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Nachts schlafen die Ratten doch)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 1921-1947)의 단편산문
작가 |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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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947 |
장르 | 산문 |
작품소개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1947년 1월 병상에서 쓴 단편으로, 같은 해 11월에 출판된 작가의 산문집 <이번 화요일에>에 수록되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아홉 살 소년 위르겐과 늙수그레한 남자가 우연히 만나서 나누는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남자는 졸고 있는 소년에게 말을 걸고, 소년이 벌써 며칠째 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를 말하지 않던 소년은 남자에게 차츰 마음을 열고, 잔해더미에 깔린 어린 동생의 시체를 지키고 있음을 밝힌다. 쥐들이 시체를 먹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선의의 거짓말로 소년이 집에 가서 자도 된다고 설득하고 자신이 키우는 토끼도 한 마리 주겠다고 약속한다. 남자는 동생에 대한 무거운 책무감을 스스로 짊어진 소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고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던 소년은 남자의 약속을 믿게 된다. 이 단편은 보르헤르트의 여느 단편들처럼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고난을 그리지만, 삶의 회복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단편은 전후 독일 폐허문학의 대표적인 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오늘날 독일의 많은 주에서 교육 커리큘럼에 포함된 교재로 자리잡았다. 이 작품은 독문학자 이동승에 의해 1964년 처음 번역되었다(휘문출판사).
초판 정보
Borchert, Wolfgang(1947): Nachts schlafen die Ratten doch. In: An diesem Dienstag. Neunzehn Geschichten. Hamburg/Stuttgart: Rowohlt, 69–72.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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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 |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한) 고교생이 알아야 할 세계 단편 소설 3 | 볼프강 보르헤르트 | 확인불가 | 1994 | 신원문화사 | 214-222 | 편역 | 완역 | ||
2 | 밤에는 쥐들도 잠잔다 |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볼프강 보르헤르트 | 박병덕 | 2018 | 현대문학 | 369-374 | 완역 | 완역 | 이번 화요일에: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
3 | 밤에는 쥐들도 자는 법이다 | 世界短篇文學全集 | 2 | 볼프강 보르헤르트 | 姜斗植 | 1981 | 新韓出版社 | 336-342 | 편역 | 편역 | |
4 |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 | 쉬쉬푸쉬 -볼프강 보르헤르트 단편선 | 正音文庫 162 | 볼프강 보르헤르트 | 채희문 | 1978 | 正音社 | 177-182 | 편역 | 완역 | |
5 | 쥐들도 밤에는 잘까 | 집을 팝니다 | 볼프강 볼헤르트 | 송정곤 | 1990 | 우리시대사 | 71-79 | 편역 | 완역 | ||
6 |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 이별 없는 세대 | 세계 문학, 문지 스펙트럼 | 볼프강 보르헤르트 | 김주연 | 2018 | 문학과지성사 | 76-81 | 편역 | 완역 | |
7 |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 | 가로등과 밤과 별 | 작가정신 세계문학 1 | 볼프강 보르헤르트 | 채희문 | 1990 | 작가정신 | 212-216 | 편역 | 완역 | |
8 |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 | 門 밖에서 | 文藝敎養選書 57 | 볼프강 보르헤르트 | 채희문 | 1987 | 文藝出版社 | 122-128 | 편역 | 완역 | |
9 |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 이별없는 世代, 볼프강 보르헤르트 短篇集 | 이데아총서 34 | 볼프강 보르헤르트 | 金柱演 | 1987 | 民音社 | 70-75 | 편역 | 완역 | 개정판 (1975 초판) |
10 |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 이별없는 세대 | 문지스펙트럼 2-016 | 볼프강 보르헤르트 | 김주연 | 2000 | 문학과지성사 | 79-84 | 편역 | 완역 | |
