 한국문연 펴냄 48-48 편역 완역
6 유예된 시간 나의 푸른 피아노 잉게보르크 바하만 김주연 1994 正宇社 -151 편역 완역
7 유예된 시간 유예된 시간 한권의 시 79 잉게보르크 바흐만 강영구 1995 태학당출판사 13-16 편역 완역
8 유예된 시간 독일시선집 잉게보르크 바흐만 최연숙 2013 신아사 430-431 편역 완역
9 유예된 시간 (장석주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세계 명시 100선 잉게보르크 바하만 확인불가 2017 북오션 -120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독일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여성작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시 <유예된 시간>은 1952년 5월 바흐만이 리히터(Hans Werner Richter)의 초청을 받아 47그룹에서 낭독하며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시는 1953년 3월 12일 독일 내 미국 잡지인 <Die Neue Zeitung. Die amerikanische Zeitung in Deutschland>에 실렸고, 이어 동명의 시집 <유예된 시간>이 출판사 “Der Deutsche Verlags-Anstalt”에서 출판되었다.

자료조사에 따르면 “유예된 시간”으로 번역된 바흐만 시의 한국어 출판본은 총 10개로 집계된다. (다른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한국어 번역본의 존재 가능성도 있음을 밝힌다.) 이 번역들은 대부분 역자가 세상의 명시 혹은 독일의 명시들과 함께 편역하여 엮은 “시선집”에 수록되어 있다. 1978년 <세계명시선>, 1981년 이동승 편역의 <20세기 독일시>, 1994년 김주연 편역의 독일시선집 <나의 푸른 피아노>, 2013년 최연숙이 편저 출판한 <독일 시선집>, 2017년 장석주가 편집한 <마음을 흔드는 세계 명시 100선>이 여기에 속한다. 바흐만의 시만을 편역한 시선집으로는 1985년 김주연의 <장미의 벼락 속에서>, 1987년 신교춘의 <이력서>, 1995년 강영구의 <유예된 시간>, 그리고 작가소개의 일환으로 이 시를 번역해 실은 글로서 1998년 김재혁의 <해외작가연구/잉게보르크 바하만 유토피아를 향해 타오르는 불꽃>이 있다. 작가의 첫 시집 <유예된 시간> 전체를 완역한 것으로는 1986년에 출판된 차경아 번역의 <소금과 빵>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번역본은 작가의 두 번째 시집인 <큰 곰좌에의 호소> 완역본과 함께 엮어 출간되었다. 이 중에서 장석주의 시선집에 수록된 시는 차경아의 번역과 동일하며, 김주연의 90년대 번역 역시 80년대 그의 첫 번역시를 약간 수정한 것임을 고려하면 실제 번역본은 8편으로 좁혀진다. 시기별로 보면 <유예된 시간>은 1970년대에 1편, 1980년대에 4편, 1990년대 2편, 2010년대 1편의 번역본이 나온 것으로 집계될 수 있다. 여기서 바흐만의 시작품이나 작가 바흐만에 대한 한국 독문학의 관심은 주로 80년대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흐만을 대표하는 시 <유예된 시간>은 독일 전후문학 및 50년대 문학의 주제들을 통합시킨 것으로 평가받지만, 사랑과 이별이라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부터 50년대 정치사회적 복구상황에 대한 위기의식, 존재와 시간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 진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의 단초를 지녔다. 이 시는 총 4개의 연으로 구성되고 내재율을 가진 자유시로서, 임박한 현재 시간의 종말과 출발을 주제로 삼고 있다. 유예된 시간의 도래라는 위기의식을 표출한 1연에서 시적 화자는 “너 Du”로 자신을 대상화하며, 2연에서는 사랑의 종말과 이별을 서술한다. 3연은 명령문으로 어법을 바꾸어 “너”에게 출발을 촉구한다. 4연은 1연의 첫 행을 반복하며 종말, 이별, 출발의 정조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원문 시의 문체 및 주제에 대한 이해는 번역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번역의 포인트는 시적 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다양한 시점과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맥락에 맞게 포착하는 것, 유예된 시간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장소, 상징, 은유들이 함께 통일된 이미지를 생산하면서도 동시에 원문 고유의 문화적, 언어적 낯섬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번역사적으로 중요한 번역본들을 소개하고 이들 번역의 특징과 번역상의 문제점들을 살펴본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송동준 역의 <유예된 시간>(1978)

