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의 의지 (Der Wille zum Glück)"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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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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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만이 1896년에 <짐플리치시무스>에 처음 발표한 <행복에의 의지>는 초기 단편소설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1958년에 유영태가 처음으로 <행복의 의지>란 제목으로 번역하였고(신태양사), 뒤이어 1960년에 박찬기가 번역하였다. 이후 1971년에 최현, 강희영, 이정태가, 1974년에 지명렬이, 1976년에 박환덕이 번역해 이 작품은 7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번역된 토마스 만의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한동안 번역이 뜸하다가 90년대 말에 다시 활발하게 출판이 되었는데, 1997년 박찬기의 재판 출판을 계기로 1998년에 한성자와 차은숙이 새로 번역하였고, 2000년대에 최은선(2004), 윤순식(2009), 이지혜(2009), 박종대(2013), 김현진(2019)이 번역하여 맥을 잇고 있다. 1958년경 토마스 만의 작품이 본격 번역되는 시작기에 진즉 포함되어 최근까지 열다섯 명에 육박하는 역자가 번역을 시도할 정도로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 중에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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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의 제목은 ’행복의 의지’로 최초로 번역된 후,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상기시키는 ‘행복에의 의지’, 혹은 ‘행복으로의 의지’ 등으로 번역되어 전치사를 통해 명사와 명사가 연결된 형태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다가, 가장 최근의 번역은 ‘행복하고 싶은 마음’, ‘행복을 향한 의지’로 보다 한국어에 자연스러운 형용어적 제명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제목뿐 아니라 번역 텍스트에서도 현대 한국어에 잘 적응된, 잘 읽히는 번역본들이 나왔다. 이는 그간의 토마스 만 독서와 학술 연구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동시에 전문 번역가들이 등장한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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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은 1960년에 박찬기의 번역본 표제로서 책 제목으로 출판된 예는 한 번 있지만, 이때에도 독립된 단행본이 아니라 다른 소설들과 같이 엮어 출판되었다(박찬기의 번역이 1972년에 서문당으로 출판사를 바꾸어 출판되었을 때는 표제작이 <행복에의 의지>에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변경되었다). 보통 다른 작품들과 같이 묶여 세계문학이나 독일문학의 단편 모음집 안에 포함되어 출판되다가 최근에는 범위를 더 좁혀 토마스 만의 단편 소설집 안에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세계현대문학걸작선집>이나 <세계문학대계> 등에 소개될 때도 많은 경우 첫 번째 작품으로 번역이 되거나 독일을 대표하는 단편소설로 번역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아왔었다. 토마스 만의 단편집에 포함되어 번역될 때는 출판연도순으로 작품 순서를 정하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삽입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다른 작품이 표제작으로 선정되어 주목을 과거보다 덜 받고 있다. 아직 이 작품에 대한 단독 연구논문은 나오지 않았고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해설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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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개별 번역본 고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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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만 단편집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전체 해설(1998)을 맡은 안삼환이 밝히듯 <행복에의 의지>는 무명의 토마스 만을 일약 문단의 인정을 받게 만든 작품이지만 토마스 만의 작품치고는 가볍게 읽힌다. 그리고 다른 토마스 만 작품들에 비하여 주제적으로나 내용상 특별히 번역에 까다로움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즉 다른 작품들처럼 중의적, 다의적 어휘가 많거나 혹은 복잡하거나 긴 장문들이 두드러지거나 사상의 전개나 소설의 구성 혹은 상호텍스트성 등이 특별한 난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은 화자가 친구의 시선으로 파올로의 삶과 사랑, 예술과 죽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크게 독일 북부의 학창 시절, 남부 도시 뮌헨 시절 그리고 로마 시절로 나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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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유영태(1958)|유영태 역의 <행복의 의지>(1958)]]<span id="유영태(1958)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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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은 1958년에 초역이 출판되었다. 유영태의 번역은 <幸福의 意志>란 제목을 달고 있으며 역자는 번역의 초두에 “戀人의 幸福만을 꿈꾸던 藝術家, 그는 婚禮의 밤에 조용히 죽어 갔다.”라고 작품을 요약하고 있다. 즉 주인공이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연인의 행복을 꿈꾸던 예술가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는 이후의 번역들과는 차이를 보여준다. 유영태의 번역은 많은 측면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 독자를 위해 원문에 많은 변형을 가하고 있다. 즉 이 번역은 한국 최초의 번역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고 작품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며, 부분적으로 혹은 세세한 부분에서는 원문과 거리가 상당히 벌어진다. 특히 인물 묘사에서나 상황 혹은 배경 묘사에서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 자주 보인다. 화자가 전하는 마지막 부분의 말은 다음처럼 번역되어 작품의 전체적 의미를 당대의 문체로 설명해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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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되지 않고는 안될 것이었다. 그가 오랜 동안 죽음에 이겨온 것은 의지(意志)로, 한마디로 말하며는, 행복에의 의지가 아니었던가. 그 행복에의 의지가 이루어졌을 때, 그는 죽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싸움도 저항도 없어져서 죽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그는 살아갈 이유를 벌써 잃어버렸던 것이다.(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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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박종서(1976)| 박종서 역의 <선택된 인간>(1976)]]<span id="박종서(1976)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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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52권을 통해 <선택된 인간>을 다시 발표하면서 박종서는 번역 텍스트로 S. 