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Die 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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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소설


작품소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1910년에 발표한 일기 형식의 소설이다. 릴케 자신의 파리 체류 경험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으며, 그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몰락한 덴마크 귀족 가문 출신의 청년 시인인 말테는 파리에서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대도시의 인상, 유년 시절의 기억,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상념을 기록해간다. 연상적 흐름을 따라가는 시적인 산문은 인과적인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전통적인 소설의 문체와 근본적으로 구별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말테의 기록은 대도시 파리의 소외된 삶 속에서 실존적 불안을 느끼는 데서 시작하여 유년 시절의 공포를 상기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맨 마지막에 성경 속 인물 ‘돌아온 탕자’에서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택한 자, 즉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말테의 수기>는 실험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소설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국어판은 1958년 작가 계용묵의 번역으로 처음 발간되었다(보문각).


초판 정보

Rilke, Rainer Maria(1910): Die 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 Leipzig: Insel.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라이너 마리아 릴케 桂鎔默(계용묵) 1958 普文閣 1-279 완역 완역
2 말테의 수기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4편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라이너 마리아 릴케 正信社 編輯部(정신사 편집부) 1959 正信社 132-174 편역 완역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온라인 원문 열람 가능, 명지대학교 도서관/경찰대학 김구도서관 소장자료
3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現代世界文學全集 1 R. M. 릴케 張起昱(장기욱) 1972 世宗出版公社 13-302 완역 완역
4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R. M. Rilke 徐英姬(서영희) 1972 旺文社 9-280 완역 완역
5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Rainer Maria Rilke 朴煥德(박환덕) 1973 文藝出版社 3-270 완역 완역
6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文藝文庫 23 R.M. 릴케 朴煥德(박환덕) 1974 文藝出版社 1-270 완역 완역
7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三中堂文庫 47 Rainer Maria Rilke 姜斗植(강두식) 1975 三中堂 5-271 완역 완역
8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外, 醫師기온 外 世界文學大全集 26 라이너 마리아 릴케 鄭康錫(정경석) 1976 大洋書籍 7-170 편역 완역
9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瑞文文庫 233 R.M. 릴케 孫載駿(손재준) 1976 瑞文堂 7-273 완역 완역
10 말테의手記 말테의手記 동서문고 70 라이너 마리아 릴케 廉武雄(염무웅) 1977 동서문화사 7-279 완역 완역
11 말테의 手記 한밤중의 한時間, 女人들의 傳說, 말테의 手記 現代女性敎養名著百選 3 릴케 朴煥德(박환덕) 1977 汎潮社 265-475 편역 완역
12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R. M. 릴케 徐英姬(서영희) 1977 英興文化社 9-280 완역 완역
13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수레바퀴 아래서, 서부전선 이상없다 世界名作다이제스트 4 라이너 마리아 릴케 朴煥德(박환덕) 1978 汎友社 17-65 편역 편역 릴케 소설 및 편지집
14 말테의 手記 말테의 手記 桂苑薔薇新書 19 R. M. 릴케 李佳炯(이가형) 1978 桂苑出版社 1-246 완역 완역
15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人形의 집, 마농레스코 世界文學全集 27 릴케 孫載駿; 咸喜俊(손재준; 함희준) 1978 平凡社 11-166 편역 완역
16 말테의 手記 (世界名作)말테의 手記 라이너 마리아 릴케 李相根(이상근) 1980 書韓社 11-280 완역 완역
17 말테의 수기 한밤중의 한 時間, 女人들의 傳說, 말테의 수기 現代女性敎養大全集 3 릴케 朴煥德(박환덕) 1981 汎潮社 265-475 편역 완역
18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마당문고 3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철제 1982 마당 5-241 완역 완역
19 말테의 手記 무서운 아이들, 말테의 手記, 牧歌 世界文學全集 54 R.M.릴케 金周園(김주원) 1982 知星出版社 127-365 편역 완역
20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자이언트문고 46 릴케 廉武雄(염무웅) 1982 文公社 6-279 완역 완역
21 말테의 手記 (世界代俵)隨筆文學大全集 世界人의 思索 6 릴케 泰成出版社(태성출판사) 1983 泰成出版社 115-165 편역 완역
22 말테의 手記 무서운 아이들, 말테의 手記, 牧歌 (特選)世界文學全集 23 R.M. 릴케 金周園(김주원) 1983 時代文化社 127-365 편역 완역
23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데미안, 싯다르타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27 릴케 宋永擇(송영택) 1984 삼성출판사 13-195 편역 완역
24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삼중당문고 100권의 책 78 R. M. 릴케 강두식 1984 삼중당 1-283 완역 완역
25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데미안, 싯다르타 (삼성판)세계문학전집 27 릴케 宋永擇(송영택) 1986 삼성출판사 13-195 편역 완역
26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데미안, 향수 골든世界文學全集 22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강두식 1987 中央文化社 17-195 편역 완역
27 말테의 手記 25시 동서세계문학전집 25 릴케 염무웅 1987 동서문화사 473-597 편역 완역
28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그랜드북스 98 라이너 마리아 릴케 尹賢珠(윤현주) 1987 일신서적공사 5-238 완역 완역
29 말테의 수기 (新編) 世界文學大全集 18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강두식 1987 신영출판사 263-476 편역 완역