바흐만의 시가 번역, 수록된 <세계명시선>은 여러 언어권의 문학 전공자들이 번역과 발행을 맡아 각 언어를 대표하는 시를 모아 엮은 시선집으로서 1978년 현암사에서 출판되었다. 독일시 편은 서울대 송동준 교수가 맡아 독일 문학사의 대표적인 시들을 편역하였다. 이 중 바흐만의 시로는 <유예된 시간>과 <죽은 항구>가 199쪽에 실렸다. 작가명은 “바하만”으로 성만 표기했고 그 옆에 독일어 이름과 성 Ingeborg Bachmann을 나란히 병기하였다. 원문 없이 수록된 이 번역시에서 3개의 연들은 구별 표시 없이 하나의 연처럼 묶여 있고, 마지막 연만 따로 떼어져 있다.

송동준의 번역은 최초의 번역이라는 역사적 위상과 더불어 바로 그 때문에 후속 번역들에 비해 오역의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송동준은 시문학으로서 원문이 갖는 형식적, 미학적 측면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 가능한 원문의 형식을 유지하는 쪽으로 번역의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1연과 3연에서 두 행을 명사화하는 시도를 빼면 원문의 어순과 형식적 틀을 유지하고, 개별 어휘들의 일대일 번역에 충실하다. 이런 번역 태도는 결국 시작품 전체의 이미지와 문장 간의 의미론적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는 제한을 주어, 시의 어조와 텍스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더욱이 송동준의 초역본은 후속 번역들에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해석상의 난제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 번역비평에서는 그 공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다른 개별번역본 소개에서는 각 사항의 요점만 정리하기로 한다.

송동준이 번역한 제목의 “유예된” 이란 어휘는 최근의 번역본에까지 그대로 수용되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원문 “Die gestundete Zeit”에 나오는 stunden은 (임용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지불이행 유예 등에서 보듯이) 보통 계약이나 지급의 실행을 특정 시점까지 미룬다는 의미로 쓰인다. “유예된 시간”은 따라서 한없이 이어지는 지속적 시간이 아니라 ‘어느 시점까지만 유효한 시간’이라는 시간관을 표현한다.

Es kommen härtere Tage. 		보다 어려운 나날이 온다.
Die auf Widerruf gestundete Zeit 	취소로 말미암은 유예된 시간이 
wird sichtbar am Horizont. 		지평선에 보인다.

위에 인용한 제1연의 첫 2행은 현재의 시간은 끝나고, 유예되었던 시간이 다가왔음을 전하는 경고의 문장들로 시작된다. “유예된 시간”은 여기서 “die auf Widerruf gestundete Zeit”로서 훨씬 구체화된다. 의미를 생산하는 전치사 ‘auf’는 시간적으로 앞으로 올 미래의 시점을 가리키는 바, “취소될 때까지 미루어졌던 시간”이 다가왔으니 임박한 이별을 행하고 출발을 준비하라는 것이 이 시구에 도사려 있는 주제 의식이다. 그런데 송동준의 번역은 “auf Widerruf”를 “취소로 말미암은” 유예된 시간으로 옮김으로써, 마치 시간의 유예가 취소로 인해 발생한 결과인 것처럼 auf를 인과율적으로 해석한다. 이어 도래하는 날들과 유예되었던 시간을 받는 동사 “kommen”과 “wird sichtbar”는 각각 “온다”, “보인다”로 옮겨 객관적 현상을 서술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송동준의 현재형 번역어는 유예된 시간의 도래가 마치 자연현상이듯 서술하여 원문에 함축된 시적 화자의 주관적 지각작용이나 위기의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목과 연결시켜 이 첫 행을 읽을 때 해당 동사들은 단순히 흘러가는 순리적 시간이 아니라 ‘미루었던 시간의 임박한 도래’라는 시적 화자의 절박하고 위기에 찬 시간 의식을 드러낸다. 그런 만큼 ‘kommen’의 한국어 번역은 시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시그널이라고 하겠다. 이 밖에도 송동준은 “탄다”, “잠긴다”, “가로챈다” 등 다른 동사들도 기술적인(deskriptiv) 직역으로 일관함으로써 각 맥락에 따라 동사의 현재형이 표출하는 다양한 뉘앙스들(진행형, 예견, 의식 등)을 살려내는 데 있어 한계를 보여준다.

