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푸가 (Todesfuge)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의 시
작가 | 파울 첼란(Paul Ce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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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948 |
장르 | 시 |
작품소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서정적 형식으로 주제화한 독일어권 시인 파울 첼란의 시다. 이 시는 1944년과 1945년 초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며, 루마니아어로 번역은 1947년 5월에 이루어졌다. 독일어 원본은 1948년에 나온 시집 <유골함에서 나온 모래>에 포함되어 처음 출판되었다. 첼란은 1952년 5월 오스트제 근처의 니엔도르프에서 열린 47그룹 모임에서 이 시를 낭송했고, 1952년 <양귀비와 기억>에 재수록된 후 이 시는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되었다. 강제수용소의 공포와 죽음을 대가답게 표현한 시로 평가된다. 시의 화자는 집단을 의미하는 “우리”로, “새벽의 검은 우유”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다시 연결되는 것은 음악의 푸가 형식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 시는 푸가 형식에 기댄 다성조로, 모티프를 반복하며 변형시키는 구조를 취하면서, “새벽의 검은 우유”와 같은 모순적 암시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써 구체적으로 명명되지는 않지만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서정적이고 세련된 미적 감성이 홀로코스트의 잔인함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비평가들은 이 시가 가지는 신비적 이미지가 리듬으로 탁월하게 변주되는 내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첼란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로, 무수한 시선집과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여러 기념식에서 인용되고, 다른 예술 형식으로 수용되었다. 국내에서는 1962년 <죽음의 둔주곡>이란 제목으로 전혜린에 의해 처음 옮겨져 세계전후문학전집 9권에 해당하는 <세계전후문제시집>에 수록되었다(신구출판사).
초판 정보
Celan, Paul(1948): Todesfuge. In: Der Sand aus den Urnen. Wien: A Sexi.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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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죽음의 遁走曲 | 世界戰後問題詩集 | 世界戰後文學全集 9 | 파울 세엘란 | 전혜린 | 1962 | 신구문화사 | 188-189 | 편역 | 완역 | |
2 | 죽음의 遁走曲 | 세계명시선집 | 世界의 文學大全集 24 | 파울 체란 | 송영택 | 1971 | 同和出版社 | 302-303 | 편역 | 완역 | |
3 | 죽음의 遁走曲 | 현대시학 | 現代詩學 3-11 | 파울 첼란 | 전광진 | 1971 | 現代詩學社 | 74-75 | 편역 | 완역 | |
4 | 죽음의 둔주곡 | 世界名詩選 | 玄岩文藝新書 21 | 첼란 | 송동준 | 1978 | 玄岩社 | 196-197 | 편역 | 완역 | |
5 | 죽음의 둔주곡 |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江이 흐르고 : 世界抒情詩100選 | 파울 첼란 | 김광규 | 1979 | 문장 | 168-179 | 대역본 | 완역 | ||
6 | 죽음의 遁走 | 世界大表名詩選集 | 世界大表名詩選集 24 | 파울 첼란 | 송영택 | 1980 | 太極出版社 | 199-201 | 편역 | 완역 | |
7 | 죽음의 遁走曲 | 20世紀 獨逸詩 2 | 探求新書 178 | 파울 셀란 | 이동승 | 1981 | 探求堂 | 164-169 | 대역본 | 완역 | |
8 | 죽음 둔주곡 | 現代詩選 | 현대의 세계문학 31 | 파울 셀란 | 김주연 | 1984 | 汎韓出版社 | 419-421 | 편역 | 완역 | |
9 | 죽음의 푸가 | 죽음의 푸가-파울 첼란 詩選 | 열음世界詩人選 3 | 파울 첼란 | 고위공 | 1985 | 열음사 | 22-27 | 대역본 | 완역 | |
10 | 죽음의 푸가 | 죽음의 푸가-파울 첼란 詩選 | 20세기 문제시인선집 2 | 파울 첼란 | 김영옥 | 1986 | 청하 | 37-39 | 편역 | 완역 | |
11 | 죽음의 푸가 | 첼란 | 惠園世界詩人選 6 | P. 첼란 | 고위공 | 1987 | 혜원출판사 | 80-82 | 대역본 | 완역 | |
12 | 죽음의 둔주곡 | (詩畵版)세계의 名詩 | P. 첼란 | 확인불가 | 1987 | 규문각 | 201-204 | 편역 | 완역 | ||
13 | 죽음의 푸가 |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 혜원세계시인선 6 | 첼란 | 고위공 | 2000 | 혜원출판사 | 80-82 | 대역본 | 완역 | |
14 | 죽음의 푸가 | 죽음의 푸가-파울 첼란 시선 | 파울 첼란 | 전영애 | 2011 | 민음사 | 40-42 | 편역 | 완역 | ||
15 |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 파울 첼란 전집 1 | 파울 첼란 | 허수경 | 2020 | 문학동네 | 59-61 | 완역 | 완역 |
1. 번역 현황 및 개관