30 말테의 수기 다이아몬드世界文學大全集, 15 말테의 수기.첫사랑, 짝사랑, 사랑의 개가 다이아몬드世界文學大全集 15 라이너 마리아 릴케 金兵喆(김병철) 1987 靑化 9-216 편역 완역
31 말테의 수기 데미안, 향수.말테의 수기 外 Silver world literature 14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강두식 1988 中央文化社 309-527 편역 완역
32 말테의 수기 학원세계문학전집. Ever green classic 릴케 염무웅 1988 학원출판공사 9-131 편역 완역
33 말테의수기 말테의수기, 칼멘, 가난한사람들, 인형의집 동서세계문학전집 28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염무웅 1988 동서문화사 9-131 편역 완역
34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Best books 78 R. M. 릴케 강두식 1989 三中堂 3-283 완역 완역
35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靑木精選 世界文學 13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홍성훈 1989 靑木 7-216 완역 완역
36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마로니에 북스 18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형길 1989 청림출판 5-257 완역 완역
37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의사 기온 外 (High seller)世界文學大全集 19 릴케 정강석 1990 교육문화사 9-183 편역 완역
38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세계대표문학선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한은교 1990 세진출판사 9-237 완역 완역
39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한권의 책 13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최명 1990 학원사 9-212 완역 완역 4판
40 말테의수기 말테의수기, 칼멘, 가난한사람들, 인형의집 Ever green classic, 학원세계문학전집 28 릴케 염무웅 1991 학원출판공사 9-131 편역 완역
41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Hongshin elite book's 25 R.M. 릴케 김문주 1992 홍신문화사 11-275 완역 완역
42 말테의 수기 변신, 말테의 수기 Ever books.삼성세계문학 2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송영택 1992 삼성출판사 183-379 편역 완역
43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外 세계걸작문학선 8 릴케 청화출판사 1993 청화출판사 7-216 편역 완역
44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世界名作 100選 94 릴케 반광식 1994 一信書籍出版社 1-199 편역 완역
45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삼성기획신서 3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원강희 1994 삼성기획 5-254 완역 완역
46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고려원세계문학총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준서, 정미경 1996 고려원미디어 11-278 완역 완역
47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서양-문학,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6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전영애 1997 서울대학교출판부 1-223 완역 완역
48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박환덕 1999 문예출판사 3-283 완역 완역
49 말테의 수기 릴케 전집 12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용민 2000 책세상 7-273 완역 완역
50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하서명작선 91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원 2001 하서출판사 5-257 완역 완역
51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릴케 문학선 3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현미 2001 민음사 13-296 완역 완역
52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주니어 문학 6 릴케 송영택 2007 삼성출판사 9-307 편역 발췌역
53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The)classic house 37 Rainer Maria Rilke 확인불가 2008 Thetext 230-415 중역 완역
54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펭귄 클래식 97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2010 웅진씽크빅 7-249 완역 완역
55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1 큰글 세계문학전집 01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염무웅 2010 큰글 5-251 편역 완역 큰글씨책
56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2 큰글 세계문학전집 015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염무웅 2010 큰글 5-228 편역 완역 큰글씨책
57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생각나무 테이크아웃 클래식 3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인경 2010 생각의나무 3-289 완역 완역
58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211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문영 2013 열린책들 3-94 완역 완역 두 개의 저본 이외에도 두 개의 선행 번역본(박환덕 1974, 김용민 2000)을 참조하였다고 역자 후기에 밝히고 있음.
59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World book 208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백정승 2014 동서문화사 9-185 편역 완역 릴케 작품집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 라우리스 브리게의 수기>(이하 <말테>)는 독일어로 발표된 20세기 최초의 현대소설이다. 우리말 <말테>는 1958년 계용묵을 비롯하여 1965년 강두식의 번역본이 나온 이후 주로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발간되었다. 박환덕(1973), 송영택(1975), 손재준(1976), 서영희(1977), 이가형(1977), 장기욱(1979). 1990년까지의 문헌정보에 기록된 32종의 번역본은 이들 기존 번역의 재판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전영애(1997), 김용민(2000), 문현미(2001), 김재혁(2010), 안문영(2013)의 새 번역이 서점가에 나와 있다.

