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와 죽을 때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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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1898-1970)의 소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작가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초판 발행1954
장르소설


작품소개

1954년에 발표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장편소설이다. 패색이 짙어진 1944년에 독일군인 에른스트 그레버는 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동부전선에서 참전한다. 그는 파괴된 러시아의 한 마을에서 게릴라들을 총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직후에 3주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고향 도시는 폭격을 받아 많은 집이 파괴되고 부모님 집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채 여기저기 찾아다니지만, 관청도 그를 도와주지 못한다. 부모님의 가정의를 찾아간 그는 의사의 딸 엘리자베스를 만난다. 가정의는 반체제 발언 때문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혀 있고 옛 동창인 엘리자베스는 공장에서 군복 바느질을 하고 있다. 그레버와 엘리자베스는 가까워지면서 사랑하게 된다. 전방 군인의 부인이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아는 그레버는 엘리자베스와 결혼한다. 그레버는 옛 은사 폴만을 찾아가 자신이 거부하는 반인륜적이고 불의한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처지와 내적 갈등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폴만은 반체제적 태도 때문에 학교에서 해고되고 폐가에 살면서 유대인 야콥을 숨겨주고 있는데, 그레버는 그런 두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휴가가 끝날 무렵 그레버는 야콥을 통해 폴만이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또한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엘리자베스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휴가를 마친 그레버가 떠나기 전날 밤 두 사람은 숙박을 할 수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날을 보낸다. 그레버는 기차를 타고 그사이 훨씬 더 멀리 이동한 전선에 돌아간다. 많은 전우가 죽고 다친 전선에서 그레버는 게릴라라는 죄목으로 잡혀 온 네 명의 민간인을 지키는 일을 맡는다. 그레버는 포로들을 몰래 풀어줄까 생각하기도 하고, 포로 중 한 명은 그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제안도 한다. 러시아의 적군이 마을을 습격하고 그레버의 군대가 서쪽으로 후퇴하게 되자 나치 신봉자인 슈타인브레너는 포로들을 모두 총살하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그레버는 슈타인브레너를 쏘고 포로들을 풀어주려 한다. 포로들이 머뭇거리자 그레버는 총을 버리고 자신의 군대에 합류하려고 한다. 그러나 감방을 떠난 포로 중 한 명이 총을 주워 그레버를 쏜다. 그레버의 시각에서 전쟁의 비극을 그린 이 소설은 레마르크의 평화주의적이고 반파시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에 속한다. 국내에서는 1972년에 장상용•조철제에 의해 처음 완역되었다(삼진사).


