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Der Prozeß)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작품소개
1925년 출판된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은행원 요제프 K는 30세 생일날 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잠자리에서 체포된다. 그를 체포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죄명을 알려주지 않으며, 그밖에도 그가 체포된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체포 상태에서도 K는 자유로이 움직이고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법원과 접촉할 길을 찾지만 하급법원의 관련자들만 겨우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가 만나는 일반인들조차 모두가 법원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이 드러나며, 이를 통해 그는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권력의 오용과 사방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통찰하게 된다. 그는 점차 더 깊이 악몽 같은 관료체계의 미로에 빠져들며, 제대로 재판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31세 생일 전날 저녁에 그를 찾아온 두 남자에게 끌려가 채석장에서 “개처럼” 처형된다. 한국어 초역본은 1957년 김정진의 번역으로서, <현대작가 22인집>에 수록되었다(한농출판사).
초판 정보
Kafka, Franz(1925): Der Prozess. Brod, Max(ed.). Berlin: Die Schmiede.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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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審判 | 審判 | 프란쯔 카프카 | 박종서 | 1958 | 博英社 | 4-302 | 완역 | 완역 | ||
2 | 심판 | 審判 | 박영문고 184 | 프란츠 카프카 | 朴鍾緖 | 1958, 1978 | 博英社 | 5-305 | 완역 | 완역 | |
3 | 심판 | 審判, 아메리카 | 카프카 | 金晸鎭 | 1972 | 三省堂 | 242-397 | 편역 | 완역 | ||
4 | 심판 | 성, 심판 | 카프카 | 염무웅 | 1972 | 정음사 | 301-461 | 편역 | 완역 | ||
5 | 審判 | 城 | 世界文學大全集 14 | 카프카 | 全光珍(김광진) | 1974 | 大洋書籍 | 293-482 | 편역 | 완역 | |
6 | 審判 | 城 | World's Great Books 28 | 카프카 | 金晸鎭; 朴鍾緖(김정진; 박종서) | 1975 | 東西文化社 | 441-654 | 편역 | 완역 | |
7 | 審判 | 城, 變身, 審判 | Great books 28 | 카프카 | 金晸鎭;朴鍾緖 | 1975 | 東西文化社 | 439-654 | 편역 | 완역 | |
8 | 심판 | 審判 | 삼중당문고 46 | 프란츠 카프카 | 金晸鎭 | 1975 | 三中堂 | 5-330 | 완역 | 완역 | |
9 | 判決 | 變身 | 동서문고 80 | 프란츠 카프카 | 朴鍾緖(박종서) | 1977 | 東西文化社 | 145-162 | 편역 | 완역 | |
10 | 審判 | 城 | 世界文學全集 40 | 프란츠 카프카 | 金晸鎭; 朴鍾緖(김정진; 박종서) | 1978 | 東西文化社 | 441-654 | 편역 | 완역 | |
11 | 審判 | 성, 변신, 심판 | 세계문학전집 40 | 카프카 | 朴鍾緖 | 1978 | 東西文化社 | 354-439 | 편역 | 완역 | |
12 | 審判 | 城 | 신장판 세계문학전집 41 | 프란츠 카프카 | 朴煥德(박환덕) | 1979 | 乙酉文化社 | 309-475 | 편역 | 완역 | |
13 | 存在의 제로地帶 소송 | 存在의 제로地帶 소송 | 프란츠 카프카 | 金光堯 | 1979 | 飛展 | 37-291 | 완역 | 완역 | ||
14 | 審判 | 城, 審判 | 世界文學全集 41 | 프란츠 카프카 | 朴煥德 | 1979 | 乙酉文化社 | 309-475 | 편역 | 완역 | |
15 | 審判 | 審判, 아메리카, 變身, 流刑地에서(심판, 아메리카, 변신, 유형지에서) | 世界文學大全集(세계문학대전집) 33 | 프란츠 카프카 | 郭福祿 | 1980 | 徽文出版社 | 15-226 | 편역 | 완역 | |
16 | 심판 | 성(城), 심판 | (High seller) 世界文學大全集 23 | 카프카 | 전광진 | 1980 | 교육문화사 | 319-522 | 편역 | 완역 | |
17 | 심판 | 심판 | 프란츠 카프카 | 김광요 | 1981 | 명지사 | 37-291 | 완역 | 완역 | ||
18 | 審判 | 變身 | 자이언트문고 147 | 프란츠 카프카 | 朴鍾緖(박종서) | 1982 | 文公社 | 145-162 | 편역 | 완역 | |
19 | 심판 | 심판 | 주우세계문학 9 | 프란츠 카프카 | 韓逸燮(한일섭) | 1982 | 主友 | 35-233 | 편역 | 완역 | |