<말테>의 현대성은 주로 “수기(手記)”라는 소설의 형식과 산업사회의 현대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적 주제를 담은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말테>는 28세의 덴마크 청년이 당시의 대도시 파리에 와서 겪은 충격과 혼란의 기록이다. 이 소설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이 일인칭 서술자가 보고하는 형식의 길고 짧은 71개의 “기록”들이 일기 같은 메모, 도시 풍경 묘사, 자전적 회상기, 역사적 인물에 관한 이야기, 미술품과 유적에 대한 관찰기, 비유담, 철학적 명상 등 다양한 내용들이 몽타주를 이루고 있다. 릴케가 폴란드의 번역가 훌레비츠에게 설명한 이 소설의 소재 영역은 (1) 대도시 파리의 체험, (2) 어린 시절의 추억, (3) 독서 체험에 대한 회상이다. 따라서 번역자의 일차적 관심은 이 세 영역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어조를 결정하는 일이다. 특히 죽음이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소멸에 대한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를 일관된 긴장 속에서 살려내는 일이 중요하며, 또한 일인칭 서술자의 독백에 가까운 보고는 때때로 돌아가신 어머니, 연인 같은 이모, 어린 시절의 친구, 고향 처녀들, 심지어 극작가 입센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화형식도 적절한 어조와 함께 살려야 한다.

여기서는 강두식(A), 박환덕(B), 송영택(C)의 번역텍스트를 위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비교해 보기로 한다. 독문학, 특히 릴케의 본격적인 한국어 번역의 길을 연 세 분의 번역텍스트는 그 이후의 번역에서도 논의할 수 있는 많은 특징을 선취하고 있다. 번역은 원문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하지만, 그 이해의 차원은 어휘의 단순한 사전적 뜻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텍스트의 발생조건에 관련된 문화사회적 문맥과 작가의 문학적 의도는 여러 방향에서 이해될 수 있기에 번역자의 선택 결정에 따라 다양한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 번역자의 번역결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별도의 기준을 요구하는 지난한 과제이므로 여기서는 주로 원문 텍스트의 고유한 특징들에 대한 번역자의 주제와 문체에서 반영되는 양상을 간략하게 비교 검토하기로 한다. 그리고 세 번역자의 이름 대신 (A), (B), (C)로 표기한 것은 객관적인 ‘번역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임을 밝혀 둔다.(번역텍스트는 이탤릭과 고딕체를 병용하여 적었고, 해당 원문은 각주 처리했음.)


2. 개별 번역 비평

1) 원문의 문화적 배경 재현 문제

소설의 첫 부분에 대한 세 번역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원문 해석상의 차이를 보인다.


(A): 그래,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이 도시로 몰려오는 모양이다. 허나 나는 오히려, 여기서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밖을 다녀왔다. 내 눈에는 병원 투성이였다. 나는 어떤 사람이 허위적 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B):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외출했다가 돌아왔다. 몇 군데의 병원을 보았다. 한 사나이가 비틀거리다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C):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모여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모두가 죽어 간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방금 바깥을 다녀왔다. 묘하게도 몇몇 병원이 눈에 띄었다. 나는 한 남자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1]


우선 첫 문장에서 (A)와 (C)는 “몰려오는/모여드는 모양이다”로, (B)는 “모여든다”로 번역했다. 전자는 추측, 후자는 단정의 언사다. 원문은 세상 사람들의 견해와 다른 일인칭 서술자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그 주관적 느낌을 (A)는 “그래”라는 간투사로 강조한다. 이 짧은 말은 서술자의 판단이 숙고의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것임을 암시하는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작가의 호흡을 그나마 반영한 경우는 (A)뿐이다. 그러나 세 번역문 모두 원문 “오다”(kommen) 동사를 ‘몰려온다/모여든다’로 강조한다. 원문의 내용에 주관적인 해석이 첨가된 결과다.

반면 주인공이 외출해서 본 병원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원문 해석이 부족한 점이 나타난다. 원문은 단순 서술문이 아니다. 동사 “보았다”와 목적어 “병원들” 사이에 콜론(:)으로 단락표시가 있다. 이것의 문체적 특징은 타동사와 목적어 사이에 숨을 잠시 멈춤으로써 그 목적어 ‘병원들’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이것은 특히 죽음의 대규모 공장식 처리가 시행되는 장소로서의 병원에 대한 주인공의 문명비판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는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B)는 단순사실의 서술이다:“몇 군데의 병원을 보았다.” (C)는 원문에 없는 말이 첨가되었다: “묘하게도 몇몇 병원이 눈에 띄었다.” 특히 원문 ‘병원들’이라는 명사의 복수형 처리가 제각각이다. (A) “병원 투성이”, (B) “몇 군데의 병원”, (C) “몇몇 병원”. 여기서 병원이 강조된 경우는 (A)이다. “묘하게도”가 병원을 강조한 말인지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B), (C)는 “나는 병원을 봤다.”는 통사구조를 원문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A)는 원문과 통사구조가 전혀 다른 번역문을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그 문법적 구조가 달라져도 오히려 원문의 표현 의도에 더 근접한 것처럼 보인다.