흔히 ‘난해시’, ‘비의시’로 알려진 첼란의 시 번역은 모든 독문학자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첼란의 개인적 삶이나 20세기 유럽 시의 기준이 되었다고 불리는 그의 시가 시문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독문학자들에게 스쳐 지나칠 수 없는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번역이야말로 문학해석의 기본이자 필수 작업이란 것을 고려한다면 첼란의 난해한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1945년 집필되어 1952년에 출판된 첼란의 첫 시집 <양귀비와 기억>(Mohn und Gedächtnis)에 실린 <죽음의 푸가>는 첼란이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작품으로 그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국내에서 이 시는 1962년 전혜린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번역되어왔다.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이 종종 출판사 편집부나 익명의 역자에 의해 중역되거나 무단으로 인쇄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이 시는 거의 예외 없이 저명한 독문학자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1970년대에 4차례 번역되었고(송영택, 전광진, 송동준, 김광규), 1980년대에도 총 4차례 번역되었다(이동승, 김주연, 고위공, 김영옥).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2012년에는 전영애, 2020년에는 허수경에 의해 번역본이 나왔다. 1990년대에 번역이 시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뒤에서 논의될 것처럼 80년대 말에 나온 고위공의 번역과 전영애의 연구서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문학과지성사)로 첼란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 시단의 관심 또한 보다 젊은 세대의 시인들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우선 제목에 들어있는 ‘푸가’는 1984년 김주연의 번역까지는 한결같이 ‘둔주곡’으로 옮겨지다가 이듬해인 1985년 고위공의 번역에서부터 ‘푸가’라는 용어가 그대로 차용되었다. 또한 첼란이란 이름의 표기법도 세엘란에서 체란, 셀란을 거쳐 첼란으로 확정되었다.
개별 번역 비평에 앞서 이 시의 번역사를 통시적으로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고위공의 번역 이전까지 이 시는 세계문학전집, 현대시선, 현대전후문학전집 등의 전집이나 선집 속에서 독일의 현대시를 소개하는 차원으로 번역되었다. 전후 독일 혹은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채택된 첼란의 시는 때로는 한두 편, 때로는 좀 더 많은 편수가 영미 시, 프랑스 시들과 함께 독일시 편에 포함되었다. 역자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첼란의 시를 번역, 수록했는데, 첫눈에 대단히 생경하게 다가오는 이 시를 대부분 문자적으로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이 번역들은 그럼에도 시를 읽고 해석하는 기본 입장에서는 제목에 들어있는 둔주곡 혹은 푸가라는 음악적 형식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고위공은 세계 여러 나라 현대 시인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첼란의 시만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다. 또한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푸가라는 형식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상세해진다. [1] ‘하나의 성부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에 따라 쫓아가는 형식’으로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이 음악 형식의 기본틀에 맞춰 시를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전영애의 번역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일찍부터 이 시의 원제목이 <죽음의 푸가>가 아니라 <죽음의 탱고>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 푸가의 형식이 이 시를 이해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다만 푸가 형식이든 탱고 형식이든 이 시가 대단히 음악적 리듬에 따라 쓰였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4박자 리듬에 반음계적 진행, 스타카토와 테누토가 자주 사용되는 절도 있는 양식이 탱고의 지배적인 특징이라면, 이 시의 경우 실제로 하나의 주된 소절을 다른 소절이 뒤따라가며 다성적으로 반복하는 푸가의 형식에 더욱더 어울리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시인이 자신의 시 제목을 푸가로 바꾼 이유로도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하여 이 시를 번역할 때 닥틸루스 Daktylus 율격과 두어첩용 Anapher이 휴지부 Zäsur가 없이 사용되면서 시 전체에 연속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강약약조의 닥틸루스 율격은 규칙적이고 장엄한 지속적 리듬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쾌한 분위기도 자아낸다. 