초판 정보

Remarque, Erich Maria(1954):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Berlin: Kiepenheuer & Witsch.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사랑의 季節과 주검의 季節 사랑의 季節과 주검의 季節 레마르크 鄭鳳和 1955 正音社 4-223 완역 완역
2 사랑할때와 죽을때 사랑할때와 죽을때 E.M. 레마르크 鄭鳳和 1959 正音社 4-223 완역 완역 소장 도서관 훼손도서: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중역 추정)
3 사랑할때와 죽을때 사랑할때와 죽을때 E.M. 레마르크 高秉玄 1968 民潮社 3-470 완역 완역 소장도서관 훼손도서
4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루마니아 日記, 사랑할때와 죽을때 世界戰爭文學大全集 2 레마르크 趙哲濟 1972 三珍社 87-381 편역 완역
5 사랑할때와 죽을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현대세계문학전집 7 E.M. 레마르크 송영택 1972 世宗出版公社 3-470 완역 완역
6 사랑할때와 죽을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레마르크 徐京姬 1972 旺文社 11-350 완역 완역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중역 추정)
7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레마르크全集 레마르크全集 3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宋永擇 1974 汎潮社 17-380 편역 완역 초판 제3권
8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때 (上) 三中堂文庫 295 레마르크 宋永擇 1976 三中堂 5-274 편역 완역 상권
9 사랑할때와 죽을때 사랑할때와 죽을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宋永擇 1976 主婦生活社 9-279 완역 완역
10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때 (下) 三中堂文庫 296 레마르크 宋永擇 1976 三中堂 5-240 편역 완역 하권
11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宋永擇 1980 學一出版社 3-470 완역 완역
12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마당문고 75 레마르크 조철제 1983 마당 5-420 완역 완역
13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M. 레마르크 權應浩 1983 學一出版社 11-355 완역 완역
14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레마르크全集 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宋永擇 1984 汎潮社 17-380 완역 완역 5판 제7권
15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상 글방문고 41 E. 레마르크 송영택 1985 글방문고 5-257 완역 완역
16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宋永擇 1986 汎潮社 9-509 완역 완역
17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하 글방문고 42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송영택 1986 글방문고 265-483 완역 완역
18 사랑할 때와 죽을 때(上) 사랑할 때와 죽을 때(上) Short Book 59 레마르크 宋永擇 1986 범조사 11-252 완역 완역
19 사랑할 때와 죽을 때(下) 사랑할 때와 죽을 때(下) Short Book 60 레마르크 宋永擇 1986 범조사 5-261 완역 완역
20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M. 레마르크 權應浩 1988 學一出版社 11-355 완역 완역 3판
21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M. 레마르크 김주현 1992 고려출판문화공사 11-431 완역 완역
22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Hongshin elite book's 44 E.M. 레마르크 정성국 1993 홍신문화사 11-365 완역 완역
23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을지세계문학선 18 레마르크 송영택 1994 을지출판사 5-362 완역 완역 2판
24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2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안미현 1999 생각의 나무 7-300 편역 완역 2권
25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1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안미현 1999 생각의 나무 35-327 편역 완역 1권
26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장희창 2010 민음사 7-535 완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개선문>(채정근, 정음사 1950), <서부전선 이상없다>(구기성, 을유문화사 1962), 개선문(강두식, 정음사 1964), <그늘진 낙원>(박상배, 한얼문고 1972), <검은 오벨리스크>(강두식, 범조사 1974), <리스본의 밤>(홍경호, 범조사 1974), <귀로>(이갑규, 범조사 1974), <생명의 불꽃>(김재민, 범조사 1974),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홍경호, 범조사 1974),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다>(김훈, 책섬 1999), <우리가 약속한 땅>(이승위, 서정출판사 1972) 등의 작품이 일찍부터 국내에 번역되면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74년에는 범조사의 <레마르크 전집 1-6권>이 발간됨으로써 그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국내에 알려졌고,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대표작인 <개선문>과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비해 인지도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나 국내에서 대단히 사랑받는 레마르크의 대표작 중 하나에 속한다. 레마르크 문학의 전형적인 주제인 전쟁과 사랑의 결합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전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원인이었던 것은 자명하다.

1955년 정봉화가 <사랑의 계절과 주검의 계절>이란 제목으로 정음사에서 펴낸 것이 이 소설의 국내 초역으로 기록된다. 이 역서는 같은 역자에 의해 1959년 같은 출판사에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역자인 정봉화는 불핀치의 <영원한 젊은 신들: 희랍 신화의 세계>(국민문고사 1969),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정음사 1971),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정음사 1974) 등, 주로 미국 작품들을 옮긴 번역가로 이 작품도 영어판에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영어본 제목인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에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로 옮긴 것이 계속해서 사용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도 통용된다.

1968년 고병현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민조사에서 나왔다. 여기서도 원제목이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번역도 영어본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작품은 이미 1950년대 말에 국내에 소개되긴 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독문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1971년 송영택에 의해 번역된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현대세계문학전집 7권(세종출판공사)에 수록되었고, 1972년 서영희에 의해 왕문사에서 나왔다. 1972년 조철제 역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전쟁문학대전집 2권(삼진사)에 수록되었고, 1974년에는 송영택 역으로 <레마르크 전집 3>(범조사)에 이갑규 번역의 <귀로>와 함께 수록되었고, 이 번역은 1976년 삼중당에서도 다시 나왔다.