피셔 출판사의 1956년 판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저본 정보를 밝힌 것으로, 이 점에서는 박종서가 이 소설의 번역자 중 유일하다. 번역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지는 면모이다. 그는 역자 해설에서 이 소설이 “이미 出刊된 바 있으나 이번에 改譯하였음도 아울러 밝히는 바”(535)라고 말하는데, 인명을 비롯하여 어휘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현도 가독성을 높이는 쪽으로 수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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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할머니 “Baduhenna”는 “바아두헤나”에서 “바두헤나”로, “페에터”는 “베드로”로 “로오마”는 “로마”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바뀌는 등 현대식 표기법이 적용되었다. “나전어”도 “라틴어”로, “교회의 추장(酋長)” 같은 표현도 “교회의 대표자”로 바뀌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어머니 지빌라가 서로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 키스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초판은 “입술을 서로 물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151)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입술을 서로 맞대고 오랜 침묵이 흘렀”(431)다고 나온다. 입술을 물었다는 표현은 자칫 입맞춤으로 연상되지 못할 여지가 있었는데, 맞댄다는 표현으로 수정되면서 그런 점이 개선되었다. 지빌라의 태몽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개정이 일어난다. 이 꿈은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바,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떠남으로써 그녀에게 아픔을 주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더 큰 아픔을 준다는 내용, 즉 오빠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버려졌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중 근친상간을 예시하는 내용이다. 초판에서는 이 “schweren Traum”이 “우울한 꿈”(52)으로 번역됐다가 개정판에서는 “좋지 못한 꿈”(330)으로 바뀌었다. 당사자를 짓누르는 꿈의 성격을 생각할 때 후자가 나은 번역이라 하겠다.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으로 로마에 입성할 때 축하의 종들이 울릴 때도, 원문의 “von selber”를 종이 “자연히”(14)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역이 개정판에서는 종이 “저절로”(292) 울리기 시작했다로 수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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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이정태(1990)| 이정태 역의 <선택된 인간>(1990)]]<span id="이정태(1990)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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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태의 번역은 1981년 금성출판사의 <(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1990년에는 같은 출판사의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출간되었다. 그의 번역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각 장의 제목에 대한 번역 방식이다. 가령 독일어 제목 “Die Aussetzung”을 “아이를 버리다”로, “Die Entdeckung”을 “탄로가 나다”로 번역했다. 독일어의 명사적 표현을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유럽어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을 하나의 명사나 명사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법이 발달한 명사 중심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동사 중심 언어라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정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 같다. Die Aussetzung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리는 사실을 지칭하고, Die Entdeckung은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서는 이를 각각 “버림 받은 아이”, “누설된 비밀”로 번역했다. 이보다는 이정태의 번역이 단어의 함의를 보다 잘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역자들도 대부분 이정태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경향을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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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태 번역본의 또 다른 특징은 번역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토마스 만의 유려한 장문의 문체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클레멘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와 같이 오랜 전설을 끝까지 이끌어온 나 클레멘스는, 독자 여러분이 주의를 다해 귀를 기울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나 스스로 기울인 수고에 대해 여러분이 주시는 감사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283) “이와 같이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한 보답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나 자신도 포함시켜서,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한 번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284) 아주 긴 문장은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 된 원문을 똑같이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가독성도 좋아 토마스 만적 문체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해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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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태는 “토마스 만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긴 해설을 통해 이전의 역자들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작품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전의 역자들은 이중의 근친상간에 중점을 두며 줄거리 위주로 소개했는데, 이정태는 이 소설을 “원죄와 은총의 이야기”(449)로 소개하면서, 서술자에 대한 해설도 덧붙인다. 