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책 (Buch der Lieder)

Bib02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24일 (월) 08: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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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856)의 시


작품소개

1827년에 발간된 <노래의 책>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초기 시를 집대성한 시집으로 하이네 생전에 13판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1817-26년 사이에 이미 발표된 시를 연대순으로 모은 것으로 총 237편의 시 가운데 처음 실린 시는 8편에 불과하다. 시들 중 약 절반이 불행한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모두 전기적 체험(사촌 아말리에와 테레제에 대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축소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시집은 연작시 형식으로 구성된 <젊은 날의 아픔>, <서정적 간주곡>, <귀향>, 그리고 <하르츠 여행>에 삽입되었던 시를 모은 <하르츠 여행에서>, 두 편의 연작시를 모은 <북해> 등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시는 대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마지막 부분에 아이러니한 반전이 나타나 현실을 폭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시는 낭만주의에서 출발했지만 낭만주의를 극복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이네의 시는 세계적으로 약 7천 명의 작곡가가 약 10000번 이상 작곡하였다고 하며, <노래의 책>에 실린 시 가운데 100회 이상 작곡된 시가 10편이 넘는다. 국내 최초의 하이네 시집은 1926년 영문학을 전공한 강성주가 영어판 <노래의 책>에서 123편을 선별하여 번역한 <하이네 시선집>(1926)이다. 최초의 완역은 2001년 김재혁에 의해 이루어졌다(문학과지성사).


초판 정보

Heine, Heinrich(1827): Buch der Lieder. Hamburg: Hoffmann und Campe.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1920년 <現代> 창간호에 하인리히 하이네의 초기시집 <노래의 책>에 속하는 시 3편이 역자 미상으로 실렸는데, 이것이 한국에 최초로 소개된 하이네의 시였다. 이를 시발로 신문과 잡지에 하이네의 시와 하이네에 관한 평론이나 소개의 글이 늘어나면서 1920-30년대에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애송된 독일 시인이 되었다.

30년대에는 독일문학을 전공한 박용철, 서항석 등이 하이네의 시를 신문과 잡지에 번역하였고, 신남철, 서병각, 이유호, 이동구, 조희순 등은 하이네에 관한 평론과 논문을 통해 그의 정치 및 사회관을 소개함으로써 하이네가 낭만적인 서정시인일 뿐만 아니라 혁명 시인의 면모도 갖추고 있음을 알렸다. 사회비판적인 측면을 다룬 후기시도 일부 번역되긴 했으나, 대부분 서정성이 강한 시들이 번역의 대상이 되었다.

최초의 하이네 번역시집은 1926년 영문학자 강성주가 번역한 <하이네 시선집>이다(평화서점). 이 번역시집이 나온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하이네 시집>(김시홍 역, 영창서관 1926)이 출간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하이네의 인지도나 대중성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 김시홍의 번역서는 1954년까지 5회에 걸쳐 재출간되었다.

1945년 해방 이전에는 주로 하이네의 개별 시가 신문이나 잡지에 번역되어 실렸다면, 해방 이후에는 하이네 시선집이 무수히 출간되었다. 이충섭의 <한국의 독어독문학 관계 번역문헌 정보>에 따르면 하이네 시집은 1990년까지 45종이 넘을 정도로 많이 번역되었다(한국문화사 1990, 483-528). 하지만 해방 이후 번역된 하이네 시집은 완역이 아니라 시선집이 주를 이루었고, 역자가 ‘편집부’라고만 표기된, 역자가 불분명한 시선집들이 많았으며, 동일역자의 하이네 시선집이 출판사를 바꿔가며 반복 출간되는 일이 수두룩했다. 번역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해방 이전에 비해 개선되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해방 이후에는 그 이전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하이네가 일방적으로 낭만적 서정시인으로 각인되었다. 해방 이후 70년대까지 하이네는 수많은 시선집을 통해 사랑과 낭만의 시인이라는 일방적인 면모만 반복적으로 소개되었고, 참여작가로서의 하이네의 모습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7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독문학 전공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일본어를 매개로 한 중역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고, 번역의 양과 질의 측면에서도 발전을 가져왔다. 1975년 하이네 시선집 <바다의 망령>(김광규 역, 민음사)이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으나, 여기에 실린 시는 17편에 불과하여 하이네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1년에는 김재혁이 <노래의 책>(문학과지성사)을 완역하였고, 이 시집은 2016년 이재영에 의해 다시 번역되었다(열린책들). 완역된 2권의 <노래의 책>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확성과 전달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번역이긴 하지만 각기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하이네가 낭만주의 연애시인이라는 과거의 낙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긴 어려운 점도 남아 있다. 다음에서는 이 두 번역서와 도서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른 번역본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 고찰해 보겠다.