審判 | 城 | 세계문학전집 Great Books 38 | 프란츠 카프카 | 金晸鎭, 朴鍾緖(김정진; 박종서) | 1983 | 學園出版公社 | 441-654 | 편역 | 완역 | ||
21 | 심판 | (신편)세계문학대전집 17 : 변신, 심판,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 (신편)세계문학대전집 17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1985 | 信永出版社 | 71-266 | 편역 | 완역 | |
22 | 심판 | 심판 외 | 다이아몬드세계문학대전집 10 | 카프카 | 송호수 | 1987 | 청화 | 9-256 | 편역 | 완역 | |
23 | 심판 | 변신 | 골든 세계문학전집 20 | 카프카 | 곽복록 | 1987 | 中央文化社 | 69-269 | 편역 | 완역 | |
24 | 심판 | 심판∙실종자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30 | F. 카프카 | 박환덕 | 1987 | 汎友社 | 17-197 | 편역 | 완역 | |
25 | 심판 | 변신, 심판 | 호암명작신서 4 | 프란츠 카프카 | 이영규 | 1987 | 호암출판사 | 75-336 | 편역 | 완역 | |
심판 | 심판 | 한권의 책 77 | 프란츠 카프카 | 한일섭 | 1987 | 학원사 | 13-217 | 완역 | 완역 | ||
27 | 심판 | 심판 | Ever green classic | 프란츠 카프카 | 박종서 | 1988 | 학원출판공사 | 241-371 | 편역 | 완역 | |
28 | 심판 | 심판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3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88 | 범우사 | 11-265 | 완역 | 완역 | |
29 | 심판 | 심판, 성 | (우리시대의 )세계문학 16 | 카프카 | 김정진 | 1988 | 계몽사 | 3-171 | 편역 | 완역 | |
30 | 심판 | 변신, 심판 | 호암명작신서 4 | 프란츠 카프카 | 이영규 | 1989 | 호암출판사 | 75-336 | 편역 | 완역 | |
31 | 심판 | 심판 | 청목 정선 세계문학 35 | 카프카 | 신승희 | 1990 | 靑木 | 9-256 | 편역 | 완역 | |
32 | 소송 | 위대한 개츠비, 소송 | 영상세계문학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90 | 어문각 | 209-431 | 편역 | ||
33 | 심판 | 변신, 심판,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 (벨라주) 世界文學大全集 17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1990 | 신영출판사 | 71-266 | 편역 | 완역 | |
34 | 심판 | 심판, 성, 변신 | Ever green classic, 학원세계문학전집 20 | 카프카 | 박종서 | 1991 | 학원출판공사 | 241-371 | 편역 | 완역 | 온라인 |
35 | 심판 | 심판 | 마로니에북스 29 | 프란츠 카프카 | 최헌욱 | 1991 | 청림출판 | 7-245 | 완역 | 완역 | |
36 | 심판 | 심판, 변신 | Hongshin elite books 24 | F. 카프카 | 이덕중 | 1992 | 홍신문화사 | 9-268 | 편역 | 완역 | 온라인, 역자가 <심판>의 챕터에 임의의 소제목을 붙였다 |
37 | 심판 | 심판 | Touchstone books 17 | 카프카 | 한일섭 | 1992 | 學園社 | 15-219 | 편역 | 완역 | |
38 | 심판 | 심판, 아메리카, 변신 | 베스트세계문학 13 | 카프카 | 곽복록 | 1993 | 신원문화사 | 7-238 | 편역 | 완역 | |
39 | 심판 | 심판, 변신 | 세계걸작문학선 5 | 카프카 | 청화출판사([청화출판사]) | 1993 | 청화출판사 | 9-256 | 편역 | 완역 | 실물, 여러작가 |
40 | 심판 | 변신 | 엘리트문고 16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1993 | 신원문화사 | 80-356 | 편역 | 완역 | |
41 | 소송 | 위대한 개츠비, 소송 | 마당세계문학전집 21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93 | 마당 | 209-437 | 편역 | 완역 | |
42 | 심판 | 변신, 심판, 시골 의사 | 세계문학동아리 | 프란츠 카프카 | 동서문화번역위원회 | 1993 | 宇石 | 75-316 | 편역 | 완역 | |
43 | 심판 | 심판. 유형지에서 | 혜원세계문학 90 | 프란츠 카프카 | 추지영 | 1995 | 혜원출판사 | 5-283 | 편역 | 완역 | |
44 | 심판 | 심판 | 고려원 세계문학총서 | 프란츠 카프카 | 김현성 | 1996 | 고려원미디어 | 11-293 | 편역 | 완역 | |
45 | 심판 | 심판 | Bestseller world book 58 | 프란츠 카프카 | 이진희 | 1997 | 소담출판사 | 9-235 | 완역 | 완역 | |
46 | 심판 | 심판 | Best book collection 20 | 프란츠 카프카 | 이진호 | 1997 | 학영사 | 11-288 | 완역 | 완역 | |
