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어멈과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1956)의 희곡
작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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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949 |
장르 | 희곡 |
작품소개
작가의 연극관과 주제 의식이 집약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후기 대표작이다. <억척어멈과 자식들>은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군인들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만물상 억척어멈과 그녀의 의붓(異父)자식들이 전쟁에서 몰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히틀러의 전쟁 계획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던 북유럽 국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1939년 스웨덴에서 집필되었고, 1941년 브레히트가 부재한 가운데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초연은 브레히트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공연이었다. 억척어멈을 자식을 잃은 슬픈 어머니의 대명사 격인 니오베에 비유하는 평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끝까지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억척어멈을 비판하려는 브레히트의 의도가 전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중요성을 더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동독에 정착하게 된 브레히트가 귀국 후 무대에 올릴 첫 작품으로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여전히 전쟁의 상흔을 지우지 못한 폐허 (동)베를린에서, 그리고 가속화되는 냉전 분위기 속에서 전쟁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도이체스 테아터의 무대에 올림으로써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평단과 흥행에 있어 큰 성공을 거두었던 베를린 공연은 1949년 1월 11일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초연된 이후 1951년 9월 11일에 이미 100회 공연을 돌파했으며, 당시 억척어멈으로 분한 브레히트의 부인 헬레네 바이겔의 뛰어난 연기와 무대 연출가 테오 오토의 사륜 수레는 지금까지도 <억척어멈과 자식들> 공연의 전설적인 상징이 되고 있다. 1981년 이원양, 양혜숙이 함께 초역하였으며, 이 초역은 잡지 <한국 연극>에 수록되었다(민속원).
초판 정보
Brecht, Bertolt(1949):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Eine Chronik aus dem Dreißigjährigen Krieg. In: Versuche. 9. Berlin/Frankfurt a. M.: Suhrkamp.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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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韓國演劇 | 베어톨트 브레히트 | 양혜숙; 이원양 | 1981 | 民俗苑 | - | 편역 | 확인불가 | 12월호. 실물확인불가. 정보출처: 이충섭 <한국의 독어독문학 관계 번역문헌 정보> | |
2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양혜숙; 이원양 | 1983 | 演友 | 5-114 | 완역 | 완역 |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
3 | 억척어멈과 그 子息들 - 30년 戰爭의 年代記 | 브레히트 硏究 | 두레新書 7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원양 | 1984 | 두레 | 215-335 | 편역 | 완역 | 연구서의 부록으로 수록 |
4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범우희곡선 25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연희 | 2006 | 범우사 | 11-180 | 완역 | 완역 | |
5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지만지고전천줄 32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원양 | 2008 | 지만지 | 6-41 | 편역 | 편역 | 천줄읽기 |
6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브레히트 선집 3 | 브레히트 선집 3 | 브레히트 | 이원양 | 2011 | 연극과인간 | 14-116 | 편역 | 완역 | 1949년 베를린 공연대본이 저본이라 밝힘 |
7 | 억척어멈과 자식들 | 서푼짜리 오페라 |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은희 | 2012 | 열린책들 | 56-95 | 편역 | 완역 | |
8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원양 | 2012 | 지식을만드는지식 | 5-163 | 완역 | 완역 | |
9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서푼짜리 오페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 World book 231 | 베르톨트 브레히트 | 백정승 | 2014 | 동서문화사 | 111-199 | 편역 | 완역 | |
10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원양 | 2014 | 지식을만드는지식 | 5-163 | 완역 | 완역 | |
