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 (Michael Kohlh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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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클라이스트(Heinrich Klest, 1777-1811)의 소설


작품소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16세기 중반의 역사적 사실을 가공하여 창작한 단편소설로 1810년에 발표되었다. 성실하면서도 고지식한 말장수 미하엘 콜하스가 끔찍한 범죄자로 변모하는 과정과 그가 요구한 정의가 실현됨과 동시에 처형당하는 과정이 사실적인 연대기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는 어느 성주의 횡포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고자 법에 호소하지만, 번번이 기각되고, 급기야 그의 아내까지 죽게 된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정의를 세우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도시를 약탈하고 방화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마르틴 루터의 중재로 콜하스가 바라던 정의가 실현되는가 싶더니 부정부패와 족벌주의로 인해 사태는 반전을 거듭한다. 법원의 최종판결에서 콜하스가 요구한 정의가 실현되지만, 다른 한편 그는 제국의 평화를 교란한 죄목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과거에는 콜하스가 일방적으로 정의감의 화신이나 혁명가 등으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정의 추구의 한계, 개인의 자구행위와 부패한 공권력의 대결, 정의 실현을 위한 폭력의 정당성 여부 등을 양가적인 측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해석된다. 국내에서는 1999년 배중환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서문당).


초판 정보

Kleist, Heinrich von(1810): Michael Kohlhaas. In: Erzählungen. Berlin: Realschulbuchhandlung, 1-215.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미하엘 콜하스 미하엘 콜하스 (외) 서문문고 312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배중환 1999 서문당 17-152 편역 완역
2 미하엘 콜하스 칠레의 지진: 클라이스트 단편전집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배중환 2003 세종출판사 208-310 편역 완역
3 미하엘 콜하스 버려진 아이 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진일상 2005 책세상 7-126 편역 완역
4 미하엘 콜하스의 민란 미하엘 콜하스의 민란 Boo classics, 부클래식 15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전대호 2011 부북스 7-150 완역 완역
5 미하엘 콜하스 미하엘 콜하스 창비세계문학 1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황종민 2013 창비 7-126 편역 완역
6 미하엘 콜하스 미하엘 콜하스1 창비세계문학 1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황종민 2018 창비 7-126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20년대였다. 벽초 홍명희는 클라이스트의 단편소설 ‘<노칼노> 거지로파’(원제: Das Bettelweib von Locarno)를 1923년 4월 1일자 시사주간지 <東明>(1922년 9월 3일 최남선 창간- 1923년 6월 3일 폐간)에 최초로 실었다. 홍명희는 일본의 다이세이(大成)중학에서 수학했는데(1907-1910) 그가 독일어를 익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924년 문예동인지 <폐허이후(廢墟以後)>(1924년 2월 1호로 종간)에 <후작부인>(원제: Die Marquise von O.)를 번역하여 게재하였다.

그 이후 1955년에 1편(?)(고금출판사, 축소세계문학전집3 독일편), 1959년 2편(<성 도밍고의 약혼>, <聖女 체치리에>), 1960년 2편(<智利의 地震>, <棄兒>), 그리고 1966년 <결투>가 번역됨으로써 클라이스트의 소설 8편 중 7편이 6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 소개되었다.

클라이스트의 다른 단편과는 달리 <미하엘 콜하스>의 경우에는 1999년에야 배중환이 <미하엘 콜하스> 외 다른 단편 4편 및 일화들을 묶어서 번역하였다. 이후로 2005년, 2011년, 2013년에 연이어 새로운 번역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유독 이 작품이 늦게 소개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작품의 분량 때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60년대 세계문학전집이 유행하면서 클라이스트의 단편들은 독일(문학)단편집 또는 세계(문학)단편집 중 독일편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한두 편씩 소개되곤 하였다. 그러나 <미하엘 콜하스>는 독일의 문학 장르로는 클라이스트의 다른 단편과 더불어 노벨레로 분류되지만 소설을 길이에 따라 분류하는 한국식 분류로는 단편이 아니라 중편에 속하는 어중간한 분량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번역된 <미하엘 콜하스>는 배중환, 진일상, 전대호, 황종민의 번역 등 총 4종이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우선 소설 첫 부분의 한 대목에서 밑줄 부분을 중심으로 비교해보자.


