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oper)

Root02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6월 22일 (목) 07:1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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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1956)의 극


작품소개

서사극 이론을 창시한 브레히트의 가장 대표적인 극작품(작곡: 쿠르트 바일)으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오페라 형식을 빌려, 영국 자유당 내각에 대한 정치적 풍자를 담은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1728)를 1920년대를 배경으로 개작한 것이다. 런던의 강도 두목인 매키 메서는 구걸 사업과 매춘업을 병행하는 피첨과는 경쟁 관계인데, 피첨 부부가 미래의 보험으로 생각하는 딸 폴리를 꾀어내 그녀와 결혼한다. 화가 난 피첨 부부는 경찰청장 브라운의 비호를 받는 매키가 붙잡히게 그를 흠모했던 창녀 제니에게 그를 밀고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체포된 매키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형 집행일 새벽 감옥 앞에서 폴리와 매키의 아이를 밴 브라운의 딸 루시는 매키의 재산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데, 정작 매키는 사형 집행 직전 여왕의 사면으로 구제받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와 결말은 브레히트가 의도한 ‘낯설게 하기’ 방법의 하나며, 작품에서는 이외에도 극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노래의 삽입, 극중극 형식(해적의 제니), 내용 예고 등 다양한 낯설게 하기 기법들이 활용된다. 당대 시민 사회를 풍자하는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민 사회의 열광적 호응에 힘입어 1928년 초연 후 1년 동안 4,200여 회의 공연, 1933년까지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유럽에서만 1만 회 공연을 달성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작품은 연극의 성공을 발판 삼아 영화화되지만, 상업적 성공을 우선시했던 영화사와 감독 측은 브레히트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브레히트를 시나리오 작업에서 배제하면서 분쟁이 생기기도 했다. 브레히트는 영화사의 상업주의적 노선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예술 생산 수단(영화)의 속성을 비판하는 에세이 <서푼짜리 소송>과 소송 과정을 모티브로 한 <서푼짜리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87년 임한순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한마당).


초판 정보

Brecht, Bertolt(1928): Die Dreigroschenoper. Ein Stück mit Musik in einem Vorspiel und acht Bildern nach dem Englischen des John Gay. Übersetzt von Elisabeth Hauptmann. Musik von Kurt Weill. Wien/Leipzig: Universal-Edition A. 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서푼짜리 가극 四川의 善人 한마당 문예 2 베르톨트 브레히트 임한순 1987 한마당 9-114 편역 완역
2 서 푼짜리 오페라 세계의 현대희곡 열음희곡선 5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원양 1991 열음사 16-107 편역 완역
3 서푼짜리 오페라 사천의 선인 브레이트희곡선 2 베르톨트 브레히트 임한순 1997 한마당 7-148 편역 완역 1985년 초판의 개정판
4 서푼짜리 오페라 브레히트 희곡선집 1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총서 24-1 베르톨트 브레히트 임한순 2006 서울대학교 출판부 3-137 편역 완역
5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범우희곡선 34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화임 2008 범우사 15-190 완역 완역
6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지만지고전천줄 6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원양 2008 지만지 21-127 편역 편역 천줄읽기
7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범우희곡선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화임 2011 범우 15-190 완역 완역 2011년 초판발행이라 표기되어있으나 2008년판본과 거의 동일
8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원양 2011 지식을만드는지식 5-163 완역 완역
9 서푼짜리 오페라 브레히트 선집 1 브레히트 선집 1 브레히트 이원양 2011 연극과인간 184-287 편역 완역
10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은희 2012 열린책들 8-54 편역 완역
11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남자는 남자다 을유세계문학전집 54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길웅 2012 알래스카인디고 135-265 편역 완역
12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World book 231 베르톨트 브레히트 백정승 2014 동서문화사 11-98 편역 완역
13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큰글씨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원양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5-163 완역 완역
14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원양 2019 지만지드라마 5-169 완역 완역