이 번역본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들을 몇 군데 더 살펴보자.

Bald mußt du den Schuh schnüren     		곧 너는 신 끈을 매고
und die Hunde zurückjagen in die Marschhöfe.	개들을 쫓아 행군장으로 돌려보내야한다
Denn die Eingeweide der Fische			물고기의 내장이
sind kalt geworden im Wind.				바람에 차가와졌기에.
Ärmlich brennt das Licht der Lupinen.		단풍콩의 빛은 맥없이 탄다.
Dein Blick spurt im Nebel: 				안개 속에 자국 짓는 너의 시선.
die auf Widerruf gestundete Zeit			취소로 말미암은 유예된 시간이
wird sichtbar am Horizont. 				지평선에 보인다. 


위의 본문은 첫 2행에 이어 작별과 출발을 암시하는 행위들을 열거하고 있다. 송동준의 한국어 번역은 형식적으로 독일어 원문의 직역과 다름없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원문의 어휘들이 생산하는 통합된 이미지와 상황 전달이 똑같이 재현되지는 않는다. 원문의 ‘너는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한다’는 출발을 위한 일차적 행위로서 요구된 것인데 반하여, 번역문은 각 행위의 개별성을 보증하는 “und”의 호흡을 무시함으로써, 마치 개를 행군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신발 끈을 매야 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나아가 각 어휘와 행들 역시 서로 유기적 관계없이 따로 존재하여 하나의 통합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가령 바흐만의 원문은 다양한 자연물과 사물들을 - Hunde, Marschhöfe, Fische, Wind, Lupinen, Nebel, Sand(2연), Meer(3연) - 통해 하나의 종합적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적 사건의 배경이 바닷가임을 암시하고 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인 바닷가는 현재 시간의 종말과 새로운 출발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이 맥락에서 Marschhöfe는 행군장이 아니라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습지의 농장”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Marsch는 “행진”을 뜻할 뿐 아니라 ‘바닷가나 강 근처에 펼쳐져 있는 넓은 평지이자, 축축한 습지’를 뜻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의 고향인 클라겐푸르트가 거대한 뵈르터호수가에 위치하고 소택지/습지로 이루어진 평지라는 사실이 여기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사물의 상태를 통해 현재 시간의 소멸을 표현하는 시적 상징 중 하나로서 Lupinen은 비록 콩과에 속하기는 하지만, 콩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꽃봉오리들이 줄기에 붙어 큰 촛불 같은 모양을 한 꽃이다. 원문이 마치 타오르던 촛불이 약화되듯 시들어 가는 루피네 꽃을 시간의 소멸에 비유했다면, 번역문은 루피네를 “콩과”로 표시한 사전의 뜻에 따라 단풍콩으로 옮김으로써 원래의 이미지와 시의 메시지를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바닷가와 시간의 소멸을 뜻하는 원문의 두 이미지는 번역문에서는 본 맥락에서 탈락해 있다.