따라서 이 같은 요소들은 이 시의 번역에서 시의 내용적인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안들이다. 또한 독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첼란의 시에는 비의시, 난해시라는 레테르가 확고하게 붙어 있다. 이에 반해, “나는 내 존재와 무관한 시는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첼란 1962)[3]라는 시인 자신의 말처럼, 오히려 현실적인 자신의 세계 체험, 특히 몸소 겪은 아우슈비츠의 체험을 놀랍도록 타협 없이, 철자 하나하나까지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의미에서 ‘비의시’ 대신 ‘체험시’에 가깝다는 주장도 대두된다. 이 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Die Todesfuge
1 Schwarze Milch der Frühe wir trinken sie abends[4] 2 wir trinken sie mittags und morgens wir trinken sie nachts 3 wir trinken und trinken 4 wir schaufeln ein Grab in den Lüften da liegt man nicht eng 5 Ein Mann wohnt im Haus der spielt mit den Schlangen der schreibt 6 der schreibt wenn es dunkelt nach Deutschland dein goldenes Haar Margarete 7 er schreibt es und tritt vor das Haus und es blitzen die Sterne er pfeift seine Rüden herbei 8 er pfeift seine Juden hervor läßt schaufeln ein Grab in der Erde 9 er befiehlt uns spielt auf nun zum Tanz 10 Schwarze Milch der Frühe wir trinken dich nachts 11 wir trinken dich morgens und mittags wir trinken dich abends 12 wir trinken und trinken 13 Ein Mann wohnt im Haus der spielt mit den Schlangen der schreibt 14 der schreibt wenn es dunkelt nach Deutschland dein goldenes Haar Margarete 15 Dein aschenes Haar Sulamith wir schaufeln ein Grab in den Lüften da liegt man nicht eng 16 Er ruft stecht tiefer ins Erdreich ihr einen ihr andern singet und spielt 17 er greift nach dem Eisen im Gurt er schwingts seine Augen sind blau 18 stecht tiefer die Spaten ihr einen ihr andern spielt weiter zum Tanz auf 19 Schwarze Milch der Frühe wir trinken dich nachts 20 wir trinken dich mittags und morgens wir trinken dich abends 21 wir trinken und trinken 22 ein Mann wohnt im Haus dein goldenes Haar Margarete 23 dein aschenes Haar Sulamith er spielt mit den Schlangen 24 Er ruft spielt süßer den Tod der Tod ist ein Meister aus Deutschland 25 er ruft streicht dunkler die Geigen dann steigt ihr als Rauch in die Luft 26 dann habt ihr ein Grab in den Wolken da liegt man nicht eng 27 Schwarze Milch der Frühe wir trinken dich nachts 28 wir trinken dich mittags der Tod ist ein Meister aus Deutschland 29 wir trinken dich abends und morgens wir trinken und trinken 30 der Tod ist ein Meister aus Deutschland sein Auge ist blau 31 er trifft dich mit bleierner Kugel er trifft dich genau 32 ein Mann wohnt im Haus dein goldenes Haar Margarete 33 er hetzt seine Rüden auf uns er schenkt uns ein Grab in der Luft 34 er spielt mit den Schlangen und träumet der Tod ist ein Meister aus Deutschland 35 dein goldenes Haar Margarete 36 dein aschenes Haar Sulamith
2. 개별 번역 비평
1) 전혜린 역의 <죽음의 둔주곡>(1962)
이 시의 국내 최초의 역자가 전혜린이란 사실은 그녀가 당시 독일 문학의 추세를 얼마나 빠르고 민감하게 감지하고 반응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한다. 실제로 이것은 그녀가 독일에 체류하고 있던 1955년부터 1959년 사이에 첼란이 독일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던 시인의 한 사람이었던 사실과 맞물린다.[5] 이 국내 최초의 번역은 백철 등이 (이효선, 조지훈, 김붕구, 이어령) 편집한 세계전후문학전집의 9권 <세계시집>에 수록되었다. 전혜린은 이 시집의 독일편에서 ‘파울 세엘란’ 외에도 귄터 아이히, 카알 크롤로후, 마리 루이제 카슈니츠 등 여러 다른 독일 시인들의 시도 옮겼다.