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송영택, 조철제, 서영희의 번역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다. 그중에서 독문학자 송영택과 조철제의 번역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상당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용한 저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이 소설은 키펜호이어 앤 비취(Kiepenheuer & Witsch) 출판사의 자체적 검열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러 부분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 1954년 출판되었다. 말하자면, 전쟁의 폐허에서 복구에 급급했던 시기에 독일 사회나 독일 민족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요소들을 되도록 삭제했던 것이다.[1]

1970년대에는 레마르크의 전집이 나왔다. 범조사 <레마르크 전집 1-6>(1974, 1980 10권, 1984)과, 문장사 <레마르크 전집>(1978), 범우사 <레마르크 전집>(1982) 등이 그것이다. 이는 당시 레마르크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주고, 나아가 그동안 번역되었던 작품들에 더하여 새로운 작품들도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이 작가가 당시 우리 사회에서 지닌 비중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1974년 범조사에서 나온 전집에는 박환덕, 홍경호, 송영택, 이갑규, 김재민, 박상대, 강두식 등 당시 독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에도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단행본으로 간간이 출간되었지만, 다른 역자들의 번역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주로 송영택의 번역이 살아남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전쟁문학, 반전소설이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던 이 소설은 점차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하는 1980년대에는 더 이상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지 못한 채 침체하여갔다. 이는 영화화와 더불어 많은 인기를 얻었던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소설 장르들의 전반적인 후퇴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전쟁문학, 반전문학은 이제는 베트남 전쟁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와 동시에 레마르크가 시종 의도했던 전장에서의 짧고 이루지 못한 사랑이란 주제처럼, 그의 작품에 내재된 대중성이나 통속성이 더 부각되면서 이제는 반전소설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시대소설 혹은 대중소설로 읽히는 경향이 강해졌다.


2. 개별 번역 비평

1959년에 영어본에서 옮겨진 정봉화의 번역을 제외하고는 여기서 다룰 네 번역자의 판본은 이미 1970년대 이후 독문학자들에 의해 옮겨진만큼 일정 정도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레마르크의 작품처럼 주로 간결한 ‘전보문’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난이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비교적 번역이 용이한 까닭에 터무니없는 오역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개별 번역본을 검토하는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무엇보다 전쟁터의 상황을 묘사하는 디제시스 부분을 대상으로 살펴본다. 다음으로는 전장에서 이루어지는 군인들의 언어를, 마지막으로는 주인공이 엘리자베스와 짧지만,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나오는 사랑의 언어가 그것이다.

1) 송영택 역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71)

우선 전장의 상황에 대한 묘사 부분을 송영택의 번역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련인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시타인브렌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타인브렌너도 그를 노려보았다.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 시타인브렌너가 소련인을 즉석에서 쏴 죽일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인지, 혹은 소련인을 지나치게 도발시킨 것에 대해서 방어의 태세로 긴장한 것인지 그레버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이유가 동시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련인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27) 
또한 아프리카에서 매일 굉장한 진력을 계속하고 있었을 때, 하늘에 가득한 별과 탱크의 바퀴에 얼룩진 사막 위의 밤, 그때도 생각해 보았던가? 아니, 후퇴하면서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없었다. 이윽고 패배, 패주, 퇴각은 일직선으로 독일로 행하고 있었다. 더구나 소련에서는 아프리카에서처럼 한둘의 군단이 패배한 게 아니었다. 전 독일군이 퇴각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생각하기 시작했다.(36)

이 같은 송영택의 번역은 원문과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송영택의 다른 번역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송영택이 독일어 원본보다는 영어나 일본어 번역을 저본으로 삼았다는 추측을 낳게 한다. 다시 말해, 송영택의 번역은 번안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원본과의 엄밀한 대조를 바탕으로 한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의 많은 역자가 그랬듯이, 그는 상당히 자유로운 번역을 추구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 더 오래 살아남은 것이 송영택의 번역이란 점은 조금 의아하다. 번역 및 출판시장에서 송영택이 지녔던 위상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2) 조철제 역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72)

