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친절함에 대하여 (Von der Freundlichkeit der Welt)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1898-1956)의 시
작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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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927 |
장르 | 시 |
작품소개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21년에 처음 집필하고, 1927년에 출판된 시집 <가정기도서>에 수록된 3연으로 된 시로, 각 연은 4행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의 제목은 친절함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무관심과 타인들로부터 받는 거부감을 다룬다. 이때 ‘추위’는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저항할 수 없이 내맡겨진 적대적 세상을 나타내는 메타포다. 벌거벗고 얼은 상태로 태어난 아기는 추위를 경험하는데, 그것은 무관심, 내버려짐, 낯섦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김광규에 의해 <세상의 친절>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한마당).
초판 정보
Brecht, Bertolt(1927): Von der Freundlichkeit der Welt. In: Hauspostille. Mit Anleitungen, Gesangsnoten und einem Anhang. Berlin: Propyläen-Verlag, 47.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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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친절 | 살아남은 자의 슬픔 | 한마당문예 1 | 베르톨트 브레히트 | 金光圭 | 1985 | 한마당 | 24-25 | 편역 | 완역 | 1985년 초판발행, 1990년에 '브레히트 선집 1'로 재간 | |
2 | 친절함에 대하여 | 죽은 병사의 전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신현철 | 1991 | 시민 | 12-13 | 편역 | 완역 | ||
친절함에 대하여 |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신현철 | 1994 | 三文 | 27-27 | 편역 | 완역 | |||
이 세상의 친절 | 서푼짜리 오페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 World book 231 | 베르톨트 브레히트 | 백정승 | 2014 | 동서문화사 | 334-334 | 편역 | 완역 | ||
세상의 친절에 관하여 | 마리 A.의 기억 | Artichoke vintage, 아티초크 빈티지 시리즈 4 | 베르톨트 브레히트 | 공진호 | 2014 | 아티초크 | 43-44 | 편역 | 완역 | 영문번역을 주로 하는 번역자이나 저본에 독일어본과 영독 대역본을 명기함 | |
세상의 친절함에 관하여 | 바알 |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 베르톨트 브레히트 | 박찬일 | 2016 | 지식을만드는지식 | 40-43 | 완역 | 완역; 대역본 | <가정기도서> 번역 | |
세상의 친절함에 대해 | 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이옥용 | 2018 | F(에프), 푸른책들 | 18-19 | 편역 | 완역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가정 설교집>(1927)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국내에서 브레히트의 시 번역이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언뜻 보기에 늦은 감이 들지만, 실제로 유신정권 하에서 브레히트가 사회주의자 혹은 마르크스주의자, 나아가서는 공산주의자로 분류되어 금서로 취급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마르크스나 레닌, 루카치는 물론이고, 브레히트를 다루는 것도 여전히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시절이 있었던 것은 우리 학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비극이기도 한데, 이것은 서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짧은 기간에 많은 브레히트 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또한 해외에서 브레히트를 전공한 많은 독문학자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브레히트 연구도 본격화되었다. 브레히트는 독문학계에 머무르지 않고 노동문학이나 실천문학, 참여문학 등이 대세를 이루던 80년대 사회 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브레히트의 초기 시에 해당하는 <세상의 친절함에 관하여>는 일차세계대전 직후에 쓰인 것으로, 작가가 야전병원에서 위생병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 시에는 두 개의 버전이 있는데, 이 시가 1921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3연으로 이루어졌지만, 이후 시집 <가정기도서 (Taschenpostille)|가정기도서>(1926/1927/1956)[1] 1927년 판에 실릴 때는 하나의 연이 추가되어 총 4연으로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도 현재까지 두 버전이 모두 통용되고, 국내 번역본도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이 시가 종종 3연을 빼고 출판되는 이유는 3연의 2행 “너희가 가려고 할 때 wenn ihr gehen wollt”가 완곡어법으로 표현된 자살을 의미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신사실주의 Neue Sachlichkeit 계열의 시로 분류되는 이 시는 ‘세상의 경멸 Contemptus mundi’이란 모티프의 전통을 잇는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채, 간결하고 건조한 톤으로 전혀 친절하지 않은, 냉혹한 세상을 묘사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 역시 브레히트 특유의 부정적 반어 Ironie를 보여준다.