(A): 허지만 나는 또한 포장이 없는 삯마차로 오는 것도 보았다. 규정된 요금으로 운행하는 포장을 뒤로 젖힌 삯마차였다. 임종을 위하여 二프랑을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B): 나는 또 지붕 없는 마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포장을 접은 역마차로서 보통 요금으로 달린다. 임종의 환자를 태우고서 한 시간에 2프랑을 받는다.

(C): 그러나 나는 포장 없는 마차로 오는 환자도 보았다. 포장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뒤로 젖힌 마차이다. 그 환자는 규정된 요금 2프랑으로 달려온 것이다. 죽어가는 한 시간이 2프랑이라는 계산이다.[2]


우선 (A), (C)와 (B)의 번역문에서 종속문의 주어가 다르다. 전자는 ‘환자’를 (물론 (A)에서는 생략), 후자는 ‘마차’를 주어로 내세운다. 원문에서 ‘도착’하는 것은 ‘마차’이다. 원문 ‘Zeitdroschke’에 상응하는 번역어로는 ‘삯마차’(A), ‘역마차’(B), ‘마차’(C)로 각각 다르다. 여기서 ‘마차’는 물론 오늘날의 택시가 생기기 이전 말이 끄는 사람의 운송수단을 가리키며, ‘짐마차’라는 의미의 대립쌍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역마차’는 ‘역과 역 사이를 오가는 마차’라는 뜻을 부각시킴으로써, 한 도시 안에서 요금제로 운행하는 마차라는 원문의 본뜻에서 조금 멀어졌다. (C)는 원문에 없는 “포장하지 않았다기 보다는”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마차 요금과 관련하여 (A)는 구체적인 시간 계산 없이 원문대로 포괄적인 목적(“임종”)만을 옮겨 놓고 있는 반면, (B), (C)는 2프랑이 “한 시간”에 대한 요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B)는 관계문과 그 관계문 속에 들어있는 어휘 설명을 위한 첨가 구(句)를 한 문장으로 만들었고, (C)는 아예 원문의 통사구조를 해체하여 독립된 문장 2개를 새로 만들었다.


(A): 소리를 내어 「아무 일도 된 것이 없지 않아.」하고 소리쳐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시 한번 「아무것도 된 것이 없지 않아.」하고 소리쳐 보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B): “아직 절망은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시 한번 “아직 절망은 아니다”라고. 그러나 그것이 도움이 되겠는가?

(C): 마침내 소리를 내어 ‘아무 것도 아니잖아.‘라고 외쳐 보았다.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다시 한번 ’아무 것도 아니잖아.‘라고 외쳐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3]


이 부분은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맞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그 효과를 반신반의하는 장면이다. 그 바로 뒤에 열거하는 일련의 상황을 불행과 연결 짓지 않으려는 일인칭 서술자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런데 우선 그 소리치는 내용 자체의 해석에서 세 번역은 서로 다르다. 원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가 각각 (의도대로) ‘된 것’, ‘절망’,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해석되어 있다. (B)가 소리치는 행위를 긍정하는 일인칭 서술자의 의견진술을 원문 그대로 옮긴 반면, (C)는 과거의 사실로 만들었고, (B)에는 이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으며, “이제 와서”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오히려 과거 사실을 강조한다. (C)의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했다.”는 원문에 전혀 없는 표현이다.


2) 음차(Transkription) 문제

소설 <말테>에는 프랑스어나 독일어 어휘의 철자나 발음을 묘사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나온다. 여기서 원어를 그대로 음차하여 적느냐, 우리말에 맞게 변형시키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예컨대 파리의 길거리에서 꽃양배추를 수레에 싣고 가는 장님이 외치는 소리를 번역할 때 그 문제 해결 방식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A): 그는 「Chou-fleur, Chou-fleur」(꽃같은 채소)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어미(語尾)의 eu라는 모음이 이상하게도 슬펐다.

(B): 그 남자는 “슈 플뢰르(Chou-fleur, 꽃양배추), 슈 플뢰르”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플뢰르(fleur)라고 말할 때 외(eu)의 모음이 묘하게 쓸쓸하게 울렸다.