위에서 인용한 송영택의 번역은 조철제에게서는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러시아인은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대로 선 채, 시타인브레너를 바라보았다. 시타인브레너도 되돌아보았다. 얼굴이 갑자기 변했다. 긴장되고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러시아인이 덤벼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덤벼들 동작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이 러시아인을 서슴지 않고, 쏘아 죽여도 아무런 의의가 없었을 것이다. 이 남자는 어차피 사형선고를 받았었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방위인지 아닌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타인브레너에게는 그것이 아니었다. 러시아인으로 하여금 한 순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흥분시키는 것이 그의 취미인지, 아니면 살인을 할 때 언제나 구실을 찾아 합법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옹졸한 성격 탓인지, 그레버는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두 가지가 다 있었다. 더욱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있었다. 그레버는 이것을 자주 보았었다. 러시아인은 움직이지 아니했다.(95)


그러다가 아프리카에서 맹렬한 진격을 가했을 때, 하늘은 덮은 별과 전차바퀴로 가득찬 사막의 밤에 생각해 보았을까? 아니다 – 후퇴하면서도 한 번도 생각한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프리카다. 이국의 국토다. 지중해가 그 가운데 가로놓여있다. 다음에 프랑스가 있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독일이 된다. 설령 이국의 국토를 잃었기로서니 무엇을 생각한단 말인가? 어디서나 반드시 이기라는 법은 없다.

다음은 러시아였다. 러시아, 패배, 패주, 이번에는 중간에 바다가 없었다. 퇴각이 일직선으로 독일을 향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처럼 그저 몇 개의 군단이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군 전체가 물러났다. 그는 갑자기 생각하기 시작하였다.(103)

위에서 보는 것처럼 송영택의 번역과 조철제 번역의 길이는 사뭇 다르다. 조철제의역본은 송영택의 그것보다 훨씬 길고 상세하다. 전반적으로 조철제의 번역이 송영택의 것보다 독일어 판본에 가깝고, 언어 구사면에서도 더 현대적으로 보인다. 인용된 부분은 안미현과 장희창의 번역도 세부적인 것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근본적으로는 조철제의 번역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전장의 언어를 중심으로 비교해 보자. 대표적인 반전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전장을 배경으로 하는 까닭에 러시아에서 퇴각하는 독일군 사이의 대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의 대화는 중대 내의 계급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짧고 간결하다. 전장의 언어는 전반적으로 급박하고, 거칠고, 간결하며, 비속어도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독문학자인 번역자 대부분은 오늘날 다른 매체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극단적인 비속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나치 신봉자 슈타인브레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등장인물의 대화에 비속어가 사용되지 않는 것은 현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데, 여기에는 다른 매체에 비해 문자매체로 쓰인 문학 작품으로서의 품격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듯이 보인다.

“이만하면 됐소?”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소련인 포로가 서투른 독일어로 물었다. 그는 눈이 무척이나 파랗고 흰 머리가 푸석푸석하게 자란 70대의 남자였다.
“닥쳐! 볼세비키. 이쪽에서 질문할 때만 대답해.”하고 시타인브렌너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는 원기왕성하게 줄곧 여자 게릴라의 펑퍼짐한 엉덩이에 눈을 주고 있었다. 여포로는 대단히 젊었다. “좀더 깊게” 그레버가 말했다. 그는 시타인브렌너, 그리고 샤우워와 함께 이들 포로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우리들 무덤인가?” 소련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시타인브렌너는 잽싸게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리면서 노인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이 놈의 늙은이, 닥치라면 닥쳐!”
소련인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타인브렌너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악의가 없는 것 같았다. 파리의 날개를 뜯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만족감으로 충만되어 있었다.(송영택, 27)
“이만하면 됐오?” 제일 나이 먹은 러시아인이 물었다. 그는 희고 더러운 수염을 길렀고 아주 푸른 눈을 가진 70살 가량의 남자였으며 엉터리 독일어로 말했다.
“입 닥쳐, 볼세비키. 물을 때만 말해.” 시타인브렌너가 대답했다. 그는 아주 원기 왕성했다. 그의 눈은 빨치산의 한 사람인 여자를 뒤쫓고 있었다. 그녀는 젊고 발랄했다.
“더 깊이” 하고 그레버가 말했다. 그는, 시타인브렌너와 사우어와 같이 포로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우리 것?” 러시아인이 물었다.