이 시는 지금까지 총 6번 번역되었다. 1985년에 국내 초역에 해당하는 김광규 번역이 나왔고, 1990년대 두 번 출판되었지만(시민출판사 1991, 삼문 1994), 역자는 신현철로 동일 인물이다. 2014년에 나온 백정승(동서문화사 2014)의 번역이 나올 때까지는 3연으로 된 원 텍스트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공진호(아티초크 2014), 박찬일(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 민음사 2016), 이옥용(f 2018)은 4연으로 된 원문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다.[2]
2. 개별 번역 비평
개별 번역을 다룰 때 번역본들에 대한 통시적 고찰 이외에 ‘시적 리듬’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기로 한다. 여기서 시적 리듬은 앙리 메쇼닉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좁은 의미의 운율과는 달리, 텍스트 내의 운동 혹은 움직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메쇼닉에 따르면 리듬은 프로소디 Prosodie,[3] 단어, 문장, 연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문장부호에서도 관찰되는 것으로 시의 형식뿐 아니라 텍스트 의미를 구성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리듬은 일종의 ‘배열’의 원칙으로 시 텍스트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텍스트에 적용되며, 운율보다 훨씬 자유롭고 유기적인 흐름으로 나타난다. 리듬의 원칙에 따르면 시의 의미와 형태는 이원적인 것이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에 해당된다.[4]
아울러 개별 비평을 시도할 때 브레히트가 가정기도서의 <개별 장(章)들의 사용을 위한 지침 Anleitung zum Gebrauch der einzelen Lektionen>에서 주문한 사항들이 역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고려되고 있는지도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시가 포함된 <가정기도서>의 2과(Zweite Lektion)의 ‘정신수련 Exerzitien’에 실린 시들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기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빠르지 않게 반복되는 리듬을 전제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1연과 2연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각각의 번역을 분석해 보기로 하는데, 1연과 2연의 원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Auf die Welt voller kaltem Wind Kamt ihr alle als ein nacktes Kind. Frierend lagt ihr ohne alle Hab Als ein Weib euch eine Windel gab.
Keiner schrie euch, ihr wart nicht begehrt Und man holte euch nicht im Gefährt. Hier auf Erden wart ihr unbekannt Als ein Mann euch einst nahm an der Hand.
시의 형식으로 본다면 각각 4행으로 3연 혹은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기본적으로 5개의 강세를 가진 강약격(ein fünfhebiger Trochäus) 운율 구조를 취하고, 원칙적으로 –t, -b와 같은 파열음을 각운으로 취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강하고 끊어지는 듯한 리듬을 이룬다.
1985년 김광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판한 이 시는 한마당출판사에서 나온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선집에 수록되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제목(독일어 원제 Ich, der Überlebende)의 이 시선집 1부에는 원텍스트에 해당하는 <가정기도서>에 실린 총 50편 중 13편이 실려있다.[5]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에 해당되는 시선집을 펴낸 독문학자 김광규는 스스로도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6]
앞서 밝힌 바대로 김광규는 1921년 판, 다시 말해 3연으로 된 판본을 사용한다.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너희들은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한 여자가 너희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줄 때 너희들은 가진 것 하나도 없이 떨면서 누워 있었다.