11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원양 | 2019 | 지만지드라마 | 5-163 | 완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후기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1]은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군인들을 따라 다니며 물건을 파는 만물상 억척어멈과 그녀의 이부(異父) 자식들이 전쟁에서 몰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의 연극관과 주제의식이 집약된 이 작품의 생성사는 ‘신발보다 나라를 더 자주 바꿨던’ 작가의 극적인 삶의 궤적과 상당히 닮아있다. 브레히트 자신은 공공연히 이 작품을 덴마크에서 집필하였다고 말하였으나, 실질적으로 탈고한 곳은 브레히트가 1939년에 머물렀던 스웨덴으로 확인된다.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한 공간은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브레히트의 의도는 히틀러의 전쟁 계획으로부터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했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반면 작품의 초연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1년 4월, 당시 히틀러에게 점령되지 않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성사되었다. 이 공연은 당시 망명 중이었던 브레히트 없이 제작, 공연되었고, 연출가의 부재는 서사극과 반전(反戰)극이라는 작품의 형식적, 내용적 특징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했다. 서사극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연출로 인해 거리두기에 실패한 관객들은 이 작품에서 참혹한 전쟁에서 자식을 모두 잃은 비극적인 어머니의 운명을 읽어냈으며, 어떤 평론에서는 억척어멈을 모든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니오베’에 비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억척어멈>이 후기 브레히트의 작품 활동에서 그 중요성을 더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1949년 동독에 정착하게 된 브레히트가 귀국 후 무대에 올릴 첫 작품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여전히 전쟁의 상흔을 지우지 못한 폐허 (동)베를린에서, 가속화되는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그는 전쟁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특히 브레히트는 스위스의 초연 및 공연에서 발생한 작품에 대한 오해를 매우 안타까워했기에, 전쟁을 통해 사업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억척어멈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때문에 자식 셋을 다 잃고도 전쟁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방관자이면서 동시에 공모자인 소시민에 대한 비판을 더더욱 공고히 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1939년의 초판이 아닌 1949년 베를린에서의 초연을 위해 수정된 대본이 정본으로 통한다. 평단과 흥행에 있어 큰 성공을 거두었던 베를린 공연[2]의 또 다른 성과는 억척어멈으로 분한 브레히트의 부인 헬레네 바이겔의 놀라운 연기와 무대 연출가 테오 오토의 사륜 수레로, 이들은 <억척어멈> 공연사의 전설이자 바로미터가 되었다.
사회주의 작가로 알려진 브레히트 작품의 출간 금지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해제된 것은 1987년이었고, 공연 해금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1988년에야 이뤄진다. 공연해금 기념으로 국내에 소개된 첫 작품은 브레히트에게 전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서푼짜리 오페라>였다. 이미 1988년 12월 초연된 <서푼짜리 오페라>의 초역이 1987년 출간된 반면, 브레히트 후기의 완성도 높은 대표작 <억척어멈>은 <서푼짜리 오페라>와는 상반된 수용 도정을 걷는다. 다음의 표에서 확인 가능한 것처럼 <억척어멈>은 <서푼짜리 오페라>보다 훨씬 앞선 1981년에 첫 번역이 발표되었으나, 무대에서의 수용은 그보다 훨씬 더 뒤늦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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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로젝트 내부적으로 파악된 11종의 번역 이외, <연극의 이해>라는 편역서에 편입된 <억척어멈>이 추가적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작품의 번역이 양혜숙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억척어멈>의 번역자는 총 5인, 이원양, 양혜숙, 이연희, 이은희, 백정승으로 수렴되며, 번역가로 활동하는 백정승을 제외한 나머지 번역자들은 모두 독문학자들이다. 독문학자, 특히 주로 본격적인 전공자에 의해 작품이 번역되는 경향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브레히트 작품 번역 전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드라마의 번역을 기피하는 한국 출판문화, 문학적으로 중요한 작가의 번역이라는 의무적 당위성, 그리고 극작가이면서 동시에 극이론가인 브레히트의 작품이 지닌 난해함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초래한 결과일 것으로 추측된다.
위의 표에서 확인되는 특기할 만한 또 다른 사항은 이원양이 <억척어멈>의 번역에 장기간에 걸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원양은 이미 1981년 양혜숙과의 공역을 통해 이 작품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였고, 이후 그의 번역은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최근까지도 출간되고 있다. 특히, 이원양은 <억척어멈>의 뒤늦은 무대 수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억척어멈> 공연은 2006년에 이르러서야 신문지상에 여러 차례 기사화된다.[3]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이 브레히트 사후 50주년을 기념하여 이 작품의 번안극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한국전쟁의 한 연대기>[4]를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윤택이 저본으로 삼은 것이 이원양의 번역이었다.