(C): 「캐비지요, 싱싱한 캐비지 (Chou-fleur, Chou-fleur).」 하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는데, 어미의 ‘eu’라는 모음이 이상하게도 슬프게 들렸다.[4]


(A)는 채소의 이름과 그 일부분의 모음을 원어 그대로 번역텍스트에 노출시키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오류가 발견된다. 우선 괄호 안에 적은 것은 원어에 대응하는 번역어가 아니라 그 뜻 설명이다. 그리고 모음 eu의 문법적 정의를 굳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어미(語尾)가 아니라 어간(語幹)이다. (B)는 원어의 발음을 음차하여 번역텍스트의 전면에 내놓고, 괄호 안에 원어와 번역어를 표기한 것이다. (C)는 아예 번역어를 텍스트 전면에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 행상이 물건을 팔 때 외치는 모습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나, “어미의 ‘eu’라는 모음” 부분은 앞 명사와의 관계에서, (A)의 경우처럼, 문법 설명이 틀리고, 번역어의 통일성을 깨고 있다. 물론 원문에 없는 “싱싱한”을 첨가한 것은 분위기를 실감나게 살리기 위한 창의성의 발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옆에 따라가는 아내가 옆구리를 찔러 마지못해 내는 소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신나는 외침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원어 처리의 난맥상은 말테의 이웃 니콜라이 쿠스미취가 생존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며 시간을 돈으로 환전해 주는 일종의 시간은행을 상상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A): 그러나 그런 이름이 붙은 시설이 있다는 것을 그는 한번도 들어 본 일이 없다. 주소록을 찾아보면 혹시 그런 이름이 나올지도 모를 것이다. Zeitbank(譯註: 時間銀行의 뜻)니까 Z를 찾아보면 나올지도 모른다. 혹은 <Bank für Zeit>(譯註: 時間取扱銀行의 뜻)라고 되어 있는지도 모르니 B 항목을 찾아보기로 하자. 이왕이면 K 항도 한번 들여다보아야 한다. Kaiserlich(王立) 시설로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중요성에 비추어보아 <왕립>으로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B): 그러한 은행에 대해서 들은 바는 없었지만, 회사 목록 같은 데에는 틀림없이 실려 있을 것이다. 시간은행이니까 ‘시’ 항(項)에 실려 있을까 아니면 혹시 ‘때의 은행’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ㄷ’ 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국립 은행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으니 ‘ㄱ’ 항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C): 그러나 그런 시설의 이름을 그는 아직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주소록을 찾아보면 그런 이름이 혹시 나올는지도 모르겠다. Zeitbank[시간은행]이니까 Z항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어쩌면 Bank für Zeit[시간취급은행]일는지도 모르니까 B항도 찾아보기로 하자. 이 계제에 K항도 일단 들여다보아야지. 혹시 kaiserlich[제국(帝國)]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와 같은 중요한 시설이고 보면, 의당 ‘제국’이라는 것도 일단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5]


이 부분은 일인칭 서술자의 보고와 니콜라이 쿠스미취의 인물 시각적 서술이 혼합되어 있다. (A), (C)는 Zeitbank, Bank für Zeit를 원어 그대로 제시하고 그 뜻을 “역주” 표시했고(물론 (C)는 ‘역주’라는 말도 명기하지 않았지만), (B)는 아예 그 번역어만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철자도 번역어에 맞추었다. 이것은 출발어(독일어)의 의미를 목표어(한국어)의 언어적 상황으로 번안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원어 어휘에 대한 번역어 선택도 각각이다. (1) kaiserlich: 왕립, 국립, 제국; (2) eventuell: 이왕이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 계제에. 특히 전자는 황제가 다스리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의 관련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후자의 번역어는 번역자의 개인적인 언어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소설 <말테>에서 흔히 인용되는 유명한 명제, ‘그는 시인이었고, 애매한 것을 미워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장면의 번역 실례는 원어와 번역어의 관계 처리가 제 각각이라 흥미롭다.


(A): 좀 교양이 부족한 수녀였던 것이다. 그 수녀는 그때 복도(Korridor)라는 말을 꼭 사용해야 될 형편이었는데, 아직 한번도 그런 글자를 써놓은 것을 본 일이 없었다. 그 수녀는 복도라는 말을 쓸 작정으로 <Kollidor>이라고 해버렸다. 헌데 그 소리를 얼결에 들은 아르벨은 자기가 죽는 것을 좀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리고 아마 이 말을 설명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는 갑자기 의식이 또렷또렷하게 되어 <Korridor>이라고 해야 맞는다고 일러 주고는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시인이었기 때문에 애매한 말을 싫어했거나 (...)

(B): 아주 무식한 수녀였던 모양인데, 그때 그녀는 부득이 ‘Korridor(복도)’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글자를 본 적이 없어서였는지 ‘Kollidor’라고 소릴 지른 것이다. 그것을 듣은 인쇄상의 오자(誤字). 아르베르는 죽는 것을 잠깐 연장했다. 그것을 고쳐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렷한 의식으로 ‘Korridor’라고 잘못된 부분을 정정해주었다. 설명을 끝내고 그는 죽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애매한 것은 질색이었다.

