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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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호프만(Ernst Hoffmann, 1776-1822)의 소설


작품소개

작품 소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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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E. T. A.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는 1971년에 처음 국역되었다. 이 소설은 박문사에서 간행한 「세계단편문학대계」(全 10권) 중 3권 「낭만주의문학」에 「모래사람」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단편의 하나로 소개되었다. 단편 번역은 독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이정태(李鼎泰)가 맡았다. 역자가 따로 쓴 후기나 해설은 없으나, 구인환 소설가가 권두에 유럽의 낭만주의 문학 전반을 안내하면서 호프만과 「모래사람」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여기서 이 소설은 “모습이 없는 목소리를” 재현하려 하는 예술가의 고뇌로 인해 “허상과 실상의 사이를 방황”(구인환, 43)하는 호프만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소개된다. 이 번역은 주인공의 이름 나타나엘을 ‘나타나에르’로 표기하고 있어, 일본어 중역이 아닐까 의심된다. (하지만 편찬자의 권두 해설에서는 그 이름이 또 나타나엘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모래사람’이라는 역어를 일관되게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 처음으로 ‘Sandmann’이 언급될 때에는 “모래사내(沙男)”(177)라고 번역했고, 몇 페이지 지나면 다시 “모래사람”(180)으로 지칭한다. 이런 비일관성은 ‘모래 사내’라는 역어에 대한 역자의 고민 부족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타나에르로부터 로타르에게」에서 편지의 말투를 ‘다’체로 시작하여, 중간에 ‘네’로 바꾸는데, 역자가 어떤 문체적 효과를 노리고 번역한 것인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관성이 없다.

약 10년 후 「모래 사나이」의 두 번째 번역이 출간된다. 1981년 독문학자 김정회(前 경기대)는 금성사 세계문학대전집(全 120권) 11권 「모래 사나이 ·브람빌라 왕녀」에서 호프만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모래 사나이」를 번역해 출간한다. 이 번역은 앞의 번역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유일한 번역이었기 때문에, 8·90년대 「모래 사나이」 수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번역 또한 여러 의문점을 남기는데, 우선 나타나엘을 ‘나타니엘’로, 로타르Rothar를 ‘로타리오’로 옮겼다. 이 역시 중역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데, 그럼에도 역자는 「모래 사나이」를 한 편의 잘 짜여진 매력적인 작품으로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자는 독일어의 문장 구조나 표현에 얽매이기 보다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읽는 맛을 살리는 이른바 의역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원문과 그 의미가 아주 엇나가 있지는 않다. 예컨대 나타나엘이 친구 로타르에게 자신이 최근 겪은 끔찍한 일을 털어놓으면서 “이 사건의 의미를 밝히는 데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 이른바 인연(因緣)을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것 같군.”(6)이라고 번역한 부분을 보자. 여기서 ‘인연’은 ‘Beziehung’을 옮긴 말로, 똑같은 단어를 ‘연관성’이라고 옮긴 이후의 김현성역과 비교해 볼 때 훨씬 구체적이고 가깝게 들린다. 또한 ‘인연’을 수식하는 말인 “내 인생에 깊은 상처를 입힌tief in mein Leben eingreifende”도 “내 삶에 깊이 관련된”(14)이라고 옮긴 김현성역보다 훨씬 생생하게 그 의미가 다가온다.

역자는 책 맨 뒤에 「호프만, 그 인간과 작품」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붙여 놓았는데, 이 글은 호프만이 얼마나 개성 넘치는 익살꾼에 “유별난 괴짜”(450)인지를 극적인 스타일로 보여주는 캐리커처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이후에 정착된 작품해설 스타일과도 크게 차이를 보인다. 그는 호프만을 “다재다능한 ‘격정의 방랑가’”(447), “스스로 자처한 ‘격정의 방랑가’”로 바라보고 있으며, 호프만이 충동적이고 정지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임을 강조한다(448). 이런 호프만의 이해에 걸맞게 역자는 번역에서 원문의 격정적인 어조를 – 충실함 이상으로- 살리고 있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부분을 보자: “뭔가 무서운 것이 내 인생 가운데 파고들어와 있는 걸세! ... 그럼 이제부터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보겠네. 아무래도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해도 마치 미치광이처럼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릴 녀석이 내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다네 Nun soll ich Dir sagen, was mir widerfuhr. Ich muß es, das sehe ich ein, aber nur es denkend, lacht es wie toll aus mir heraus.”(5) (vgl. 김현성역: “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야겠지. 그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 해도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오지 뭐야.”(13-4) 김정회는 김현성처럼 수동으로 번역하거나, 김영옥처럼 ‘그것’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녀석’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자기 안의 타자를 당시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수동의 의미로 번역할 때마다 훨씬 더 강렬하게 분열의 느낌을 전달한다. 또한 모래 사나이의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를 묘사할 때도 다른 판본들보다 더 격정적이고 어감이 센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나타나엘의 공포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또 다른 특기할 점은 줄표, 혹은 사고선(Gedankenstrich)를 쓰는 데 거침이 없다는 점이다. 호프만의 원작도 줄표를 대단히 많이, 즐겨 사용하는데, 이 번역은 이것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이런 사고선이 – 그것도 길이가 지금보다도 더 긴 - 당시 한국어에서 많이 관용되었었는지는 전문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역자가 상당히 의식적으로 줄표를 사용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줄표의 사용이 자아내는 효과는 이후에 줄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김현성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이런 사고선을 씀으로써 역자는 나타나엘의 아주 논리적이지만은 않은, 사고와 감정의 비약을 이미지적으로도 보여준다. 이는 역자가 해설에서 호프만의 문체를 두고 “꺾어 일그러진 소용돌이처럼, 마치 말을 찾아 허덕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456)라고 지적한 바와 상통한다.