2. <노래의 책> 중 <로렐라이>와 <내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비교 분석

<노래의 책>은 1817~1826년에 창작된 시들을 모은 하이네의 초기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개 신문이나 잡지에 이미 한 번 이상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이 시집은 생전에 12판이 출간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으며, 5판까지는 하이네가 매번 수정했기 때문에 판본에 따라 구성이나 내용에 조금씩 변화가 있다. 수정의 이유로는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검열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네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시가 무수히 작곡되어 노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하이네의 진면목을 파악하려는 시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이네의 초기시는 주로 저명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되었는데, 대부분의 작곡가는 하이네의 시에 담긴 반낭만주의적 요소를 간파하지 못했다. 작곡된 노래를 수용하는 일반대중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노래 덕분에, 또는 노래 탓으로, 하이네는 여전히 절반의 모습인 낭만주의 연애시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1) 로렐라이

가장 널리 알려진 하이네의 시 중의 하나는 소위 ‘로렐라이’이다. 원래 이 시에는 제목이 따로 있던 것이 아니라, <노래의 책> 중 연작시 <귀향>(Heimkehr)의 2번째 시로 발표된 것이다. 현철은 1920년 <開闢> 제1호, 제2호, 제3호에서 투르게네프의 <전날 밤>(On the Eve)을 일본어로 각색한 <隔夜>(1915)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게재하였는데, 이 희곡의 1막에는 ‘로렐라이’가 합창으로 삽입되어 있다. 그는 <개벽> 제3호에서 2막 번역에 앞서 로렐라이 전설을 소개하고 하이네의 시도 번역하여 싣고 있다(제3호, 137-138). 현철은 6연 24행인 원본 시를 3연 12행으로 축약해서 번역했는데, 일본어를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많은 시인이 이 전설을 노래했으나 그중 하이네의 시가 가장 유명하며 한국에서도 이미 노래로 불리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 시와 노래는 이미 192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고 짐작된다. 1924년에는 고한승이 <新女性>에 <라인 傳說 로─레라이>란 제목으로 로렐라이 전설을 소개하였다(통권 제8호, 103-105).

80년대 이후 하이네에 관한 연구와 번역서들이 출간되면서 하이네 상이 많이 수정되었음에도 하이네를 ‘낭만주의 연애시인’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독자뿐 아니라 전문 번역가에게서도 마찬가지다. 하이네가 <고백록>(Geständnisse, 1854)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하이네는 낭만주의의 마지막 시인인 동시에 독일 현대시의 선구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노래의 책>의 시는 장미, 밤꾀꼬리, 노을, 밤, 꿈, 사랑, 동화나 전설 등의 낭만적 소재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기존의 낭만주의 시와는 구별된다. 분리된 것의 통합이 낭만주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이지만, 이 시집에 실린 240여 편의 시 중 약 60%는 불행한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다. 상호 소통하는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짝사랑, 응답 없는 사랑, 연인의 냉담한 반응 등 소통과 조화가 상실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하이네의 시는 낭만주의 속성과 상반되는 측면이 많다. 시 <로렐라이>에서도 냉담한 또는 무관심한 로렐라이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 시는 1연과 6연에서 시적 화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2-5연의 내부 이야기는 1연에 제시된 옛날 동화를 기술하고 있다. 원문의 시제는 6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의미상 1연과 6연만이 현재이며, 2-5연은 과거의 사실을 표현한 역사적 현재시제이다. 6연에서 시적 화자는 현재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2-5연의 내부 이야기와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면서 성찰을 한다. 내부 이야기만 본다면 라인강의 노을 풍경을 그린 전형적인 낭만주의 시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서정적 자아가 추정(1-2행)하고 단정(3-4행)하면서 성찰 행위를 보여주는 6연은 현대시적 요소이다.

