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 (Nußknacker und Mausekönig)

Root02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6일 (일) 09: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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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T. A. 호프만(E. T. A. Hoffmann, 1776-1822)의 소설


작품소개

발레로 더 널리 알려진 E. T. A. 호프만의 창작동화로 대부 드로셀마이어가 마리와 프리츠라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이브에 여러 인형과 함께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상하게 생긴 호두까기 인형에게 마음이 가는 마리는 이날 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의 전투를 목격하고, 상처까지 입어 며칠간 침대에 누워 보낸다. 병상의 마리를 위해 대부 드로셀마이어는 <단단한 호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내용은 호두까기 인형이 얼떨결에 생쥐 여왕을 죽이게 되어 저주받아 호두까기 인형이 되었다는 사실과 생쥐 왕과 전투하게 된 사연, 그리고 매력 없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받아야 저주가 풀린다는 것이다. <단단한 호두에 관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와 동명인 드로셀마이어는 시계를 잘 고치고, 쥐덫을 개발한 연금술사라는 점에서 대부 드로셀마이어와 묘하게 닮았다. 결국 마리는 이야기 속의 저주받은 호두까기 인형이 지금 자기 집 장식장에 놓여 있는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것임을 눈치채고, 그 인형이 실제 대부 드로셀마이어의 조카라고 확신한다. 다음날 밤 마리의 도움으로 생쥐 왕을 물리친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를 인형의 나라로 초대해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로 꾸며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마리의 모험 이야기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마리 앞에 실제 드로셀마이어 대부의 조카가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그 호두까기 인형임을 밝히고 마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청혼하고, 마리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 작품은 독특한 서술구조로 인해 어려운 동화로 인식되었지만, 발레나 영화 등 다른 매체에서 수용되어 동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요한 고전 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최초의 독일어 완역은 최민숙의 2001년 번역이다(비룡소).


초판 정보

Hoffmann, E. T. A.(1816): Nußknacker und Mausekönig. In: Kinder-Mährchen. Berlin: Realschulbuchhandlung, 115-271.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번역 현황 및 개관

<호두까기 인형>은 동화보다는 발레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E.T.A. 호프만 원작의 제목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 [1] 이지만, 대부분의 국내 번역본이 여전히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의 제목인 <호두까기 인형>(안무: 프티파)으로 출간되는 것만 보아도 그런 듯하다. 1816년에 발표된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국내에서는 2001년 처음으로 완역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모음곡이 이보다 훨씬 일찍 국내에 수용되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점을 고려한다면, 호프만의 다른 작품의 번역현황과 비교할 때도 상당한 시간 차이를 보이는 원작에 대한 소외는 다소 의외이지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본다.

첫째, 리스마스 모티브, 호두까기 인형의 선물, 생쥐 왕과의 전투와 승리(1막), 인형나라 여행(2막) 장면 등 2막으로 구성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원작의 주요 모티브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원작의 액자소설 구조는 극도로 단순화하고 있다. 이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기획 단계에서 활용되었던 텍스트가 호프만의 원작이 아닌 알렉상드르 뒤마 페레가 프랑스어로 번역, 개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뒤마는 호프만의 원작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원작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원작과는 순서를 달리하여 글의 서두에 ‘드로셀마이어 대부’(1장)와 ‘크리스마스트리’(2장)라는 제목의 장을 배치한다. 이 장들을 통해 뒤마는 프랑스와는 다른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문화를 소개하는가 하면, 내부 동화를 재구성하여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작품을 전반적으로 단순화하였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의 1막에서 드로셀마이어 대부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1막 총 7장 중 2장), 크리스마스트리(서곡 바로 뒤 1막 1장)가 한 장으로 구성된 것에서도 뒤마의 영향이 확인된다. 특히, 원작에서는 ‘장식이 달린 전나무’로 잠깐 등장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의 공연 포스터나 무대 디자인에 빠지지 않고 소환되어,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뒤마가 번안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관해 한 장을 할애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미권에서 호프만의 원작과 뒤마의 개작(<호두까기 인형 이야기>)을 함께 실은 단행본(펭귄 출판사)이 출간된 것만 보아도 뒤마의 <호두까기 인형> 번안이 얼마나 중요하게 간주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