또 하나 이 번역에서 드러나는 해석의 난제로서 동사 ‘spuren’의 의미를 들 수 있다. “Dein Blick spurt im Nebel:” 에 등장하는 spuren은 언뜻 보아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잘못 사용된 어휘이거나 비틀은 시적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차라리 spüren이나 spähen, blicken이었다면 그 의미는 명료해졌을 것이다. 여기서 바흐만이 이 시 전체를 지배하는 모음인 “u”에 맞추어 이 동사를 선택하고 “u” 모음이 일으키는 특유의 음향적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밖에도 독일어권에서도 동일 어휘가 지역과 언어문화에 따라 의미의 차별성을 지닌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오스트리아에서는 spuren이 verfolgen, nachspüren의 의미로, 즉 추적, 탐색, 염탐의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면 ‘너의 시선이 안개 속에서 무엇을 추적하는지’라는 의미가 가능해지며, 이를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콜론’과 그 뒤에 따르는 문장을 유의미하게 해석할 수 있다. 즉 “너의 시선은 안개 속에서 추적한다: 파기될 때까지 유예되었던 시간이 지평선에 드러나는 것을”. 그러나 1970년대의 번역자 송동준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개 속에 자국 짓는 너의 시선”으로 아예 명사화시키고 의미마저 변화시켰다. 그 결과 부가 설명의 기능을 지닌 콜론은 무의미하게 되었으며, 그 뒤를 잇는 문장과 앞 문장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역자는 문장의 명사화를 통한 시적 효과를 또 한 번 다음의 문장에서 시도했다. 원문 “Er findet sie sterblich und willg dem Abschied nach jeder Umarmung”(2연)에서 모래는 남성 인칭대명사 er로 대체되어 목적어인 sie에 맞선다. “너”이자 “나”인 실제의 시적 화자는 그/모래로 하여금 이별 상황의 그녀/연인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제3의 관찰자 시점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화자 자신은 이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취한다. 그런데 “기꺼이 작별을 하려는 그녀”로 함축한 송동준의 번역은 바로 이 내적 거리두기를 아예 소멸시켜 버린다.

앞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번역상의 난제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송동준의 초역은 바흐만을 한국 독자층에 소개했으며, 80년대 바흐만 연구와 차후의 번역에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2) 이동승 역의 <猶豫된 시간>(1981)

전 서울대 교수였으며 독일 유학파에 속하는 이동승이 1945-1970년대 현대 독일시를 중심으로 편역한 이 시선집에는 바흐만의 시가 총 12편 실려있다. 시집은 한국어와 원문 목차를 병기하고, 작가의 성과 이름은 “잉에보르크 바흐만”으로 표기하였다. 삽입된 “머릿말”에서는 현대시의 제 특징들이 소개되어 있다. 본문은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병기하여 비교할 수 있게 제시하였다.

이동승은 ‘시일을 늦춘다’는 “유예”의 뜻을 명시하기 위해 “猶豫된 시간”으로 제목에 한자를 넣었고, 이는 분명 당시 한자를 병행해 쓰던 80년대 독자층을 향하고 있다. 송동준의 초역 후 3년 만에 발표된 이 두 번째 번역은 초역본의 영향과 흔적을 여러모로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초역본을 번역에 참조하여 특정 어휘들은 그대로 수용하지만, 다른 한편 이미지 생성이나 의미상으로 부족했던 초역의 부분들을 보완한 표시가 곳곳에 드러난다. 송동준이 어순의 충실성이나 개별 어휘의 일대일 번역 등을 중시하는 형식번역을 추구했다면, 이동승은 행과 연의 의미론적 맥락을 중시하고 시적 이미지의 형성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 의미번역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자.