11 |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 이별 없는 世代 | 볼프강 보르헤르트 | 金柱演 | 1975 | 民音社 | 77-83 | 편역 | 완역 | ||
12 | 밤이면 쥐들도 잠을 잔다 | 5월에,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 볼프강 보르헤르트 전집 1 | 볼프강 보르헤르트 | 김길웅 | 1996 | 강 | 225-230 | 편역 | 완역 | |
13 | 밤엔 쥐들도 잠을 잔다 |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 | 대산세계문학총서 157 | 볼프강 보르헤르트 | 박규호 | 2020 | 문학과지성사 | 301-305 | 완역 | 완역 | |
14 |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 | 世界의 文學百選 | 5 | B. 보르헤르트 | 이동승 | 1964 | 휘문출판사 | 349-352 | 편역 | 완역 | |
15 |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 | 世界의 文學百選 | 世界의 文學百選 5 | W. 보르헤르트 | 이동승 | 1975 | 汎學館 | 349-352 | 편역 | 편역 | |
16 | 밤에는 쥐들도 자는 법이다 | 世界短篇文學全集 4. 獨逸篇 | 世界短篇文學全集 4 | 볼프강 보르헤르트 | 강두식 | 1966 | 啓蒙社 | 406-410 | 편역 | 완역 | |
17 | 그러나 밤마다 쥐들도 잠잔다 | 獨逸短篇文學大系 | 獨逸短篇文學大系. 現代篇 2 | 볼프강 보르헤르트 | 박종서 | 1971 | 一志社 | 442-445 | 편역 | 완역 | |
18 | 밤에는 쥐들도 잔다 | 獨逸콩트選 | 乙酉文庫 163 | 볼프강 보르헤르트 | 김창활 | 1975 | 乙酉文化社 | 105-111 | 편역 | 완역 | |
19 |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 | 門밖에서 | 볼프강 보르헤르트 | 채희문 | 1981 | 文藝 | 122-128 | 편역 | 완역 | ||
20 |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 | 쥐들도 밤에는 잠을 잔다 | 볼프강 보르헤르트 | 황성식 | 1999 | 세상속으로 | - | 편역 | 완역 | ||
21 |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 | 門밖에서 | 볼프강 보르헤르트 | 채희문 | 1981 | 文藝 | -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단편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독문학자 이동승이 1964년 처음으로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로 번역했으며 <세계의 문학백선> 제5권에 수록됐다. 번역의 초기에는 이외에 <세계단편문학전집>(1966), <독일단편문학대계>(1971), <독일콩트선>(1975) 등 총서로 편찬된 서적에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현대 단편문학으로 수록되었다. 총서의 기획 의도에 따라서 작가에 대한 짧은 소개글이 첨부되기도 했으나(<세계의 문학백선>, <세계단편문학전집>), 저본에 대한 정보와 작품 자체에 대한 소개는 없다. 강두식만이 예외적으로 이 단편을 전후에 황폐한 도시를 배경으로 인생의 진실과 현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짧은 평을 덧붙였다.(강두식 1966, 419) 이후 김주연이 1975년 보르헤르트의 <전집>을 편역한 <이별 없는 세대. 볼헤르트 단편집>을 출간했는데, 이때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가 처음으로 작가의 작품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이로써 이 단편을 작가의 문학세계에서 살피는 것이 가능해졌고, 또한 독일 폐허 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채희문은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그가 편역한 <쉬쉬푸쉬>(1978년), <문밖에서>(1987년 중판), <가로등과 밤과 별>(1990)에 실었다. 김주연의 번역이 쇄를 거듭하며 출판되었고, 채희문의 번역 또한 그의 책들에 모두 실렸던 사실로부터 짐작건대 이들의 번역에 힘입어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가 폭넓은 대중성을 얻었을 것이다. 이 단편은 긴 시간 꾸준히 수용되어서, 역자 정보 없이 <집을 팝니다>(1990), <기막히게 아름다운 이야기 23가지>(1991),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한) 고교생이 알아야할 세계단편 소설>(1994) 등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단편의 번역은 20종 이상이 확인되는데, 여기에는 90년대 이후 출판된 김길웅의 <밤이면 쥐들도 잠을 잔다>(1996), 박병덕의 <밤에는 쥐들도 잠잔다>(2018), 박규호의 <밤엔 쥐들도 잠을 잔다>(2020) 등이 포함된다. 이 역자들은 보르헤르트 <전집>의 완역을 번역 목표로 삼았고, 그 일환으로 작가의 모든 단편을 번역한 경우이다.