번역비평

<매키 메서의 노래> [1] 가사 번역을 중심으로


1. 번역 현황 및 개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연극을 통해 전파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첫 데뷔를 한 것은 1988년 12월 10일 호암아트홀에서의 <서푼짜리 오페라> 공연으로 기록된다. 이는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이미 브레히트의 동시대인 1930년대부터,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브레히트에 주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으로 이념 작가 브레히트를 평생 따라다녔던 ‘검열’의 그림자가 냉전의 최전선에 자리했던 우리나라에도 드리워졌던 탓이 크다. 서울 올림픽으로 기억되는 1988년 브레히트가 공식적으로 공연될 수 있었던 것도 ‘공산권 경제·문화 개방정책’[2]에 의해 당시 금서 목록에 올라 있던 브레히트의 작품들이 해금되었기 때문이었다.[3]이리하여 정작 독일에서는 이미 브레히트라는 큰 그림자의 극복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던 시기에 국내에서는 브레히트의 본격적인 수용이 이뤄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졌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대중의 호평 속에 막을 내린 국내 초연에 이어 한동안 여러 연출가에 의해 무대에 올랐으나, 한국에 너무 늦게 도착한 이 작품(과 나아가 브레히트)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길지 않은 인기의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추정된다. 첫째, 유럽의 연극사와 그 전개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극(그리고 이러한 환상극으로 대변되는 구태적 시민사회)에 대한 반기로서의 서사극의 혁신적인 전복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연문화에서 (연)극성과 서사성은 서로 대립적이거나 모순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도 여기에 일부 기여한다.[4]둘째, 이미 국내에도 안착한 포스트모던이 주도하는 예술관 속에서 이념에 매여 있는 브레히트 극은 시대에 역행하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덧붙여 <서푼짜리 오페라>가 본격적인 음악극이라는 점, 엄밀하게는 노래를 할 수 있는 배우와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갖춰야 한다는 점 또한 공연의 어려움을 가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국내 번역 종수는 현대 독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작임을 고려하면 그다지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브레히트가 너무 늦게 국내에 수용된 것이 하나의 이유이며, 드라마의 번역에 소극적인 우리 출판문화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기준 <서푼짜리 오페라>의 번역 종은 최초의 번역인 임한순의 <서푼짜리 가극>을 포함 총 26종이 검색되며, 이 번역 종들을 다시 번역자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1종의 어린이 도서를 제외하고 총 7명의 번역자, 즉 임한순, 이원양, 박성환, 김화임, 김길웅, 이은희, 백정승에 의해 번역되었음이 확인된다. 번역 양상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번역가로 활동한 박성환과 백정승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번역자가 본격적으로 브레히트를 전공했거나 독문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점이다. 둘째, 번역서의 출간은 크게 두 시기에 집중해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 두 번째 시기는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이다. 해금이 동력이 되어 준 첫 번째 시기에는 1987년 임한순, 1991년 이원양, 1995년 박성환의 번역이 나왔다. 두 번째 번역 시기에는 역시 독문학자들인 김화임(2008년), 김길웅(2012년), 이은희(2012년)의 번역이 새로 나왔다. 이 시기에는 기존 번역자였던 임한순과 이원양도 각각 2006년 및 2008년 출판사를 달리하여 새로운 번역을 내놓았는데, 이 때문에 2006년부터 2014년에 사이 실질적으로는 총 6종(2014년 백정승 번역 포함)의 번역본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번역 시기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이 번역들이 대중적으로나 학계에서 브레히트에 관한 관심이 사그라드는 분위기 속에서 출간되었다는 점이다.[5]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2006년은 브레히트의 사후 만 50년이 되는 해로 브레히트 작품의 저작권이 해제되는 해였다.[6]둘째, 이 시기에 다수의 대형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이나 전문 시리즈 도서 출간에 열중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두 번째 번역 시기에 출간된 모든 번역 종이 특정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또는 드라마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극작가 브레히트의 시의성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브레히트와 그의 초기 대표작 <서푼짜리 오페라>가 중요한 고전이라는 것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합의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본 번역 비평에서는 총 7종의 번역 중에서 임한순의 번역부터 이원양, 김화임, 김길웅, 이은희의 번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임한순과 이원양의 번역의 경우 첫 번째 시기 번역과 두 번째 시기 번역을 함께 비교한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가장 큰 특징은 오페라를 표방하며 오페라를 패러디한다는 것이다. 1728년 런던에서 성황리에 공연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는 정확히 200년 후인 1928년 베를린에서 메가 히트의 포문을 열었다(이 작품은 이미 1933년 전 세계적으로 일만 회 공연 기록을 세웠다). 존 게이는 당시 유행하던 오페라의 형식을 패러디하여 당대의 정치 현실을 풍자하고, 브레히트 역시 오페라의 형식에 빗대 자본주의의 민낯을 폭로한다. 오페라를 패러디하기 위해 오페라 형식을 차용한다는 사실은 음악이나 노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번역 비평에서도 가장 주목할 지점이 바로 번역가가 노래 가사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원래 노래 가사의 번역은 다분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행해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번역가의 비가시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배우가 공연하는 외국 뮤지컬이나 더빙된 음악 영화(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 등 포함)를 떠올려 보면 노래 가사 번역과 번역가의 상황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서푼짜리 오페라>가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 않고, 주로 읽히는 작품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여기 수록된 노래 가사들은 가사가 아닌 시처럼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본 번역 비평이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악보가 보이지 않는) 공연되지 않는 음악극 속 가사의 번역’이라는 기묘한 상황을 번역자들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서푼짜리 오페라>에는 <매키 메서의 노래>, <대포의 노래>, <해적의 제니>와 같은 대표곡을 포함 총 19편의 가사가 있는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데, 본고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고려하여 <매키 메서의 노래>[7]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번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 곡은 <서푼짜리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8]둘째, 여기 수록된 상당수의 곡이 레치타티보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어 운율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반면, 이 곡은 ‘폭스트롯풍’으로 작곡되어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운율을 지니고 있다. 셋째, 이 노래 가사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의 제한 속에서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은유인 ‘살인강도 강간범 매키스’를 함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과 서곡으로서 작품 전체의 주제와 분위기를 응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노래 제목을 구성하는 독일어 단어 ‘Moritat’는 ‘Mordtat(살인 행위)’에서 유래한 단어로, 이 낯선 용어는 개별 번역자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상이하게 번역된다. 번역자들이 여기에 상응하는 번역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번역에 대한 번역가의 태도 사이의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바깥 링크