첫 행의 “보다 어려운 나날이”는 “보다 어려운 날들이”로 유사한 언어로 옮겨졌으나, 송동준의 “온다”는 “다가오리라”로 변화된다. 전자가 kommen의 형태와 운율에 집중했다면 후자는 이 현재형에 반영된 시적 화자의 예감, 예견 혹은 심리적 불안감을 드러내는 의미번역에 집중한 것이다. 이것은 시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첫 문장의 통고 성격에 보다 합당한 번역으로 느껴진다. “die auf Widerruf gestundete Zeit”의 경우엔 “異議申込으로 유예된 시간이”로 옮김으로써 법률적 의미를 지닌 stunden의 성격을 강조했고, 파기와 유예는 인과율적인 관계로 해석했다. 법률적 의미가 덧붙여짐으로써 이동승의 한국어 번역은 ‘언제나 파기될 수 있는 현재와 미루었던 시간의 도래’라는 존재론적인 해석에서 벗어난다. 나아가 이 법률적 관용어는 개념 특유의 산문적 톤과 의미 때문에 시의 리듬을 적지 않게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Lupinen의 타오르는 불빛에서 받은 이미지는 이동승 번역에서 한국 사람이 전통적으로 등불기름으로 사용하던 “아주까리”의 등불로 전이된다. 역자는 꽃 모양보다는 불빛과 타오르다에 유의한 한국어 대응물을 아주까리에서 찾았다. 이는 제 3연의 “아주까리 등불을 끄라!”로 연결되며, 따라서 송동준의 경우와 달리 적어도 의미상의 어폐는 피하게 된다.

“Dein Blick spurt im Nebel: [...]”은 “그대의 시선은 안개 속에서: 이의신입으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 위에 나타나는 것을 추적한다.”로 번역하여, 앞 문장을 콜론 및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과 유의미하게 결합시켰다. 이때 역자가 spuren을 사전적 의미에서 떼어내어 시의 맥락 속에서 가능한 nachspüren의 뜻으로 재해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동승은 보다 의미 전달에 치중한 번역을 함으로써 초역본이 추구한 형식번역의 미완점들을 보완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시의 어휘와 문장은 더 길어지고 산문적으로 되는 역효과도 낳았다.


3) 김주연 역의 <유예된 시간>(1985)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주연은 1985년에 바하만 시선을 편역 출간하고, 1994년에 독일 현대 시를 편역한 시선집 <나의 푸른 피아노>를 출간했다. 이 두 시선집에 수록된 <유예된 시간>은 그러나 미미한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여기서 살펴볼 번역본은 1985년도 바하만 시선집에 수록된 것이다. 이 시집은 원문을 병행수록 하였으며, “바하만의 시와 인생”이라는 해설을 달았고 비록 편역이지만 저본으로 사용한 출처를 밝히고 있다. 김주연의 번역에서 특징적인 점은 다음과 같다.

1. 동일한 원문이지만 첫 행에서는 “훨씬 모진 날들이 온다”로 시작하고 마지막 행에서는 “훨씬 모진 날들이 오고 있다”로 변주하여 시의 처음과 끝 사이에 발생한 의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사는 송동준의 번역에서처럼 현재형 그대로 “보인다”, “탄다”, “명한다”, “본다” 등으로 옮겨 주관적 개입을 가능한 배제하는 서술 어조를 유지한다.

2. “이의신청에 의해 유예된 시간”, “아주까리”, “늪 마당” 등에서 이동승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따라서 앞에서 지적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겠다.

3. 명령법으로 바뀌는 3연의 첫 행을 “너 둘러보지 말라”고 “너”를 강조하여 삽입함으로써 행동으로의 촉구를 강화한다.


4) 차경아 역의 <유예된 시간>(1986)