이 공연은 브레히트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본연의 의의를 넘어 본 번역비평에도 특별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윤택의 <억척어멈> 공연 대본이 책으로 출간되어 있기 때문이다(이윤택 2006; 게릴라 2006). 물론 이윤택의 공연 대본을 하나의 독립된 번역본으로 취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실제 이윤택이 독일어에서 직접 번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원양의 번역본을 참조하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본의 현존은 드라마의 번역이 소설의 번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는, 너무나 자명해서 잊어버리곤 하는 사실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즉, 드라마는 언제든지 공연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을 갖고 있거나, 또는 극작가, 특히 독일어권의 극작가들은 공연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집필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미 영미권이나 프랑스권에서는 산문 번역과는 차별성을 지닌 드라마 번역 방식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해왔으며, 이 때문에 드라마 텍스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을 ‘상연성 Aufführbarkeit’이라는 개념 속에 집약하여 드라마 번역에서 특별히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을 역설한다. 특히 브레히트처럼 연출과 극작을 겸하는 작가의 텍스트는 전적으로 공연을 위해 집필된 것이므로, 이미 텍스트에 배우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바로 구술(口述)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는 등 서술자를 통해 필터링되는 서사 문학의 텍스트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번역비평에서는 <억척어멈>의 한 장면에서 발견되는 ‘상연성’의 예를 중심으로 이것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하여 선택한 장면은 <억척어멈>의 3막 중 억척어멈이 이베트를 통해 뇌물을 써서 둘째 아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공연 대본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원작에 내재된 긴박감과 긴장감, ‘밀고 당김’과 완급에 의해 형성되는 리듬[5]을 번역가들이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드라마 번역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한계를 확인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번역자가 드라마 텍스트에 내재한 공연성에 대해서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와 공연 사이의 ‘기호적 등가성’[6]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우선 해당 원문을 먼저 살펴보자.
①wenns deiner ist. Du hast mir versprochen, daß du mit dem Feldwebel redest ②wegen meinem Schweizerkas, da ist keine ③Minut zu verlieren④,
ich ⑤hör, in einer Stunde kommt er ⑥vors Feldgericht. YVETTE ⑦Nur noch die Leinenhemden möcht ich nachzählen. MUTTER COURAGE zieht sie am Rock herunter: Du ⑧Hyänenvieh, es gehtum Schweizerkas. Und kein Wort, von wem das Angebot kommt⑨, tu, als ⑩seis dein Liebster ⑪in Gottes Namen, sonst sind wir alle hin, weil wir ihm Vorschub geleistet haben.
억척어멈의 ‘명석하진 않지만 정직한’ 둘째 아들은 그가 가진 미덕 덕분에 신교군대의 출납계장이 된다. 가톨릭 군대가 마을을 점령하자, 우직하게 연대 금고를 지키려던 그는 군사 재판을 받고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억척어멈은 군인들에게 웃음을 파는 이베트에게 자기 삶의 밑천인 수레를 저당 잡아 돈을 마련한 뒤 뇌물을 써서 아들을 구하려고 한다. 이때 이베트는 뇌물 전달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상반된 처지이다. 억척어멈은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기에 분초가 아쉬운 상황이고, 이베트는 거래 상대인 억척어멈이 다급해질수록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완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이베트의 대사에서 부차적이고 추가적인 행동(⑦)을 하는 이베트의 여유와 느긋함, 그리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느껴지는 반면,[7] 억척어멈의 대사에는 전방위적으로 다급함이 묻어난다. 이 다급함은 단순히 내용의 차원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시각적인 측면(textgraphisch)에서 쉼표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마침표가 사용되어야 할 자리에 쉼표가 사용된 경우도 있다(④, ⑨). 말이 생각보다 앞서다 보니 문장 어순이 뒤틀린 곳도 눈에 띈다(①, ②). 축약형도 많이 등장한다(①, ③, ⑤, ⑥. ⑩). 상대방이 내 말을 바로 들어 주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욕설(⑧)이 튀어 나오고, 다급할 때 쓰는 관용구(⑪)도 등장한다. 다시 말하면 아들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억척어멈의 절박함은 ‘아들을 살려달라’는 호소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서법의 전도, 통사 규범의 파기, 축약형, 관용구 등을 통해 긴장감과 긴박함을 유발하는 리듬과 속도 속에서 구현된다.