둘째, 원작이 지닌 고유한 특징도 독일어 원전의 본격적인 번역에 방해 요소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작가에 의해 동화로 규정되어 있으나, 호프만 자신도 언급한 바 있듯이 아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엔 복잡한 구조를 지닌 반면, 동화라는 장르 규정 때문에 어른들은 선뜻 읽게 되지 않다 보니 주요 독자층을 설정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반영하듯 국내에서는 발레가 수용된 이후에도 한참 뒤인 1984년부터 본격적인 완역본이 아닌 아동용 도서로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개작 버전 또는 만화 버전 등이었다(하서출판사, 지경사, 예문사, 중앙일보사 등). 독일어 원작에 기반한 최초의 완역본은 2001년에야 독문학자 최민숙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비룡소). 이후 지금까지도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주로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어서, 이렇게 누적된 번역본은 현재 80여 종에 이른다. 이 번역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용 도서들이나, 2001년 최초의 완역본이 나온 이후 특기할 만한 경향, 즉 독일어를 전공한 전문 번역가들의 번역본이 다수 출간되기 시작한다. 이 완역본들은 유치원생이나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가 아니라 주니어용 도서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되거나, 글씨 크기, 표지 디자인에 있어 성인이 선택하기에도 저항감이 없도록 기획되어 다양한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성인을 위한 동화’로 읽히는 호프만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의 저변이 넓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의 변형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보다는 원작의 원본성을 존중하면서 원작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대의 독자층에 선택권을 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독문학계에서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에 대해 상당히 활발하게 논의해 왔던 것에 반해, 성인이 읽을 만한 번역서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기존의 상황에서 학계의 수용과 대중적 수용 간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확인된다.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의 번역과 관련하여 발견되는 또 다른 특기 사항은 현지에서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의 삽화가 삽입된 단행본이 종종 발간된다는 점이다. 이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크리스마스 시즌의 고정 레퍼토리인 것처럼, 원작도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선물용 도서로 제작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음 개별 번역 비평에서 살펴볼 작품 중 일부도 원작과는 별도로 저작권이 걸려 있는 삽화가 포함된 단행본들이다.


2. 개별 번역 비평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출간된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은 80여 종에 이를 정도로 수적으로는 적지 않다. 다만, 원작에 기반한 직역과 완역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작품은 2021년 7월 기준 5-6종으로 추려진다. 중역이 지양되는 최근의 출판계 분위기와 달리,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의 경우 최근에 번역 출간된 작품 중에서도 일부 중역이 발견된다. 그중 한 번역본은 종이 아트 형식으로 패턴화된 감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다수 포함한 디자인에 강점을 둔 선물용 도서이고, 또 다른 번역본은 공교롭게도 국내 출간된 번역본 중 유일하게 호프만 원작의 원제목에 따라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으로 출간된 번역본이다. 모든 독일어 직역본에서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발레의 후광을 누리고 싶은 상업적인 목적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발레가 원작에 앞서 광범위하게 수용된 탓에 이 작품이 발레의 원작임을 알리기 위해서는 발레의 제목과 동일한 제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출발어가 독일어인 완역본 6종(이 중 2종은 최민숙 번역본) 중 논의할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3-4종을 주요 비평 대상으로 삼는다. 해당 단행본들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의 최초의 완역자인 독문학자 최민숙을 제외하면 독문학 전공 후 번역가로 활동하는 이들에 의해 번역되었다. 작품은 동화라는 장르를 기준으로 삼으면 비교적 ‘어려운’ 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 기획된 탓에 원작은 상대적으로 평이한 언어로 쓰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다음에 살펴볼 번역들에서는 전반적으로 무리한 번역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개별 번역 간의 차이점은 대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의성어의 처리 방식, 노래(시)의 번역 방식, 부문장의 처리 방식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콤마를 자주 사용하여 문장을 이어 쓰는 호프만 특유의 문체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어떤 번역본은 이러한 원작의 문체적 특성을 살리고, 또 어떤 번역본은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린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짧고 단순하게 처리하기도 하는데, 이는 여느 번역본들에서나 확인되는 번역에 대한 고전적인 입장차를 재확인시켜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서술자가 갑자기 등장하는 원작의 고유한 서술적 특징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생겨나는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번역자들이 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중점적으로 비교 검토해 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번역 비평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간단하게나마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의 구조를 살펴보자.