그는 서술자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언어의 인간인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의 문학 정신”(450)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이런 작품 이해가 서술자의 자유로운 서술 태도에 대한 번역에서도 잘 반영된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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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김남경(1995)| 김남경 역의 <선택된 인간>(1995)]]<span id="김남경(1995)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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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세대 독문학자라 할 수 있는 박종서와 이정태의 번역 이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던 차에 1995년 <하서세계문학> 54권을 통해 김남경의 번역본이 발표되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의 장정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분홍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이 소설을 타이틀로 한 단독작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2020년 김현진의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 25년 동안, 약 반년 늦게 나온 최호의 번역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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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경 번역의 특징은 이전 번역들보다 표현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매끄러워서 동시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어린 양의 계시에 놀란 프로부스가 말하는 장면에서 “der Stuhl der Welt”를 박종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이정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번역했는데, 김남경은 “세계의 성좌”(262)로 번역했는바, 직역의 방식을 취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깔끔하게 전달하였다. 같은 장면에서 어린 양이 프로부스에게 “Euer Gebet ist erhört und die Wahl geschehen.”이라고 말한 것도 박종서는 “당신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닿아서 선출된 것입니다.”로, 이정태는 “당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선택된 것입니다.”(218)로 번역했지만, 김남경은 “당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선출이 이루어졌습니다.”(263) 라고 번역했다. 여기서도 원문을 단어 그대로 보충 설명 없이 매끄럽게 번역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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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김남경의 직역 방식은 단점도 드러낸다. 가령 앞에서 언급했던 장의 제목인 Die Entdeckung을 “폭로”라고 번역했는데, ‘탄로가 나다’로 번역한 이정태의 의역에 비해 내용 전달 면에서 불명확하다. 명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어와 달리 우리 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폭로’라고 명사만 제시하면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온다. Die Aussetzung의 경우에는 김남경도 박종서와 같이 ‘아이를 버리다’로 의역했다. 또 다른 장의 제목인 “Die schlimmen Kinder”를 김남경은 “가련한 아이들”로 번역했는데, 아버지 그리말트 공이 돌아가신 날 남매가 동침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제목임을 생각할 때 “나쁜 아이들”(박종서)이나 “못된 아이들”(김현진)이 적합할 듯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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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어과를 졸업한 번역문학가라는 정보 외에 자세한 역자 정보가 없어서 토마스 만 전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제법 긴 해설과 상세한 작가 연보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소설을 위한 전문적인 해설은 없었다. 국내 독문학계의 토마스 만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번역문학가’라는 역자 소개와 달리 번역 원칙이나 역자의 말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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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김현진(2020)|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2020)]]<span id="김현진(2020)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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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12권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문을 어떻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으며,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자”(6) 노력했다고 역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그의 번역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것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가 번역 및 작품해설에 반영되어서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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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에서도 언급했듯 der Geist der Erzählung을 김현진은 전설이 아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서사적 특징에 주목한 점이 다른 번역자들과 특히 구분된다. 이 소설에서는 이중의 근친상간과 속죄, 구원이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정령, 즉 서술자 클레멘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의한 것으로, “토마스 만이 만년에 보여준 해학적 글쓰기와 세계관에서 나온 독자적 효과”(420)이다. 서술자는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구분하여 보고함으로써 자못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종결짓곤 한다. 항해 중이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와 그 일행이 어느 항구 도시에 접근하다 전투가 벌어져 선원 중 몇 명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데, 서술자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ch waren sie ja nur Nebenpersonen.” 이에 대한 번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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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서: 그러나 그네들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976, 392) | ||
+ | 이정태: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27) | ||
+ | 김남경: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153) | ||