9 그는 춤을 추라고 우리에 명한다 10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밤에 마시고 아침에 마시고 대낮에 마시고 저녁에 마신다 12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13 한 남자가 집안에 산다 뱀과 놀고 글을 쓴다 14 그는 어두워지면 독일에 글을 쓴다 너의 금발이여 마르가레테 15 너의 잿빛 머리여 술라미트 우리는 무덤을 공중에 판다 거기서는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 16 그는 더 깊이 땅을 파라고 외친다 한 놈은 파고 한 놈은 노래하고 놀아라 17 그는 허리띠의 쇠를 잡는다 그는 흔든다 그의 눈은 푸르다 18 곳괭이를 더 깊이 파라 다른 놈은 계속해서 춤춰라
원래 세로쓰기로 되어있는 이 번역문에서 결정적으로 16행의 stecht tiefer die Spaten ihr einen ihr andern spielt weiter zum Tanz auf를 “그는 더 깊이 땅을 파라고 외친다 한 놈은 파고 한 놈은 노래하고 놀아라”로 옮기는 바람에 춤곡 혹은 무도곡을 연주한다는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그 외에도 몇 군데 기본적인 의미 전달이 정확지 않은 곳이 눈에 띄지만, 전혜린의 번역은 대단히 현대적이다. 문제가 되는 “dein goldenes Haar Margarete”는 “너의 금발이여 마르가레테”라고 옮겨 마르가레테의 ‘금발’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사소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전혜린의 이 번역은 첼란이란 미지의 시인을 국내에 처음 알리고 독일 현대시의 최신 흐름을 엿보게 했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2) 송영택 역의 <죽음의 둔주곡>(1971)
1971년에 나온 송영택의 번역 역시 세로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첫 연의 ‘Schwarze Milch der Frühe’를 ‘이른아침의黑밀크’로 옮긴다. 그는 원문처럼 문장부호를 생략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종종 띄어쓰기조차 생략한 채 길게 붙여쓰기를 선호한다. “우리는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누워도 비좁지가않겠다 / 어느사나이가집안에서 뱀들과놀며편지를쓴다 / 그는독일에편지를쓴다날이저물면 금발의마르가레에테여 / 은발의줄라미이트여우리는공중에무덤을판다거기서는누워도비좁지가않겠다”(13-15행). 어휘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 같은 방식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무척 독창적인 시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초에 띄어쓰기를 고려하지 않는 과거 세로쓰기의 관행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1980년에 태극출판사에서 다시 출판된 판본 <세계대표명시전집>에서도 변화 없이 동일하게 인쇄되었다.
송영택이 ‘schreibt’를 ‘편지를 쓴다’로, dein goldenes Haar Margarete‘를 ‘금발의 마르가레에테여’, ‘dein aschenes Haar Sulamith를 은발의 줄라미트여’로 호격으로 옮긴 것은 전혜린의 번역과 다른 점이다.
3) 송동준 역의 <죽음의 둔주곡>(1978)과 김주연 역의 <죽음 둔주곡>(1984)
1970년대 말에 나온 송동준의 번역과 김광규, 김주연의 번역은 세부적인 요소에서는 다소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13 집에 사는 한 남자 뱀과 논다 그자는 편지 쓴다 14 날이 어두워지면 독일로 적어보낸다 그대 금발의 마르카레테를 15 그대 잿빛 머리칼의 줄라미트도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그곳엔 눕기가 좁지 않다 [...] 31 그는 납제의 총알로 너를 맞힌다 그는 너를 명중한다
송동준은 그대 금발의 마르가레테와 줄라미트를 호격으로 보기보다는 목적격 조사를 붙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앞의 번역들과 대동소이하게 보인다.
