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브론의 케트헨 (Das Käthchen von Heilbr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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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클라이스트(Heinrich Klest, 1777-1811)의 희곡


작품소개

클라이스트가 5막으로 쓴 기사극으로 1810년 3월 17일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사건 무대는 뷔르템베르크이다. 병기 제조공 테오발트는 폼 슈트랄 백작이 마술로 자기 딸 케트헨을 납치했다고 야전 재판소에 고발한다. 백작이 테오발트의 대장간에서 갑옷을 수리한 뒤에 케트헨이 창문에서 떨어졌는데, 부러진 다리가 낫자마자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딸은 백작에게 반해 자유의사로 따라나섰다는 것이 밝혀진다. 폼 슈트랄 백작은 토지분쟁에 얽혀 있는 라인그라프 폼 슈타인으로부터 쿠니군데를 해방한다. 그녀가 황제의 딸이며 자신의 배필로 점지된 예지몽을 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니군데는 폼 슈트랄 백작의 영토에 더 관심이 있는 터라, 약혼자 라인그라프를 배신하고 폼 슈트랄과 결혼하려고 하는 동시에 케트헨을 제거할 기회를 엿본다. 이를 눈치챈 라인그라프는 쿠니군데가 손님으로 머무는 폼 슈트랄 백작의 성을 공격하고 성은 화재에 휩싸인다. 그녀는 폼 슈트랄 백작의 초상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불길에서 꺼내달라고 케트헨에게 부탁한다. 그 주머니에는 사실 분쟁 중인 토지소유권에 관한 중요 문서가 들어있었지만, 순진한 케트헨이 화재에 희생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그러나 이 음모는 케트헨이 대화 중에 폼 슈트랄 백작에게 탄로가 나고, 케트헨은 황제가 하일브론으로 행차했을 때 병기 제조공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고 얻은 혼외자임이 밝혀진다. 황제의 강력한 권유로 폼 슈트랄 백작과 케트헨은 혼인하게 된다. 클라이스트는 “위대한 역사적 기사극”이라는 부제를 붙였으나, 이 희극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밝혀진 바가 없다. 클라이스트 자신이 이 희곡을 “탁월한 고안”이라고 한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었는데, 클라이스트가 민간에서 전해오던 ‘케트헨 전설’이 인쇄된 전단지를 대목장에서 산 적이 있다는 말도 있으나, 그 전단지는 오늘날까지도 발견할 수 없다. 이 희곡은 여러 번 공연되었으니, 주인공이 황제의 혼외자라는 사실과, 아울러 그녀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부친이 아내의 간통으로 배신당한 남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부담되었다. 클라이스트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았던 괴테는 이 희곡을 의미와 무의미의 혼합이라고 하면서 공연을 거부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 배중환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세종출판사).


초판 정보

Kleist, Heinrich von(1810): Das Käthchen von Heilbronn oder die Feuerprobe. ein großes historisches Ritterschauspiel. Aufgeführt auf dem Theater an der Wien den 17. 18. und 19. März 1810. Berlin: Realschul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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