+ | 김현진: 그러나 그들은 그저 조연에 불과한 인물들일 뿐이었다.(1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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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핏 보기에 큰 차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진은 ja라는 부사를 살려서 ‘뿐이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전 세 사람의 건조한 사실 보고식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ja는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데, 다친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주인공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더 주목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김현진의 번역에서는 서술자의 독특한 태도가 느껴지기에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식의 해학적 글쓰기 태도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는바, 김현진은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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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역자는 의역을 추구하는데, 이는 원문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Die Aussetzung은 “아이를 내버리다”로, Die Entdeckung은 “비밀을 알게 되다”로, Die schlimmen Kinder는 “못된 아이들”로 번역함으로써 그 장의 주요 내용이 잘 전달된다. 김현진 번역의 이런 특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술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eine zugleich entsetzliche und hocherbauliche Geschichte”로 지칭한다. 이는 이중의 근친상간이 벌어지지만 철저한 속죄를 통해 신에 의해 교황으로 선택받는다는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지칭한다. 박종서는 “무지막지하고 매우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990, 295)로, 이정태는 “매우 두렵고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0)로, 김남경은 “정말 무섭고도 동시에 지극히 교화(敎化)적인 전설”(10)로 번역했다. 하지만 김현진은 “경악할 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17)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를 다 마친 서술자는 독자가 소설의 이런 내용에서 “es sei zuletzt mit der Sünde ein leichtes Ding”이라고 잘못된 교훈을 끌어낼까 봐 염려한다. 김현진은 이 말을 “죄라는 것은 결국 별것 아니라고”(413)로 번역했다. 반면 박종서는 “죄라는 것은 결국 험한 것이라고”(1976, 523), 이정태는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편리한 것이라고”(283), 김남경은 “죄라는 것은 결국 가벼운 것이다”(341)로 번역했다.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죄가 ‘험한 것’이나 ‘편리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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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진 번역본의 학술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대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원문과 달리 행을 바꾸어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토마스 만의 경우 S. 피셔 출판사의 판본만 존재하기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어느 판본을 저본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과는 다른 번역 제목을 제시했고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하려 노력한 점, 연구가 병행된 번역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의 번역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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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평가와 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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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만의 이 소설은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번역자를 거치면서 번역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최근에 나온 김현진의 번역본은 ‘한국토마스만학회’의 독회를 통한 공동연구 및 작품 이해가 뒷받침되어 나온 것으로, 질 좋은 번역을 위한 새로운 방식 및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어떤 번역에도 오역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및 해석이 나오면 그에 발맞추어 번역도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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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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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서(1969): 선택된 인간. 정음사.<br> | ||
+ | 박종서(1976): 선택된 인간. 삼성출판사.<br> | ||
+ | 이정태(1990): 선택된 인간. 금성출판사.<br> | ||
+ | 김남경(1995): 선택된 인간. 하서출판사.<br> | ||
+ | 김현진(2020): 선택받은 사람. 나남.<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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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v style="text-align: right">권선형</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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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2일 (목) 08:35 판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소설
작품소개
1896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이다. 남미 출신의 화가 파올로는 뮌헨에서 한 남작의 딸 아다에게 청혼을 하나 그의 유약한 건강 상태를 이유로 아다의 부모에게 거절당한다. 그는 이후 여전히 건강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아다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지키고 자신의 행복에의 의지를 밀고 나간다. 5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정열적 사랑에 매달리는 딸에게 굴복하여 남작은 결국 결혼을 허락하고 파올로는 뮌헨으로 돌아와 아다와 결혼하지만 그 다음 날 사망한다. 친구인 화자는 행복에의 의지가 이제까지 그를 지탱해 주었지만 이제 이것이 이루어지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으로서 에로스와 타나토스, 예술가, 병, 이국성과 시민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1960년에 박찬기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양문사).
초판 정보