이제 개별 번역본들이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면서, 개별 번역본의 고유한 특징도 함께 논의해보고자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원양/양혜숙 역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83; 1984)
<억척어멈>의 초역은 1981년 <한국 연극>이라는 잡지에 번역 게재된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해당 잡지의 실물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원양이 1984년 출간된 <브레히트 硏究>라는 자신의 연구서 서론에서 1981년의 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으로 보아, 1983년이나 1984년의 번역과는 다소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브레히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번역․소개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이미 번역되어 <한국 연극>지에 게재된 바 있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전면 개역하여 책 끝에 부록으로 싣는다.”(이원양 1984, 7)
이원양의 <억척어멈> 번역은 다양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우선 1981년의 초역과 1983년의 번역은 양혜숙과 공역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브레히트 硏究>에 부록으로 실린 <억척어멈>에는 번역자의 이름에서 양혜숙이 빠졌다. 이 번역은 1983년 연우에서 출판된 번역과 다른 지점이 거의 없어서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1983년 출간된 번역서의 내지에는 “이 작품은 공연될 수 없읍니다”라는 문구가 실려있어, 작품의 공연저작권이 살아있음을(또는 공연금지 작가임을) 알려준다. 다른 한편 이 문구는 이 드라마의 주된 ‘번역 의도’가 금지 작가인 브레히트에게 관심을 가진 지적인 독자를 위해 브레히트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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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원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6; 2008)
이후 2006년 전반적으로 윤문된 개정 번역은 이윤택의 공연 저본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한국브레히트학회가 브레히트 사후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브레히트 선집> 제3권에도 실렸다. 이원양의 번역을 출판한 마지막 출판사는 지만지로, 지만지에 실린 번역은 2006년의 번역과 동일하다. 이미 1983년 번역이 상당히 정합한 번역이었기에, 2006년 번역 개정은 전반적으로 윤문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단어나 표현들을 현대화하고, 경우에 따라 대화 당사자들의 관계를 명시하기 위해 반어체나 경어체로 서술어미를 바꾼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3장의 해당 장면은 1983년의 공역과 2006년의 번역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억척어멈: 이베트, 이것이 네 마차라도 마차 검사를 할 시간이 아니야. 내 아들 쉬바이처카스 일로 상사와 이야기해보겠다고 내게 약속하지 않았어? 일분이 새롭다, 듣기론 한 시간 후면 군법 재판을 받게 된다는데. 이베트: 아마 제품 ‘’‘샤쓰‘’‘만 더 세어 보겠어요. 억척어멈: (치맛자락을 끌어당긴다.) 이 잔인한 년아, 쉬바이처카스가 문제야. 누가 제의를 하는 것인지는 한 마디도 비치지 말아. 네 애인이라고 맹세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를 도와준 죄로 우리 모두 끌려가. (이원양/양혜숙 1983, 65)
억척어멈: 이베트, 이것이 네 마차더라도 검사를 할 시간이 아니야. 내 아들 슈바이처카스 일로 상사와 이야기해보겠다고 내게 약속하지 않았어, 일분이 새롭다, 듣기론 한 시간 후면 군법 재판을 받게 된다는데. 이베트: 아마 제품 셔츠만 더 세어 보겠어요. 억척어멈: (치맛자락을 끌어당긴다.) 이 하이에나 같은 년아, 슈바이처카스가 문제야. 누가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인지는 한 마디도 비치지 마라,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네 애인이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그를 도와준 죄로 우리 모두 끌려가. (이원양 2006, 170)
굵게 표기된 부분들은 2006년의 번역에서 변경된 것이다. 우선 ‘쉬바이처카스’는 ‘슈바이처카스’로, ‘샤쓰’는 ‘셔츠’로 변경하여 외래어 표기를 수정하였고, 1983년의 번역에서는 누락된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를 2006년 번역에서 추가하였다. 2006년의 개정 번역에서 나타나는 구어화/구술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이후 살펴볼 이윤택의 대본에서 처음부터 수정했던 ‘일분이 새롭다’(→일분이 아깝다)와 같은 표현이나, 문어적인 인상을 주는 ‘하는 것인지는’(→하는 지는)과 같은 표현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대사를 소리 내어 낭독했을 때, 억척어멈의 급박한 사정을 속도감 있게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이베트의 늑장 또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이 번역에서는 둘 간의 심리적 줄다리기를 통해 형성되는 긴장감의 분위기가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또 다른 아쉬움은 ‘제안’, ‘청탁’ 등 더 평이하거나, 또는 구체적인 정황을 명시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단어를 두고 ‘제의’라는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이원양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재구성하면서 읽지 않는다면, 이 장면에서의 긴박함은 전혀 감지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원문을 정돈해서 번역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일어의 뒤틀린 어순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번역했다면, 억척어멈의 다급한 사정이 더 잘 구현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 양혜숙 역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95)
1981년과 1983년 이원양과 공역을 했던 양혜숙은 1995년 <연극의 이해>라는 편역서에 서사극에 대한 소개글과 함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의 번역을 실었다. 이 책에는 ‘비극’, ‘희극’, ‘사실주의’, ‘표현주의’, ‘서사극’, ‘부조리극’과 같은 연극의 키워드가 제시되고, 관련 작품으로 <오이디푸스 왕>, <리어왕>, <수전노>, <유령>, <벚꽃동산>, <아침부터 자정까지>,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대머리 여가수>가 수록되어 있어, 극작가로서의 브레히트의 중요성을 확인해 준다.