1984년에 나온 김주연의 번역도 대동소이한데, 그럼에도 그는 er trifft dich mit bleierner Kugel er trifft dich genau를 “그는 납으로 된 총알을 갖고 너를 맞춘다 그는 너와 정확히 만난다”로 옮겨 원 의미에서 조금 더 멀어진다. 하지만 “그는 어두워지면 독일로 편지를 쓴다 너 금빛 머리 마르가레테”의 경우 dein goldenes Haar Margarete를 ‘너 금빛 머리 마르가레테’라고 하여 우리말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6]
이처럼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에 나온 번역들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면서 보다 정확한 번역과 이해를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역자의 첼란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얼마간은 피상적으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4) 고위공 역의 <죽음의 푸가>(1985/1987)
고위공은 1985년에 <죽음의 푸가>를 표제작으로 한 <파울 체란 시선>(열음세계시인선 3)에서 68편의 첼란 시를 번역하였다. 이것은 그때까지 번역된 것에 비해 월등히 많은 편수이다. 고위공은 1987년에는 이를 개정하여 <첼란>이란 제목의 단독 역서를 다시 출판한다(혜원출판사). 고위공의 번역은 처음부터 번역본과 독일어 원본을 병렬하여 원 텍스트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1985년과 1987년 두 역본의 차이점이라면 1985년 판은 각 시들이 수록된 시집을 밝히지 않아 무작위로 선별된 것처럼 보인다면, 1987년에는 8권의 시집에 따라 작품들을 재배열하고 훨씬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데 있다.[7]
특히 1987년 판은 일종의 연구번역이라 부를 수 있는데, 단 몇 편의 시를 선별적으로 번역하여 ‘시선집’에 소개하는 차원에 머물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의 사례와는 달리, 고위공은 첼란의 모든 시집에서 대표적인 시들을 추리고 상세한 각주와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본격적인 연구번역의 차원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때 고위공이 첼란의 시를 읽어내는 키워드는 비의시, 난해시이다. 물론 그는 첼란의 시에서 “앙가주망적 요소가 언어미학으로 승화”(고위공 1987, 머리말)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지만, “첼란의 시는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같은 곳) 시 자체의 개별적 해설에 역점을 두었다고 밝힌다. 그는 첼란을 ‘어둠의 대가’로 칭하며, 그의 시를 “몹시 특이하고 독자적인 언어 구사나 시적 구조, 수수께끼 같은 의미성”을 지니며 “절대적이고 폐쇄적” [8] 이라고 규정한다. 이 같은 그의 해석은 첼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아직 많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서 첼란의 시를 해석하는 일종의 이정표로 작용했다.
27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밤마다 너를 마신다 28 우리는 정오마다 너를 마신다 31 납총탄으로 너를 맞춘다 그는 너를 정확히 맞춘다 32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릿결 마르가레테 33 자기 사냥개들을 우리에게로 몰아온다 그는 공중의 무덤 하나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34 뱀과 더불어 놀며 꿈을 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35 너의 금빛 머릿결 마르가레테 36 너의 잿빛 머릿결 술라미트
고위공은 금빛 머릿결 마르가르테에 대해서 괴테의 <파우스트> 1부에 나오는 여주인공 그레트헨의 원래 이름이 마르그레테임을, 잿빛 머릿결 술라미트에 대해서는 구약의 <아가서>에 나오는 솔로몬 왕이 사랑한 미녀임을 각주에서 명시하면서 두 여성을 독일인과 유대인을 상징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그’를 의미하는 독일인과 ‘우리’를 의미하는 유대인이란 대립적 구조로 볼 때 이 두 여성도 인종적인 다름으로 읽게 한다.
고위공은 이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을 “결국 죽음의 참상을 노래하던 시는 사랑의 절규로 막을 내린다”고 표현한다.(고위공 1987, 84) 그가 말하는 “사랑의 절규”란 시적 화자의 절규인 듯하다.
5) 전영애 역의 <죽음의 푸가>(1986/2011)
이미 1986년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문학과지성사)라는 저서로 펴낸 바 있는 전영애는 2011년에 <죽음의 푸가>라는 제목으로 첼란의 번역 시선집을 펴내었다. 앞의 책이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연구서였다면, 후자는 거기서 언급된 시들 뿐 아니라 첼란의 모든 시집에서 주요시를 선별해서 옮긴 번역시집이다. 역자는 각 시집에서 몇 편씩을 골라 총 96편의 시를 번역하고 각 시마다 상세한 각주를 덧붙였다. 또한 이 시선집의 뒷부분에는 특별히 <죽음의 푸가>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붙여 놓았다.