Mann, Thomas(1896): Der Wille zum Glück. In: Simplicissimus 1(21-23). <단행본 초판> Mann, Thomas(1898): Der Wille zum Glück. In: Der kleine Herr Friedemann. Novellen. Berln: S. Fischer, 67-100.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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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幸福의 意志 | (世界)現大文學傑作選集 | 토-마스 만 | 兪榮太(유영태) | 1958 | 新太陽社 | 16-28 | 편역 | 완역 | 잡지를 단행본 형태로 출판한 것으로 추정됨 | |
2 | 幸福으로의 意志 | 幸福으로의 意志 | 陽文文庫 82 | 토오마스 만 | 朴贊機(박찬기) | 1960 | 陽文社 | 15-36 | 편역 | 완역 | |
3 | 幸福에의 意志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15 | 토마스 만 | 崔鉉(최현) | 1971 | 尙書閣 | 207-236 | 편역 | 완역 | |
4 | 幸福에의 意志 | 獨逸短篇文學大系, 現代篇 2 | 獨逸短篇文學大系 3 | 토마스 만 | 姜熙英(강희영) | 1971 | 一志社 | 14-28 | 편역 | 완역 | |
5 | 幸福에의 意志 |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5 自然主義文學 |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5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71 | 博文社 | 203-215 | 편역 | 완역 | |
6 | 幸福으로의 意志 | 베니스에서의 죽음 | 瑞文文庫 34 | 토마스 만 | 朴贊機(박찬기) | 1972 | 瑞文堂 | 15-36 | 편역 | 완역 | |
7 | 幸福에의 意志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 12 | Thomas Mann |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 1974 | 汎潮社 | 276-301 | 편역 | 완역 | 초판 |
8 | 幸福에의 意志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 12 | Thomas Mann |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 1975 | 汎潮社 | 276-301 | 편역 | 완역 | 중판, 실린 작품 증가 |
9 | 幸福에의 意志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5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自然主義文學 5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75 | 大榮出版社 | 171-183 | 편역 | 완역 | |
10 | 辛福에의 意志 | 豫言者의 집에서 | 汎友小說文庫 16 | 토마스 만 | 朴煥德(박환덕) | 1976 | 汎友社 | 62-89 | 편역 | 완역 | 초판 |
11 | 幸福에의 意志 | 世界代表短篇文學全集 9 | 世界代表短篇文學全集 9 | 토마스 만 | 李鼎泰(이정태) | 1976 | 正韓出版社 | 213-232 | 편역 | 완역 | |
12 | 幸福에의 意志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5. 自然主義文學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79 | 庚美文化社 | 151-163 | 편역 | 완역 | |
13 | 幸福에의 意志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15 | 토마스 만 | 崔鉉(최현) | 1980 | 尙書閣 | 207-236 | 편역 | 완역 | 작품(프리데만)과 연보가 추가된 중판 |
14 | 행복으로의 의지 | 토마스 만 단편집 | 서문문고 34 | 토마스 만 | 박찬기 | 1997 | 서문당 | 17-46 | 편역 | 완역 | 개정판 |
15 | 행복에의 의지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8 | 토마스 만 | 한성자 | 1998 | 민음사 | 235-260 | 편역 | 완역 |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
16 | 행복에의 의지 | 작은이의 사랑이야기 | 토마스 만 | 차은숙 | 1998 | 푸른샘 | 215-245 | 편역 | 완역 | 목차에 해당 작품의 표기 누락 | |
17 | 행복에의 의지 | 예언자의 집에서 | 범우문고 184 | 토마스 만 | 박환덕 | 2003 | 범우사 | 65-96 | 편역 | 완역 | 2판 |
18 | 행복을 향한 의지 |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단편소설 2 | 토마스 만 | 최은선 | 2004 | 일송미디어 | 8-38 | 편역 | 완역 | ||
19 | 행복에의 의지 |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09 | 누멘 | 88-88 | 편역 | 편역 | ||
20 | 행복하고 싶은 마음 | 토니오 크뢰거 외 | 위즈퍼니 세계 문학 3 | 토마스 만 | 이지혜; 박성원 | 2009 | 교원 | 169-198 | 편역 | 완역 | 아동청소년문학 |
21 | 행복에의 의지 | 토마스 만 | 세계문학 단편선 3 | 토마스 만 | 박종대 | 2013 | 현대문학 | 43-65 | 편역 | 완역 | |
22 | 행복을 향한 의지 | 토마스 만 단편 전집1 | 부클래식 82 | 토마스 만 | 김현진 | 2020 | 부북스 | 78-109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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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토마스 만이 1896년에 <짐플리치시무스>에 처음 발표한 <행복에의 의지>는 초기 단편소설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1958년에 유영태가 처음으로 <행복의 의지>란 제목으로 번역하였고(신태양사), 뒤이어 1960년에 박찬기가 번역하였다. 이후 1971년에 최현, 강희영, 이정태가, 1974년에 지명렬이, 1976년에 박환덕이 번역해 이 작품은 7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번역된 토마스 만의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한동안 번역이 뜸하다가 90년대 말에 다시 활발하게 출판이 되었는데, 1997년 박찬기의 재판 출판을 계기로 1998년에 한성자와 차은숙이 새로 번역하였고, 2000년대에 최은선(2004), 윤순식(2009), 이지혜(2009), 박종대(2013), 김현진(2019)이 번역하여 맥을 잇고 있다. 1958년경 토마스 만의 작품이 본격 번역되는 시작기에 진즉 포함되어 최근까지 열다섯 명에 육박하는 역자가 번역을 시도할 정도로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 중에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행복의 의지’로 최초로 번역된 후,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상기시키는 ‘행복에의 의지’, 혹은 ‘행복으로의 의지’ 등으로 번역되어 전치사를 통해 명사와 명사가 연결된 형태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다가, 가장 최근의 번역은 ‘행복하고 싶은 마음’, ‘행복을 향한 의지’로 보다 한국어에 자연스러운 형용어적 제명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제목뿐 아니라 번역 텍스트에서도 현대 한국어에 잘 적응된, 잘 읽히는 번역본들이 나왔다. 이는 그간의 토마스 만 독서와 학술 연구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동시에 전문 번역가들이 등장한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이 작품은 1960년에 박찬기의 번역본 표제로서 책 제목으로 출판된 예는 한 번 있지만, 이때에도 독립된 단행본이 아니라 다른 소설들과 같이 엮어 출판되었다(박찬기의 번역이 1972년에 서문당으로 출판사를 바꾸어 출판되었을 때는 표제작이 <행복에의 의지>에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변경되었다). 보통 다른 작품들과 같이 묶여 세계문학이나 독일문학의 단편 모음집 안에 포함되어 출판되다가 최근에는 범위를 더 좁혀 토마스 만의 단편 소설집 안에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세계현대문학걸작선집>이나 <세계문학대계> 등에 소개될 때도 많은 경우 첫 번째 작품으로 번역이 되거나 독일을 대표하는 단편소설로 번역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아왔었다. 토마스 만의 단편집에 포함되어 번역될 때는 출판연도순으로 작품 순서를 정하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삽입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다른 작품이 표제작으로 선정되어 주목을 과거보다 덜 받고 있다. 아직 이 작품에 대한 단독 연구논문은 나오지 않았고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해설되었다.