호프만이 동료 출판업자의 자제인 마리와 프리츠를 위해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액자의 틀에 해당하는 외부 동화에도 현실 세계의 인물들과 동명인 마리와 프리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이야기 바깥 현실 세계와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특히, 경계의 모호성은 마리와 프리츠를 호명하며, 독자에게 말을 거는 서술자의 빈번한 등장으로 인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서술자의 이러한 행위는 드로셀마이어가 마리와 프리츠에게 내부 동화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구술해 주는 장면과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중첩되기 때문이다. 즉, 액자식 구성의 내부 동화는 드로셀마이어에 의해, 그리고 외부 동화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확인시키며, 독자(청자)를 소환하는 서술자에 의해, 각각 동화 속의 마리와 프리츠, 그리고 현실의 마리와 프리츠에게 이야기를 구술해 주고 있다. 아울러 작품 내에서 다중적 역할을 통해 내부 동화와 외부 동화를 연결하고 있는 드로셀마이어가 작가의 분신으로도 읽힌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도 다양하게 논의된 바 있다. [3] 동화 외부의 서술자와 동화 내부 드로셀마이어의 등치를 통해 액자식 구조가 러시아 인형처럼 반복, 중첩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면, 외부 동화 또한 (동화 속의 드로셀마이어처럼) 서술자의 구술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실제 원작에서도 명시적으로 드로셀마이어에 의해 구술되는 내부 동화와 외부 동화의 문체적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독일어 원작에서는 “nun”이라는 단어가 100회 이상 등장하고, 구어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불변화사(Partikeln)나 짧은 명령어(siehe!, horcht!)가 자주 발견되는데, 이는 서술을 현재화하려는 시도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나아가 서술자/화자는 현존 인물인 마리나 프리츠를 호명하면서 ZuhörerIn이라는 단어(총 8회 등장)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동화가 “이것이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에 대한 동화란다”(최민숙 2021, 167)라는 문장으로 끝나고 있는 것도 외부 동화의 바깥에 위치한 서술자(화자)의 위치를 확인시키며, 이야기의 구술 가능성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외부 동화의 구술 가능성을 상세하게 논의하는 이유는 구술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독일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 때문이다. 독일어에서는 어휘, 문장 구조, 문체적 특징, 언어 습관 등으로 구술성을 표현하는 데 반해, 우리말에서는 구술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종결어미가 있다. 여기서 살펴볼 모든 번역본에서도 드로셀마이어가 구술하는 내부 동화를 번역할 때는 ‘~했어’, ‘~했지’, ‘~했단다’ 등의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해당 이야기가 구술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드로셀마이어가 마리와 프리츠에게 이야기해 주는 상황이 작품 안에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 동화의 번역에 관해서는 번역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발견된다. 중역으로 인해 본고의 논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번역본 한 편을 제외하면, 대개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화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만 구술체로 번역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내부 동화가 외부 동화와 구조적으로 닮아있다면, 외부 동화 또한 구술체로 번역될 여지는 없는 것일까? 만약 외부 동화 또한 구술되고 있다고 할 때, 한국어를 그렇게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에서는 서술자/화자의 개입 부분을 번역한 방식을 중심으로 개별 번역본들의 특징을 살펴본다.


1) 최민숙 역의 <호두까기 인형>(2001)