47 | 심판 | 심판 | Best book collection 20 | 프란츠 카프카 | 이진호 | 1997 | 학영사 | 11-313 | 완역 | 완역 | |
48 | 심판 | 심판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3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1998 | 범우사 | 11-265 | 완역 | 완역 | |
49 | 심판 | 심판 | Hye Won World Best 44 | 프란츠 카프카 | 추지영 | 1998 | 혜원출판사 | 5-234 | 완역 | 완역 | |
50 | 소송 | 수레바퀴 아래서 | 세계문학전집 50 | 프란츠 카프카 | 권혁준 | 2001 | 민음사 | 7-444 | 완역 | 완역 | |
51 | 심판 | 심판, 변신 | 카프카 | 확인불가 | 2001 | 학원출판공사 | 13-254 | 편역 | 완역 | ||
52 | 심판 | 변신 | 밀레니엄북스 2 | 프란츠 카프카 | 곽복록 | 2002 | 신원문화사 | 101-453 | 편역 | 완역 | |
53 | 소송 | (비평판)소송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총서 21 | 프란츠 카프카 | 박환덕 | 2004 | 서울대학교출판부 | 3-230 | 편역 | 완역 | |
54 | 심판 | 변신.심판 | 대일출판사 세계명작 시리즈 131 | 프란츠 카프카 | 유한준 | 2004 | 대일출판사 | 134-247 | 편역 | 완역 | |
소송 | 소송 | 카프카전집 3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2006 | 솔출판사 | 9-247 | 완역 | 완역 | ||
56 | 심판 | 심판 | 문예 세계문학선 58 | 프란츠 카프카 | 김현성 | 2007 | 문예출판사 | 7-298 | 완역 | 완역 | |
57 | 소송 | 소송 | 을유세계문학전집 16 | 프란츠 카프카 | 이재황 | 2008 | 을유문화사 | 7-309 | 완역 | 완역 | |
58 | 소송 | 소송 | 펭귄클래식 |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 2009 | 웅진씽크빅 | 7-303 | 완역 | 완역 | |
59 | 심판 | 변신, 심판 | 대학권장도서 베스트 2 | 카프카 | 곽복록 | 2009 | 신원문화사 | 93-423 | 편역 | 완역 | |
소송 | 소송 | 세계문학전집 23 | 프란츠 카프카 | 권혁준 | 2010 | 문학동네 | 9-287 | 완역 | 완역 | ||
61 | 소송 | 소송 | 열린책들 세계문학 194 | 프란츠 카프카 | 김재혁 | 2011 | 열린책들 | 7-295 | 완역 | 완역 | |
62 | 심판 | 변신, 심판 | 프란츠 카프카 | 김종석 엮음 | 2011 | 훈민출판사 | 89-197 | 편역 | 완역 | ||
63 | 소송 | 변신.소송 | 내 인생을 위한 세계문학 012 12 | 프란츠 카프카 | 박제헌 | 2015 | 심야책방 | 99-452 | 편역 | 완역 | |
64 | 심판 | 성, 심판, 변신 | 세계문학전집 41 | 카프카 | 金晸鎭; 朴鍾緖(김정진; 박종서) | 2016 | 동서문화사 | 321-522 | 편역 | 완역 | |
65 | 소송 | 소송 | 부클래식 61 | 프란츠 카프카 | 이미선 | 2016 | 부북스 | 7-278 | 완역 | 완역 | |
66 | 소송 | 소송, 변신, 시골의사 외 | 프란츠 카프카 | 김재혁 | 2016 | 열린책들 | 7-296 | 편역 | 완역 | ||
67 | 소송 | 소송 | 카프카 전집 3 | 프란츠 카프카 | 이주동 | 2017 | 솔출판사 | 9-247 | 완역 | 완역 | |
68 | 소송 | 변신. 소송 | 프란츠 카프카 | 박제헌 | 2019 | 별글 | 101-45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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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0. 원본의 특성 고찰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소송>의 원본은 그 형성사적 특수성 때문에 원전비평뿐 아니라 번역 비평에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 특성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카프카의 원작은 1914~1915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나, 작가가 곧 다른 작품을 시작함으로써 1915년 초에 중단된 이후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소설의 구성 역시 첫 장부터 순차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첫 장(체포)과 마지막 장(종결)을 먼저 쓴 후 나머지 장들을 각각 집필하였고, 나중에 집필노트에서 찢어낸 각 장들을 붙여 하나로 묶었다고 전해진다. 카프카는 이 작품을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절친인 막스 브로트가 구해내어 유고작으로 편집한 후 1925년 4월 26일 베를린의 출판사 Die Schmiede에서 “Der Prozess”라는 제목으로 초판을 발행하였다. 