전영애가 첼란의 시를 보는 기본 입장은 고위공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세부적인 영역에서 훨씬 섬세하고, 번역의 방식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고위공이 절제된 번역어 속에서도 도착어로 읽기를 십분 고려하였다면, 전영애는 원문에 토씨 하나도 덧붙이지 않는 최대한의 ‘등가성’을 구현하려 한다. 조사를 비롯한 어떤 첨가어도 사용하지 않아 원문의 통사구조에 가장 가깝게 보이는데, 이것은 흡사 횔덜린이 시도한 소포클레스의 핀다로스 번역을 연상시킨다.[9] 다시 말해, 원문의 어휘나 문장 배열을 ‘축어적’으로 옮겨 어순을 비롯한 도착어의 통사적 차원을 깨뜨리고 문법적 범주를 상당히 벗어나는 것이다.
10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11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14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15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위의 경우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나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처럼 도착어의 통상적인 어순이 무시되었을 뿐 아니라 어휘들 사이의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다. 이렇게 어휘와 어휘 사이의 연결 관계는 읽으면서 저절로 생겨나거나 독자들이 스스로 추론하도록 내버려 둔다. 또한 전영애는 dein aschenes Haar Sulamith를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로 옮기는데, ‘aschen(es)’를 머리카락의 색깔이 아니라 재가 되었다고 표현함으로써 줄라미트를 이미 죽은 자로 이해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다른 역자들의 해석과 차이가 나는 점이다. 그러나 이 경우 마지막 35행, 36행의 전형적인 대구법이 다소 훼손된 듯한 인상을 준다. 머리카락이 이미 재가 된 줄라미트는 죽은 것이 분명하다면 마르가레테는 어떻게 되었을까?
35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36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이와 관련하여 자신의 논문 속에서 이 시의 전문을 번역하고 분석한 바 있는 제여매의 경우를 살펴보자.[10]
31 er trifft dich mit bleierner Kugel er trifft dich genau 32 ein Mann wohnt im Haus dein goldenes Haar Margarete
제여매는 er trifft dich genau와 관련하여 dich를 다음 행에 나오는 금발머리의 마아가레트로 보고, 그녀를 향해 총알을 겨누고 명중시켰다고 이해한다. 또 여기서는 술라미트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 남자에 의해 이미 희생된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한다. 만약 그녀의 해석에 따른다면, 왜 ‘남자’가 같은 독일 여성을 사살하는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 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마르가레테가 반드시 독일 여성이 아니라고 이해한다면, 고위공이나 전영애가 제안한 두 인종의 대표적 이름으로 보았던 주장과는 달라진다.
7) 허수경 역의 <죽음의 푸가>(2020)
번역된 편수가 점차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산발적 혹은 개별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던 첼란 시의 번역은 2020년에 첼란 전집 총 5권(문학동네)이 허수경에 의해 완역됨으로써 전체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이것은 한국 번역문학사에서 하나의 성취라 불릴 수 있을 터이고, 먼 나라 독일에서 세상을 떠나기 불과 2년 전에 나온 역자의 대표 역서가 되었다. 국내에서 시인으로 알려져 있던 허수경은 독일로 건너간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고, 첼란 전집 외에도 여러 번역서를 펴낸 바 있다. [11] 허수경이 전집을 번역함으로써 첼란 시 번역은 외형적으로는 일단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원문 중심의 등가 번역을 고집한 전영애와 비교한다면 허수경의 번역은 독자지향적 번역이라 부를 수 있다. 그녀는 엄밀한 푸가 형식이나 대위법적 구조 대신 가급적 편한 우리말 리듬을 찾아내려고 한다.