번역자마다 제목의 토씨를 달리하여 제목의 숫자가 번역 종의 숫자만큼이나 많은데, 여기서는 가장 널리 읽혔다고 생각되는 김주연의 번역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를 표준제목으로 제안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아래에서는 이동승의 최초 번역, 김주연의 가장 널리 읽힌 번역,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열정이 번역으로까지 이어진 채희문의 번역 및 가장 최근의 번역인 박규호의 번역 등 개별 번역의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 소년 위르겐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에 대한 번역들을 비교해보기로 한다. 해당 부분의 독일어 원문은 이렇다.
(...) Nachts schlafen die Ratten doch. Nachts kannst du ruhig nach Hause gehen. Nachts schlafen sie immer. Wenn es dunkel wird, schon. Jürgen machte mit seinem Stock kleine Kuhlen in den Schutt. Lauter kleine Betten sind das, dachte er, alles kleine Betten.
남자는 위르겐에게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자니까, 너도 집에 가라고 말하면서 쥐들이 밤에 잠을 잔다는 걸 반복해서 말한다. 위르겐은 막대기로 잔해더미를 파면서 생각에 빠지는데, 독일어 원문은 이를 체험화법으로 쓰고 있다. 체험화법에서는 인물의 소리가 서술자의 소리보다 크다. 위르겐은 전부 작은 침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서술자는 인물로부터 일정 거리를 취하면서 그의 생각을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전달할 뿐이다. 그래서 작은 침대들 생각에 빠진 순간 소년 위르겐이 쥐를 생각하는지 집에 가는 걸 생각하는지 혹은 둘 다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 남자의 말과 아이의 생각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는 독자가 찾아야 하는 미싱 링크로 남아 있다.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 옮기는지 살펴보자.
이동승의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는 이 단편을 국내에 알린 최초의 번역이다. 이 번역은 <세계의 문학백선>에 실렸는데 이 책은 영국 작가인 서머셋 모옴이 편찬한 단편집을 저본으로 한 번역서이다. 모옴은 독서의 즐거움을 기준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단편 100개를 엮어서 1940년에 <Tellers of tales>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당연히 모옴의 책에는 1947년에 쓰인 보르헤르트의 단편이 수록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계의 문학백선>에 실린 까닭은 “우리나라의 형편”상 모옴의 책에 실린 “적색계 작가”들의 작품들을 배제했고 대신 주요 현대 작가들의 작품 36편을 보충했다는 편집진의 후기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독문학자인 이동승은 역자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편집진의 일원이었고, 아마도 그가 직접 보르헤르트의 단편을 선별하고 번역하여 실은 것으로 보인다. 편집진은 현역 작가들의 “재미있고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작품들을 선택했다고 하니, 이동승은 보르헤르트의 작품을 처음 번역한 수고를 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일차적으로 새롭고 재미있고 읽는 즐거움이 큰 작품으로 소개한 것인데, 이로써 독자들이 여전히 보르헤르트의 단편들을 찾는 큰 이유를 포착한 셈이다. 실제 번역에 있어서 이동승은 당시 총서편찬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원작의 제목만을 부기한 채 저본 정보나 역자 해설을 따로 제시하지 않는다.