이때 브로트는 원본을 통일된 작품으로 간주하여 줄거리를 장으로 구분했는데, 카프카가 생전에 읽어주었던 내용에 따라 각 장의 순서를 정했다고 밝힌다. 또한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원본 텍스트의 문체를 손질하였다. 이를 통해 작품의 문장구조와 표현법 등이 일반 독일어에 적합하게 다듬어졌다. 1935~46년에 브로트는 확장된 개정판을 발행하는데, 여기엔 미완결된 내용으로 간주하여 초판에서 배제되었던 장들과 카프카가 지워버린 장들이 모두 부록으로 포함되었다. 이후 개정판의 제목은 “Der Prozeß”로 바뀌었다. 제3판 후기에서 브로트는 각 장의 순서가 작가의 의도와 달리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오늘날 카프카 원본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받는 맬컴 패슬리의 비평판(1990)은 편집진 패슬리의 책임편집으로 1990년 발행되었으며 제목을 “Der Proceß”로 달았다. 이후 카프카의 원본판은 브로트 판과 패슬리 판으로 구분된다.
1. 번역 현황 개관
1) 1957~2019년
카프카의 대표작 <소송>은 1957년부터 2019년까지 약 70년에 걸쳐 꾸준히 번역되어온 작품으로서 한국 독자들에게 인지도가 매우 높은 20세기 독일문학에 속한다. 지금까지 원문번역은 총 28편으로 집계되며, 기존 번역물의 재판 및 개정판은 총 45편에 이른다. 거의 모든 번역가가 독일어를 전공하거나 카프카 연구전문가인 대학교수들로 구성되며, 번역 부록에 작가 연보는 물론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의 생애와 그의 문학세계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번역사적으로 이 작품은 먼저 1957년 김정진의 초역을 통해 일반 독자층에 소개되었다. 초창기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총 3편의 번역본만 출간되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1970년도 6편, 1980년도 6편, 1990년도 6편, 2000년 이후 총 8편이 새로 번역되었다. 기존 번역물의 재판과 개정판 역시 점차 증가하여 1970년대 8편, 1980년대 15편, 1990년대 6편 (혹은 10편), 2000년대 이후 9편 (혹은 11편)이 출판되면서 가장 많이 번역된 독일문학작품에 속하게 된다. <소송>의 번역은 역사적으로 1980년대 가장 성황을 이루었다. 여기엔 산업화가 가속화되던 70년대 말에서 80년대에 걸쳐 전국 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가 양적으로 증가했고, 또 당시 대학을 다니던 베이비붐 세대를 통해 독일문학의 전반적인 수요층이 확산되었다는 이유를 들 수 있겠다.
2) 작품 제목의 변화
번역된 작품의 제목들도 크게 2가지로 구분되는데, 여기서 각 번역의 맥락을 반추하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1950~60년대 번역은 모두 일본어 번역본의 제목을 그대로 따와서 “심판”으로 번역했다. 70년대의 번역본 역시 6편 중 5편이 “심판”으로, 1편이 “소송”으로 번역하였다. 1980년대의 번역 6편은 한결같이 “심판”으로 번역되었다. 90년대에도 신역 6편이 모두 “심판”으로 번역된 데 반하여, 박환덕의 기존 번역이 3차례 재출간되는 과정에서 두 번을 “소송”으로, 한 번을 “심판”으로 출간하였다. 이처럼 작품의 제목을 “심판”으로 번역하던 추세는 2000년도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바뀐다. 2000년대 새로 번역된 4개의 번역본 중에서 3편이 “소송”으로, 그리고 박환덕의 재판본이 “소송”으로 제목을 붙였다. 2010년대에 출판된 새 번역본 4편은 모두 다 제목을 “소송”으로 붙였다. 이로써 특정 사건에 대한 법의 결정을 강조하는 “심판” 보다는, 그 법적 절차와 과정을 포괄적으로 담는 “소송”의 의미가 더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초창기 번역의 문제: 번역가의 저작권이 없던 시대의 부조리 현상
카프카의 장편소설 <소송>은 50년대에 처음 번역되었다. 1957년 김정진과 1958년에 박종서가 번역하여 각각 “심판”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이후 이 두 번역본은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공동번역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경향은 특히 70년대~80년대에 집중된다. 박환덕의 번역본 역시 1970년대부터 2000년도에 이르기까지 무려 9차례나 출판사를 바꿔가며 출판되었다. 1980~90년대에 들어서면 기존 번역본들의 재판 인쇄가 증가한 것은 물론이고, 번역가의 이름도 없는 번역본이 4편이나 출판시장을 돌아다녔다. 이런 정황은 2000년도 이후의 출판시장에서도 포착된다. 이 난삽한 번역출판의 역사는 번역가의 저작권이 전무하던 2010년도 경까지 번역물을 대하던 국내 출판계의 횡행을 보여주는 예이다.