일반적인 낭만주의 시와는 달리 이 시는 정독을 할 경우 어색한 부분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이런 요소는 아이러니의 신호가 된다. 우선 ‘반짝인다’는 의미의 어휘가 지나치게 반복되어(funkelt, Abendsonnenschein, goldnes Geschmeide, goldenes Haar, goldenem Kamme) 단어가 가지는 의미 내용이 반감된다. 즉 의미의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그리고 ‘강력한 선율 Gewaltige Melodei’이라는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 선율이라면 일반적으로 곱다거나 아름답다는 의미의 수식어와는 잘 어울리지만 ‘강력하다’는 수식어는 어색하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이 시는 현실 연관성(암초)을 상실한 채 낭만주의의 이상(언덕 위 아름다운 여성 또는 그녀의 노래)에만 몰입하게 되면 좌초할 수 있다는 경고나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Ich weiß nicht was soll es bedeuten,    내 마음이 왜 이리 슬픈지
Daß ich so traurig bin;                 영문을 알 수 없네.
Ein Märchen aus alten Zeiten,           옛날의 이야기 하나가
Das kommt mir nicht aus dem Sinn.       자꾸만 떠오르네.

Die Luft ist kühl und es dunkelt,       바람 서늘하고 날 저무는데
Und ruhig fließt der Rhein;             라인 강 고요히 흐르네.
Der Gipfel des Berges funkelt           산봉우리 저녁 햇살에
Im Abendsonnenschein.                   눈부시게 반짝이네.

Die schönste Jungfrau sitzet            저 위에 경이롭게 앉아있는
Dort oben wunderbar;                    너무나 아름다운 처녀가
Ihr goldnes Geschmeide blitzet,         황금빛 장신구 반짝이며
Sie kämmt ihr goldenes Haar.            황금빛 머리카락 빗고 있네.

Sie kämmt es mit goldenem Kamme         황금 빗으로 머리 빗으며
Und singt ein Lied dabei;               그녀가 노래 부르네.
Das hat eine wundersame,                그 노래 선율 참으로
Gewaltige Melodei.                      경이롭고 강력하구나.
Den Schiffer im kleinen Schiffe         그 노래 격한 슬픔으로
Ergreift es mit wildem Weh;             작은 배의 뱃사공 사로잡네.
Er schaut nicht die Felsenriffe,        그 사람 암초는 보지 않고
Er schaut nur hinauf in die Höh.        산봉우리만 올려다보네.

Ich glaube, die Wellen verschlingen     결국 뱃사공과 그 배를
Am Ende Schiffer und Kahn;              물결이 삼켜버리겠지.
Und das hat mit ihrem Singen            그리고 그건 노래를 부른
Die Lore-Ley getan.                     로렐라이의 소행이야.

(Die Heimkehr 3)                       (이재영 171)


마지막 연의 번역을 몇 가지 비교해보자. 마지막 연을 산문으로 풀어보자면, ‘결국 물결이 사공과 배를 삼켰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그런 고약한 짓을 벌인 건 로렐라이야. 그녀가 노래로 그렇게 한 거야’라는 의미이다. 다음의 번역 사례 가운데 원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표현한 것 중의 하나가 박용철의 번역이다(박용철 전집1, 시문학사, 1939). ‘그대와’는 ‘그 배와’의 미스프린트로 보인다. 박용철은 원문에는 현재시제로 표현된 전반부를 의미에 맞게 과거로 표현하고 있으며, 후반부도 현재완료 시제를 충실하게 과거로 표현하면서 비난조의 ‘짓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로렐라이에 대한 시적 자아의 거리감을 살리고 있다. 또한 원문의 쌍반점(;)도 살리고 있고, l를 ᄙᅠ로 표기하여 서양어의 l과 r을 한국어로 최대한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시의 마지막에는 출전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번역 태도는 최근의 하이네 시번역, 즉 저본 표기가 없는 시선집이나 있더라도 출전이 부정확하게 표기된 시선집과는 비교된다. 예를 들자면, 1987년에 출간된 <하이네 시집>(서석연 역. 범우사)에는 저본에 대한 소개도 없고, <서정적 간주곡>, <귀향초>, <안젤리코>라는 각 장에 이 연작에 속하지 않는 시들이 무분별하게 포함되어 독자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소지가 다분하다(‘로렐라이’는 <서정적 간주곡>에, 중기시 <경향>은 초기 연작인 <귀향초>에 포함되어 있음).