양혜숙의 번역은 1983년의 공역과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기에, 기존 공역의 윤문 차원이 아닌 새로운 번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전의 공역과 비교하면 가독성이 높고 현대적인 문체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가독성은 문장과 문장을 유연하게 연결하거나, 설명적으로 풀어냄으로써 배가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들도 발견된다.
MUTTER COURAGE […] Sogar mit die, wo nicht beim Heer sind, ists kein Honigschlecken. Er sagt, er möcht den Boden küssen, über den deine Füß gehn, hast du sie gewaschen gestern, weil ich grad dabei bin, und dann bist du sein Dienstbot.
억척어멈: […] 군인들과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랑은 결코 꿀맛은 아닌 거야. 그 녀석은 네게 말할 거다. 네가 밟고 간 땅마저도 입맞추고 싶다구. 그 소리를 듣고 네가 발이라도 씻은 날이면 넌 벌써 너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녀석의 종이 된 게나 다름이 없느니라. (양혜숙 1995, 347)
밑줄 그은 부분은 브레히트가 말장난과 희화화를 통해 사랑의 환상을 파기하는 장면이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상상은 낭만을 산산이 깨어버리는 말장난의 삽입으로 인해 단절되고, 그다음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그 사랑의 결과로서의 비루한 결말, 즉 여자가 밟고 간 흔적도 사랑하겠다는 남자의 하녀 노릇이나 하게 된다는 현실의 각성이 뒤따른다. 따라서 브레히트의 의도를 살려서 번역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되어야 한다.
억척어멈: […] 남자는 네가 발로 밟고 지나간 땅에도 키스하고 싶다고 할 거야. 말이 나왔으니, 너 어제 발 씻었지? 그다음에는 넌 그자의 하녀가 되는 거야. (이은희 2012, 177).
다음과 같은 사례도 있다.
DER FELDPREDIGER Schließlich essen Sie sein Brot. DER KOCH Ich eß nicht sein Brot, sondern ich backs ihm.
군목: 그러나저러나 자넨 입에 풀칠은 하고 지내지 않나. 취사병: 내가 그분의 빵을 먹는 게 아니라, 내가 그분에게 빵을 구어드리는 격이라구요. (양혜숙 1995, 349)
인용된 부분의 ‘sein Brot essen’은 맥락상 ‘누구의 식솔’이라는 의미인데, 취사병은 이 말을 받아서 자신이 왕한테 얻어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빵을 구워준다고 하면서, 말장난으로 받아친다. 브레히트의 이념을 고려한다면, 가벼운 언어 유희를 통해 위계와 권위를 부정하는 동시에 이를 취사병의 독립적인 주체성으로 전복하는 시도로도 읽힐 여지가 있다. 그런데 이 번역은 ‘말장난’의 의도는 전혀 드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역의 여지를 지닌다.
브레히트는 “지배관념을 머금은 이데올로기 언어의 단순 재생산을 거부”(오성균 1999, 305)할 뿐만 아니라 언어의 ‘생소화’를 통해서도 서사극적 기법을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을 설명으로 채우려는 시도나 이러한 노력을 통해 유려하게 번역해 버리는 것은 원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살펴보았던 부분을 살펴보자.