예시)
- 김정진: 1972 삼성당/ 1975 삼중당/ 1988 계몽사/ 2009 동서문화사.
- 박종서: 1975, 동서문화사/ 1978 박영사/ 1991 학원출판공사.
- 공동번역: 1975년 동서문화사/ 1978 금성출판사/ 1978 동서문화사/ 1983, 1987 학원출판공사/ 1988 동서문화사/ 2009 동서문화사.
예시)
- 박환덕: 1976, 1979, 1980, 1987, 1988, 1999년도 번역본은 “심판”으로, 1990, 1993, 2004년도 번역본은 “소송”으로 제목을 붙였다.
2. 개별 번역본의 특성 고찰
여기선 무려 45개의 번역본과 재판본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번역본 4편을 선정하여 그 편집과 문체, 의미의 해석 등을 중심으로 개별적 및 역사적 특징을 간략하게 서술한다. 1950년대 초창기부터 1970대 번역을 특징짓는 박종서의 번역, 1980~1990년대의 문헌학적 번역을 대표하는 한일섭의 번역, 2000년대 이후 카프카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이주동의 번역, 2010년대 이후 대중독자를 위해 가독성을 추구하는 권혁준의 번역으로 구분하여 소개한다.
박종서는 김정진과 더불어 1950년대 카프카 문학을 국내에 번역하여 소개한 최초의 번역가이자 초창기부터 한국의 카프카 번역을 주도했던 독문학자다. 이 두 역자는 때로는 홀로, 때로는 공동으로 번역본을 출판하였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카프카 번역의 흐름 속에서 이들의 초역본들은 계속 쇄를 거듭하거나 중판을 찍어왔다. 이 글에서 고찰할 2009년도 동서문화사의 중판본은 <성/심판/변신>으로 제목을 달고 있으며, 1987년도의 번역본의 2쇄로 표시되어 있다. 이 중 <심판>은 박종서의 번역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동서문화사가 1975년부터 2016년도에 이르기까지 동일 역자들의 카프카 공동번역서를 이미 5차례나 출판한 바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1987년도 번역본을 개정판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2009년도 번역본의 편집 상태는 초창기 번역본의 상태와 징후를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서문화사의 재판본들 모두 이 역자들의 50년대 초역본들을 저작권 없이 계속 찍어 출판한 것으로 판단된다. 2009년도에 출판되었건만 이 번역본에는 시대의 흐름과 요청에 따라 수정 보완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2020년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대학도서관 및 공공도서관의 출입이 제한되어 박종서의 초역본을 접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그의 2009년도 번역본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속함을 밝혀둔다. 가령 오늘날 번역에서 당연히 요청되는 기본적인 원서 정보가 이 번역본에는 없다. 즉 어떤 저본이 사용되었는지는 물론, 두 원본에 포함되어 있는 미완성 장들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심판>은 목차는 없지만 총 10장으로 구성되고, 각 장에 번호와 함께 제목을 붙였다. 예로 첫 장은 “1 체포·그루바흐 부인과의 대화·뷔르스트너 양”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정황은 이 번역본의 독일어 저본이 브로트판이라는 것을 말해주지만, 실제 독일어 원본보다는 일본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은 중역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낳게 한다. 원문 번역 뒤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생애 문학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역자후기를 달았다. 공동번역자 김정진이 “카프카의 삶과 몽상”으로 작가의 삶과 문학의 관계를 고찰하고, 박종서가 “카프카 존재의 아픔”이라는 소제목으로 현대인이 빠져든 극한 상황을 근대성으로 풀어낸 해설서가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요약하자면 이 번역본의 편집 상태는 번역이 문헌학적 연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거나 혹은 번역작업 자체가 어떤 학술적 위상을 갖기 이전의 시대에 생성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 초창기 번역사의 정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번역본은 독일문학번역의 비평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건 번역의 역사가 단순히 원문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번역이 이루어진 도착어 문화권의 사회와 역사에 관한 자기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번역의 역사적 맥락을 반추하는 일은 번역비평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대상이다. 