(C): 교양이 약간 부족한 수녀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때 Korridor[복도]라는 말을 써야 했는데, 아직 한번도 그 글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짐작으로 Kollidor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득 그 말을 들은 아르베르는 죽는 것을 잠시 연기했다. 아마도 이 말을 설명해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의식을 되찾아서, Korridor가 옳은 말이라고 그녀에게 가르쳐 준 다음 숨을 거두었다. 그는 작가였기 때문에 애매한 말을 싫어했다.[6]


세 번역텍스트 모두 문면에 원어의 알파벳 철자를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특히 (B)는 위에서 예로 인용한 ‘시간은행’의 경우처럼 문제를 번역어의 차원으로 완전히 옮기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원어 번역처리의 일관성을 잃고 있다. 여기서 /r/ 과 /l/ 의 정확한 발음이 문제이기 때문에, 원어를 음차하여 ‘코리도어’와 ‘콜리도어’라고 표기했다면 더 깔끔한 한국어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3) 대화 상대에 따른 문체 선택

한국어의 실제 언어사용 상황의 가장 큰 특징은 말하는 사람의 언어형태가 상대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진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높임말과 반말, 낮춤말이 있는데, duzen(친칭), Siezen(경칭)의 형식적 구분이 있고, duzen을 사용하는 사회관계의 범위가 한국어보다 넓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만 그때그때의 대화 상황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 소설 <말테>는 주인공 말테의 일인칭 소설이지만 상대가 있는 대화체로 서술된 부분이 여러 군데 나오므로, 그때그때 상대와의 사회적 관계를 파악하여 한국어의 실제 언어상황에 적절한 번역이 된다면, 좀 더 입체적인 번역텍스트가 될 것이다. 우선 릴케가 ‘편지초안’이라고 원주를 붙여 놓은 부분을 살펴본다.


(A):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을 한 뒤니, 모든 것을 영으로 돌려버려야 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네게 편지를 쓰고 싶다. 뭐니뭐니 해도 나는 네게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이다.

(B): 헤어질 수밖에 없었으므로 헤어진 이후 그대에게 무슨 할 얘기가 남아 있을까, 생각해보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하지만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합니다.

(C):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피할 수 없는 이별 뒤에는, 정말은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너에게는 쓰고 싶은 것이다.[7]


상대방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B)는 ‘그대’로 상대에 대한 존칭을, (A), (C)는 ‘너’로 반말을 번역어로 채택하고 있다. 원문에서는 상대를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를 대문자(Dir)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반말보다는 어느 정도 상대를 존중하는 심리적 거리를 나타내기 위한 존댓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특히 이 부분은 파리에서 로댕의 비서로 일하던 릴케 자신의 자전적 체험이 암시되어 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신혼의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 사용할 적절한 말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머니와 이모 아벨로네를 향해 소문자 2인칭 대명사(du)를 사용하는 경우 말테의 말을 그냥 반말로 쓴다면 한국어 독자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자명한 듯하지만 – 이때도 원문에서 Mama라라고 지칭하는 것을 ‘어머니’라고 해야할 지, 아니면 ‘엄마’라고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다 -, 이모 아벨로네와 주고받는 말의 어투는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아벨로네는 어머니의 막내동생이고, 말테가 은밀한 연정을 느끼지만 둘의 관계는 엄연히 이모와 조카의 관계이다. 또한 젊은 말테의 눈에 이미 혼기가 지난 여성처럼 보인 아벨로네가 더 나이가 많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은 특히 두 인물의 대화를 그리는 부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말테와 아벨로네가 괴테와 베티네가 주고받은 편지 읽기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의 어투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A): 「좀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어떻지, 책버러지 양반아,」하고 그는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 「답장은 읽지 말아요,」하고 아베로오네는 내가 계속해 읽는 것을 막고 지친 듯이 갑자기 그 조그마한 포오크를 떨어뜨렸다. (...) 「참, 책을 그렇게 서투르게 읽다니요, 말테.」 나는 한시도 정신을 차리고 읽지를 않았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또 곧 그만두라고 할 줄 알고 그랬어,」하고 나는 말을 하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왜 답장은 읽지 않지?」하고 나는 이상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 「이리 줘요,」하고 골이 난 듯 그녀는 갑자기 말을 하고 내 손에서 책을 받아 들었다.

(B): “책벌레 님, 제발 소리를 내어 읽어주실 수 없어요?” 아벨로네는 잠시 후에 말했다. (...) “아니에요, 회답은 읽지 않는 거에요.” 아벨로네는 가로막고, 갑자기 지친 듯이 조그마한 포크를 놓았다. (...) “참으로, 읽는 솜씨가 어쩌면 그리도 서툴러요, 말테.”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건성으로 읽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는 것을 빨리 중지시켜주었으면 하고서 읽었기 때문이야.”(...) “왜 회답은 읽지 않지?” 나는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 “빌려주세《요.”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내게서 책을 받아서는 (...)