억척어멈: 지금은 당신 마차를 점검할 때가 아니유. 이제 당신 건데 뭘 그러시우. 댁이 우리 아들 쉬바이처카스 때문에 상사에게 얘기해 준다구 약속했지 않았수. 내가 들었는데 그 앤 한 시간 내로 야전 군법재판장에 서게 된대요. 이베트: 마직 셔츠만 세어 볼게요. 억척어멈: (그녀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긴다.) 이 잔인한 짐승 같으니. 쉬바이처카스의 목숨이 달려 있어. 누구의 부탁인지. 한마디도 누설을 하면 안 돼. 하늘에 맹세코. 그 애가 당신 애인인 척 해야 된다구.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목이 달아난다구. 그 앨 도와준 죄로. (양혜숙 1995, 357)
이 번역에서도 원문의 긴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이베트의 대사에서는 ‘(nur) noch’의 의미가 누락됨으로써 불가피하지 않은 이 행위를 부가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강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억척어멈이 첫 번째 대사에서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느긋한 정서’를 유발하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원문의 속도감에 역행하는 인상을 준다. 이후 두 번째 대사에서는 충청도 사투리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과연 첫 번째 대사의 억척어멈과 두 번째 대사의 억척어멈은 동일한 인물인가에 관한 ‘진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대신 두 번째 대사에서는 원문처럼 짧은 호흡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다급함은 잘 구현되고 있다. 억척어멈의 첫 번째 대사의 첫 두 문장이나, 두 번째 대사의 ‘그 애가 당신 애인인 척 해야 된다구’는 오역일 소지가 높다. 아쉽게도 이 번역 또한 원문의 리듬을 잘 살려내지는 못했다.
4) 이은희 역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2012)
열린책들 세계문학 선집에서 출간된 이 번역본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곡선집’이라는 부제 하에 <서푼짜리 오페라>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미 <서푼짜리 오페라>의 번역비평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브레히트 전공자인 이은희는 관행처럼 반복되었던 기존의 오역을 잡아내는 등 원문에 매우 충실한 번역자이다. <억척어멈>에서도 이러한 번역 태도는 잘 드러난다.
억척어멈: 이베트, 지금 네 마차를 살펴볼 시간이 없어. 네 입으로 네 거라고 얘기하니까 말이지만, 내게 약속했잖아, 내 아들 슈바이처카스 일로 상사랑 얘기해 보겠다고. 이제 일분일초가 급해. 내가 듣자 하니, 한 시간 후에 내 아들이 군사 재판을 받는다는데. 이베트: 아마포 셔츠만 다시 세어 보고. 억척어멈: (그녀의 치맛자락을 밑으로 잡아당긴다) 이 하이에나 같은 인간아! 내 아들 슈바이처카스 목숨이 달린 일이야. 누가 제안을 한 것인지는 한마디도 하지 마. 네가 원하는 대로 네 애인이 그랬다고 해. 안 그러면 그 아이를 도왔다고 우린 다 죽어. (이은희 2012, 199)
해당 장면은 전반적으로는 무리 없이 번역되었다. 번역자는 ‘dein Wagen’과 ‘wenns deiner ist’를 유연하게 연결하기 위하여 후자를 ‘네 입으로 네 거라고 얘기하니까 말이지만’이라고 설명적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해서 세 단어로 이루어진 종속절은 한국어로는 두 배로 늘어났다. 아들이 한 시간 후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지도 모르는 어머니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느긋하고 친절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네가 원하는 대로’는 ‘in Gottes Namen’을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포기’나 ‘체념’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역시나 설명적이고 친절한 인상을 자아낸다. 이 번역 또한 대사를 둘러싸고 있는 속도와 대사 간의 리듬을 제대로 포착해내진 못한 것 같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공연의 최전선, 즉 무대에서 공연을 만드는 이윤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원문의 내용에 충실한 번역, 정돈된 번역 문장에 방점을 두고 번역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 번역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번역가의 역량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연극이나 공연에 대한 이해가 독일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번외] 이윤택의 공연대본
마지막으로 이윤택의 공연 대본을 보자. 첫 번째 인용문은 실제 공연이 이뤄지기 전 총 10권으로 출간된 <공연대본전집>의 제10권 마지막에 실린 <억척어멈>의 공연 전 대본이다. 해당 전집에서는 ‘번안’이라는 표현 대신 ‘재구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2006년 가을 연희단거리패 20주년 기념공연 예정작’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이 전집에서는 이원양의 번역을 저본으로 삼고 있음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공연 이후 발간한 공연 및 세미나 자료집에서 이원양의 번역에 기반하여 번안, 각색하였음을 밝힌다(게릴라 2006).