또한 의도적으로 어조의 변화를 준 특징도 눈여겨볼만 하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역자는 서간체(~네, ~지)로 번역하고 있으나, 중간에 나타나엘이 어릴 적의 기이하고 무서운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부터 정확히 ‘~다’ 어미를 선택한다. 나타나엘이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로타르라는 특정한 수신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 속으로 거의 독백하는 사람처럼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중간에 수신자에게 다시 말을 거는 “상상해 보게나”(김영옥역, 278)와 같은 문장은 과감히 빼기도 한다. 또한 편지 수신인을 호명하면서 이야기하는 말투는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을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면, ~다체는 독자의 눈앞에 지금 그 사건이 일어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생생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불안과 기대로 나의 가슴은 와들와들 떨렸다. —방문 바로 앞에서 뚜렷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손잡이가 심하게 울리며 방문이 요란스레 열린다!—나는 불끈 용기를 내어 조심조심 밖을 엿보았다.” 여기에서 모래 사나이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그를 기다리던 나타나엘의 눈앞에 드디어 방문이 열리는 대목은 현재 시제로 번역되어 그 생생함을 더 잘 전달한다. 또 소설의 절정에서 나타나엘이 클라라와 탑 위에서 코펠리우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다시 광기가 도지는 장면에서도 이런 시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코폴라의 망원경을 찾아내 그것으로 옆쪽을 들여다보았다——클라라가 렌즈 바로 앞에 보인다!——그 순간 온몸의 혈관이 찡 하고 경련을 일으켜—”(44). 역자는 줄표 안의 문장 시제를 임의로 현재로 바꿔서 번역함으로써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밖에도 이후의 역자들이 해석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표현들의 일관된 번역을 위해 노력했다면, 김정회는 ‘불의 원’이나 ‘섬뜩한unheimlich’를 일관되게 번역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당시에는 이 표현의 중요성이 의식되지 못했던 듯하다.

김정회 역 이후 오랜만에 다시 번역된 「모래 사나이」는 「모래 사내」라는 이름으로 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가 편역한 「기적의 진실과 환상 속의 현실: 독일 작가들의 창작동화」(1997) 2권에 수록되었다. 독일 동화와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흐름 속에서 새롭게 소개된 이 작품 번역은 독문학자 김영옥이 맡았다. 그는 작품에 붙인 세쪽 가량의 해설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현실 인식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눈을 빼앗긴 낭만주의자의 자기파멸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소개했다. 이 판본은 원문의 문장 구조를 최대한 모방하고 의미가 대체로 정확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한국어로 옮기는 데 성공한 번역으로 의의가 있다. 예컨대 앞의 김정회역에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마구 흐트러진 기분”(5)이라 옮겨진 “[die] zerrissene[] Stimmung des Geistes”(11)을 “갈가리 찢긴 정신상태”(273)로 옮기고 있다. 이 번역본에서도 아주 결정적인 장면 묘사를 긴박하게 하고 싶으면, ‘~다’체로 전환한다. “내 심장은 두려움과 기대에 가득 차서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지. 앞에, 문 바로 앞에서의 날카로운 발걸음 소리 —문고리를 거칠게 잡는 소리. 문이 덜그럭거리며 확 열렸다!”(278)