(C): 「이왕이면 소리를 내서 읽어 주세요, 책벌레님.」하고 아벨로네가 잠시 후에 말했다. (...) 「회답은 읽지 않아도 좋아요.」 아벨로네는 나를 가로막고, 피곤한 듯이 갑자기 포크를 떨어뜨렸다. (...) 「아니, 책 읽는 법이 정말 서투르군요, 말테는.」 나는 아주 건성으로 읽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금방 그만 두라고 할 것 같아서 그랬지.」 (...) 「왜 회답은 읽지 말라는 거야?」라고 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그 책을 좀 줘 봐요.」 갑자기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그녀는 나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갔다.[8]


세 번역 모두 말테의 말은 반말로, 아벨로네의 말은 한결같이 존댓말로 옮겼다. 말테를 윗사람에게도 반말하는 버릇없는 인물로 그릴 생각이 아니라면, 여기서는 모두 아벨로네를 말테의 아랫사람으로 이해한 듯하다.

말테가 파리의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서 본 벽걸이 양탄자의 “여인과 일각수” 그림을 멀리 떨어진 아벨로네에게 전하는 장면도 상대에 맞는 어조를 결정해야 한다.


(A): 여기 양탄자가 있다. 벽에 거는 양탄자가 있다. 아베로오네, 나는 지금 네가 내 곁에 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그것은 여섯 폭의 양탄자(譯註: 빠리의 꾸리니 博物館의 陳列品인 <여자와 一角獸>란 壁걸이 양탄자를 말하고 있음.)다. 자, 그럼 지금부터 둘이서 천천이 구경을 해보기로 하자. 처음에는 좀 뒤로 물러나서 여섯 폭을 한꺼번에 보는 것이 좋다. 정말 조용한 맛이 나지 않니? 조금도 현란한 점은 보이지를 않는다.

(B): 아벨로네, 여기에 융단이 있소. 벽에 거는 융단(16세기에 짠 벽걸이 <여인과 일각수>. 파리의 클루니 박물관에 있다)입니다. 나는 당신도 여기에 있다고 상상하리다. 벽걸이는 여섯 장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시오. 한 장씩 천천히 보며 지나갑시다. 하지만 처음에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여섯 장을 한꺼번에 보시오. 얼마나 조용한 느낌인가요, 그렇지요? 거의 변화가 없소.

(C): 아벨로네, 여기 고불렝 벽걸이(尾註 95: 파리의 클뤼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6세기의 고불렝직(織) 벽걸이 ‘여인과 일각수(一角獸)’)가 있다. 나는 너도 여기에 있다고 가정한다. 벽걸이는 모두 여섯 폭이다. 천천히 하나하나 보기로 하자. 참으로 교요한 느낌이다. 거의 변화다운 변화가 없다.[9]


이 부분은 혼잣말에 가깝다. 아벨로네의 부재를 전제로 하는 원문 einbilden을 (A), (B)는 ‘상상’으로, (C)는 ‘가정’으로 옮기고 있다. 전자가 더 적합한 번역이다. 그런데 (A), (C)는 일인칭 서술자가 아벨로네에게 반말을, (B)는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옮기고 있다. 어투에 따라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또 한 가지, 원문의 ‘Abwechselung’은 벽걸이 여섯 폭 사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B), (C)가 비록 ‘변화’로 옮겼어도, 그 앞의 “조용한/고요한 느낌”과의 연결이 두드러지며, (A)에서는 ‘현란한 점’을 부정함으로써 여섯 폭 상호간의 비교를 통해서 느껴지는 변화의 뜻보다, 그림 자체의 전체 주제 내용을 가리키는 데에 더 가깝다.

아벨로네와의 내밀한 관계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한 예를 본 베네치아의 체험을 전달하는 부분에서도 알맞은 표현이 요구된다.


(A): 아베로오네, 근자에 와서 나는 다시 그대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그대의 일을 상당히 오랫동안 잊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베니스에서의 가을이었다. 외국의 관광객이 역시 이국의 여자인 집주인을 둘러싸고 모이는 살롱에서의 일이었다.

(B): 아벨로네, 오랫동안 그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 들어 갑자기 그대를 느끼고, 그대를 이해하게 되었소. 베니스에서의 가을이었다. 외국의 관광객들이 오가는 길목의 역시 이국의 여자 주인을 둘러싸고 모여드는 어느 살롱에서의 일이었다.