  1. 번역자마다 제목의 ‘노래’를 조금씩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독일어 원어(Die Moritat von Mecki Messer)를 고려할 때 ‘노래’가 정확한 번역은 아니나, 본고에서는 상이한 번역 사이에서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매키 메서의 노래>라고 칭한다.
  2. <공산권과 문화교류에 진일보>. 중앙일보. 1988.06.22. 실린 곳: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49069(검색일: 2022.2.10).
  3. 해금되기 전까지 브레히트가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브레히트 키즈라고 할 법한 프리쉬나 뒤렌마트의 극작품에 나타난 브레히트의 흔적을 통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 등이 소개되었으며, 브레히트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논문들도 드물게나마 발견된다. 1972년 브레히트의 연극론에 관한 영미권의 논문이 국내 학술지에 수록되기도 했고, 송동준은 1976년 브레히트의 서사극에 관한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공연과 관련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학교와 학생을 중심으로 공연된 것이 확인된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극단 <프라이에 뷔네>는 이미 1970년대 초 브레히트 공연을 수 차례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일례로 1985년 서울대 독문과에서 <사천의 선인>을 무대에 올리려다 좌초된 일화 등을 고려할 때 대학이나 학계에서의 브레히트에 대한 관심은 결과물로 나와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서울대학교 대학신문사: <獨文學科 브레히트 연극 <泗川의 善人> 무산돼. 1985.9.9. 대학신문. 실린 곳: https:// ap01-a.alma.exlibrisgroup.com/view/UniversalViewer/82SNU_INST/12741918360002591#?c=0&m=0&s=0&cv=0&xywh=223%2C2843%2C2887%2C1163 (검색일: 2022.2.10)).
  4. 국내에서 마당극과 결합된 형태로 한동안 꾸준히 공연되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 더 오래, 그리고 더 자주 공연된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5. 국내 브레히트 수용 및 연구 현황에 관한 송희영의 논문에 의하면 브레히트 관련 논문이 1970년대에는 9편, 1980년대에는 61편, 1990년대에는 211편 발표되었고 이 숫자는 1990년대 정점을 찍고 다시 2000년대로 들어가면서 하강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송희영 2008, 259 참조).
  6. 국내에서 저작권은 2013년 7월 1일부터 사후 70년으로 연장되는데, 그 이전에 이미 저작권 보호 기간인 50년이 경과했다면 저작권은 만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1963년 이전에 사망한 자에 대한 저작권은 2013년에 이미 소멸했으므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고, 1963년부터 사망한 자는 신법에 따라 저작권 보호 기간이 70년으로 연장된다. 따라서 1956년 사망한 브레히트의 국내 저작권은 사후 50년을 적용받아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독일에서는 2027년 소멸한다).
  7. 이 곡은 주목받으려던 주연 배우의 요구에 의해 1928년 베를린 초연 직전에 삽입되었다고 전해진다.
  8. 이 곡은 <칼잡이 맥>(Mack the Knife)이라는 제목으로 1950년대 이후 영미권에서 재즈로 편곡되어 독자적인 곡으로 인기와 명성을 누려왔다. 이 곡을 편곡하여 연주한 유명 음악가로는 루이 암스트롱(1955), 바비 다린(1959), 엘라 피츠제럴드(1960), 로비 윌리엄스(2001) 등을 언급할 수 있다. 특히 바비 다린의 <칼잡이 맥>은 빌보드차트 9주 연속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