2. 개별 번역본 고찰
토마스 만 단편집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전체 해설(1998)을 맡은 안삼환이 밝히듯 <행복에의 의지>는 무명의 토마스 만을 일약 문단의 인정을 받게 만든 작품이지만 토마스 만의 작품치고는 가볍게 읽힌다. 그리고 다른 토마스 만 작품들에 비하여 주제적으로나 내용상 특별히 번역에 까다로움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즉 다른 작품들처럼 중의적, 다의적 어휘가 많거나 혹은 복잡하거나 긴 장문들이 두드러지거나 사상의 전개나 소설의 구성 혹은 상호텍스트성 등이 특별한 난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은 화자가 친구의 시선으로 파올로의 삶과 사랑, 예술과 죽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크게 독일 북부의 학창 시절, 남부 도시 뮌헨 시절 그리고 로마 시절로 나뉘어 있다.
이 작품은 1958년에 초역이 출판되었다. 유영태의 번역은 <幸福의 意志>란 제목을 달고 있으며 역자는 번역의 초두에 “戀人의 幸福만을 꿈꾸던 藝術家, 그는 婚禮의 밤에 조용히 죽어 갔다.”라고 작품을 요약하고 있다. 즉 주인공이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연인의 행복을 꿈꾸던 예술가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는 이후의 번역들과는 차이를 보여준다. 유영태의 번역은 많은 측면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 독자를 위해 원문에 많은 변형을 가하고 있다. 즉 이 번역은 한국 최초의 번역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고 작품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며, 부분적으로 혹은 세세한 부분에서는 원문과 거리가 상당히 벌어진다. 특히 인물 묘사에서나 상황 혹은 배경 묘사에서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 자주 보인다. 화자가 전하는 마지막 부분의 말은 다음처럼 번역되어 작품의 전체적 의미를 당대의 문체로 설명해준다.
그렇게 되지 않고는 안될 것이었다. 그가 오랜 동안 죽음에 이겨온 것은 의지(意志)로, 한마디로 말하며는, 행복에의 의지가 아니었던가. 그 행복에의 의지가 이루어졌을 때, 그는 죽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싸움도 저항도 없어져서 죽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그는 살아갈 이유를 벌써 잃어버렸던 것이다.(28)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52권을 통해 <선택된 인간>을 다시 발표하면서 박종서는 번역 텍스트로 S. 피셔 출판사의 1956년 판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저본 정보를 밝힌 것으로, 이 점에서는 박종서가 이 소설의 번역자 중 유일하다. 번역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그의 책임감과 열정이 느껴지는 면모이다. 그는 역자 해설에서 이 소설이 “이미 出刊된 바 있으나 이번에 改譯하였음도 아울러 밝히는 바”(535)라고 말하는데, 인명을 비롯하여 어휘를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현도 가독성을 높이는 쪽으로 수정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할머니 “Baduhenna”는 “바아두헤나”에서 “바두헤나”로, “페에터”는 “베드로”로 “로오마”는 “로마”로, “크리스트”는 “그리스도”로 바뀌는 등 현대식 표기법이 적용되었다. “나전어”도 “라틴어”로, “교회의 추장(酋長)” 같은 표현도 “교회의 대표자”로 바뀌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와 그의 어머니 지빌라가 서로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 키스하는 장면의 묘사에서, 초판은 “입술을 서로 물고 오랜 침묵이 흘렀다”(151)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입술을 서로 맞대고 오랜 침묵이 흘렀”(431)다고 나온다. 입술을 물었다는 표현은 자칫 입맞춤으로 연상되지 못할 여지가 있었는데, 맞댄다는 표현으로 수정되면서 그런 점이 개선되었다. 지빌라의 태몽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개정이 일어난다. 이 꿈은 앞으로의 내용 전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바,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태어나자마자 떠남으로써 그녀에게 아픔을 주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더 큰 아픔을 준다는 내용, 즉 오빠와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들 그레고리우스가 버려졌다가 나중에 돌아와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이중 근친상간을 예시하는 내용이다. 초판에서는 이 “schweren Traum”이 “우울한 꿈”(52)으로 번역됐다가 개정판에서는 “좋지 못한 꿈”(330)으로 바뀌었다. 당사자를 짓누르는 꿈의 성격을 생각할 때 후자가 나은 번역이라 하겠다.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으로 로마에 입성할 때 축하의 종들이 울릴 때도, 원문의 “von selber”를 종이 “자연히”(14) 울리기 시작했다는 초역이 개정판에서는 종이 “저절로”(292) 울리기 시작했다로 수정되었다.