아무도 너희들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너희들을 바라지 않았으며, 너희들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남자가 언젠가 너희들의 손을 잡았을 때, 이 세상에서 너희들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밑줄 강조 필자)
김광규의 번역은 무엇보다 의미상으로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브레히트의 원문에서 간결하게 표현된 2연이 상당히 길어졌는데, 특히 ‘schrie nicht’가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로 옮겨지면서 상당히 긴 리듬을 구사한다. 또한 3-4행 “Frierend lagt ihr ohne alle Hab / Als ein Weib euch eine Windel gab.”의 경우 번역문에서 두 문장의 순서가 바뀐 것은 부문장을 주문장의 앞뒤, 어디에 두어도 무방한 독일어와는 달리 우리말 어순에서는 대부분 부문장을 앞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얼마간 뉘앙스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원텍스트에서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없이 떨면서 고독하게 누워있는 상태가 먼저 독자의 시선과 감정을 사로잡는다면, 번역문처럼 부문장을 앞에 배치할 경우, 한 여자의 도움이 먼저 나옴으로써 보호받지 못한 절망적 상황이 다소 감소된다.
그는 또한 ‘ihr’를 매번 너희‘들’로 옮겨 리듬감이 약간 상쇄되는 듯하고, 2연의 마지막 행에서는 “이 세상에서 너희들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로 대과거를 사용하여 뒤의 문장이 앞 문장보다 선행함을 보여주지만, 리듬상으로는 역시 다소 부자연스럽다.
신현철의 번역은 1991년에 <죽은 병사의 전설>이란 제목으로 시민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1994년에는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라는 시선집으로 삼문출판사에서 다시 나왔다. 신현철도 세 번째 연을 생략한 채 총 3연으로 옮겼는데, 국문학 전공자로 문학평론가이자 여러 언어의 번역가로 활동했던 이력을 감안한다면, 그가 김광규의 번역본을 참고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다만 그는 김광규의 번역보다 많은 어휘들을 삭제하여 더 간결하게 만든 인상을 준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이 세상에 너희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태어났다. 한 여인이 기저귀를 채울 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너희들은 떨면서 누워 있었다.
환성도 울리지 않았고, 아무도 너희를 원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았다. 언제인가 한 사람이 손을 내밀었을 때, 너희들은 이곳에서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신현철은 여기서 김광규의 번역에서 지나치게 길어진 2연의 1행 “아무도 너희들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너희들을 바라지 않았으며,”에서 반복적인 어휘들을 생략하고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러는 가운데 2행에 나오는 ‘im Gefährt’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런 탓에 그의 번역은 원텍스트의 의미를 최대한 상쇄시키지 않으려고 애쓴 김광규 번역이 보여주는 의미 중심의 산문성을 극복하고 얼마간의 시적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때 신현철도 김광규와 마찬가지로 1연과 2연의 종결운을 최대한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백정승의 번역은 <서푼짜리 오페라>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제목의 시선집을 한 권에 함께 수록한다. 이 시선집은 제1부: 가정기도서, 제2부: 물레방아의 발라드, 제3부: 스벤보르 시편, 제4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제5부: 부코브 비가로 이루어지고, 제1부 가정기도서의 총 14편 중 하나로 <이 세상의 친절>이 수록되었다. 백정승의 경우도 이 시는 총 3연으로 이루어진다.
차가운 바람 휘몰아치는 이 세상에 너희는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한 여자가 너희에게 기저귀를 채워줄 때 너희는 가진 것 하나없이 오들오들 떨면서 누워 있었다.
아무도 너희를 환대하지 않았고, 너희를 바라지 않았으며, 너희를 차에 태워 데려가지 않았다. 언젠가 한 남자가 너희의 손을 잡았을 때도 너희는 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밑줄 강조 필자)
백정승은 1행의 “차가운 바람 휘몰아치는 이 세상”, 4행의 “오들오들 떨면서”와 같이 강조를 나타내는 접두어나 부사를 추가로 사용하여 시적 화자의 감정이 보다 강화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원텍스트상에서 최대한 감정이 절제된 시적 자아의 게스투스와는 조금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2014년에 아티초크 빈티지에서 나온 <마리 A.의 기억: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에 실린 공진호의 번역에서 비로소 이 시의 4연이 모두 번역되었다. 뉴욕에 거주하며 번역과 창작을 하고 있다고 소개된 역자는 영어 번역을 주로 하는 번역가로, 영어판을 원문으로 삼아 번역한 듯이 보인다.[7]
너희는 이 풍진세상에 모두 벌거숭이로 왔다 아무것도 없이 추운 몸은 한 여인의 포대기에 싸였다.