작품의 번역에 있어서는 문장부호를 사용해서 서술문과 대화를 뚜렷이 구분하는 점이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데, 독일어 원작은 서술문과 대화를 구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적인 측면에서는 원문에서 멀어졌으나, 문장의 측면에서는 원문을 직역하려는 문자 번역의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남자가 밤에는 쥐들이 잠을 자니 너도 밤에는 집에 가도 된다는 말에 소년이 보이는 구멍을 파는 행동과 잠자리를 떠올리는 생각을 번역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유르겐은 막대기로 쓰레기덤이에다 조그만 구멍들을 팠다. 『전부 작은 잠자리들이야』하고 유르겐은 생각했다. 『전부 작은 잠자리들이야』
이동승은 원문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누고 체험화법과 직접화법을 구분하지 않는데, 이와 함께 원문에 있는 지시대명사 das를 번역에서 누락하여 “작은 잠자리들”의 지시관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지시대명사를 옮기지 않더라도 구멍과 침대의 일대일 대응이 확실해서 중언부언을 피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혹은 지시대명사가 문장의 주어일 때 종종 생략하는 한국어의 언어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지시대명사의 생략을 더 자연스럽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아이가 잔해를 파는 행위와 작은 잠자리가 떠올리는 속생각 간의 연결이 원문보다 더욱 느슨해진다. 위르겐의 생각, 서술자의 거리두기, 서술자와 동일하지 않은 작가의 글쓰기 사이들에서 발생하는 모호한 효과가 번역문 속으로 옮겨진다. 원문의 미싱 링크가 번역에서도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가 떠올리는 작은 잠자리들의 의미 찾기는 이동승의 번역 이후에 오는 번역자들에게로 위임된다.
이동승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잘 읽힌다. 그의 번역이 초역임을 감안하면 그의 번역이 빛나는 구절도 있다. 남자는 아이를 집으로 보내려고 거듭 설득하고, 대꾸 없이 생각만 하던 아이가 마침내 남자에게 입을 열고 이렇게 말한다.
(...) Ich weiß nicht, sagte er leise und sah auf die krummen Beine, wenn sie wirklich nachts schlafen.
이 문장은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이 각각 문법적으로 불완전하다. 나는 모르겠다는 첫 구절에는 종속절이 없고, 그것들이 정말로 밤에 잔다면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문법적으로 종속절인데 주절이 없는 것이다. 이동승은 이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 저는 모르겠어요』 하고 유르겐은 나직이 말하고 꾸부러진 다리를 쳐다보며 『정말 쥐들도 밤에는 잔다면야』하고 말했다.
번역문의 첫 구절에도 아이가 무엇을 모른다는 건지 목적어가 없는데, 그만큼 아이의 망설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의 “~잔다면야”는 남자의 말을 믿겠다는 아이의 결정을 암시한다. 그리고 독일어 원문에서도 이동승의 번역문에서도 아이는 붙박이처럼 앉아있던 자리에서 마침내 일어선다. 이동승 이후에는 거의 모든 번역이, 최소한 여기서 다루는 개별 번역들은 예외 없이, 쥐들이 정말 밤에 잔다는 구절을 나는 모르겠다는 구절의 종속절로 번역하고 있다. 주절과 종속절을 이어붙이는 번역의 부작용은 꽤 심각한데, 위르겐은 쥐들이 밤에 자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집으로 가겠다고 일어서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마는 것이다.