Ist der alte Herr tot? – Am Schlagfluss gestorben, erwiderte der Zöllner, indem er den Baum in die Höhe ließ. – Hm! Schade! versetzte Kohlhaas. Ein würdiger alter Herr, der seine Freude am Verkehr der Menschen hatte, Handel und Wandel, wo er nur vermochte, forthalf, und einen Steindamm einst bauen ließ, weil mir eine Stute, draußen, wo der Weg ins Dorf geht, das Bein gebrochen. Nun! Was bin ich schuldig? – fragte er; und holte die Groschen, die der Zollwärter verlangte, mühselig unter dem im Winde flatternden Mantel hervor. »Ja, Alter«, setzte er noch hinzu, da dieser: hurtig! hurtig! murmelte, und über die Witterung fluchte: »wenn der Baum im Walde stehen geblieben wäre, wär’s besser gewesen, für mich und Euch«; und damit gab er ihm das Geld und wollte reiten. Er war aber noch kaum unter den Schlagbaum gekommen, als eine neue Stimme schon: halt dort, der Rosskamm! hinter ihm vom Turm erscholl, und er den Burgvogt ein Fenster zuwerfen und zu ihm herabeilen sah. Nun, was gibt’s Neues? fragte Kohlhaas bei sich selbst, und hielt mit den Pferden an. 


1) 배중환 역의 <미하엘 콜하스>(1999)

그러면 늙은 융커는 돌아가셨습니까? - 경비병은 차단목을 공중 높이 들면서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 참! 안됐군요. 콜하스가 대답했다. 위엄 있던 노 융커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을 기뻐하셨고 상업과 교역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셨는데, 한 때 내 암말이 마을로 들어가는 동구 밖 길에서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나쁜 길에 돌을 박아 잘 다닐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내가 얼마나 신세를 졌겠습니까? 라고 말하고는 세관원이 요구하고 있는 돈(그로센)을 바람에 펄럭이는 외투 밑에서 힘들여 꺼냈다. 빨리! 빨리! 라고 중얼거리며, 날씨를 저주하는 세관원의 말을 들으며, 그는 “알았습니다 영감, 만약 이 나무막대기가 숲속에 세워져 있었더라면, 나와 당신 모두에게 더 좋았을 겁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곧 콜하스는 그에게 돈을 건네 준 뒤, 말을 타고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차단목 밑으로 가자마자, 거기 멈춰요, 말장수! 하는 한 새로운 목소리가 그의 뒤 탑 쪽에서 났다. 그는 성지기가 창문을 꽝 닫고 자신에게로 서둘러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글쎄, 무슨 일일까? 콜하스는 의아하게 여기며 말을 멈추었다.(18-19쪽)


배중환의 번역은 원문을 충실하게 반영하려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많은 간접화법을 그대로 번역하고 있고 문장의 구성도 가급적 원문을 살리는 방향으로 애쓰고 있다. 그러나 독일어와 한국어가 언어구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원문에 지나치게 충실한 번역을 지향하다 보니 한국어 문장의 구성이나 표현이 어색한 부분들이 자주 눈에 띄어 아쉬움을 남긴다. 원문의 문장구조나 문체를 살리려다 보니 만연체가 되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예를 들면 “위엄 있던 노 융커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을 기뻐하셨고 상업과 교역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셨는데, 한 때 내 암말이 마을로 들어가는 동구 밖 길에서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나쁜 길에 돌을 박아 잘 다닐 수 있게 하셨습니다.”라는 문장에서, “도와주셨는데” 이전과 이후는 다른 내용이니 별개의 문장으로 분리하여 번역을 한다면 독자들이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불해야 할 돈이 얼마냐는 표현(Was bin ich schuldig?)을 원문에 얽매인 나머지 “내가 얼마나 신세를 졌겠습니까?”로 오역하는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원문의 “나무 der Baum”는 차단목의 다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 나무막대기”로 번역함으로써 독자들이 보기에 나무막대기가 차단목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또한 “halt dort, der Rosskamm!”이라는 표현은 전후 문맥으로 보건대 ‘꼼짝 말고 게 섯거라 말장수놈아, 어딜 가려고 해!’라는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음에도 너무 부드럽게 번역하고 있다(“거기 멈춰요, 말장수!”). 부분적으로 섬세하고 적확한 한국어 표현이 아쉬운 부분이 자주 보인다.

16세기 중엽의 독일이 시대적인 배경이니만큼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한 사회적, 문화적 사실들은 역자가 주석으로 보충해주어야 할 것이다. 가령 역주 없이 ‘융커’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이 무렵 독일에서 사용되었던 은화의 일종이었던 그로쉔(Groschen)은 괄호 안에 역주를 “돈(그로센)”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간결한 느낌이다. 독자에게 정보를 조금 더 주어도 좋을 뻔했다.