1980년대 중반, 드디어 바흐만의 두 시집을 완역한 차경아의 번역본이 청하에서 출간되었다. 목차는 원문의 순서를 따랐고, 상세한 역자 해설이 삽입되었다. 시집 후반부에는 “바하만 연보”와 “참고문헌 목록”이 실려있다. 독문학자 차경아의 번역은 바흐만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80년대 중반에 나왔으며, 역자의 전문적 연구에 힘입어 앞의 선례들이 가졌던 문제들, 가령 외국의 문화와 문물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부족, 바흐만의 시 세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들을 상당히 수정, 보완해주고 있다. 역자는 Lupinen처럼 한국어 대응어가 없는 경우 무리하게 자국화하는 대신 원어 그대로 옮기고 각주에 설명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차경아 번역은 앞선 선례들과는 차별화된 번역전략들을 보여준다. 4연으로 구성된 원문 시는 시적 화자의 상황 주시와 진단, 행동으로의 촉구, 경고 등으로 서술 어조가 자주 바뀌므로 사건의 변화와 역동성을 엮어내는 내러티브적 목소리를 자아낼 수 있다. 차경아는 이 점을 매우 잘 인지했고 또 잘 살려 번역하였다. 제1연 첫 행은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로 옮겨 앞의 선례들과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앞선 두 번역본의 “어려운 나날들”이 주는 모호함은 “혹독한 나날들”로 감각적 언어로 바뀌었고, “다가오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은 시적 화자가 사태를 주시하는 인지 작용과 위기의식을 적절하게 반영하였다. 이 표현은 다음 행의 “보이게 되리라”와 인과적으로 연결되면서 도입부의 분위기를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이처럼 시적 화자의 인지 작용을 반영하면서도 시의 운율을 매끈하게 조성하는 동사의 조합은 “타오르고 있다”, “가라앉고 있다”, “있음을 보고 있다”와 “말라”, “매라”, “보내라”, “버리라”의 교차적 조합에서 반복된다. 그 밖에도 “식어버렸으니”, “궤적을 남기니”와 같은 동사 처리는 시의 리듬을 살리면서도 각 연에 따라 변하는 의식상태와 사태의 발전양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이 번역의 또 다른 차별성은 원문의 통사론적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정확한 의미해석을 추구하고 또 통일된 이미지를 구축하여 그것을 유려한 한국어 문장으로 재구성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의 번역문을 비교해보면 앞선 선례에서 각각 서로의 약점으로 남아 있던 문제가 차경아에게서는 조화롭게 해결된 것이 드러난다.

r findet sie sterblich und willig dem Abschied nach jeder Umarmung(3연) 
그것은 그녀가 죽음에 임한 것을 본다. 모든 포옹이 끝난 뒤 기꺼이 작별을 하려는 그녀(송동준)   
그리고 모래는 포옹을 하고 나면 언제나 작별을 할 태세를 하고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본다(이동승)
모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을, 모든 포옹 후 기꺼이 이별을 감수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차경아)

송동준은 원문에 있는 두 개의 목적보어를 따로따로 옮기는 대신 뒤의 문장을 명사화하여 형식적 미를 추구하는 듯하다. 이동승은 긴 산문적 문장을 취하더라도 미적 형식을 포기하고 차라리 의미 전달에 충실한 해결책을 찾는다. 차경아는 두 목적보어를 “있음을”로 처리하고 반복하여 문장에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미적 차원을 유지하는 한편 주문장의 동사 “보고 있다”를 살려내어 송동준이 결하고 있는 ‘모래의 관찰자 시점’도 충분히 담아내었다.

차경아의 차별적 전략은 새로운 이미지 창출에서도 볼 수 있다. 역자는 “Schuh”를 “신발”로 해석한 선례들과 달리 “구두”라는 훨씬 구체적 형상으로 옮긴다. “구두”를 통해 “너”의 존재는 현대적, 도회적인 아우라를 부여받는다. 이것은 자연 속에 잠시 머무르는 자, 미루었던 시간의 도래에 직면하여 곧 떠나야 할 자, 이별과 출발의 경계에 서 있는 여행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힌다. 게다가 차경아는 (이동승의 법적 의미망과 연결된) “이의신청으로 유예된 시간”을 한층 더 밀고 나가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으로 옮긴다. 비록 ‘판결의 파기로’를 그 인과율적 의미에서 떼어내어 “판결의 파기까지”로 해석한다 해도 역자가 유예된 시간을 법적인 성격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시적 화자는 존재론적 시간의 유한성을 노래하는 자가 아니라 도시라는 현대적 공간에서 온 자, 법과 판결과 의무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각인된다. 시적 화자의 도회적 형상은 이 시의 무대인 자연과 대척점을 이룬다. 이에 상응하여 Marschhöfe 역시 주거지로서의 성격을 상실한 “늪지”로 옮겨져 보다 원시적인 자연성을 강조하게 된다. 차경아의 번역은, 번역은 해석이라는 진술을 상기시킨다. 비록 오역에 근거한다고 할지라도 이 번역 시는 독창적인 작품해석과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로 태어난다.