김영옥의 「모래 사내」 출간 3년 만인 2000년에 「모래 사나이」는 또 다시 두 번역자에 의해 번역된다. 독문학자 김선형의 번역으로 「호프만의 환상문학」이라는 호프만 선집에 수록된 「모래 요정」과, 역시 독문학자 라영균의 번역으로 「모래남자」라는 제목으로 단독 출간된 책이 있다. 김선형은 서양 동화나 전설에서 전승되는 ‘Sandmann’의 이미지를 존중하여 ‘모래 요정’이라 옮겼는데, 한국에서 요정이 주로 선하고 아리따운 이미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전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적절한 역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곧 이어 2001년에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모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호프만의 단편선집이 출간한다. 이 판본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2012년도에 찍은 판이 8쇄)로서, 21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판본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번역문이 전반적으로 원문보다 어조가 밋밋하여 문학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소설의 맨 첫 문장, “너무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아 모두들 걱정하고 있겠지”(13)는 김영옥역, “모두들 분명 안절부절 못하겠지.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 정말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않았으니 말이야.”(273)에 비해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쓰는 그 초조하고 답답하며 미칠 것 같은 심정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 또한 스플란차니와 코폴라가 한바탕 혈투를 벌일 때 그들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와 욕설은 다소 정돈된 어조로 옮겨져 있다.


쿵쿵거리는 소리, 덜컹거리는 소리, 밀치는 소리, 문에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저주와 욕설이 들렸다.

“이거 놔. 내놔. 비열한 놈. 흉악한 놈. 그래서 거기다 신명을 다 바쳤어? 하하하하! 우린 그런 내기는 안 했어. 나는, 나는 눈을 만들었어. 기계장치도. 네 기계 장치는 멍청한 악마야. 빌어먹을 개 같은 멍청한 시계공 주제에. 꺼져, 이 악마. 잠깐. 꼭두각시나 조종하는 놈. 악마 같은 짐승, 거리 서. 꺼져 내놔! (62-3)

– Ein Stampfen – ein Klirren – ein Stoßen – Schlagen gegen die Tür, dazwischen Flüche und Verwünschungen. Laß los – laß los – Infamer – Verruchter! – Darum Leib und Leben daran gesetzt? – ha ha ha ha! – so haben wir nicht gewettet – ich, ich hab die Augen gemacht – ich das Räderwerk – dummer Teufel mit deinem Räderwerk – verfluchter Hund von einfältigem Uhrmacher – fort mit dir – Satan – halt – Peipendreher – teuflische Bestie! – halt – fort – laß los! –”(44)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보자.


발 구르는 소리 – 쨍그랑 소리 – 밀치는 소리 – 문에 부딪치는 소리, 그 사이로 욕설과 저주가 들렸다. 놓으라고 – 놓으라고 – 비열한 놈아 – 흉악한 놈아! - 거기 몸과 인생을 다 바쳤다고? - 하하하하! - 약속이 틀리잖아 – 내가, 내가 눈알을 만들었어 – 기계장치는 내가 만들었지 – 멍청한 놈아, 그것도 기계장치냐 – 빌어먹을 개 같은 머저리 기계공아 – 꺼지라고 – 사탄아- 그만- 돌팔이 인형공 - 악마 같은 짐승아! - 그만 – 꺼져 – 놓으라고!-(황종민역, 164)


쿵쾅쿵쾅 바닥을 발로 구르기도 하고—서로 맞부딪치기도 하고—그 사이에 간간이 욕지거리와 저주하는 소리가 섞여서 들렸다. 「이것 놔……네 놈이 먼저 놔……비열한 자식……악당놈! 이건 내 목숨이 걸린 거야……하, 하,하, 하!……전혀 얘기가 틀리잖아……눈알은 눈알은 내가 만든 거야……태엽 장치를 만든 사람은 나라구. 네놈이 네놈이 만든 그 개떡 같은 태엽 장치가 뭐야……싸구려 시계방의 미친개 같은 놈……빨리 나가……악마……그만둬……꺼져버려……놓지 못해!」(김정회역, 40)


원문에 난삽하게 들어 있던 줄표는 번역과정에서 모조리 제거되었는데, 이것이 역자의 선택인지, 아니면 당시 출판사의 편집 원칙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 한국어 텍스트에서 줄표의 삽입을 금기시했던 것인지는 좀더 살펴봐야 하겠으나, 줄표의 삭제로 원문의 문체가 지닌 역동성과 난삽함이 상당 부분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욕설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퍼붓는 저주라는 것이 얼른 들어오지 않는다.