억척어멈: 춘향아, 이것이 네 마차더라도 검사를 할 시간이 아니야. 내 아들 일로 상사와 이야기해보겠다고 내게 약속하지 않았어, 일분이 아깝다, 듣기론 한 시간 후면 공개 재판을 받게 된다는데. 창녀: 미제 셔츠만 더 세어 보겠어요.
억척어멈: (치맛자락을 끌어당긴다.) 이 여우 같은 년아, 내 아들이 문제야. 누가 이런 제의를 하는 지는 한 마디도 비치지 마라,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네 애인이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끌려가. (이윤택 2006, 248f.)
위 인용문의 볼드체는 앞서 살펴본 이원양의 2006년 번역과 상이한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쉬운 단어로 변경되거나, 더 구어적인 표현으로 교체되거나, 부차적인 표현이 생략된 정도의 윤문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 아울러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아마 제품’이 ‘미제’로 변경된 것에서 배경이 독일에서 한국으로, 시대가 30년 전쟁에서 한국 전쟁으로 변경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두 인용문의 비교를 통해 이원양 번역의 특징을 잘 드러나기도 한다. 이원양 번역은 원문에 대한 정합한 번역이지만, 전반적으로 문장이 긴 편이어서 소리 내서 읽어보면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억척어멈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상당히 문어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실제 공연 대본에서 이 장면은 다음과 같이 변모하였다.[8]
억척어멈: 춘삼아! 워메 오살할 년 춘삼아! 이거 이 인자 니 마차가 되더래도, 한가허니 검사나 할 때가 아니랑께, 우리 아들 일로 상사헌티 이야기해보겠다고 아까 약속했잖여. 일분 일초가 명재경각이여, 아야, 한 시간 뒤면 공개재판을 받는다 드랑께. 매음녀: 아따 쪼게 지둘리시오. 워메 미군 빤스 좀 보드라고. 가덜이 거기시가 킁께 빤스도 큰가, 반바지만 허네이. 억척어멈: (치맛자락을 끌어당긴다.) 오사할년! 내 아들일이 급하당께. 이런 말 내가 냈다고는 벙긋도 말어. 니 애인 대좌가 빼달라고 했다 허란 말이여. 그렇잖으믄 우리 모두 골로 강께. (이윤택 2006, 126)
브레히트의 독일 음악극은 빨치산의 주요 무대였던 지리산 자락과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극으로 변모했고, 원작의 주조를 이루던 남독일 사투리는 전라도 사투리로 탈바꿈했다. 의미의 정확한 대응을 그 평가 잣대로 삼는다면, 이 대본은 좋은 번역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억척어멈의 조급함과 이베트의 늑장 사이에서 형성된 원작 고유의 밀고 당김, 완급의 리듬은 이 대본이 가장 잘 살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억척어멈의 대사는 이원양의 번역에 비해 문장이 훨씬 짧아지는 동시에 마침표가 많아졌다. 아울러 구어로서는 다소 어색한 표현들, 또는 억척어멈의 계층언어로서는 적합해 보이지 않던 언어는 실제 억척어멈과 같은 사람이 구사할 법한 단순한 구어로 대체되었다. 그러면서도 원작의 내용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의미 차원에서 오히려 원작과 상당 부분 상충하는 지점은 이베트의 대사에 해당하는 ‘매음녀’의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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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는 원작보다 훨씬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없던 내용이 첨가되거나, 또는 변경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번안, 즉 자국화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한 자가 부리는 만용과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자의 사정보다 자신의 한 푼이 더 소중한 인간의 이기심을 더 분명히 보여주려는 결단일 수도 있다. 특히, ‘아따 쪼게 기둘리시오’는 원작의 ‘아마 셔츠만 더 세어 보겠어요’의 명시적 의미(denotation)와는 충돌하지만, 이 대사의 함축적 의미(connotation)을 끌어내어,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가시화한다. 산문을 이렇게 번역한다고 하면, 지나친 친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장성과 일회성의 예술인 연극에서 이러한 시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원작자의 의도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적절한 친절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3. 평가와 전망
드라마 번역의 공연성과 수용성에 관한 논의는 자칫하면 의역이나 번안과 같은 번역의 오래된 개념들로 편입되어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차원 텍스트를 다루는 번역가가 번역된 텍스트의 삼차원적인 구현으로서의 공연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 번역비평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까지의 드라마 번역은 소설의 번역과 구분되지 않는, 읽는 드라마를 전제로 한 번역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번역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를 드라마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많은 독자들이 드라마 읽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그 이유는 드라마 장르 특성상 대사와 대사 사이, 지문과 대사 사이 수많은 틈새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틈새들은 원칙적으로는 독자 스스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이 틈새들이 원활하게 채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상상력에 적절한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입체적인 번역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읽기 위한 드라마 번역과 공연하기 위한 드라마 번역이라는 암묵적 이분화는 점진적으로는 지양되어야 하며, 모든 드라마 번역이 번역된 텍스트는 언제든지 공연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원양/양혜숙(1983):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演友. 양혜숙(1995):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현대미학사. 이원양(2006):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게릴라. 이원양(2012):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지만지. 이은희(2012):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열린책들. 이윤택(2006):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공연대본전집 10. 연극과인간. 이윤택(2006):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공연대본. 게릴라.