이오류(본명 이상로)의 번역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오류의 번역에는 원문에 없는 감탄사(“아아”)나 수식어(“거치른”)가 포함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시의 내용이나 흐름에 크게 방해되지는 않는다. 마지막 행에서 시적 자아의 거리두기도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강두식의 번역에는 원문의 추측(“Ich glaube”(내가 생각하기엔))을 나타내는 표현이 단정적인 표현으로 번역되고 있고, 전체적으로 산문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상일의 번역은 하이네의 시가 낭만주의 시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둘째 문장을 과도하게 의역을 하고 있다. 김광규의 번역은 주어인 로렐라이를 장소부사로 번역함으로써 로렐라이에 대한 시적 자아의 거리감이 중화되고 있다. 김재혁의 번역은 마지막 문장에서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행위의 주체인 로렐라이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재영의 번역에서는 6연의 첫 문장이 과거에 대한 추정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추정처럼 번역되고 있다. 원문처럼 쌍반점이나 박용철이나 이오류의 번역처럼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번역함으로써 오독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대와 사람 한데암즐러
마츰내 물ㅅ결에 삼켰을게라;
ᄙᅩ레ᄙᅡ이선녀는 저의노래로
이런 짓거리 하였습네.(귀향 2) (박용철 1939, 200)
아아 끝끝내 배도 뱃사람도
저 거치른 물결속에 잠기어 버렸겠지─
이는 모다 저의 노래로
저 「로렐라이」가 한짓이로다.(이오류 1956, 111)
아아, 이윽고 배도 뱃사공도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그 노래로
저 로렐라이가 한 것이다.(강두식 1973, 53)
끝내 사공과 그 배는 
물결에 휩싸였으리
로렐라이의 옛 이야기는
노래의 요술.(이상일 1984, 97)
마침내는 물결이 조그만 배와 함께
뱃사공을 삼켜버리리라.
그녀의 노래와 함께 이것은
로렐라이에서 일어났다.(김광규 1999, 22)
마침내 파도는 뱃사공과
조각배를 삼켜버렸으리라.
로렐라이의 노래 때문에
생긴 일이다.(김재혁 2001, 164)

지면 관계상 시 전체가 아니라 마지막 행만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하이네의 시를 번역할 때는 시인의 의도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즉, 시적 표현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 아이러니는 아닌지, 아이러니라면 이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해야 행간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는 대상을 상대화하여 환상을 파괴하고 비판적 성찰을 가능케 하여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열어 준다.


2) 내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Auf meiner Herzliebsten Äugelein Mach ich die schönsten Kanzonen. Auf meiner Herzliebsten Mündchen klein Mach ich die besten Terzinen. Auf meiner Herzliebsten Wängelein Mach ich die herrlichsten Stanzen. Und wenn meine Liebste ein Herzchen hätt, Ich machte darauf ein hübsches Sonett. (Lyrisches Intermezzo 14)

내 사랑하는 그녀의 두 눈을 위하여
가장 아름다운 소곡을 만들어 바치리.
내 사랑하는 그녀의 조그만 입을 위하여
가장 멋진 3행시를 지어서 바치리.
내 사랑하는 그녀의 조그만 두 뺨을 위하여
가장 훌륭한 8행시를 써서 바치리.
내 사랑하는 그녀에게 심장이 있다면,
나 매혹적인 소네트를 만들어 바치리.
                          (김재혁 121)
가슴 깊이 사랑하는 두 눈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칸초네를 지으리라.
가슴 깊이 사랑하는 작은 입을 위해
가장 멋진 3운구법을 구사하리라. 

가슴 깊이 사랑하는 귀여운 볼을 위해
가장 수려한 8행시를 쓰리라.
내 사랑에게 심장이 있다면
그 심장에 예쁜 소네트를 바치리라.
                       (이재영 126f.)

이 시는 <노래의 책> 중 연작시 <서정적 간주곡>의 14번째 시이다. 김재혁과 이재영의 번역을 살펴보기로 하자. 번역시에서 무엇보다 형식의 차이가 눈에 띈다. 원본의 시는 8행시인데 이재영은 4행을 1개의 연으로 구분하여 번역하였다. 이재영의 번역은 다른 곳에서도 원시의 형식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역자 해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번역 과정에서 “가장 노력을 바친 것은 번역된 텍스트들이 시로 읽힐 수 있도록”(이재영 362) 하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시 형식이나 문장부호 등도 시인의 의도나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에, 시의 형식은 가능한 한 원래의 형식을 따르는 편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된다.

얼핏 보면 이 시도 연인에 대한 낭만적 사랑을 읊은 시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의미가 부각된다. 원시에서 ‘Auf’(1, 3, 5행 및 8행의 ‘darauf’)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두 역자는 이 전치사를 1, 3, 5행에서는 ‘위하여’로 해석하고 있고, 8행에서는 7행의 ‘작은 심장 Herzchen’과의 의미 관계를 고려하여 ‘바치다’로 의역이 지나친 나머지 오역을 하고 있다.