27 새벽의 검은 우유 당신을 우리는 밤에 들이켜네 28 우리는 당신을 한낮에 들이켜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29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저녁에도 아침에도 우리는 들이켜고 들이켜네 30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의 눈은 파랗지 31 납총알로 그는 당신을 관통하네 정확하게 관통하네 32 한 남자가 그 집안에 사네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33 그는 자신의 사냥개로 우리에게 몰아대지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선물하네 34 그는 뱀들과 노네 꿈을 꾸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허수경은 마신다, 판다, 있다, 쓴다 등의 동사에서 다른 역자들이 한결같이 선택한 ‘~다’라는 단호한 느낌을 주는 종결어미 대신 들이켜네, 사네, 꾸네, 선물하네 처럼 ‘~네’라는 종결어미를 사용한다 (그 외 파랗지, 몰아대지에서는 ‘지’를 사용하여 변화를 시도한다). 이때 종결어미 ‘~네’는 ‘~다’가 가지는 확정적이고 완결되는 느낌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음성적, 청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3. 평가와 전망
<죽음의 푸가>를 비롯하여 접근하기 어렵고 낯선 첼란의 시들은 처음 번역된 후 60여 년이 흐르면서 여러 번역자의 노력으로 점점 많은 부분이 밝혀지고 언어적 생경함도 줄어든 듯하다. 특히 허수경에 의해 전집이 번역됨으로써 첼란 시의 전체적인 면모가 보다 더 잘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허수경의 번역이 가장 개선된 번역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 또 첼란 시의 의미가 온전히 밝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스스로 재능있는 시 번역자이기도 했던 첼란은 모든 시어나 시어의 배열에서 마지막 철자 하나까지 누구보다 엄밀하고 정확한 시적 효과를 의도했다. 그렇다면 시의 번역은 작가가 의도했을 애초의 그 ‘무엇’을 찾아가는 긴 여정인가? 아니면, 번역자들에게 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도록 자극하는 열린 텍스트인가? 첼란의 이 시는 이 같은 번역의 원초적 질문을 다시 상기시키고 숙고하게 만든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전혜린(1962): 죽음의 둔주곡. 신구문화사.
송영택(1971): 죽음의 둔주곡. 동화출판사.
송동준(1978): 죽음의 둔주곡. 현암문예신서.
김주연(1984): 죽음 둔주곡. 범한출판사.
고위공(1985): 죽음의 푸가. 열음사.
고위공(1987): 죽음의 푸가>. 혜원출판사.
전영애(2011): 죽음의 푸가. 민음사.
허수경(2020): 죽음의 푸가. 문학동네.
- 각주
- ↑ 서용좌(1983): 죽음의 푸가에 있어서 대위법적 구성의 기능과 효과,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사대논문집 9, 41-58.
- ↑ Wolfgang Wenzel(1968): Celans Gedicht Todesfuge. Das Paradoxon einer Fuge über den Tod in Auschwitz. In: Germanisch-Romanische Monatschrift 18, 431-447. 여기서는 제여매(2005):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에 나타난 원형적 여성성에 대하여. In: 독일문학 93, 62-81에서 재인용.
- ↑ 첼란이 1962년 6월 23일 어린 시절의 친구 에리히 아인호른에게 보낸 편지.
- ↑ 각 행 앞에 붙은 숫자는 필자가 편의상 붙인 것임.
- ↑ 독일 문단에서 이전까지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첼란은 두 번째 시집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로 문화부 명예표창, 1958년에는 브레멘 문학상, 1960년에는 다름슈타트 학술원의 뷔히너 상을 받는다. 뷔히너 상의 수상연설이 유명한 <자오선 Der Meridan>이다.
- ↑ 김주연은 책 말미에 붙인 작가 소개에서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을 <조의 기억>(1952), 그 외에 다른 시집의 제목도 <어둠에서 어둠으로>(1955), <아무것도 아닌 장미>(1963), <실(실)의 태양>(1963)으로 옮긴 것을 보면 첼란 시 전반을 어느 정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 ↑ 첼란의 8권의 시집은 다음과 같다. <양귀비와 기억 Mohn und Gedächtnis>,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Von Schwelle zu Schwelle>, <언어 창살 Sprachgitter>, <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Niemandsrose>, <숨결 돌림 Atemwende>, <실낱 태양 Fandensonnen>, <빛의 강제 Lichtzwang>과 유작집 <눈 구역 Schneepart>.
- ↑ 고위공(1987): 첼란 24.
- ↑ 횔덜린의 핀다로스 번역에 대해 최초로 횔덜린의 작품집을 내놓은 크리스토프 테오도르 슈밥 Christioh Theodor Schwab은 “원문이 없이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철저한 축어역으로 나중에 훌륭한 의역을 하기 위한 토대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안미현(2008):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언어, 번역, 해석, 독일문학 108, 34-53, 46 참고.
- ↑ 제여매(2005):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에 나타난 원형적 여성성에 대하여, 독일문학 93, 62-81 참고.
- ↑ 허수경은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한 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모래도시>, <아틀란티스야, 잘 가>, <박하>, 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을 펴냈고,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유고집으로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오늘의 착각>,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가 출간되었다.(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