2) 김주연 역의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1975/2000/2018)
독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김주연의 번역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1975년 그의 책 <이별 없는 세대. 볼헤르트 단편집>에 수록되었다. 이 책은 스물다섯의 단편 및 열두 편의 시를 담고 있는데, 편역이지만 작가의 <전집>을 처음 번역한 의의가 있으며, 작가의 존재와 문학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때까지 개별적으로 번역되었고 서양 혹은 독일의 단편문학으로 편집되었던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도 김주연의 번역을 통해서 비로소 작가의 작품세계와 함께 수용이 가능해졌다. <이별 없는 세대>는 많은 독자의 호응을 얻었고 널리 읽혔는데, 국내 독자들은 김주연의 번역인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를 보르헤르트의 그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출판사를 옮겨서 2000년과 2018년에 각각 판을 바꿔서 재출간된 데서도 이 책의 꾸준한 인기를 엿볼 수 있다. 그때마다 김주연은 번역을 다소간 수정했다. 2000년의 번역에서는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서 율겐을 위르겐으로 바꾸고, 동사의 어미를 바꾸는 등 소소한 수정에 그친 데 비해 2018년의 번역에서는 편집적인 사항들이 독일어 원문에 더 가까워졌고 몇몇 오역이 정정되었으며, 문체상의 변화도 있었다. 가장 주목할 변화는 푸른색과 붉은색을 조합한 blaurot를 “불그죽죽한”에서 “붉고 푸른”으로 수정한 점이다. 이 단편에는 회색 먼지, 흰토끼, 초록 토끼풀, 붉은 저녁해 등 색채가 많이 사용되며 또 제각각 상징 기능을 갖는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병렬된 blaurot는 낮이 기울지만 아직은 푸른 하늘에 지는 해의 붉은 빛이 물드는 시간을 가리키면서 아이와 남자가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들이 헤어질 때는 저녁노을이 사위를 붉게 물들이고, 아이는 남자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지평선에 떨어지는 해를 본다. 만날 때의 푸르고 붉은색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질 때 붉은색이 짙어지는 풍경의 변화는 남자와 소년의 내면에 깨어난 삶에의 희망을 상징한다. (작가 보르헤르트는 특이하게도 붉은색을 희망을 상징하는 따뜻한 색으로 쓴다). 저녁 햇살의 붉은색은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기에 blaurot를 정확히 옮겨야 하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푸른색과 붉은색의 조합은 자연스러운 독일어도 아니어서 모든 번역자들에게 난제였을 것이다. 보랏빛(이동승, 김창활, 채희문), 푸르고 붉게(강두식), 파리한 붉은 빛(박종서), 검붉은(김길웅), 푸른빛을 띤 붉은색(박병덕), 붉고 푸른(박규호)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최근으로 올수록 푸른색과 붉은색이 모두 드러나도록 번역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김주연은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말을 들은 위르겐의 행동과 생각을 1975년과 2018년에 각각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율겐은 막대기로 폐허위에 자그만 구멍을 뚫었다. 이게 그놈들의 작은 침대가 되는구나, 그는 생각했다. 구멍마다 모두 작은 침대지.(1975, 82)
위르겐은 막대기로 폐허 더미에 자그만 구멍들을 팠다. 이게 그놈들의 작은 침대야. 아이는 생각했다. 구멍마다 모두 작은 침대야.(2018, 80)
이 두 번역 사이에는 수정으로 인한 차이점들이 있는데, 그보다는 변함없이 고수되는 번역 의지에 주목하고 싶다. 김주연은 두 번역에서 독일어 원문에 없는 “그놈들의”를 구문에 삽입해서 작은 침대 마다마다 쥐들에게 귀속됨을 알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원문에 없는 “구멍마다”를 첨가하여 위르겐이 파는 구멍이 곧 쥐들의 침대라는 의미를 명확히 한다. 텍스트의 일차적인 독자이기도 한 번역가가 위르겐의 행동과 생각을 해석했고, 그가 해석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두 어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김주연의 번역을 통하면 아이는 시체를 먹고 산다는 쥐의 이미지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어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밤에는 쥐들이 잠을 잔다는 남자의 말을 행동과 생각으로 되풀이한다. 이런 번역의 의도는 이어지는 구문의 번역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아이가 자기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자 남자는 작은 토끼를 한 마리 갖다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까지 한다. 이에 대한 아이의 반응을 원문은 체험화법으로 쓰고 있고, 김주연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Jürgen machte kleine Kuhlen in den Schutt. Lauter kleine Kaninchen. Weiße, graue, weißgraue.