우선 목적 용법으로 사용하려면 für라는 전치사도 있는데 왜 구태여 auf를 사용했을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Ein Gedicht auf etwas machen’에서 auf는 ‘~에 관하여, ~에 대하여’로 해석하면 자연스럽다. 두 눈에 대해, 작은 입에 대해, 두 뺨에 대해 시를 쓴다고 이해한다면 원문과 두 번역시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적 주체는 연인의 신체의 일부를 다양한 시 형식의 소재로 삼고 있다. 연인은 온전한 형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으로만 표현될 뿐이다. 극단적인 경우, 시적 주체는 신체의 일부분을 사랑하는 것이지 연인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시에서 시적 서술자와 연인은 소통하는 유기적 관계가 아니라 서술자의 일방적인 관계일 뿐이며, 그 대상은 온전한 연인이 아니라 연인의 신체의 일부이다. 결국 이 시는 연인을 예찬하는 낭만적 사랑시가 아닐 수 있다. 낭만적 사랑시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술자의 시학적 능력을 자화자찬하는 시로 이해할 수 있다.

1-6행까지는 시행의 첫머리가 Auf와 Mach가 교대로 등장하지만, 7-8행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또한 각운을 보더라도 1-6행까지는 –lein이 교대로 반복하여 등장하지만, 7-8행에는 비순수운(hätt/Sonett)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6행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가 7-8행에 제시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즉, 하이네의 시의 말미에 흔히 등장하는 하이네식의 아이러니가 여기에도 등장하고 있다. 번역시에서 공히 ‘심장’(7행)으로 번역된 원어는 ‘Herzchen’이다. 그냥 심장이 아니라 ‘작은’ 심장이다. 심장 혹은 가슴은 넓다 또는 깊다는 수식어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심장이 작다는 것은 마음이 넓지 않다는 의미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또는 조롱의 의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현실화법으로 표현된 7행은 ‘나’는 연인을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연인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에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한다면, ‘나’는 그것을 소재로 멋진 소네트를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8행).

탁월한 독일어 이해 능력과 하이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두 번역자가 이렇게 오역에 가까운 번역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하이네의 초기시는 낭만적 사랑시일 거라는 선입견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그 때문에 시에 포함된 아이러니적 요소를 포착하지 못했고, 그 결과 원본이 지닌 의미를 한국어로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듯하다. 초기시는 연애시이고 후기시는 정치시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하이네의 작품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살펴보았듯이 하이네의 시에는 한 편의 시에 여러 요소가 내포된 경우가 많다.


3. 평가와 전망

김재혁과 이재영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며 질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분에서 하이네의 시에 내포된 아이러니를 포착하지 못하여 원본이 가진 섬세한 뉘앙스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전반적으로 김재혁의 번역은 정확하고 직역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간혹 산문적인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이네의 초기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옮긴이의 해설>은 이 시집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말미에 <찾아보기>를 덧붙인 것도 독자에 대한 자상한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주석을 각주가 아니라 미주로 뒷부분에 배치함으로써 참조할 때 번거로움을 준다.

이재영의 번역은 <역자 해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로 읽힐 수 있는 번역을 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으로 문장의 리듬을 잘 살려 가독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소위 ‘시다운 시’로 번역하려는 욕망이 지나친 나머지 원본의 형식이나 문장부호를 중시하지 않음으로써 원본에 표현된 섬세한 의도가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리고 <역자 해설>과 각주에서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의 일환인 주석을 지나치게 전기적인 요소에 국한시킴으로써 시의 이해를 오히려 저해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시를 번역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고민과 열띤 논쟁이 이미 1920년대에 김억, 양주동, 김진섭을 중심으로 있었다. 이러한 고민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미 1930년대에 상당한 수준의 하이네 시번역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해방 이후 상당 기간 뒷걸음질 치다가 최근에야 다시 속행되는 듯하다. 더 나은 시번역을 위해 번역자는 언제나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시다운 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강두식(1973): 하이네 시집. 정음사.

김광규(1975): 바다의 망령. 민음사.

김재혁(2001): 노래의 책. 문학과지성사.

박용철(1939): 하이네 시집. 시문학사.

서석연(1987): 하이네 시집. 범우사.

이상일(1984): 하이네의 명시. 한림출판사.

이오류(1956): 하이네 시집. 대문사.

이재영(2016): 노래의 책. 열린책들.


황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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