(C): 아벨로네, 요즘 나는 다시 너를 느꼈다. 그리고 너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너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뜻하지 않던 갑작스러운 체험이었다. 베니스의 가을이었다. 나는 이국의 나그네가 모인 살롱에 있었다. 그 집의 여주인도 먼 이국의 사람이었다.[10]


(A), (C)와 달리 (B)에서는 서술어의 층위가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는 대화체와 서술체로 나뉜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은, 비록 문단은 달리하지만, 69번째 수기(手記)에 속하므로, 모두 아벨로네에게 전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투의 통일성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B), (C)의 번역이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일인칭 서술자와 아벨로네가 조카와 이모의 관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긴 이야기를 모두 반말로 옮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부분에서 또 한 가지 숙고해야 할 점은 쉼표로 이어지는 원문의 긴 문장 한 개를 뚝뚝 끊어서 옮길 때, 원문의 리듬을 번역문에서 어떻게 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다.


3. 평가와 전망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봤듯이, 릴케의 소설 <말테>는 번역자에게 번역상의 기본원칙과 관련된 몇 가지 과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71개의 기록이 몽타주를 형성하고 있는 이 소설의 다양한 문체의 층위를 어떻게 주제와 형식에 맞게 우리말로 재현해 내는가 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여기서는 주로 1970년대에 발간된 세 가지 번역을 원어의 음차 문제, 문화사적 배경의 이해와 반영, 적절한 대화체 선택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비교 고찰하였다. 이 원칙적인 문제들은 그 이후의 번역에서도, 비록 부분적으로 개선된 면이 있으나,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강두식(1965): 말테의 수기. 정음사.
박환덕(1973): 말테의 수기. 문예출판사.
송영택(1975): 말테의 수기. 삼성출판사.


안문영


  • 각주
  1. So, also hierher kommen die Leute, um zu leben, ich würde eher meinen, es stürbe sich hier. Ich bin ausgewesen. Ich habe gesehen: Hospitäler. Ich habe einen Menschen gesehen, welcher schwankte und umsank.
  2. Aber ich habe auch offene Droschke ankommen sehen, Zeitdroschken mit aufgeklapptem Verdeck, die nach der üblichen Taxe führen: Zwei Francs für die Sterbestunde.
  3. Es ist gut, es laut zu sagen: „Es ist nichts geschehen.“ Noch einmal: „Es ist nichts geschehen.“ Hilft es?
  4. Er schrie: Chou-fleur, Chou-fleur, das fleur mit eigentümlich trübem eu.
  5. Er hatte nie von einer solchen Anstalt gehört, aber im Adreßbuch würde gewiß etwas Derartiges zu finden sein, unter Z, oder vielleicht auch hieß es >Bank für Zeit<; man konnte leicht unter B nachsehen. Eventuell war auch der Buchstabe K zu berücksichtigen, denn es war anzunehmen, daß es ein kaiserliches Institut war; das entsprach seiner Wichigkeit.
  6. Es war eine ziemlich ungebildete Nonne; sie hatte das Wort Korridor, das im Augenblick nicht zu vermeiden war, nie geschrieben gesehen; so konnte es geschehen, daß sie >Kollidor< sagte in der Meinung, es hieße so. Da schob Arbers das Sterben hinaus. Es schien ihm nötig, dieses erst aufzuklären. Er wurde ganz klar und setzte ihr auseinander, daß es >Korridor< hieße. Dann starb er. Er war ein Dichter und haßte das Ungefähre;
  7. Ich versuche es, Dir zu schreiben, obwohl es eigentlich nichts giebt nach einem notwendigen Abschied. Ich versuche es dennoch, (...)
  8. 》Wenn du doch wenistens laut läsest, Leserich《, sagte Abelone nach einer Weile. (...) 》Nein, nicht die Antworten《, unterbrach mich Abelone und legte auf einmal wie erschöpft die kleine Gabel nieder. (...) 》Mein Gott, was hast du schlecht gelesen, Malte.《 Da mußte ich nun zugeben, daß ich keinen Augenblick bei der Sache gewesen sei. 》Ich las nur, damit du mich unterbrichst《, gestand ich und wurde heiß (...) 》Warum denn nicht die Antworten?《 fragte ich neugierig. (...) 》Gieb her《, sagte sie plötzlich wie im Zorn und nahm mir das Buch aus der Hand (...)
  9. Es giebt Teppiche hier, Abelone, Wandteppiche. Ich bilde mir ein, du bist da, sechs Teppiche sinds, komm, laß uns langsam vorübergehen. Aber erst tritt zurück und sieh alle zugleich. ruhig sie sind, nicht? Es ist wenig Abwechselung darin.
  10. Einmal noch, Abelone, in den letzten Jahren fühlte ich dich und sah dich ein, unerwartet, nachdem ich lange nicht an dich gedacht hatte.// Das war in Venidig, im Herbst, in einem jener Salons, in denen Fremde sich vorübergehend um die Dame des Hauses versammeln, die fremd ist wie 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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