이정태의 번역은 1981년 금성출판사의 <(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1990년에는 같은 출판사의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을 통해 출간되었다. 그의 번역에서 먼저 눈에 띄는 점은 각 장의 제목에 대한 번역 방식이다. 가령 독일어 제목 “Die Aussetzung”을 “아이를 버리다”로, “Die Entdeckung”을 “탄로가 나다”로 번역했다. 독일어의 명사적 표현을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유럽어는 어떤 복잡한 개념이나 사건을 하나의 명사나 명사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법이 발달한 명사 중심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동사 중심 언어라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정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번역한 것 같다. Die Aussetzung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리는 사실을 지칭하고, Die Entdeckung은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박종서는 이를 각각 “버림 받은 아이”, “누설된 비밀”로 번역했다. 이보다는 이정태의 번역이 단어의 함의를 보다 잘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역자들도 대부분 이정태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경향을 보여준다.
이정태 번역본의 또 다른 특징은 번역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토마스 만의 유려한 장문의 문체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클레멘스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와 같이 오랜 전설을 끝까지 이끌어온 나 클레멘스는, 독자 여러분이 주의를 다해 귀를 기울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나 스스로 기울인 수고에 대해 여러분이 주시는 감사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다.”(283) “이와 같이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한 보답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 가운데 나 자신도 포함시켜서,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한 번 내가 이야기한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서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284) 아주 긴 문장은 아니지만 한 문장으로 된 원문을 똑같이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가독성도 좋아 토마스 만적 문체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해준다.
이정태는 “토마스 만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긴 해설을 통해 이전의 역자들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작품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전의 역자들은 이중의 근친상간에 중점을 두며 줄거리 위주로 소개했는데, 이정태는 이 소설을 “원죄와 은총의 이야기”(449)로 소개하면서, 서술자에 대한 해설도 덧붙인다. 그는 서술자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언어의 인간인 토마스 만에게 있어서의 문학 정신”(450)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이런 작품 이해가 서술자의 자유로운 서술 태도에 대한 번역에서도 잘 반영된 것 같다.
1세대 독문학자라 할 수 있는 박종서와 이정태의 번역 이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지 않던 차에 1995년 <하서세계문학> 54권을 통해 김남경의 번역본이 발표되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의 장정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분홍색의 밝고 예쁜 표지에 이 소설을 타이틀로 한 단독작품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2020년 김현진의 번역이 나오기 전까지 25년 동안, 약 반년 늦게 나온 최호의 번역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남경 번역의 특징은 이전 번역들보다 표현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매끄러워서 동시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어린 양의 계시에 놀란 프로부스가 말하는 장면에서 “der Stuhl der Welt”를 박종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로, 이정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번역했는데, 김남경은 “세계의 성좌”(262)로 번역했는바, 직역의 방식을 취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깔끔하게 전달하였다. 같은 장면에서 어린 양이 프로부스에게 “Euer Gebet ist erhört und die Wahl geschehen.”이라고 말한 것도 박종서는 “당신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닿아서 선출된 것입니다.”로, 이정태는 “당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선택된 것입니다.”(218)로 번역했지만, 김남경은 “당신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져 선출이 이루어졌습니다.”(263) 라고 번역했다. 여기서도 원문을 단어 그대로 보충 설명 없이 매끄럽게 번역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김남경의 직역 방식은 단점도 드러낸다. 가령 앞에서 언급했던 장의 제목인 Die Entdeckung을 “폭로”라고 번역했는데, ‘탄로가 나다’로 번역한 이정태의 의역에 비해 내용 전달 면에서 불명확하다. 명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어와 달리 우리 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핵심적 역할을 하기에 ‘폭로’라고 명사만 제시하면 의미가 너무 막연하게 다가온다. Die Aussetzung의 경우에는 김남경도 박종서와 같이 ‘아이를 버리다’로 의역했다. 또 다른 장의 제목인 “Die schlimmen Kinder”를 김남경은 “가련한 아이들”로 번역했는데, 아버지 그리말트 공이 돌아가신 날 남매가 동침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제목임을 생각할 때 “나쁜 아이들”(박종서)이나 “못된 아이들”(김현진)이 적합할 듯하다.