위르겐은 폐허더미에 자그만 구멍들을 팠다. 작은 토끼라, 흰 토끼, 회색 토끼, 연회색 토끼.(2018, 80)
위르겐은 여전히 작은 구멍들을 만드는 행동을 하는데, 그의 생각은 작은 침대들에서 작은 토끼들로 바뀐다. 김주연은 “작은 토끼라”고 번역하여, 아이가 남자의 제안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번역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쥐들이 토끼들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는 아이가 쥐들이 시체를 먹는다고 한 선생님의 말씀을 밤에는 쥐들이 잔다는 남자의 말로 대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김주연의 번역에서 아이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는 이렇게 요약된다. 아홉 살 소년 위르겐은 쥐의 이미지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으나 남자의 도움으로 그 이미지를 버리고 작은 토끼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된다. 다만 김주연은 “그놈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쥐라고 특정하지 않는데, 이후의 번역자들은 위르겐의 혼자 생각에 쥐를 명시적으로 부가한다.
보르헤르트의 작품들을 번역 출판할 당시 기자이자 작가였던 채희문은 특별히 개인적인 관심으로 번역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독일어 전공자였으나 연구자가 아니었고 전문번역가도 아니었으나 보르헤르트의 희곡 <문 밖에서>를 포함해서 작가의 작품을 상당량 번역했다. 그 결과 <쉬쉬푸쉬>(1978), <문 밖에서>(1981; 1987), <가로등과 밤과 별>(1990) 등 세 권의 번역서를 출간했는데,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단편을 수정 없이 자신의 모든 번역서에 수록했다. 채희문의 번역은 출발어인 독일어와 원텍스트의 편집에서 꽤 멀어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듯 자유롭게 의미번역을 지향하는 특징이 있다. 이 점은 위르겐의 속생각을 번역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위르겐은 몽둥이로 폐허 더미에 조그만 구멍을 만들었다. 쥐새끼들의 잠자리도 겨우 이만하겠지. 그놈들은 모두 작은 침대에서 잘 테니까.(1987, 127)
여기에서 목적어에 도착한 것은 잠자리와 작은 침대뿐이다.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남자의 말은 아이에게 어떤 생각을 촉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생각의 내용이 되고, 구멍-쥐새끼-잠자리-침대의 연결은 과도할 정도로 고정된다. 채희문의 의역은 아래의 구절에서도 계속된다.
위르겐은 다시 폐허 더미에 자그마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아주 작은 토끼 새끼라구. 흰 놈이 좋을까, 회색이, 약간 회색이 좋을까.(1987, 127)
남자는 토끼를 줄 수 있다고 제안했는데, 위르겐은 벌써 토끼를 얻는 것을 전제로 하여 어떤 색을 선택할지 고르고 있다. 아이의 혼잣 생각에는 고민도 망설임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번역자가 원문을 해석하면서 그 해석한 내용을 목적어로 전달하고자 독일어 문장에서 멀어지는 자유를 취하는 경향은 한동안 여러 번역에서 나타났다. 김창활은 “여기서 자래야지. 쥐새끼들 잠자리는 요만씩만 해도 될 거야. 그놈들은 그렇게 작으니까. 그는 혼자서 생각했다”로 번역해서 침대의 크기를 나타내는 형용사 “작은”을 쥐새끼들의 크기로 전치시키는 심한 변형을 가한다. 김길웅은 “온통 작은 쥐구멍뿐이군. 모두 작은 쥐구멍이라구.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로 번역한다. 이 번역에서는 아이가 잔해더미에 오목하게 파는 구멍이 쥐구멍으로 해석되고, 잠을 잔다는 의미소인 침대가 누락된다. 박병덕의 번역은 원문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다. “순전히 작은 굴뿐이군. 온통 작은 굴들밖에 없어.” 번역자가 남자의 말과 아이의 생각 사이에 놓인 모호한 미싱 링크를 “그놈들”로, 더 확정적으로는 “쥐(새끼)” 혹은 “쥐구멍”으로 규정하는 것은 원문의 의미를 명확히 하여 독자의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확증편향적인 의미번역으로 오히려 텍스트의 무엇인가가 소실되지 않는가? 번역자가 문장의 앞뒤 맥락을 명확하게 제시할수록 가독성은 커지나,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의미의 복잡성은 사라지게 된다. 위르겐에게 쥐의 이미지는 그의 죽은 동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남자가 폭격으로 무너진 집터에 앉아 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을 때, 아이가 남자에게 던진 첫마디는 “나는 여기서 지켜야만 해요”이다. 작가 보르헤르트가 쓴 auffassen은 쥐를 지키고, 동생을 지킨다는 두 대립적 의미를 병합한다. 아이는 쥐를 지키고, 즉 감시하고 망을 보고, 이로써 동생을 지킨다, 즉 보호하고 돌본다. 시체를 파먹는 쥐의 이미지가 소년의 뇌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그만큼 강렬하게 동생을 보호하려는 아이의 소망 때문이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부과한 무거운 책무감과 죽은 동생을 향한 깊은 연민이 아이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잠을 자지 않는 동인인 것이다.