김현성의 번역은 장점도 있는데, 이전의 판본들보다 더 자세한 각주를 제공하여 원문의 이해를 돕고, 역시 상세한 해설을 달아 작품을 소개한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을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프로이트의 ‘das Unheimliche’를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특정한 관점의 해설에 국한되지 않고, 이 작품이 다루는 여러 주제를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기에 오랫동안 적합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모래 사나이」(2017)다. 번역은 최근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황종민이 맡았고, 그간의 연구 성과가 반영된 상당히 전문적인 깊이가 있는 해설 「에테아 호프만의 생애와 소설」도 실려 있다. 이 해설은 작가의 생애를 유년시절부터 법원 관리 시절, 밤베르크에서 악단장으로 고용되어 있던 시기, 창작 시기 등으로 나누어서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하고, 「모래 사나이」와 함께 번역되어 실린 작품들을 모두 꼼꼼하게 해설한다. 「모래 사나이」의 경우 네 문단에 걸쳐서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키틀러의 해석도 소개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코펠리우스를 앙시엠 레짐의 상징이라고도 해석한 부분이다. 또한 이 판본은 각주가 가장 많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은 그 성격이 학술적이다. 이미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높아진 기대수준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황종민의 번역은 지금까지 여러 번역본이 반복적으로 범한 번역 실수가 거의 없고,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대목을 거의 유일하게(권혁준역과 함께) 제대로 옮기고 있다. 나타나엘은 아버지와 코펠리우스의 수상한 실험을 몰래 훔쳐보다가 그만 걸리고 만다. 이때 코펠리우스는 경악스럽게도 나타나엘의 팔다리를 빼서 이리저리 끼워맞춰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s steht doch überall nicht recht! ’s gut so wie es war! – Der Alte hat’s verstanden!“(18)

「어디 할 것 없이 온통 고장투성이군 ! 좋아, 이제 본래대로 됐어! ... 이러한 기술도 다 여러 해 동안 익힌 솜씨거든!」(김정회역, 12)

“어디다 끼워 봐도 좋지 않군! 이전 상태로 있는 게 좋아! — 꼰대가 뭔가를 이해하긴 했구만”(김영옥역, 231)

“온통 제대로 맞질 않아. 원래 있던 대로가 더 낫군! 늙은이 말이 맞아!”(김현성역, 23)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원래대로가 좋겠어! — 조물주가 제대로 만들었군!”(황종민역, 132)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Der Alte”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해석의 관건이다. 이것은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나님께 파우스트의 유혹을 허락 받은 직후에 하나님을 부른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Der Alte”는 신이다. 이것을 이해한 번역은 여기서는 황종민역 뿐이다. 김정회는 아예 의역으로 문제를 가려버렸으며, 김영옥역의 “꼰대”는 메피소토펠레스가 했을 법한 말이나, 이를 설명하는 주석이 없어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며, 김현성도 늙은이라고 그냥 직역하는 데 그쳤다. 또한 마지막 구절의 이해에 따라 앞의 구절의 해석도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김정회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 코펠리우스라는 이름의 악마는 나타나엘이 마치 관절인형이라도 되는 듯이 그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뺐다가 끼워 본다. 이것은 인간도 조물주가 만든 인형, 기계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나타나엘의 팔다리의 구조가 원래가 나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돌려놓으면서 “노친네가 잘 하긴 했네”라고 마지못해 인정한다.

창비 세계문학전집 시리즈가 그렇듯이 번역의 문체는 정성스럽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때때로 이런 언어적 조탁이 노파의 거친 말투에도 적용되어 노파가 “꼬부랑한”이나 “구부러진”과 같은 말을 제치고 “휘움한”이란 문어체를 쓴다거나 할 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 밖에도 황종민의 번역은 기존 번역본들과 달리 현대적인 어조를 지향한다. 나타나엘이 로타르에게 편지를 쓸 때도, 기존의 ‘~네’체가 아니라 확연한 반말체인 ‘~어’체를 쓰고, ‘자네’ 대신 ‘너희’라고 칭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반말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연인간의 편지에서 여성의 어투로 간주되는 ‘~요’체를 버리고 ‘~어’체를 택했다. 그러다보니 세 사람의 관계가 보다 평등한 느낌을 주며, 클라라가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상냥하고 혹은 “유순한”(이정태역, 176) 아가씨가 아니라, 나타나엘이 느끼듯 쌀쌀맞고 냉정한 사람으로 나타나 보이는 효과를 준다. 예컨대 클라라가 나타나엘에게 “나타나엘 —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나타나엘! 얼토당토않고—어처구니없고—제 정신이 아닌 그 동화 따위는 불속에 던져버려 »Nathanael – mein herzlieber Nathanael! – wirf das tolle – unsinnige – wahnsinnige Märchen ins Feuer.”(황종민역, 150)는 정말로 독설을 날리는 그 어조가 잘 살아 있다.

또한 이 번역에서는 코폴라의 어색한 독일어를 어떻게 우리 말로 살릴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Ei, nix Wetterglas, nix Wetterglas! – hab auch sköne Oke – sköne Oke!« 이미 김영옥이 “앤경”이라는 역어를 써서 코폴라의 말투를 조금이라도 변별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면, 황종민은 더 과감하게 “알흠다운 눈깔”(153)이라고 번역한다. 이 표현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나타나엘이 죽을 때도 똑같이 반복되므로 악마에 씌인, 혹은 악마적 광기에 지배당한 나타나엘을 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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