독일어과를 졸업한 번역문학가라는 정보 외에 자세한 역자 정보가 없어서 토마스 만 전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제법 긴 해설과 상세한 작가 연보를 제공하는 반면에 이 소설을 위한 전문적인 해설은 없었다. 국내 독문학계의 토마스 만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번역문학가’라는 역자 소개와 달리 번역 원칙이나 역자의 말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김현진 역의 <선택받은 사람>은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12권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의 “섬세하고 치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문을 어떻게 국내의 독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으며,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자”(6) 노력했다고 역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고 있다. 그의 번역본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것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가 번역 및 작품해설에 반영되어서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der Geist der Erzählung을 김현진은 전설이 아닌 이야기의 정령으로 번역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서사적 특징에 주목한 점이 다른 번역자들과 특히 구분된다. 이 소설에서는 이중의 근친상간과 속죄, 구원이라는 심각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자주 웃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정령, 즉 서술자 클레멘스가 보여주는 독특한 서술 방식에 의한 것으로, “토마스 만이 만년에 보여준 해학적 글쓰기와 세계관에서 나온 독자적 효과”(420)이다. 서술자는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을 구분하여 보고함으로써 자못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종결짓곤 한다. 항해 중이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와 그 일행이 어느 항구 도시에 접근하다 전투가 벌어져 선원 중 몇 명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데, 서술자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Doch waren sie ja nur Nebenpersonen.” 이에 대한 번역자들의 번역을 살펴보자.
박종서: 그러나 그네들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976, 392) 이정태: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127) 김남경: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조연에 불과했던 것이다.(153) 김현진: 그러나 그들은 그저 조연에 불과한 인물들일 뿐이었다.(186) |
얼핏 보기에 큰 차이가 안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현진은 ja라는 부사를 살려서 ‘뿐이었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전 세 사람의 건조한 사실 보고식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여기서 ja는 자신이 말하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는데, 다친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며, 주인공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더 주목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김현진의 번역에서는 서술자의 독특한 태도가 느껴지기에 독자는 미소를 짓게 된다. 이런 식의 해학적 글쓰기 태도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나는바, 김현진은 그런 뉘앙스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각 장의 제목 번역에서도 역자는 의역을 추구하는데, 이는 원문의 내용에 충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Die Aussetzung은 “아이를 내버리다”로, Die Entdeckung은 “비밀을 알게 되다”로, Die schlimmen Kinder는 “못된 아이들”로 번역함으로써 그 장의 주요 내용이 잘 전달된다. 김현진 번역의 이런 특징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술자는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eine zugleich entsetzliche und hocherbauliche Geschichte”로 지칭한다. 이는 이중의 근친상간이 벌어지지만 철저한 속죄를 통해 신에 의해 교황으로 선택받는다는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지칭한다. 박종서는 “무지막지하고 매우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990, 295)로, 이정태는 “매우 두렵고도 교훈이 될 수 있는 전설”(10)로, 김남경은 “정말 무섭고도 동시에 지극히 교화(敎化)적인 전설”(10)로 번역했다. 하지만 김현진은 “경악할 만하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17)라고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더 소개하자면, 이야기를 다 마친 서술자는 독자가 소설의 이런 내용에서 “es sei zuletzt mit der Sünde ein leichtes Ding”이라고 잘못된 교훈을 끌어낼까 봐 염려한다. 김현진은 이 말을 “죄라는 것은 결국 별것 아니라고”(413)로 번역했다. 반면 박종서는 “죄라는 것은 결국 험한 것이라고”(1976, 523), 이정태는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편리한 것이라고”(283), 김남경은 “죄라는 것은 결국 가벼운 것이다”(341)로 번역했다.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죄가 ‘험한 것’이나 ‘편리한 것’은 아닐 것이고 ‘가벼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별것’ 아닌 것이 의미상 가장 정확한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현진 번역본의 학술적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대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원문과 달리 행을 바꾸어서 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토마스 만의 경우 S. 피셔 출판사의 판본만 존재하기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어느 판본을 저본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존과는 다른 번역 제목을 제시했고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하려 노력한 점, 연구가 병행된 번역이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이 소설의 번역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3. 평가와 전망
토마스 만의 이 소설은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번역자를 거치면서 번역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최근에 나온 김현진의 번역본은 ‘한국토마스만학회’의 독회를 통한 공동연구 및 작품 이해가 뒷받침되어 나온 것으로, 질 좋은 번역을 위한 새로운 방식 및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어떤 번역에도 오역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연구 및 해석이 나오면 그에 발맞추어 번역도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겨보면서 글을 마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69): 선택된 인간. 정음사.
박종서(1976): 선택된 인간. 삼성출판사.
이정태(1990): 선택된 인간. 금성출판사.
김남경(1995): 선택된 인간. 하서출판사.
김현진(2020): 선택받은 사람. 나남.
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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