4) 박규호 역의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2020)
독일어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는 박규호의 <밤엔 쥐들도 잠을 잔다>는 그의 번역서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 볼프강 보르헤르트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개정증보판 보르헤르트 <전집>(2007년)을 저본으로 한다. 이전에도 <전집>의 편역과 완역을 목표로 했던 번역들이 있었는데, 박규호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단편들과 초기 시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데서 번역의 의의와 차별성을 찾는다. 그리고 번역서의 제목도 개정증보판에 비로소 수록된 작가의 유작 단편의 제목에서 따왔다. 부록으로 첨부한 역자 해설도 눈에 들어오는데, 박규호는 그간에 축적된 국내외 연구성과를 참조한 듯 작가와 작품에 대해 한결 정확하고 심화된 정보를 제공한다. 그가 번역한 <밤엔 쥐들도 잠을 잔다>는 작가 보르헤르트 특유의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문장의 맛을 살리고 어휘와 표현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작가의 문체도 충실히 살린다. 문장구성, 줄바꿈, 문단 나누기 등 편집의 세부적인 사항도 원문을 따르고 있다. 박규호는 체험화법 구절들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위르겐은 막대기로 폐허 더미에 작은 구멍들을 팠다. 그럼 이건 아주 작은 침대야. 아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두 다 작은 침대. (......) 위르겐은 폐허 더미에 작은 구덩이들을 팠다. 아주 작은 토끼. 흰 토끼, 회색 토끼, 옅은 회색 토끼.(2020, 304)
박규호는 원문에 없는 접속부사 “그럼”을 삽입하여 아이의 속생각을 남자의 말과 연결한다. 이 점은 아이가 작은 구멍을 파는 행동을 작은 침대를 떠올리는 생각과 연결했던 이전의 번역들과 차별된다. 남자가 뭐라고 말했는가? 그는 밤에는 쥐들도 잔다고 말했고 그러므로 너도 밤에는 안심하고 집에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아이의 생각에 떠오른 작은 침대들이 쥐들의 잠자리에 해당하는 만큼, 위르겐의 귀가와 그의 잠자리에 연결된다. 저 체험화법을 다시 보면, 위르겐은 “작은”이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침대에서 토끼로 생각의 대상이 바뀌지만, 형용사 ‘작은’은 어떤 다른 성질이나 속성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실 위르겐은 여기서만 작다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폭격에 매몰된 동생을 지킨다고 밝힐 때, 아이는 동생이 자기보다 훨씬 작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고 잔해더미에 작은 구덩이들을 파면서 작은 침대들을 생각하고, 남자가 작은 토끼를 약속하자 작은 흰 토끼를 생각한다. 아이의 생각은 ‘작은’ 동생 - ‘작은’ 침대 - ‘작은’ 토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동생과 토끼는 아이에게 보호가 필요한 여린 존재이며 애틋한 리비도적 대상이다. 물론 설치류인 쥐도 크기로만 따지자면 작다. 그러나 쥐가 시체를 먹고 산다고 믿는 소년에게 쥐를 어린 동생과 새끼 토끼와 비슷하게 연상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작음으로 이어지면서 생겨나는 환유의 고리에서 쥐는 빠진다. 그리고 이 작음의 환유를 따라가면 짐짓 어른을 흉내 내지만 실제로는 몹시 지치고 피곤한 아홉 살 ‘어린’ 아이일 뿐인 ‘작은’ 위르겐 자신이 있다. 