아무도 너희를 부르지도 청하지도 탈 것을 보내 데려오지도 않았다 너희는 이 땅에 이방인이었으되 한 사람이 너희의 손을 잡아주었다.(밑줄 강조 필자)
공진호는 이 풍진세상, 벌거숭이, 포대기, 이방인 등 우리말 구사에서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원텍스트의 문장구조에 크게 사로잡히지 않은 채 목표텍스트가 보다 시적으로 읽히는 데 주력한 듯이 보인다. 무엇보다 명사를 선호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문장이 간결해지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감을 구사한다.
5) 박찬일 역의 <세상의 친절함에 관하여>(2016)
박찬일 번역본이 원문 대조판으로 구성된 점은 그만큼 원텍스트 자체에 비중을 둔다는 저자를 비롯한 출판사 측의 기획 의도를 보여준다.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박찬일 번역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시선집에 <가정기도서>에서만 총 20편을 골라 실었다는 점이다. 그는 원텍스트의 2부에 실린 <부활절 전날 밤 11시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Lied am schwarzen Samstag in der elften Stunde der Nacht vor Ostern>에서 시집 전체의 제목을 취해 왔다. 그는 <가정기도서> 전편을 다 번역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로는 가장 많은 편수를 번역한 셈이다. 그는 <세상의 친절함에 관하여>을 위해서는 1927년 판 4연으로 된 버전을 사용한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땅에 너희 아이들은 모두 벌거숭이로 왔네. 가진 것 하나 없이 추위에 떨면서 누워 있네. 그때 한 여자가 기저귀를 채워주었지.
누구도 너희에게 환호하지 않았네. 너희를 열망한 적이 없네. 너희를 차에 태워 간 사람도 없었네. 여기 지상에 너희를 아는 사람은 없었네. 그때 한 남자가 너희의 손을 잡아 주었지.(밑줄 강조 필자)
박찬일 역시 브레히트가 구사한 각운을 살려 이로써 시적 리듬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다시 말해 그는 ‘왔네’, ‘있네’, ‘없네’, ‘없었네’와 같이 종결어미로 ‘네’를 사용하거나, 두 연의 마지막 행을 모두 ‘주었지’라는 동일한 종결어미를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인 리듬감을 부여하고자 한다. 아울러 최대한 간결하게 옮김으로써 원문의 리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다.
박찬일의 번역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3-4행의 “Frierend lagt ihr ohne alle Hab / Als ein Weib euch eine Windel gab.”을 위해 “가진 것 하나 없이 추위에 떨면서 누워 있네. 그때 한 여자가 기저귀를 채워주었지.”라고 4행을 부문장으로 처리하는 대신 두 개의 독립적인 문장을 만듦으로써 원텍스트의 어순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이로써 원텍스트의 효과, 다시 말해, 보호받지 못한 채 누워있는 절망적인 상황이 다른 번역에서보다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 2연의 경우도 마찬가지 방식을 취할 뿐 아니라 두 연을 모두 ‘그때’라는 동일한 어휘로 시작하여 균형을 맞춘다.
독문학자 이옥용이 옮긴 이 번역서도 1부 <가정설교집>(9편), 2부 <스벤보르 시편>(8편), 3부 <어린이 십자군>(11편), 4부 <부코브 비가>(4편), 5부 <묘비는 필요없다네>(12편)로 구성되어 브레히트 전체 시 중 44편을 번역했다.
찬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너희는 모두 발가벗은 아이로 왔다. 한 여자가 너희에게 기저귀 채워 줄 때 너희는 가진 것 하나 없이 꽁꽁 언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 누구도 너희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다. 너희는 원치 않았던 아이들. 사람들은 너희를 차에 태워 데려가지 않았다. 언젠가 한 남자가 너희 손을 잡았을 때 너희는 이 세상에서 이름이라곤 없는 존재들이었다.(밑줄 강조 필자)
이옥용은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2연의 첫 행에서 두 번째 문장을 “너희는 원치 않았던 아이들”이란 명사구로 옮긴 것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하나의 행 속에 두 문장이 놓임으로써 발생하는 연결 상의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한 역자 나름의 해결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꽁꽁’, ‘큰소리로’, ‘이름이라곤 없는’ 등의 어휘가 추가로 삽입됨으로써 원텍스트보다 긴 리듬을 보여준다.