국내 최초의 직역 완역본이다. 비룡소에서 출간된 이 번역본은 호프만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독문학자 최민숙에 의해 번역된 것으로, 세밀화(그림: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삽입되어 있으며, 그림책 판형으로 제작되었다. 쉼표로 계속 연결되는 호프만 원작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하는 등 호프만 전문가인 번역자가 원작을 입체적으로 살려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엿보인다. 일례로 이 작품은 소제목이 달린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의 번역자가 간략하고 압축적인 원작의 소제목을 직역하거나, 풀어서 번역한 반면, 최민숙은 제목의 상징성을 살리면서도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모색한다. 3장의 제목 ‘Der Schützling’의 경우 다른 번역본에서는 ‘마리의 보살핌을 받게 된 호두까기 인형’(문성원), ‘보호자’(박진권), ‘보호자 마리’(함미라), ‘호두까기 인형’(한미희)으로 번역되었는데, 최민숙은 제목의 상징성을 살리면서도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자 ‘마리의 사랑’이라는 의역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서술적 특징으로 인해 번역 시 야기되는 문제점들을 이 번역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2001년도 번역본에서 최민숙은 외부 동화에서 일관되게 화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했다’ 등의 평서형 종결어미를 고수하고 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에 관해서는 이 작품에 관한 최민숙의 논문을 통해 가능한 답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최민숙은 이 작품이 3인칭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술자를 개입시킴으로써 독자의 환상을 중단시키는 동시에 독자를 현실 세계로 소환(말하자면 일종의 ‘낯설게 하기’ 효과)하는데, 이 소환행위가 오히려 독자(아이들)에게 현실과 환상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되면서 현실 세계에서의 환상의 증강, 또는 혼재라는 ‘미학적 효과’를 창출한다고 보았다. [4] 그래서 그는 청자를 다정하게 소환했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무덤덤한 서술자의 태도를 고수하고, 이로 인해 한국어 번역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어색함을 감수한다.

마리는 장식장 문을 잠그고 침실로 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얘들아, 귀를 기울여 보렴! 바로 그때 난로 뒤에서, 의자 뒤에서, 장식장 뒤에서, 사방에서 소리를 죽여 나직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속삭이며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벽시계는 점점 더 크게 덜거덕덜거덕 소리를 냈지만, 시계추를 움직여 시간을 알리지는 못했다.(최민숙 2001, 28)
Sie verschloß den Schrank und wollte ins Schlafzimmer, da – horcht auf Kinder! – da fing es an leise – leise zu wispern und zu flüstern und zu rascheln ringsherum, hinter dem Ofen, hinter den Stühlen, hinter den Schränken. – Die Wanduhr schnurrte dazwischen lauter und lauter, aber sie konnte nicht schlagen. 
아! 그런데 불쌍한 마리는 그렇게 조차 할 수 없었단다. 얘들아, 왜 그랬는지 좀 들어 보렴! 마리의 발치 바로 앞에서 마치 땅 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듯 모래와 석회, 그리고 부서진 담벼락의 돌들이 마구 휘몰아쳐 나왔다.(최민숙 31)
Ach! – das konnte die arme Marie ja nicht einmal tun, denn hört nur Kinder! – dicht – dicht vor ihren Füßen sprühte es wie von unterirdischer Gewalt getrieben, Sand und Kalk und zerbröckelte Mauersteine hervor und sieben Mäuseköpfe mit sieben hellfunkelnden Kronen erhoben sich recht gräßlich zischend und pfeifend aus dem Boden. 
그러자 장식장 안에서 말이 울부짖고 땅을 차는 소리가 났다. 봐라, 프리츠의 기마병들과 용기병들 그리고 특히 반짝이는 새 경기병들이 진군해 와서 거실 바닥 위에 멈춰섰다.(최민숙 39)
Da ging es im Schrank an ein Kichern und Stampfen, und siehe, Fritzens Kürassiere und Dragoner, vor allen Dingen aber die neuen glänzenden Husaren rückten aus, und hielten bald unten auf dem Fußboden.          

독일어 원문에서는 서술자/화자의 개입 여부만 눈에 띌 뿐이다. 그러나 한국어 번역에서는 서술자/화자의 개입 여부뿐만 아니라, 구술형 종결어미에서 평서형 종결어미로의 급작스런 전환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것은 최민숙이 언급한 ‘낯설게 하기’ 효과를 제대로 살리는 번역일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번역이 실질적으로 독자에게 의도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는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바깥 링크

  1. 이하 발레가 아닌 원작의 경우에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으로 표기한다.
  2. 참고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뒤마의 개작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는 없다.
  3. 최민숙 2003; 정항균 2019 참조.
  4. 최민숙 2003, 206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