이 번역본의 문체를 살펴보면, 등장인물의 명칭을 요제프 K, 그루우바흐 부인, 뷔르스트너 양, 남자, 태형관 등으로 부르지만, 이들 간의 대화에서는 각 인물들의 사회적 관계가 호칭에 반영된다. 가령 집주인 그루우바흐 부인이 세입자인 미혼여성 뷔르스트너의 행실을 지적할 때 “그 아가씨도”, “얌전하고 귀여운 여자니까요”, “그 여자”라고 하거나, 뷔르스트너 양이 이웃 남성을 “K선생님”으로 부르는 부분들에서 번역자가 처한 시대상과 사회문화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나아가 이 번역본의 특성으로 그 바탕에 깔려 있는 번역가의 작품이해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역자 후기에서 역자는 이방인으로 설정된 주인공이 세계에 소속되는 조건인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대칭적 상황을 강조한다. 세계는 주인공에게 강제명령의 체계로 나타나며,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죄를 찾아내려고 찾아 헤매는 역설적인 결과에 이른다고 해석되고 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이 번역본은 <심판> 및 7편의 단편 작품을 수록한 학원세계문학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판되었다. 독문학자 한일섭의 이 번역본은 박종서 번역본과 대척점을 이루는데, 그 차별성은 바로 그 문헌학적 치밀성에 있다. 우선 이 번역본은 역자 후기에서 1958년도 브로트 판을 저본으로 사용했다고 서지사항과 함께 밝히고 있다. 편집 차원에서도 이 번역본은 수록된 여타의 작품 중 <심판>을 책의 제목으로 내세워 그 대표성을 강조한다. 작가와 번역가 이름을 겉표지에 한국어로 표시하고, 나아가 앞면 속표지에는 간략하게 사진을 곁들여 작가소개를, 뒷면 속표지에는 사진과 함께 역자를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로써 오늘날에도 수많은 외국어 번역에서 소홀하게 취급받고 있는 번역자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고자 하였다. 작품에 관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일섭 번역본은 작품 <심판>으로 시작되는 본문의 한쪽은 독일어 작가명과 작품명을 표기하고 그 아래쪽에 줄거리의 “차례”를 1~10장 및 “부록”까지 쪽수와 함께 열거한다. 그 다음 쪽에서 시작되는 본문은 “제 1장. 체포. 그루바흐 부인과의 대화. 뷔르스트너 양”으로 각 장과 제목을 표시하였다. 부록에는 막스 브로트의 초판후기+재판후기+3판 후기를 모두 번역하여 수록하였으며, 역자 해설과 작가 연보를 담고 있다. 역자해설은 작가 생애, <심판>의 세계, 기타 단편소설들에 대한 소개와 이해를 돕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한일섭 번역본을 독보적으로 만드는 문헌학적 편집의 또 다른 예로서 책의 앞면에 “일러두기”를 넣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역자는 여기서 이 번역본에 쓰인 맞춤법, 지문, 띄어쓰기, 외국어 표기, 기호 및 부호 표시 등의 기준과 적용을 설명하여 한국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런 태도는 주인공 이름을 “요제프 카(독일어의 K-역주)”로 표시한 것처럼 괄호 속에 K의 독일어 발음을 옮겨 “카”로 번역했음을 설명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또한 카프카 원문에서 삭제된 본문 내용에는 번호를 붙여 표시한 후, 부록에서 “작가가 삭제한 부분”이라는 제목으로 각 번호에 해당되는 내용의 원문을 번역해서 제공하는 점에서도 이 번역본의 문헌학적 편집이 돋보인다(예: “① 41페이지, 제 27행. .... ”). 이처럼 치밀하고 학술적인 번역본은 한일섭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업적으로서 “문헌학적 번역”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작품해석에 관해 한일섭은 여기서 문제되는 카의 죄는 설명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그건 법률적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서, 오히려 형이상학적인 문제이다. 즉 주인공의 죄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익명의 복합적인 사상들로 구성된 것이 죄로 표명되는데, 이 죄라는 관념은 살인적인 위력을 지녀서 보통 사람인 주인공의 삶 자체를 파괴시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해석한다.