이 단편의 서두에서 틀만 남은 창문이 “하품을 하고”, 폐허의 잔해더미는 “졸고” 그곳에 앉아 있는 위르겐은 “눈을 감고 있다”. 하품과 졸음은 아이의 상태를 가리킨다. 어두워지면 쥐들이 잠을 자니 너도 집으로 가라는 남자의 말은 위르겐이 다시 어리고 작은 아이가 되도록 허가한다. 이 맥락에서 박규호의 번역에 작음의 이미지가 강조되어 있는 게 주목을 끈다. 역자의 의식적인 결정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순전히 혹은 전부를 나타내는 “lauter” 조차도 “아주”로 옮겨서 “아주 작은 침대”, “아주 작은 토끼”로 번역하고 있다.
박규호의 번역이 이런저런 장점들이 있어서 그의 번역이 감행한 한 오역이 유감스럽다. 남자는 아이에게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멀어지는데, 그가 걷는 걸음에 따라서 손에 들려진 바구니가 앞뒤로 흔들린다. 그 모습이 독일어 원문에는 흥분을 나타내는 “aufgeregt”로 표현된다. 하품하는 창문, 졸고 있는 폐허처럼 사물의 의인화인데, 박규호는 바구니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리는 걸로 번역한다. 아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남자와 신경질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남자가 아이를 구하는 건 남자 자신에게도 어떤 전기가 될 수 있기에 흥분되는 일이다. 그는 지는 해를 향해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고 남자의 빠른 발걸음과 앞뒤로 휘두르는 팔동작에 바구니는 흥분을 전달하는 진자운동을 할 것이다. 그러니 바구니는 강두식, 김길웅, 박병덕이 번역했듯이 “흥분해서” 흔들린다.
3. 평가와 전망
보르헤르트의 단편을 옮긴 번역들은 이동승의 초역부터 박규호의 최근 번역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 이야기가 짧기도 하고, 대부분 현재시제의 대화체인데다 작가가 간명한 언어와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번역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압축적인 대화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그 안에 슬쩍슬쩍 비춰질 뿐인 아이의 내적 변화까지 전달하기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지금까지 번역들은 이 과제를 문자 번역 혹은 의미번역의 방법으로 해결해왔다. 김주연, 채희문 등의 번역은 작은 구멍과 작은 침대의 지시관계에 주목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여 위협적인 쥐의 이미지가 작고 흰 토끼 이미지로 대체되는 것을 확연히 드러낸다. 이동승과 박규호는 직역에 가까운 문자 번역을 하는데 이들의 번역은 환유적 결합으로 발생하는 의미에 보다 더 열려 있다. 아이의 행동 동기는 작은동생에서 연유하고 작은 구덩이, 작은 침대, 작은 토끼로 이어지는 연상작용은 작은 나 위르겐까지 연결될 수 있다. 보르헤르트의 <전집>이 이미 여러 차례 번역된 상황에서 향후 이 단편이 또 번역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텍스트를 구성하는 의미의 복잡성을 전달하면서 독자의 읽는 즐거움을 보살피는 번역 전략이 관건이 되겠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동승(1964): 밤에는 쥐들도 자는데. 휘문출판사.
김주연(1975):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민음사.
김주연(2018):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문학과지성사.
채희문(1978): 밤에는 쥐들도 잔단다. 문예출판사.
박규호(2020): 밤엔 쥐들도 잠을 잔다.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