시타인브렌너는 날쌔게 뛰어내려 넓직한 손으로 노인의 뺨을 후려갈겼다. “영감쟁이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는 거야! 여기를 뭐로 생각하고 있어? 성당의 미사인 줄 알어!

그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는 파리한테서 다리를 떼어낸 아이의 만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조철제, 95)

이 부분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러시아인의 서투른 독일어, 슈타인브레너의 성격을 반영한 잔인성, 전장 언어의 다급함 등이 될 것이다. 이때 러시아인이 사용하는 독일어는 네 번역본 모두에서 직접 구별되지는 않고, ‘엉터리 독일어’ 혹은 ‘서투른 독일어’란 설명으로 대신 되어 있다. 또한 여기서 맥락에서 조금 빗나가는 ‘성당 축성’에 관한 부분은 여러 역본에서 누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안미현 역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89)

후기 산업사회와 함께 레마르크의 인기가 차츰 식어가면서 새로운 번역이 부재하는 가운데 1990년대에 새로 나온 번역은 안미현의 번역이다. 1989년에 출생한 레마르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판사 생각의나무는 다시 한번 지난날 레마르크의 명성을 소환하고자 했다. 이때 안미현의 번역은 이전의 판본과는 달리, 레마르크의 고향 오스나브뤼크에 있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재단 소장인 토마스 F. 슈나이더가 복원한 1989년 판 키펜호이어 앤 비취 출판사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원본을 사용한다. 이 판본에서는 검열을 통해 자체 수정, 삭제되었던 부분들이 복원되었다. 이처럼 전후 독일 사회에서 호감을 받지 못한, 반정부적 성향의 이른바 ‘불편한’ 작가들의 원고가 검열을 통해 많이 수정된 것은 번역(비평)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안으로 논의될 수 있다. 같은 해인 1990년에 <약속의 땅>도 이내금에 의해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었지만, 과거 레마르크의 명성과 인기를 되살리지는 못했다. 이후 출판사가 부도가 나면서(2011년) 이 번역본도 함께 묻혀 버렸다.

전선의 현장과 더불어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것은 그래버의 고향을 중심으로 한 후방 도시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래버와 엘리자베스를 비롯하여 후방에 있는 민간인의 상황을 옮긴 부분을 중심으로 번역본들을 비교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몇 주간의 짧은 휴가 동안 이루어진 두 남녀 간의 사랑은 순수하고도 치열하다. 둘은 이전에 같은 학교에 다녔던 사이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안미현의 번역이다. 그래버와 엘리자베스 사이의 대화에서 다른 번역들은 모두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에게 ‘하다’체를, 엘리자베스는 그래버에게 존칭을 사용한다. 이로써 전장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결혼한 두 사람 간의 위상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남편과 순종적인 아내라는 통념적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전, 곧 안정될 거예요. 제가 너무 히스테리칼하다고 생각지는 마세요. 저는 지금 몹시 행복해요. 단조롭고 지루한 암소의 행복과 같은 것은 비할 수도 없어요.”
“암소의 행복? 그런 행복을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어.”(송영택, 331)