2006년도 솔출판사의 카프카 전집 제3권으로 출판된 <소송>은 한국의 대표적인 카프카 연구자인 이주동 교수의 번역본으로서, 패슬리의 1990년도 비평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점에서 앞서 살펴본 번역본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이주동은 패슬리의 비평본에 따라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표시 없이 “체포”, “첫심문” 등의 소제목만으로 장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비평 판과 같이 “차례”를 두어 본문의 각 장 및 미완성 장들의 소제목과 쪽수를 표시하였다. 이 밖에도 “일러두기”를 통해 정서법과 관련된 내용들 - 한문병기, 외래어 표기법, 부호와 기호 표시-을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편집상의 특징으로는 카프카 전집이라는 레이아웃에 맞추어 표지에 작가 이름을 독일어로 디자인해 넣고 작품명, 번역자명, 장르(장편소설), 전집표시(카프카전집3)를 표시한 점을 들 수 있다. 뒷면에서는 번역자를 상세히 소개한다. “역자 후기”에서는 작품해설과 더불어 독일어 원문의 판본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번역본은 원문에 충실한 꼼꼼한 번역뿐 아니라 문법, 어휘 및 어조에서도 한일섭의 번역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제목을 “심판”으로 번역하던 기존의 관습을 깨고 “소송”으로 번역하여 차후 한국어 번역본의 새 기준을 정립했다는 점에서 번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이주동 번역본이 “소송”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차후의 번역본들에 시금석을 제시한 점은 이후 새로 출간된 번역본들이 대부분 이 노선을 따르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다. 2006년도 이후의 번역본들은 김현성(문예출판사 2007)을 제외하고 모두 제목을 “소송”으로 옮겼다. 예로 이재황(을유문화사 2008), 홍성광(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권혁준(문학동네 2010), 김재혁(열린책들 2011), 이미선(부북스 2016), 박제헌(심야책방 2015)을 들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김광요(1979)가 “소송”으로 번역한 적이 있고 또 박환덕의 번역본이 수차례 출판사를 바꿔가며 출판되는 과정에서 제목을 “심판”에서 “소송”으로 바꿔 출간한 선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도들은 일회적으로 끝나거나 기존의 번역본을 해당 출판사들이 초판으로 찍기 위한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박환덕의 번역은 9차례나 출판사를 바꿔가면서 출판되었다. 이 중 1976, 1979, 1980, 1987, 1988, 1999년도 번역본은 <심판>으로, 1990, 1993, 2004년도 번역본은 <소송>으로 제목을 붙였다. 이와 달리 이주동의 “소송”은 카프카 전문연구자의 작품해석을 반영한 결과로 보이며, 나아가 2000년대 카프카 수용의 새로운 시대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기존의 제목인 “심판”이 사건의 ‘결과’에 초점을 둔다면, “소송”은 ‘과정’에 보다 역점을 둔 제목으로서 작품이해의 새로운 방향을 주도한다. 이주동은 카프카의 문학이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잠과 깨어남, 정신계와 물질적 현실계 사이의 불일치하고 양극화된 모순 관계 속에서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폭로한다고 이해한다. 카프카는 이 모순된 양극세계를 서술전략으로 사용하는 바, 권력과 기계화된 일상의 법칙과 질서 등 현실에 집착하며 살던 인간들에게 잠이나 꿈은 잊었던 정신세계가 침투되는 계기로 작용하여 충격과 혼란을 야기한다. <소송>의 주인공 역시 잠에서 깨어나는 침대에서 사건을 맞는다. 끝까지 해명되지 않는, 이유 없는 체포와 근거 없는 처형 사이에서 주인공은 실존의 위협을 피하고 일상의 질서를 회복하려고 온갖 시도를 하지만, 그는 결국 미로와 같은 과정을 거칠 뿐, “법”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만다.