5. 참고문헌
Brecht, Bertolt: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 Eine Chronik aus dem Dreißigjährigen Krieg. Frankfurt.a.M. 게릴라 편집(2006):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한국 전쟁의 한 연대기. 밀양. 손주경(2009): 희곡텍스트 번역 이론에 대한 고찰. 불어불문학연구 78, 5-31. 오성균(1999):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나타난 ‘생소화 언어’의 수사학적 고찰. 문예미학 5, 305-322. 이상란(2006): 연희단거리패의 문화번역.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연극평론 43호, 159-166. 이원양(1984): 브레히트 연구. 두레. 이원양(2006): ‘한국전쟁의 한 연대기’로 무대에 오른 한국판 <억척어멈>. 본질과 현상 6, 299-306. 이정린(2014): 드라마 번역이론 연구. 브레히트 『억척어멈』 한국어 공연을 위한 이윤택 재구성 텍스트의 수용자중심 번안사례를 중심으로. 브레히트와현대연극, 79-105.
- 각주
- ↑ 작품의 제목은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또는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로 번역되었다. 본고에서는 가장 최근의 번역본의 제목에 따라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로 하되, 이하 편의상 <억척어멈>으로 축약하여 통칭한다.
- ↑ 1949년 1월 11일 도이체스 테아터에서 초연된 이후 1951년 9월 11일에 이미 100회 공연을 돌파했다.
- ↑ 1995년 11월 27에서 29일까지 서울대학교 인문극회 정기공연작으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무대에 올린 대학신문 기록이 확인되며(서울대학교대학신문, 1995.11.27.) “극단 그림연극은 2005년 4월 21일부터 5월 8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문예진흥원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아홉 번째 정기공연 작품으로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기록한 학술논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도 공연된 것은 분명하나, 대개는 대학이나 소극장 등에서 공연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 https://www.segye.com/newsView/20060904000817 (검색일: 2023.2.10.)
- ↑ 바스넷에 의하면 “희곡텍스트의 언어는 청각 및 시각 기호의 조직망 가운데 하나이다. 시각적 측면 이외에 리듬, 음의 고저, 억양, 속도, 강세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상위텍스트와 더불어 배우의 몸짓을 결정하는 하위 텍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은 쓰여진 텍스트에서는 쉽게 간파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손주경 2009, 11)
- ↑ 10번 각주 참조.
- ↑ 특히 이베트의 대사에서 의미상으로는 화법조동사 müssen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한데, 이베트가 여기서 자기의 의지가 더 강력히 드러나는 ‘möchten’을 사용하는 것에서도 둘 간의 불균형한 거래 정황이 확연히 드러난다.
-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한국전쟁의 한 연대기>는 이윤택이 연출, 연희단거리패가 공연한 작품으로, 2006년 7월 게릴라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공연종료 후 ‘브레히트 서거 50주년 연희단거리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 세미나’라는 부제와 함께 책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브레히트 관련 발표, 세미나, 좌담회 프로토콜, 이윤택의 재구성대본 및 이원양의 번역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게릴라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