3. 평가와 전망
국내의 브레히트 수용과 번역은 1956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근 이삼십 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문학은 짧은 기간 안에 독일의 어느 작가보다 활발히 수용되었으나, 시 번역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늘지는 않았다. 이는 브레히트가 국내에서는 극작가로 더 많이 알려진 탓일 수도 있겠고, 시 번역이 원천적으로 가지는 난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의 경우 의미(론)적 전달조차 쉽지 않은 상태에서 형식적 요소들, 특히 운율이나 리듬 등을 다른 언어로 구사해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형식적 측면을 전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번역시 자체의 리듬을 원텍스트의 리듬과 최대한 맞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나아가 운율에서 가장 기본적인 각운은 의미의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우리말로 살려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김광규(1985): 세상의 친절. 한마당(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신현철(1994): 친절함에 대하여. 도서출판 삼문(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백정승(2014): 이 세상의 친절. 동서문화사(서푼짜리 오페라/살아남은 자의 슬픔).
공진호(2014): 세상의 친절에 관하여. 아티초크 빈티지(브레히트 시선. 마리 A.의 기억).
박찬일(2016): 세상의 친절함에 관하여. 민음사(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이옥용(2018): 세상의 친절함에 대해. f(나, 살아남았지. 브레히트 시선집).
- 각주
- ↑ 이 시집은 총 3번 출판되었다. 처음에는 <주머니 기도서 Taschenpostillen>란 제목으로 1926년에 25부를 구스타프 키펜호이어 출판사 Gustav Kiepenheuer Verlag에서 자비 출판되었다. 1927년에는 프로필래엔 Propyläen으로 출판사를 옮겼고, 여러 차례 수록시를 교체한 끝에 1956년에 최종적으로 출판했다.
- ↑ 문제가 되는 3연의 원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Die Welt, die ist euch gar nichts schuld:
Keiner hält euch, wenn ihr gehen wollt.
Vielen, Kinder, wart ihr vielleicht gleich,
Viele aber weinten über euch. - ↑ 언어적, 발성적 현상으로서의 프로소디를 이루는 요소로 강세 Akzent, 억양 Intonation, 휴지부 Pause 등을 꼽을 수 있다.
- ↑ Ahn, Mi-Hyun(2021): Das Rhythmische in der Übersetzung, 독어교육 82, 91-110, 92.
- ↑ 김광규의 이 시선집은 1부 <가정기도서>에서 나온 13편 외에 2부 <물레방아의 발라드>에서 9편, 3부 <스벤보르 시편>에서 11편, 4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5편, 제5부 <부코브 비가>에서 9편을 발췌하여 총 47편을 수록한다.
- ↑ 김광규(1941~)가 낸 시집으로는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반달곰에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크낙산의 마음> 등이 있다.
- ↑ 공진호가 번역한 책으로는 <에드거 앨런 포우 시선: 꿈속의 꿈>, 로버트 W. 체임버스의 <노란 옷 왕 단편선>, F.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등이 있다. <마리 A.의 기억: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에 관해서는 “이 시집의 절반 정도는 지크프리트 운젤트의 <<Bertolt Brecht 100 Gedichte>>(Suhrkamp, 1998)에서 추리고, 나머지는 컨티뉴엄 출판사의 독문학 총서 <Bertolt Brecht: poetry and prose>(2006), 에릭 벤틀리의 <Manual of piety>(Grove Press, 1966), H.R. 헤이즈의 <Selected poems: Bertolt Brecht>(Harcourt, 1947) 영독 대역본에서 뽑았고, 독일어로 된 원저작을 영어로 번역하고, 이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했다고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