2) 진일상 역의 <미하엘 콜하스>(2005)

“나이 드신 성주는 돌아가셨나요?”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오.” 세금징수관이 통행목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흠, 안타깝군.” 콜하스가 말했다. “품위 있는 노(老)성주였는데, 사람들과 즐겨 왕래하셨고, 장사건 뭐건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재빨리 도우셨지. 일찍이 돌길도 만들게 하셨는데. 마을 어귀에서 내 암말이 다리가 부러졌거든. 자, 얼마를 내야 하지요?” 콜하스가 그렇게 묻고는 징수관이 요구하는 돈을 바람에 펄럭이는 외투 아래에서 힘겹게 꺼냈다. 징수관이 “어서, 어서”라고 중얼거리면서 날씨에 대해 구시렁거리자, 그는 “알았소, 노인장, 이 통행목이 들판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피차에 좋았을 텐데” 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돈을 주고 길을 떠나려고 했다. 겨우 통행목 아래에 도착했을까, 또 다른 목소리가 “멈춰라, 말 장수!” 하며 뒤편 탑에서 울려 나왔다. 이윽고 성의 관리인이 창을 세차게 닫고 그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콜하스가 중얼거리면서 말을 멈추었다.(8-9쪽)


진일상의 번역은 비교적 가독성이 높고 전반적으로 정확하지만, 간혹 어색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일찍이 돌길도 만들게 하셨는데. 마을 어귀에서 내 암말이 다리가 부러졌거든.”에서 인과관계가 좀 더 부각 되도록, 좀 더 부드럽게 옮기면 더 좋을 것이다. “들판”으로 옮긴 단어의 원어는 ‘숲 Wald’이다. 단순 오역이긴 하지만 이러한 실수는 가급적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배중환의 번역과는 달리 진일상의 번역은 원문의 간접화법을 직접화법으로 옮겨 가독성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고민을 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콜하스가 중얼거리면서 말을 멈추었다.”라는 문장에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는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내용이다. 이런 경우에는 큰따옴표보다는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거나 또는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간접화법을 표현해주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클라이스트의 단편 8편을 모두 싣고 있는 이 번역서에는 역주가 작품집의 마지막에 한꺼번에 제시되어 있다. <미하엘 콜하스>의 역주는 13개인데 이것으로 한국 독자가 소설에 나타난 16세기 독일의 사회상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인다.


3) 전대호 역의 <미하엘 콜하스의 민란>(2011)

“그 연로하신 어르신은 돌아가셨나요?”

“뇌졸중으로 죽었소.” 통행감시인이 차단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하, 안됐군요.” 콜하스가 탄식했다. “존경스러운 원로셨는데,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좋아하셨고 기회가 생기면 늘 상업과 여행을 지원하셨죠. 언제였던가, 내 암말이 다리가 부러지니까, 석조 제방을 쌓게 하셨어요. 저기 길이 마을로 이어지는 곳에 말이죠. 그건 그렇고 통행료는 얼마요?”

콜하스는 통행감시인이 요구한 만큼의 동전을 바람에 펄럭이는 외투에서 힘겹게 꺼냈다. 통행감시인이 “빨리 빨리”라고 중얼거리며 궂은 날씨를 탓하자, 콜하스는 “자요, 노인 양반. 이 나무가 그냥 숲에 서 있으면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을 텐데.” 하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통행감시인에게 통행료를 주고 길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차단목 아래를 채 통과하기도 전에 새로운 목소리가 뒤편 탑에서 울려 퍼졌다.

“말 장수, 거기 멈춰!”

콜하스는 성지기가 창문을 거세게 닫고 서둘러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또 뭐야?” 콜하스가 혼잣말을 하며 말들과 함께 멈췄다.(8-9쪽)


전대호의 번역은 오늘날의 한국 독자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제목에서부터 그는 원제인 <미하엘 콜하스>에다 ‘민란’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주인공 콜하스의 행적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원문의 간접화법을 모두 직접화법으로 바꾸었고, 단락을 자의적으로 나누었으며, 장면이 바뀔 때마다 별표(***)를 사용하여 마치 장절(章節)을 나누듯 전후의 사건을 구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부적절한 어투나 섬세하지 못한 번역으로 인하여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더러 눈에 띈다.