이주동 이후 차세대를 대표하는 카프카 전문연구자 권혁준의 2010년도 번역본은 최근의 번역 경향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역시 패슬리 비평 판을 저본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원본처럼 본문 내용을 숫자 없이 소제목으로만 구분하였으며, 본문에선 각 장을 새 쪽으로 시작하여 장 표시를 공간적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편집에서는 원본과 달리 별도의 목차표시 없이 본문만 실었다. 이 번역본은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면서도 마치 단행본인 것처럼 현대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장정으로 특징을 이룬다. 독일어로 된 작가 및 작품명은 검은색 표지 전면에 새겨진 무늬로 디자인하였으며, 앞표지의 날개에는 작가 사진과 작가소개, 앞표지와 뒤표지에는 빨강색 속표지를 삽입하였다. 번역본의 앞쪽은 빨강색 속표지 다음에 검은색 속표지를 달고 작은 화면으로 수감자처럼 보이는 사람의 쭈그린 사진을 삽입하여 그 밑에 “소송”이라고 적은 것은 매우 드라마틱한 효과를 낳는다. 겉표지와 속표지를 장정한 검은색과 빨강색은 심리적 불안과 공포감을 시각적으로 표출한다. 원저자와 원제목, 한글제목과 작가 이름, 옮긴이의 이름, 출판사 이름 등 출판정보들은 흰색의 바탕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자 후기에서는 작품해석과 두 원전에 대한 소개가 따르며, 이어 상세한 작가연보를 수록하였다. 권혁준의 번역본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독일작가로서 카프카의 작품을 동시대 독자들의 취향에 맞게 감각적이고 현대적으로 편집하였고, 번역어와 문체 또한 오늘날 독자들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친화적이며 대중성, 가독성, 문학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주동의 번역을 포함하여 이전의 번역본들이 원문에 충실하고 문헌학적으로 정확한 번역을 지향한다면, 권혁준의 번역은 독자에게 친절하고 독서의 수월성과 가독성을 위해 내용과 문체를 가공하고 다듬었다. 이 번역본의 문체적 특징을 살펴보면, 주인공은 “요제프 K”로, 다른 등장인물들은 “남자, 부인, 카 씨, 아가씨, K씨/선생님”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K”와 “카 씨”, “K 씨”를 섞어 사용하여 약간의 혼란이 드러난다. 그런 한편 시대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표현들이 등장하는데, 가령 한일섭의 경우, “행원, 산보, 집무능력, 여급” 같은 구시대적 개념을 사용한다면, 권혁준은 “사람들, 산책, 업무능력, 여종업원”처럼 보다 현대독자의 귀에 익은 표현을 선호한다. 또한 원문에는 없는 부가적 의미를 덧붙여 사태의 정황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첫 문장 번역에서 박종서와 한일섭이 “중상”이라는 표현을, 이주동은 “모함”이라고 한 반면, 권혁준은 앞선 번역어를 모두 붙여 “중상모략”이라는 귀에 익은 사자성어를 사용한다. 또한 “특별한”이나 “느닷없이” 같이 원문에 없는 부가어를 넣어 의미의 흐름과 뉘앙스를 더욱 강조한다. 또한 ‘아무 잘못도 없이 체포당한 주인공’ 상이 기존 번역들을 각인한다면, 권혁준은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로 번역하여 주인공의 죄 없음을 단정하기 보다는 따지고 볼 일로서 일말의 여지를 둔다. 권혁준은 역자 해설에서 원작의 구성과 브로트 판 및 패슬리 판의 출판에 관한 역사를 간략히 소개한다. 작품해석에서는 작품이 다루는 사건의 수수께끼 같은 성격이 그 서술 문체에 속하는 일의적 시점과 체험화법과 밀접하게 맺어져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이 작품을 작가의 전기적 사실 및 시대적 상황, 혹은 법률적, 도덕적, 심리적 차원, 혹은 종교적, 실존적 차원과 결부시키는 해석의 단초들을 소개하면서 결국 명료한 해석을 거부하는 이 작품의 다의성을 강조한다. 이로써 <소송>을 불안과 부조리로 가득 찬 인간 실존의 보편적 상황에 대한 은유로 파악하며, 이것이 오늘날의 독자에게 카프카 문학이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3. 평가와 전망
위에서 살펴본 4편의 번역본은 각각 “초창기 번역”, “문헌학적 번역”, “제목의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번역”, “대중적인 번역”으로서 특징을 보이며, 각 번역본이 탄생한 시대적 차별성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드러낸다. 이 번역본들은 특히 200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Der Prozess”의 번역본 성격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앞의 두 편은 가장 많이 사용된 막스 브로트의 원본판을 저본으로 삼았다면, 뒤의 두 편은 패슬리의 원본판을 사용하여 장의 구성에서 다른 원칙을 적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미완성 장들도 작품에 포함시켜 독자에게 카프카 원작의 본래 상태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주동 번역이 저본으로 삼은 패슬리 판과 “소송”이라는 새로운 제목의 도입은 앞으로도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작품해석과 제목이 또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소개한 번역본들은 모두 독문학자들이 번역한 것으로서 역자 해설을 통해 각 번역의 토대가 되는 작품해석을 소개하며, 이로써 독자에게 독서의 방향을 나름 제시하면서 작품이해를 돕고 있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김정진, 박종서(2009): 심판. 동서문화사.
한일섭(1982): 심판. 학원사.
이주동(2006): 소송. 솔출판사.
권혁준(2010): 소송.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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