그녀는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
“전 곧 안정될 거예요. 제가 너무 히스테리칼하다고 생각지는 마세요. 저는 행복해요. 그러나 이 행복은 흔들리고 있어요. 단조롭고 변함 없는 암소의 행복과는 달라요.”
“암소의 행복 – 그런 것을 누가 좋아하지?”(조철제, 341)

그녀의 숨결이 차츰 안정되고 있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내가 히스테리컬하다고 생각하지는 마. 난 지금 행복해. 하지만 이건 흔들리는 행복이야. 늘 같은 모양의 암소 같은 행복이 아니라.”
“암소 같은 행복? 누가 그걸 원한대?”(안미현 2권, 228)

위에서 보는 것처럼 네 가지 번역본에서 그래버와 엘리자베스 사이의 위상이 사뭇 다르게 설정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송영택과 조철제의 경우, 엘리자베스는 그래버에게 존칭을 사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그에게 대단히 의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것은 레마르크가 애초에 설정했던 여성상과 부합하는 것일 수도, 아니면 한국이란 이질적 문화권에 전이되었을 때 나타나는 젠더적 차이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장면에서 안미현은 두 사람이 친구처럼 대등한 어체를 사용함으로써 심리적으로도 대등한 위상을 보여준다. 역자는 두 사람 사이에 대등한 평어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의 수동적이고 보호받는 입장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독자들의 취향에는 다소 부합하지 않는 듯하다.


4) 장희창 역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2010)

2000년대에 들어서도 레마르크는 더 이상 한국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던 중, 장희창의 번역으로 나온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에 포함되었다. 이 번역 역시 검열된 부분을 복원한 원전을 사용했다. 위에서 인용한 그래버와 엘리자베스의 대화를 장희창은 다음과 같이 옮겼다.

그녀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난 곧 안정을 찾을 거예요. 너무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요. 지금 행복하니까. 하지만 요동치며 흔들거리는 행복이죠. 단조롭고 천편일률적인 암소의 행복은 결코 아녜요.”
“암소의 행복, 누가 그런 걸 바라겠어?” 그래버가 말했다.(468)

여기서 장희창의 경우는 극존칭을 피하면서도 완전히 반말을 쓰지는않아 두 사람 사이의 젠더적 위상은 훨씬 좁혀지는 듯하고, 한국 독자들의 감각에 보다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원본 자체의 불완전함이나 오늘날의 어법에 맞지 않은 낡은 역어 등, 1970년대 번역이 가진 문제점들을 보완한 장희창의 번역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가진 명성과 권위에 힘 입어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독서계, 출판계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한 상태이다.

3. 평가와 전망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개선문>이 작가의 세계적인 인기에 영합하여 수많은 번역본이 쏟아져 나온 것에 비한다면,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번역본 종수는 훨씬 적은 편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소설의 번역은 1970년대에 절정에 달했고, 80년대부터는 현격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중에도 1970년대 이후에는 송영택의 번역이 시장을 주도했고, 2010년 이후부터는 장희창의 번역이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번역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장에서의 간결하고 투박한 어투에 관한 번역은 넓은 의미에서는 영화 번역 혹은 영상 번역비평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쓰일 때부터 이미 영화제작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나아가서는 오늘날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영상번역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쟁 장면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와 같이 문학 작품의 경우는 일반적인 영상 매체와는 달리 극단적인 비속어 등은 원작에서나 번역본에서나 절제된 것으로 보임으로써 매체 간 번역의 격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송영택(1971):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세종출판공사. 조철제(1972):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삼진사. 안미현(1989):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생각의나무. 장희창(2010):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안미현
  • 각주
  1. 참고로, 영어판 초판은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라는 제목으로 Denver Lindley에 의해 번역되어 1954년에 잡지 <Collier’s> (Springfield, OH)에서 최초로 인쇄되었고, 같은 해 뉴욕의 하코트 브레이스 Harcourt Brace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또한 1958년 미국 영화감독 다글러스 서크 Douglas Sirk에 의해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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