인용문의 첫 부분에서 콜하스가 통행감시인에게 “그 연로하신 어르신은 돌아가셨나요?”라고 질문하는데, 통행감시인은 “뇌졸중으로 죽었소.”라고 대답한다. 통행감시인은 성에 소속된 인물이다. 이 인물이 고인이 된 성주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모셨던 성주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죽었다’라는 표현보다는 높임말인 ‘돌아가시다’가 더 적절할 것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장을 구분한 것이 오히려 가독성을 떨어뜨린 경우도 있다. “내 암말이 다리가 부러지니까, 석조 제방을 쌓게 하셨어요. 저기 길이 마을로 이어지는 곳에 말이죠.”에서 ‘말의 다리가 부러지니 석조 제방을 쌓게 했다’라는 문장의 내용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마을 어귀의 길이 험해서 내 말이 다리를 다치자 고인이 된 성주가 그곳의 길을 돌을 이용해 보수해서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했다’는 내용이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클라이스트는 1810년 <미하엘 콜하스> 완성본을 출간하기 전인 1808년 자신이 친구와 함께 출간한 잡지 <푀부스>(Phöbus)에 첫 부분 약 1/4 정도를 미리 발표했다. <푀부스>에 실린 소설의 이 부분에는 Steindamm 이란 단어 대신 Knüppeldamm으로 되어 있다. Knüppeldamm은 소택지 등 길이 험한 곳에 통나무를 깔아 만든 길을 의미한다. 완성본에서 단어를 바꾼 까닭은 고인이 된 성주의 선행과 덕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돌을 깔아 길을 보수하는 일이 통나무를 깔아 보수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석조 제방”은 원문의 Steindamm을 직역한 어휘이지만 전후의 자연스런 인과관계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 나무가 그냥 숲에 서 있으면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을 텐데.”에서 ‘나무’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문장은 비현실적 상황을 가정하는 문장이므로 “있다면”보다는 “있었더라면”이 더 적확하다.


4) 황종민 역의 <미하엘 콜하스>(2013)

나이 드신 나리께서는 돌아가셨소? - 중풍으로 세상을 뜨셨소. 길목지기가 차단목을 들어올리며 대꾸했다 – 거참! 안됐구려! 콜하스가 한숨을 쉬었다. 점잖은 어른이셨는데.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장사와 왕래를 힘닿는 대로 도와주셨지요. 언젠가 내 암말이 저기 마을 들머리에서 다리를 다치자 길에 자갈을 깔라고 이르신 적도 있었소. 그건 그렇고! 얼마를 내야 하오? - 콜하스가 물었다. 그러고선 길목지기가 금액을 말하자, 바람에 펄럭이는 외투 자락을 붙잡고 동전을 훔척훔척 꺼냈다. 길목지기가 빨리! 빨리!라고 웅얼거리며 날씨에 대고 화풀이를 해대자, 콜하스는 “알았소, 노인장,”이라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나무를 숲에서 베어 이렇게 차단목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노인장한테도 나한테도 좋았을 것 아니오.” 그러고선 돈을 건네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콜하스가 차단목 아래를 채 지나기도 전에, 또다른 목소리가 등 뒤 망루에서 울렸다. 게 서라 말장수야! 성집사가 창문을 부서져라 닫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콜하스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말들을 세웠다.(10-11쪽)


황종민의 번역은 원문의 문체를 최대한 고려하면서도 복잡한 문장의 의미를 한국어로 충실히 전달하는 가장 바람직한 번역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39개의 각주 형식의 역주와 작가와 8편의 단편에 관한 60쪽이 넘는 상세한 해설은 독자가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3. 평가와 전망

황종민의 번역이 다른 번역본에 비해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번역가의 탁월한 한국어 구사 능력이 표현된 점이다. 황종민은 클라이스트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체를 유려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한국어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또한 ‘훔척훔척, 갖바치, 살갑게, 수굿이, 넋두리, 검불, 다옥하게, 느껍게, 뼛성, 솔수펑이, 고명딸, 하늬바람, 숨탄것’ 등등 요즘 일상에서 잘 사용되지 않고 있는, 그래서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말을 자유롭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역설적으로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구살머리쩍게 사전을 뒤적여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역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는 한국어 어휘의 명줄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황종민의 번역은 독자에게는 우리말의 소중함에 대해, 그리고 번역가에게는 번역가의 책무에 관해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배중환(1999): 미하엘 콜하스. 서문당.
진일상(2005): 미하엘 콜하스. 책세상.
전대호(2011): 미하엘 콜하스의 민란. 부북스.
황종민(2013): 미하엘 콜하스. 창비.

황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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