번역에 쓰인 저본이 명시되지 않은 점, 본문에 원문이 병기되지 않은 점, 작가의 이름이 여전히 “바하만”으로 옮겨진 점은 이 번역본의 몇 안 되는 결점에 속한다. 그러나 차경아의 번역본은 한국 최초의 전문적인 바흐만 연구자에 의한 번역, 그리고 최초의 완역시집이라는 의미에서, 또한 새로운 번역전략을 통해 번역의 언어와 질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번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다.

5) 최연숙 역의 <유예된 시간> (2013)

가장 최근의 번역본에 해당하는 최연숙의 번역 <유예된 시간>은 독일 시인 34명의 시 162편을 편역하여 수록한 시선집에 들어 있다. 이 시집엔 역자 해설에 이어 한국어와 독일어 목차가 나란히 병행된다. 작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을 독일어명과 함께 적었고, 작가의 사진과 독일어권 지도, 작가소개를 시선집 앞부분에 삽입하였다. 본문은 번역문과 원문 병기로 구성되며, <유예된 시간>에는 주석을 달아 저본으로 사용된 문헌의 출처를 밝히고 있다.

최연숙의 번역 시는 앞선 모든 번역의 영향사 속에서 이루어진 생산물임을 보여준다. “더욱 더 가혹한 날들이”가 새로운 어조를 띤다면, “다가오리라”,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 “농가 습지”, “루핀 불”, “그대의 시선이 안개 속에 자국을 남기니” 등에서는 앞선 번역의 영향과 흔적이 강하게 묻어나고 있다. 하지만 최연숙이 넘겨받은 이 유산들은 문제와 과제 역시 여전히 품고 있는 것들로서,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이 품은 잘못된 해석의 문제, “농가 습지”의 잘못된 어휘 구성 (=> 습지의 농가?), 맥락에서 벗어나는 “안개 속에 자국을 남기니”와 같은 표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2010년대 출판된 번역에서 이 문제들이 비판적 성찰을 거쳐 수정되거나 보완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점이 아쉽다.


3. 평가와 전망

앞서 살펴본 5편의 번역본들을 함께 읽어보면 전체가 하나의 영향사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초역본의 주요 표현들은 후속 번역에서도 계속 차용되거나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는 했지만, 이 중 문제로 드러났던 난제들 역시 답습되고 지속적인 영향 관계 속에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인 “die auf Widerruf gestundete Zeit”는 영어로도 the time deferred to cancellation으로 번역되는 만큼, “취소될 때까지 유예된 시간”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번역된 시들은 이것을 “..로 인하여 유예된 시간”으로서 보는 인과율적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3연의 첫 행 “Drüben versinkt dir die Geliebte im Sand”의 경우, “dir die Geliebte”는 Deine Geliebte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긴 하지만 그 뉘앙스에서 좀 더 일반적이고 거리가 있는 관계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 뉘앙스의 차이가 한국어 번역본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또 이 문장은 연인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번역은 모두 “너의 연인”, “그대의 애인”으로 옮겨 성별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했다. 젠더 문제가 크게 이슈로 등장한 오늘날 이것은 차후 번역에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시문학의 번역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살펴보았듯이 번역 시는 계속 성장하여 왔다. 완역을 향하여 나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또 다른 번역을 촉구하였다. 앞으로 나올 번역 역시 이 영향사 속에서 진행될 것이지만, 가능한 선례의 권위에 매이지 않으면서 좀 더 독창적이고 좀 더 비판적인 원문 해독과 이해가 절실히 요망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송동준(1978): 유예된 시간. 현암사. 이동승(1981): 猶豫된 시간. 탐구당. 김주연(1985): 유예된 시간. 열음사. 차경아(1986): 유예된 시간. 청하. 최연숙(2013): 유예된 시간. 신아사.


김연신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